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노 루카넨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에이노 루카넨은 핀란드 공군의 군인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의 에이스 전투기 조종사였다. 겨울 전쟁과 계속 전쟁에 참전하여 총 56기의 적기를 격추했다. 그는 1939년 겨울 전쟁에서 첫 격추를 기록했으며, 계속 전쟁 중에는 F2A 버팔로와 메서슈미트 Bf 109를 조종하며 다수의 격추를 올렸다. 전쟁 후에는 첩보 활동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1964년에 사망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핀란드의 비행사 - 일마리 유틸라이넨
일마리 유틸라이넨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핀란드 공군의 에이스 전투기 조종사로, 총 94 1/6기의 적기를 격추하고 핀란드 공군 최초의 만네르헤임 십자장 수훈자이다. - 핀란드의 비행사 - 오이바 투오미넨
오이바 투오미넨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44대의 적기를 격추하고 복엽 전투기 격추 핀란드 공군 최고 기록을 보유한 핀란드 공군의 군인이자 전투기 조종사로, 핀란드 공군 최초로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하고 피아트 G.50 전투기 격추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 핀란드의 제2차 세계 대전 에이스 전투조종사 - 일마리 유틸라이넨
일마리 유틸라이넨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핀란드 공군의 에이스 전투기 조종사로, 총 94 1/6기의 적기를 격추하고 핀란드 공군 최초의 만네르헤임 십자장 수훈자이다. - 핀란드의 제2차 세계 대전 에이스 전투조종사 - 오이바 투오미넨
오이바 투오미넨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44대의 적기를 격추하고 복엽 전투기 격추 핀란드 공군 최고 기록을 보유한 핀란드 공군의 군인이자 전투기 조종사로, 핀란드 공군 최초로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하고 피아트 G.50 전투기 격추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 핀란드 공군 군인 - 일마리 유틸라이넨
일마리 유틸라이넨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핀란드 공군의 에이스 전투기 조종사로, 총 94 1/6기의 적기를 격추하고 핀란드 공군 최초의 만네르헤임 십자장 수훈자이다. - 핀란드 공군 군인 - 오이바 투오미넨
오이바 투오미넨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44대의 적기를 격추하고 복엽 전투기 격추 핀란드 공군 최고 기록을 보유한 핀란드 공군의 군인이자 전투기 조종사로, 핀란드 공군 최초로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하고 피아트 G.50 전투기 격추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에이노 루카넨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별명 | 에이카 |
출생일 | 1909년 6월 4일 |
사망일 | 1964년 4월 9일 |
출생지 | 야키마 |
사망지 | 이위배스퀼래 |
군 복무 | |
소속 | 핀란드 공군 |
복무 기간 | 1931년–1951년 |
최종 계급 | 중령 |
근무 | 제24비행대대 제26비행대대 제30비행대대 제34비행대대 |
지휘 | 제30비행대대 제34비행대대 제2비행연대 |
참전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제2차 세계 대전 겨울전쟁 계속전쟁 |
훈장 | |
주요 훈장 | 만네르헤임 십자장 |
2. 초기 생애 및 군 복무
2. 1. 교육 및 비행 훈련
의무적인 군사 훈련을 마친 루카넨은 1931년 사관학교 과정에서 조종 장교가 되었다. 그는 1933년에 졸업하고 임관했다. 루카넨은 비푸리에 있는 제1해상 비행대에 소위로 배치되었다. 그는 조종사 및 관측병으로 비행했다. 1935년 루카넨은 복엽 전투기 브리스톨 불독 Mk.IV를 장비한 전투 비행대대 LeLv 26으로 전출되었다. 1939년 그는 육군사관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위로 진급했다. 그는 이후 최근 포커 D.XXI 전투기를 장비한 전투 비행대대 24(LeLv24)의 제3 비행대 지휘관으로 배치되었다.2. 2. 초기 경력
3.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1939년 11월의 겨울 전쟁 발발 시에는 포커 D.XXI를 장비한 제24전대의 제3중대장을 맡았다. 개전 이틀째인 12월 1일, 소련의 투폴레프 SB 폭격기를 격추하여 첫 전과를 올렸다.
12월 말부터는 제3중대를 중핵으로 한 분견대 "L 전투기대"(L은 루카넨의 머리글자)를 지휘했다. 1940년 2월 15일, 대위로 승진했다. 겨울 전쟁 중 확인 격추수는 2.5기(모두 포커 D.XXI)였다.
겨울 전쟁 종결 후, 신예기 F2A "버팔로"의 스웨덴으로부터의 공수를 담당했다. 제24전대는 이 기종으로 전환하여 계속 전쟁을 맞이했다.
1941년 6월의 계속 전쟁 발발 시에는 동 전대 제1중대장 및 선임 항공 지휘관이었다. 9월부터 다시 독립 파견 부대 "L 전투기대"를 조직하여 지휘했다. 버팔로로 확인 격추수는 14.5기였다. 떠나기 직전, 주로 애용했던 버팔로 BW-393호기의 수직 안정판에는 이 때까지의 격추수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축배를 들었던 17장의 맥주 라벨이 붙어 있었다. BW-393호기는 그 후, 중대의 지휘를 계승한 한스 윈드가 주로 탑승하여 전과를 올렸고, 최종적으로는 41기로, 핀란드 공군의 버팔로 중(아마도 세계의 버팔로 중에서도) 최고의 기체별 격추수를 가진 수훈기가 되었다.
1942년 11월, 소령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제30전대에 전대장으로 전속했다. 동 전대는 이 무렵에는 이미 구식화된 포커 D.XXI과 소련으로부터 노획한 폴리카르포프 I-153 "차이카"를 장비한 정찰 부대였다.
