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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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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녀사냥은 악마의 하수인으로 여겨진 사람들을 규탄하는 행위로, 고대부터 중세 유럽, 현대 사회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중세에는 종교 재판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현대에는 정치적, 사회적 탄압이나 인터넷을 통한 인격 살인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여성, 소수자, 이주 노동자 등이 주요 대상이 된다. 마녀사냥은 전체주의,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로, 21세기에도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서 미신과 여성 차별, 사회 불안을 배경으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마녀사냥은 적법절차와 죄형법정주의와 같은 근대 헌법의 원칙에 위배되며, 스코틀랜드 등에서는 이에 대한 사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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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개요
마녀사냥을 묘사한 그림
16세기의 마녀사냥을 묘사한 그림
다른 이름마녀 재판, 마녀 박해, 마녀 소탕
영어witch-hunt
정의
정의사회 전체 또는 일부 구성원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그들의 정치적 견해, 종교적 신념,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이유로 비난, 박해, 차별하는 행위
유사 개념집단 괴롭힘, 왕따, 인민재판, 낙인, 희생양 만들기
역사적 배경
기원중세 유럽의 마녀 재판
전개15세기 ~ 18세기 유럽, 북미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불안정 시기에 심화
주요 원인기독교악마 사상
성차별적 사회 분위기
집단 심리
정치적 선전
현대적 의미
적용 범위정치적 반대파 탄압
사회적 소수자 차별
인터넷 사이버 불링
언론의 마녀사냥식 보도
특징근거 없는 비난과 루머 확산
여론에 의한 공개적인 인격 살인
개인의 명예와 사회적 지위 박탈
사례
역사적 사례살렘 마녀 재판
매카시즘
현대적 사례인터넷 마녀사냥
연예인에 대한 악성 댓글과 루머 유포
정치인의 정치 스캔들
문제점
개인적 피해정신적 고통
사회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
극단적 선택
사회적 피해사회적 불신 심화
여론 조작
민주주의 훼손
예방 및 대처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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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및 홍보 강화
관련 용어
관련 용어낙인 효과
집단 사고
악플
사이버 명예훼손
참고 자료
서적흑사병과 마녀, 조르주 뒤비
영화마녀 사냥
드라마마녀재판

2. 역사적 배경

중세 유럽 사람들은 '마녀'를 처음에는 사악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들은 공동체에서 출산, 질병 치료, 점술, 묘약 제조 등 주술적 기능을 수행하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으로 약 20만~50만 명이 처형되었다.[19] 1970년대 이후 연구에 따르면, 민중 사회에서 일어난 마녀재판은 14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나타났으며, 마빈 해리스는 50만 명이 마녀 또는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고 기록했다.[20]

마녀의 개념은 반유대주의와 결부되어 "아이를 잡아먹는 굽은 코의 인물"이라는 마녀상이 만들어졌다. 마녀 집회가 유대인의 안식일을 의미하는 "사바트"로 불린 것도 반유대 감정의 결과였다. 이처럼 공통적인 마녀 이미지가 완성된 것은 15세기였다.

15세기에는 마녀와 요술에 관한 서적이 유행했다. 예를 들어 니콜라 자키에의 『이단 마녀의 채찍』(1450년), 울리히 몰리토르의 『마녀와 여자 예언자에 대하여』(1489년) 등이 있으며, 특히 하인리히 크라머의 『마녀의 망치』(1486/87년)가 유명하다.

요한 바이어1563년 『악령의 현혹에 대하여』를 발표하여 마녀 사냥에 반대했다. 그는 『마녀의 망치』를 비판하고, 마녀 사냥은 악마의 유혹에 의한 것이므로 책임은 악마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켜 마녀 재판이 신중하게 이루어지게 되었으나, 1581년에는 바이어가 활동하던 지역에서도 고문이 부활하는 등 마녀 사냥은 계속되었다.

