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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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방술은 '방기'와 '술수'의 결합으로, 《한서》 예문지에 처음 등장하며, 일이나 사물에 대한 해결책을 의미하는 방기와 관측을 통한 예측을 기본으로 하는 술수로 구분된다. 방기는 의술, 성생활, 불로장생 등을 다루며 생명과 관련된 고대 의학과 유사한 역할을 하였고, 술수는 천문, 역법, 오행, 점, 상술 등을 포함한다. 방술은 도교의 신선 사상과 음양오행설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으며, 방사(方士)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연구를 지속했다. 방술은 천문, 오행, 역산 등의 주요 분야를 가지며, 현대 과학과 유사한 측면을 보이며 한의학으로 이어져 내려오기도 한다.
방술은 '방기(方技)'와 '술수(術數)'의 결합어로, 《한서》 〈예문지(藝文志)〉에 처음 등장한다.
2. 방술의 의미와 기원
방기(方技)는 일이나 사물에 대해 정확히 들어맞는 해결책이라는 뜻을 지니며, 의술에 관한 처방을 다루는 경방(經方), 성생활에 관한 방중(房中), 불로장생이 되기 위한 방법을 다루는 신선(神仙)이 포함된다. 이처럼 방기는 대체로 생명에 관련되어 있으며, 고대의 의학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관측을 통한 예측을 기본으로 하는 기술들을 술수(術數)라 부르며, 줄여서 술(術)이라고 한다. 술수에는 우주의 구조와 천체의 운동을 연구하는 천문, 시간을 구분하는 체계를 다루는 역법, 우주 만물의 변화를 다섯 가지로 압축하여 설명하는 오행 등이 포함된다. 또한, 《주역》을 사용하여 치는 점과 거북점을 이르는 시귀(蓍龜), 여러 일의 상징을 정리하여 선악(善惡)의 징후를 따지는 잡점(雜占), 수상과 관상 등의 상술(相術)을 포함하는 형법(形法)등이 해당된다.
2. 1. 방기(方技)
방(方)은 일이나 사물에 대해 정확히 들어맞는 해결책이라는 뜻을 지니며, 의술에 관한 처방을 다루는 경방(經方), 성생활에 관한 방중(房中), 불로장생이 되기 위한 방법을 다루는 신선(神仙)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방기는 대체로 생명에 관련되어 있으며, 고대의 의학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2. 2. 술수(術數)
관측을 통한 예측을 기본으로 하는 기술들을 '''술수(術數)'''라 부르며, 줄여서 술(術)이라고 한다. 술수에는 우주의 구조와 천체의 운동을 연구하는 천문, 시간을 구분하는 체계를 다루는 역법, 우주 만물의 변화를 다섯 가지로 압축하여 설명하는 오행 등이 포함된다. 또한, 《주역》을 사용하여 치는 점과 거북점을 이르는 시귀(蓍龜), 여러 일의 상징을 정리하여 선악(善惡)의 징후를 따지는 잡점(雜占), 수상과 관상 등의 상술(相術)을 포함하는 형법(形法)등이 해당된다.
3. 방술의 역사
3. 1. 초기 방술: 신선 사상과 도교의 영향
방술은 도교와 함께 기원전 3세기 경 중국 산둥성 부근에서 발생하였으며, 초기의 방술은 많은 부분에서 도교의 신선사상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1]
도교에서 이 당시 중국 전역에 수많은 방사들이 나타났는데, 권력자들과 부유한 자들은 이런 방사들을 자신의 휘하로 불러들여 신선과 불로장생의 염원을 달성하려 했다. 진시황이 동남동녀 수천과 막대한 재물을 주고 불로초를 구해오라 명한 서복 역시 진나라의 방사였다. 전근대 동아시아에는 이미 후에 방술로 분류되는 천문과 역산 등의 분야들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초기의 방술은 도가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서양의 연금술과 같은 면모를 지녔다.
3. 2. 후기 방술: 음양오행설과 학문적 체계화
제자백가 중 음양가(陰陽家)의 대표적인 인물인 제나라 추연(鄒衍 또는 騶衍: 기원전 305~240)[2]에 이르러 음양과 오행이 통합된 이후[3] 여러 과정을 거쳐 점차 학문으로서의 체계적인 구조를 갖추게 된다. 추연이 살던 기원전 3세기에 나타난 음양오행설은 방술을 해석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이 음양오행설이 점차 참위학(讖僞學)으로 발전해나가며 방술에서도 역시 재이(災異)와 길상(吉祥)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 영향으로 천문 '''·''' 역법 '''·''' 시귀 '''·''' 오행 '''·''' 잡점 등의 수많은 학문들이 방술이라는 이름 아래 방사들에 의해 연구되었다.
