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몽 슈바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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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몽 슈바르츠는 알자스-로렌 메스에서 태어난 에스페란토 운동가이자 작가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파리에 정착하여 은행원으로 일하며, 에스페란토 카바레를 운영하고 에스페란토 문학 작품을 창작했다. 그의 작품은 풍자와 유머를 특징으로 하며, 시집 《녹색 고양이의 유언》, 소설 《아니와 몽마르뜨》, 《강물처럼》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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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 슈바르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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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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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이름 | Raymond Schwartz |
다른 이름 | 라이몬도 슈바르초 (Rajmondo Ŝvarco) |
프랑스어 이름 | Raymond Schwartz |
출생과 사망 | |
출생일 | 1894년 4월 8일 |
출생지 | 메스, 독일 제국 (오늘날 프랑스) |
사망일 | 1973년 5월 14일 |
사망지 | 파리, 프랑스 |
국적 | |
국적 | 프랑스 |
직업 | |
직업 | 은행가, 작가 |
분야 | 에스페란토 문학 |
2. 생애
슈바르츠는 독일 제국 시기 알자스-로렌의 메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물론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까지 구사하며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일찍부터 에스페란토 운동에 참여하여 에스페란토 보급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꿈꿨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군에 징집되어 동부 전선에서 싸워야 했는데, 이는 평화주의자였던 그에게 큰 시련이었다. 전쟁 후, 메스가 다시 프랑스 영토가 되었음에도 그는 파리로 이주하여 은퇴할 때까지 은행원으로 일했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슈바르츠는 메스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 메스가 속한 알자스-로렌 (Elsass-Lothringen|엘자스-로트링겐de) 지역은 1871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의 영토였다. 그는 메스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며,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물론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도 구사할 수 있었다.2. 2.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슈바르츠는 젊은 시절 에스페란토 운동에 참여하며, 에스페란토 보급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시 그의 고향 메스가 포함된 알자스-로렌 지역은 독일 제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슈바르츠는 독일군에 징집되어 동부 전선에서 싸워야 했다. 이는 평화주의자였던 그에게 큰 시련이었으며, 그가 추구했던 이상과 에스페란토 운동 전체에도 큰 재앙과 같은 사건이었다.2. 3. 파리 정착과 은행원 생활
제1차 세계 대전은 평화주의자였던 슈바르츠에게 큰 시련이었다. 그는 독일군에 징집되어 동부 전선에서 싸워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의 고향 메스는 다시 프랑스의 도시가 되었지만, 그는 메스로 돌아가지 않고 파리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파리에서 그는 은퇴할 때까지 대형 은행에서 근무하며 생계를 유지했다.2. 4. 에스페란토 카바레 활동
직업적으로 진지하고 유능했던 슈바르츠는 에스페란토 카바레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에스페란토 운동가들을 위해 유쾌한 주정뱅이 캐릭터를 만들어 수많은 스킷을 창작하며 즐거움을 선사했다. 당시 파리에는 1881년부터 운영된 '검은 고양이'라는 뜻의 유명 카바레 ''르 샤 누아르''(Le Chat Noir)가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슈바르츠는 파리 외곽 몽마르뜨에 1920년 12월 La Verda Kato|라 베르다 카토eo("녹색 고양이")라는 이름의 에스페란토 카바레를 설립하여 1926년까지 운영했다.[2] 이후에도 그의 카바레 활동은 계속되어, 1936년부터 1939년까지는 La Bolanta Kaldrono|라 볼란타 칼드로노eo("끓는 솥")를, 1949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Tri Koboldoj|트리 코볼도이eo("세 명의 도깨비")를 공동 설립하여 1956년까지 운영하며 에스페란토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스킷과 책은 재미있고 재치 있었으며, 때로는 외설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웃을 수 없다면, 그들은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을 즐겨 인용하곤 했다.3. 에스페란토 문학 활동
레몽 슈바르츠는 에스페란토 문학계에서 시, 소설, 풍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언어 유희를 활용한 유머와 상상력, 때로는 날카로운 풍자가 두드러지는 특징을 지닌다.
