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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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노자는 러시아 출신의 한국학 연구자이자 사회 비평가로, 본래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1997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하여 한국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가야 연맹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강의했으며,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통해 한국 사회의 진보적 담론을 펼쳤으며, 한국 사회의 국수주의, 쇼비니즘, 파시즘을 비판하는 등 사회 현안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표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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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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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티코노프 블라디미르 |
러시아어 본명 | Влади́мир Миха́йлович Ти́хонов |
출생일 | 1973년 2월 5일 |
출생지 | 소비에트 연방 레닌그라드 |
국적 | 대한민국 |
다른 이름 | Volodja |
직업 | |
직업 | 대학 교수 역사 가 언론인 평론가 |
소속 | 오슬로 대학교 교수 |
웹사이트 |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인문과학 박사 홈페이지 인문과학 박사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교수 블로그 |
정치 | |
정당 | 노동당 적색당 (노르웨이) |
당내 직책 | 대표최고위원 겸 당무위원 |
학력 | |
학력 | 레닌그라드 대학교 조선학과 (학사, 1993)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문학 (석사, 1994) 경희대학교 철학과 철학 석사 모스크바 대학교 인문과학 (박사, 1996) |
개인 정보 | |
배우자 | 백명정 (1971년 출생, 바이올리니스트) |
자녀 | 슬하 1남 1녀 |
기타 | |
종교 | 불교 |
로마자 표기 | Bak Noja |
2. 생애
박노자(Pak Noja)는 1973년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출생 당시 이름은 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블라디미르 티호노프ru였다.[6] 고등학교 시절 한국 영화와 고전 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사 연구를 결심하게 되었다.[4] 16세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한국학과에 입학하였고, 1991년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하여 서울에서 약 3개월간 머물렀다.[4]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가야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7]
박사 학위 과정 중이던 1992년, 당시 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백명정(1971년생)을 만나 1995년 결혼하였다. 1997년 대한민국으로 이주하였고, 2001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한국 이름인 박노자로 개명하였다.[4]
한국 문학 작품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였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한국 문화와 정치에 대한 여러 인문사회학 서적을 저술하였다. 그의 저술 활동은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어 때로는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를 한국의 영향력 있는 진보 지식인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8]
한국 경희대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강의하였으며,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 문화학과 동양어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4]
2. 1. 가족 및 초기 생애
1973년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대계 아버지 모이세이 미하일 시프(1937년생)와 러시아인 어머니 나데즈다 티코노바(1939년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이름은 Владимир Михайлович Тихонов|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티호노프ru였다.[6]할아버지는 엔지니어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군에 의한 레닌그라드 포위전 당시인 1942년 초반에 아사했다. 아버지는 화학 엔지니어였던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소련군 미사일 부대에서 복무한 후, 전기공학을 전공하여 평생 발전소 변전기 설계를 했다. 그러나 1991년 소련 붕괴 후 설계연구소가 폐업하면서 실업자가 되었고, 연금 생활을 하다가 2009년 사망했다. 어머니는 경제계획전문가 아버지와 의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간호전문대학에서 미생물학을 가르쳤으나, 소련 붕괴 후 대학이 폐업하면서 연금 생활자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천문학과 화학에 관심이 많았으나, 10대에 접어들면서 지질학과 고고학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소년공산당 문화센터 산하의 고고학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후에는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소련 남부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 계곡에서 스키타이 계통의 고분군 발굴에 참여했다. 박노자는 이때의 경험이 훗날 박사학위 논문 자료 수집 및 유물 분석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마야 도시국가 사회 구조 연구를 취미로 삼았으며,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 이론을 적용해보려 시도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많이 읽으며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한국 영화와 고전 문학에 매료되어 한국사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4]
16세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한국학과에 입학했으며, 1991년 교환학생으로 대한민국을 처음 방문하여 서울에서 약 3개월간 머물렀다.[4] 학사 학위 취득 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가야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7]
