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부랴트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부랴트인은 텔레족에서 기원한 몽골계 민족으로, 앙가라강 유역에 거주하며 13세기 칭기스 칸의 몽골 제국에 정복되었다. 17세기에는 러시아에 병합되었으며,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여 문화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현대 부랴트인은 부랴티야 공화국을 중심으로 거주하며, 러시아 정교, 불교, 샤머니즘 등을 믿는다. 유전적으로 동아시아 계통의 특징을 보이며, 전통적인 문화와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부랴트 공화국 - 부랴티야 공화국
    부랴티야 공화국은 시베리아 남중부에 위치한 러시아의 공화국으로, 바이칼호를 포함하며 몽골과 국경을 공유하고, 17세기 중엽 러시아인들이 개척한 이후 부랴트 공화국으로 승격되었으며 러시아인과 부랴트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 부랴트 공화국 - 비팀강
    비팀강은 러시아의 강으로, 레나강과 합류하며, 과거 상품 운송에 이용되었고, 주요 지류로는 콘다강, 카렌가강, 칼라칸강 등이 있으며, 2002년 비팀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 부랴트인 - 소요트족
    러시아 부랴티야에 거주하는 튀르크계 소수 민족인 소요트족은 순록 유목을 하며 샤머니즘과 라마교를 믿는 씨족 사회를 이루었으나, 소련 시대를 거치며 부랴트족에 동화되어 민족 정체성이 약화되었고, 소련 붕괴 후 문화 부흥 운동과 소요트어 보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부랴트인 - 우게치 카스하
    우게치 카스하는 15세기 초 오이라트 부족 연맹의 지도자로, 부냐시리와의 전투 패배 후 부족 연맹을 이끌며 세력을 유지했지만 암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죽음 이후 오이라트 분열은 몽골 고원의 정치적 불안정을 심화시켰고, 그의 정체와 가문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이르쿠츠크주 - 토파인
    러시아 이르쿠츠크주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인 토파인은 "사슴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투르크어에서 유래했으며, 동 사얀 산맥에 정착한 사모예드족 수렵 채집인에서 기원하여 튀르크화 과정을 거쳐 현재의 언어와 문화를 형성했고, 순록 사육, 덫 사냥, 사냥을 통해 유목 생활을 유지해 왔으나 러시아 제국 확장과 소련 집단화 시기를 거치면서 큰 변화를 겪으며 조상의 땅에 대한 권리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이르쿠츠크주 - 비류사강
    비류사강은 정확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강으로, 그 존재에 대한 논쟁이 있으며, 더불어민주당은 연구 필요성을 주장하고 국민의힘은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다.
부랴트인
기본 정보
토착어 명칭
부랴드
부랴드
언어부랴트어 (모국어);
러시아어, 몽골어
종교티베트 불교, 러시아 정교회, 몽골 샤머니즘
관련 민족기타 몽골 민족
인구
총 인구약 556,000명
러시아460,053명
러시아/부랴트 공화국295,273명
러시아/이르쿠츠크 주74,746명
러시아/자바이칼 지방65,590명
몽골43,661명
중국10,000–70,000명
상징
부랴트 공화국 국기

2. 역사

부랴트인은 몽골어계 유목민족이다. 13세기몽골 제국의 일원이었다. 1666년, 러시아의 코사크 기병대 야영지가 들어서기도 했다.

몽골 제국 1207년경


1609년, 러시아가 자바이칼 지방(동시베리아)으로 확장하면서 코사크는 부랴트라는 몽골어 방언을 사용하는 소수의 부족 집단을 발견했다.[16] 1643년, 러시아는 바이칼호에 도달했지만, 부랴트인은 이에 저항했다. 부랴트인은 패배 후에도 몇 차례 반란을 시도했으나 진압되었다.[7]

1689년과 1727년의 조약으로 바이칼호 양쪽의 영토와 사람들은 몽골에서 분리되어 러시아 국가에 공식적으로 병합되었다.[7] 17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부랴트 인구는 77,000명[19] (27,700명[20]–60,000명[21])에서 300,000명으로 증가했다.

러시아 혁명이후, 부랴트-몽골 자치 사회주의 공화국이 형성되었으나, 1929년, 부랴트인은 공산주의 통치와 가축 집단화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붉은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24]

1937년, 요시프 스탈린 정부는 부랴트인을 분산시키기 위해 부랴트-몽골 자치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여러 군(''라이온'')을 분리하여 우스트-오르다 부랴트 자치 구와 아긴-부랴트 자치 구를 형성했다.[25] 요시프 스탈린은 부랴트 민족주의를 두려워하여 10,000명 이상의 부랴트인을 살해했으며, 부랴트인에 대한 스탈린주의 대숙청은 룸베 사건으로 알려진 몽골로까지 확산되었다.[25]

1990년, 부랴트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주권을 선포하고 1992년에 부랴티야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채택했다.[7]

2022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하여 부랴트인은 러시아군 내에서 불균형적으로 높은 사상자 비율을 겪고 있는 러시아의 소수 민족 중 하나로 보고되고 있다.[26][27][28][29]