마녀 사냥은 16세기부터 17세기에 절정에 달했다가 17세기 말 급격히 쇠퇴했다. 17세기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르네 데카르트, 아이작 뉴턴 등 근대적 지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새로운 사상이 널리 퍼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뉴턴이 연금술에 열중했던 것처럼 당시 과학자들도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17세기 말에는 지식 계급의 마녀관이 변화하고, 재판에서 극형을 피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모두 개인의 책임은 악마가 아닌 개인에게 있다는 개념이 생겨났다.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는 마녀에 대한 공포가 여전했지만, 지식 계급의 변화로 무죄 판결이 늘면서 마녀 재판은 기능을 잃었다. 잉글랜드에서는 1624년 제정된 마녀 대책법이 1736년에 폐지되었고, 1735년 요술 행위 금지령은 1951년까지 존속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에는 헬렌 던컨이 이 법으로 마지막 구류자가 되었는데, 이는 영국군 정보부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 계획이 누설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735년 요술 행위 금지령은 아일랜드에서 1983년까지 시행되었고, 이스라엘에서는 현재도 시행되고 있다.

2. 1. 고대 사회

מְכַשֵּׁפָה; לֹא תְחַיֶּה|메하셰파 로 테하예|he는 구약성서 '출애굽기' 22장 18절의 "마법사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라는 구절에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 마법사는 "마법을 걸다", "매혹하다"라는 뜻의 동사 키셰프 (히브리어: כִּשֵּׁף) 와 어근을 같이 하는 여성 명사이다.[1] 이 "마술을 행하는 여성" 정도의 애매한 표현은 불가타에서는 "요술사" (라틴어: maleficos), 흠정역 성경(1611년)에서는 "마녀"(영어: witch)라는 단어로 번역되었다.

2. 2. 중세 유럽

중세 유럽에서 '마녀'는 처음에는 나쁜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아기를 낳거나 병을 치료하고, 점을 치며 묘약을 만드는 등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14세기부터 유럽에 불어닥친 '마녀사냥'은 17세기까지 약 20만 명에서 50만 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19] 마녀재판은 12세기 이후 기독교 주도로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알려졌지만, 1970년대 이후 연구에 따르면 민중 사회에서 일어난 마녀재판은 14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나타났으며, 마빈 해리스는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녀 또는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고 기록했다.[20]

마녀사냥은 백년전쟁이 끝난 후 본격화되었고,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도 마녀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마법을 사용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사라진 사람들 중 다수는 여성이었다. 《마녀의 망치》라는 책은 '마녀 지식을 집대성한 완결본'으로 여겨지는데, 이 책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잘 속고, 머리가 나쁘며, 정욕에 약해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21] 이러한 논리는 여성을 잠재적인 마녀로, 남성을 유혹하여 죄악에 빠뜨리는 존재로 만들었다.[22]

