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블레프 Ya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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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코블레프 Yak-7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에서 사용된 다목적 전투기이다. Yak-1을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훈련기인 Yak-7UTI를 단좌 전투기로 개조하여 생산되었다. 다양한 파생형이 존재하며, 훈련, 전투, 정찰 등 다양한 임무에 투입되었다. 주요 파생형으로는 Yak-7A, Yak-7B, Yak-7V 등이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 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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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블레프 Yak-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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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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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전투기, 훈련기 |
제작사 | 야코블레프 |
설계자 |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야코블레프 |
최초 비행 | 1940년 7월 23일 |
도입 | 1942년 |
퇴역 | 퇴역 |
현황 | 퇴역 |
주요 운용국 | 소련 공군 |
생산 대수 | 6,399대 |
개발 기반 | Yak-1 |
2. 설계 및 개발
Yak-7은 원래 Yak-1을 개조한 UTI-26 연습기로 개발되었는데, 1941년에 심사에서 결함이 많던 Yak-1, LaGG-3, MiG-3 같은 당시 주력 전투기보다 성능이 더 우수했기에 연습기였지만 급히 채용되었다. 이에 훈련용 후방 좌석을 없애고 단좌식으로 만든 UTI-26은 Yak-7 전투기로 개조되어 양산되었는데, 많은 파생형을 만들어내며 후속기인 Yak-9가 등장한 뒤에도 연습 전투기로 전후까지 사용되었다.
Yak-7은 다양한 파생형이 존재하며, 훈련기, 전투기, 정찰기 등 다양한 용도로 개조 및 개량되었다. 주요 파생형은 다음과 같다.
1939년,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는 "I-27"로, 그 후 "UTI-26"으로 지정된 탠덤 시트 고급 훈련기를 설계했는데, 이는 Yak-1이 된 원래의 I-26 제안과 함께 제공되었다. "UTI"(''Uchebno Trenirovochnyi Istrebitel'', 훈련 전투기)는 전투기로 전환하기 전에 고성능 항공기에서 훈련생에게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1940년에 개발 작업이 시작되면서 UTI-26은 선임 모델과 달리 중심을 위해 더 뒤로 배치된 더 큰 날개와 이중 조종 장치가 있는 두 개의 조종석과 기본적인 통신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훈련용으로 주로 사용하기 위해 7.62mm ShKAS 기관총 한 정이 카울링에 장착되었지만, 야코블레프는 최전선에서 택배 및 경량 수송 임무도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항공기를 구상했다.
Yak-7UTI로 알려진 최초의 양산 항공기는 접이식 주 착륙 장치를 유지했지만, 1941년 여름부터 고정식 착륙 장치 변형인 Yak-7V (Vyvozoni for Familiarization)로 대체되었다. 공장 측은 생산이 단순화되고 성능 저하가 훈련기에 해롭지 않다고 판단했다. Yak-7UTI 및 Yak-7V는 겨울 작전을 위해 스키도 장착되었다.
K.A. Sinelshchikov가 이끄는 제301 공장의 팀은 야코블레프 OKB에서 분리되어 Yak-7UTI의 생산을 감독했다. 이 항공기 중 하나(일련 번호 04-11)는 후방 위치에 장갑 백레스트 플레이트, 비울 때 불활성 가스로 채워지는 자동 밀폐 연료 탱크, 각 날개 아래에 RS-82 로켓용 "RO" 로켓 발사기 3개, 프로펠러 스피너를 통해 발사되는 축 방향 ''모토르나야 푸쉬카'' 장착 20mm ShVAK 캐논, 120발, 각 750발의 탄약을 가진 카울링 아래의 2개의 7.62mm ShKAS 기관총을 장착했다.[4] 후방 조종석 위치는 유지되어 빠른 택배 및 수송 임무를 위해 두 번째 좌석(제어 장치 없음) 또는 장거리 비행을 위한 연료 탱크를 수용할 수 있었다. 추가 공간에는 폭탄이나 기타 장비를 보관할 수도 있었다. 엔진은 M-105P였으며 모델은 '''Yak-7/M-105P'''로 지정되었다.
