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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하치헤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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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도 하치헤이시는 다이라노 다카모치의 후손인 다이라노 요시부미를 시조로 하는 무가 집단으로, 가즈사, 지바, 소마 등 반도 지역에 세력을 확장했다. 8개의 주요 씨족을 지칭하며, 시대에 따라 그 구성이 달라졌다. 겐페이 쟁란에서 가마쿠라 막부 창설에 기여하여 고케닌 지위를 확립했으며, 지치부 씨, 가즈사 씨, 지바 씨, 사가미 헤이시 등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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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가 씨족 - 반도 헤이시
    반도 헤이시는 간무 천황의 후손인 다이라노 다카모치가 가즈사 지방에 정착하여 세력을 키우고 무사단을 조직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세 헤이시 등 여러 분파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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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하치헤이시
씨족 정보
본성다이라노 아손(平朝臣)
가조다이라노 요시부미(平良文)
종별황별(皇別)
근거지가즈사
시모우사
무사시
사가미 등
주요 인물다이라노 요시부미
다이라노 다다요리
하타케야마 시게타다
지류보소 헤이시(지바, 가즈사, 소마)
지치부 헤이시(지치부, 하타케야마)
사가미 헤이시(미우라, 가마쿠라, 나가오, 오오바, 가지와라, 도이) 등

2. 역사

겐페이 쟁란에서 헤이케와 대치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는 초기에는 반도 하치헤이시 씨족들과 적대 관계에 있었지만, 항쟁을 거치면서 사가미, 이즈, 무사시 등지의 반도 하치헤이시들이 가마쿠라 막부 창설에 참여하여 고케닌 지위를 확립했다.[4]

다이라노 요시부미의 후손은 다다요리의 아들 마사쓰네를 시조로 하는 지치부 씨(秩父氏)와 여기서 파생된 지치부 헤이시(하타케야마 · 가와고에 · 도요시마 · 가사이・ 에도 ・ 오야마다 등), 다다쓰네를 시조로 하는 가즈사 씨와 지바 씨 계통의 보소 헤이시(소마 등), 가마쿠라 씨(鎌倉氏)를 중심으로 사가미 전역에 퍼진 사가미 헤이시(나카무라, 도이, 미우라, 가마쿠라, 나가오, 오오바, 가지와라)로 나뉜다.[5]

2. 1. 초기 발전

쇼타이 원년(898년)에 다이라노 다카모치(平高望)가 가즈사노스케(上総介)로 임명되어 아들들과 함께 부임지로 내려갔다. 이들은 가즈사를 기반으로 세력을 넓혀 반도 지역에 무사단을 형성했고,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将門),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 등을 배출하는 무가 헤이시의 기초를 다졌다.[2]

다카모치의 아들 다이라노 요시부미의 자손들은 반도 각지에 흩어져 재지 세력으로 뿌리내렸고, 가즈사, 지바, 소마, 미우라, 가지와라, 지치부, 하타케야마 등의 무가가 되었다. 이 요시후미류를 특히 '''반도 하치헤이시'''라고 부른다.[2]

'하치헤이시'(八平氏)라고 불리지만, 시대에 따라 우세한 씨족이 바뀌었기 때문에 '8'이라는 숫자에 어떤 씨족을 꼽을지는 다양하다. 일반적으로는 지바, 가즈사, 미우라, 도이, 지치부, 오오바, 가지와라, 나가오 여덟 집안을 많이 거론한다.[2]

간무 헤이시는 친왕임국 제도 아래서 친왕 대신 실무를 맡아보는 하급 귀족으로 활동하며, 일본 전국에서 유력 재청관인(향리)이자 군사귀족(무가귀족)이 되었다. 다이라 씨는 '혈통'과 '귀족' 지위를 모두 갖춘 격이 다른 무가였지만, 세이와 겐지후지와라 북가처럼 중앙 권력을 장악하거나 막부를 세우지는 못했다. 그러나 훗날 반도 헤이시의 서류인 이세 헤이시다이라노 기요모리 대에 중앙 정권을 좌지우지하게 된다.[3]

2. 2. 반도 하치헤이시

쇼타이 원년(898년)에 다이라노 다카모치(平高望)가 가즈사노스케(上総介)로 임명되어 아들들을 데리고 부임지로 내려갔다. 이들은 가즈사를 바탕으로 히타치노다이죠(常陸大掾) 등을 맡으며 히타치나 시모우사 등에도 세력을 넓혀 반도 지역에 무사단을 형성했다. 훗날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将門),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를 배출하는 무가 헤이시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2]

다카모치의 측실 소생인 다이라노 요시부미도 내려와 그 자손이 반도 각지에 흩어져 재지 세력으로써 뿌리를 내렸다. 훗날 가즈사(上総) ・지바(千葉)・소마(相馬)・미우라(三浦)・가지와라(梶原)・지치부(秩父)・하타케야마(畠山) 등의 무가가 되었다. 반도 헤이시 안에서도 특히 이 요시후미류를 가리켜 일본 학계에서는 '''반도 하치헤이시'''라고 부르고 있다.

