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홀트 하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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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인홀트 하닝은 1921년생으로, 나치 청소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와 친위대에 가담하여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키예프 전투에서 부상 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경비병으로 근무했으며, 1943년 운터샤르퓌러로 진급했다. 2016년, 17만 건의 살인 방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상소심 진행 중 사망했다. 그의 재판은 아우슈비츠 관련 마지막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독일의 나치 전범 처벌에 대한 국내 반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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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홀트 하닝 | |
---|---|
기본 정보 | |
본명 | 라인홀트 하닝 |
출생 | 1921년 12월 28일 |
사망 | 2017년 |
경력 | |
소속 | 무장친위대 |
계급 | SS-하사관 |
복무 기간 | 제2차 세계 대전 |
역할 |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 수용소 경비병 |
재판 정보 | |
혐의 | 살인 방조 |
유죄 판결 | 유죄 |
형량 | 징역 5년 |
2. 어린 시절과 나치 가담
1921년 12월 28일 태어나 리페에서 자랐으며 초등학교에 다녔다. 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공장에서 일했다.
제2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 소속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그는 여러 전투에 참여했으며, 1941년 키예프 전투 중 근접전에서 수류탄 파편에 맞아 머리와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하닝은 1945년 5월 전쟁 포로가 되었으며, 1948년 5월 20일에 석방되었다. 석방 후 잠시 동안 라게에서 영국군을 위한 요리사로 일했으며, 이후 유제품 회사의 트럭 운전사와 판매원으로 근무했다. 1964년에는 개인 사업을 시작하여 1984년에 은퇴했다.[7]
하닝은 2013년 독일 연방 검찰청의 주요 전쟁 범죄 정책 검토 이후 기소를 권고받아 루드비히스부르크 특별 검찰청에서 조사한 30여 명의 전 아우슈비츠 경비병 중 한 명이었다. 이전까지 독일 검찰은 피고 나치 부역자가 직접 살인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있어야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었으나, 2009년 존 뎀얀유크 재판에서 직접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살인 방조 혐의로 유죄 판결이 내려진 선례가 생기면서 하닝과 같은 인물들에 대한 기소가 가능해졌다.[8]
1934년, 14세에 그는 나치 청소년 조직인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했다. 4년 뒤인 1940년에는 무장친위대에 자원하여 입단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하닝은 제2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에서 복무하며 여러 전투에 참전했다. 그는 1941년 키예프 전투 중 근접전에서 수류탄 파편에 맞아 머리와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부상 후 그의 지휘관은 그가 더 이상 최전선 복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1942년 1월 그를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배치했다.[6] 그는 1944년까지 아우슈비츠에서 경비병으로 활동했다.
3.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이 부상으로 인해 그의 지휘관은 하닝이 더 이상 최전선에서 복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1942년 1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배치했다.[6] 1943년 9월에는 아우슈비츠에서 ''운터샤르퓌러''(하사) 계급으로 진급했다. 이후 1944년 6월 작센하우젠 강제 수용소로 전출되었다.
