맨위로가기

송현수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송현수는 여산 송씨 출신으로, 조선 세조의 친구였으며 단종의 장인이자 정순왕후의 아버지이다. 1445년 관직에 오른 후 딸이 단종의 왕비로 간택되면서 동지돈녕부사에 봉해졌다.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처형되었으나, 숙종 때 복권되었고 정조 때 장릉 배식단에 배향되었다. 정민(貞愍)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후손이 등용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457년 사망 - 로렌초 발라
    로렌초 발라는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철학자, 문헌학자로, 고전 문헌 연구를 통해 중세 시대의 권위에 도전하고 르네상스 인문주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특히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의 위조 사실을 밝혀내고, 스콜라 철학을 비판하는 등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 1457년 사망 - 덕종 (조선)
    조선 덕종은 세조의 장남이자 성종의 아버지로,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9세에 요절하였으며, 그의 죽음은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여러 논란을 낳았고, 후에 아들 성종의 즉위로 추존되었다.
  • 교살된 사람 - 단종 (조선)
    세종의 손자이자 문종의 외아들인 단종은 조선의 제6대 임금으로,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어 유배 후 사사되었고, 숙종 때 복위되어 단종으로 추존되었다.
  • 교살된 사람 - 성준 (조선)
    성준은 조선 시대 인물로, 성석인의 증손이자 성순조의 아들이며, 이계기의 딸과 혼인하여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고, 외손자인 한형윤은 조선 중기 문신이다.
  • 조선 단종 - 계유정난
    계유정난은 1453년 수양대군이 황보인, 김종서 등의 고명대신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으로, 수양대군이 권력을 장악하여 왕위에 오르고 훈구파의 권력 독점을 야기하며 조선의 정치 구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조선 단종 - 김종서 (1383년)
    김종서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무신, 학자로, 육진을 개척하고 국경을 확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문신으로서도 활약했으나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되었다.
송현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여량부원군 송현수
원어명礪良府院君 宋玹壽
직책
직책조선국 풍저창부사
임기1448년 2월 29일 ~ 1454년 2월 23일
군주조선 세종대왕 이도
군주조선 문종 이향
군주조선 단종 이홍위
섭정왕세자 이향
섭정황보 인
섭정김종서
섭정수양대군 이유
경력동지돈녕부사
개인 정보
배우자여흥부부인 민씨
자녀정순왕후(딸)
자녀송거(아들)
본관여산
부모송복원(부)
출생일?
정당무소속
사망일1457년 음력 10월 21일
사망 장소조선 경기도 과천에서 사형(교살)됨.
국적조선

2. 생애

송현수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세종의 아들인 영응대군의 처남이자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의 아버지이다. 즉, 단종의 국구(國舅)이다.[5][6] 젊은 시절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과 친구 사이였고[3], 여동생이 영응대군에게 시집가면서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딸이 단종의 왕비로 간택되면서 국구로서 돈녕부의 요직을 맡았다.[7][8][9]

계유정난 이후 세조가 왕위에 올랐으나, 송현수는 단종의 장인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조의 비호 아래 자리를 지켰다.[10] 하지만 1457년, 사육신 등이 주도한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결국 세조에 의해 처형되었다.[12][16] 그의 죽음은 단종의 비극적인 최후와도 연결된다.[16]

사후 약 240년이 지난 숙종 대에 단종이 복위되면서 송현수 역시 복권되었고[25], 정조 때에는 장릉 배식단에 배향되고 정민(貞愍)이라는 시호를 받았다.[27][28]

2. 1. 출신과 국구 시절

생년은 명확하지 않다. 여산 송씨 지신공파의 후손으로[1], 지중추원사를 지낸 송복원의 아들이다[2]. 그는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과 친구 사이였으며[3], 그의 여동생은 세종의 여덟째 아들인 영응대군의 부인(대방부부인 송씨)이었다. 이러한 인연 덕분에 특별한 관직 없이 지내다가 1445년(세종 27년) 처음으로 관직에 나아가 전구부승(典廐副丞)이 되었다[4].

