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타 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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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리타 도지는 1970년대 일본에서 활동한 싱어송라이터로, 고등학교 중퇴 후 20세 무렵 음악을 시작하여 1975년 데뷔했다.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한 포크 사운드와 내면의 고독, 슬픔을 담은 가사로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1983년 활동 중단 후, 드라마 '고교교사'에 그의 곡 '우리들의 실패'가 사용되며 재조명되었고, 2018년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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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 도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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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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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미노부 나카니시 (미노부 나카니시) |
출생일 | 1953년 1월 15일 |
사망일 | 2018년 4월 24일 (65세) |
출생지 | 도쿄, 일본 |
악기 | 첼로, 기타 |
직업 | 가수, 작곡가, 음악가 |
활동 기간 | 1975년–1983년 |
레이블 | 폴리도르, 애틀랜틱 |
관련 활동 | 오자와 음악 사무소 |
음악 스타일 | |
장르 | 포크 팝, 사이키델릭 포크 |
2. 생애
모리타 도지는 전공투 시대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동경교육대학의 학생운동 세력과 교류했다. 고등학교 중퇴 후 20세 무렵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노래를 시작했는데, 데뷔곡 '안녕 내 친구(さよならぼくのともだち)'는 그 친구를 위해 만든 곡이다. 1975년 앨범 '굿바이(「グッドバイ」)'와 싱글 '안녕 내 친구'로 데뷔한 후 주로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1983년까지 7장의 앨범과 4장의 싱글을 내고 신주쿠 로프트 클럽(ロフト)에서 라이브 앨범(1983)을 낸 후 은퇴했다. 앨범 편곡과 연주는 이시카와 타카히코가 주로 맡았고, 소속 레이블은 해저극장이었다.
모리타 도지는 공연과 앨범 재킷에서 곱슬머리에 선글라스를 쓴 스타일을 고수하여 맨얼굴을 보인 적이 없다. 본명, 실생활, 작사 내용 등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 과묵하고 독특한 세계관을 담은 앨범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1975년 10월, 싱글 레코드 '안녕 나의 친구'로 폴리도르(현 유니버설 뮤직 합동회사)에서 메이저 데뷔했다. 1980년 폴리도르에서 워너 파이오니아(현 워너 뮤직 재팬)로 이적했다.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앨범 7장, 싱글 4장을 발표했으며, 1983년 11월 30일 앨범 『늑대 소년 wolf boy』 발매, 같은 해 12월 상순 전진좌 극장 6일간 공연 및 12월 25일 · 26일 신주쿠 로프트 라이브를 마지막으로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3][11]
2018년 4월 24일 새벽, 심부전으로[7] 자택에서 사망했다.[8][10][9] 유족으로부터 일본음악저작권협회(JASRAC)에 연락이 있었고,[7] 같은 해 6월 1일 발행된 일본음악저작권협회(JASRAC) 회보에 부고가 게재되면서 사망이 알려졌다.[7] 활동 중단 후에는 주부로 살았으며,[9] 2017년부터 입퇴원을 반복하다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10]
2. 1. 초기 (1952년 ~ 1975년)
모리타 도지는 1952년 1월 15일에 도쿄도에서 출생했다[8]는 기록과 아오모리현에서 출생했다는 기록이 공존한다.[5] 1953년 1월 15일 출생이라는 기록도 있다. 고등학교 시절 전공투 운동을 경험했으며,[3][11] 1970년 친구의 체포를 계기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3][11] 1972년 여름, 또 다른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는데,[5] 데뷔곡인 "안녕 내 친구(さよならぼくのともだち)"는 이 친구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곡이다.[5]모리타 도지는 전공투 세대보다 조금 젊은 고등학생 시절, 도쿄 교육 대학(현: 쓰쿠바 대학)의 대학 투쟁에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섹트에 들어가거나 고등학교 전공투로 활동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14]
1975년, 모리타 도지는 앨범 "굿바이(「グッドバイ」)"와 싱글 "안녕 내 친구"로 데뷔하였다.
