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안병범 (1890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안병범은 대한제국 말기에 일본 유학 후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으며, 영친왕 시종무관과 일본군 보병 대좌를 지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대한민국 국군에 참여하여 육군 대령으로 복무했으며, 한국 전쟁 발발 당시 국방부 수도방위대 자문위원과 육군 제103여단장을 역임했다.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자 인왕산에서 자결했으며, 사후 준장으로 추서되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 사망자 - 채병덕
    채병덕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 창설에 참여하여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했으나, 한국 전쟁 초기 서울 방어 실패의 책임을 지고 해임된 군인이며, 2005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 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 사망자 - 이상근 (군인)
    이상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육군사관학교 1기로 임관하여 군인의 길을 걸었으며, 영화 《증언》에서 배우 김진규가 연대장 역할로 그를 연기했다.
  • 죽산 안씨 - 안국선
    안국선은 조선 후기 소설가이자 저술가로, 『금수회의록』, 『공진회』 등의 소설과 『외교통의』, 『정치원론』 등의 저술을 통해 정치,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그의 할아버지는 안광묵, 생부는 안직수, 양부는 안경수이다.
  • 죽산 안씨 - 안성현
    안성현은 일제강점기 나주 출신으로 도호 음악학교를 졸업한 작곡가이며, 대표작으로는 동요 〈엄마야 누나야〉와 가곡 〈부용산〉이 있고, 한국 전쟁 중 월북하여 북한 공훈예술가가 되었으나 남한에서는 그의 업적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 일제강점기의 장교 - 윤태일 (1918년)
    윤태일은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기업인이며, 박정희 정권에서 서울특별시장과 대한주택공사 총재,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만주군 복무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장교 - 김동하 (1918년)
    김동하는 일제강점기 만주군 장교이자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에 참여한 군인, 정치인으로,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역임했으나 반혁명사건에 연루되었고, 만주군 복무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안병범 (1890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null
씨명안병범
한글 표기안병범
한자 표기安秉範
출생1890년 8월 21일
출생지한성부 (현재 서울)
사망지서울 인왕산
군 복무1914 - 1945 (일본 육군)
1945 - 1950 (한국 육군)
최종 계급육군 대좌 (일본 육군)
육군 준장 (한국 육군)
묘소국립서울현충원 제1장군묘역 232호
본관죽산(竹山)
자녀장남 안광호(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준장 전역)
차남 안광수(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대령 전역)
군 경력
복무 기간1909년 ~ 1950년
근무육군 제103여단
지휘여단장
주요 참전 전투/전쟁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기타 이력
서훈 내역null

2. 생애

한성부 출신으로 대한제국 말기에 무관 생도로 일본에 유학했다.[16] 육군중앙유년학교를 거쳐 1912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근무했다. 영친왕 시종무관과 일본군 보병 대좌를 지냈으며, 아들 안광수도 일본육사에 진학시켰다.[17] 태평양 전쟁 종전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과 함께 1948년 육군사관학교에서 1주일 동안 훈련을 받은 뒤 제8기 졸업생이 되었다.[18] 안광수와 함께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계급도 같은 육군 대령이 되었다.

1945년 8월 말, 이응준, 김석원, 신태영 등과 함께 조선 임시 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1949년 1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제8기 특별 제1반에서 1주간의 훈련을 받고, 대령(군번 12443번)으로 임관하여, 호국군 제103여단장을 역임했다.[19] 1949년 8월에는 부산 병사구 사령관, 1950년 1월에는 육군 참모학교를 수료했다. 같은 해 6월, 청년 방위대 수도방위대 고문을 맡았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당시, 국방부 수도방위대 자문위원과 육군 제103여단장 등을 역임하고 있었다. 개전 초기에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자 인왕산에서 칼로 자결했다.[19] 안병범의 동생 두 명도 한국 전쟁 중 전사했다.[19] 1950년 6월 25일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의 급격한 진공으로 서울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6월 29일인왕산에서 할복 자살했다.[9] 사후, 준장으로 추서되었으며,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그의 아들 2명도 한국 전쟁에서 전사했다.[9]

2. 1. 일제강점기

한성부 출신 안병범은 대한제국 말기 무관 생도로 일본에 유학했다.[16] 육군중앙유년학교를 거쳐 1912년에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근무했다. 영친왕 시종무관과 일본군 보병 대좌를 지냈으며, 아들 안광수도 일본육사에 진학시켰다.[17] 1914년 일본육군사관학교 제26기를 졸업하고[2] 보병 제13연대에 배속되었다.[2] 같은 해 12월 25일 보병 소위[3], 1918년 7월 29일 보병 중위[4], 1925년 3월 18일 보병 대위[3]로 진급했다. 1926년 4월 16일에는 보병 제73연대 중대장이 되었고[5], 1928년 5월 28일 이은 전하 부속 무관이 되었다.[6] 1933년 3월 18일 보병 소좌[3], 1934년 6월 8일 보병 제73연대 부관[3], 1936년 3월 7일 보병 제73연대 부속[7]을 거쳐 1939년 중좌, 1943년 8월 2일[8] 대좌로 승진하여 종전을 맞이했다.[9] 종전 당시에는 제124정거장 사령관이었다.[10]

1945년 8월 말, 이응준, 김석원, 신태영 등과 함께 조선 임시 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대한민국 국군이 창설되었고, 안병범은 군사 경력자 기용 방침에 따라 1948년 다시 육군사관학교에서 1주일 동안 훈련을 받은 뒤 제8기 졸업생이 되었다.[18] 1949년 1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제8기 특별 제1반에서 1주간의 훈련을 받고 대령(군번 12443번)으로 임관하여 호국군 제103여단장에 임명되었다.[18] 이후 부산 병사구 사령관, 육군 참모학교를 거쳐 국방부 수도방위대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안병범은 개전 초기에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자 인왕산에서 칼로 자결했다.[19] 안병범의 동생 두 명도 한국 전쟁 중 전사했다.[19] 1950년 6월 25일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의 급격한 진공으로 서울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6월 29일인왕산에서 할복 자살했다.[9] 사후, 준장으로 추서되었고,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한국 전쟁에서 아들 2명도 전사했다.[9]