중세의 마녀사냥은 1484년 교황의 ‘긴급 요청’ 회칙 발표와 1487년 하인리히 크라머와 자콥 스프렝거라는 도미니코회 성직자 두 명이 쓴 《마녀의 망치》라는 마녀사냥 지침서로 인해 본격화되었다. 이 책은 마녀를 쉽게 구별하고 취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씌어졌으며, 교회에 가기 싫어하는 여자나 열심히 다니는 여자 모두 마녀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녀사냥이 가장 심했던 시기는 가톨릭교회가 가장 약했을 때였고, 이는 '근본주의의 창궐은 특정 체제에 위기가 닥쳤음을 반영하는 증상'의 일부였다. 마녀사냥 이전의 종교 재판은 믿음을 잃은 신자들의 회개와 전향을 목표로 했지만, 이제 가톨릭교회는 '알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적'들을 상대해야 했다. 마녀사냥은 권위나 권력의 공백이 발생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종교적 광기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중세의 몰락으로 시작된 근대는 계몽주의와 합리성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마녀 프레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마녀의 망치》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금속 활자 인쇄술 덕분에 대량으로 제작되어 마녀사냥을 가속화시켰다. 1490년 교황청과 1538년 종교 재판 본부에서 '오류'라는 공식 비난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녀의 망치》는 당시 20쇄를 거듭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19][22][23][24] 《마녀의 망치》 득세 이면에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묵인하고 방조한 세속 권력과 교회가 있었다. 십자군전쟁의 패배로 혼란과 분열, 왕권에 대한 불만과 불신에 휩싸인 유럽 사회의 위기를 타개할 ‘희생양’이 필요했던 세속 권력과, 종교 개혁의 열풍과 갈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대를 ‘신앙의 적’으로 몰아갈 필요성이 있었던 교회가 그들이다. 지식과 과학이 발달했지만, 그만큼 지식과 과학에 포섭되지 못하는 사물이나 현상을 악마화하고 소멸시키려는 경향도 활발하게 나타났다. 이후 마녀사냥은 미신을 타파한 과학이 아닌 근대 사법체계의 확립으로 인해 사라지기 시작했다.[19][22][23][24] 마녀사냥을 설계한 당시 권력자들은 마녀라는 미신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은 마녀사냥을 멈추는데 큰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희생자는 약한 여자들이 압도적이었고, 귀족 남성들은 마녀로 기소되어도 처벌받지 않거나 오히려 잔혹한 보복을 하여 처형되는 피해자들이 늘어났다.[25][26]

중세 시대에 기독교 사회권에서는 악마가 인간이나 동물 등을 이용해 악한 행위를 한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악마의 하수인으로 여겨진 인간을 규탄했고, 마녀재판은 스위스크로아티아의 민중 사회에서 시작되어 민중 법정의 형태로 마녀를 단죄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마녀 용의자는 주로 부유한 과부들과 무신론적 지식을 가진 미혼 여성들이었다. 가족이 없는 과부들은 재판에 증인을 세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많이 잡혀갔다. 그리스 약초학을 공부한 사람들, 동방(북인도 지역)의 신비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자들, 아프리카의 부두교를 믿는 자들 역시 ‘악마를 숭배한다’는 명목으로 마녀로 몰렸다.

3. 유럽에서의 마녀재판

중세 말부터 근대 초까지 유럽에서는 '마녀'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초기에는 마을에서 출산을 돕거나 병을 치료하고, 점을 치는 등 공동체에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이었지만, 점차 악마와 결탁하여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덧씌워졌다.[19] 14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마녀사냥은 17세기까지 약 20만 명에서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19] 마빈 해리스는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녀 또는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고 기록했다.[20]

마녀사냥은 백년전쟁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프랑스를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잔 다르크 역시 마녀재판을 받고 화형당했다.[21] 마법을 행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한 사람 대다수가 여성이었다.[21]

3. 1. 마녀재판의 전개

15세기에 들어서면서 마녀와 마법에 관한 서적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러한 서적들은 대부분 소문이나 속설을 바탕으로 쓰여졌으며, 마녀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자극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19] 특히, 하인리히 크라머가 1487년에 쓴 《마녀의 망치》는 마녀사냥의 지침서 역할을 하며 큰 영향을 미쳤다.[23] 이 책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금속활자 인쇄술 덕분에 대량으로 인쇄되어 널리 퍼졌고, 마녀사냥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19] 1490년 교황청과 1538년 종교 재판소에서 이 책을 '오류'라고 공식적으로 비난했지만, 《마녀의 망치》는 당시 글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판 이상 인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19]

마녀의 개념은 당시 유럽에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와 결합하면서, 아이를 잡아먹는 매부리코를 가진 여성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졌다. 마녀들의 모임을 유대인의 안식일을 의미하는 '사바트'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러한 반유대주의적 사고방식의 영향이었다.

