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개목사 원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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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동 개목사 원통전은 경상북도 안동시에 위치한 관세음보살을 모신 건물이다. 신라 신문왕 때 의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며, 조선 세조 3년(1457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심포계 맞배지붕 양식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자연석 기단 위에 세워졌다. 1969년 해체 보수와 1970년 부분 보수를 거쳤으며, 내부에는 연등천장과 불단이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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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개목사 원통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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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개목사 원통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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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보물 |
번호 | 242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개목사길 362, 개목사 (태장리) |
시대 | 조선시대 |
관리 | 개목사 |
수량 | 1동 |
지도 | 대한민국 |
꼬리표 | 안동 개목사 |
문화재청 ID | 12,02420000,37 |
2. 역사
신라 신문왕(681년~692년) 때 의상이 창건했고, 조선 세종(1418년~1450년) 때 맹사성이 흥국사를 개목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세조 3년(1457년)에 건립되었으며, 1969년과 1970년에 보수공사를 했다.
2. 1. 창건 설화와 고려 시대
신라 신문왕 때(681년~692년)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2. 2. 조선 시대
신라 신문왕(재위 서기 681년~692년) 때 의상이 개목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세종(재위 서기 1418년~1450년) 때 맹사성이 흥국사를 개목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세조 3년(1457년)에 건립되었다. 1969년에는 번와, 불단 보수를 포함한 해체보수가 이루어졌고, 1970년에는 기단, 창호, 단청 공사를 포함한 부분 보수가 진행되었다.2. 3. 근현대
신라 신문왕(681년~692년) 때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세종(1418년~1450년) 때 맹사성이 흥국사를 개목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세조 3년(1457년)에 건립되었다. 1969년 해체보수(번와, 수미단 보수)를 하였고, 1970년 부분보수(기단, 창호, 단청공사)를 하였다.3. 배치
개목사는 경상북도 안동시 천등산 줄기에 있는 사찰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중 하나인 봉정사에서 동북쪽으로 약 30분 거리에 있다. 신라 신문왕 때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으며, 흥국사로 불리다가 후에 개목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사찰은 소규모 영역에 남북 축을 기준으로 원통전이 북쪽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 남쪽에 문간채, 서쪽에 요사채, 동북쪽에 산신각이 있으며, 이 주위는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담장 밖 동쪽에는 승방이 있다.
4. 건축 양식
안동 개목사 원통전은 주심포계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정칸 1칸, 전면 퇴칸 1칸) 구조이다. 1457년(조선 세조 3년)에 건립되었으며, 1969년 해체 보수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전면은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와 외벌대 장대석을 돌려 만든 기단 위에 자연석 기초를 놓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다. 전면 퇴(退)에는 벽체 없이 바닥에 우물마루를 깔았고, 전내(殿內) 쪽으로는 중앙칸(어칸) 사분합(四分閤)과 협칸 삼분합의 정자(井字)살문을 달았다. 동서 양측 벽은 심벽으로 막았다. 건물 후면에는 동측칸에만 정자살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게 하였다. 내부 바닥 역시 우물마루를 짜고 주심포계의 화려한 가구 수법이 드러나는, 천장 없는 연등천장을 구성하였다.
건물 측면은 전면 퇴칸이 낮게 덧달린 것처럼 느껴지며, 기둥은 한층 낮추어 장연(長椽)의 구배(물매)대로 내려와 처마도리에 걸칠 수 있게 외주(外柱) 높이를 조정하고 있다. 이 기둥 위에서 짜여진 퇴보(退樑)는 그 안에 있는 평주(平柱) 상부에 끼워 맞추어졌다. 그러므로 측면의 박공은 전면부가 배면부보다 길게 앞으로 나와 있다. 비슷한 양식의 건물로 강화 정수사 법당을 들 수 있다.