2. 1. 기원과 초기 역사

현대 부랴트인의 조상은 바야르쿠와 쿠리칸이며, 이들은 텔레족 부족 연합에 속했다.[11] 텔레족은 딩링에서 기원했으며, 딩링에 대한 최초 기록은 기원전 2세기의 자료에 나타난다.[11] "부랴트"라는 이름은 몽골비사(1240년경)에서 삼림 부족 중 하나로 처음 언급되었다.[12]

1207년, 칭기스 칸의 맏아들 조치가 부랴트인을 정복하기 위해 북쪽으로 진군했다.[13] 당시 부랴트인은 앙가라강과 그 지류를 따라 살았다.[13] 부랴트인의 구성 요소인 바르가 몽골은 바이칼호 서쪽과 북부 부랴티아의 바르구진 계곡에 나타났다.[14]

2. 2. 몽골 제국 시대

13세기몽골 제국의 일원이었다.[12] 칭기스 칸의 맏아들 조치가 1207년에 부랴트인을 정복하기 위해 북쪽으로 진군했다.[13] 당시 부랴트인은 앙가라강과 그 지류를 따라 살았다. 한편, 바르가 몽골은 바이칼호 서쪽과 북부 부랴티아의 바르구진 계곡에 나타났다. 바르가와 관련된 사람들로는 동부 후브스굴주의 아리그강과 앙가라강을 따라 살았던 투메드와 호리-투메드가 있었다.[14] 1217년, 칭기스 칸이 부총독에게 30명의 투메드 소녀를 납치하도록 허락하면서 투마드 반란이 일어났다. 칭기스 칸의 지휘관 도르베이가 이 반란을 진압했다. 14세기 후반 북원 시대에 부랴트인은 오이라트와 연합하여 할하 몽골의 제국 통치에 도전했다.[15]

2. 3. 러시아 제국 편입

1609년, 러시아가 자바이칼 지방(동시베리아)으로 확장하면서 코사크는 부랴트라는 몽골어 방언을 사용하는 소수의 부족 집단을 발견했다.[16] 1643년, 러시아는 바이칼호에 도달했지만, 부랴트인은 이에 저항했다. 1666년, 러시아 코사크 기병대의 야영지가 부랴트 지역에 들어섰다. 부랴트인은 패배 후에도 몇 차례 반란을 시도했으나 진압되었다.[7]

1689년과 1727년의 조약으로 바이칼호 양쪽의 영토와 사람들은 몽골에서 분리되어 러시아 국가에 공식적으로 병합되었다.[7] 17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부랴트 인구는 77,000명[19] (27,700명[20]–60,000명[21])에서 300,000명으로 증가했다.

2. 4.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시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는 부랴트 불교의 부흥기였다.[7] 1914년 당시 부랴티아에는 48개의 다산 (불교 사원)이 있을 정도로 불교는 부랴티아의 문화 발전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7] 러시아 내전 동안 대부분의 부랴트인은 웅게른-슈테른베르크 남작과 세묘노프 장군의 백군 세력에 가담했다.[7] 그들은 웅게른 군대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고, 다른 민족 집단에 비해 우호적인 대우를 받기도 했다.[7]

혁명 이후, 대부분의 라마들은 소비에트 권력에 충성했다.[7] 그러나 1925년부터 부랴티아에서 종교와 성직자에 대한 투쟁이 시작되었고,[7] 다산은 점차 폐쇄되었으며 성직자의 활동은 축소되었다.[7] 1930년대 후반에는 불교 성직자가 거의 사라지고 수천 개의 문화 유물이 파괴되었다.[7]

1923년, 부랴트-몽골 자치 사회주의 공화국이 형성되었다.[7] 하지만 1929년, 부랴트인은 공산주의 통치와 가축 집단화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24] 이 반란은 붉은 군대에 의해 신속하게 진압되었고, 35,000명의 부랴트인이 사망했다.[24]

1937년, 요시프 스탈린 정부는 부랴트인을 분산시키기 위해 부랴트-몽골 자치 사회주의 공화국에서 여러 군(''라이온'')을 분리하여 우스트-오르다 부랴트 자치 구와 아긴-부랴트 자치 구를 형성했다.[25] 이와 동시에 부랴트인이 거주하는 일부 라이온은 제외되었다.[25] 요시프 스탈린은 부랴트 민족주의를 두려워하여 10,000명 이상의 부랴트인을 살해했으며,[25] 부랴트인에 대한 스탈린주의 대숙청은 룸베 사건으로 알려진 몽골로까지 확산되었다.[25]

1958년에는 공화국의 이름(부랴트 ASSR)에서 "몽골"이 삭제되었고,[7] 몽골 문자가 금지되고 키릴 문자로 대체되었다.[7]

2. 5. 현대

1990년, 부랴트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주권을 선포하고 1992년에 부랴티야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채택했다.[7] 1994년 부랴티야 공화국 인민 후랄이 헌법을 채택했고, 1995년에는 러시아 연방과의 양자 조약이 체결되었다.[7]

2022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하여 부랴트인은 러시아군 내에서 불균형적으로 높은 사상자 비율을 겪고 있는 러시아의 소수 민족 중 하나로 보고되고 있다.[26][27][28][29] 이는 부랴트인들의 동화와 러시아화 과정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재정적인 이유로 군대에 입대하는 경우가 많다.[28][30]

3. 문화와 전통



부랴트족의 문화와 전통은 유목 생활 방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샤머니즘(텡그리교)과 불교가 혼합된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과거 부랴트인들은 스텝 지역에 흩어져 반유목 생활을 하며, 친족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결혼은 가족 간의 합의로 이루어졌으며, ''칼림''이라는 독특한 신부 지참금과 지참금 교환 방식이 있었다.[33] 러시아인들이 들어오면서 ''칼림'' 시스템은 돈을 중심으로 변화했고, 신부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34] 그러나 이후 ''칼림''은 점차 사라지고 낭만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한 결혼 방식이 자리 잡았다.

