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리아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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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시리아 전례는 동방 교회에서 파생된 교회에서 사용되는 전례로, 동방 아시리아 사도 가톨릭 교회, 인도 칼데아 시리아 교회, 고대 동방 교회, 칼데아 가톨릭 교회, 시로말라바 가톨릭 교회 등에서 사용된다. 이 용어는 시리아어의 동부 방언을 기반으로 하며, 칼데아 전례, 말라바 전례, 시리아 전례의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동시리아 전례는 에데사 교회의 전례에서 유래되었으며, 네스토리우스 분열과 티무르의 정복 등의 역사적 사건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동시리아 전례는 성찬 전례, 성무일도, 전례력, 세례, 견진성사, 혼인성사 등 다양한 성사와 예식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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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리아 전례 | |
---|---|
개요 | |
종류 | 기독교 전례 |
기원 | 메소포타미아와 에데사 |
사용 교파 | 아시리아 동방교회, 칼데아 가톨릭교회, 시리아 말라바르 교회 |
주요 성찬 전례 | 아다이와 마리의 전례 |
역사 및 특징 | |
기원 및 발전 | 역사적인 메소포타미아와 에데사에서 기원하여 동방 시리아 기독교 공동체에서 발전함. |
신학적 특징 | 독특한 신학적 특징과 전례적 관습을 지니고 있으며, 동방 기독교의 다양한 전통을 반영함. |
전례 언어 | 시리아어를 사용하며, 특히 아다이와 마리의 전례가 중요하게 여겨짐. |
지역적 확산 | 인도의 성 토마스 기독교인에게도 영향을 미쳐 말라바르 전례의 형성에 기여함. |
현대적 변화 | 20세기 후반부터 칼데아 가톨릭교회와의 관계 개선 및 전례 개정을 통해 변화를 겪고 있음. |
전례 구성 요소 | |
성찬성사 | 아다이와 마리의 전례를 중심으로 함. |
성경 봉독 |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다양한 본문을 사용. |
기도문과 찬미가 | 다양한 기도문과 시리아어 찬미가를 포함함. |
상징적 요소 | 향, 촛불, 성화 등의 상징적 요소를 사용하여 예배 분위기를 고조시킴. |
관련 항목 | |
관련 항목 | 동방 기독교 아시리아 동방교회 칼데아 가톨릭교회 시리아 말라바르 교회 아다이와 마리의 전례 말라바르 전례 성 토마스 기독교인 |
2. 용어
동시리아 전례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 다양한 용어는 복잡한 역사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교파적 다양성을 반영한다. "동시리아 전례"라는 일반적인 용어는 동시리아 방언의 전례 사용을 기반으로 하며, 다른 용어들은 특정 역사적 및 교파적 특징을 반영한다.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이라크) 동방 가톨릭은 현재 일반적으로 칼데아인 (또는 아시리아-칼데아인)이라고 불린다.[11] 시리아어로 일반적으로 마법사 또는 점성가를 의미하는 "칼데아"라는 용어는 라틴어 및 기타 유럽 언어에서 (대) 시리아 국적과 시리아어 또는 아람어를 나타냈다. 아람어의 경우, 특히 다니엘서의 특정 장에 나오는 형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용법은 17세기에 모술의 라틴 선교사들이 서시리아 전례의 가톨릭 신자들과 구별하기 위해 채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은 이들을 "시리아인"이라고 불렀다. 또한 일부 사람들이 아시리아인 또는 수라야 또는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동방 아시리아 교회와 구별하는 데에도 사용되지만, 그들은 신학적 명칭인 "네스토리우스"를 부인하지 않는다.[11] 동방 아시리아 교회와 고대 동방 교회의 현대 구성원들은 그리스도교의 나머지 사람들, 즉 그리스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또는 라틴 가톨릭을 가리키는 "서방인"과 반대로 "동방 교회" 또는 "동방인"으로 자신들을 구별한다.[11]
최근에 그들은 주로 성공회에서 "아시리아 교회"라고 불렸으며, 이 명칭은 고고학적 근거로 옹호될 수 있다. 브라이트만은 그의 "동방과 서방 전례"에서 칼데아 및 말라바 가톨릭과 아시리아인을 "페르시아 전례"에 포함한다.[11]
대영 박물관의 전례 목록은 일반적인 로마 가톨릭 명칭을 채택했다.[11]
- 칼데아 전례: 칼데아 가톨릭 교회와 동방 아시리아 교회의 전례
- 말라바 전례(남부 인도): 시로말라바 가톨릭 교회
- 시리아 전례: 시리아 정교회 및 시리아 가톨릭 교회
동시리아 전례의 세 가지 형태 모두의 언어는 시리아어의 동부 방언이며, 이 현대 형태는 동방 아시리아 교회,[11] 고대 동방 교회 (1960년대에 전례력 변경과 관련된 분쟁으로 인해 동방 아시리아 교회에서 분리되었지만 현재 재통합 과정에 있음),[12] 및 칼데아 가톨릭 교회에서 여전히 사용된다.
