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초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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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이초 지진은 1096년 12월 17일 도카이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대지진이다. 지진으로 인해 교토, 오미, 이세, 스루가 등 넓은 지역에서 건물 붕괴, 쓰나미 피해가 발생했으며, 특히 기소강 하류 지역이 해몰되는 등 막대한 피해가 있었다. 지진 전후로 활발한 여진 활동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1097년에는 연호가 쇼토쿠로 개원되었다. 지진의 규모는 M 8.0~8.5로 추정되며, 진원지는 구마노나다, 엔슈나다 앞바다를 포함한 지역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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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초 지진 | |
---|---|
개요 | |
이름 | 에이초 지진 (永長地震) |
발생 날짜 (율리우스력) | 1096년 2월 22일 |
발생 날짜 (그레고리력) | 1096년 2월 26일 |
진원 | 난카이 해곡 |
유형 | 해구형 지진 |
규모 | M8.0-8.4 (추정) |
최대 진도 | 일본: 진도 5 (추정) 한국: 기록 없음 |
쓰나미 | 발생 |
피해 지역 | 일본 (주로 혼슈 남부, 시코쿠, 규슈) |
인명 피해 | 다수 사망 및 실종 (정확한 수치 기록 없음) |
재산 피해 | 광범위한 가옥 붕괴, 침수, 화재 등 |
지진 정보 | |
발생 원인 | 필리핀해판의 유라시아판 아래로의 섭입 |
특징 | 난카이 해곡 거대 지진의 일부로 추정 간무 천황의 다이라노 마사카도 토벌을 위한 신사 건립 중 발생 |
역사적 논쟁 | |
1099년 조토쿠 지진 | 이시바시 가쓰히코 교수는 1099년 조토쿠(고와) 난카이 지진은 실존하지 않으며 1096년 가호(에이초) 지진이 "난카이 해곡 전체 파괴형"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
추가 정보 | |
참고 문헌 | http://www.histeq.jp/kaishi_31/HE31_081_088_Ishibashi.pdf [논설]1099년 승덕(강화)남해지진은 실재하지 않고,1096년 가보(영장)지진이 「남해 트로프 전역 파괴형」이었다는 가능성-도사 지진 기사를 포함한 『겸중경기』 지배의 관선지안의 고찰- https://agupubs.onlinelibrary.wiley.com/doi/10.1029/ME004p0297 Specification of a Soon‐to‐Occur Seismic Faulting in the Tokai District, Central Japan, Based Upon Seismotectonics https://gbank.gsj.jp/geolis/geolis_link/200205732/ja 필리핀해 슬래브 침강의 경계 조건으로서의 도카이・남해 거대지진--사료지진학에 의한 개요-- http://sakuya.ed.shizuoka.ac.jp/rzisin/kaishi_31/HE31_081_088_Ishibashi.pdf 1099년 승덕(강화)남해지진은 실재하지 않고,1096년 가보(영장)지진이 「남해 트로프 전역 파괴형」이었다는 가능성 |
2. 지진의 기록
가호 3년(1096년) 11월 24일 진시(오전 8시경)에 도카이도 앞바다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7] 『주우키』에는 지진동이 약 2시간 동안 이어졌고, 도다이지의 종이 떨어지고 야쿠시지의 회랑이 무너지는 등 피해 상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오미국 세타 다리가 붕괴되고, 이세국 아노쓰(현 미에현 쓰시)에서 쓰나미로 가옥이 파괴되는 등 교토 외 지역에도 피해가 있었다.[9] 스루가국에서는 쓰나미로 사찰과 민가 400여 채가 유실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10] 고노에가 문서에는 기소강 하류역의 시카토리·노시로 땅이 지진으로 해몰되었다가 수년 후 육지로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12]
이 지진 전후 및 약 2년 후 고와 지진 무렵까지 많은 지진 기록이 있어, 활발한 여진 활동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14] 아와국 타이류지 관련 옛 기록인 『타이류지 연기』에도 이 지진에 대한 기록이 있다.[12][16]
2. 1. 당시의 기록
이 지진은 가보 연간에 일어났지만, 이 천변지이를 계기로 약 1개월 뒤인 12월 17일(율리우스력 1097년 1월 3일)에 에이초로 개원되어 연표상으로는 에이초 원년이 되므로 에이초를 덧붙여 불린다. 『고니조 모로미치기』, 『주우키』[3][4], 『백련초』 및 『고후키』[5] 등에 지진 피해 기록이 있다.후지와라 무네타다의 일기인 『중우기』에는 이 지진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있으며, 지진동이 1시 (약 2시간) 정도 이어졌고, 도다이지의 거대한 종이 낙하, 야쿠시지의 회랑이 붕괴, 도지의 구륜이 낙하, 호쇼지의 동서 탑이 파손, 호쇼지의 어불등광이 파손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다이지의 거대 종의 낙하는 엔큐 2년 10월 20일 (율리우스력 1070년 11월 25일)의 지진 이후의 일이었다. 간인 어소에서는 호리카와 천황이 뜰의 연못에 띄운 배로 피난했다고 한다[8]。
『중우기』에는 또한 오미에서 세타 다리가 붕괴되었고, 이세 아노쓰 (아노쓰, 현 미에현쓰시)에서 쓰나미로 인해 많은 가옥이 파괴되었으며, 그 외 여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등 전해 들은 내용으로 교토 외에도 큰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9]。
후지와라 모로미치가 저술한 『후니조 모로미치기』에는 진시에 6번 진동했고, 스루가로부터의 보고서에 "지난달 24일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쓰나미로 인해 사찰과 민가가 400여 채 유실되었으니 국가의 중대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10]。
고노에가 문서에는 "而去嘉保年中大地震之時□□々空変海塵、経数十年、爰此七八ケ年、漸為陸地、令開作之間、件両嶋、鹿取・野代両庄住人、"이라고 쓰여 있어, 이 지진으로 기소강 하류역의 시카토리·노시로 땅이 "공변해진 해진" 상태가 되었고, 수년이 지나 육지로 돌아온 모습이 기술되어 있다[12]。
『중우기』에는 이 지진 전후에서 약 2년 후인 고와 지진 무렵까지 많은 지진 기록이 보이며, 활발한 여진 활동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14]。
아와국타이류지에 관한 옛 기록을 집대성한 『타이류지 연기』에도 이 지진의 기술이 등장한다[12][16]。
3. 진원역
가와스미 히로시(1951)는 이 지진의 규모 ''M''K = 7.0, ''M'' = 8.4로 추정했다.[17] ''M'' 8.0-8.5[18], 또는 ''M'' 8.3[7][19] 등으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단편적인 기록만 남아 있는 역사 지진이므로 수치의 정밀도는 높지 않다. 기내, 비와호, 이비 강 부근(기소 강 하구 부근)의 강진동 및 쓰와 스루가의 막대한 쓰나미 피해로 볼 때, 진원역은 구마노나다 앞바다 및 엔슈나다 앞바다(C, D 영역)를 포함하는 것은 확실하며[20], 스루가 만(E 영역)까지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8][21]