4. 전후 행적
5. 재판
2016년, 하닝은 독일 데트몰트 법원에서 17만 건의 살인 방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9] 재판 과정에서는 여러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직접 증인으로 나서 증언했다.[10] 하닝은 법정에서 아우슈비츠에서의 만행을 목격했음을 일부 인정하고 "불의를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다"며 사과했지만[5][11], 혐의 자체는 부인했다.[12]
하닝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독일 연방 대법원에 상소가 계류 중이던 2017년 5월 30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라게에서 95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실제 형을 살지는 않았다.[5][13][14][2][15][1]
5. 1. 1차 재판 (2016년 2월 11일)
2016년 2월 11일 처음으로 기소된 라인홀트 하닝은 같은 해 4월 26일에 열린 첫 재판에서 자신의 혐의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경비 업무를 맡았던 것은 인정했지만, 유대인 학살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용소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경비 임무는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고 이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닝은 기소 이후 재판 과정 내내 말을 아꼈다.[16]
하닝이 기소된 배경에는 2013년 독일 연방 검찰청의 주요 전쟁 범죄 관련 정책 검토가 있었다. 이 검토 이후 검찰청은 기소를 권고했고, 루드비히스부르크 특별 검찰청에서 조사한 30여 명의 전 아우슈비츠 경비병 중 하닝도 포함되었다. 이전까지 독일 검찰은 피고 나치 부역자가 직접 희생자를 살해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2009년 존 뎀얀유크 재판에서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뎀얀유크는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살인 방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는 하닝과 같은 수용소 경비병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었다.[8]
2016년, 독일 데트몰트 법원은 하닝에게 17만 건의 살인 방조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9] 재판 과정에서는 여러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직접 증인으로 나서 하닝에 대해 증언했다.[10]
하닝은 법정에서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일부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사람들이 총에 맞고 가스에 질식하고 불에 타는 것을 보았다. 시체들이 앞뒤로 옮겨지거나 밖으로 치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불타는 시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5]라고 말했다. 또한 재판 동안 아우슈비츠에서 목격한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하며 "나는 불의를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고, 나의 행동에 대해 사과한다."[11]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혐의 자체는 부인했다.[12]
법원은 하닝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하닝은 독일 연방 대법원에 상소를 제기했고, 상소 절차가 진행 중이던 2017년 5월 30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라게에서 95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실제로 복역하지는 않았다.[5][13][14][2][15][1]
5. 2. 2차 재판 (2016년 4월 29일)
2016년 4월 29일 열린 두 번째 재판에서 하닝은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며 적극적으로 사죄했다. 그는 "진정으로 미안하다. 불의가 저질러지는 것을 방관하고, 이를 멈추기 위한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던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으며, "나는 일생 침묵해 왔다.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수없이 빼앗고, 셀 수 없는 가정을 파괴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고통을 초래한 범죄조직의 말을 들은 것을 후회한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평생 침묵하다가 기소된 후에야 법정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많았다.[17]
법정에서 하닝은 아우슈비츠에서 자신이 목격한 만행에 대해 증언했다. "사람들이 총에 맞고 가스에 질식하고 불에 타는 것을 보았다. 시체들이 앞뒤로 옮겨지거나 밖으로 치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불타는 시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5]라고 말하며,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나는 불의를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고, 나의 행동에 대해 사과한다."[11]고 밝혔지만,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 자체는 부인했다.[12]
2016년, 독일 데트몰트 법원은 하닝에게 17만 건의 살인 방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9] 재판 과정에서는 여러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하닝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다.[10] 법원은 하닝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하닝은 연방 대법원에 상소를 제기했고, 상소 절차가 진행 중이던 2017년 5월 30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라게에서 95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실제로 복역하지는 않았다.[5][13][14][2][15][1]
5. 3. 3차 재판 (2016년 6월 17일)
2016년 6월 17일 독일 데트몰트 법원에서 열린 세 번째 재판에서, 앙케 그루다 판사는 피고 하닝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2년 6개월 가까이 근무하며 17만 명의 집단학살을 방조했다고 판결하고 징역 5년 형을 선고했다.[18][9] 이는 2013년 독일 연방 검찰청이 주요 전쟁 범죄 정책 검토 후 기소를 권고하고, 루드비히스부르크 특별 검찰청에서 조사한 30여 명의 전 아우슈비츠 경비병 중 한 명으로 하닝이 지목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2009년 존 뎀얀유크 재판에서 피고가 직접 희생자를 살해하지 않았음에도 살인 방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선례가 이번 기소와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8]
2016년 2월 11일 기소 이후 4개월간 진행된 공판 기간 동안, 여러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그 가족들이 직접 법정에 나와 증언하고 원고인단으로 참여했다.[10] 하닝 자신도 법정에서 "사람들이 총에 맞고 가스에 질식하고 불에 타는 것을 보았다. 시체들이 앞뒤로 옮겨지거나 밖으로 치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불타는 시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5]고 증언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수용소 경비병으로 지내면서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것을 막으려 노력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불의를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고, 나의 행동에 대해 사과한다."[11]고 말하며 자책과 반성의 뜻을 밝혔으나, 혐의 자체는 부인했다.[12]
하닝의 변호인은 그가 직접적인 살해나 고문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고, 판결 직후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19] 하닝은 연방 대법원에 상소가 계류 중이던 2017년 5월 30일 사망하여 실제 복역은 하지 않았다.[5][13][14][2][15][1]
6. 홀로코스트 관련 마지막 재판
나치 범죄에 대한 독일의 청산 의지는 매우 강력하다. 홀로코스트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던 전범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꾸준히 색출되어 처벌받아 왔다. 2013년부터는 약 6,000명의 관련자 중 단순 경비원들까지 살인 공모 혐의로 수사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90세 이상의 고령자로, 건강상의 문제로 재판 진행이 쉽지 않고 자연 수명에 따른 사망으로 형 집행이 어려운 경우도 많지만, 독일 정부는 나치 전범을 재판정에 세우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20] 이러한 기조 변화는 과거와 달리, 피고가 직접 살해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수용소 운영에 기여했다면 살인 방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존 뎀얀유크 재판의 판례[8]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 이전까지 독일 검찰은 유죄 판결을 위해 피고 나치가 특정 희생자를 살해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8]