3. 역사
동시리아 전례는 에데사 교회의 전례에서 유래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성 토마스가 인도로 가는 길에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페르시아에 기독교를 세우고, 타대오와 성 마리를 남겼다고 한다. 동방 교회의 전례는 이 두 사람에게서 기원했지만, 약 650년에 총대주교 예수야브 3세에 의해 수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전례가 안티오키아 전례의 발전이라고 보기도 한다.[11]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 이후, 셀레우키아-크테시폰 교회는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는 것을 거부하여 네스토리우스 분열이 발생, 서방 기독교와 분리되었다. 498년에 가톨리코스는 "동방 총대주교"라는 칭호를 얻었고, 1400년대까지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동방 교회는 페르시아, 타타리아, 몽골, 중국,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11]
그러나 14세기 말 티무르의 정복, 아시아 전역의 기독교 정착촌 파괴, 명나라의 반기독교 및 불교 탄압 등으로 인해[13] 동방 교회의 구조는 거의 파괴되었다. 그 결과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키프로스, 인도의 말라바르 해안, 소코트라 섬 등에 몇몇 작은 공동체만 남게 되었다.
이후 키프로스의 동방 교회는 1445년에 로마와 연합했고, 1552년 분열로 교회가 약화되었으며, 소코트라의 기독교인들은 16세기에 이슬람화되었다. 인도의 교회는 1599년 디암페르 공의회에 대한 포르투갈의 지원으로 분열되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동방 교회의 디아스포라는 감소했다. 엘리아 계통은 칼데아 가톨릭 교회로 발전했고, 아시리아 동방 교회는 하카리 산맥에서 약 5만 명의 작은 공동체로 바뀌었다. 소수의 인도인들이 아시리아 동방 교회에 다시 합류하여 1900년대에 칼데아 시리아 교회를 형성했지만, 말라바르 기독교인의 주류는 시로-말라바르 교회로 남았다. 많은 수가 오리엔트 정교회 서 시리아 전례 교회에 합류했다. 또한, 우르미아의 러시아 교회 선교부, 1843년 쿠르드족 학살, 구 가톨릭 모델에 따라 독립 가톨릭 칼데아 교회를 설립하려는 시도로 인해 많은 수의 동방 전례 아시리아인들이 분리되었다.
3. 1. 기원과 발전
칼데아 전례는 원래 에데사 교회의 전례에서 유래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성 토마스가 인도로 가는 길에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페르시아에 기독교를 세우고, 그곳에 타대오와 성 마리를 남겼다고 한다. 동방 교회의 전례는 이 두 사람에게 기인하지만, 약 650년에 총대주교 예수야브 3세에 의해 수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전례가 안티오키아 전례의 발전이라고 보기도 한다.[11]에페소스 공의회 (431년) 이후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는 것을 거부한 셀레우키아-크테시폰 교회는 네스토리우스 분열의 일환으로 서방 기독교에서 분리되었다. 498년에 가톨리코스는 "동방 총대주교"라는 칭호를 얻었고, 1400년대까지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동방 교회는 페르시아, 타타리아, 몽골, 중국,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11]
그러나 14세기 말 티무르의 정복과 아시아 전역의 기독교 정착촌 파괴, 명나라 시대의 반기독교 및 불교 탄압 등의 요인으로[13], 대규모 동방 교회 구조는 거의 파괴되어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키프로스, 인도의 말라바르 해안, 소코트라 섬에 몇몇 작은 공동체로 축소되었다.
이후 키프로스의 동방 교회는 1445년에 로마와 연합했고, 1552년 분열은 교회를 약화시켰으며, 소코트라의 기독교인들은 16세기에 이슬람화되었다. 인도의 교회는 1599년 디암페르 공의회에 대한 포르투갈의 지원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동방 교회의 디아스포라는 감소했다. 엘리아 계통은 결국 칼데아 가톨릭 교회로 발전했고, 아시리아 동방 교회는 하카리 산맥에서 약 5만 명의 작은 공동체로 바뀌었다. 소수의 인도인들이 결국 아시리아 동방 교회에 다시 합류하여 1900년대에 칼데아 시리아 교회를 형성했지만, 말라바르 기독교인의 주류는 시로-말라바르 교회로 남았다.
