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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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갑은 말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 갑옷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했다. 고대 이란의 유적에서 마갑이 발견되었고, 중앙아시아의 카타프락토스는 말에게 갑옷을 입혀 방어력을 높였다. 한국에서는 신라, 가야, 백제 유적에서 마갑이 발굴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춘추좌씨전에 마갑 관련 기록이 존재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12세기부터 금속 판 갑옷으로 제작되었으며, 15세기에는 말의 전신을 덮는 완전 마갑이 등장했다. 마갑은 챔프론, 크리니에르, 페이트럴, 플란샤드, 크루피에 등으로 구성되며, 군사적 상징성과 사회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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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갑 | |
---|---|
명칭 | |
명칭 | 마갑 |
한자 표기 | 馬甲 |
영어 | Barding, Bard |
일본어 | バーディング (Bādingu) |
정의 | |
정의 | 전쟁용 말을 위한 갑옷 |
종류 | |
재료 | 가죽 사슬 갑옷 판금 갑옷 |
용도 | |
주요 목적 | 말과 기병을 보호 |
역사적 맥락 | |
시기 | 고대부터 사용 |
지역 | 유라시아 대륙 전역 |
사용 문화 | 유럽 동아시아 |
갑옷의 구성 | |
머리 부분 | 샹프롱 (머리 가리개) |
몸통 부분 | 크루퍼 (엉덩이 가리개) 페이트럴 (가슴 가리개) |
기타 부분 | 플랑카드 마갑 치마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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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정보 | |
관련 용어 | 말 갑옷 기병 갑옷 |
참고 문헌 | "마갑" 관련 서적 및 연구 자료 |
2. 역사
마갑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카타프락토스는 부분 또는 완전 무장한 말을 탄 기병이었다. 이들은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동부 사트라피에 의해 채택되었다.[13] 셀레우코스 카타프락토스는 비늘 갑옷을 사용했다.[14]
11세기 중반, 유럽에서는 금속 판 갑옷이 등장하면서 마갑도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가죽 갑옷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금속 갑옷으로 대체되었다. 15세기에는 말의 전신을 덮는 완전 마갑(Full bard)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매우 비싸서 일부 부유한 기사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8]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의 신라, 가야, 백제 등 고대 왕국 시대 유적에서 마갑이 발굴되고 있다.[22] 중국에서는 "마주(馬冑)"( / ) 또는 구장이라 불리는 말 갑옷이 사용되었다.[18] 춘추좌씨전에는 진나라 군대가 말에 호랑이 가죽 갑옷을 입혔다는 기록이 있다.[19] 오호 십육국 시대 무렵에는 철과 가죽으로 된 장비가 사용되었고, 남북조 시대에는 등자의 보급과 진화로 기병의 수가 크게 늘었다. 마갑의 구성 부품은 면렴, 계경, 당흉, 신갑, 탑후, 기생, 안으로 이루어진다.[21] 일본에서는 남북조 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마갑이 발전했다.
2. 1. 고대

카타프락토스는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갑옷을 착용한 말을 타는 완전 무장 기병이었다. 이러한 유형의 기병은 중앙 아시아에서 기원했으며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동부 사트라피에 의해 채택되었다.[13] 셀레우코스 카타프락토스는 유연성과 궁병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력 때문에, 또한 일반적인 금속 갑옷과 달리 말에게 너무 무겁지 않기 때문에 비늘 갑옷을 사용했다.[14]
2. 2. 중세 유럽
11세기 중반, 유럽에서는 금속 판 갑옷이 등장하면서 마갑도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가죽 갑옷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금속 갑옷으로 대체되었다. 15세기에는 말의 전신을 덮는 완전 마갑(Full bard)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이는 매우 비싸서 일부 부유한 기사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8]막시밀리안 1세, 신성 로마 황제를 위해 아우크스부르크와 인스브루크 출신의 장인 갑옷 제작자들, 예를 들어 로렌츠 헬름슈미트와 콘라트 조이젠호퍼가 완전 마갑을 제작했다. 완전 마갑의 개발은 막시밀리안 갑옷과 란츠크네히트의 개발과도 관련이 있었는데, 이는 인간과 말 모두 더 많은 보호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완전 마갑은 매우 비쌌기 때문에 가장 부유한 기사들만이 구매할 수 있었다.[8]
유명한 아우크스부르크 제작자인 로렌츠 헬름슈미트는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되고 가장 완전한 마갑을 제작했다. 헬름슈미트 작업장은 말의 몸 전체를 거의 완전히 감싸는 웅장한 마갑을 생산했는데, 여기에는 허리띠와 복부 아랫면, 그리고 다리도 포함되었다. 극도로 완벽하고, 기술적으로 복잡하며 상당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아마도 의식용이나 외교 선물용으로만 사용되었을 것이다.[9]
로렌츠 헬름슈미트가 제작한 극도로 정교하고 혁신적인 마갑은 막시밀리안이 부르고뉴 시대에 사용한 중요하고 선전적인 장치였다. 그의 마갑을 착용한 말은 그가 직접 참석할 수 없을 때에도 그의 살아있는 깃발 역할을 했다. 막시밀리안은 혁신적인 경이로움과 자동 인형으로 유명한 아우크스부르크의 기술을 활용하여 부르고뉴 관람객을 위한 광학적 및 기술적 경이로움을 생산하기 위해 말과 인간의 공연과 결합된 마갑을 만들었다.