12세기에 시작된 이단 심문은 원래 왈도파와 같은 이단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15세기부터는 마법까지 다루게 되었다. 특히 왈도파가 많았던 스위스프랑스알프스 인근 지역에서 마녀재판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428년 스위스 발레 주의 이단 심문소가 마녀 사건을 다룬 것이 기록상 최초였다. 이 지역의 이단 심문소는 왈도파를 주로 추궁했기 때문에, 이단자들의 모임 이미지가 점차 마녀의 모임 이미지로 바뀌어 갔다. 악마 숭배, 성물 모독, 아이 납치 등의 마녀 모임 이미지는 이단 모임에서 행해졌다고 여겨지던 이미지와 같았다.

마녀재판은 주교 재판소나 세속 재판소에서도 이루어졌다. 유럽 대륙에서는 중세의 당사자주의적 소송 절차가 점차 사법 기관이 주도하는 규문주의적 소송 절차로 바뀌었다. 교회 법정에서 다루는 마녀재판은 점차 줄어들었고, 마녀재판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에는 대부분 세속 법정에서 진행되었다.

3. 2. 마녀재판의 쇠퇴

17세기 말, 지식인들 사이에서 마녀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면서 재판에서 극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모두 개인의 특정 행동에 대한 책임은 악마와 같은 초자연적인 힘이 아닌, 개인에게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2] 일반 서민들은 여전히 마녀와 요술을 두려워하여 '마녀'를 고발했지만, 재판을 담당하는 지식인들의 생각 변화로 무죄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마녀 재판은 점차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2]

1624년 잉글랜드에서 제정된 마녀 대책법은 1736년에 폐지되었으며, 이 법이 마지막으로 적용되어 사형이 집행된 것은 그보다 40년 전이었다.[2] 1735년 제정된 요술 행위 금지령은 1951년 사기적 영매 행위 금지령으로 대체될 때까지 존속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헬렌 던컨이 이 법으로 구류된 마지막 인물이었다.[2] 일설에는 영국군 정보부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 계획이 그녀를 통해 누설될 것을 우려하여 체포를 요청했다고도 한다.[2] 아일랜드에서는 1735년 요술 행위 금지령이 1983년까지 시행되었으나,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2]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했던 영국의 법 제도를 도입한 이스라엘에서는 현재도 이 법이 시행되고 있다.[2]

마녀 사냥 쇠퇴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제기되었지만, 명확한 증거를 가진 것은 없다.[2] 일례로,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년-1642년), 르네 데카르트(1596년-1650년), 아이작 뉴턴(1643년-1727년)과 같은 근대적 지성을 가진 인물들이 출판물을 통해 대중의 의식을 변화시켜 전근대적인 마녀 사냥이 쇠퇴했다는 주장이 있다.[2] 그러나 당시에는 인쇄술이 보급되었더라도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아 특정 사상이 사회 계급이나 국경을 넘어 퍼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뉴턴이 연금술에 심취했던 것처럼 당시 과학자들조차 완전히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2]

3. 3. 마녀재판의 방법

중세 유럽에서는 마녀로 의심받는 사람들을 판별하고 처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방법들은 당시 사람들의 믿음과 성경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 눈물 시험 (Traenenprobe): 마녀는 사악하기 때문에 눈물이 없다고 믿어, 눈물을 흘릴 수 있는지 시험했다. 눈물을 흘리면 악마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었다.[19]
  • 바늘 시험 (Nadelprobe): 성경 구절에 따라, 타락한 악마와 마녀는 지울 수 없는 표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재판관은 용의자의 몸을 검사하여 사마귀, 융기, 부스럼 등을 찾고, 바늘로 찔러 감각이나 출혈 여부를 확인했다. 마녀는 피를 다 써버렸기 때문에 피를 흘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19]
  • 불 시험 (Feuerprobe): 혐의자에게 달궈진 쇠를 견디거나 불 위를 걷게 하여 무사한지 시험했다. 마녀는 악마의 도움으로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통과하지 못해도 불에 타기 때문에 마녀로 간주되었다.[19]
  • 물 시험 (Wasserprobe): 물은 깨끗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 마녀를 밀어낸다고 믿었다. 혐의자를 묶어 깊은 물에 빠뜨려, 떠오르면 마녀로 간주되어 화형에 처해졌다. 익사하면 혐의는 벗겨지지만, 결국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19]