'하치헤이시'(八平氏)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시대에 따라 우세했던 씨족들이 항상 바뀌었으므로 '하치'(8)이라는 숫자 안에 어떤 씨족을 꼽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시대별로 다양하다. 일반적으로는 지바 ・ 가즈사 ・ 미우라 ・ 도이(土肥) ・ 지치부 ・ 오오바(大庭) ・ 가지와라 ・ 나가오(長尾) 이렇게 여덟 집안을 많이 거론한다.[2] 무로마치 시대에 번성한 간토 하치야카타(関東八屋形)와는 서로 무관하며, 양쪽 모두 공통적으로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지바 씨뿐이다.

간무 헤이시는 친왕임국(親王任国) 제도 아래서 친왕(왕자) 대신 실무를 맡아 보는 친왕의 혈족 · 하급 귀족으로서 활동하며 반도뿐만 아니라 일본 전국에서 유력 재청관인(在庁官人, 향리)이 되었다. 이들은 무가로서 현지에 세력을 가진 군사귀족 (무가귀족)으로서의 일면도 아울러 가지게 된다. 다이라 씨는 일본의 여느 무가 중에서도 격이 다른 존재였다. 다만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경우처럼, 같은 천황의 혈족인 세이와 겐지(清和源氏) 일문이나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 일문에 공순하여 그 노토(가신)가 되거나, 혹은 중앙 권력에 저항하다 추토당하기도 했다.[3]

겐페이 쟁란에서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와 초기에는 적대하는 씨족이 많았지만, 항쟁을 거치면서, 사가미 · 이즈 · 무사시 등의 반도 하치헤이시들이 많이 참가했다. 지바 쓰네타네(千葉常胤), 미우라 요시아키(三浦義明), 하타케야마 시게타다(畠山重忠) 등이 각지를 돌며 전투를 벌여, 요리토모가 개창한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의 창설에 힘을 보탰고, 고케닌(御家人)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한다.[4]

다이라노 요시부미를 시조로 하는 반도 하치헤이시는 다다요리(忠頼)의 아들 마사쓰네(将恒)를 시조로 하는 지치부 씨(秩父氏)와 그로부터 파생된 지치부 헤이시(하타케야마 · 가와고에 · 도요시마 · 가사이・ 에도 ・ 오야마다 등), 다다쓰네를 시조로 하는 가즈사 씨와 지바 씨의 계파는 보소 헤이시(소마 등), 사가미 전역에 번성한 가마쿠라 씨(鎌倉氏)를 중심으로 하는 사가미 헤이시(나카무라, 도이, 미우라, 가마쿠라, 나가오, 오오바, 가지와라)로 이루어진다.[5]

2. 3. 겐페이 전쟁과 가마쿠라 막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겐페이 전쟁에서 헤이케와 대치했을 때, 초기에는 반도 하치헤이시 씨족들의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전쟁을 거치면서 사가미, 이즈, 무사시 등의 반도 하치헤이시들이 요리토모에게 협력했다. 지바 쓰네타네, 미우라 요시아키, 하타케야마 시게타다, 에도 시게나가, 가지와라노 가게토키 등이 각지에서 전투를 벌이며 요리토모가 가마쿠라 막부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4] 이들은 그 공으로 고케닌 지위를 얻었다.[4]

3. 주요 가문

반도 하치헤이시의 주요 가문으로는 다이라노 다카모치(平高望)의 직계와 방계 가문들이 있다. 쇼타이 (昌泰) 원년(898년), 다카모치는 가즈사노스케(上総介)로 임명되어 아들들과 함께 가즈사 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가즈사를 중심으로 히타치, 시모우사 등에도 세력을 넓혀 반도 지역에 무사단을 형성했다. 다카모치 왕의 직계 가문에서는 훗날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将門)나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가 나왔다. 다카모치의 측실 소생인 다이라노 요시부미의 후손들은 반도 각지에 흩어져 재지 세력으로 뿌리내렸으며, 이들을 반도 하치헤이시라고 부른다.