말 갑옷은 움직이는 조각품이자 권력의 도상을 새기기 위한 소통의 표면으로 변화시켰다. 비엔나에 있는 마갑의 경우, 말의 옆구리를 감싸는 엉덩이 가리개 판은 황실 이중 독수리를 형상화하고 오스트리아의 문장을 담은 방패로 장식되어 있다. 1480년 입구의 이미지에 표시된 해당 엉덩이 가리개는 합스부르크와 부르고뉴 왕조의 문장을 결합하여 마리와 막시밀리안의 권력 통합을 선언했다. 헬름슈미드는 말이 움직일 때 말의 다리와 복부 전체를 감쌀 수 있을 만큼 유연한 강철판 매트릭스를 제작한 유일한 갑옷 제작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유형의 갑옷은 막시밀리안과 연관되었으며, 그는 자신의 말을 무장시키고 동맹을 맺고 합스부르크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외교 선물로 말의 다리와 배를 덮는 마갑을 계속 주문했다. 이러한 마갑의 수혜자에는 "발목과 배까지 강철로 덮인 두 마리의 말"을 선물받은 지그문트 1세 스타리가 포함되었다.[10]
서로 다른 마갑의 부품을 혼합하여 완전 마갑을 만들 수도 있다. 막시밀리안은 프리드리히 3세를 위해 제작된 마갑의 황실 독수리 엉덩이 가리개를 다른 마갑의 부품에 다시 연결하여 1492년 8월 31일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행렬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베네치아 외교관 안드레아 프란체스키는 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을 입은 말 - 매우 빛나는 광경!"이라고 묘사했다. 프란체스키의 편지에 따르면 "동물의 가슴은 두 개의 그리핀으로 장식되었고, 각 옆구리에는 황실 독수리가 있었다."[11][12]
2. 3. 동아시아
한국에서는 신라, 가야, 백제 등 고대 왕국 시대의 유적에서 마갑이 발굴되고 있다[22].중국에서는 말의 갑옷 "마주(馬冑)"( / , 또는 구장이라고 부른다[18])가 사용되었다. 『춘추좌씨전』(희공 28년: 기원전 632년)에 진나라 군대가 말에 호랑이 가죽 갑옷을 입혀 적을 위협했다는 기록이 있다[19]. 기원전 4세기경의 증후을묘 등에서도 말의 갑옷과 벽화가 발견되고 있다[20]. 복면형 투구와, 여러 장의 갑판을 연결한 흉갑, 그리고 전신을 덮는 갑옷 등이 발견되고 있다. 은주 시대에는 도색된 가죽 갑옷이 사용되었고, 전차를 끄는 말에도 장비되었다. 오호 십육국 시대 무렵에는 철과 가죽으로 된 장비가 되었다. 삼국 시대에는 많아야 1만 정도의 기병도, 그 100수십 년 후인 남북조 시대에는 수만 기의 병사가 등자의 보급과 진화로 달성되었다. 구성 부품은 면렴, 계경, 당흉, 신갑, 탑후, 기생, 안으로 이루어진다[21]. 당나라의 시인 두보는 사람을 쏘려거든 먼저 말을 쏘라는 구절을 남겨 활에 대한 말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총화기가 발전하는 북송 이후 시대에는 병사는 방탄 효과가 있는 비단을 사용한 경장 갑옷으로 대체되어 가고, 철로 된 장비는 쇠퇴해 갔다.