박사 과정 중이던 1992년, 당시 레닌그라드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바이올린 연주자 백명정(1971년생)을 만나 1995년 결혼했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1997년 대한민국으로 이주했으며, 2001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이름을 박노자로 개명했다.[4]
2. 2. 학력 및 연구 활동
고등학교 졸업 후, 박노자는 본래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고자 티베트학과 진학을 희망했으나, 경쟁률이 높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에 대한 관심으로 조선사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사학과 입학 조건 중 하나인 '1년 간 평양에서의 조선어 실습'이 다소 고립적이고 지루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평양 생활에 대한 호기심으로 198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동방학부 조선사학과에 입학하여 1993년 석사 학위로 졸업했다.[4]1991년에는 교환학생으로 대한민국을 처음 방문하여 약 3개월간 서울에 머물렀으며,[4] 이후 한국 유학을 통해 고려대학교 대학원 노어노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유학 중이던 시기 조국인 소련의 해체를 경험하며 학술 연구 환경의 위축과 연구자 공동체의 붕괴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로 돌아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대학원 한국고대사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는 일본서기와 고대 씨족 계보를 집성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그리고 고고학 발굴 성과 등을 토대로 5세기부터 562년 신라에 병합되기 이전까지의 대가야(고령군), 아라가야(함안군), 가야(김해시) 등 가야의 외교 수행 능력, 전쟁 수행 능력, 대민 동원 능력 등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하여 1996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7]
박사 학위 취득 후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1996년부터 경희대학교에서 러시아어 전임강사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 문학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했으며, 한국 사회와 문화, 정치를 이방인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비평한 여러 인문사회학 서적을 저술했다. 특히 그의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대한민국의 한겨레신문 등에 꾸준히 칼럼을 기고하며 진보적 담론 형성에 기여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는 한국 사회 내에서 영향력 있는 진보 지식인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그의 날카로운 비판은 때때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8]
2000년에는 노르웨이로 이주하여 오슬로 대학교 동양학과(현 문화학과 동아시아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현재까지 한국학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정치, 사회, 역사, 사상, 종교 등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4]
2. 3. 결혼 및 귀화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밟던 중인 1992년, 당시 러시아 레닌그라드 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백명정(1971년 ~ )을 만나 1995년에 결혼하였다. 이후 1997년 대한민국으로 이주하였으며,[4] 2001년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며 귀화하였다.[4]귀화 당시 러시아어 성명인 '''티코노프 블라디미르'''를 공식 성명으로 그대로 등록하였다. 이는 박씨 문중의 양해를 얻어야 하는 등의 문제로 박씨 성과 본관을 새로 만드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24][25]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한국어 이름인 박노자(朴露子)로 널리 알려져 활동하고 있다.
2. 4. 귀화 이후 경력
대한민국으로 귀화[4] 이후, 박노자는 한국어를 사용하여 다수의 책과 기고문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 각 분야 전반에 퍼져 있는 나치즘이나 파시즘 경향을 좌익적 시각에서 주로 비판했다. 한겨레 21에 칼럼을 연재하며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그의 저술 활동은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진보 지식인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날카로운 비판으로 한국 사회 내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8]경희대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강의했으며[4],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 대학 문화학과 동양어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4] 잡지 《아웃사이더》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3. 주요 관점 및 활동
박노자는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점과 국제 정세에 대해 진보적인 시각에서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을 꾸준히 제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의 주요 비판 대상은 대한민국 사회 내부에 만연한 국수주의와 권위주의이며, 동시에 변화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의 위치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하위 문단에서 다룬다.
3. 1. 한국 사회 비판
1990년대 후반 이후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국수주의, 쇼비니즘, 파시즘을 비판해왔다. 특히 박용만 암살 사건, 박원문의 사망, 박헌영에 대한 평가 등을 예로 들며, 대한민국 사회에서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파시즘의 폭력성을 지적했다.[27]2008년 말에는 통일 신라를 바라보는 민족주의적 시각을 비판적으로 평가했으며,[28] 대한민국 사회가 장기적으로 보수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없다고 보았다.[29]
3. 2. 국제 정세에 대한 입장
박노자는 소비에트 연방을 '사회주의'가 아닌, 국가가 국내외 민간자본을 모두 대체한 특수한 형태의 개발주의 사회, 즉 '붉은 개발주의'로 규정한다.[9]2009년에는 '한국 경제가 5~10년 안에 중국 경제권에 편입될 것'이라고 예측했으며, 이에 대한 좌파 진영의 비판에 대해 '불가피한 상황'을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10] 중국의 인권 운동가 류샤오보의 노벨 평화상 수상과 관련해서는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류샤오보를 '서구 국가들의 추종자'이자 '중국에서의 식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하며, 중국의 민주화는 엘리트뿐 아니라 노동 계층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류샤오보의 헌장 08이 '입법 민주주의'와 '사유 재산 보호'를 지지하는 점을 들어, 그가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중국을 원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진정한 개혁은 노동 계급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11]