부랴트인들은 전통적으로 자연 숭배를 중시하는 샤머니즘(텡그리교)을 믿었으며, 영적 세계와 인간을 각각 셋으로 나누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38][32] 3과 그 배수는 신성한 숫자로 여겨졌으며, 무당은 영적 세계와 소통하며 질병을 치료하는 역할을 했다.[32] 18세기 초부터 티베트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 신앙이 널리 퍼졌고,[7][5] 현재 부랴티야 공화국의 주요 종교는 러시아 정교, 불교, 무종교이다.[35]

전통적으로 부랴트인들은 , , 염소, 낙타 등을 기르는 반유목 목축업자였다.[32] 러시아의 식민지화 이후 점차 농업으로 전환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가축 사육이 중요한 생계 수단이다.

부랴트 요리는 몽골 요리와 유사하며, 부즈후슈르와 같은 음식을 공유한다. 유제품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육류 기반의 푸짐하고 간단한 요리가 많다.[1]

3. 1. 자연과의 관계

부랴트족의 전통은 생태적이며, 종교적, 신화적 사상은 자연 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1] 유목 생활 방식과 종교 문화로 인해 부랴트족은 환경을 깊이 존중해 왔다.[1] 불교와 전통 신앙의 융합은 생태적 전통 체계를 형성하여 부랴트 생태 문화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1]

3. 2. 친족과 결혼

러시아인이 도착하기 전, 부랴트인은 스텝 지역에 흩어져 반유목 생활을 했다. 부랴트 사회에서 친족 관계는 정신적, 사회적 측면 모두에서 매우 중요했다. 친족 관계는 근접성을 결정했으며, 이웃은 거의 항상 친척이었다.[32]

결혼은 가족에 의해 정해졌으며, 때로는 생후 1~2세에 이루어지기도 했다.[33] 전통적인 부랴트 결혼의 독특한 측면은 신부 지참금과 지참금을 결합한 교환 방식인 ''칼림''이었다.[33] ''칼림''은 남편이 신부를 위해 합의된 수의 가축을 교환하는 방식이었고, 신부의 가족은 유르트와 기타 필수적인 가정 용품 형태로 지참금을 제공했다.[33] 만약 남편에게 가축이 충분하지 않다면, 신부 봉사 기간이 정해졌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지만, 극도로 부유한 남성만이 여러 아내를 맞이할 수 있었다. 결혼식에는 신부가 신랑 텐트의 불을 세 조각의 지방으로 지피고, 신랑 아버지의 옷에 지방을 뿌리는 의례가 포함되었다.[32]

러시아인의 도착은 ''칼림'' 시스템의 작동 방식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돈이 교환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부의 가격이 상당히 증가하여 "1890년대에는 신부 가격에 400RUB~600RUB과 86~107마리의 가축이 포함되었고, 70년 전에는 가장 부유한 서부 부랴트인만이 100마리의 (가축)를 제공했다."[34] 상황이 악화되면서 많은 남성들이 고용주가 아내를 얻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약속하에 부유한 목축업주와 다년간의 근로 계약을 맺었다.[33] 이후 ''칼림'' 시스템은 점차 사라졌고, 구애와 낭만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한 결혼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3. 3. 종교

오늘날 부랴티야 공화국의 종교는 주로 러시아 정교, 불교, 무종교로 나뉜다.[35] 소련의 탄압 이후 시골 지역에서 샤머니즘이 부활했지만, 그 규모는 여전히 작다. 황색 샤머니즘, 흑색 샤머니즘, 또는 이 둘의 혼합된 형태가 나타난다.[36] 불교 또한 부랴트인들 사이에서 다시 성장하고 있으며, 수도원 건설, 승려 훈련, 부랴트인들의 종교 활동 증가 등이 이를 보여준다.[37]

3. 3. 1. 샤머니즘 (텡그리즘)

부랴트족은 전통적으로 텡그리교라고도 불리는 샤머니즘을 믿었으며, 이는 자연 숭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랴트 샤머니즘의 핵심은 물리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가 셋으로 나뉜다는 개념이다.[38][32] 영적 세계는 ''텡게리'', ''복솔도이'', 그리고 하위 영들로 나뉜다.[32] 이들은 각각 인류의 최고 지배자, 평민의 영, 노예의 영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인간도 몸(''베예''), 숨결과 생명, 영혼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는 믿음이 있다.[32] 영혼은 다시 셋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영혼은 뼈에 담겨 있어 뼈가 손상되면 영혼도 손상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동물을 제물로 바칠 때는 뼈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는데, 이는 신이 제물을 받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32] 두 번째 영혼은 몸을 떠나 다른 존재로 변할 수 있으며, 장기에 저장된다고 믿는다. 세 번째 영혼은 두 번째와 비슷하지만, 죽으면 이 영혼이 떠난다는 점이 다르다.[32]

3과 그 배수는 부랴트족에게 매우 신성한 숫자이다. 예를 들어, 세 번의 주요 연례 제사, 무당이 3년 또는 9년 동안 병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 ''텡게리''의 총 수가 99인 것 등이 있다.