Sinelshchikov는 변환에 대해 야코블레프에게 알리지 않았고, 야코블레프는 그것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1] 짧은 공장 시험 후, 이 항공기는 UTI에 이미 적용된 수정 사항과 더 큰 타이어와 휠을 갖춘 개정된 착륙 장치, 더 효율적인 브레이크 및 개정된 엘리베이터 등 덕분에 단좌 Yak-1보다 더 나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야코블레프는 Yak-7을 당국에 제출했고, 당국은 즉시 승인했다. 항공기 무장을 위한 과학 시험 다각형(NIPAV)에서 발사 시험은 성공적이었으며, 무장은 새로운 전투기의 비행 특성이나 전반적인 성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발사 플랫폼으로서의 항공기 안정성은 라보치킨-고르부노프-구드코프 LaGG-3 및 미코얀-구레비치 MiG-3보다 훨씬 더 우수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GKO와 NKAP는 1941년 8월 Yak-7을 제301 및 제153 공장에서 생산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제301 공장은 노보시비르스크로 대피하여 제153 공장과 합병해야 했다. 그래서 1941년에 62대의 항공기만 생산되었다. 1941년 9월~10월에는 제301 공장에서 51대, 12월에는 제153 공장에서 11대였다.[1] 테스트 파일럿 A.N. 라자레프는 훌륭한 비행 특성, 스핀에서 벗어나기 쉬운 점, 다이빙할 때의 동작을 기록했는데, 이는 Yak-1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특성이었다. 그러나 Yak-7은 몇 가지 결함을 보였다. M-105P 엔진 배관, 착륙 장치 잠금 시스템, 타이어 및 꼬리 바퀴가 확인되었다.[5] Yak-7은 생산 라인에 도입되었고 1941년 말까지 60대의 첫 번째 배치가 작전 비행대에 도달했다.
또 다른 중요한 변형은 Yak-7/M-105PA였다. 이 모델에서는 카울링의 두 개의 ShKAS가 400발의 탄약(왼쪽 260발, 오른쪽 160발)을 가진 두 개의 12.7mm UBS 기관총으로 교체되었다. M-105PA 엔진으로 구동되었으며, 120발의 축 방향 ShVAK 캐논이 장착되었다. 오일 및 글리콜 라디에이터는 넓어지고 개선되었으며 약간 아래로 기울어졌다. 항공기 프레임의 단열이 개선되었고, 꼬리 바퀴는 완전히 접을 수 있었으며, 조인트와 스킨이 더 신중하게 만들어졌으며, 엔진 카울링의 패널이 더 잘 맞았고, 프로펠러 감속 기어가 더 잘 작동했으며, 전기 공압식 재장전 시스템이 설치되었고, 캐노피 프레임이 강화되었다. Yak-7B는 1942년 1월과 2월에 27번의 시험 비행을 했다. 보고서는 이 항공기가 "USSR에서 운용 중인 LaGG-3 및 MiG-3 및 외국 전투기에 비해 열등하지 않다"고 기록했지만, 더 안정적이고 비행 특성이 더 우수했다. 그 후 GKO는 1942년 4월부터 Yak-7A 대신 제153 공장에서 생산을 승인했으며, 7월까지 261대의 기체가 제작되었다. 1942년 5월 20일 이후 항공기에는 조종석 뒤에 68L 탱크가 장착되었지만, 스탈린그라드와 쿠반에서 Yak-7을 사용한 조종사들은 이 탱크가 보호되지 않고 비행 특성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제거했다.
