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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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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분신정국은 1991년 4월부터 약 60일 동안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의미한다. 1990년 3당 합당과 방송관계법 날치기, 공안정국 조성 등으로 사회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잇따라 분신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13명이 사망하고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러한 저항은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군부 독재 청산의 계기가 되었지만, 운동권의 과격성에 대한 비판과 김지하 등 저항 시인들의 비판도 있었다.

2. 배경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3당 합당 선언으로 민자당이 탄생했으며, 민자당은 원내 의석 대다수인 214석을 차지하여 정국 주도권을 장악했다.

1990년 7월 14일 방송관계법 날치기 사건으로 방송관계법이 통과되었고, 노태우 재임 기간 내내 공안정국이 지속되었다. 노동운동, 통일운동,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이 심화되어 1990년 11월 구속된 양심수는 1,259명에 달했다. 노사분규 현장과 학교에는 경찰이 투입되었다. 1991년 5월 국가보안법과 경찰법 등이 날치기 통과되었고, 페놀사태, 수서비리와 더불어 공안정국 조성, 비판여론 탄압, 전두환, 노태우 군부세력 건재 등으로 국민들의 실망감과 분노가 높아졌다.

3. 사건의 전개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총학생회장이 경찰에 연행되자, 그의 석방을 위한 시위가 격렬해졌다. 경찰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명지대생 강경대를 폭력으로 사망하게 했다.[1]

사건 다음 날인 4월 27일, 노태우 대통령은 안응모 내무부 장관을 경질했다.[1] 학생들은 노태우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연세대학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2] 4월 29일 전남대학교 학생 박승희가 강경대 사건 규탄 집회 중 분신했고,[3] 이어서 5월 1일 안동대학교 학생 김영균,[4] 5월 3일 가천대학교 학생 천세용,[5] 5월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5월 10일 노동자 윤용하[6] 등이 잇따라 분신하여 이른바 '분신 정국'이 조성되었다.

5월 25일에는 시위 도중 성균관대생 김귀정이 경찰의 진압을 피하다 압사 사고로 사망했다.

노태우 정권은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자, 5월 8일 노태우 정권을 비난하며 자살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의 유서를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이 대필했다는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을 조작하면서[7] 사건을 덮으려 하였다.

4. 사망자

이름소속사망 경위
강경대명지대학교 학생구속 학생 석방 시위에서 경찰에게 살해당했다.
김귀정시위 중 경찰의 폭력 진압에 사망했다.
박승희전남대학교 학생강경대 사건 규탄 집회 중 분신했다.
김영균안동대학교 학생안동대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분신했다.
김철수전남 보성고등학교 학생학교 운동장에서 분신했다.
김기설전민련 본부 사회부장서강대학교 옥상에서 분신했다.
이정순식당 근로자연세대 정문 앞 철교에서 분신했다.
윤용하서울직장 민주화 청년 연합회원전남대학교 강당 화장실에서 분신했다.
천세용경원대학교 학생경원대학교 건물에서 분신했다.
정상순건설업전남대학교 병원 영안실 옥상에서 분신했다.


5. 생존자

차태권은 운전기사로 광주 전일 여객차고에서 분신했으나 바로 발견되어 가벼운 화상을 입고 생존했다.[1]

6. 결과

약 60여 일 동안 분신 또는 의문사 등으로 총 13명이 사망하였으며, 총 2,361회의 집회가 있었다. 비록 민주화를 위한 이 시도는 실패하였지만 1993년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면서 문민정부가 들어섰으며, 노태우전두환과 함께 구속 수감되었다.

7. 평가

노태우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되었으나, 선거 과정에서 많은 비리가 있어 독재자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1]

김지하 등 저항 시인들은 칼럼을 통해 과격한 운동을 자제하라고 했으나, 오히려 이들을 비난하며 김지하가 보수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김지하의 분신 정국 비판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면서, 운동권이 국민의 지지를 잃기 시작한 시기로 꼽힌다.[1]

7. 1. 보수 진영의 시각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5월 정국 당시 과격 시위와 분신이 사회 불안을 야기하고 국가 안보를 위협했다고 주장한다.[1] 이들은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 비판을 옹호하며, 운동권의 과격성을 비판하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1]

7. 2. 진보 진영의 시각

진보 진영에서는 5월 정국을 군부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김지하 등의 저항시인들은 칼럼을 통해 도가 지나친 운동을 자제하라고 했으나, 오히려 그 시인들을 조리돌림 하면서 김지하 작가를 우경화시키는 데 영향을 끼쳤다. 또한 김지하 작가의 분신정국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늘어나며 운동권이 국민의 지지를 잃기 시작한 시기로 꼽힌다.[1]

참조

[1] 뉴스 강경대군 폭행치사사건 관련 안응모 내무장관 경질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1991-04-27
[2] 뉴스 명지대 강경대군 치사사건 규탄대회 확대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1991-04-29
[3] 뉴스 강경대군 사건 집회 중 전남대 여대생 분신자살기도 중태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1991-04-29
[4] 뉴스 강경대군 사건 규탄, 안동대 김영균군 또 분신 중태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1991-05-01
[5] 뉴스 전국 곳곳 규탄시위, 경원대생 분신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1991-05-03
[6] 뉴스 전남대서 20대 근로자 분신 http://imnews.imbc.c[...] MBC 뉴스데스크 1991-05-03
[7] 문서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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