초기에는 ''문학 세계''(Literatura Mondo|리테라투라 몬도epo)와 같은 정기간행물에 기고하며 시집 ''녹색 고양이의 유언''(Verdkata testamento|베르드카타 테스타멘토epo, 1926)과 ''이상한 부티크''(Stranga butiko|스트란가 부티코epo, 1931)[1], 단편 소설 ''애니와 몽마르뜨''(Anni kaj Montmartre|아니 카이 몽마르트르epo, 1930) 등을 발표했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는 직접 풍자 잡지 ''해적''(La Pirato|라 피라토epo)을 발행하며 에스페란토 운동 내에서 거침없는 유머와 비판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출간된 장편 소설 ''강물처럼''(Kiel akvo de l' rivero|키엘 아크보 데 리베로epo)이다. 이 작품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는 인물의 삶을 그린 자전적 소설로, 에스페란토 문학의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에도 세계 비민족 협회(Sennacieca Asocio Tutmonda)의 간행물에 유머 칼럼을 기고하는 등 꾸준히 활동했다.
3. 1. 초기 작품 활동
전쟁 기간 동안 그는 다양한 정기 간행물, 특히 ''문학 세계''(''Literatura Mondo'')에 기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초기 시집으로는 1926년에 출간된 ''녹색 고양이의 유언''(''Verdkata testamento'')과 1931년에 나온 ''이상한 부티크''(''Stranga butiko'')[1]가 있다. 이 시집들은 언어 유희를 포함하는 상상력 넘치고 유머러스한 판타지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경향은 1928년에 발표된 단편집 ''미소 짓는 산문''(''Prozo ridetanta'')에서도 잘 나타난다.1930년에는 단편 소설 ''애니와 몽마르뜨''(''Anni kaj Montmartre'')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파리에서 젊고 순진한 독일 여성의 모험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문체 면에서 기존 에스페란토 문학의 관습에서 벗어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는 월간 풍자 잡지 ''해적''(''La Pirato'')을 직접 발행했다. 이 잡지를 통해 그는 에스페란토 운동 내에서 일종의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어떤 비밀도 없이 모든 것을 유머의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3. 2. 소설과 풍자 잡지
그의 단편 소설 Anni kaj Montmartre|아니 카이 몽마르트르epo (1930)는 파리에서 젊고 순진한 독일 여성의 모험을 다룬다. 이 작품은 특히 문체 면에서 기존 에스페란토 문학의 관습에서 벗어난다는 평가를 받는다.1933년부터 1935년까지 월간 풍자 잡지 La Pirato|라 피라토epo를 발행했다. 이 잡지를 통해 그는 에스페란토 운동 내에서 일종의 '무서운 아이'(enfant terrible|앙팡 테리블fra)로 여겨지게 되었는데, 거침없는 풍자와 유머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3. 3. 대표작 《강물처럼》
슈바르츠의 대표작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출판된 ''강물처럼'' (Kiel akvo de l' riveroepo)이다. 이 작품은 그의 가장 중요하고 감동적인 책으로 평가받는다.이 책은 프랑스-독일 국경 출신의 젊은 프랑스인이 주인공인 부분 자전적 소설이다. 그는 졸업 후 베를린으로 갔다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피난을 겪게 된다. 이후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 시기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합류하여 활동한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파리에서 젊은 시절 베를린에서 사랑했던 여인과 재회한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인해 분열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진지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담고 있으며, 에스페란토 문학의 고전으로 꼽힌다.
