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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흥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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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흥천사는 조선 태조 6년(1397년)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된 사찰이다. 왕실의 원찰로 시작하여, 세종 대에는 선종도회소로 지정되어 조선 선종 사찰을 총괄하기도 했다. 연산군 때 화재로 소실된 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으며, 1865년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중창되었다. 현재 극락보전, 명부전, 칠성각 등의 전각이 있으며, 서울 성북구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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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흥천사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겨울의 흥천사 (2024년)
종교조계종, 한국 불교
위치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웹사이트흥천사 공식 웹사이트 (한국어)
한국어 이름흥천사
한자興天寺
로마자 표기Heungcheonsa
상세 정보
창건 연대조선 태조 6년 (1397년)
창건자조선 태조
종파조계종 → 화엄종 → 선종 → 대한불교조계종
본존아미타여래
별칭신흥사(新興寺), 정릉사(貞陵寺)
문화재흥천사 지장시왕도
흥천사 시왕도
흥천사 약사불도
흥천사 목조보살좌상
흥천사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판
흥천사 천룡도
흥천사 현왕도
흥천사 목조여래좌상
흥천사 도량장엄번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흥천사 극락보전 도량신도
흥천사 조왕도
흥천사 만세루 신중도
흥천사 만세루 제석천도
흥천사 만세루 아미타불회도
소재지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 29 (돈암2동 595번지)

2. 연혁

조선 태조가 1397년(태조 6년)에 계비 현비 강씨가 사망하자,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써 흥천사를 창건하였다. 이후 조선 초, 중기에 걸쳐 왕실의 주요 사찰로 기능하였다.

연산군 10년(15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선조대에 신흥사(新興寺)라는 이름으로 중건되었고, 정조대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고종 대에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중창되면서 다시 흥천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2. 1. 창건과 초기 역사 (1397년 ~ 1504년)

조선 태조 6년(1397년) 현비 강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흥천사가 창건되었다. 태조는 한양도성 안의 경복궁 서쪽에 왕후 강씨의 능침을 조성하고, 왕실의 원찰로 삼아 흥천사를 건립하였다.[5] 당시 흥천사는 불전, 승방, 대문, 행랑 등 170칸 규모였고, 하사된 전지는 1천 결에 달했다. 태조는 흥천사 공사에 자주 거동하여 인부들을 격려하고, 신덕왕후의 기일재, 천도재, 우란분회 등의 법회를 열었다.

정종 즉위 후에도 태조의 명에 따라 흥천사 공역은 계속되었고, 추존 환조(이자춘)의 기신재도 이곳에서 열렸다. 그러나 태종 즉위 후, 정릉이 도성 밖으로 이전되고 신덕왕후의 제사도 격하되면서 흥천사의 위상도 변화하였다. 태종 3년(1403년)에는 흥천사의 전지와 노비가 줄었다. 하지만 태종은 흥천사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태조의 뜻에 따라 신덕왕후의 기신재를 계속 올리도록 허용하거나, 사리탑을 수리하고 법화경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세종 대에 흥천사는 선종 도회소로 지정되어 조선 선종 사찰을 총괄하는 지위를 얻었고, 세종 11년(1429년)에 크게 중창되었다. 세종은 흥천사에서 자신의 탄신일 축수재와 공비 심씨의 쾌유를 비는 법회를 열고, 일본과 에서 온 사신들을 접대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또한 세종은 흥천사가 태조의 원찰임을 강조하며, 신료들의 이전 및 수리 중단 요구를 윤허하지 않았다.

세조 7년(1461년)에는 흥천사에 범종을 공양하였으며(흥천사명 동종), 왕실 불사를 지원하였다. 예종과 성종도 흥천사에서 기우제, 기청제를 지내고, 일본 사신들을 접대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10년(1504년) 흥천사는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2. 2. 화재와 중건 (1504년 ~ 1865년)

연산군 10년(1504년) 흥천사는 사리전만 남기고 화재로 모두 불타버렸고, 사리전도 6년 뒤인 중종 5년(1510년)에 불타버렸다.[5] 불타버린 흥천사 터는 한동안 빈터로 남아 있었고, 중종은 흥천사 터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사는 것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선조 2년(1569년) 왕명으로 함취정(含翠亭) 옛 터에 흥천사를 옮겨 짓고 이름을 '신흥사(新興寺)'라 고쳤다. 현종 10년(1669년) 송시열신덕왕후 강씨를 종묘에 다시 모실 것을 청하면서, 권근이 지었던 흥천사조성기와 함께 선조 때의 태학(성균관) 학생이었던 채증광 등이 올렸던 신덕왕후의 배향 요청 상소를 왕에게 올렸다. 신덕왕후는 시호와 존호가 복귀되어 종묘에 태조의 왕후로써 모셔졌다.

