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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골렌 루아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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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골렌 루아얄은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1953년 세네갈 다카르에서 태어났다. 낭시 제2대학교, 파리정치대학, 프랑스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하고 행정법원 판사로 활동했다. 1978년 사회당에 입당하여 정치 경력을 시작,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보좌관, 토르빌쉬르메르 시의원, 엘리제궁 서기관 등을 역임했다. 1988년 국민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후 여러 장관직을 거쳤으며, 2004년 푸아투샤랑트 지역 주지사를 지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2008년 사회당 대표 선거에서도 패했다. 다양한 정책과 대외 관계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으며, 프랑수아 올랑드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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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골렌 루아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2년의 로열
이름마리세골렌 루아얄
출생일1953년 9월 22일
출생지프랑스령 서아프리카 다카르 (오늘날의 세네갈)
정당무소속 (2017–2021; 2023–현재)
배우자프랑수아 올랑드 (1978–2007)
자녀4명
학력낭시 제2대학교
시앙스포
ENA
서명Segolene Royal signature..jpg
공식 웹사이트https://www.facebook.com/segoleneroyal
형제자매제라르 로열 (형)
기타 정당PS (1978–2017; 2021–2023)
정치 경력
직책에콜로지 지속가능 개발 에너지 장관
총리마뉘엘 발스
베르나르 카제뇌브
임기 시작2014년 4월 2일
임기 종료2017년 5월 10일
전임자필리프 마르탱
후임자니콜라 윌로 (생태 연대 전환 장관)
직책푸아투샤랑트 지역 의회 의장
임기 시작2004년 3월 30일
임기 종료2014년 4월 21일
전임자엘리자베트 모린
후임자장프랑수아 마케르
직책가족, 아동 및 장애인 담당 장관
임기 시작2000년 3월 20일
임기 종료2002년 5월 6일
총리리오넬 조스팽
전임자마르틴 오브리
후임자장프랑수아 마테이
직책학교 교육 담당 장관
임기 시작1997년 6월 4일
임기 종료2000년 3월 27일
총리리오넬 조스팽
전임자프랑수아즈 오스탈리에 (학교 교육 담당 국무장관)
후임자자비에 다르코스 (노동, 사회관계, 가족, 연대 및 도시부 장관)
직책환경부 장관
총리피에르 베레고보이
임기 시작1992년 4월 2일
임기 종료1993년 3월 29일
전임자브리스 랄롱드
후임자미셸 바르니에
직책국민의회 의원, 되세브르 제2선거구
임기 시작2002년 6월 19일
임기 종료2007년 6월 19일
전임자장피에르 마르셰
후임자델핀 바토
임기 시작1993년 4월 2일
임기 종료1997년 7월 4일
전임자장피에르 마르셰
후임자장피에르 마르셰
임기 시작1988년 6월 23일
임기 종료1992년 5월 2일
전임자선거구 재설정
후임자장피에르 마르셰
직책되세브르 도 의원
임기 시작1992년 4월 2일
임기 종료1998년 3월 27일
선거구라모트생테레 칸톤
직책프랑스의 북극 및 남극 대사
임기 시작2017년 9월 1일
임기 종료2020년 1월 24일
전임자미셸 로카르
후임자올리비에 푸아브르 다르보
대통령에마뉘엘 마크롱

2. 성장 과정

세네갈 다카르의 우아캄 군사기지에서 1953년 9월 22일에 태어났다.[2] 아버지는 전직 포병 장교이자 보주주 샤마뉴 시장의 보좌관이었던 자크 로열이었고, 어머니는 엘렌 드아이였다. 부모에게는 9년 동안 여덟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세골렌 루아얄은 그 중 한 명이었다.

드-세브르주의 작은 마을 멜르에서 중등 교육을 마친 후, 지역 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2등으로 받았다. 이후 파리정치대학(흔히 ''파리정치대학''으로 불림)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하여 계급과 페미니즘 정치를 접하게 되었다.

