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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하 통신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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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나하 통신시설은 오키나와에 위치한 미군 통신 시설이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 이후 미군이 점령한 비행장에서 시작되어, 한국 전쟁 이후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이후 시설이 축소되었고, 1995년 SACO 합의에 따라 통신 기능이 도리이 스테이션으로 이전되었다. 2006년 대부분의 토지가 반환되었으며, 현재는 소규모 시설만 남아 미군의 통신 및 방송 중계 기능을 일부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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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하 통신시설 - [지명]에 관한 문서
세부 정보
명칭세나하 통신시설
원래 명칭Senaha Communication Site
위치오키나와현 요미탄촌
1973년 2월 10일 촬영된 국토지리원의 항공사진(OK723Y), 분홍색이 세나하 통신시설의 면적
1973년 2월 10일 촬영된 국토지리원의 항공사진(OK723Y), 분홍색이 세나하 통신시설의 면적
종류주둔지
규모0.1 ha
사용1972년 ~ 현재
공공 개방아니요
통제제5공군

2. 역사

1945년 4월 오키나와 전투에서 제8공군이 일본군 비행장을 점령하고 볼로 비행장으로 개명하여 1년간 사용 후, 전쟁 물자 집하 및 보급소로 활용하였다. 한국 전쟁 이후 가데나와 나하 주둔 공군 부대의 훈련장으로 사용되다가, 미 육군 관할로 변경된 후에는 볼로 지점(Bolo Point영어)으로 개명되어 사격연습장으로 쓰였다.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시점에 오키나와 주둔 미군 토지 대부분이 반환되었고, 볼로 지점 동쪽에 남은 부분이 세나하 통신시설이 되었다.[1]

1995년 미국-일본 정부 간 오키나와에 관한 특별행동위원회 협약에 따라 오키나와 주둔 미군 시설 재배치 및 통합, 축소가 이루어졌다. 2006년 통신기기를 도리이 스테이션으로 이전하고, 마이크로파 통신용 위성접시가 설치된 방송탑 부지 0.1ha를 제외한 나머지 토지가 반환되었다.[1][2]

2. 1. 미군 점령과 시설 설치 (1945년~1972년)

1945년 4월 오키나와 전투에서 제8공군이 일본군 비행장을 점령하고 볼로 비행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종전 후에는 각종 물자 집하 및 보급소로 사용되었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가데나와 나하에 주둔한 공군 부대의 훈련장으로 쓰이다가, 미국 육군의 관할로 변경된 후에는 볼로 지점(Bolo Point영어)으로 개명되어 사격연습장으로 사용되었다.[1]

2. 2. 오키나와 반환과 시설 축소 (1972년~2006년)

1972년 오키나와 반환을 기점으로 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대부분의 토지가 반환되었고, 볼로 지점 동쪽에 남은 부분이 세나하 통신시설이 되었다.[1][2]

1995년 미국과 일본 정부 간의 오키나와에 관한 특별행동위원회에서 오키나와에 남은 미군 시설을 재배치하거나 합치거나 규모를 줄이는 협약을 맺었다. 도리이 스테이션으로 나머지 통신기기를 모두 옮겼고, 2006년 마이크로파 통신용 위성접시가 설치된 방송탑이 있는 0.1ha의 공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토지가 반환되었다.[1][2]

2. 3. 부분 반환과 현재 (2006년~현재)

1995년 미국과 일본 정부 간의 오키나와에 관한 특별행동위원회에서 오키나와에 남은 미군 시설을 재배치하거나 합치거나 규모를 줄이는 협약을 맺었다. 도리이 스테이션으로 나머지 통신기기를 모두 옮겼고, 2006년 마이크로파 통신용 위성접시가 설치된 방송탑이 있는 0.1ha의 공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토지가 반환되었다.[1][2]

3. 시설 현황

현재 세나하 통신시설은 매우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4. 한국의 관점

대한민국,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참조

[1] 저널 沖縄の米軍基地 沖縄県総務部知事公室基地対策室
[2] 문서 U.S. Military Issues in Okinawa https://www.pref.oki[...] 오키나와현청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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