4. 1. 지붕 및 기둥
안동 개목사 원통전은 주심포계 맞배지붕을 한 건물로, 지붕은 정면 3칸, 측면 2칸(정칸 1칸 + 전면 퇴칸 1칸) 구조이다. 전면은 자연석 축대와 장대석 기단 위에 자연석 기초를 놓고 그 위에 세워졌다. 전면 퇴칸에는 벽 없이 우물마루를 깔았고, 내부에는 정자(井字)살문(사분합, 삼분합)을 달았다. 측면 벽은 심벽으로 막았고, 후면 동측칸에는 정자살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다. 내부는 우물마루와 연등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건물 측면은 퇴칸이 낮게 덧달린 듯하며, 기둥 높이를 조정하여 처마도리에 걸치게 퇴보를 평주 상부에 끼워 맞췄다. 따라서 측면 박공은 전면부가 배면부보다 길게 앞으로 나와 있다. 강화 정수사 법당과 유사한 형태이다.
기둥은 배흘림이 약간 있고, 측면 배면 기둥과 중간 기둥 높이는 같으며, 전면 기둥만 전퇴칸으로 약간 낮다. 내부 가구는 전후 양측 평주 위에 대량을 걸고, 파련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걸고, 파련대공과 소슬합장으로 종도리를 받치는 형식이다. 중앙 기둥 앞으로 퇴보를 걸고 단주를 놓아 도리를 받치게 한 퇴칸 가구가 종속된 가구이다.
도리는 7량가의 구조이며, 서까래는 전면과 배면 구조가 약간 다르다. 전면과 후면 서까래는 모두 단연과 장연을 사용한다. 처마는 전후면 모두 부연을 설치한 겹처마이며, 초매기와 이매기를 갖춘 구조이다.
공포는 배면 기둥 위에 출목이익공과 유사한 1출목의 주심포를 갖고 있다. 제1살미가 기둥을 관통하고, 주두 위에 제2살미를 올리고 대량을 얹었다. 제2살미 위에 첨차를 가로놓아 외출목도리를 받치고, 살미 외단은 익공처럼 뾰족하게 휘어 올라간 초각을 하고, 내부로는 당초문과 안초공이 합쳐진 양봉을 만들었다. 보뺄목은 봉두형으로 조각되어 있다.
배면 하중도리 내면 하부에는 베게목을 놓았고, 전면은 하중도리 전후로 베게목을 대어 도리의 굴림을 막았다. 기둥 사이 창방은 좁은 단면을 보이며, 주두 위에 같은 방향의 첨차를 올렸다. 내부 전면 평주 위 공포는 배면과 같으나, 외출목이 생략되고 퇴보 내단부가 결구되어 있다.
주두 위 제2살미 끝은 수평에 맞추어 조각하고, 대량의 보뺄목도 약간 둔하다. 전퇴칸 단주 위 공포는 이익공식에 유사하며, 창방 자리에 첨차가 끼워져 있고, 퇴보 뺄목을 2단으로 꺾은 화두아 형태이다. 첨차는 공안을 깊게 파고 소로를 얹어 장여와 함께 외출목도리를 받들고 있어 고식 가구법임을 알 수 있다.
정면 기둥 첨차는 우주와 평주에 놓이는 두 가지 방식이다. 우주 첨차 외단면 마구리는 쇠서로 초각하고, 내단면은 교두형으로 처리했다. 교두형 부분 윗면은 공안을 어깨만 따는 후대 기법을 사용했다. 주심첨차 위 뜬장혀 뺄목 초각이 쇠서형인 것이 특징이며, 내부 전면 기둥 첨차는 교두형을 사용하고 윗면 공안은 어깨따기 수법을 사용했다.
종량 아래 파련동자주는 내측으로 양봉형을 하고 양 외단으로 보뺄목을 받치며, 첨차를 끼워 중도리 장혀를 받게 했다. 종량 양끝에는 중도리를 앉히고 소슬합장을 걸쳐 종도리를 받들게 했으며, 소슬합장은 약간 내반된 곡선을 보인다. 종도리 밑에는 파련대공을 조각하고 첨차를 직교시켜 장혀를 받들게 했다.
건물 귀솟음은 약 1~2치 정도로 추정되나, 현재 변주 침하로 창방이 처진 우주도 있다. 처마 곡선은 중앙에서 좌우측으로 가면서 1자 정도 높여 앙곡을 이루었다.
건물 내부 후측에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단이 있고, 그 위에 닫집이 아닌 보개를 간략하게 장식했다.