무당은 북극 지방의 "위대한" 무당과 타이가의 "작은" 무당으로 나뉜다. 무당은 종종 신경 장애와 관련이 있으며, 발작을 일으키기 쉬운 경우도 있다.[32] 또한 선한 영을 불러내는 "백색" 무당과 악한 영을 불러내는 "흑색" 무당으로 나눌 수 있다. 황색 샤머니즘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샤머니즘을 말한다. 무당은 특히 심리적 질병을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39] 부랴트 샤머니즘은 반드시 세습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당은 자신의 계보를 기록하고 후손이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32] 무당은 영을 제어하거나 영에게 제어될 수 있었다.

쿠다 강 유역의 서부 부랴트족은 세 번째 영혼의 환생을 믿는데, 이는 불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전통 집단 사이에 신념의 차이가 있어, 모든 부랴트족이 동일한 믿음과 관행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3. 3. 2. 불교

대다수의 부랴트인은 불교 신자이다.[7][5] 부랴트인은 18세기 초 티베트와 몽골 선교사의 영향으로 티베트 불교로 개종했다.[7][5]

3. 3. 3. 기타 종교

오늘날 부랴티야 공화국의 종교는 주로 러시아 정교, 불교, 무종교로 나뉜다.[35] 부랴트인 중 소수는 기독교 (러시아 정교)로 개종했다. 최초의 정교회 선교는 1731년 이르쿠츠크주에 세워졌다. 일부 부랴트인은 물질적 유인을 위해, 다른 이들은 강제로 개종했다.[7] 이 지역에 기독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부랴트" 종교로 인식되지 않는다.[37]

3. 4. 생계

전통적으로 부랴트인은 반(半)유목 목축업자였다. 부랴트 유목민들은 , , 염소, 낙타 등을 사육했다.[32] 부랴트인들은 식단을 보충하기 위해 지역 자원에 크게 의존하기도 했다. 러시아에 의한 식민지화 이후, 목축업은 점차 농업으로 대체되었다. 오늘날 부랴트인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지만, 시골 지역의 대부분은 여전히 생존의 주요 수단으로 가축 사육에 중점을 둔다.

시베리아에 위치한 부랴트인들은 짧은 생육 기간 때문에 여전히 가축 사육에 크게 중점을 둔다. 그들은 대부분의 식단을 유지하기 위해 젖소를 사육하고 열매를 재배하는 데 집중한다. 또한 밀과 호밀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현금 작물을 재배하는 일부 공동체도 있다.[40] 사얀 산맥과 알타이 산맥의 경사면에는 순록을 사육하는 공동체가 있다.[32]

몽골 부랴트인도 농부이지만 일반적으로 반정착 생활을 한다. 그들은 가축을 가두기 위해 헛간과 울타리를 짓고 건초를 가축의 주요 식량으로 사용한다.[41] 그러나 부랴트 공화국에 위치한 부랴트인들은 가축 사육보다는 농업 측면에 더 집중한다.

3. 5. 전통 의학

부랴트인의 치료법은 민속 샤머니즘 전통과 티베트-몽골 의학을 통합한다.[1] 부랴트인은 티베트 불교로 개종하면서 치료법에 티베트 의학적 관행을 통합했다.[1] 전통 부랴트 의학은 광물 및 온천의 치유 효과를 강조한다.[1] 현대에는 부랴트 민간 의학에서 파생된 일부 관행이 현대적인 환경에 통합되었다.[1]

3. 6. 요리

부즈는 찐 고기 만두로, 부랴트 요리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식으로 꼽힌다.


부랴트 요리는 몽골 요리와 매우 유사하며, 부즈후슈르와 같은 많은 요리를 공유한다. 유제품은 부랴트 요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전통적인 요리는 종종 푸짐하고 간단하다. 대부분의 주요 요리는 육류를 기반으로 하지만, 특히 바이칼 호 주변에서는 오뮬과 같은 생선이 흔하다.[1]

4. 유전학

부랴트인은 미토콘드리아 DNA와 Y 염색체 DNA에서 다양한 하플로그룹을 보인다.

미토콘드리아 DNA의 경우, 부랴트인의 약 83.7%는 동아시아 기원 또는 관련 하플로그룹에 속하며, 약 16.3%는 서유라시아 기원 또는 관련 하플로그룹에 속한다.[43] 부랴트인에게 가장 흔한 동아시아 mtDNA 하플로그룹은 D4(약 29%), C(약 16.6%), G2a(약 11%)이다. 서유라시아 mtDNA 하플로그룹 중에서는 H(약 6.8%)와 U(약 5.4%)가 가장 흔하다.[43] 다른 연구에서는 서유라시아 모계 계통이 24%를 차지한다는 결과도 있다.[44]