라인홀트 하닝은 2013년 독일 연방 검찰청이 주요 전쟁 범죄 관련 정책 검토 후 기소를 권고하면서, 루드비히스부르크 특별 검찰청에서 조사한 30여 명의 전 아우슈비츠 경비병 중 한 명이었다.[8] 그의 재판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학살과 관련된 마지막 재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관련된 인물들이 대부분 고령으로 사망하였고, 3,681건의 살해 공모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던 95세의 후베르트 자프케 역시 건강 악화로 심리가 지연되었기 때문이다.[21]
2016년, 하닝은 독일 데트몰트 법원에서 17만 건의 살인 방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9] 재판 과정에서는 여러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증인으로 나서 그의 죄를 증언했다.[10] 법정에서 하닝은 "사람들이 총에 맞고, 가스에 질식하고, 불에 타는 것을 보았다. 시체들이 앞뒤로 옮겨지거나 밖으로 치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불타는 시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고 진술하며[5]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재판 동안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의 만행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의를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부끄럽고, 나의 행동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지만,[11] 혐의 자체는 부인했다.[12]
하닝은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에 상소가 계류 중이던 2017년 5월 30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라게에서 95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실제 형을 살지는 않았다.[5][13][14][2][15][1]
7. 한국 내 반응
국내 각종 포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 하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관련자를 70년이 지난 시점에도 찾아내 처벌하는 독일의 태도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이는 같은 전범 국가로 인식되는 일본의 태도와 비교되기도 했다.[22]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와 유사하게 일본 역시 731부대를 운영하며 생체 실험 등 비인륜적 행위를 저질렀지만[23], 과거사에 대한 인식에서 독일과 큰 차이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24] 독일은 과거사 반성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이며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197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였고, 자국의 부끄러운 역사인 아우슈비츠 재판 관련 문서 454건과 녹음물 103건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등[25] 과거를 직시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반면, 일본은 2015년 메이지 유신 산업 혁명 유산이자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명분으로 조선인 강제 징용의 아픔이 서린 미쓰비시 나가사키현 조선소, 하시마섬, 야하타니시구 제철소, 다카시마 탄광 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으며,[26] 2016년 6월에는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 관련 시설을 추가 등재하려 시도하여[27] 비판을 받았다.
8. 사망
하닝은 2016년 독일 데트몰트 법원에서 17만 건의 살인 방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9][5] 그러나 연방 대법원에 상소가 계류 중이던 중 사망하여 형을 복역하지는 않았다.[5] 그는 2017년 5월 30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라게에서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3][14][2][15][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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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icted Auschwitz guard dies before setting foot in pr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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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hold Hanning, Auschwitz guard, goes on trial Thursday. Proceedings will be limited to 2 hours per day in deference to Hanning's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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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Defence seeking acquittal of 94-year-old former Auschwitz guard charged as an accessory to 100,000 mur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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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not forgive him': Auschwitz survivor confronts Nazi guard on trial for more than 170,000 dea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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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m Kippur means having to say you're sorry: Most newsworthy apologies of the Jewish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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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er Auschwitz guard Reinhold Hanning dies a year after conv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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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나치경비병 독일 재판에서 침묵을 깰 것으로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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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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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와 731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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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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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죄·일본의 사과…쟁쟁 범죄를 대하는 두 전범국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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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아우슈비츠 재판 기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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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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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기업 미쓰비시 '피해자 코스프레'...세계유산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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