이 건물은 1969년 해체보수 시 상량문을 통해 조선 세조 3년(1457)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2. 내부 구조
관세음보살을 모신 본전(本殿)인 원통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정칸 1칸에 전면 퇴칸을 더함) 크기의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자연석 축대와 장대석 기단 위에 자연석 기초를 놓고 건물을 세웠다. 전면 퇴칸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어칸에는 사분합, 협칸에는 삼분합 정자(井字)살문을 달았다. 동서 양측 벽은 심벽으로 막았고, 후면 동측칸에는 정자살문을 달아 출입한다.내부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천장 없이 연등천장으로 구성하여 주심포계의 화려한 가구 수법을 드러냈다. 측면의 박공은 전면부가 배면부보다 길게 앞으로 나와 있다. 강화 정수사 법당과 유사한 형태이다.
기둥은 약간의 배흘림이 있고, 측면 배면 기둥과 중간 기둥 높이는 같으며, 전면 기둥은 전퇴칸으로 인해 약간 낮다. 내부 가구는 전후 양측 평주 위에 대량을 걸고, 파련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걸었다. 종량 상부에는 파련대공과 소슬합장을 세워 종도리를 받친다. 중앙 기둥 앞으로 퇴보를 걸고 단주를 놓아 도리를 받치게 한 퇴칸 가구가 종속되었다.
도리는 7량가의 구조이며, 전면과 배면 서까래 구조는 약간 다르다. 전면 서까래는 단연과 장연을, 후면 서까래는 종도리와 상중도리에 단연을 걸고, 상중도리에서 배면 기둥 상부의 하중도리와 외출목도리에 장연을 걸었다. 처마는 겹처마로, 초매기와 이매기를 갖추었다.
공포는 배면 기둥 위에 출목이익공과 유사한 1출목의 주심포를 갖는다. 기둥 위에 내외로 돌출한 제1살미(초제공)가 기둥을 관통하고, 주두 위에 제2살미(2제공)를 올리고 대량을 얹었다. 제2살미 위에 첨차를 가로놓아 외출목도리를 받쳐 구조를 견고히 했다. 살미 외단은 익공처럼 뾰족하게 휘어 올라간 초각을 하고, 내부로는 당초문과 안초공이 합쳐진 양봉을 만들었다. 보뺄목은 수장폭으로 좁게 빠져나와 봉두형으로 조각되었다.
배면 하중도리 내면 하부에는 베게목을 놓아 도리를 얹혔고, 전면은 하중도리 전후로 베게목을 대어 도리 굴림을 막았다. 기둥 사이 창방은 좁은 단면을 보이며, 주두 위에 같은 방향의 첨차를 올렸다. 내부 전면 평주 위 공포는 배면과 같으나, 외출목이 생략되고, 제1살미 자리에 퇴보 내단부가 결구되었다. 주두 위 제2살미 끝은 부재 수평에 맞춰 조각하고, 대량 보뺄목은 수장폭이나 둔하다. 전퇴칸 단주 위 공포는 이익공식에 유사하며, 창방 자리에 첨차가 끼워져 있고, 주두 밑 살미 외부 외단은 익공 형태로 뾰족하게 올리고, 퇴보 뺄목은 2단으로 꺾은 화두아 형태이다.
첨차는 공안을 깊게 파서 얹고 양단에 소로를 얹어 장여와 함께 외출목도리를 받든다. 정면 기둥 첨차는 우주와 평주에 놓이는 두 가지 방식이다. 우주 첨차 외단면 마구리는 쇠서로 초각, 내단면은 교두형 처리, 교두형 부분 윗면은 공안 어깨만 따는 후대 기법이다. 주심첨차 위 뜬장혀 뺄목 초각은 쇠서형으로 외단면 주심첨차 초각 방법과 같다. 내부 전면 기둥 첨차는 교두형, 윗면 공안은 어깨따기 수법이다.
종량 아래에는 파련동자주를 대칭으로 놓고 양봉형을 하고 양 외단으로 보뺄목을 받친다. 첨차를 끼워 중도리 장혀를 받게 했다. 종량 양끝에는 중도리를 앉히고 내단에 소슬합장을 걸쳐 종도리를 받들게 했으며, 소슬합장은 약간 내반된 곡선이다. 종도리 밑에는 파련대공을 조각하고 첨차를 직교시켜 장혀를 받들게 했다.