이러한 마녀재판 방법들은 마녀의 망치라는 책에 상세히 기록되어 널리 퍼졌으며, 마녀사냥을 가속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19]

3. 4. 마녀재판의 피해 사례

3. 5. 마녀재판의 이유를 둘러싼 여러 설

마녀재판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어 왔으며,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여성 억압: 마녀사냥 희생자의 대다수가 여성이었고, 특히 혼자 사는 노파나 빈곤층 여성이 표적이 되기 쉬웠다는 점에서 여성 억압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4] 《마녀의 망치》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잘 속고, 머리가 나쁘며, 정욕에 취약하여 마법에 쉽게 빠진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21] 이러한 여성혐오적 인식은 마녀사냥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였다.
  • 금전적 목적: 마녀로 지목된 사람에게 재판 비용을 부담시키고, 유죄 판결 시 재산을 몰수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권력자와 교회 관계자들의 금전적 이익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20] 그러나 모든 지역에서 재산 몰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피고인이 가난한 경우가 많았다는 반론도 있다.
  • 이교 신앙 탄압: 마녀가 기독교 이전의 오래된 신을 숭배하는 이교도라는 주장도 있다.[27] 마거릿 머레이는 마녀들이 디아누스 신을 숭배했으며, 이는 중세 유럽에 저류하던 유력한 종교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 명확한 이교 신앙이 있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 여성 의료사 탄압: 중세 유럽에서 출산과 질병 치료 등 의료 기능을 담당하던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 재앙에 대한 반응: 전쟁이나 페스트와 같은 재앙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마녀에게 돌려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재앙과 마녀사냥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 종파 간 항쟁: 종교 개혁 시기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갈등 속에서 상대를 '신앙의 적'으로 몰아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마녀사냥이 이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 사회 통제 수단: 마녀사냥은 사회 불안을 해소하고, 지배층에 대한 불만을 억누르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마녀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마녀재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세 유럽인들은 마녀가 악마와 계약을 맺고 초자연적인 힘을 얻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마녀재판을 정당화하고, 마녀사냥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4. 마녀사냥의 현대적 의미

현대 사회에서 마녀사냥은 과거 중세 시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정치학, 심리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마녀사냥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마녀사냥의 양상을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불특정 다수가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공격하는 '인격 살인' 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이라는 용어로 표현될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31][32][30][33]

4. 1. 정치, 사회, 심리학적 관점

정치학에서는 마녀사냥을 전체주의의 산물로 본다.[29] 히틀러나치가 주도한 '우생학', 일본 제국의 '불령선인', 미국의 'KKK'과 '매카시즘', 소련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진 '인종학살' 등이 근현대에 벌어진 대표적인 마녀사냥이다.[24]

심리학에서는 마녀사냥을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로 본다.[29]

사회학에서는 집단이 절대적 신조를 내세워 개인에게 무차별 탄압을 하는 행위를 마녀사냥으로 정의한다.[30] 동일성과 규격화를 요구하는 근대 국가는 ‘정상이 아닌 것’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으며, 주로 여성, 유대인, 무슬림,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등이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상황에 따라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19]

마녀사냥에 대한 사회 통제 수단 설에 따르면, 권력자가 약자에 대한 지배를 확대하고 강화하기 위해 마녀사냥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권력자가 백마술에 대해 관대했던 이유와, 교회나 세속 권력이 중앙 집권화된 중세 성기에 마녀와 마술을 방치하고 근세 초기에 갑자기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으며, 권력자를 일률적으로 악으로 단정 짓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4. 2. 현대 사회의 마녀사냥 사례

정치학에서는 마녀사냥을 전체주의의 산물로, 심리학에서는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로, 사회학에서는 집단이 절대적 신조를 내세워 개인에게 무차별 탄압을 하는 행위로 본다.[29][30]