3. 2. 네스토리우스 분열
에페소스 공의회(431년)는 세계 공의회 중 세 번째 공의회였다. 이 공의회 이후 셀레우키아-크테시폰 교회는 가톨리코스의 통치를 받았으나,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네스토리우스 분열이 발생하여 셀레우키아-크테시폰 교회는 서방 기독교에서 분리되었다.[11] 498년에 가톨리코스는 "동방 총대주교"라는 칭호를 얻었고, 1400년대까지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동방 교회는 페르시아, 타타리아, 몽골, 중국,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11]3. 3. 확장과 쇠퇴
칼데아 전례는 원래 에데사 교회의 전례에서 유래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성 토마스가 인도로 가는 길에 메소포타미아, 아시리아, 페르시아에 기독교를 세우고, 그곳에 타대오와 성 마리를 남겼다고 한다. 동방 교회의 전례는 이 두 사람에게 기인하지만, 약 650년에 총대주교 예수야브 3세에 의해 수정되었다고 한다.[11]에페소스 공의회 (431년) 이후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는 것을 거부한 셀레우키아-크테시폰 교회는 네스토리우스 분열의 일환으로 서방 기독교에서 분리되었다. 498년에 가톨리코스는 "동방 총대주교"라는 칭호를 얻었고, 1400년대까지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동방 교회는 페르시아, 타타리아, 몽골, 중국,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11]
그러나 14세기 말 티무르의 정복과 아시아 전역의 기독교 정착촌 파괴, 명나라 시대의 반기독교 및 불교 탄압 등의 요인으로 인해[13], 동방 교회는 거의 파괴되어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키프로스, 인도의 말라바르 해안, 소코트라 섬에 몇몇 작은 공동체로 축소되었다.
이후 키프로스의 동방 교회는 1445년에 로마와 연합했고, 1552년 분열은 교회를 약화시켰으며, 소코트라의 기독교인들은 16세기에 이슬람화되었다. 인도의 교회는 1599년 디암페르 공의회에 대한 포르투갈의 지원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동방 교회의 디아스포라는 감소했다. 엘리아 계통은 결국 칼데아 가톨릭 교회로 발전했고, 아시리아 동방 교회는 하카리 산맥에서 약 5만 명의 작은 공동체로 바뀌었다. 소수의 인도인들이 결국 아시리아 동방 교회에 다시 합류하여 1900년대에 칼데아 시리아 교회를 형성했지만, 말라바르 기독교인의 주류는 시로-말라바르 교회로 남았다. 많은 수가 오리엔트 정교회 서 시리아 전례 교회에 합류했다. 또한, 우르미아의 러시아 교회 선교부, 1843년 쿠르드족 학살 등으로 인해 많은 수의 동방 전례 아시리아인들이 분리되었다.
3. 4. 분열과 재통합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는 7대 세계 공의회 중 세 번째 회의였는데, 이 회의 이후 셀레우키아-크테시폰 교회는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네스토리우스 분열이 발생하여 셀레우키아-크테시폰 교회는 서방 기독교와 분리되었다.[11] 498년, 교회의 수장인 가톨리코스는 "동방 총대주교"라는 칭호를 얻었다. 1400년대까지 동방 교회는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페르시아, 타타리아, 몽골, 중국,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11]그러나 14세기 말 티무르의 정복과 아시아 전역의 기독교 정착촌 파괴, 명나라의 반기독교 및 불교 탄압[13] 등으로 인해 동방 교회의 구조는 거의 파괴되었다. 그 결과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키프로스, 인도의 말라바르 해안, 소코트라 섬에 몇몇 작은 공동체만 남게 되었다. 이후 키프로스의 동방 교회는 1445년 로마와 연합했고, 1552년 분열로 마르 시문과 마르 엘리아 사이에 분열이 발생하여 교회가 약화되었다. 소코트라의 기독교인들은 16세기에 이슬람화되었다. 인도의 교회는 1599년 디암페르 공의회에 대한 포르투갈의 지원으로 분열되어 말라바르 기독교인의 계층 구조가 잘려나갔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동방 교회의 디아스포라는 감소했다. 엘리아 계통은 결국 칼데아 가톨릭 교회로 발전했고, 아시리아 동방 교회는 시문 계통의 수장 아래 하카리 산맥에서 약 5만 명의 작은 공동체로 바뀌었다. 소수의 인도인들은 아시리아 동방 교회에 다시 합류하여 1900년대에 칼데아 시리아 교회를 형성했지만, 말라바르 기독교인의 주류는 시로-말라바르 교회로 남았다. 많은 수가 오리엔트 정교회 서 시리아 전례 교회에 합류하여 그들만의 분열을 일으켰다. 또한, 우르미아의 러시아 교회 선교부, 1843년 쿠르드족 학살, 구 가톨릭 모델에 따라 독립 가톨릭 칼데아 교회를 설립하려는 시도로 인해 많은 수의 동방 전례 아시리아인들이 분리되었다.