일반적으로 Yak-7B는 조종사들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그들은 모든 고도에서 비행하기 쉽고, 안정적이며 유지 관리가 쉽다고 보고했으며, 메서슈미트 Bf 109만큼 빠르게 상승하지는 않았지만, 수직 평면을 제외하고는 기동성이 뛰어나고 빠르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결함도 나타났다. 라디에이터에서 과도한 항력이 발생했고, 캐노피 유리가 품질이 좋지 않았으며, 조종사가 충분히 보호되지 않았으며, 이륙 및 착륙 거리가 너무 길었고, 무엇보다 동력이 부족했다.[6]
야코블레프는 엔진 제작자인 클리모프에게 M-105PF로 이어진 몇 가지 수정을 제안했는데, 이 엔진은 130hp 더 강력했다. 이 수정된 엔진으로 Yak-7B의 최고 속도는 599km/h였고, 5000m까지 훨씬 더 빠르게 상승했으며, 수평 및 수직 평면 모두에서 더 기동성이 뛰어났다. 그러나 후방 탱크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항속 거리가 감소했고, 무게 중심이 너무 앞으로 이동했으며, M-105 결함(글리콜 및 오일 과열, 오일 누출 등)이 지속되었다.[7]
엔진 및 무장 옵션 중에는 엔진 실린더 블록 사이에 장착되어 프로펠러 스피너를 통해 발사되는 37mm MPSh-37 캐논(MPSh - ''모토르나야 푸쉬카 시피탈노보'' - 엔진 장착 시피탈니 캐논)이 장착된 '''Yak-7-37'''이 있었다.[8]
3. 파생형
형식 설명 엔진 초도 비행 Yak-7UTI / Як-7УТИru 복좌 훈련기 M-105P 1941년 Yak-7 / Як-7ru Yak-7UTI를 응급 개조한 전투기 M-105P 1941년 Yak-7A / Як-7Аru M-105PA 엔진을 탑재한 전투기 (개량형) M-105PA 1941년 Yak-7B / Як-7Бru M-105PF 엔진을 탑재하고, 기수 상부 무장을 UBS 12.7mm 기관총으로 교체한 전투기 (개량형) M-105PF 1942년 Yak-7-37 / Як-7-37ru 37mm MPSh-37 기관포 탑재 (22대 제작, 실전 테스트 후 미채택) 1942년 Yak-7M / Як-7Мru 주익 설계 변경 및 화력 강화 시제기 (ShVAK 20mm 기관포 장착) 1941년 Yak-7B AFA-IM / Як-7Б АФА-ИМru 전선 정찰기 (카메라 장착) M-105PA 1941년 Yak-7V / Як-7Вru 복좌 훈련 전투기 (Yak-9 훈련용) M-105PA (초기), M-105PF (후기) 1942년 Yak-7D / Як-7Дru 시제 복좌 장거리 정찰기 M-105PA 1942년 Yak-7DI / Як-7ДИru Yak-7D 전투기 개조형 (Yak-9로 개명) M-105PF Yak-7 M-82 / Як-7 с М-82ru 공랭식 M-82A 엔진 탑재 시제형 (LaG-5 채택으로 미채택) 1941년 Yak-7P / Як-7Пru 시제 전투기 (ShVAK 20mm 기관포 2문 탑재) 1943년 Yak-7PD / Як-7ПДru 시제 고고도 전투기 (ShVAK 20mm 기관포 1문, 엔진 신뢰성 문제로 미채택) M-105PD 1942년 Yak-7PVRD / Як-7ПВРДru 제트 엔진 테스트 베드 기체 (램제트 엔진 장착) 1944년 Yak-7L / Як-7Лru 층류 날개형 주익 시험기 Yak-7GK / Як-7ГКru 가압 캐빈 시험기 (결함으로 미채택)
3. 1. 훈련기
Yak-7은 원래 Yak-1을 개조한 UTI-26 연습기로 개발된 기체인데, 1941년에 심사에서 결함이 많던 Yak-1, LaGG-3, MiG-3같은 당시 주력전투기보다 성능이 더 우수했기에 연습기지만 급채용되었다. 훈련용 후방좌석을 없애고 단좌식으로 만든 UTI-26은 Yak-7 전투기로 개조되어 양산되었으며, 많은 파생형을 만들어내며 후속기인 Yak-9가 등장한 뒤에도 연습 전투기로 전후까지 사용되었다.