1972년, 19세의 나이에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을 거부하고 자녀들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자 아버지를 고소했다. 수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1981년 아버지가 폐암으로 사망하기 직전에 승소했다. 세골렌 루아얄을 포함한 여섯 명의 자녀들은 아버지와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했다.[3]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으며, 30년간 동거했던 프랑수아 올랑드도미니크 드 빌팽[4]이 동기였다. ENA 재학 중에는 이름 앞에 붙은 "마리"를 버렸다.

1960년 이후 마르티니크에서 자랐으며 1963년 프랑스 본토로 돌아왔다. 그 후 보주주 에피날 근교에서 생활했다. 에피날의 사립 리세 생-조제프에 재학 중 바칼로레아 시험에 합격한 후 대학 진학 전까지 더블린에서 오페어로 일했다. 낭시 제2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 2등으로 졸업한 후, 시앙스포(파리정치대학)를 거쳐 에나(ENA, 프랑스국립행정학교)에 진학했다. 에나 졸업 후 행정법원 판사가 되었다. 에나 재학 시절 프랑수아 올랑드를 만났다.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와 세골렌 루아얄. 2007년 프랑스 국민의회(Assemblée nationale) 선거 사회당(Parti socialiste) 대회에서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지만, 사실상의 배우자는 사회당 제1서기였던 프랑수아 올랑드로 여겨진다. 1999년 제정된 시민연대협약(PACS)에 따라 두 사람 사이에 4명의 자녀가 있다. 2007년 6월 올랑드와의 관계 종료를 발표했다.

3. 정치 경력

1978년 사회당에 입당하여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여성운동에 적극적이었으며,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후 1980년부터 행정 법원 판사로 재직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행정부에서 환경부 장관(1992-1993)을 역임했고, 리오넬 조스팽 총리의 좌우동거(1998~2002) 시기에는 교육부 차관(1997-2000)을 역임했다.[17]

2004년 푸아투샤랑트 주지사로 당선되어 사회민주주의 정책 추진과 낙후된 지역 경제 회생에 힘썼으며, 이 과정에서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2007년 프랑스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고, 같은 해 프랑수아 올랑드와의 결별을 발표했다. 2008년 사회당 제1서기 선거에 출마했으나 마르틴 오브리에게 패배했다.

3. 1. 초기 경력

1978년 사회당에 입당했다. 1980년 행정 법원 판사(conseiller)직을 맡았다.[5] 1982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특별 고문 자크 아탈리의 참모로 발탁되었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임무 담당관'(chargée de mission)을 역임했다.[5]

3. 2. 프랑스 국회의원 활동

1988년 총선에 출마하여 서부 농촌 지역인 드-세브르주에 등록했다. 이는 유망한 파리 정치 직원들을 지방구에 후보로 임명하여 능력을 시험하는 프랑스 정치 전통인 '파라슈타주'(낙하산 공천)의 한 예였다. UDF 현직 의원과 맞붙었고, 미테랑은 "이번에는 이기지 못하겠지만, 다음에는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강력한 가톨릭 지역과 프로테스탄트 지역을 아우르는 그 지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보수당이 장악해 왔다.[6]

예상을 깨고 승리했으며, "파라슈타주로서는 착륙이 성공적이었다"는 뜻의 "''Pour un parachutage, l'atterrissage est réussi.''"라고 말했다.[6]

이후 국민의회에서 드-세브르 제2 선거구 대표(1988~1992년, 1993~1997년, 2002~2007년)를 역임했다.

3. 3. 장관직 역임

프랑수아 미테랑 행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냈고, 리오넬 조스팽 총리의 좌우동거(1998~2002) 당시에는 교육부 차관을 역임했다.[17]

2014년 4월 2일, 두 번째 발스 내각에서 생태·지속가능발전·에너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17] 2015년 1월에는 총리와 외교부 장관 다음으로 정부 서열 3위였다.[18]

역임한 장관직은 다음과 같다.