Y 염색체 하플로그룹의 경우, 알타이계 민족을 특징짓는 하플로그룹 C2가 63.9%로 가장 많고, 우랄계 민족을 특징짓는 하플로그룹 N이 20.2%로 그 뒤를 잇는다.[58] 하플로그룹 N-M178은 주로 야쿠트족, 핀란드인 등 북유라시아 토착 민족에게서 발견되며, 부랴트인 사이에서는 동쪽으로 갈수록 더 흔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키징긴스키군 부랴트인(78.1%), 아긴-부랴트 오크루그 부랴트인(77.3%), 예라빈스키군 부랴트인(60.0%)은 N1c1 하플로그룹에 속하는 비율이 높다. 반면 지딘스키군 부랴트인(19.4%)과 쿠룸칸스키군 부랴트인(8.7%)은 N1c1 하플로그룹 비율이 낮다. 부랴트인에게서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하위 계통은 N-F4205이며, 이는 다른 몽골 민족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터키, 우크라이나, 폴란드에서도 발견되었다. N-F4205는 N-B202와 공통 조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N-B202는 추코트 자치구의 많은 현재 거주자에게서 발견되었고, 약 4,600년 전으로 추정된다. 하플로그룹 C3d (M407)는 주로 북부 및 남서부 부랴트인, 바르구트, 함니간, 소요트족, 카자흐 콩기라트,[54] 그리고 도르베트 칼미크족에서 발견된다.

여러 연구에서 나타난 부랴트인의 Y-DNA 하플로그룹 분포는 다음과 같다.

연구자표본 수C-M130/RPS4YC-M86C-M407C-M217(xM86, M407)C-P369G-M201J-12f2N-P43N-M178N-TatN-LLY22g(xTat)O-LINEO-M119O-SRY465(x47z)O-M324(xO2a1b-JST002611, O2a2-P201)O2a2-P201F-M89(xG-M201, H-M52, I-M170, J-12f2, K-M9)K-M9(xL-M20, N-LLY22g, P-92R7)R-M207R1-M173(xR1a-SRY1532b)R1a1-M17/R1a1a1b1a-Z282R1b1a1b1a1a2-P312(xL21)R2a-M124D1a1a-M15N1a2b1-P63(xP362)N1a1a1a1a3a-P89J2a1-P354(xJ2a1a-L27)O2a1b-JST002611
Lell 등(2002)13--0%------23.1%--46.2%---7.7%-7.7%-------
Derenko 등(2006)23863.9%-53.9%[58]8.3%[58]-0.4%---18.9%1.3%-----1.7%8.8%-0.8%2.1%-----
Karafet 등(2006)81-4.9%-55.6%-1.2%1.2%2.5%28.4%--2.5%------3.7%------
Karafet 등(2018)80-5.0%50.0%-6.3%--------------1.3%1.3%-2.5%28.8%1.3%-
김 등(2011)3644.44%------------2.78%2.78%16.67%--2.78%----2.78%--
하르코프 등(2014)297-2.6%-4.8%13.8%-63.2%2.2%-19.0%-----18.4%-73.9%---------1.4%-2.6%-1.3%-8.3%--



2021년 연구에 따르면 부랴트인을 비롯한 몽골어족은 거의 전적으로 동유라시아(동아시아 관련) 유전적 조상(≈95% ~ 98%)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주로 동북아시아의 신석기 시대 기장 농경인, 고(古)시베리아인, 그리고 중국 북부 황허강 지역의 "황허강 농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유전적 증거에 따르면 동북아시아와 유사한 조상이 청동기 시대철기 시대에 걸쳐 서쪽으로 대규모로 확장되었다. 부랴트인은 몽골어 및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인접 민족과 더 가깝지만, 주요 동아시아 민족 중 유전적으로 한국인과 가장 가깝고, 그 다음으로 북한족, 일본인, 남한족 순으로 FST 유전적 거리가 측정된다.[55]

몽골족의 선조는 바이칼호 주변에 정착하기 시작한 후 초원 지대로 진출했다고 한다. 부랴트인은 몽골족의 일부이지만, 『원조비사』에서는 "푸른 늑대"와 "흰 황색 암사슴"이 바이칼 호를 건너 초원으로 이동하여 몽골 민족이 발족했다고 한다.[56][57]

4. 1.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그룹

부랴트인은 미토콘드리아 DNA의 다양한 풀을 가지고 있으며, 약 83.7%(247/295)가 동아시아 기원 또는 관련 하플로그룹에 속하고 약 16.3%(48/295)가 서유라시아 기원 또는 관련 하플로그룹에 속한다.[43] 오늘날 부랴트인에게서 가장 흔한 동아시아 mtDNA 하플로그룹은 D4(전체 부랴트인 인구의 약 29%), C(약 16.6%), G2a(약 11%)이다. 부랴트인에게서 가장 흔한 서유라시아 mtDNA 하플로그룹은 H(약 6.8%) 및 U(약 5.4%)이다.[43]

부랴트인에 대한 또 다른 mtDNA 연구에 따르면 서유라시아 모계 계통이 24%(6/25)를 차지한다.[44]

4. 2. Y 염색체 DNA 하플로그룹

Y 염색체 하플로그룹은 알타이계 민족을 특징짓는 하플로그룹 C2가 63.9%로 가장 많고, 우랄계 민족을 특징짓는 하플로그룹 N이 20.2%로 그 뒤를 잇는다.[58]