일본에서는 말면(馬面), 흉갑(胸甲), 꼬리갑(尻甲)으로 구성된 마갑(말 갑옷)이 있다. 고대의 고분에서는 외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생각되는 소수의 예가 확인된다[17]. 남북조 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마갑이 발전했다.
3. 구성 요소
마갑은 말의 각 부위를 보호하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다. 주요 구성 요소와 그 기능은 다음과 같다.
- 콧부리개(챔프론): 말의 얼굴을 보호한다.
- 크리니에: 말의 목을 보호한다.
- 페이트랄: 말의 가슴을 보호한다.
- 플란샤드: 말의 옆구리를 보호한다.
- 크루피에: 말의 엉덩이를 보호한다.
이 외에도 고삐가 잘리지 않도록 사슬 갑옷을 연결하거나 금속판을 덧대는 경우가 있었다. 마갑은 카파리슨이라는 천 덮개와 함께 사용되기도 했는데, 카파리슨은 말 전체를 덮을 정도로 크기도 했다. 다만, 섬유 덮개와 금속 방어구를 함께 사용했는지는 시대별 그림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3. 1. 챔프론 (Chanfron)
콧부리개(chanfron, chaffron, chamfron, champion, chamfrein, champron, shaffron이라고도 함)는 말의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때로는 경첩이 달린 뺨 보호대가 붙어 있기도 했다. 많은 콧부리개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장식은 작은 스파이크가 달린 론델이다.[4] 콧부리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알려졌지만, 유럽에서는 11세기 중반까지 사용되지 않다가[5] 전쟁 말의 보호를 위해 삶은 가죽 대신 금속 판이 사용되면서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콧부리개의 기본적인 디자인은 17세기에 낡아서 쓸모없어질 때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지만, 후기에는 종종 새겨진 장식이 추가되기도 했다. 콧부리개는 말의 귀에서 코까지 뻗어 있었다. 플랜지는 종종 눈을 덮었지만, '오픈 콧부리개'에서는 눈을 보호하지 않았다. 턱을 덮는 경첩식 연장부는 토너먼트에서 흔히 사용되었다.[6]
말용 투구는 챔프론(chanfron, 또는 champion, chamfron, chamfrein, shaffron)이라고 불린다. 드물게 힌지가 달린 뺨받이가 부착되기도 한다. 많은 챔프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식적인 특징은 작은 스파이크가 달린 론델이다.[15]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알려졌지만, 12세기 군마의 갑옷이 보일드 레더에서 금속 갑옷으로 대체될 때까지 유럽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챔프론의 기본적인 디자인은 17세기에 낡아질 때까지 안정적이었으며, 후기에는 장식이 더해졌다. 챔프론은 말의 귀에서 입까지 뻗어 있었다. 플랜지는 종종 눈을 가렸지만, 오픈 챔프론에서는 눈이 보호되지 않았다. 뺨을 덮기 위한 힌지식 연장부는 토너먼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16]
3. 2. 크리니에르 (Criniere)
크리니에(Criniere, manefaire 또는 crinet이라고도 함)는 말의 목을 보호하는 여러 개의 분절된 판이었다. 완전한 마갑에서는 느슨한 리벳에 연결된 두 개의 관절형 라메 조합으로 구성되었다. 한 세트의 라메는 갈기를 덮고 다른 세트는 목을 덮었다. 이들은 페이트랄과 콧부리개에 연결되었다.[7] 가벼운 마갑은 상단 라메만 사용했다. 세 개의 끈이 목 주위에 크리니에를 고정했다.[7] 이 판에는 아마도 0.8 mm의 얇은 금속이 사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슬 갑옷은 종종 크리니에에 부착되어 말의 목 주위를 감싸 추가적인 보호 기능을 제공했다.3. 3. 페이트럴 (Peytral)