직책기간
환경부 장관1992년–1993년
교육부 장관1997년–2000년
여성가족부 장관2000년–2001년
여성가족부 장관 (장애인 담당)2001년–2002년


3. 4. 푸아투샤랑트 주지사

2004년 3월 28일, 푸아투샤랑트 지역 선거 2차 투표에서 5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 선거는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던 장피에르 라파랭 총리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그녀는 다음 주 지역 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까지 국회의원직을 유지했다. 이후 결선 투표를 조직했고, 승리자인 델핀 바토는 그녀와 루아얄의 당을 위해 해당 선거구에서 승리했다.

4.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2006년 당 경선에서, 성공한 주지사로서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출마하여 중진들을 물리치고 60% 이상의 득표로 프랑스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2007년 초반까지 여론조사에서 줄곧 중도 우파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에 앞서며 대통령 당선이 거의 확실시되었다.[8]

그러나, 기나긴 선거 과정에서 후보 자신의 잦은 말실수, 사회당에서부터 녹색당, 반(反)신자유주의연대, 프랑스 공산당 등 다양한 범진보개혁세력의 대통합에 실패하였고, 사회당 내 정책 대안의 부재 및 토니 블레어식 영국 노선의 추종 등, 우파에 비해 그다지 매력적인 캠페인과 공약을 내놓지 못하였다. 주류 보수 언론들의 사르코지 친화적인 보도 및 홍보 또한 패배의 원인이었다.[9][10]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와 함께 유력 후보로 출마하여, 전통적 좌우 대결 및 성별 대결로 관심을 모았으나, 4월 1차 투표에서 25.87% 득표로 결선에는 진출하였으나, 5월 결선 투표에서 47%의 득표율(득표수 약 1700만여 표, 200만여 표 차)을 기록하여 패하였다. (사르코지는 1차 31.18%, 2차 53%로 당선)[11]

선거 운동 중인 로열


2007년 4월 13일 툴루즈에서 세골렌 로열의 2007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지지하며 ACTA에 대한 유럽 의회의 보고자인 카데르 아리프


2005년 9월 22일, 《파리 마치》는 그녀가 2007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인터뷰를 실었다.[7] 2006년 4월 7일, 인터넷을 이용한 대선 캠페인을 시작하고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정치 강령(매니페스토)을 발표했다. 2006년 9월 28일, 리오넬 조스팽이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대통령 후보 지위는 더욱 확실해졌다.[8]

11월 16일, 로열은 프랑스 사회당 경선에서 로랑 파비우스와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을 물리치고 2007년 대통령 선거의 사회당 후보가 되었다. 사회당원들은 60.69%의 득표율로 그녀를 지지했고, 경쟁자들에게는 각각 20% 미만의 득표율을 주었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이후, 5월 6일 2차 결선 투표에서 니콜라 사르코지와 맞붙었다. 5월 6일 최종 투표에서 사르코지는 53%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11] 로열은 패배를 인정하고 사르코지에게 최선을 다해달라고 바라며 그의 지지자들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했다. 로열은 나중에 자신이 패배한 중도파 후보 프랑수아 바이루에게 자신이 당선될 경우 총리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12]

5. 2008년 사회당 대표 선거

로열은 전 사실혼 배우자 프랑수아 올랑드의 후임으로 사회당 당수 선거에 출마했다. 1차 투표에서 가장 많은 득표율을 얻었지만,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13] 결국 2차 투표에서 라이벌 마르틴 오브리에게 근소하게 패배했다.[13] 재검표 후, 오브리가 승자로 확정되자,[14] 로열은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14] 로열은 2007년 대선 패배에 대해 당 지도부와 전 파트너를 비난했다.[12]

6. 201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로얄은 2011년 프랑스 사회당 대선 후보 경선(프랑스 사회당 최초의 공개 경선)에 출마했다. 2011년 10월 9일 1차 경선에서 6.95%의 득표율로 4위에 그쳤는데, 이는 여론조사에서 예상했던 수치보다 상당히 낮은 것이었다.[15]

201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사회당 예비선거 1차 투표에서 로얄은 프랑수아 올랑드(39%), 마르틴 오브리(30%), 아르노 몽트부르(17%)에 이어 사회당 후보 6명 중 4위인 7%의 득표율에 그쳐[77], 10월 16일 치러진 사회당 예비선거 결선 투표에 진출하지 못하고 예비선거 단계에서 탈락했다.