1939년,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는 "I-27"(이후 "UTI-26"으로 지정) 탠덤 시트 고급 훈련기를 설계했는데, 이는 Yak-1이 된 원래의 I-26 제안과 함께 제공되었다. "UTI"(''Uchebno Trenirovochnyi Istrebitel'', 훈련 전투기)는 전투기로 전환하기 전에 고성능 항공기에서 훈련생에게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1940년에 개발 작업이 시작되면서 UTI-26은 선임 모델과 달리 중심을 위해 더 뒤로 배치된 더 큰 날개와 이중 조종 장치가 있는 두 개의 조종석과 기본적인 통신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훈련용으로 주로 사용하기 위해 7.62mm ShKAS 기관총 한 정이 카울링에 장착되었다.
Yak-7UTI로 알려진 최초의 양산 항공기는 접이식 주 착륙 장치를 유지했지만, 1941년 여름부터 고정식 착륙 장치 변형인 Yak-7V(Vyvozoni for Familiarization)로 대체되었다. Yak-7UTI 및 Yak-7V는 겨울 작전을 위해 스키도 장착되었다.
Yak-7은 당초 Yak-1을 개조한 UTI-26(러시아어: УТИ-26) 연습기로 개발되었다. 이는 Yak-7UTI(러시아어: Як-7УТИ)로 완성되어 1941년에 첫 비행을 했지만, 구조를 간소화한 결과 결함이 많았던 Yak-1이나 LaGG-3, MiG-3 등 당시 전투기보다 이 새로운 연습기가 다루기 쉽고 우수하다는 결론이 나와 급히 후부 좌석을 폐지하고 단좌로 만든 Yak-7 전투기가 제작되었다.
Yak-7은 보다 고성능의 전투기가 등장한 후에도 계속 운용되었으며, 연습 전투기로서 종전 후에도 사용되었다.
3. 2. 전투기
Yak-7은 원래 Yak-1을 개조한 UTI-26 연습기로 개발되었으나, 1941년 심사에서 Yak-1, LaGG-3, MiG-3 등 당시 주력 전투기보다 성능이 우수하여 전투기로 채택되었다. 훈련용 후방 좌석을 없애고 단좌식으로 만든 UTI-26은 Yak-7 전투기로 개조되어 양산되었다.
K.A. Sinelshchikov가 이끄는 팀은 Yak-7UTI를 기반으로 후방 조종석 위치에 장갑 백레스트 플레이트, 자동 밀폐 연료 탱크, RS-82 로켓용 로켓 발사기, 프로펠러 스피너를 통해 발사되는 ShVAK 캐논, 카울링 아래 2개의 7.62mm ShKAS 기관총을 장착한 Yak-7/M-105P를 개발했다.[4] 이 기체는 단좌 Yak-1보다 우수한 성능을 보였고,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GKO와 NKAP는 1941년 8월 Yak-7 생산 명령을 내렸지만, 공장 이전으로 인해 1941년에는 62대만 생산되었다.[1] 테스트 파일럿 A.N. 라자레프는 Yak-7의 우수한 비행 특성과 안정성을 높이 평가했지만, 엔진 배관, 착륙 장치 잠금 시스템 등의 결함도 지적했다.[5]
Yak-7의 주요 개량형으로는 Yak-7/M-105PA가 있다. 이 모델은 카울링의 ShKAS 기관총을 UBS 기관총으로 교체하고, M-105PA 엔진과 개선된 라디에이터를 장착했다. Yak-7B는 1942년 1월부터 시험 비행을 거쳐 4월부터 생산이 승인되었으며, 7월까지 261대가 제작되었다. 조종사들은 Yak-7B의 비행 성능과 안정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라디에이터 항력, 조종석 유리 품질, 조종사 보호 부족, 이착륙 거리, 엔진 출력 부족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6]
야코블레프는 클리모프에게 더 강력한 M-105PF 엔진 개발을 제안했다. 이 엔진을 장착한 Yak-7B는 최고 속도가 증가했지만, 항속 거리가 감소하고 무게 중심 문제가 발생했으며, M-105 엔진의 결함이 지속되었다.[7]
엔진 및 무장 옵션 중에는 MPSh-37 캐논을 장착한 '''Yak-7-37'''이 있었다.[8]
Yak-7은 Yak-1을 개조한 UTI-26 연습기에서 시작하여 Yak-7UTI로 완성되었고, 1941년 첫 비행을 했다. 구조 간소화 결과, Yak-1, LaGG-3, MiG-3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 후방 좌석을 제거하고 단좌식 Yak-7 전투기가 제작되었다.