2. 2. 대한민국 국군 복무와 한국전쟁

안병범은 한성부 출신으로 대한제국 말기에 무관 생도로 일본에 유학했다.[16] 육군중앙유년학교를 거쳐 1912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장교로 근무했다. 영친왕 시종무관과 일본군 보병 대좌를 지냈으며, 아들 안광수도 일본육사에 진학시켰다.[17] 태평양 전쟁 종전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과 함께 1948년 육군사관학교에서 1주일 동안 훈련을 받은 뒤 제8기 졸업생이 되었다.[18] 안광수와 함께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계급도 같은 육군 대령이 되었다.

1945년 8월 말, 이응준, 김석원, 신태영 등과 함께 조선 임시 군사위원회를 발족했다. 1949년 1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제8기 특별 제1반에서 1주간의 훈련을 받고, 대령(군번 12443번)으로 임관하여, 호국군 제103여단장을 역임했다.[19] 1949년 8월에는 부산 병사구 사령관, 1950년 1월에는 육군 참모학교를 수료했다. 같은 해 6월, 청년 방위대 수도방위대 고문을 맡았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당시, 국방부 수도방위대 자문위원과 육군 제103여단장 등을 역임하고 있었다. 개전 초기에 서울이 조선인민군에게 점령되자 인왕산에서 칼로 자결했다.[19] 안병범의 동생 두 명도 한국 전쟁 중 전사했다.[19] 1950년 6월 25일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군의 급격한 진공으로 서울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6월 29일인왕산에서 할복 자살했다.[9] 사후, 준장으로 추서되었으며,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그의 아들 2명도 한국 전쟁에서 전사했다.[9]

3. 사후

1955년에 안병범장군순의비가 제막[20] 되었으며,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혀 있다. 고은의 《만인보》에도 실려 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에 안광수와 함께 포함되었다.

4. 가족 관계


  • 장남 안광호: 육군사관학교 제8기 특별 제4반(군번 15150번) 출신으로, 1953년 미국 육군 지휘참모대학을 유학했다.[11] 군사휴전위원회 위원, 주미 대사관 무관, 예비역 준장을 지냈으며,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1992년 7월 사망했다.
  • 차남 안광수: 일본 육군사관학교 58기 졸업, 일본 육군 소위였다.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했으며(군번 10024번), 예비역 대령이다.
  • 삼남 안광석: 생도 2기생으로 전사했다.
  • 사남 안광진: 전사했다.
  • 오남 안광선:

5. 논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에 안광수와 함께 포함되었다. 2008년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의 군 부문에 선정되었다.

1955년에 안병범장군순의비가 제막[20] 되었으며,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혀 있다. 고은의 《만인보》에도 실려 있다.

5. 1. 친일 행적

2008년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의 군 부문에 선정되었다.

5. 2. 자결과 미화

1955년에 안병범장군순의비가 제막되었으며[20],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혀 있다. 고은의 《만인보》에도 실려 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군 부문에 안광수와 함께 포함되었다.

참조

[1] 서적 日本陸海軍総合事典
[2] 웹사이트 陸軍現役将校同相当官実役停年名簿.大正6年9月1日調 https://dl.ndl.go.jp[...]
[3] 웹사이트 陸軍現役将校同相当官実役停年名簿.昭和10年9月1日調 https://dl.ndl.go.jp[...]
[4] 웹사이트 陸軍現役将校同相当官実役停年名簿.大正14年9月1日調 https://dl.ndl.go.jp[...]
[5] 웹사이트 陸軍現役将校同相当官実役停年名簿.大正15年9月1日調 https://dl.ndl.go.jp[...]
[6] 웹사이트 陸軍現役将校同相当官実役停年名簿.昭和3年9月1日調 https://dl.ndl.go.jp[...]
[7] 웹사이트 陸軍現役将校同相当官実役停年名簿.昭和11年9月1日調 https://dl.ndl.go.jp[...]
[8] 웹사이트 第143号 昭和18年8月3日 陸軍異動通報 https://www.jacar.ar[...] 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 2018-12-03
[9] 뉴스 朴正煕 逝去30周年記念連載⑫ ― 企てられたクーデター http://news.onekorea[...] 2010-04-22
[10] 서적 終戦時帝国陸軍全現役将校職務名鑑 戦誌刊行会
[11] 뉴스 <869>老兵이 걸어온 길-119-미국시찰과 교육 https://kookbang.dem[...] 2021-04-11
[12] 문서 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 및 대한민국 육군 보병학교·대한민국 육군 기계화학교·대한민국 육군 포병학교 졸업을 거쳐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 졸업 이후 1992년 7월 2일에 69세로 별세.
[13] 웹인용 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 위패 목록 http://www.snmb.mil.[...] 2017-03-23
[14] 문서 1961년 6월 3일을 기하여 육군 대령 예편 이후, 1975년 1월 29일에 향년 51세로 별세.
[15] 서적 해방전후사의 인식 (2) 한길사 1995-05-01
[16] 간행물 軍部에 잇는 朝鮮人士官
[17] 서적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선인 2001-06-01
[18] 뉴스 국방부, 李俊植·金錫源 등 군사경력자 9명을 고급장교로 기용 평화일보 1948-12-21
[19] 서적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3 조선일보사 1998-10-01
[20] 뉴스 安秉範준장 순의비를 제막 조선일보 1955-10-2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