이후 본선에서는 전 남편인 올랑드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국민들 사이에서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그녀가 화려하지 않은 전 남편을 지지하는 모습은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올랑드는 17년 만에 사회당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7. 주요 정책

세골렌 루아얄과 그의 팀이 대통령 선거에서 제시한 대부분의 정책은 주지사 시절 지역에서 성공한 정책들이다. 국민 참여 활성화를 기치로 3개월간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의 정책 제안을 수렴하여 2007년 2월에 '100대 정책'으로 발표했다.[82]

주요 정책은 다음과 같다:


  • 주 35시간 근무제 철저 준수
  • 최저임금 월 1250유로에서 1500유로로 20% 인상
  • 저가 국민임대주택 매년 12만 채씩 건설
  • 극빈층 국민연금 지급액 5% 인상
  • 무료 치료(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및 25세 이하 여성 피임약 무료 제공
  • 비행 청소년 계몽을 위한 군대형 교육 캠프 창설, 수료 지원
  • 시민 배심원의 전국 및 지방 의회 평가
  • 2020년까지 대체 에너지 20% 이상 이용 및 교토 의정서 철저 이행
  • 유럽 헌법 초안 2009년까지 제시, 국민투표로 추진 (유럽 연합 권한 및 역내 통합 강화)
  • 신규 창업 시 1만 유로 회사 설립 자금 지원
  • 50만 개 보조 일자리 마련
  • 생애 첫 주택 구매자 무이자 대출


니콜라 사르코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자들은 정책 실현 가능성, 구체적 재원 마련 계획 부족, 과도한 추진 비용을 문제 삼았다. 특히 사르코지 당시 후보를 비롯한 극우 및 보수층은 '35시간 근무제'로 인해 국가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다며 선거 기간 내내 맹렬히 비판했다.[83]

루아얄은 EU 국가 간 일자리 이동과 개발도상국으로의 아웃소싱에 반대하며, 중소기업의 유연한 근로 계약 폐지를 약속했다.[27] 정부 낭비를 줄여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추가 세금 부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28] 프랑스투자은행(Banque Publique d'Investissement) 부의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BPI의 목적은 사업을 하거나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29]

사회당 웹사이트에 따르면, 1992년부터 1993년까지 환경부 장관 재임 시절 "폐기물 처리 및 재활용에 관한 법률", "자연 환경 보존법", 100개 지역 제품에 대한 적절한 라벨링을 제공하는 "우리의 자연을 구하고, 그 산물을 즐기자" 캠페인, "소음 공해 방지법" 등을 적극 옹호하여 통과시켰고, 공항 소음 피해자들에게 보상도 제공했다.[30]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가족·아동·장애인 담당 장관으로 재직하면서,[30] 우선 교육 구역 프로그램(ZEP / zone d'éducation prioritaire) 재개, 정부 학생 급식 프로그램 신설, 초등학교 우선 언어 교육 실시, 전국 가정 교사 프로그램(Heures de Soutien Scolaire)[31] 신설, 학교 학부모 참여 프로그램("la Semaine des parents à l'école") 신설 및 학부모 대표 선출 전국 캠페인 등에 적극 참여했다. 지역 교육 및 시민 교육 계약 신설, 아동 공동 생활 교육 프로그램("Initiatives citoyennes"), "아동 권리 보호 및 학교 폭력 근절법", 고등 교육 기관 신입생 괴롭힘 관행 근절 캠페인, "폭력 및 갈취 근절 캠페인"("SOS Violence" 전화번호 구축 포함), 중등학교 시민 교육 의무화 등을 위해 활동했다.