이후 다양한 학문들이 방술이라 불리게 되고, 111년에 편찬된 《한서》 〈예문지〉에는 수술략(數術略)에서 천문(天文) '''·''' 역보(曆譜) '''·''' 오행(五行) '''·''' 시귀(蓍龜) '''·''' 잡점(雜占) '''·''' 형법(形法)이 기록되어 있고, 방기략(方技略)에서 의경(醫經) '''·''' 경방(經方) '''·''' 방중(房中) '''·''' 신선(神仙)이 기록되어 있다.[4]
4. 방사(方士)와 국가
방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특별한 인간으로 인식되었다.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등의 비범한 행위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자나 유학자들은 방사들이 가진 능력이 반권력적이거나 그들의 사상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발휘될까 경계했다. 따라서 이들은 방사들에게 부와 권력을 쥐여줌으로써 방사들의 능력을 권력 유지에 이용했다.
국가 입장에서는 방사들을 반체제 운동에 가담하게 두는 것보다 국가 체제에 흡수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많은 국가가 방사에게 관직을 주어 부와 권력을 보장하고, 그들의 연구 성과를 통해 국가의 이익을 꾀하려 했다.
방사들의 미래 예측과 천문 현상 해석은 민심을 크게 동요시킬 수 있었으므로, 국가는 방사의 존재와 그들의 행동을 매우 위험하게 여겼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는 천문을 전공한 방사들을 국립천문대에 소속시키고 그 지식을 국가가 독점적으로 관리하여 엄격하게 기밀을 유지하려 했다. 또한 달력을 만드는 역산학에 종사시킴으로써 그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천자의 권위를 높이려 하였다.
그러나 모든 권력자들이 방사를 적극적으로 국가 체제 내에 수용한 것은 아니며, 그들을 탄압함으로써 안정을 꾀한 권력자들도 있었다. 방사를 탄압한 권력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삼국지의 조조(155~220)이다. 조조는 방사들을 위국에 소집해 감금했는데, 그 이유는 "진실로 이 무리들이 간사한 것에 접촉해 백성들을 속이고 요상한 짓을 행해 백성들을 홀릴까 두렵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조가 좌자에게 봉변을 당했던 일이나, 화타를 죽인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뛰어난 방사들 중에는 국가가 내리는 관직과 작위를 한사코 사양한 인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요청을 거역하기는 어려웠으며, 대부분의 방사들은 국가의 초청을 자신들이 출세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다른 방사들과의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방술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들의 연구를 할 수 있었던 방사들에 의하여 전근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다.
4. 1. 방사와 국가 권력의 관계
방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특별한 인간으로 인식되었다.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등의 비범한 행위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자나 유학자들은 방사들이 가진 능력이 반권력적이거나 그들의 사상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발휘될까 경계했다. 따라서 이들은 방사들에게 부와 권력을 쥐여줌으로써 방사들의 능력을 권력 유지에 이용했다.국가 입장에서는 방사들을 반체제 운동에 가담하게 두는 것보다 국가 체제에 흡수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많은 국가가 방사에게 관직을 주어 부와 권력을 보장하고, 그들의 연구 성과를 통해 국가의 이익을 꾀하려 했다.
방사들의 미래 예측과 천문 현상 해석은 민심을 크게 동요시킬 수 있었으므로, 국가는 방사의 존재와 그들의 행동을 매우 위험하게 여겼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는 천문을 전공한 방사들을 국립천문대에 소속시키고 그 지식을 국가가 독점적으로 관리하여 엄격하게 기밀을 유지하려 했다. 또한 달력을 만드는 역산학에 종사시킴으로써 그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천자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
그러나 모든 권력자들이 방사를 적극적으로 국가 체제 내에 수용한 것은 아니며, 그들을 탄압함으로써 안정을 꾀한 권력자들도 있었다. 방사를 탄압한 권력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삼국지(三國志)의 조조(曺操: 155~220)이다. 조조는 방사들을 위국에 소집해 감금했는데, 그 이유는 "진실로 이 무리들이 간사한 것에 접촉해 백성들을 속이고 요상한 짓을 행해 백성들을 홀릴까 두렵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조가 좌자(左慈)에게 봉변을 당했던 일이나, 화타를 죽인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뛰어난 방사들 중에는 국가가 내리는 관직과 작위를 한사코 사양한 인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요청을 거역하기는 어려웠으며, 대부분의 방사들은 국가의 초청을 자신들이 출세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다른 방사들과의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방술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들의 연구를 할 수 있었던 방사들에 의하여 전근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다.
