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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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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겸은 삼국 시대 오나라의 장수로, 손책과 손권을 섬겼다. 195년 곡아 전투에서 손책을 경호했으며, 유요 공격에 참여했다. 손권 시대에는 209년 합비 전투, 214~215년 소요진 전투, 221~222년 이릉 전투에 참전했다. 이릉 전투에서 유비군을 격파하고 백제성 공격을 제안했으나 육손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합비 전투에서 악진에게 죽는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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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송겸 (宋謙)
생몰년도미상
출신지미상
소속손책, 손권
상세 정보
주요 활동손책 휘하에서 종군
손권 휘하에서 종군
관직장군
생애
초기 생애송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음.
손책 휘하 활동
손책 휘하에서의 역할송겸은 손책을 따라 여러 전투에 참여함. 구체적인 공적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손책의 신임을 얻었던 것으로 보임.
손권 휘하 활동
손권 휘하에서의 역할손책 사후, 송겸은 그의 동생인 손권을 섬김. 손권 휘하에서도 장군으로서 활동하며 오나라의 안정에 기여함.
죽음
사망 원인 및 시기송겸의 사망 원인과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음.

2. 생애

송겸의 생애에 대한 정보는 후한 말과 삼국 시대의 역사를 다루는 권위 있는 자료인 ''삼국지''의 여러 인물 열전에 산재되어 있다. 그의 출신(예: 출생지, 관향), 자, 관직, 임명 등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 송겸은 195년경 군벌 손책 휘하에서 경력을 시작했는데, 이는 손책이 강동 지역에서 정벌을 벌이던 중 경쟁 군벌 유요를 격파한 직후였다. 200년 손책이 사망한 후, 그는 손책의 동생이자 후계자인 손권 휘하에서 계속 복무했다.

215년 합비 전투222년 이릉 전투에 참전한 기록이 있다. 송겸에 관한 부분은 위의 부분뿐이며, 황개 등 무관으로서 공적을 세운 자들이 실리는 '오서' 제10에도 입전되지 않았다. 다른 인물의 전에 부전되거나, 배송지의 주석에도 상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아, 자(字)나 생몰년, 관위 등이 불명이다.

2. 1. 손책 시대 (195년 ~ 200년)

195년, 손책을 섬기며 곡아 전투에서 손책이 태사자와 싸울 때 한당, 황개와 함께 손책의 경호를 담당했다.[1] 정사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면, 흥평 2년(195년)에 손책의 부하로서 유요를 공격하는 데 참여했으며, 유요 군의 태사자가 손책에게 일기토를 걸었을 때 손책을 따르던 13명의 기병 중 한 명이었다.

2. 2. 손권 시대 (200년 ~ 222년 이후)

200년 손책이 사망한 후, 송겸은 손책의 동생이자 후계자인 손권 휘하에서 계속 복무했다. 209년, 손권을 따라 합비 전투에 참전하였다.

222년, 유비가 쳐들어 왔을 때, 육손의 지휘 아래 한당, 주연, 반장, 서성, 순우단, 손환 등과 함께 유비군을 격파하였다.[2] 이릉 전투 이후 송겸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2. 2. 1. 소요진 전투 (214년 ~ 215년)

214년에서 215년 사이에 송겸은 소요진 전투에서 손권 편에서 조조의 군대와 싸웠다. 초기 교전에서 송겸과 서성이 이끄는 부대는 조조의 장군 장료에게 패했다. 그들이 도망치자, 손권 휘하의 반장이 도주병 2명을 처형하고 다른 병사들에게 전투로 돌아가도록 강요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권과 그의 군대는 소요진에서 큰 패배를 겪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14세기 역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송겸이 소요진 전투에서 조조 휘하의 장수 이전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2. 2. 2. 이릉 전투 (221년 ~ 222년)

222년, 유비가 쳐들어 왔을 때, 오나라의 육손의 지휘 아래 한당, 주연, 반장(潘璋), 서성(徐盛), 순우단(淳于丹), 손환(孫桓) 등과 함께 촉한의 유비군을 격파하였다.[2] 송겸은 이릉 전투에서 적의 다섯 개 진영을 공격하여 파괴하고 지휘관들을 죽였다.[2]

유비가 이릉 전투에서 패배한 후 백제성으로 후퇴했을 때, 송겸은 그 기세를 몰아 백제성을 공격하여 유비를 사로잡을 것을 손권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육손은 손권의 또 다른 경쟁자인 조비가 이 틈을 타 오나라의 영토를 침략할 것을 예상했기에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송겸

방천화극의 명수로 불린다.

삼국지연의에서 송겸은 209년, 손권과 함께 합비 전투에 참전했을 때 등장한다. 손권에게 도전해온 악진을 격파하였으나, 이전이 쏜 활에 맞아 전사하였다.[1] 14세기 역사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중국의 삼국 시대 전후의 사건들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작품인데, 소설에서 송겸은 소요진 전투에서 군벌 조조 휘하의 장수인 이전에게 죽임을 당한다.[2]

적벽 대전 직후 손권이 합비성을 공격했을 때, 가화와 함께 손권의 호위로 출진한다. 본진으로 쳐들어온 악진을 맞이하여 공격하고, 악진이 철수하자 추격하지만, 이전이 쏜 화살이 심장에 명중하여 전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손권은 송겸의 죽음을 슬퍼하며, 태사자를 복수를 위해 출진시킨다.

참조

[1] 서적 Sanguozhi vol. 55
[2] 서적 Sanguozhi vol.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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