2006년 1월, 수업 외 사교육을 하는 중등학교 교사들을 비판하며 학교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11월 해당 연설 불법 녹화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자 교사 노조인 SNES는 제안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했다.[32]

1989년, ''채널 서핑 어린이들은 지긋지긋하다''[33]라는 책을 통해 당시 특정 TV 프로그램에서 주류를 이루던 애니메이션을 어린이에게 해로운 저품질 제작물이라고 비판했다.

"부모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률", "여성의 권리 개혁 및 익명 출산에 관한 법률",[34] 육아휴직 제정, 프랑스 유치원 4만 곳 신설, ''사회 주택 개혁''[35]을 지지했다. "자녀 질병 간호를 위한 부모 휴가 및 재정 지원",[35] 특수 교육 지원, "신학기 학생 수당", "미성년자 매춘 방지법" 제공 캠페인에서 활동했다. "아동 포르노 방지법", 미디어 폭력에 대항하는 "아동과 미디어" 협회 설립, 장애 아동 및 청소년 교육과 학교 생활 통합을 위한 ''Plan Handiscole'' 제정, 대중 및 개인 교통 프로그램, "관광과 장애" 프로그램 제정을 지지했다.[36]

2009년, 콘돔 배포가 에이즈 확산을 막지 못한다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발언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며, "어떤 종교 지도자의 책임도 생명 원리를 옹호하는 것이지, 결코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37]

사회당 대통령 후보 지명 수락 당시 "여성 지위와 한 국가의 정의 또는 불의 상태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Ms. 매거진 기사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 여성은 남성 급여의 80%를 받는다.[38]

오랫동안 텔레비전 폭력을 비판해왔으며, 과거 청소년 범죄를 포르노와 텔레비전 폭력 노출과 연결하는 의견을 표명했다. M6 프로그램 ''롯트 스토리''를 인간 존엄성 원칙에 위배되고 시청자를 양질의 프로그램 제공 대신 관음증 환자로 만드는 위험을 초래한다고 묘사했다.[39]

2002년 2월, 조스팽 정부를 대신하여 발의한 법률에 따라 동성 파트너에게 일부 부모 권한이 부여될 수 있게 되었다. 이 법은 부모가 판사에게 파트너와 부모 권한을 공유하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민법 제377조를 개정했다. 추가된 제377조-1은 "위임은 자녀 교육 필요에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 또는 그중 한 명이 제3자 위임자와 부모 권한 전부 또는 일부를 공유하도록 규정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40]

2006년 6월 LGBT 간행물 ''테튀(Têtu)'' 인터뷰에서 "동성 커플에게 결혼을 허용하는 것은 평등, 가시성 및 존중의 이름으로 필요하다"고 말하고, 자신의 당이 차기 정부를 구성할 경우 동성 결혼과 입양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41]

2007년 선거 운동 웹사이트에 따르면, 보다 인간적인 교도소 정책을 옹호하고 형무소 내 더 나은 환경 조성을 지지하며, 범죄자를 재활시키고 사회에 재통합하는 시스템을 지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42]

국민 의견을 집회나 인터넷으로 수렴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참여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동성 커플 결혼 합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고복지로 상징되는 ‘북유럽형’ 사회를 목표로 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대선 공약으로 하는 등 사회적 면모를 보인다. 주요 지지자는 여성, 학생, 저소득층이다. 그러나 ‘올바른 질서’ 형성을 내세우며 비행 청소년에 대한 군대식 교육, 국기 게양과 애국가 제창을 칭송하는 등 국가주의·권위주의적 주장도 펼치고 있으며, 이는 군인이자 엄격한 교육자였던 아버지 영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고등학생 성관계에 의한 낙태 사례(연간 6000건)가 두드러졌던 프랑스에서 긴급 피임약이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입 가능하게 되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루아얄은 여성 보호, 여성 자기결정권 중시 입장(고등학생이라도 여성이 원해서 성관계를 맺는다면 문제 될 것 없다는 입장)에서 고등학교 피임약 무료 배포를 단행했다. 이 조치는 프랑스 여성들의 강한 지지를 받았지만, 보수파를 중심으로 한 성관계 규제론자들로부터 고등학생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76]