건물 귀솟음은 약 1~2치 정도로 추정되나, 현재 변주 침하로 창방이 처진 우주도 있다. 처마 곡선은 중앙에서 좌우측 변으로 가면서 1자 정도 높여 앙곡을 이루었다.
건물 내부 후측에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단이 있고, 그 위에 닫집 대신 보개(寶蓋)를 간략하게 장식하였다.
1969년 해체보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조선 세조 3년(1457)에 건립되었다.
4. 3. 공포
안동 개목사 원통전의 공포는 배면 기둥 위에 출목이익공(二翼工)과 유사한 1출목의 주심포(柱心包)를 갖고 있다. 기둥 위에 내외로 돌출한 제1살미(초제공)가 기둥을 관통하여 맞추어졌고 이 위에 주두(柱頭)를 올려놓아 다시 이 위에 제2살미(2제공)를 올리고 그 위에 대량을 얹어 놓았다. 제2살미 위에 1.3자 외부로 첨차(檐遮) 하나를 가로놓아 외출목도리를 받게하여 구조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살미의 외단은 익공(翼工)과 같이 끝이 뾰족하게 휘어 올라간 초각을 하고 있고 내부로는 당초문(唐草文)과 안초공(按草工)이 합친 것과 같은 양봉(樑奉)을 만들고 있다. 또 보뺄목은 주심에서부터 수장폭으로 좁게 빠져나와 외목도리(外目道里)에서 봉두형(鳳頭形)을 하여 밖으로 조각되고 있다.배면 하중도리 내면 하부에는 베게목을 놓아 도리(道里)를 얹히게 했고, 전면은 하중도리 전후로 베게목을 대어 도리의 굴림을 막고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창방(昌枋)은 수장폭으로 된 좁은 단면을 보이며, 주두 위에는 같은 방향의 첨차를 올려놓았다. 내부로 보아 전면 평주 위에 짜여진 공포는 배면의 공포와 같게 짜여졌으나 다른 점은 외출목이 생략되고, 익공형의 제1살미가 없으며, 생략된 제1살미의 자리에 퇴보의 내단부가 결구되어있다.
주두 위에 놓인 제2살미의 끝은 후면과 같이 부재 위까지 높게 올리지 않고 부재 수평에 맞추어 조각하고 있으며 대량의 보뺄목도 수장폭으로 나오긴 했으나 그 모습이 약간 둔하다. 또 전퇴칸의 단주 위에 짜인 공포 역시 이익공식에 유사하게 짜여졌는데 여기서는 기둥과 기둥사이 창방이 없고, 창방이 끼일 자리에 첨차가 끼어져 있고 주두 밑에 돌출한 살미의 외부 외단도 배면 공포와 같이 익공 형태로 부재 위로 뾰족하게 올리고 퇴보의 뺄목을 2단으로 꺽은 화두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첨차는 공안(栱眼)을 깊게 파서 얹어놓고 그 양단에는 소로(小累)를 얹어 이 소로는 주두와 함께 장여를 받아 외출목도리를 받들고 있는데 정면에서 볼 때 고식(古式)의 가구법임을 알 수 있다.
정면 기둥에 사용된 첨차의 경우 크게 우주와 평주에 놓이는 2가지 방식으로 분류된다. 우주 첨차의 경우 외단면의 마구리는 쇠서로 초각을 하였고, 내단면으로는 교두형으로 처리하였다. 교두형으로 처리된 부분의 윗면은 공안을 어깨만 따는 형식으로 후대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주심첨차위에 뜬장혀 뺄목의 초각이 쇠서형으로 외단면의 주심첨차의 초각방법과 같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내부 전면 기둥의 첨차는 교두형을 사용하였고, 윗 면의 공안은 어깨따기수법을 사용하였다.
종량 아래에는 양측에 파련동자주를 대칭으로 놓고 이것이 내측으로는 양봉형(樑奉形)을 하고 양 외단으로 보뺄목을 받치고 있다. 여기에도 첨차를 끼워 중도리 장혀를 받게 하였다.