4. 2. 한국 역사 속의 방사
방사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특별한 인간으로 인식되었다.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비범한 행위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권력자나 유학자들은 방사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이 반권력적이나 그들의 사상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발휘되는 것에 경계심을 가졌다. 따라서 이들은 방사들에게 부와 권력을 쥐어 줌으로써 방사들의 능력을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에 방사들을 반체제 운동에 가담하도록 두는 것보다는 국가의 체제 속에 흡수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었다. 따라서 많은 국가는 방사들에게 관직을 줌으로써 부와 권력을 보장함으로써 그들의 연구 성과를 통해 국가의 이익을 꾀하려 하였다.
방사들의 미래를 내다보는 예측들과 천문 현상의 해석 등은 민심을 크게 동요시킬 수 있었으므로 국가의 입장에서 방사의 존재와 그들의 행동은 매우 위험하였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천문을 전공한 방사들을 국립천문대에 소속시키고 그 지식을 국가가 독점적으로 관리해 엄격하게 기밀을 유지하려고 했다. 또한 달력을 만드는 역산학에 종사시킴으로써 그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천자의 권위를 높이려 하였다.
그러나 모든 권력자들이 방사를 적극적으로 국가 체제 내에 수용하려고 한 것은 아니며, 그들을 탄압함으로써 안정을 꾀한 권력자들도 있었다. 방사들을 탄압한 권력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삼국지(三國志)의 조조(曺操: 155~220)이다. 조조는 방사들을 위국에 소집해 감금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진실로 이 무리들이 간사한 것에 접촉해 백성들을 속이고 요상한 짓을 행해 백성들을 홀릴까 두렵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조가 좌자(左慈)에게 봉변을 당했던 일이나, 화타를 죽인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뛰어난 방사들 중에서 국가가 내리는 관직과 작위를 한사코 사양한 인물들도 있었다. 하지만 황제의 요청을 거역하기는 어려웠으며, 또한 대부분의 방사들은 국가의 초청을 자신들이 출세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다른 방사들과의 경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방술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들의 연구를 할 수 있었던 방사들에 의하여 전근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다.
5. 방술의 주요 분야
5. 1. 천문(天文)
방술에서 천문은 우주의 구조와 더불어 각 행성과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하늘이 삿갓처럼 평면의 지구를 덮고 있다는 개천설이 제시되었으나, 구형의 천구가 땅을 둘러싸고 있다는 혼천설이 하늘과 땅이 맞닿아있다는 개천설의 모순을 설명해내면서 큰 지지를 얻었다. 이후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방사 주자(朱子)의 우주론은 하늘이 기(氣)의 회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여 하늘이 고정되어 있다는 기존 방술의 관념에서 벗어났으며, 각 천체들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 이유와 각 행성의 속도가 다른 이유를 기(氣)의 회전과 밀도 차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한국의 전통 천문학은 방술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으며, 독자적인 관측 기술과 천문도를 제작했다. 예를 들어, 첨성대(瞻星臺)는 신라 시대의 천문 관측소로, 한국 천문학의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5. 2. 오행(五行)
오행설은 동양의 세계관으로 전 우주를 목(木, 나무), 화(火, 불), 토(土, 흙), 금(金, 쇠), 수(水, 물)의 다섯 가지 기운, 즉 오행이 천지를 돌아다니며 세상을 구성한다는 이론이다. 오행은 물질과 현상 사이의 상호작용, 만물이 변화하는 양상 등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중국 전국시대에는 오행의 상생(相生)과 상극(相克) 이론이 등장하여 우주와 인간계의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활용되었다.방술에서 오행의 상극과 상생은 순환하며 서로 연관되어 있고, 이로 인해 기가 끊임없이 순환한다고 본다. 상극에는 화극금(火克金), 금극목(金克木), 목극토(木克土), 토극수(土克水), 수극화(水克火)가 있으며, 이들 오행과 상호작용하지 않지만 다른 기운들의 활기를 돕는 상화(相和)도 존재한다. 오행은 사람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의 개념에서 만물을 구성하는 원소의 개념으로 발전했고, 오늘날에는 만물에 대한 추상화로 이해되고 있다.