8. 논란

세골렌 루아얄은 텔레비전 폭력,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밝혀왔다.[39] 1989년 저서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비판하고, 리얼리티 프로그램 《롯트 스토리》가 인간 존엄성을 해친다고 주장했다.[33][39]

대외 관계와 관련해서도 여러 논란이 있었다. 헤즈볼라 정치인과의 만남에서 부적절한 비유를 하고, 중국 사법 체계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으며, 퀘벡 주권 운동(Quebec sovereignty movement)을 지지하는 발언 등으로 비판받았다.[45][47][49][50]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는 러시아의 주장을 옹호하고, 마리우폴 병원 공습부차 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54][55][56]

8. 1. 텔레비전 폭력 비판

루아얄은 텔레비전의 폭력성을 오랫동안 비판해 왔으며, 청소년 범죄가 포르노 및 텔레비전 폭력에 노출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를 밝혀왔다.[39] 1989년에는 《채널 서핑 어린이들은 지긋지긋하다(The Channel-Surfing Kids Are Fed-Up)》[33]라는 책을 통해, 당시 특정 TV 프로그램에서 주류를 이루던 일본 애니메이션을 어린이에게 해로운 저품질 제작물이라며 비판했다.

또한, 국제적으로 인기 있었던 《빅브라더(TV 시리즈)(Big Brother TV series)》를 모방한 M6 프로그램 《롯트 스토리》가 인간 존엄성의 원칙에 어긋나며, 시청자에게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보다는 관음증 환자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묘사했다.[39]

8. 2. 대외 관계 관련 발언

헤즈볼라 정치인 알리 아마르와의 만남에서, 루아얄은 그가 사용한 "시오니스트 단체"라는 표현에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을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 비유한 것에는 문제 삼지 않아 프랑스와 이스라엘에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레바논 주재 프랑스 대사는 루아얄이 "비판적인 발언"을 듣지 못했다는 해명을 지지했다.[45]

2007년 1월 중국 방문 중, 중국 변호사와의 대화 후 언론에 중국 법 체계가 프랑스 법 체계보다 "더 빠르다"고 언급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녀는 곧 국내 반대자들로부터 중국 사법 체계가 매년 1만 건의 사형을 집행하고, 변호사는 중국 공산당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받았다.[47] 또한, 루아얄은 중국 만리장성에서 "bravoure"(용감함) 대신 "bravitude"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프랑스어를 망쳐놓았다"는 비판을 받았다.[48]

2007년 1월, 퀘벡 주권 운동(Quebec sovereignty movement)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퀘벡과 프랑스가 "주권과 퀘벡의 자유"를 포함한 공통된 가치를 공유한다고 말했다.[49][50] 이후 코미디언 제랄드 다앙(Gérald Dahan)이 코르시카(Corsica) 독립에 대해 묻자, "모든 프랑스인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재치있게 말한 뒤, "하지만 그 말을 반복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스캔들이 생길 거예요."라고 덧붙였다.[51][52]

2007년 4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프랑스인 두 명을 납치한 사건에 대해 논평하면서, 유엔이 탈레반과 같은 정권에 대해 제재를 가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로열이 탈레반이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제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었다.[53]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로열은 NATO가 전쟁의 책임이 있다는 러시아의 견해를 반복적으로 지지했으며, 마리우폴 병원 공습부차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허위 주장했다. 그녀는 이러한 사건들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전쟁 선전"이라고 주장했다. 로열의 주장은 사회당 당수와 유럽 의회 의원에게 비난받았다.[54][55][56]