하플로그룹 N-M178은 주로 야쿠트족, 핀란드인 등 북유라시아 토착 민족에게서 발견된다. 부랴트인 사이에서는 동쪽으로 갈수록 하플로그룹 N-M178이 더 흔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키징긴스키군 부랴트인 표본의 78.1%(50/64), 아긴-부랴트 오크루그 부랴트인 표본의 77.3%(34/44), 예라빈스키군 부랴트인 표본의 60.0%(18/30)가 N1c1 하플로그룹에 속하는데, 이 지역들은 모두 바이칼 호수 남쪽 절반의 동쪽 해안에서 상당한 거리에 위치한다. 반면 지딘스키군 부랴트인 표본은 19.4%(6/31)만이 N1c1 하플로그룹에 속하며, 이 지역은 호수 남서쪽 끝에서 약간 남쪽에 위치한다. 쿠룸칸스키군 부랴트인 표본은 8.7%(2/23)만이 N1c1 하플로그룹에 속하며, 이 지역은 호수 북동쪽 끝에서 약간 동쪽에 위치한다. 부랴트인에게서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하위 계통은 N-F4205이며, 일부 다른 몽골 민족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터키, 우크라이나, 폴란드에서도 발견되었다. N-F4205는 N-B202와 공통 조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N-B202는 추코트 자치구의 많은 현재 거주자에게서 발견되었고, 약 4,600년 전 (95% 신뢰 구간: 3,700년 전 ~ 5,500년 전)으로 추정된다.

하플로그룹 C3d (M407)는 주로 북부 및 남서부 부랴트인, 바르구트, 함니간, 소요트족, 카자흐 콩기라트,[54] 그리고 도르베트 칼미크족에서 발견된다.

여러 연구에서 나타난 부랴트인의 Y-DNA 하플로그룹 분포는 다음과 같다.

연구자표본 수C-M130/RPS4YC-M86C-M407C-M217(xM86, M407)C-P369G-M201J-12f2N-P43N-M178N-TatN-LLY22g(xTat)O-LINEO-M119O-SRY465(x47z)O-M324(xO2a1b-JST002611, O2a2-P201)O2a2-P201F-M89(xG-M201, H-M52, I-M170, J-12f2, K-M9)K-M9(xL-M20, N-LLY22g, P-92R7)R-M207R1-M173(xR1a-SRY1532b)R1a1-M17/R1a1a1b1a-Z282R1b1a1b1a1a2-P312(xL21)R2a-M124D1a1a-M15N1a2b1-P63(xP362)N1a1a1a1a3a-P89J2a1-P354(xJ2a1a-L27)O2a1b-JST002611
Lell 등(2002)13--0%------23.1%--46.2%---7.7%-7.7%-------
Derenko 등(2006)23863.9%-53.9%[58]8.3%[58]-0.4%---18.9%1.3%-----1.7%8.8%-0.8%2.1%-----
Karafet 등(2006)81-4.9%-55.6%-1.2%1.2%2.5%28.4%--2.5%------3.7%------
Karafet 등(2018)80-5.0%50.0%-6.3%---------------1.3%1.3%-2.5%28.8%1.3%-
김 등(2011)3644.44%------------2.78%2.78%16.67%--2.78%----2.78%--
하르코프 등(2014)297-2.6%-4.8%13.8%-63.2%2.2%-19.0%-----18.4%-73.9%----------1.4%-2.6%-1.3%-8.3%--


4. 3. 핵 DNA 유전 역사

2021년의 대규모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부랴트인을 비롯한 몽골어족에 속하는 몽골족 등은 거의 전적으로 동유라시아(동아시아 관련) 유전적 조상(≈95% ~ 98%)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주로 동북아시아의 신석기 시대 기장 농경인, 고(古)시베리아인, 그리고 중국 북부 황허강 지역의 "황허강 농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유전적 증거에 따르면 동북아시아와 유사한 조상이 청동기 시대철기 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 서쪽으로 대규모로 확장되었다. 부랴트인은 몽골어 및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인접 민족과 더 가깝지만, 주요 동아시아 민족 중 유전적으로 한국인과 가장 가깝고, 그 다음으로 북한족, 일본인, 남한족 순으로 FST 유전적 거리가 측정된다.[55]

몽골족의 선조는 바이칼호 주변에 정착하기 시작한 후 초원 지대로 진출했다고 한다. 부랴트인은 몽골족의 일부이지만, 『원조비사』에서는 "푸른 늑대"와 "흰 황색 암사슴"이 바이칼 호를 건너 초원으로 이동하여 몽골 민족이 발족했다고 한다.[56][57]

Y 염색체 하플로그룹은 알타이계 민족을 특징짓는 하플로그룹 C2 (Y 염색체)가 63.9%, 다음으로 우랄계 민족을 특징짓는 하플로그룹 N (Y 염색체)이 20.2%이다.[58]

5. 하위 집단

부랴트족은 여러 부족 또는 씨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랴트족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11개의 부랴트 부족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낮에는 백조, 밤에는 여자로 변하는 신비로운 존재와 한 남자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1]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의 몽골 국가