3. 4. 기타 활동
1933년부터 1935년까지 월간 풍자 잡지 La Pirato|라 피라토eo를 발행했다. 이 활동으로 에스페란토 운동 내에서 일종의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그는 거침없이 모든 것을 유머의 소재로 삼았다.또한 세계 비민족 협회(Sennacieca Asocio Tutmonda)에서 발행하는 연례 문화 리뷰인 Sennacieca Revuo|세나치에차 레부오eo에 "내 웃음 포인트"(Laŭ mia ridpunkto|라우 미아 리드푼크토eo)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이 제목은 '관점'을 뜻하는 에스페란토 단어 vidpunkto|비드푼크토eo와 '웃다'를 뜻하는 ridi|리디eo를 결합한 혼성어였다. 칼럼은 kalemburoj|칼렘부로이eo(말장난)와 antistrofoj|안티스트로포이eo(두음전환) 등을 활용한 유머러스한 스타일로 쓰였다.
4. 작품의 특징과 영향
레몽 슈바르츠의 작품은 특유의 풍자와 유머, 그리고 언어 유희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초기 시집 Verdkata testamento|녹색 고양이의 유언eo(1926)과 Stranga butiko|이상한 상점eo(1931)[1], 산문집 Prozo ridetanta|미소 짓는 산문eo(1928) 등에서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기존 에스페란토 문학의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통해 언어의 표현 가능성을 넓혔으며, 직접 발행한 풍자 잡지 La Pirato|해적eo를 통해 에스페란토 운동 내에서 비판적이고 유머러스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의 문학적 성취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발표된 대표작 Kiel akvo de l' rivero|강물처럼eo에서 잘 드러나며, 이 작품은 에스페란토 문학의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4. 1. 풍자와 유머
슈바르츠의 작품들은 대개 풍자와 유머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Kun siaspeca spico!|특별한 양념으로eo에 등장하는 첫 번째 시 Duoncento da fraŭlinoj|50명의 여인들eo은 50개의 리머릭으로 구성되며, 각 연(聯)이 하나의 여인을 풍자하고 있다. 제1연은 다음과 같다.에스페란토 원문 | 한국어 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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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 estis fraŭlin’ en Parizo; ŝi dormis sen noktoĉemizo, kompense ŝi havis — kaj tio min ravis — piĝamon … en mia valizo. | 파리에 한 여인이 있었다네 잘 때 잠옷치마를 입지 않았지 대신 잠옷바지를 입었는데 (내게는 운좋게도) 하루는 잠옷바지가 내 가방에 들어있었다네 |
또 다른 예로는 Stranga butiko|이상한 상점eo에 등장하는 다음 시를 들 수 있다. 이는 당시 문학의 낭만주의를 풍자하고 있다.
Liriko kaj Praktiko|서정과 실용e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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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 원문 | 한국어 번역 |
(Liriko laŭ la germana poeto Heinrich Heine) |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서정시) |
“El miaj larmoj kreskas Violoj kaj lekantoj Kaj tra sopiroj miaj Tremetas birdokantoj ...” | “나의 눈물로부터는 제비꽃과 데이지가 자라나고 나의 그리움을 느껴 새들도 떨며 지저귀네 ...” |
(Praktika respondo de la holanda komercisto Van Dal) | (네덜란드 상인 판달의 실용적인 답변) |
“Nu bone, ― viajn florojn Disvendu kun profito Kaj viajn birdojn manĝu Kun bona apetito!” | “음, 좋습니다. 귀하의 꽃들은 팔아서 이윤을 남기면 되고, 귀하의 새들은 구워서 맛있게 먹으면 되겠군요.” |
그의 시 작품인 Verdkata testamento|녹색 고양이의 유언eo (1926)과 Stranga butiko|이상한 상점eo[1] (1931)은 언어 유희를 포함하는 상상력 넘치고 유머러스한 판타지로 가득하며, 이는 산문집 Prozo ridetanta|미소 짓는 산문eo (1928)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 그는 월간 풍자 잡지 La Pirato|해적eo을 발행했는데, 이로 인해 그는 에스페란토 운동의 일종의 enfant terrible|앙팡 테리블프랑스어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에게는 비밀이 없었고 모든 것이 유머의 소재가 되었다.