2017년, 아프리카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Africa Renewable Energy Initiative)에서 유바 소코나(Youba Sokona)가 사퇴하면서, 세골렌 루아얄이 아프리카의 리더십을 약화시켰다는 비난이 제기되었다.[60] 이 이니셔티브는 2017년에 폐기되었다.[61]

9. 사생활

국립행정학교(ENA)에서 프랑수아 올랑드를 만나 1970년대 후반부터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62] 두 사람 사이에는 토마(1984년생), 클레망스(1985년생), 쥘리앙(1987년생), 플로라(1992년생) 등 네 명의 자녀가 있다. 두 사람은 결혼을 너무 "부르주아"적이라고 생각하여[62] 결혼하지 않았고, 당시 소문과는 달리 시민연대협약(PACS, 성별에 관계없이 두 명의 성인 간의 시민적 결합을 허용하는 제도)도 맺지 않았다.[63]

2007년 6월, 총선 당일 저녁 한 뉴스 에이전시가 두 사람의 결별 소식을 보도했다.[64] 가디언지에 따르면, 루아얄이 올랑드에게 "집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했고, 올랑드가 새로운 애정 관계를 추구했다고 하는데, 이는 저널리스트들이 올랑드가 한 기자와 장기간 불륜 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한 책과 신문 기사들을 언급한 것이다.[65]

루아얄의 장남 토마 올랑드는 대선 후보 시절 어머니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젊은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 웹사이트 제작에 참여했다.[66]

그녀의 남동생 앙투안은 형 제라르 로열이 그린피스 선박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침몰시킨 폭탄 설치범이라고 주장했다.[67][68][69] 그러나 다른 자료들에서는 이 주장이 과장되었으며 제라르가 후방 지원팀의 일원이었다고 주장한다.[70]

10. 평가

세골렌 루아얄은 프랑스 사회당 소속 정치인으로,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며 주목받았다.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와 리오넬 조스팽 정부에서 장관 및 차관을 역임했으며, 푸아투샤랑트 주지사 시절에는 낙후된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여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81]

참여 민주주의 방식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일부 정책과 발언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2006년 노동 쟁의 당시 CPE 법안에 반대하며 지역 보조금 지급 중단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주목할 만한 사례이다.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후 프랑수아 바이루에게 총리직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12]

11.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직책명대수정당1차 득표율1차 득표수2차 득표율2차 득표수결과당락
1988년 선거하원의원 (되세브르 제2선거구)9대사회당38.42%16,903표50.57%24,426표1위--
1992년 선거되세브르 캉통13대사회당43.50%-51.04%-1위
레피레네카탈란 캉통 당선
1993년 선거하원의원 (되세브르 제2선거구)10대사회당42.41%19,923표53.44%26,437표1위--
1995년 선거니오르 시장-사회당32.29%7,907표32.09%8,423표3위낙선
1997년 선거하원의원 (되세브르 제2선거구)11대사회당49.11%22,426표61.82%29,377표1위--
1998년 선거되세브르 캉통14대사회당43.73%-48.38%-2위낙선
2002년 선거하원의원 (되세브르 제2선거구)12대사회당46.21%21,816표55.05%25,123표1위--
2004년 선거푸아투샤랑트 주지사4대사회당46.29%350,467표55.10%448,950표1위
푸아투샤랑트 주지사 당선
2007년 선거대통령23대사회당25.87%9,500,112표46.94%16,790,440표2위낙선
2010년 선거푸아투샤랑트 주지사4대사회당38.98%240,885표60.61%392,292표1위
2012년 선거하원의원 (샤랑트마리팀 제1선거구)14대사회당32.03%19,005표37.03%22,667표2위낙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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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Ségolène Royal http://live.worldban[...] World Bank 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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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뉴스 Ségo returns to her 'political laboratory' to savour victory https://www.theguard[...] 2006-11-18
[5] 뉴스 Ségolène Royal: First female presidential candidate http://www.cnn.com/2[...] CNN 2007-04-16
[6] 웹사이트 Biographie : Ségolène Royal http://www.lepoin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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