4. 성찬 전례
성찬 전례는 준비 예식인 "프로테시스 예식"으로 시작되며, 빵을 섞고 굽는 엄숙한 과정을 포함한다. 이 빵은 전통적으로 효모를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밀가루에 약간의 기름과 거룩한 효모(말카)를 섞었다. 전통에 따르면 이 효모는 "우리 성부 마르 아다이, 마르 마리, 마르 토마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졌고 전해졌다"고 하며, 거룩한 기름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지막 성찬 전례 준비에서 발효된 반죽(크미라)을 사용한다. 현재 칼데아 가톨릭과 시로-말라바르 가톨릭은 무교병을 사용한다.[11]
전례는 영광송의 첫 구절과 주님의 기도로 시작되며, 성무일도와 유사한 형태의 "덧붙임"(기유라)이 이어진다. 그 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11]
- 입당 시편(가변적): ''마르미타''라고 불리며, 주일, 대축일, "기념일", 평일에 따라 달라지는 예비 기도가 포함된다. 말라바르 전례에서는 사제와 부제가 번갈아 가며 시편 14편, 150편, 116편을 읊는다.
- "성소의 안티폰"(우니타 다 캉키): 가변적이며, 기도도 함께 바뀐다.
- 라후마라: "주님, 당신께"로 시작하는 안티폰으로, 다른 예식에서도 나타나며, 기도도 함께 바뀐다.
- 트리사기온: 이전에 향을 사용한다. 동방 전례에서는 저녁 미사 때 성찬의 요소들을 분향 전에 제단에 올려놓는다.
성경 독서는 네 개 또는 다섯 개가 있다.[11]
어떤 날은 다섯 개의 독서를 모두 가지고, 어떤 날은 네 개, 어떤 날은 세 개만 가진다. 서간과 복음서는 항상 포함되지만, 율법 독서가 있으면 사도행전 독서는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때로는 율법이나 사도행전 독서가 없는 경우도 있다. 처음 세 개는 ''키리아니''(독서)라고 불리고, 세 번째는 ''쉴리하''(사도)라고 불린다. 서간과 복음서 앞에는 ''투르가마''(해석)라고 불리는 찬송가가 불린다. 서간 전의 찬송가는 불변이고, 복음서의 찬송가는 그날에 따라 다르다. 이것들은 그리스어의 프로케메나에 해당한다. 서간의 투르가마 앞에는 ''슈라야''(시작)라고 불리는 적절한 시편 구절이 있으며, 복음서의 투르가마 앞에는 ''주마라''(노래)라고 불리는 다른 적절한 시편 구절이 있다. 후자는 구절 사이에 알렐루야를 포함한다.[11]
부제의 연도(에클레네)는 ''카라주타''(선포)라고 불리며, 그리스인의 "대 신나프테"와 유사하다. 그동안 백성은 고유한 "복음서의 안티폰"(우니타)을 부른다.[11]
집사들은 세례받지 않은 자들의 퇴장을 선포하고, "청취자"들에게 문을 지키도록 한다. 사제는 제단에 빵과 포도주를 놓고, 동방 교회(Chuch of the East)에서는, 칼데아 가톨릭 전례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이미 성화된 것처럼 보이는 말들을 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의 기념(칼데아; 일반적인 말라바르 전례, "하느님의 어머니"; 그러나 롤린의 말라바르 전례 라틴어에 따르면, "그분 자신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과 교회의 수호성인(말라바르 전례에서는 "성 토마스")의 기념을 따로 떼어 놓는다. 그런 다음 봉헌문에 해당하는 고유한 "신비의 안티폰"(Unitha d' razi)이 이어진다.[11]
성체는 둘로 쪼개지고, 십자 성호가 한 조각으로 성작 위에서 그어진 다음, 성작에 담긴 반 조각과 함께 다른 반 조각으로 그어진다. 그런 다음 두 조각은 성반 위에 다시 합쳐진다. 그 후 성체에 "qua parte intincta est in Sanguine"(르노도의 번역)이라고 틈이 생기고, 성반 위에서 복잡한 정돈을 거친 후 작은 조각이 성작에 들어간다.[11]
성막이 열리고, 부제는 성찬 참여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것을 권고하며, 사제는 성체를 떼어 분배한다. 그런 다음 주님의 기도가 서론과 보충 기도문과 함께 이어지고, 거룩하시다(Sancta Sanctis)에 이어 "비마의 안티폰"(Communion)이 불린다. 성찬은 두 가지 형태(빵과 포도주)로 별도로 이루어지며, 사제는 성체를, 부제는 성작을 전달한다. 그런 다음 감사하는 안티폰, 성찬 후 기도, 파송이 이어진다. 그 후에, 축성되지 않은 거룩한 빵의 일부인 Mkaprana가 성찬 참여자들에게 분배되지만, 그리스 정교회의 안티도론의 경우와 같이, 비참여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 칼데아 가톨릭 신자들은 성작에 적신 성체로 성찬례에 참여한다. 그들은 거룩한 선물로 남은 것을 보존하는 반면, 동방 교회의 사제들은 교회를 떠나기 전에 모든 것을 소비한다.[11]