3. 1. 다카모치 왕 계통

쇼타이 (昌泰) 원년(898년)에 다이라노 다카모치(平高望)가 가즈사노스케(上総介)로 임명되어 아들들과 함께 부임지로 내려갔다. 이들은 가즈사를 기반으로 세력을 넓혀 무사단을 형성했고,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将門),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를 배출하는 무가 헤이시의 기초를 다졌다.[2] 다카모치의 측실 소생인 다이라노 요시부미(平良文)도 반도에 내려와 자손들이 각지에 뿌리내렸는데, 이 요시부미류를 '''반도 하치헤이시'''라고 부른다.[2]

'하치헤이시'(八平氏)라고 불리지만, 시대에 따라 우세한 씨족이 바뀌었기 때문에 '8'이라는 숫자 안에 어떤 씨족을 꼽을지는 다양하다. 일반적으로는 지바(千葉) ・ 가즈사(上総) ・ 미우라(三浦) ・ 도이(土肥) ・ 지치부(秩父) ・ 오오바(大庭) ・ 가지와라(梶原) ・ 나가오(長尾) 이렇게 여덟 집안을 많이 거론한다.[2]

간무 헤이시는 친왕임국 제도 아래서 친왕 대신 실무를 맡아 보는 하급 귀족으로 활동하며, 유력 재청관인(향리)이자 군사귀족 (무가귀족)으로서의 일면도 가지고 있었다. 세이와 겐지(清和源氏)나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와 달리 중앙 권력을 장악하거나 막부를 세우지는 못했지만, 훗날 서류(庶流) 계통인 이세 헤이시(伊勢平氏)가 중앙 정권을 좌지우지하게 된다.[3]

겐페이 쟁란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와 초기에는 적대하는 씨족이 많았지만, 항쟁을 거치면서 사가미 · 이즈 · 무사시 등의 반도 하치헤이시들이 많이 참가하여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창설에 힘을 보탰고, 고케닌(御家人)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4]

다이라노 요시부미를 시조로 하는 반도 하치헤이시는 다다요리(忠頼)의 아들 마사쓰네(将恒)를 시조로 하는 지치부 씨(秩父氏)와 그로부터 파생된 지치부 헤이시, 다다쓰네(忠常)를 시조로 하는 가즈사 씨와 지바 씨 계파, 가마쿠라 씨(鎌倉氏)를 중심으로 하는 사가미 헤이시로 이루어진다.[5]

3. 2. 요시부미 계통 (반도 하치헤이시)

쇼타이 원년(898년)에 다이라노 다카모치(平高望)의 측실 소생인 다이라노 요시부미(平良文)가 반도(간토) 지역으로 내려와 그 자손들이 각지에 흩어져 토착 세력으로 뿌리내렸다. 이들은 훗날 가즈사(上総), 지바(千葉), 소마(相馬), 미우라(三浦), 가지와라(梶原), 지치부(秩父), 하타케야마(畠山) 등의 무가가 되었다.[2] 이 요시부미 계통을 특히 '''반도 하치헤이시'''라고 부른다.

'하치헤이시'(八平氏)라고 하지만, 시대에 따라 유력한 씨족이 바뀌었기 때문에 '8'이라는 숫자에 어떤 씨족이 포함되는지는 다양하다. 일반적으로는 지바, 가즈사, 미우라, 도이(土肥), 지치부, 오바(大庭), 가지와라, 나가오(長尾)의 여덟 집안을 꼽는다.[2] 무로마치 시대의 간토 하치야카타(関東八屋形)와 반도 하치헤이시는 무관하며, 양쪽 모두에 포함되는 것은 지바 씨뿐이다.

겐페이 쟁란에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는 초기에는 헤이케와 대립하는 반도 하치헤이시 씨족들과 적대했지만, 항쟁을 거치면서 사가미, 이즈, 무사시 등의 많은 반도 하치헤이시들이 요리토모 측에 가담했다. 지바 쓰네타네(千葉常胤), 미우라 요시아키(三浦義明), 하타케야마 시게타다(畠山重忠), 에도 시게나가(江戸重長), 가지와라노 가게토키(梶原景時) 등이 각지에서 전투를 벌여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창설에 공헌했고, 고케닌(御家人) 지위를 확립했다.[4]

다이라노 요시부미를 시조로 하는 반도 하치헤이시는 다다요리(忠頼)의 아들 마사쓰네(将恒,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딸이 생모)를 시조로 하는 지치부 씨(秩父氏)와 그 분파인 지치부 헤이시(하타케야마, 가와고에, 도요시마, 가사이, 에도, 오야마다 등), 다다쓰네를 시조로 하는 가즈사 씨와 지바 씨 계파인 보소 헤이시(소마 등), 사가미 전역에 번성한 가마쿠라 씨(鎌倉氏)를 중심으로 하는 사가미 헤이시(나카무라, 도이, 미우라, 가마쿠라, 나가오, 오바, 가지와라)로 구성된다.[5]

4. 계보

반도 하치헤이시는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여기서는 『계도찬요』와 『간무 헤이시 제류 계도』에 따라 정리한다.