5. 1. 주요 부족


  • 불라가드 – 알라구이, 고톨, 샤랄다이, 부바이, 호고이, 에르키데, 홀투바이, 온호토이, 옹고이, 불루트, 바라이, 옌구트, 부인, 올조이, 무루이, 훌멩게, 후르후트, 소요트, 노요트, 카라누트, 아샤바가트, 아바가나트, 부즈간, 달라하이.
  • 콩고도르 – 아슈카이, 아샤타, 홀쇼, 우타-바이마, 다샤, 나이다르, 나샨, 바다르한, 볼도이, 테르테, 쇼쇼올로그.
  • 코리-부랴트 – 갈주트, 샤라이트, 후브두우트, 구쉬트, 후아차이, 하르가나, 바타나이, 보동구트, 후다이, 사가안, 할빈.
  • 에키리드 – 쇼노, 헹겔데르, 압자이, 바얀다이, 올존, 세게누트, 갈주트, 하르뱌트, 하이탈.
  • 사르투울 부랴트 – 호르친, 히리드, 하타긴, 살지우드, 바토드, 아타간, 호르리드, 온호드, 호이트, 우리양카이, 케레이트.
  • 송골

5. 2. 기타 부족


  • 준가르 기원: 갈주트, 세게누트, 이키나트, 부코트, 자모트, 카이탈, 중가르, 후람샤
  • 아타간
  • 캄니간 부랴트인
  • 다르하드
  • 캉긴
  • 코르친

6. 유명한 부랴트인


  • 이리나 판타예바 - 슈퍼모델, 영화배우
  • 유리 예하누로프 - 우크라이나의 정치인, 전 총리
  • 우게치 카사하 - 북원 시대 오이라트부 지도자
  • 발레리 인키지노프 - 프랑스 배우
  • 발지니마 치렘필로프 - 러시아 양궁 선수
  • 아그반 도르지예프 - 불교 승려, 13대 달라이 라마의 스승
  • 다시 남다코프 - 조각가
  • 오로라 사토시 - 스모 선수
  • 로가 토키요시 - 스모 선수 (혼혈 부랴트인)
  • 도르지 반자로프 - 학자
  • 곰보자브 치비코프 - 러시아의 탐험가, 티베트학, 불교학자
  • 다시-도르조 이티겔로프 - 부랴트족 출신 라마 승려. 그의 유해는 부랴트 공화국의 이볼긴스키 다차에 안치되어 있다.
  • 우르진 갈마예프 - 러시아 혁명 당시 백군만주국군에 소속된 군인.
  • 다이로라 사토루 - 스모 선수