근현대 사회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마녀사냥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이러한 사례들은 동일성과 규격화를 요구하는 근대 국가가 '정상이 아닌 것'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마녀사냥의 대상은 주로 여성, 유대인, 무슬림, 동성애자, 이주 노동자 등이었으며, 이는 상황에 따라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19][24]

인터넷의 발달은 마녀사냥의 양상을 더욱 진화시켰다. 집단이 개인을 상대로 근거 없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여 '인격 살인'을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31][32]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되어, 인터넷이 마녀사냥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었다.[19]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30][33]

5. 현대의 마녀사냥

21세기에도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요술이나 정령, 샤머니즘에 대한 믿음이 남아있어, 일부 폭도들에 의해 사형 형태로 마녀사냥이 자행되고 있다.[17]

5. 1. 아시아

인도에서는 2008년 3월경 텔레비전에서 농촌 지역의 마녀사냥 장면이 방영되어 여성을 폭행한 혐의로 6명이 체포되었다[7]. 2013년 오디샤 주에서는 마녀사냥을 억제하기 위해 마술을 이유로 한 중상모략이나 괴롭힘에 대해 최고 금고 3년 형을 부과하는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16년 인도 동부 농촌 지대를 중심으로 마술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살해된 피해자는 134명에 달했다[8]. 그 배경으로는 인도 사회의 여성 차별, 낮은 교육 수준으로 인해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마녀사냥 근절을 위한 계몽 및 피해자 구제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노력의 결과 2018년에는 아삼 주에서도 마녀사냥 금지법이 시행되어 타인을 마녀라고 부르는 경우 징역 3~7년을 부과하게 되었지만, 주민들의 비협조로 인해 경찰 수사는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다[9].

네팔에서는 마을 샤먼에게 마녀 혐의를 받아 린치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정부가 마녀사냥 대책법에 의해 벌칙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10]. 한편, 네팔에서 최하층민으로 여겨지는 달릿은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11].

5. 2.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는 마녀 혐의를 받은 아이들이 "마녀가 아니다"라며 항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12]

감비아에서는 마녀 혐의를 받아 천 명 정도가 구금되었으며, 야히야 자메 대통령 자신이 마녀사냥에 관여하고 있다고 국제앰네스티에서 보고하고 있다.[13]

탄자니아에서는 불임, 빈곤, 사업 실패, 기아, 지진 등의 재앙은 마녀의 소행이라는 미신이 깊이 남아 있다. "마녀사냥"이라고 칭하며 여성 살해가 만연하고 있으며, 현지 인권 단체 "법적 권리와 인권 센터(Legal and Human Rights Centre, LHRC)"는 매년 500명이 "마녀사냥"에 희생되며, 2005-11년 사이에 약 3000명이 살해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14]

가나에서는 마녀로 의심받아 추방된 고령의 여성이나 아이들이 피신하는 캠프가 북부에만 5곳이 존재하며, 약 500명이 생활하고 있다. 2020년 마녀로 의심받은 90세 여성이 주민들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으며, 2023년 7월 28일 마녀사냥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15]

5. 3. 중동

사우디 아라비아와 같은 이슬람교 국가에서는 21세기에도 마녀사냥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슬람 종교부에는 마법부가 있어, 마법에 걸린 경우의 대처법을 전화로 상담받는다. 공공 기관이 진지하게 상담을 진행하며, 내용에 신빙성이 있으면 조사, 체포, 기소가 이루어져 실제로 마녀로 여겨지는 사람이 사형되기도 한다.