한국의 전통 사상에서 오행은 자연 현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풍수지리는 오행의 원리를 바탕으로 지형과 방위를 판단하여 주거 환경을 조성하는 데 활용되었다.
5. 3. 역산(曆算)
역산은 시간에 질서를 부여하고 체계적으로 나누는 역법(曆法)에 따라 천문 현상을 예측하기 위해 행하는 계산을 말한다. 역산은 천체 현상이나 기상 현상의 형태로 나타난 하늘의 계시를 해석해 군주의 죽음, 전쟁, 자연재해 등 국가 중대사를 점치는 기술로도 사용되었다. 특히 일식, 월식, 혜성 출현 예측은 국가 중대사 중 하나였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군주는 태양으로 상징되었고, 일식이나 월식과 같이 태양이 관여된 천문 현상을 예측하고 그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특정하는 것은 군주의 권력을 보여주고 민심을 안정시키는데 큰 효과가 있었다.중국에서 최초로 역법이 제작된 것은 은(殷)나라 이전으로 추정되지만,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달력은 은나라의 은력(殷曆)이다. 은력은 갑골문(甲骨文) 중 일부에 남아있는데, 태음태양력으로 60간지(干支)를 가지고 날짜를 기록하였다. 60간지 혹은 60갑자(甲子)는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의 조합을 말한다. 매 월의 일수는 삭망월(朔望月)을 기준으로 정하고, 30일의 큰 달(大月)과 29일의 작은 달(小月)을 번갈아 가며 배열하였다.
태양년의 길이를 정확히 나눌 수 없는 삭망월의 길이 때문에 태음태양력의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절과 맞지 않기 시작했다. 1 삭망월의 평균치는 약 29.5306일이고, 1 태양년의 평균치는 약 365.2422일이다. 12 삭망월은 약 354.3671일이므로, 한 달의 일수를 354일 또는 355일로 취하면 1 태양년과 10일 혹은 11일 정도 날짜 차이가 생긴다. 이러한 날짜 차이를 없애기 위해 연대배치법(年大配置法)과 치윤법이 사용되었다. 연대배치법은 날짜를 맞추기 위해 때로는 큰 달을 연속해서 두 번 배열하는 방법이다. 치윤법은 3년이 지나면 1 삭망월의 길이보다 더 긴 태양년과 태음년의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그 차이를 윤달(閏)을 두어 없애는 것이다. 따라서 태음년은 1년 12개월로 구성되는 평년과 13개월로 구정되는 윤년(閏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은나라 때에는 연대배치법과 치윤법이 완벽하게 적용되지 못하였고, 이는 개력을 통해 보정되기 시작하였다.
6. 방술과 현대 과학
방술은 서양의 과학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학문 중 과학과 공통되는 분야와 특징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학문이다.[5]
방술 중에서 천문과 역산은 관측을 토대로 정확한 예측을 위해 끊임없이 가설과 법칙들이 세워지고 수정되었다.[5] 경방과 방중 등은 오늘날의 한의학이라는 체계로 이어져 내려왔으며, 이 역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법칙을 찾으려는 시도에 의해 계속하여 발전해왔다.[5] 근대과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분야들은 자연과학이라 불리는 학문의 가장 큰 특징인 '확실한 경험을 토대로 한 자연 현상에 관한 보편적인 법칙과 조직화된 지식의 체계[5]'를 가지고 있다.
6. 1. 방술의 현대적 의의
참조
[1]
백과사전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도 교 > 도 교 > 역사·교단 > 신선설
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종교·철학[...]
[2]
백과사전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중국의 사상 > 제자백가의 사상 > 음양가의 사상
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
[3]
백과사전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중국의 사상 > 제자백가의 사상 > 추연
s: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동양사상/[...]
[4]
웹사이트
"《漢書·藝文志》簡介"
http://hi.baidu.com/[...]
2011-07-07
[5]
서적
인간과 자연과학
학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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