정조 18년(1794년) 성민, 경산, 경신 등 승려들의 발원으로 정릉과 가까운 현재의 자리에 옮겨 지었다. 이후 헌종 12년(1846년) 칠성각(七星閣)이, 헌종 15년(1849년) 적조암(寂照庵)이 창건되고, 철종 4년(1853년) 극락보전(極樂寶殿), 5년(1855년) 명부전(冥府殿)이 낙성되었다.

고종 2년(1865년)에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대방과 요사를 짓고 중창한 뒤 다시 흥천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1891년에 42수 관음상을 봉안하였으며, 1894년에 명부전을 중수하였다.

2. 3. 근현대 (1865년 ~ 현재)

고종 2년(1865년)에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대방과 요사를 짓고 중창한 뒤 다시 흥천사라고 부르게 되었다.[5] 1891년에는 42수 관음상을 봉안하였으며, 1894년에는 명부전을 중수하였다.

3. 주요 전각

흥천사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전각들이 남아 있다.


  • 극락보전(極樂寶殿):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5호로 지정된 흥천사의 중심 법당이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으며, 내부에 1894년에 제작된 신중도와 1903년에 제작된 아미타불도가 봉안되어 있다.
  •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저승의 십대왕을 모신 전각이다. 내부에 1896년에 제작된 지장시왕도가 봉안되어 있다.
  • 천불전(千佛殿):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고, 천불상을 함께 봉안한 전각이다.
  • 조사전(祖師殿): 역대 흥천사를 거쳐간 고승들의 영정을 모신 전각이다.
  • 용화전(龍華殿): 미륵불을 모신 전각이다.
  • 만세루(萬歲樓): 흥천사 경내에서 가장 큰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1층은 사찰 입구 역할을 하는 누하진입(樓下進入) 형태이며, 2층은 강당으로 사용된다. 199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2004년에 복원되었다.[1]
  • 적조당(寂照堂): 요사채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 범종루(梵鍾樓): 범종을 보관하는 전각이다.
  • 찻집: 전통 찻집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이 외에도 흥천사에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된 신중도와 제68호로 지정된 천룡도 등이 있다.

4. 문화재

흥천사는 여러 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명칭지정번호건립 시기비고
서울 흥천사 극락보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8호1853년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 내부에 1891년에 조성된 42수 관음상이 있음.
서울 흥천사 명부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9호1855년 (1894년 중수)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사람의 넋을 인도하는 곳.
흥천사명 동종보물 제1460호1461년 (1865년 재주조)조선 세조 때 만들어졌으며, 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다시 주조됨.
서울 흥천사 천불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0호1998년천 개의 작은 불상을 모심.
서울 흥천사 칠성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1호1846년칠성을 모시는 곳.
서울 흥천사 적조암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2호1849년조용히 수행하는 공간.
서울 흥천사 대방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3호1865년흥선대원군의 지원으로 지어진 건물로, 승려들이 거처하며 수행하는 공간.
흥천사조성기해당사항 없음조선 건국 초 (1397년)권근이 왕명을 받들어 지은 글로, 흥천사의 창건 배경과 과정을 상세히 기록.


5. 갤러리

흥천사 전경


흥천사 전경

6. 교통

서울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서 마을버스 22번을 타고 돈암2동 주민센터에서 내리면 된다.

참조

[1] 웹사이트 Daebang Hall of Heungcheonsa Temple, Seoul - Heritage Search https://english.cha.[...] 2024-01-10
[2] 웹사이트 ko:도심 속 몸과 마음의 쉼표가 되어주는 절, 흥천사 여행 https://mediahub.seo[...] 2024-01-10
[3] 웹사이트 ko:흥천사(興天寺) https://encykorea.ak[...] 2024-01-10
[4] 문헌 《중종실록》중종 5년 경오(1510년) 3월 28일조
[5] 문헌 《양촌선생문집》권제12;《동문선》권제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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