종량의 양끝에는 중도리를 앉히고 그 내단에 소슬합장을 걸쳐 이것이 종도리를 받들게 하고 있으며 소슬합장은 약간의 내반된 곡선을 보이고 있다.
종도리 밑에는 파련대공을 조각하여 역시 여기에도 첨차 하나를 직교시켜 장혀를 받들게 하였다.
4. 4. 세부 장식
안동 개목사 원통전은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세부 장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 기둥: 배흘림이 약간 있고, 측면 배면 기둥과 중간 기둥의 높이는 같다. 전면 기둥만 약간 전퇴칸으로 낮다.
- 가구:
- 전후 양측 평주 위에 대량을 걸고, 파련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걸었다.
- 종량 상부에 파련대공과 소슬합장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 중앙 기둥 앞으로 퇴보를 걸고, 단주를 놓아 도리를 받치도록 한 퇴칸 가구가 종속되었다.
- 도리: 7량가의 도리 구조이며, 전면과 배면의 서까래 구조가 약간 다르다.
- 전면 서까래: 단연과 장연을 사용한다.
- 후면 서까래: 단연과 장연을 사용한다.
- 처마: 겹처마이며, 초매기와 이매기를 갖춘 구조이다.
- 공포:
- 배면 기둥 위: 출목이익공과 유사한 1출목의 주심포를 갖고 있다.
- 기둥 위에 내외로 돌출한 제1살미 (초제공)가 기둥을 관통하여 맞추어졌다.
- 제2살미 (2제공) 위에 대량을 얹었다.
- 제2살미 위에 1.3자 외부로 첨차를 가로놓아 외출목도리를 받게 하여 구조를 견고히 했다.
- 살미 외단은 익공과 같이 끝이 뾰족하게 휘어 올라간 초각을 했다.
- 내부로는 당초문과 안초공이 합친 것과 같은 양봉을 만들었다.
- 보뺄목은 주심에서부터 수장폭으로 좁게 빠져나와 외목도리에서 봉두형으로 조각되었다.
- 배면 하중도리 내면 하부: 베게목을 놓아 도리를 얹혔다.
- 전면 하중도리 전후: 베게목을 대어 도리의 굴림을 막았다.
- 전면 평주 위: 배면 공포와 같으나, 외출목이 생략되고, 익공형의 제1살미가 없으며, 퇴보의 내단부가 결구되어 있다.
- 전퇴칸 단주 위: 이익공식에 유사하며, 창방이 없고, 창방 자리에 첨차가 끼어져 있다.
- 첨차:
- 공안을 깊게 파서 얹고, 양단에 소로를 얹어 장여를 받아 외출목도리를 받들고 있다.
- 정면 기둥: 우주와 평주에 놓이는 2가지 방식으로 분류된다.
- 우주 첨차: 외단면 마구리는 쇠서로 초각, 내단면은 교두형으로 처리. 공안은 어깨만 따는 형식.
- 주심첨차 위 뜬장혀 뺄목: 쇠서형 초각.
- 내부 전면 기둥 첨차: 교두형, 공안은 어깨따기 수법.
- 종량:
- 아래에 양측 파련동자주를 대칭으로 놓고, 내측 양봉형, 양 외단 보뺄목을 받치고 있다.
- 첨차를 끼워 중도리 장혀를 받게 했다.
- 양끝에 중도리를 앉히고, 내단에 소슬합장을 걸쳐 종도리를 받들게 했다.
- 소슬합장은 약간 내반된 곡선을 보인다.
- 종도리: 밑에 파련대공을 조각하고, 첨차 하나를 직교시켜 장혀를 받들게 했다.
- 귀솟음: 종단으로 보았을 때 전후열과 어칸 주열에서 주장으로 보아 약 1~2치 정도로 생각되나, 현재 변주 침하로 창방이 처진 우주도 있다.
- 처마 곡선: 중앙에서 좌우측 변으로 가면서 1자 정도 높여 앙곡을 이루었다.
- 내부: 후측에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단이 있고, 그 위에 닫집이 아닌 보개를 간략하게 장식하였다.
4. 5. 불단과 닫집
건물 내부 뒤쪽에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단(佛壇)이 있고 그 위에는 닫집이 아닌 보개(寶蓋)를 간략하게 장식하였다.5.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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