풍저창 부사로 재직하던 1454년(단종 2년) 음력 1월, 그의 딸이 단종의 왕비(정순왕후)로 간택되어 책봉되면서[5][6] 송현수는 국구(國舅)가 되어 동지돈녕부사에 임명되고 여랑군(礪良君)에 봉해졌다[7]. 같은 해 음력 6월 1일에는 지돈녕부사로 승진하였고[8], 다시 음력 12월 2일에는 판돈녕부사가 되었다[9]. 그러나 계유정난 이후 세조가 즉위하자, 상왕이 된 단종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군사 관련 업무를 맡거나 당상관의 지위에 있다는 비판을 받아 탄핵되었다. 하지만 당시 권력을 장악한 세조의 비호 아래 별다른 처벌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10].

2. 2. 단종 복위 운동과 죽음

`세조실록`에 따르면, 처음에는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의심받았으나, `세조`가 직접 그를 위로했다고 한다.[11] 그러나 1457년(세조 3년) 음력 6월 21일,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면서 송현수도 결국 투옥되었다.[12]

당시 `권완`은 "상왕(`단종`)을 다시 세우려 한 것은 매우 좋은 일이었으나, 다만 이 일이 쉽지 않았다. 송현수와 연락하며 반란을 모의하였다."라고 증언했다.[13] 이 증언으로 송현수는 장형 100대에 처해지고 먼 지방의 관노가 되었으며, 그의 가족들도 같은 곳의 노비 신세가 되었다.[14] `세조실록`에는 이때 여러 차례 대간에서 송현수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세조`가 듣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15]

하지만 결국 같은 해 음력 10월 21일, `세조`는 복위 운동에 가담했던 `금성대군` 및 송현수 등의 처형을 명했고, 송현수는 이때 죽음을 맞이했다. 실록에는 `단종`이 이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기록되어 있다.[16]

한편, `세종`의 부마이자 `정현옹주`의 남편인 `윤사로`는 `계유정난`의 공신이 되자 포상으로 송현수의 딸을 요구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는데, 당시 사관은 이를 실록에 기록하며 윤사로를 비판하였다.[17]

2. 3. 사후 복권과 평가

송현수의 조카인 송영은 예종 때 감찰로 있었는데, 역도의 무리라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예종의 재가까지 내려졌으나[18] 결국 파직되지는 않았다[19]. 이후 1475년(성종 6년)에는 송현수의 아들 송거가 과거에 응시하는 것이 특별히 허락되었다[20]. 이때를 비롯하여 대간에서 여러 차례 송현수의 일족에 대해 탄핵하였으나 성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21][22].

시간이 흘러 1767년(영조 43년)에는 영조가 송현수의 후손을 찾아보라는 명을 내렸다[23]. 이때 나주에 살던 송익량이라는 사람이 송현수의 후손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가 발각되어 곤장 60대를 맞는 일도 있었다[24].

송현수가 사망한 지 약 240여 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년), 단종이 복위되면서 송현수도 함께 복권되었다. 이와 함께 그의 관향인 여산도 군에서 부로 승격되었다[25]. 이듬해부터는 송현수와 그의 부인 민씨에 대한 제사를 다시 지내게 되었다. 당시 숙종은 과천에 있던 송씨의 선산에 사람을 보내 그의 묘를 찾게 하였으나, 송현수의 무덤과 후손은 찾지 못했다. 부인 민씨의 묘는 비석에 희미하게 남은 글씨로 겨우 식별할 수 있어 이때 무덤을 수리하였다[26].

정조 때인 1791년(정조 15년) 음력 2월에는 장릉 배식단의 정단에 배향될 32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며[27], 정민(貞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28]. 같은 해 음력 9월에는 그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작은 표석을 세웠으며, 묘지기 2명을 두었다[29]. 또한 그의 후손을 등용하도록 하였다[30].