그는 세계 비민족 협회(Sennacieca Asocio Tutmonda)에서 발행하는 연례 문화 리뷰인 Sennacieca Revuo|무국적 리뷰eo에 "내 웃음 포인트"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이 이름은 "관점"을 뜻하는 에스페란토 단어 vidpunktoeo와 "웃다"를 뜻하는 ridieo를 조합한 혼성어였다. 칼럼 자체는 kalemburoj|말장난eo과 antistrofoj|두음전환eo을 포함하는 유머러스한 스타일로 작성되었다.
4. 2. 문학적 영향
슈바르츠는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전쟁 기간 동안 그는 다양한 정기간행물, 특히 문학 세계Literatura Mondoeo에 기고했으며,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그의 초기 시집인 Verdkata testamentoeo(녹색 고양이의 유언, 1926)과 Stranga butikoeo(이상한 부티크, 1931)[1]는 언어 유희를 포함하는 상상력과 유머가 넘치는 판타지를 보여주며, 이는 산문집 Prozo ridetantaeo(미소 짓는 산문, 1928)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이다. 그의 독특한 문체와 유머 감각은 에스페란토 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그의 단편 소설 Anni kaj Montmartreeo(애니와 몽마르뜨, 1930)는 파리에서 젊고 순진한 독일 여성의 모험을 다루면서, 특히 문체 면에서 기존 오리지널 에스페란토 문학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는 에스페란토 문학의 표현 가능성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1933년부터 1935년까지 슈바르츠는 월간 풍자 잡지 La Piratoeo(해적)을 직접 발행했다. 이 잡지를 통해 그는 에스페란토 운동 내에서 일종의 '앙팡 테리블'로 자리매김했는데, 그는 어떤 주제든 거리낌 없이 다루며 유머의 소재로 삼았다.
슈바르츠의 문학적 성취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출판된 그의 대표작 Kiel akvo de l' riveroeo(강물처럼)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작품은 그의 가장 중요하고 감동적인 책으로 평가받는다. 부분적으로 자전적인 이 소설은 프랑스-독일 국경 출신의 젊은 프랑스인이 졸업 후 베를린으로 갔다가 1914년 전쟁 발발로 피난해야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 기간 동안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하는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다. 전쟁 후 파리에서 젊은 시절 베를린에서 사랑했던 여인과 재회하는 이야기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인해 분열된 가족의 아픔을 다루면서도 진지함과 유쾌함을 동시에 담아내어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후에도 슈바르츠는 세계 비민족 협회(Sennacieca Asocio Tutmonda)에서 발행하는 연례 문화 리뷰인 Sennacieca Revuoeo(무국적 리뷰)에 "내 웃음 포인트"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며 특유의 유머러스한 글쓰기를 이어갔다. 이 칼럼 제목은 "관점"을 뜻하는 에스페란토 단어 vidpunktoeo와 "웃다"를 뜻하는 ridieo를 결합한 혼성어로, 그의 언어유희 감각을 보여준다. 칼럼 내용은 kalemburojeo(말장난)과 antistrofojeo(두음전환) 등을 활용한 유머러스한 스타일로 작성되었다.
5. 작품 목록
레몽 슈바르츠는 시, 소설, 단편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은 특유의 유머와 언어유희로 잘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초록색 고양이 성경》(Verdkata Testamentoeo, 시집, 1926년)[1]
- 《미소짓는 산문》(Prozo ridetantaeo, 단편소설집, 1928년)[1]
- 《아니와 몽마르트》(Anni kaj Montmartreeo, 소설, 1930년)
- 《이상한 상점》(La Stranga Butikoeo, 시집, 1931년)[1]
- 《즐거운 지휘대》(La ĝoja podioeo, 시집, 1949년)
- 《키아 혼토》(Kia hontoeo, 단편소설, 1950년)
- 《강물처럼》(Kiel akvo de l’ riveroeo, 소설, 1963년)
- 《마이어와 달리!》(Ne kiel Meier!eo, 에스페란토 활용에 대한 에세이, 1964년)
- 《특별한 양념으로》(Kun siaspeca spico!eo, 유머 에세이 선집, 1971년)
- 《자발적으로 단편소설로》(Vole ... Noveleeo, 단편소설집, 1971년)
또한, 1933년부터 1935년까지 월간 풍자 잡지 ''해적''(La Piratoeo)을 발행하며 에스페란토 운동 내에서 비판적이고 유머러스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정기간행물, 특히 ''문학 세계'' (''Literatura Mondo'')에도 꾸준히 기고했다.