Yak-7과 그 개량형은 대량 생산되었으며, 후속기인 Yak-9는 공군의 주력 전투기가 되었다.
;Yak-7 / Як-7ru: Yak-7UTI를 전투기로 개조한 초기형. M-105P 엔진 장착. 1941년 초도 비행.
;Yak-7A / Як-7Аru: M-105PA 엔진을 탑재한 개량형. 1941년 초도 비행.
;Yak-7B / Як-7Бru: M-105PF 엔진을 탑재하고, 기수 상부 무장을 UBS 12.7mm 기관총으로 교체한 개량형. 1942년 초도 비행.
;Yak-7-37 / Як-7-37ru: Yak-7B에 37mm 기관포 MPSh-37 (탄약 20발)를 탑재한 기체. 1942년 초도 비행. 22대가 제작되어 실전 테스트를 거쳤으나 채택되지 않음.
;Yak-7M / Як-7Мru: 주익 설계를 변경하고 화력을 강화한 시제기. 날개 폭 감소, 슬랫 추가, ShVAK 20mm 기관포 장착. 1941년 초도 비행.
;Yak-7P / Як-7Пru: 시제 전투기. ShVAK 20mm 기관포 2문을 탑재한 Yak-7B 개조형. 1943년 초도 비행.
;Yak-7PD / Як-7ПДru: E-100 과급기를 갖춘 M-105PD 엔진을 탑재한 시제 고고도 전투기. ShVAK 20mm 기관포 1문 장착. 1942년 초도 비행. 엔진 신뢰성 문제로 채택되지 않음.
3. 3. 정찰기
3. 4. 기타
Yak-7UTI는 복좌 훈련기로, M-105P 엔진을 장착하고 1941년에 초도 비행했다. Yak-7은 Yak-7UTI를 응급적으로 전투기로 개조한 것으로, M-105P 엔진을 장착하고 1941년에 초도 비행했다. Yak-7A는 M-105PA 엔진을 탑재한 전투기 개량형으로, 1941년에 초도 비행했다. Yak-7B는 M-105PF 엔진을 탑재하고 기수 상부 무장을 UBS 12.7mm 기관총으로 교체한 전투기 개량형으로, 1942년에 초도 비행했다.
Yak-7-37은 Yak-7B에 37mm MPSh-37 기관포(탄약 20발)를 탑재한 기체로, 1942년에 초도 비행했다. 22대가 제작되어 실전 테스트를 진행했지만 채택되지는 않았다. Yak-7M은 Yak-7UTI를 전투기화하면서 주익 설계를 변경하고 화력을 강화한 시제기이다. 날개 폭을 줄이고 슬랫을 추가했으며, 날개 안에 ShVAK 20mm 기관포를 장착했다. 시험 결과 양산이 권장되었지만, 1941년에 초도 비행했다.