1943년 3월, 독일로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예기 메서슈미트Bf109G가 도입되자, 이를 장비한 엘리트 부대 제34전대가 편성되었다. 원래 이를 지휘할 예정이었던 에르키 올라비 엔루트 소령이 VL 피리 연습기의 사고로 급사했기 때문에, 루카넨이 그 전대장이 되었다. 이후, 1944년 9월의 정전까지 동 부대를 지휘했다. 1944년 6월 18일, 2급 만네르헤임 십자장 수훈. 같은 해 8월 5일의 Yak-9가 루카넨의 마지막 전과였다. 메서슈미트 Bf109에서의 확인 격추수는 39기였다.
3. 1. 겨울 전쟁 (1939-1940)
1939년 11월 30일, 소련을 상대로 겨울 전쟁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 루카넨은 SB-2 폭격기를 격추하며 첫 승리를 거두었다.[2]12월 18일, 루카넨의 포커기는 아군 사격에 의해 손상되었고, 거친 들판에 불시착하여 비행기가 파손되었다. 12월 24일, 수마 상공에서 R-5를 격추한 공을 다른 조종사와 함께 나누었다. 같은 날 제3 비행대는 공중 엄호를 제공하기 위해 배르실래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배르실래에서 6주 동안 루카넨은 1940년 1월 6일에 SB-2 1기를 격추했는데, 이것이 겨울 전쟁에서의 마지막 승리였다. 3월 4일, 루카넨은 핀란드 만의 얼음 위에서 붉은 군대 열에 대한 지상 공격을 이끌었다. 공격은 성공적이었고, 1940년 3월 13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적군 열에 대한 이러한 지상 공격이 제24 비행대의 주요 활동이었다.
겨울 전쟁 이후, 루카넨은 새로 도착한 브루스터 239 전투기를 스웨덴 트롤헤탄에서 핀란드로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제24 비행대는 이 전투기로 재무장되었고, 훈련이 즉시 시작되었다. 1935년 3월에는 중위로,[2] 1940년 2월 15일, 대위로 승진했다.[2] 겨울 전쟁 중 확인 격추수는 2.5기(모두 포커 D.XXI)였다.[2]
3. 2. 계속 전쟁 (1941-1944)
1941년 6월 25일, 공중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루카넨은 7월 8일에 다시 전투를 치렀다. 루카넨의 지휘하에 있던 4대의 BW기가 란타살미에서 이륙하여 파리칼라 상공 1,500미터에 이르렀을 때, 전선 상공에서 저고도로 비행하는 6대의 I-153을 공격했다. 그들은 총 5승을 기록했지만, 루카넨은 단 한 승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2] 1941년 동안 루카넨은 5승 반을 기록했고, 1942년 동안 9승을 추가했다. 1942년 1월 11일, 루카넨은 소령으로 진급하여, 포커 D.XXI과 노획한 I-153을 혼합하여 운용하는 정찰 비행대대 30의 지휘관으로 부임했다.[2]부대의 임무는 핀란드 만 동부의 적 선박 이동과 세이스카리 섬과 라반사리 섬의 적 항공기를 감시하는 것이었다.[2]
1943년 3월 27일, 루카넨은 새로 창설된 전투 비행대대 34의 지휘관으로 부임하여 메서슈미트 Bf 109G-2 전투기를 장비했다.[2]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는 441번의 임무를 수행했다. 루카넨은 1944년 8월 5일에 마지막 승리를 기록했는데, 그와 그의 편대원은 각각 Yak-9를 격추했다.[2] 총 30대의 메서슈미트를 손실하는 동안, 루카넨 소령의 부대는 1943년 3월 29일부터 1944년 9월 4일까지 345승을 기록했으며, 이 중 18대는 전투에서 손실되었다. 12명의 핀란드 조종사가 사망했고, 1명이 전쟁 포로로 잡혔다.[2] 1944년 6월 18일, 2급 만네르헤임 십자장을 수훈했다.[3]
3. 3. 격추 기록
항공기 | 격추 |
---|---|
포커 D.XXI | 2.5 |
브루스터 버팔로 | 14.5 |
메서슈미트 Bf 109G | 39 |
합계 | 56 |
1939년 11월 겨울 전쟁 발발 당시 포커 D.XXI를 장비한 제24전대의 제3중대장이었으며, 12월 1일 소련의 투폴레프 SB 폭격기를 격추하며 첫 전과를 올렸다. 겨울 전쟁 중 확인 격추수는 2.5기이다. 계속 전쟁에서는 F2A "버팔로"로 14.5기를 격추했다. 1943년 3월부터는 Bf109G를 장비한 제34전대를 지휘했으며, 1944년 9월 정전까지 39기를 격추했다.[3]
4. 전후 활동 및 사망
루카넨은 1956년에 회고록을 저술했는데, 이 회고록은 세 차례 인쇄를 거듭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책은 영어로 번역되어 1961년 영국에서 출판되었고, 1992년 미국에서 "핀란드 상공의 전투기"라는 제목으로 재출판되었다.
전쟁 후, 루카넨은 스웨덴을 위해 첩보 활동을 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스웨덴 정보국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항공 사진을 넘겨준 혐의로 간첩죄가 인정되어 1951년 11월에 퇴역했다. 1951년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원수가 사망했을 때 그의 운구를 돕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1964년 9월 4일에 사망했으며, 미망인과 군 경력을 가진 아들 리스토 헤이키, 그리고 오랜 연인 아이노 아우날라 사이에서 1950년에 낳은 아들 마르쿠 에이노 아우날라(미래의 시 법원 판사)가 있었다.
루카넨은 여전히 많은 서방 국가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참조
[1]
서적
Keskinen 1978
[2]
문서
[3]
문서
[4]
서적
Keskinen 1978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