페이트럴은 말의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갑옷이다.[7] -- 어떤 경우에는 안장까지 뻗어 있기도 하다.[7]3. 4. 플란샤드 (Flanchard)
플란샤드는 말의 옆구리를 보호하는 갑옷이다. 안장 측면에 부착되어 말의 앞이나 뒤를 돌아 다시 안장으로 연결되었다. 플란샤드는 가죽에 리벳으로 고정된 금속판이거나, 비즈왁스 등으로 밀봉하여 삶거나 처리한 가죽인 ''cuir bouilli''(보일드 레더)로 제작되었다.[7] 때로는 기수가 박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기도 했다.[7]3. 5. 크루피에 (Croupiere)
크루피에(croupiere bacul, 엉덩이 보호대)는 말의 엉덩이를 보호하는 갑옷이다. 가죽, 사슬 갑옷, 판 갑옷을 조합하여 만들 수 있었다.[7]4. 완전 마갑 (Full bard)
완전 마갑은 말의 전신을 덮는 형태의 마갑으로, 15세기경에 등장했다. 막시밀리안 1세, 신성 로마 황제 시대에 아우크스부르크와 인스브루크의 갑옷 제작 장인들 (예: 로렌츠 헬름슈미트, 콘라트 조이젠호퍼)이 제작한 완전 마갑은 기술적으로 가장 발전된 형태였다. 완전 마갑의 개발은 막시밀리안 갑옷과 란츠크네히트의 개발과도 관련이 있었는데, 이는 막시밀리안이 부르고뉴 네덜란드에 있을 때 인간과 말 모두 더 많은 보호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완전 마갑은 매우 비싸고 제작하기 어려워, 가장 부유한 기사들만이 구매할 수 있었다.[8] 주로 의식용이나 외교 선물용으로 사용되었다.[9]
로렌츠 헬름슈미트가 제작한 정교하고 혁신적인 마갑은 막시밀리안이 부르고뉴 시대에 사용한 중요하고 선전적인 장치였다. 그의 마갑을 착용한 말은 그가 직접 참석할 수 없을 때에도 그의 살아있는 깃발 역할을 했다. 막시밀리안은 혁신적인 경이로움과 자동 인형으로 유명한 아우크스부르크의 기술을 활용하여 부르고뉴 관람객을 위한 광학적 및 기술적 경이로움을 생산하기 위해 말과 인간의 공연과 결합된 마갑을 만들었다. 어떤 마갑도 헬름슈미트가 제작한 마갑의 기술적, 시각적 완성도에 필적하지 못했으며, 그는 말이 움직일 때 말의 다리와 복부 전체를 감쌀 수 있을 만큼 유연한 강철판 매트릭스를 제작한 유일한 갑옷 제작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유형의 마갑은 막시밀리안과 연관되었으며, 그는 자신의 말을 무장시키고 동맹을 맺고 합스부르크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외교 선물로 말의 다리와 배를 덮는 마갑을 계속 주문했다.[9] 이러한 마갑을 선물받은 사람으로는 지그문트 1세 스타리가 있으며, 그는 "발목과 배까지 강철로 덮인 두 마리의 말"을 선물받았다.[9] 또 다른 예는 헨리 8세의 소위 부르고뉴 마갑이었다.[10]
서로 다른 마갑의 부품을 교환할 수 있는 경우, 부품을 혼합하여 완전 마갑을 만들 수 있었다. 막시밀리안은 프리드리히 3세를 위해 제작된 마갑의 황실 독수리 엉덩이 가리개를 다른 마갑 부품에 다시 연결하여 1492년 8월 31일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행렬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베네치아 외교관 안드레아 프란체스키는 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갑옷을 입은 말 - 매우 빛나는 광경!"이라고 묘사했다. 그의 편지에 따르면 "동물의 가슴은 두 개의 그리핀으로 장식되었고, 각 옆구리에는 황실 독수리가 있었다."[11][12]
5. 한국의 마갑
6. 상징성과 현대적 의의
(요약 및 참조할 원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았고, 이전 출력도 없으므로, '마갑' 문서의 '상징성과 현대적 의의' 섹션 내용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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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wick Shaffron (RA Winter L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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