Yak-7B AFA-IM은 동체에 카메라를 장착한 전선 정찰기형으로, M-105PA 엔진을 탑재하고 1941년에 초도 비행했다. Yak-7V는 복좌 훈련 전투기로, 처음에는 M-105PA 엔진을, 후기에는 Yak-9와 동일한 M-105PF 엔진을 탑재했다. 1942년에 초도 비행했으며, Yak-9의 훈련기로서 종전 후까지 다수가 사용되었다.
Yak-7D는 시제 복좌 장거리 정찰기로, M-105PA 엔진을 탑재하고 1942년에 초도 비행했다. Yak-7DI는 Yak-7D를 전투기로 개조한 것으로, 이전의 복좌형에서 응급 처치적인 형태의 조종석 설계를 Yak-1b와 같은 형태로 변경했다. M-105PF 엔진을 탑재하고 565km/h의 최고 속도를 냈으며, 후에 개량되어 Yak-9로 개명되었다.
Yak-7 M-82는 공랭식 M-82A 엔진을 탑재한 시제형으로, 1941년에 초도 비행했다. 무장은 기수의 UBS와 주익의 ShVAK 20mm 기관포를 갖추었다. LaGG-3에 동일한 엔진을 탑재한 LaG-5가 더 우수하다고 판단되어 양산되지 않았다.
Yak-7P는 시제 전투기로, ShVAK 20mm 기관포 1문과 ShVAK 20mm 기관포 2문을 탑재한 Yak-7B의 개조형이다. 기체 형태는 Yak-7DI와 유사하며, 1943년에 초도 비행했다. Yak-7PD는 E-100 과급기를 갖춘 M-105PD 엔진을 탑재한 시제 고고도 전투기이다. 경량화를 위해 무장은 ShVAK 20mm 기관포 1문(탄약 120발)뿐이었다. 1942년에 초도 비행했으며, 모스크바 방공 부대에서 시험 운용되었지만 엔진의 신뢰성이 낮아 채택되지 않았다.
Yak-7PVRD는 제트 엔진의 테스트 베드 기체로, 1944년에 초도 비행했다. Yak-7B의 개조형으로, DM-4S 램제트 엔진 각 1기를 주익 하부에 장착했으며, 최고 속도는 580km/h였다. Yak-7L은 층류 날개형 주익을 갖춘 시험기로, 속도가 15~20km/h 정도 향상되었다. Yak-7GK는 가압 캐빈을 갖춘 시험기였으나, 공군 테스트 결과 결함이 많아 실용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4. 운용 국가
- -- 알바니아 공군은 1945년에 Yak-7V 2인승 훈련기 20대와 Yak-7A 개량형 단좌 전투기 30대를 도입하여 총 50대를 운용했다.
- -- 자유 프랑스 공군은 노르망디-네만 비행대대에서 일부 기체를 운용했다.
- -- 불가리아 공군은 Yak-7V 3대를 운용했다.
- -- 헝가리 공군은 Yak-9 전투기 적응 훈련을 위해 Yak-7V 1대를 운용했다.
- -- 몽골 인민 공군은 일부 기체를 훈련기로 운용했다.
- -- 소련 주둔 폴란드군 공군은 제1 전투 연대 "바르샤바"에서 훈련용으로 Yak-7B 몇 대를 운용했다. 여러 대의 Yak-7V는 훈련 및 연락 임무에 사용되었다. 폴란드 공군은 1943년 9월부터 1946년 9월 23일까지 Yak-7을 운용했다.
- -- 소련 공군
-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군은 Yak-7V 2대를 운용했다.
5. 제원 (Yak-7A)
참조
[1]
서적
Leonard 2005, p. 79
[2]
서적
Jane's All the World's Aircraft 1955-56 p. 188
[3]
서적
Taylor 1985, p. 122
[4]
서적
Leonard 2005, p. 60
[5]
서적
Leonard 2005, pp. 60–61
[6]
서적
Leonard 2005, p. 78
[7]
서적
Leonard 2005, p. 79
[8]
서적
OKB Yakovlev
Midland Publishing
[9]
서적
Soviet and Russian Testbed Aircraft
Hikoki Pub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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