5. 1. 시집
레몽 슈바르츠는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특히 초기 작품들은 그의 독특한 유머와 언어 감각을 잘 보여준다. 전쟁 기간 동안에도 그는 ''문학 세계'' (''Literatura Mondo'') 등에 기고하며 두 권의 시집을 저술했다.- 《초록색 고양이 성경》 (Verdkata Testamentoeo, 1926): 언어 유희를 포함하는 상상력 넘치고 유머러스한 판타지가 특징인 시집이다.[1]
- 《이상한 상점》 (La Stranga Butikoeo, 1931): 《초록색 고양이 성경》과 유사하게 언어 유희, 상상력, 유머가 돋보이는 시집이다.[1]
- 《즐거운 지휘대》 (La ĝoja podioeo, 1949)
제목 (원제) | 첫 출판 연도 | 비고 |
---|---|---|
《초록색 고양이 성경》 (Verdkata Testamentoeo) | 1926 | 1930년, 1974년, 1992년 재판 (라인하르트 하우펜탈 후기 포함) |
《이상한 상점》 (La Stranga Butikoeo) | 1931 | 레이먼드 라발(Raymond Laval) 삽화 포함 |
《즐거운 지휘대》 (La ĝoja podioeo) | 1949 |
5. 2. 소설
슈바르츠는 여러 편의 소설과 단편소설집을 저술했다.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단편소설집 《미소짓는 산문》(Prozo ridetantaeo, 1928년)은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언어 유희, 상상력 넘치는 유머, 판타지 등의 특징을 공유한다.[1]1930년에 발표된 소설 《아니와 몽마르트》(Anni kaj Montmartreeo)는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젊고 순진한 독일 여성 아니(Anni)가 겪는 모험을 다룬다. 이 작품은 특히 기존 에스페란토 문학의 관습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문체가 돋보인다.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중요하고 감동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소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63년에 출판된 《강물처럼》(Kiel akvo de l’ riveroeo)이다.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이다. 프랑스-독일 국경 지역 출신의 젊은 프랑스인이 학업을 마치고 베를린으로 갔다가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피난해야 했던 경험,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 시기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 그리고 전쟁 후 파리에서 젊은 시절 베를린에서 사랑했던 여인과 재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분열된 가족의 이야기를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낸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1971년에는 50년간(1920-1970) 발표한 단편들을 모은 《자발적으로 단편소설로》(Vole ... Noveleeo)를 출간했다.
제목 (에스페란토 원제) | 장르 | 첫 출판 연도 |
---|---|---|
미소짓는 산문 (Prozo ridetantaeo) | 단편소설집 | 1928년 |
아니와 몽마르트 (Anni kaj Montmartreeo) | 소설 | 1930년 |
키아 혼토 (Kia hontoeo) | 단편소설 | 1950년 |
강물처럼 (Kiel akvo de l’ riveroeo) | 소설 | 1963년 |
자발적으로 단편소설로 (Vole ... Noveleeo) | 단편소설집 | 1971년 |
이 외에도 슈바르츠는 ''문학 세계'' (''Literatura Mondo'') 등 다양한 정기간행물에 기고했으며, 세계 비민족 협회(Sennacieca Asocio Tutmonda)에서 발행하는 ''무국적 리뷰'' (''Sennacieca Revuo'')에 "내 웃음 포인트"(Laŭ mia ridpunktoeo)라는 제목의 유머러스한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5. 3. 단편소설집
- 《미소짓는 산문》(Prozo ridetanta|eo, 1928년): 언어 유희를 포함하는 상상력 넘치고 유머러스한 판타지가 특징이다.[1]
- 《자발적으로 단편소설로》(Vole ... Novele|eo, 1971년): 부제는 '1920년부터 1970년까지 50년간의 단편소설'(aŭ kvindek jaroj da noveloj,1920 - 1970|eo)이다. 1987년 재판되었다.