동방 교회는 규범에 따라 매주 일요일과 금요일, 모든 축제일, 사순절의 첫째, 중간, 마지막 주와 부활 팔일 축제 동안 매일 미사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실제 미사는 일요일과 더 큰 축제에만 드려지고, 많은 교회에서는 "건조 미사"가 대신 사용된다. 칼데아 가톨릭 사제들은 매일 미사를 드리며, 많은 사제가 있는 곳에서는 하루에 같은 교회에서 여러 번의 미사가 거행되는데, 이는 동방 교회의 규범에 위배된다. 성공회 전례 판본은 저자의 이름을 생략하고 네스토리우스와 테오도르의 아나포라를 "두 번째 축성"과 "세 번째 축성"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는 첫 번째 아나포라에 축성문을 추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변경 사항이 없다. 최근의 가톨릭 판본은 동일한 변경을 했고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대체했다. 각 판본에서 추가된 축성문은 해당 판본의 전례 형태를 따른다. 정교회 동방 교회의 기도와 마찬가지로, 미사의 기도문은 일반적으로 길고 산만하다. 종종 Qanuna라고 불리는 송영으로 끝나며, 이는 큰 소리로 말하고 나머지는 낮은 목소리로 낭송된다. Qanuna는 형식과 사용법에서 그리스도의 엑포네시스와 유사하다.[11]
미사 때 사제가 사용하는 제의는 다음과 같다.[11]
- 수드라(''Sudhra''): 어깨에 빨간색 또는 검은색 십자가 세 개가 있는 허리에 묶인 백색 제의
- 우라라(''Urara''): 사제가 착용하는 스톨 (오라리온). 주교는 착용하지 않는다(서방에서와 같이).
- 마아프라(''Ma'apra''): 일종의 린넨 코프
- 부제는 왼쪽에 우라라를 두르고 수드라를 착용한다.
4. 1. 아나포라
아나포라에는 사도들(성 아다이와 마리), 마르 네스토리우스, 마르 신학자 테오도르의 세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된다. 두 번째는 전통적으로 주현절, 세례자 요한 축일, 그리스 의사 축일에 사용되었으며, 이 둘은 주현절 기간 중 니네베의 록가션 수요일과 성 목요일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강림절부터 종려주일까지 사용된다(두 번째가 지정된 경우 제외). 세 가지 모두 동일한 아나포라 이전 부분이 적용된다.[11]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기념 기도(Dukhrana)와 디립틱(Diptychs)이 이어진다.[11]

모든 전례와 마찬가지로 Sursum corda 형태로 시작하지만, 동시리아 전례는 특히 테오도르의 아나포라에서 다른 어떤 전례보다 더 정교하다. 일반적인 유형의 서문이 이어지며 상투스로 끝난다.[11]
포스트 상투스(Hispanico-Gallican 용어 사용)는 로마 전례를 제외한 모든 전례에서 그 아이디어와 문구가 유사한 방식으로 상투스의 개념을 확대한 것이다. 구원의 업적을 자세히 설명하며, 네스토리우스와 테오도르의 아나포라에서는 성찬 제정의 암송으로 끝난다. 사도들의 아나포라에서는 성찬 제정의 암송이 없지만, 동방 교회의 영국 성공회 판에는 추가되었다. 해먼드(Hammond) (동방 및 서방 전례, p. lix)와 대부분의 다른 저술가들은 성찬 제정의 말씀이 이 전례에 속하며 어딘가에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먼드는 그것들이 과거에 있었다는 여러 주장을 제시한다. 그것들이 없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일부는 이 필수적인 구절이 무지한 시대에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전혀 없었고, 축성은 이후의 에피클레시스만으로 이루어진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불필요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론은, 그리스도의 말씀 다음에 이어지는 에피클레시스에 의한 축성에 대한 일반적인 동방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 서방 기원으로, 축성의 공식이므로 너무 신성해서 적어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동방 교회 사제들이 옛날에 성찬 제정의 말씀을 삽입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현재 많은 사제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11]
산 자와 죽은 자의 두 번째 기념, 쿠샤파와 함께하는 대봉헌 기도가 이어진다.[11]