시조분파
다카모치 왕
다이라노 요시부미(무라오카 고로)
다이라노 다다요리
다이라노 다다미쓰
다이라노 다다쓰네(보소 헤이시)
다이라노 마사쓰네(지치부 헤이시)
다이라노 요리타카
다이라노 다다미치
다이라노 쓰네마사
다이라노 다케모토(지치부 씨)지치부 씨
다이라노 쓰네토
미우라 다메미치(미우라 씨)미우라 씨
가마쿠라 아키나(가마쿠라 씨)가마쿠라 씨
다이라노 쓰네나가
지치부 다케쓰나
다이라노 쓰네무네
미우라 다메쓰구
가마쿠라 가게나리
가마쿠라 가게무라
가마쿠라 가게미치
지바 쓰네카네(지바 씨)지바 씨
소마 쓰네하루(가즈사 씨)가즈사 씨
나카무라 무네히라(나카무라 씨)나카무라 씨
미우라 요시아키
가마쿠라 가게마사(가게마사라고도 함)
가마쿠라 가게아키
가지와라노 가게히사(가지와라 씨)가지와라 씨
지바 쓰네시게
사가 쓰네즈미
도이 사네히라(도이 씨)도이 씨
가마쿠라 가게쓰구
오오바 가게무네(오오바 씨)오오바 씨
나가오 가게히로(나가오 씨)나가오 씨



몇몇 자료에서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 『도미오카 가본 도이 가계도』: 나카무라 무네히라를 다이라노 요시카네의 자손으로 기록.
  • 『지바 대계도』: 다이라노 쓰네토를 다이라노 다다히라의 아들로 기록.
  • 『만쇼지 차상계도』: 미우라 씨의 시조를 다이라노 요시카네로 기록.
  • 미우라 씨 가계도 중 일부는 미우라 다메미치에 대한 기록이 없음.
  • 나가오 씨 시조의 이름은 나가오 가게유키 또는 가게히로 등으로 불분명.
  • 무로마치 시대 『손피빈먀쿠』: 오오바 가게치카, 오오바 가게치카, 가지와라노 가게토키 등을 모두 가마쿠라 가게마사의 3세손으로 기록.

5. 평가 및 영향

반도 하치헤이시는 간무 천황의 자손인 다이라노 요시부미(平良文)를 시조로 하는 다이라 씨의 일족으로, 간토 지방에 기반을 둔 무사 가문들을 말한다. '하치'(八)는 숫자 8을 의미하지만, 시대에 따라 유력한 씨족이 바뀌었기 때문에 8개의 가문이 고정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지바(千葉), 가즈사(上総), 미우라(三浦), 도이(土肥), 지치부(秩父), 오오바(大庭), 가지와라(梶原), 나가오(長尾)의 여덟 가문을 꼽는다.[2]

이들은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걸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 창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겐페이 쟁란에서 요리토모와 대립하기도 했지만, 많은 반도 하치헤이시들이 요리토모에게 협력하여 고케닌(御家人)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4] 지바 쓰네타네(千葉常胤), 미우라 요시아키(三浦義明), 하타케야마 시게타다(畠山重忠)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반도 하치헤이시는 다이라노 요시부미(平良文)의 자손들을 중심으로 여러 분파로 나뉘었다. 다다요리(忠頼)의 아들 마사쓰네(将恒)를 시조로 하는 지치부 씨(秩父氏)와 그 분파인 지치부 헤이시(하타케야마 등), 다다쓰네(忠常)를 시조로 하는 가즈사 씨와 지바 씨 계통의 보소 헤이시(소마 등), 가마쿠라 씨(鎌倉氏)를 중심으로 하는 사가미 헤이시(미우라, 오오바, 가지와라 등)가 대표적이다.[5]

간무 헤이시는 친왕임국 제도 아래서 친왕(왕자)을 대신해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 귀족이자 유력한 향리 세력이었다. 이들은 무사로서의 성격도 함께 가지면서 군사 귀족으로 성장했다. 다이라 씨는 '혈통'과 '귀족'이라는 지위를 모두 갖춘 특별한 무가였지만, 세이와 겐지(清和源氏)나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처럼 중앙 권력을 장악하거나 막부를 세우지는 못했다. 그러나 반도 헤이시의 서류인 이세 헤이시(伊勢平氏)가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 시대에 중앙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3]

참조

[1] 서적 姓氏家系大辞典 第二巻
[2] 웹사이트 坂東八平氏(ばんどうはちへいし)とは - コトバンク https://kotobank.jp/[...]
[3] 웹사이트 幕府を創った相模の武士たち(鎌倉御家人の誕生) http://www.tamagawa.[...] 玉川学園・玉川大学・協同 多賀歴史研究所
[4] 웹사이트 幕府を創った相模の武士たち(鎌倉御家人の誕生) http://www.tamagawa.[...] 玉川学園・玉川大学・協同 多賀歴史研究所
[5] 서적 손피빈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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