종교 경찰인 선악 권장 위원회가 마녀를 적발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법률은 마술 사용을 직접적으로 범죄로 정의하지 않지만, 인간이 마법 등의 초자연적인 힘을 가졌다고 주장하거나 믿는 것은 알라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어 사형이 적용된다. 마법은 사형이 가능한 중죄이며, 지방에서는 토착 신앙의 마술을 행하는 사람이 있어 연간 수 건이 적발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재판은 2009년 기준으로 이슬람법에 따른 종교 재판이며, 와하브파 신앙을 기준으로 한 이단 심문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2005년 5월에는 마술을 사용한 영매사 여성이 사형되었고, 휴먼 라이츠 워치는 마녀에 대한 사형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2009년 11월 9일에는 레바논의 영능력자가 사형 판결을 받았다.

5. 4. 오세아니아

오세아니아 일부 지역에서는 현대에도 요술이나 정령, 샤머니즘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일부 폭도들에 의해 사형 형태로 마녀사냥이 자행되고 있다.

파푸아뉴기니의 마운트 하겐에서는 2013년 2월, 20세 여성이 마법으로 아들을 죽였다는 혐의로 폭도들에게 불태워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현지 경찰도 다수의 폭도를 제지하지 못해 참극을 막지 못했다.[17] 엔가 주 등의 산악 지역에는 마녀사냥 등의 습관은 없었지만, 2010년대의 환경 변화를 흑마술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주민도 많아, 수년 동안 최소 20건의 살인과 수십 건의 습격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18]

6. 마녀재판과 근대 헌법의 원칙

적법절차(듀 프로세스 오브 로)나 죄형법정주의와 같은 국가 형벌권에 대한 근대 헌법의 원칙은, 중세 마녀 재판과 잔혹한 형벌 등에 대한 민중의 투쟁을 통해 정리되었다고 일본의 법학자 스미노 타카노리는 말하고 있다.[5] 이러한 인신 자유의 원칙은 버지니아 권리 장전(1776년 기안), 프랑스 인권 선언(1789년 의회 채택), 미국 수정 헌법(1791년 실시) 등에 규정되어 근대 헌법의 원칙이 되었다.

7. 마녀사냥에 대한 사죄

2022년 국제 여성의 날, 스코틀랜드의 수석 장관 니콜라 스터전은 스코틀랜드에서의 마녀사냥에 대해 사죄했다. 스코틀랜드 교회도 같은 해 5월 말에 사죄했다.[19]

8. 관련 자료

마녀사냥을 주제로 한 영화, 영상, 기사는 다음과 같다.

8. 1. 관련 영화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의 2012년 영화 더 헌트[35]와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의 2014년 영화 백설공주 살인사건[36][37][38]이 있다.