2년 후 발생한 고와 지진은 에이초 도카이 지진과 짝을 이루는 난카이 앞바다의 지진으로 여겨졌으나, 날짜 오기, 아와의 『다이류지 연기』가 고와 지진을 언급하지 않는 점 등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또한, 진원 시간이 긴 다중 지진을 연상시키는 장시간의 지진동으로 인해 에이초 지진이 난카이 앞바다 지진을 포함한 호에이형 지진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2][8]
하마나 호 연안에서 쓰나미 흔적이 발견되어, 이 시기에 도카이·난카이 지진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22]
887년 닌나 지진 이후 209년의 간격이 있지만, 이 사이에 또 다른 난카이 해구 연안 지진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1994년 나라현 가시바정 하시오 유적 발굴 조사에서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초두 사이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액상화 현상에 의한 사맥이 발견되었다.[23] 그러나 이 지진 흔적은 서일본 내륙 지각 내 지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하시오 유적의 지진 흔적만으로 난카이 해구 거대 지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24]
4. 여진 활동
후지와라 무네타다의 일기인 『중우기』에는 1096년에 발생한 에이초 지진 전후에서 약 2년 후인 고와 지진 무렵까지 많은 지진 기록이 있으며, 활발한 여진 활동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14]。 이 잇따른 지진 등으로 인해 1097년에는 다시 개원되어, 연호는 쇼토쿠로 개원되었다[15]。
참조
[1]
문서
[2]
논문
[論説]1099年承徳(康和)南海地震は実在せず,1096年嘉保(永長)地震が「南海トラフ全域破壊型」だった可能性―土佐地震記事を含む『兼仲卿記』紙背の官宣旨案の考察―
http://www.histeq.jp[...]
2016
[3]
문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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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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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논문
康和元年土佐における大地震
https://doi.org/10.4[...]
196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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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논문
文献史料からみた東海・南海巨大地震 1.14世紀前半までのまとめ
https://doi.org/10.5[...]
東京地学協会
199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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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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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웹사이트
閲覧検索画面
http://sakuya.ed.shi[...]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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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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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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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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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논문
有史以來の地震活動より見たる我國各地の地震危險度及び最高震度の期待値
https://hdl.handle.n[...]
1951-10-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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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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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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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21]
간행물
フィリピン海スラブ沈み込みの境界条件としての東海・南海巨大地震-史料地震学による概要-
京都大学防災研究所研究集会13K-7 報告書
20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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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総合報告:古地震研究によるプレート境界巨大地震の長期予測の問題点 -日本付近のプレート沈み込み帯を中心とし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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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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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理科年表 令和3年
丸善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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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日本のおもな地震
[27]
저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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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都大学防災研究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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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9年承徳(康和)南海地震は実在せず,1096年嘉保(永長)地震が「南海トラフ全域破壊型」だった可能性
http://sakuya.ed.shi[...]
2018-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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