에피클레시스의 G'hantha, 즉 성령을 부르는 기도가 이어진다. 에피클레시스 자체는 시작 단어에서 따온 Nithi Mar(주님, 오시옵소서)라고 불린다. 사도들의 전례는 부르심의 목적에 대해 매우 모호해서, 성찬 제정의 말씀이 언급되지 않을 때는, 동방적이든 서방적이든 어떤 가설에도 이 공식이 충분하다고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네스토리우스와 테오도르의 아나포라는 성찬 제정의 말씀 외에도 안티오키아 또는 비잔틴 형식을 명백히 모방한 명확한 부르심이 있다. 더 오래된 칼데아와 말라바르 가톨릭 서적은 에피클레시스 후에 성찬 제정의 말씀을 거양과 함께 삽입했다. 그러나 1901년 모술판은 성찬 제정의 말씀을 먼저 둔다.[11]
4. 2. 성찬 제정문
포스트 상투스(Hispanico-Gallican 용어를 사용)는 로마 전례를 제외한 모든 전례에서 그 아이디어와 문구가 유사한 방식으로 상투스의 개념을 확대한 것으로, 구원의 업적을 자세히 설명하며, 네스토리우스와 테오도르의 아나포라에서는 성찬 제정의 암송으로 끝난다.[11] 사도들의 아나포라에서는 성찬 제정의 암송이 없지만, 동방 교회의 영국 성공회 판에는 추가되었다.[11] 해먼드(Hammond)와 대부분의 다른 저술가들은 성찬 제정의 말씀이 이 전례에 속하며 어딘가에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1]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일부는 이 필수적인 구절이 무지한 시대에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전혀 없었고, 축성은 이후의 에피클레시스만으로 이루어진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불필요했다고 말한다.[11] 또 다른 이론은, 그리스도의 말씀 다음에 이어지는 에피클레시스에 의한 축성에 대한 일반적인 동방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 서방 기원으로, 축성의 공식이므로 너무 신성해서 적어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11] 동방 교회 사제들이 옛날에 성찬 제정의 말씀을 삽입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현재 많은 사제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11]5. 성무일도
ܡܲܪܬܹܝܬܵܐ|마르티타syr의 핵심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편 낭송이다. 정규 예배 시간은 저녁, 자정, 아침의 세 시간뿐이며, 거의 사용되지 않는 끝기도가 있다. 실제로는 아침과 저녁 예배만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만, 평신도는 물론 성직자도 매일 매우 열심히 참석한다. 동방교회에 수도원이 있었을 때(현재는 그렇지 않음) 그곳에서는 일곱 시간의 기도가 관례였고, 시편 3개의 훌랄리가 각각 낭송되었다. 이것은 매일 시편 전체를 낭송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배열은 평일 밤 예배에서 7개의 훌랄리, 일요일에는 10개, "기념일"에는 3개, 우리 주님의 축일에는 시편 전체를 제공한다.[11]
저녁 예배에는 요일에 따라 4~7개의 시편이 선택되며, 또한 슈라야(Shuraya), 즉 짧은 시편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격주에 따라 시편 118편의 일부가 포함된다.[11]
아침 예배에서는 변함없는 시편은 109편, 90편, 103편(1~6절), 112편, 92편, 148편, 150편, 116편이다. 평일과 "기념일"에는 시편 148편 다음에 시편 146편이 낭송되며, 평일에는 시편 1편, 1~18절이 시편의 마지막에 온다. 나머지 예배는 기도, 응창, 연도, 그리고 그리스어 스티케라처럼 시편 구절 사이에 삽입된 구절(기유라, giyura)로 구성된다. 일요일에는 시편 146편 대신 대영광송(Gloria in Excelsis)과 베네딕테(Benedicte)가 낭송된다.[11]
아침과 저녁 예배 모두 여러 기도, 축복(Khuthama, "봉인"), 평화의 입맞춤, 그리고 신조로 끝난다. 변동되는 부분은 시편 외에 축일이나 날짜에 따라 매우 적은 수로 정해지는 부분과 격주의 날짜에 따라 정해지는 부분이다. 이 격주는 두 성가대가 예배를 시작하는 순서에 따라 "전"(Qdham)과 "후"(Wathar)로 불리는 주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성무일과 책은 Qdham u wathar, 또는 전체 이름으로 Kthawa daqdham wadhwathar, 즉 "전과 후의 책"이라고 불린다.[11]
6. 전례력
동시리아 전례의 1년은 각각 약 7주로 구성된 샤우이(Shawu'i)로 나뉜다. 샤우이는 대림 시기(수바라, "수태고지"라고 불림), 주현절, 사순 시기, 부활절, 사도, 여름, "엘리야와 십자가", "모세", "봉헌"(Qudash idta)으로 구성된다. "모세"와 "봉헌"은 각각 4주만 있다. 주일은 일반적으로 "주현절 넷째 주일", "수태고지 둘째 주일"과 같이 해당 샤우아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지만, 때로는 샤우아 중간에 이름이 바뀌기도 한다.