2. 2. 활동기 (1975년 ~ 1983년)
1975년, 싱글 '안녕 내 친구'로 폴리도르 (현 유니버설 뮤직 합동회사)에서 메이저 데뷔했다.[3] 데뷔곡은 친구의 죽음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이후 주로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1983년까지 7장의 앨범과 4장의 싱글을 발표했다.[3] 앨범의 편곡과 연주는 주로 어쿠스틱 기타 명인 이시카와 타카히코가 맡았다. 소속 레이블은 해저극장이었다.1980년에는 폴리도르에서 워너 파이오니아(현 워너 뮤직 재팬)로 이적했다.
1983년 11월 30일, 앨범 『늑대 소년 wolf boy』를 발매했다. 같은 해 12월 상순의 전진좌 극장 6일간 공연 및 12월 25일 · 26일의 신주쿠 로프트에서의 라이브를 마지막으로 음악 활동을 중단했다.[3][11]
1980년 11월 20일[15]부터 11월 24일까지 이케부쿠로의 미쓰코시 뒤 공터에 500명 수용 규모의 흑색 텐트를 치고 콘서트 "야행"을 개최했다. 도쿄도 내 공원 등에 텐트 극장 설치 허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개최하게 되었다. 이 콘서트 실현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청춘의 일본 열도 ~ 모리타 도지 라스트 왈츠 ~』가 도쿄 12채널(현 TV 도쿄)에서 방송되었다. 모리타는 이 프로그램에서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도쿄에 텐트를 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우리 콘서트가 불가능해져 가는 모습을, 우리 노래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봐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14]
2. 3. 활동 중단 이후 (1983년 ~ 2018년)
1993년 드라마 '고교교사'의 주제가로 '우리들의 실패'가 사용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3] 각본가인 노지마 신지는 고등학교 때 친구 손에 끌려 갔던 라이브 클럽에서 모리타 도지를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극장판 '고교교사'에서도 '예를 들어 우리가 죽어버린다면'을 주제가로 사용했다.이후 베스트 앨범이 나오고 초기 앨범들이 CD로 발매되면서 새로운 팬들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모리타 도지 본인은 이런 반응에 대해 현재 주부생활에 전념하고 있으며 음악활동은 생각이 없다고 발언하고 이후 완전히 침묵했다. 2003년에 '고교교사'가 리메이크되면서 다시 '우리들의 실패'가 주제곡으로 쓰였다. 베스트 앨범이 다시 발매되고 치치요 하하요(「チィチィよ ハァハァよ」/ 나홀로 여행(「ひとり遊び」)의 가사를 일부 바꾼 버전을 새로 녹음하여 포함시켰다. 그리고 다시 음악활동을 중지했다.
2010년에는 지인의 죽음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또 지병이 있어 활동이 곤란한 상황임을 밝힌 바 있다.
2018년 4월 24일 새벽, 심부전으로[7] 자택에서 사망했다.[8][10][9] 유족으로부터 일본음악저작권협회(JASRAC)에 연락이 갔고[7], 같은 해 6월 1일 발행된 일본음악저작권협회(JASRAC) 회보에 부고가 게재되면서 사망이 알려졌다.[7] 활동 휴지 후에는 주부로서 살고 있었다.[9] 음악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건강이 악화되어 2017년부터 입퇴원을 반복했고,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공표할 생각은 없었다"고 보도되었다.[10]
3. 음악 스타일
모리타 도지는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한 포크 사운드를 추구했다. 그의 음악은 내면의 고독, 슬픔, 상실감을 표현한 가사와 과묵하고 독특한 세계관이 특징이며,[3]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담고 있다.
모리타 도지의 앨범 편곡과 연주는 주로 어쿠스틱 기타 연주자 이시카와 타카히코(石川鷹彦)가 맡았다.[3] 그의 곡들은 여러 아티스트에 의해 커버되었는데, 대표곡인 "우리들의 실패"는 YMCK, chee 등이 커버했고, mondialito는 프랑스어 버전("notre echec")으로 불렀다. "예를 들어 내가 죽는다면"은 eastern youth, 야마나카 사와오, 나카무라 아츠 등이 커버했으며, JOJO 히로시게(비상계단)는 "슬랩 해피 험프리"라는 노이즈 커버를 선보였다.
4. 작품 목록
동일 음원은 1982년 11월 발매된 앨범 『야상곡』에는 수록되지 않아 미발매되었으며, 이후 「우울 데스」 (『늑대 소년 wolf boy』 수록)로 편곡 및 가사를 일부 변경하여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