3. 가족 관계


  • '''본관''': 여산 송씨 지신공파[1]
  • '''조부''': 송계성 (宋繼性)[31]
  • '''아버지''': 송복원 (宋復元, 생몰년 미상) - 지중추원사[2]
  • * '''남동생''': 송정수 (宋玎壽)
  • ** '''조카''': 송영 (宋瑛, ? ~ 1495년[31])
  • * '''여동생''': 대방부부인 송씨 (帶方府夫人, ? ~ 1507년) - 세종의 8남 영응대군의 부인
  • '''장인''': 민소생 (閔紹生) - 여흥 민씨, 한명회의 장인 민대생의 동생[32]
  • '''부인''': 여흥부부인 민씨 (驪興府夫人 閔氏)
  • * '''아들''': 송거 (宋琚)
  • * '''딸''': 정순왕후 (定順王后, 1440년 ~ 1521년)
  • * '''사위''': 단종 (端宗, 1441년 ~ 1457년) - 조선 제6대 왕

4. 기타

세종의 부마이자 정현옹주의 남편인 윤사로는 공신이 된 후 송현수의 딸을 상으로 받기를 원했다. 당시 사관은 실록에 이 사실을 기록하며 윤사로의 행동을 비판하였다.[17]

참조

[1] 뉴스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70〉 송씨(宋, 松氏)·여산송씨(礪山宋氏) 시조 송유익 고려때 공 세우며 기틀 마련… 조선 들어 명문가로' https://news.naver.c[...] 세계일보 2016-06-15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송현수 https://terms.naver.[...]
[3] 두산백과 송현수 https://terms.naver.[...]
[4] 세종실록 세종실록 108권, 세종 27년 4월 25일 무진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5] 단종실록 단종실록 10권, 단종 2년 1월 8일 경신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6] 단종실록 단종실록 10권, 단종 2년 1월 10일 임술 4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7] 단종실록 단종실록 10권, 단종 2년 1월 14일 병인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8] 단종실록 단종실록 11권, 단종 2년 6월 1일 임오 3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9] 단종실록 단종실록 12권, 단종 2년 12월 2일 무인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10] 세조실록 세조실록 6권, 세조 3년 2월 14일 무신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11] 세조실록 세조실록 4권, 세조 2년 6월 13일 신해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12] 세조실록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6월 21일 계축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13] 세조실록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7월 15일 병자 3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14] 세조실록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8월 16일 정미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15] 세조실록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8월 30일 신유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16] 세조실록 세조실록 9권, 세조 3년 10월 21일 신해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17] 세조실록 세조실록 9권, 세조 3년 10월 24일 갑인 3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18] 예종실록 예종실록 6권, 예종 1년 7월 24일 을사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19] 성종실록 성종실록 5권, 성종 1년 5월 13일 경인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0] 성종실록 성종실록 52권, 성종 6년 2월 26일 을사 5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1] 성종실록 성종실록 67권, 성종 7년 5월 8일 경술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2] 성종실록 성종실록 157권, 성종 14년 8월 23일 계미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3] 영조실록 영조실록 109권, 영조 43년 8월 6일 정묘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4] 영조실록 영조실록 109권, 영조 43년 11월 23일 계축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5] 숙종실록 숙종실록 32권, 숙종 24년 12월 28일 무진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6] 숙종실록 숙종실록 33권, 숙종 25년 7월 15일 임오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7] 정조실록 정조실록 32권, 정조 15년 2월 21일 병인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8] 정조실록 정조실록 32권, 정조 15년 2월 25일 경오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9] 정조실록 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9월 24일 병신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30] 정조실록 정조실록 33권, 정조 15년 9월 25일 정유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3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송영 https://terms.naver.[...]
[32] 뉴스 '왕비' 낳으려거든 이곳으로 발 뻗어라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16-06-1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