대부분의 "기념일"(dukhrani) 또는 성인 축일은 고유한 독서와 함께 크리스마스와 사순 시기 사이의 금요일에 있으며, 크리스마스, 주현절, 성모 승천 대축일과 같은 이동 축일이다. 약 30개의 소규모 축일은 고정된 날에 정해져 있으며, 고유한 독서는 없다.
대사순 시기 외에도 네 개의 더 짧은 단식 기간이 있다.
- 마르 자야의 단식: 성탄절 둘째 주일 후 3일
- 동정녀들의 단식: 주현절 첫째 주일 후
- 니네베 사람들의 참회: 부활절 전 70일
- 마르 마리암(우리 성모)의 단식: 8월 1일부터 14일까지
니네베 사람들의 단식은 요나의 설교에 따른 니네베의 회개를 기념하며, 엄격하게 지켜진다. 마르 자야와 동정녀들의 단식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라틴 및 그리스 달력과 비교했을 때, 칼데아 달력은 가톨릭이든 아시리아든 매우 빈약하다. 말라바 전례는 로마 달력을 많이 채택했으며, 로마 축일 중 몇 개가 칼데아 가톨릭교회의 달력에 추가되었다. 칼데아 부활절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활절과 일치한다.

7. 기타 성사 및 예식
동시리아 교회에서는 세례를 성사로 보며, 항상 예비 신자 기름 부음이 함께 따른다. 이는 다른 동방 전례의 견진성사에 해당한다. 성품성사와 결혼성사도 성사로 인정되지만, 고해성사나 병자성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칼데아 가톨릭 교회는 현재 비잔틴 전례와 서시리아 전례와 유사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14]
배교자나 파문된 사람의 화해를 위한 형식은 성사로 간주되며, 때때로 다른 참회자들에게도 사용된다. 고대 네스토리우스파에서 고해성사를 성사로 믿었다거나, 말라바르 네스토리우스파에서 고해성사를 행했다는 주장은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다. 칼데아인들은 로마 전례와 유사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아시리아 동방 교회는 성별된 누룩과 십자 성호를 포함하여 성사 수를 일곱 개로 채우지만, 현재는 그 정의나 수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14]
성당 축성식에서는 기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례, 견진성사(추정), 배교자들의 화해, 성당 축성식, 성찬용 빵을 만드는 데 기름이 사용된다. 서품식이나 병자를 위해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기름은 두 종류가 사용되는데, 하나는 보통의 올리브유이고, 다른 하나는 성스러운 뿔의 기름이다. 성스러운 뿔의 기름은 사도들로부터 성별된 누룩과 함께 전해졌다고 믿어진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의 세례 시 몸에서 떨어진 물을 보존했고, 이 물을 사도 요한에게 주었으며, 요한은 찔린 옆구리에서 떨어진 물을 더했다는 전설이 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성 요한에게 두 개의 빵을 주시며, 하나는 성별된 누룩으로 보관하라고 명하셨고, 성 요한은 이 빵에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나온 피를 섞었다고 한다. 오순절 후 사도들은 성수에 기름을 섞어 각각 뿔 하나씩을 취했으며, 빵을 부수어 밀가루와 소금을 섞어 성별된 누룩으로 만들었다. 성스러운 뿔은 사순절 목요일에 주교가 축성한 기름을 추가하여 지속적으로 갱신된다.[11]