8. 2. 관련 영상

8. 3. 관련 기사

참조

[1] 뉴스 「AV対策法案」に業界寄りと批判噴出 塩村文夏議員が「魔女狩りだ」と激怒したワケ https://www.dailyshi[...] デイリー新潮 2022-05-19
[2] 간행물 ゲルハルト・ダイムリンク編「チェ-ザレ・ベッカリ-ア/ヨ-ロッパにおける近代刑事司法の始祖」(1989年)-1-(資料) https://doi.org/10.1[...] 九州大学法政学会
[3] 문서
[4] 간행물 魔女狩りとは何であったのか https://www.tenri-u.[...] 天理大学附属おやさと研究所 2020-07
[5] 웹사이트 論文「人身の自由の憲法的基礎」 http://www.jicl.jp/n[...] 法学館憲法研究所 2018-04-23
[6] 뉴스 スコットランド国教会、過去の「魔女狩り」を謝罪 https://www.christia[...] クリスチャン・トゥディ 2022-06-10
[7] 뉴스 インドの「魔女狩り」がテレビで放送、警察は捜査開始 https://www.afpbb.co[...] AFP 2008-03-31
[8] 뉴스 「魔女狩り」で母子5人殺害、男6人を逮捕 インド東部 https://www.cnn.co.j[...] CNN 2019-01-31
[9] 뉴스 【世界発2021】インド農村部 魔女狩り 後絶たぬ犠牲 https://www.asahi.co[...] 2021-04-06
[10] 웹사이트 “魔女狩り”根絶をめざす~ネパール~ https://web.archive.[...] 2019-06-10
[11] 뉴스 「魔女狩り」被害に遭う下層民の女性たち、ネパール https://www.afpbb.co[...] AFPBB 2010-02-11
[12] 뉴스 「魔女狩り」にあう子どもたち、父親から火をつけられた少年の体験談 ナイジェリア https://www.afpbb.co[...] AFPBB 2009-03-05
[13] 뉴스 ガンビアで“魔女狩り” 千人連行、迫害と人権団体 https://web.archive.[...] 共同通信社 2009-03-21
[14] 뉴스 魔女狩りで女性2人殺害、タンザニア https://www.afpbb.co[...] AFPBB 2014-10-18
[15] 뉴스 魔女狩り禁止へ 90歳女性暴行死受け―ガーナ https://www.jiji.com[...] 2023-07-30
[16] 웹사이트 「サウジアラビア、イスラム法廷で霊能力者に死刑判決」 http://10e.org/mt2/a[...] 2009-12-15
[17] 뉴스 20歳“魔女”暴徒に焼き殺される https://web.archive.[...] 日刊スポーツ新聞社 2013-02-12
[18] 뉴스 環境の変化を黒魔術のせいに、多発する現代の魔女狩り パプアニューギニア https://www.afpbb.co[...] AFPBB 2019-02-02
[19] 뉴스 마녀사냥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13-02-22
[20] 뉴스 인용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짜르게 한겨레신문사
[21] 뉴스 마녀사냥엔 책이 한 몫 했다? 북데일리 2013-03-06
[22] 뉴스 발가벗기고 찌르고 살육하며 ‘마녀사냥’ 한겨레신문 2009-10-14
[23] 뉴스 근대 베스트셀러, 마녀사냥 서울신문 2013-02-23
[24] 웹사이트 (표창원의 단도직입)21세기 '마녀 망치' http://opinionx.khan[...] 경향신문 2014-03-18
[25] 서적 인용 Witch Hunting in Southwestern Germany, 1562-1684: The Social and Intellectual Foundations https://www.sup.org/[...] Stanford University Press 1972
[26] 웹 인용 (39) 마녀사냥은 단지 과거의 일일까 https://www.lawtimes[...] 2024-09-27
[27] 문서
[28] 웹 인용 Kaišiadorių rajono savivaldybė - Istorija http://www.kaisiador[...] 2016-04-17
[29] 뉴스 마녀사냥의 진실…"여성을 노예로 만들자!" http://www.pressian.[...] 프레시안 2011-12-16
[30] 웹사이트 사소한 거짓말이 ‘인간 사냥’을 불렀다 시사저널 2013-01-16
[31] 뉴스 '인격살인' 앞에 경찰·포털 떠넘기기 급급 http://www.segye.com[...] 세계일보 2011-04-17
[32] 뉴스 한 아이의 거짓말인데…‘성추행 누명’ 남자 마녀사냥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2013-01-13
[33] 웹사이트 이번엔 국물녀… 인터넷 여론몰이 '위험한 심판' 한국일보 2012-02-29
[34] 뉴스 100년 전 ‘해리포터’급 인기, 어린이 성화에 14편까지 써 http://news.naver.co[...] 중앙SUNDAY 2011-09-04
[35] 뉴스 한 아이의 거짓말인데, '성추행 누명' 남자 마녀사냥 http://www.hani.co.k[...] 한겨레신문 2013-01-13
[36] 뉴스 사건이 왜곡되는 과정(백설공주 살인사건) http://news.naver.co[...] 씨네21 2015-02-11
[37] 뉴스 ‘마녀사냥’ 네티즌을 향한 섬뜩한 경고 http://news.naver.co[...] 헤럴드경제 2015-02-05
[38] 뉴스 SNS 시대의 진실을 꼬집다, 영화 '백설공주 살인사건' http://www.readersne[...] 독서신문 201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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