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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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블라디미르 세론은 페루의 정치인으로, 후닌 주지사를 역임했으며, 의사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페루 국립 중앙 대학교에서 전기 공학을, 로스 안데스 페루 대학교에서 토목 공학을 전공했으며, 쿠바에서 의학을 공부하여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페루 민족주의 정당, 페루 애국 전선, 자유 페루 지역 정치 운동, 자유 페루 자유주의 정당을 창당 및 활동하며 정치 경력을 쌓았고, 후닌 주지사로 두 번 당선되었으나, 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세론은 여러 권의 책과 논문을 저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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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세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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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블라디미르 로이 세론 로하스 |
원어 이름 | es |
출생일 | 1970년 12월 16일 |
출생지 | 아우악, 후닌 주, 페루 |
배우자 | 리세트 델 카르멘 파에스 마르티네스 |
소속 정당 | 자유 페루 |
이전 소속 정당 | 페루 민족주의 정당 (2005–2006) |
학력 | 카마구에이 의과대학 |
모교 | 산 마르코스 국립대학교 페루 중앙 국립대학교 |
공직 | |
직함 | 자유 페루 사무총장 |
임기 시작 | 2008년 8월 13일 |
직함 | 후닌 주 주지사 |
임기 시작 | 2019년 1월 1일 |
임기 종료 | 2019년 8월 20일 |
이전 | 앙헬 운추파이코 |
다음 | 페르난도 오리후엘라 로하스 |
임기 시작 | 2011년 1월 1일 |
임기 종료 | 2014년 12월 31일 |
이전 | 블라디미로 우아록 |
다음 | 앙헬 운추파이코 |
법적 문제 | |
법적 문제 상세 | https://cnnespanol.cnn.com/2023/10/10/interpol-notificacion-internacional-buscar-informacion-peruano-vladimir-cerron-orix/ |
논문 제목 | ¿Lawfare en el Perú? Guerra jurídica, política, justicia y medios de comunicación (페루의 법률 전쟁? 법적 전쟁, 정치, 정의, 언론) |
논문 정보 | 폰티피시아 카톨리카 데 페루 대학교 정치 과학 및 정부 석사 학위 논문 (2024년 4월 10일) |
2. 초기 생애 및 교육
블라디미르 세론은 1970년 12월 16일 후닌 주 추파카 현 아우악 지구에서 대학교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완카요에서 초등 및 고등 교육을 받았고, 이후 페루 국립 중앙 대학교와 로스 안데스 페루 대학교에서 각각 전기 공학과 토목 공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페루 내부 분쟁 시기인 1990년, 당시 페루 국립 중앙 대학교 학술 부총장이었던 아버지가 준군사 세력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4][5]을 겪으며 학업을 중단하고 리마로 이주해야 했다. 리마에서 생활하던 중 쿠바 카마구에이의 의과대학 유학 장학금을 받아 의학 공부를 시작했고, 1997년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페루로 돌아온 후에도 학업을 이어가 2009년 산 마르코스 국립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추가로 취득했다.[6]
2. 1. 가족 배경
블라디미르 세론은 1970년 12월 16일 후닌 주 추파카 현 아우악 지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대학교수인 하이메 세론 팔로미노와 베르타 로하스 로페스이다. 아버지 하이메 세론은 페루 국립 중앙 대학교의 학술 부총장이었으나, 페루 내부 분쟁 기간 동안 완카요에서 활동하던 준군사 세력에 의해 살해되는 비극을 겪었다. 그의 시신은 1990년 6월 8일에 발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세론은 당시 다니던 대학 학업을 중단하고 리마로 이주하여 일을 시작해야 했다. 어머니 베르타 로하스 로페스는 훗날 진실 및 화해 위원회에서 남편의 납치 및 살해 사건에 대해 증언하며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했다.[4][5]2. 2. 학업 중단과 쿠바 유학
세론은 페루 국립 중앙 대학교에서 전기 공학을, 로스 안데스 페루 대학교에서 토목 공학을 동시에 전공하며 고등 교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페루 국립 중앙 대학교 학술 부총장이었던 그의 아버지 하이메 세론이 페루 내부 분쟁 기간 동안 완카요에서 준군사 세력에 의해 살해되면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의 아버지 시신은 1990년 6월 8일에 발견되었다. 어머니 베르타 로하스 로페스는 훗날 진실 및 화해 위원회에서 남편의 납치 및 살해 사건에 대해 증언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 이후 세론은 학업을 포기하고 리마로 이주하여 일을 시작했다.[4][5]리마에 머무는 동안 세론은 쿠바 카마구에이에 있는 카를로스 J. 핀레이 카마구에이 의과대학에서 유학할 장학금을 얻었다. 그는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해 1997년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카마구에이의 마누엘 아순세 도메네크 대학 병원에서 근무했다. 세론은 나중에 페루로 돌아와 산 마르코스 국립 대학교에서 2009년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의학 연구를 이어갔다.[6]
2. 3. 페루 귀국 및 의학 연구
쿠바에서 의학 공부를 마친 후 페루로 돌아왔다. 귀국 후에도 의학 연구를 계속하여 2009년 산 마르코스 국립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6]3. 정치 경력
블라디미르 세론은 2005년 페루 민족주의 정당에 입당하며 지역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나, 이듬해 탈당하고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2006년 지역 조직 '페루 애국 전선'을 설립하여 후닌 지역 주지사 선거에 처음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2007년에는 자유 페루 지역 정치 운동을 창설했고, 이를 기반으로 2010년 후닌 주지사 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주지사 재임 중이던 2011년에는 지역 정부 전국 의회 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자유 페루 자유주의 정당을 창당하여 당의 기틀을 마련했다.
2014년 후닌 주지사 재선에 도전했으나 결선 투표에서 패배했다. 2016년에는 자유 페루 자유주의 정당의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낮은 지지율과 경쟁 후보 케이코 후지모리에 대한 선거 전국 배심원의 결정에 항의하며 중도 사퇴했다.
2018년 선거에서 다시 후닌 주지사에 도전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9년 8월, 과거 부패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로 인해 지역 의회로부터 주지사직 정직 처분을 받았다.
2021년 페루 총선에서는 자유 페루 소속의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으나[1], 부패 혐의 유죄 판결로 인해 선거 전국 배심원으로부터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1] 이후 2022년 7월에는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결별하고 그의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