세례 예식은 성찬례를 본떠 만들어졌다. 예비신자들의 미사는 거의 동일하며, 적절한 기도문, 시편, 연도, 독서가 포함된다. 안수를 하고 기름을 바르는 의식이 이어진 후, 성소의 찬송가와 시편 등이 이어진다. 그 후에는 라쿠마라, 트리사기온, 독서(서간과 복음), 카라주타가 이어진다. 사제가 안수 기도를 드리고, 세례받지 않은 사람들을 내보낸 후, "신비의 찬송가"에 해당하는 찬송가가 이어지고, 사도신경을 낭독한다. 성스러운 뿔을 가져오고 기름을 축복하는 것은 봉헌을 대신한다. 아나포라는 수르섬 코르다, 서문, 상투스, 니티 마르(기름에 대한 에피클레시스), 새로운 기름과 성스러운 뿔의 기름의 혼합, 그리고 주님의 기도로 이어진다. 세례반을 축복하고 성유로 표시하며, 성찬 대신 세례 자체가 거행된다. 아이들은 가슴에 기름을 바르고 전신에 기름을 바른 다음, 세 번 세례반에 담근다. 세례 정식은 "N.,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아멘."이다. 세례 후 감사 기도가 이어진다. 견진성사가 즉시 이어지며, 두 개의 기도문이 있고, "N., 이 세례를 받고, ...의 이름으로 완성되었네."라는 공식과 함께 눈 사이에 십자가를 긋는다. 이 십자가를 그을 때 기름을 사용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남은 기름은 세례반 위에 놓인 성스러운 뿔에 붓고, 세례반의 물은 이전의 축성으로부터 해제된다. 칼데아 가톨릭 교회는 로마 전례의 단념, 신앙 고백, 대부모의 응답을 추가했으며, 성유로 기름을 바른다.[11]
결혼 예식(''부라카'', '축복')은 비잔틴 전례와 매우 유사하며, 유대인 의식과도 유사하다.[11] 관을 씌우는 예식은 동시리아 기독교의 많은 부분에서 성사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부부에게 관을 씌우는 의식과, 아시리아 동방 교회 내에서 약혼자들이 순교자의 묘에서 나온 먼지로 만든 혼합물인 하나나(hanānā)를 섭취하는 것을 포함한 여러 의식을 특징으로 한다.[15]
동방 교회의 서품은 카루야(독서자), 히우파티아크나(부제), 므샴샤나(사제), 카쉬샤(부제), 아르키드야쿠나(대부제), 아피스쿠파(주교)의 서열로 구성된다. 대부제는 고유의 서품식을 갖지만, 사제단의 한 단계로만 간주되며, 일부에서는 코레피스코푸스(쿠라피스쿠파)와 동일하다고 간주하기도 한다. 코레피스코푸스는 동방 교회에서 주교 서품을 받지 않는다. 사제가 성직을 수행할 때 그는 카흐나(즉, lereus; 사제)라고 불리며, 주교는 이와 유사하게 라브 카흐니(사제들의 수장, 아르키에레우스, 폰티펙스)라고 불린다. 카쉬샤와 아피스쿠파는 단지 서열을 나타낼 뿐이다. 카흐누타, 즉 사제직은 부제, 사제, 주교의 세 서열에 사용된다. 서품 정식은 "N.은 레위 지파와 스테파노 지파의 직무[또는 아론 사제직]를 위해, 부제직[또는 사제직]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의 이름으로 분리되고, 축성되고, 완성되었다."이다. 주교의 경우에는 "... 도시의 주교직의 위대한 직무를 위해"이다. 대부제와 대교구장에게도 유사한 정식이 사용된다.[11]
성당 축성식(시아미다 또는 쿠다쉬 마드바크)은 주로 기름 바름으로 구성된다. 제단 전체에 기름을 바르고, 성소의 네 벽 안쪽에 네 개의 축성 십자가가 있으며, 이것들과 문 인방과 기타 여러 장소에 기름을 바른다. 기름은 성스러운 뿔의 기름이 아니라, 주교가 축성한 신선한 올리브 기름이다.[11]
8. 사용 교회
동시리아 전례는 현재 과거 '''동방 교회'''에서 파생된 교회에서 사용된다.
- 동방 아시리아 사도 가톨릭 교회는 이라크에 기반을 두고 있다.
- 인도 칼데아 시리아 교회는 인도에 기반을 둔 동방 아시리아 교회의 대주교구이다.
- 고대 동방 교회는 이라크에 기반을 둔 자치 동방 교회로, 1964년에 동방 아시리아 교회에서 분리되었다.
동방 가톨릭 교회는 로마와 완전한 친교를 맺고 있다.
- 칼데아 가톨릭 교회는 이라크 바그다드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 시로말라바 가톨릭 교회는 인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동시리아 전례의 세 가지 형태 모두 시리아어의 동부 방언을 사용하며, 이 현대 형태는 동방 아시리아 교회,[11] 고대 동방 교회 (1960년대에 전례력 변경과 관련된 분쟁으로 인해 동방 아시리아 교회에서 분리되었지만 현재 재통합 과정에 있음),[12] 및 칼데아 가톨릭 교회에서 여전히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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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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