5. 4. 기타
- 세자르 로세티(Cezaro Rossetti)의 Kredu min, sinjorino|크레두 민, 시뇨리노eo (1950년 초판) 서문을 작성하였다.
- 헨드릭 A. 드 호흐(Hendrik A. de Hoog)가 편집한 La Zamenhofa Esperanto|라 자멘호파 에스페란토eo (1961)에 "미신 없이 미신에 반대하여"(Sen mistiko kontraŭ mistifiko|센 미스티코 콘트라우 미스티피코eo)라는 글을 기고하였다.
- 에스페란토 동사 'esti'의 수동 분사 형태에 대한 연구 글 "동사 '에스티' (esti)의 형태와 연결된 수동 분사 '-아타' (-ata)와 '-이타' (-ita)의 완전한 목록은 '강도' (La rabistoj)에서."(Kompleta listo de ĉiuj formoj de l' pasivaj participoj -ata kaj -ita ĉe la verbo 'esti' en 'La rabistoj'|콤플레타 리스토 데 치우이 포르모이 데 리 파시바이 파르티치포이 -아타 카이 -이타 체 라 베르보 '에스티' 엔 '라 라비스토이'eo)를 1968년 발표하였다.
- 단테 베르톨리니(Dante Bertolini)가 편집한 El la nova ĝardeno|엘 라 노바 자르데노eo(Dal nuovo giardino|달 누오보 자르디노it) (1979)에 "서정성과 실용성; 리리코 카이 프락티코; 인간의 다양한 나이; 라 디버스아이 아조이 드 로모"(Lirica e praticità; Liriko kaj praktiko; Le diverse età dell' uomo; La diversaj aĝoj de l' homo|리리카 에 프라티치타; 리리코 카이 프락티코; 레 디베르세 에타 델 루오모; 라 디베르사이 아조이 데 로모it)를 기고하였다.
- 윌리엄 올드(William Auld)가 편집한 Nova Esperanta krestomatio|노바 에스페란타 크레스토마티오eo (1991)에 "에스페란티스토, 출현과 소멸"(Esperantisto, ekesto kaj malapero|에스페란티스토, 에케스토 카이 말라페로eo) 및 "에스페란토 엘릭서"(Esperanta eliksiro|에스페란타 엘릭시로eo)를 기고하였다.
- J. M. 하모닉(J. M. Hamonic)이 작곡하고 L. 베르겐 르 플레이(L. Bergen le Play)가 프랑스어 가사를 쓴 노래 Paris toujours Paris|파리 투주르 파리프랑스어를 에스페란토로 번역하였다 (1930).
- 니카노르 몰리나레(Nicanor Molinare)가 작곡하고 앙드레 오르네(André Hornez)가 프랑스어 가사를 쓴 노래 Ĉiu ĉiu|치우 치우프랑스어를 에스페란토로 번역하였다 (1948).
- 옥타비안 칼마노비치(Oktawian Kalmanowicz)가 작곡한 노래에 Koro estas eta instrument sekreta|코로 에스타스 에타 인스트루멘트 세크레타eo라는 제목의 에스페란토 가사를 썼다 (1960).
참조
[1]
웹사이트
Stranga Butiko
http://www.uni-leipz[...]
2006-08-30
[2]
웹사이트
Memore pri Raymond Schwartz
http://miresperanto.[...]
20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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