한편,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2019년 칼럼에서 그는 중국의 위구르족 정책이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위구르족에 대한 정책은 한국인들이 일제 강점기 말기에 경험했던 민족 말살 조치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하며 생존권 위협 문제를 제기했다.[12]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침략 행위를 비판하고, 일부 한국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러시아 지지 태도를 비판했다. 한겨레 칼럼을 통해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침략에 맞서 싸우는 모습에서 보여주는 용기는 오랫동안 러시아인들에게도 영감을 줄 것이다!"라며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지지했다.[13] 그는 한국이 우크라이나 난민을 수용하는 데는 찬성하지만, 한국이 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에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14]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서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같은 전쟁범죄자로 규정하며 처벌을 주장했다. 또한 이스라엘이 국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만한 집단학살을 저지르는 범죄 국가라고 강하게 비난했다.[15] 그러나 동시에 한국의 일부 좌파들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무분별하게 지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극우단체 하마스를 무분별하게 지지하는 것이 과연 평화 창출에 도움이 될까요?”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16]
4. 저술 활동
박노자는 한국 문학 작품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였으며, 한국의 문화와 정치에 대한 여러 인문학 및 사회학 서적을 저술하였다. 특히 베스트셀러인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포함한 그의 저술 활동은 그를 한국 사회의 영향력 있는 진보 지식인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저작들은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어 많은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8] 그는 경희대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쳤고, 현재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에서 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4]
4. 1. 저서
- 《전쟁 이후의 세계》, 한겨레출판, 2024년 02월
- 《러시아 혁명사 강의》, 나무연필, 2017년 9월
- 《주식회사 대한민국》, 한겨레출판, 2016년 6월
- 《비굴의 시대》, 한겨레출판, 2014년 12월
-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한겨레출판, 2012년 2월
- 《붓다를 죽인 부처》, 인물과사상사, 2011년 10월
- 《거꾸로 보는 고대사》, 한겨레출판, 2010년 9월
- 《씩씩한 남자 만들기》, 푸른역사, 2009년 9월
-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한겨레출판, 2009년 6월
- 《박노자의 만감일기》, 인물과사상사, 2008년 1월
-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한겨레출판, 2007년 5월
- 《당신들의 대한민국 2》, 한겨레출판, 2006년 1월[17]
-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 인물과사상사, 2005년 7월
- 《우승優勝 劣敗열패의 신화》, 한겨레출판, 2005년 4월
- 《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2005)
-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2005)
- 《젊은 날의 깨달음》 (2005)
- 《불안의 시대 고통의 한복판에서》 (2005)
- 《하얀 가면의 제국》, 한겨레출판, 2003년 12월
- 《나를 배반한 역사》, 인물과사상사, 2003년 4월[8]
- 《우리 역사 최전선》 (2003)
- 《탈영자들의 기념비》 (2003)
- 《아웃사이더 6, 8, 10, 12, 13》 (2002~2003)
-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한겨레출판, 2002년 6월[8]
- 《당신들의 대한민국 1》, 한겨레출판, 2001년 12월[17][18]
- 《레닌과 미래의 혁명》 (공저)
4. 2. 공저
- 《발자국을 포개다》
- 《좌파하라》
- 《개념의 번역과 창조》
-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
- 《문명 안으로》
- 《러시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전통, 근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권력》
- 《리얼 진보 Real Progressive》
- 《후퇴하는 민주주의》
- 《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
- 《레닌과 미래의 혁명》
-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에 지켜야 할 자존심》
-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일제 식민지 시기 새로 읽기》
-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 《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 《젊은 날의 깨달음》
-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
- 《근대 계몽기 지식 개념의 수용과 그 변용》
- 《7인 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 《아웃사이더 16》
- 《아웃사이더 15》
- 《우리 역사 최전선》
- 《아웃사이더 14》
- 《아웃사이더 13》
- 《아웃사이더 12》
- 《탈영자들의 기념비》
- 《아웃사이더 11》
- 《아웃사이더 10》
- 《아웃사이더 09》
- 《아웃사이더 08》
- 《아웃사이더 07》
- 《아웃사이더 06》
- 《아웃사이더 05》
- 《박노자의 만감일기》(朴露子の万感日記일본어)
- 《당신들의 대한민국》(あなたたちの大韓民国일본어)
- 《당신들의 대한민국 2》(あなたたちの大韓民国 2일본어)
- 《우승열패의 신화》(選手権列敗の神話일본어)
- 《하얀 가면의 제국》(白いマスクの帝国일본어)
-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左に、もっと左に일본어) - 당신들의 대한민국 3 (あなたたちの大韓民国 3일본어)
- 《레닌과 미래의 혁명》(レーニンと未来の革命일본어)
4. 3. 해제
나는 사회주의자다는 2011년 8월 교양인 출판사에서 임경화가 엮어 출간했다.5. 역대 선거 결과
(비례대표 6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