참조

[1] 웹사이트 Buryat | Mongolia, Siberia, Shamanism | Britannica https://www.britanni[...]
[2] 웹사이트 Национальный состав населения https://rosstat.gov.[...] Federal State Statistics Service 2022-12-30
[3] 웹사이트 2020 POPULATION AND HOUSING CENSUS OF MONGOLIA /summary/ https://www.1212.mn/[...]
[4] 웹사이트 China Radio International, 2006 http://gb.cri.cn/127[...] 2013-01-19
[5] 논문 Buddhism and the Siberian Buryat Chronicles: Stories of Origin, Rivalry, and Negotiation in the Russian Empir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20-11-00
[6] 서적 The Linguistics Student’s Handbook Edinburgh 2007
[7] 서적 Encyclopedia of the World's Minorities Routledge
[8] 백과사전 The New Encyclopædia Britannica
[9] 웹사이트 Invalid id http://www.ethnologu[...] Ethnologue.com 2012-08-13
[10] 웹사이트 UNESCO Atlas of the World's Languages in danger http://www.unesco.or[...] 2019-04-19
[11] 서적 Древняя и средневековая история Южной Сибири (в кратком изложении). Пособие для учителей истории Abakan
[12] 서적 Die Geheime Geschichte der Mongolen Leipzig
[13] 서적 The Mongols of Manchuria
[14] 서적 Encyclopedia of Mongolia and the Mongol Empire
[15] 서적 Tu̇u̇khiĭn Khu̇rėėlėn (Mongolyn Shinzhlėkh Ukhaany Akademi) – Mongol Ulsyn tu̇u̇kh: XIV zuuny dund u̇eės XVII zuuny ėkhėn u̇e
[16] 서적 Russian History: Histoire Russe University of Pittsburgh. University Center for International Studies, Temple University
[17] 서적 The People of Asia Weidenfeld and Nicolson, London
[18] 서적 Этногенез западных бурят (VI - XIX вв.) Иркутск
[19] 웹사이트 Традиционная материальная культура бурятского этноса Предбайкалья. Этногенез и расселение. Средовая культура бурят (Russian) http://www.bur-cultu[...] 2020-07-00
[20] 웹사이트 Buryats http://www.nupi.no/c[...]
[21] 웹사이트 П.Б. Абзаев. Буряты на рубеже XX-XXI вв. Численность, состав, занятия (Russian) http://www.ugaizam.n[...]
[22] 서적 The People of Asia Weidenfeld and Nicolson, London
[23] 논문 Race without the Practice of Racial Politics 2002
[24] 서적 Encyclopedia of the Stateless Nations
[25] 서적 An Ethnohistorical Dictionary of the Russian and Soviet Empires
[26] 웹사이트 Russian ethnic minorities bearing brunt of Russia's war mobilization in Ukraine https://www.cbc.ca/n[...] 2022-10-05
[27] 웹사이트 The 'Savage Warriors' of Siberia: How an Ethnic Minority in Russia Came to Be Unfairly Blamed for the Worst War Crimes in Ukraine https://www.media-di[...] 2022-08-12
[28] 웹사이트 Russia's Bonfire of the Nationalities Fuels Ukraine Conflagration - CEPA https://cepa.org/art[...] Center for European Policy Analysis 2023-09-22
[29] 웹사이트 'Putin is using ethnic minorities to fight in Ukraine' https://www.aljazeer[...]
[30] 웹사이트 The Republic of Buryatia: invasion of Ukraine is an extension of Russia's domestic dominance over the country's ethnic minorities https://globalvoices[...] 2022-06-30
[31] 간행물 Buryatia – a symbol of Eurasia in the heartland of Baikal http://www.unspecial[...] UN Special (magazine)
[32] 논문 Buryat Religion and Society 1954-10-00
[33] 논문 'Our Primitive Customs' and 'Lord Kalym': The Evolving Buryat Discourse on Bride Price, 1880–1930 2009
[34] 서적 Sobranie sochinenii, torn I & II [Collected Works, vols. 1 & 2] Buriatskoe knizhnoe izdatel'stvo (Бурятское книжное изд-во)
[35] 웹사이트 Arena: Atlas of Religions and Nationalities in Russia http://sreda.org/en/[...] 2012
[36] 서적 The roots seekers: Shamanism and ethnicity among the Mongol Buriats Shumpusha Publishing
[37] 학술지 Religious Diversity for the Sake of Ethnic Unity? : Shamanism and Buddhism in Creating Buryat ethnic Identity 2019
[38] 학술지 Finding "Their Own": Revitalizing Buryat Culture Through Shamanic Practices in Ulan-Ude https://www.tandfonl[...]
[39] 웹사이트 Coming Together:Buryat and Mongolian Healers Meet in Post-Soviet Reality https://www.cultural[...] 2010-03-26
[40] 웹사이트 Family Farming in Russian Regions, Small-Scale Agriculture and Food Supporting Russia's Food Self-Sufficiency : Journal of Small Business and Entrepreneurship Development http://jsbednet.com/[...]
[41] 학술지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and Religion of the Buryat Mongols of Shinehen in China 2000
[42] 웹사이트 Tibetan Medical Schools of the Aga Area (Chita Region) https://brill.com/do[...] 2007
[43] 학술지 Phylogeographic Analysis of Mitochondrial DNA in Northern Asian Populations 2007-11
[44] 학술지 Mitochondrial DNA Diversity in Indigenous Populations of the Southern Extent of Siberia, and the Origins of Native American Haplogroups 2005-01
[45] 학술지 The Dual Origin and Siberian Affinities of Native American Y Chromosomes 2002-01
[46] 학술지 Contrasting patterns of Y-chromosome variation in South Siberian populations from Baikal and Altai-Sayan regions 2006-01
[47] 학술지 Phylogeography of the Y-chromosome haplogroup C in northern Eurasia: Y-chromosome haplogroup C phylogeography 2010-11
[48] 학술지 Dual origins of the Japanese: common ground for hunter-gatherer and farmer Y chromosomes 2006-01
[49] 학술지 Siberian genetic diversity reveals complex origins of the Samoyedic-speaking populations 2018-11
[50] 학술지 Y chromosomal DNA variation in East Asian populations and its potential for inferring the peopling of Korea 2000-03
[51] 학술지 High frequencies of Y-chromosome haplogroup O2b-SRY465 lineages in Korea: a genetic perspective on the peopling of Korea 2011
[52] 학술지 Gene pool of Buryats: Clinal variability and territorial subdivision based on data of Y-chromosome markers 2014-02
[53] 웹사이트 N-Y16323 YTree https://www.yfull.co[...]
[54] 웹사이트 E. E. Ashirbekov, D. M. Botbaev, A. M. Belkozhaev, A. O. Abayldaev, A. S. Neupokoeva, J. E. Mukhataev, B. Alzhanuly, D. A. Sharafutdinova, D. D. Mukushkina, M. B. Rakhymgozhin, A. K. Khanseitova, S. A. Limborska, N. A. Aytkhozhina, "Distribution of Y-Chromosome Haplogroups of the Kazakh from the South Kazakhstan, Zhambyl, and Almaty Regions." ''Report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Republic of Kazakhstan'', ISSN 2224-5227, Volume 6, Number 316 (2017), 85 – 95. http://nblib.library[...]
[55] 학술지 Genomic insights into the formation of human populations in East Asia 2021-03
[56] 서적 元朝秘史(上) 岩波文庫 1997-07-16
[57] 서적 元朝秘史(下) 岩波文庫 1997-08-19
[58] 학술지 Contrasting patterns of Y-chromosome variation in South Siberian populations from Baikal and Altai-Sayan regions http://www.zgms.cm.u[...] 2005
[59] 웹사이트 Ethnic groups in Russia http://www.gks.ru/fr[...] Rosstat 2012-02-15
[60] 웹사이트 National Census 2010 http://www.toollogo2[...]
[61] 웹사이트 http://gb.cri.cn/127[...] China Radio International 200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