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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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천읍성은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이다. 조선 태종 때 '동성'으로 불렸으며, 세종 24년(1442)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으로 축조했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왜적을 몰아내는 격전지였다. 현재는 약 300m의 성곽이 남아 있으며, 충혼탑, 수양루, 관덕정 등이 있는 산성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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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읍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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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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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경상남도 사천시 수양공원길 51 (사천읍) |
유형 | 기념물 |
지정 번호 | 144 |
지정일 | 1994년 9월 26일 |
면적 | 27,943m2 |
2. 역사
사천읍성은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모를 겪었는데, 특히 선조 32년(1598)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 왜적을 몰아냈다고 한다.[1] 현재 성 안에는 충혼탑, 수양루, 활을 쏘는 관덕정이 있는 산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2. 1. 축성 및 배경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사천읍성은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약 1.5km 둘레 중 현재 3개 부근 약 300m의 성곽이 남아있다.[1]『사천군지』에 의하면 사천은 조선 태종 때 ‘동성’이라 불렀으며, 그때 진을 두고 병마사로서 별현사를 겸직시켰고 세종 때에 다시 사천현감으로 불렀다.[1]
이 성은 세종 24년(1442)에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에 의해 쌓았다고 전해지며, 이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을 옮겼다고 한다.[1] 처음 기록에는 성 둘레 3,105척, 성벽 높이 10.5∼1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고, 그 후 기록에는 성 둘레 5,015척, 성벽 높이 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어 후에 증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1]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모가 있었다.[1] 특히 선조 32년(1598)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 왜적을 몰아냈다 한다.[1]
2. 2. 임진왜란과 사천읍성
사천읍성은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모를 겪었다. 특히 선조 32년(1598년)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 왜적을 몰아냈다고 한다.[1]3. 구조 및 특징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사천읍성은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약 1.5km 둘레 중 현재 3개 부근 약 300m의 성곽이 남아있다.[1]
세종 24년(1442)에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에 의해 쌓았다고 전해지며, 이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을 옮겼다고 한다. 처음 기록에는 성 둘레 3,105척, 성벽 높이 10.5∼1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고, 그 후 기록에는 성둘레 5,015척, 성벽 높이 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어 후에 증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1]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해진다.[1]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모가 있었다. 특히 선조 32년(1598)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 왜적을 몰아냈다고 한다.[1]
4. 현재 모습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사천읍성은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약 1.5km 둘레 중 현재는 3곳 부근 약 300m의 성곽이 남아있다.[1] 성 안에는 충혼탑, 수양루, 활을 쏘는 관덕정이 있는 산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1]
5. 의의 및 평가
사천읍성은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모를 겪었다. 특히 1598년(선조 32년)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 왜적을 몰아냈다고 한다.[1]
현재 성 안에는 충혼탑, 수양루, 활을 쏘는 관덕정이 있는 산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1]
참조
[1]
보고서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1185번지 일원 내 梁山 架山里遺蹟 Ⅴ. 고찰
https://www.cha.go.k[...]
발행
2015-09-01
[1]
보고서
대한주택공사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양산석산지구 文化遺蹟 地表調査 報告書
http://www.feaci.or.[...]
발판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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