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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반 (에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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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반은 에도 막부의 상비 병력 조직으로, 고쇼구미, 쇼인반 등과 함께 막부의 군사력을 구성했다. 1586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에도성 및 막부 요지의 경호를 담당했다. 초기에는 친위대 성격도 있었으나, 쇼인반 등이 창설되면서 막부 직할 군사력으로 변화했다. 오반은 반토, 구미가시라, 반시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평시에는 에도성 경비, 전시에는 하타모토의 선두 소에 역할을 수행했다. 신반 창설 이후에는 니시노마루 어전 경비를 주로 담당했으며, 니조성 및 오사카성 경비도 맡았다. 오반은 다른 조직에 비해 가계가 낮게 평가되었으나, 하급 무사도 임명될 수 있었다. 센다이 번과 사쓰마 번, 조슈 번 등에서도 오반 또는 오구미라는 유사한 조직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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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반 (에도 시대)
개요
종류에도 막부의 군사 조직
역할교토 및 가마쿠라 방어, 쇼군 경호
조직
구성하타모토
지휘관오반가시라
역사
기원가마쿠라 막부의 오반슈
발전무로마치 막부의 호코슈
확립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에도 시대에 제도화
변화평화 시대에 의례적인 역할로 축소
역할 상세
평시에도 성 경비, 교토 쇼시다이 지원
전시막부 직할 부대로 참전
직책
오반가시라하타모토 출신, 3000석 이상의 다이묘 임명
반가시라각 반의 지휘관
구미가시라각 구미의 지휘관
오반쿠미오반에 소속된 하급 무사

2. 에도 막부의 오반

오반(大番)은 고반방(五番方)으로 불리는 에도 막부의 상비 병력 조직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부대이다.[1] 도쿠가와 이에야스덴쇼 14년(1586년)경 도쿠가와 가문의 군제를 개편하면서 창설한 것으로 여겨지며, 초기에는 친위대와 유사한 성격을 가졌다.[1] 막부 체제가 정비되면서 로주의 지휘 아래 막부의 핵심 군사력으로 자리 잡았으며, 평시에는 에도성을 비롯한 니조성, 오사카성 등 주요 거점의 경비를 담당하고 전시에는 하타모토 부대의 선봉(소에) 역할을 수행했다.[1] 비록 역사는 가장 오래되었으나, "료반(両番)"으로 불린 고쇼구미나 쇼인반에 비해서는 가문의 격이 낮게 평가되어 소속 무사들의 승진에는 다소 제한이 있었다.[1]

2. 1. 구성

오반은 처음에는 6개 조로 편성되었으나, 이후 증강과 막부 제도 정비에 따라 혼마루 로주 지배하에 12개 조가 되었다.

각 조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직책인원야쿠다카 및 비고
반토1명야쿠다카 5,000석 (기쿠마세키). 종종 다이묘가 취임했다.
구미가시라4명야쿠다카 600석 (츠츠지마세키).
반시50명지고 근무 (아시다카노세이에 의한 보충 없음). 대략 200석의 기마 자격을 가진 하타모토가 취임했다.
요리키10명
도시20명



야쿠다카에 규정된 반시의 군역으로 계산하면, 오반 1개 조의 총 병력은 400명 이상으로, 이는 약 2만 석 정도의 다이묘가 동원하는 군사력에 필적하는 규모였다. (『이와부치 야와』에서는 5만 석에 비견된다고도 한다.)

2. 2. 역할

오반의 주요 직무는 평시에는 에도성 및 막부의 중요 거점을 경호하고, 전시에는 하타모토의 선두에서 소에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평시 에도성 경비는 처음에는 혼마루 어전의 호랑이 사이에 배치되었으나, 간에이 20년(1643년) 신반이 창설되면서 경비 장소가 연쇄적으로 이동함에 따라 오반은 에도성 경비 임무에서 제외되었다. 이로 인해 반시들의 사기가 저하되자, 반토가 경비 임무 복귀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당시 비어있던 니시노마루 어전의 경비를 맡게 되었고, 이후 오고쇼나 세자가 부재할 때 니시노마루와 니노마루 어전의 경비를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니노마루 경비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1]. 또한, 마와리반으로서 에도 시내를 순찰하고 경비하는 임무도 수행했다.

오반이 경호하는 주요 거점으로는 니조성오사카성이 있었으며, 각각 2개 조가 1년씩 교대로 근무했다. 에도 시대 초기에는 후시미성슨푸성의 경비도 맡았으나, 후시미성은 폐성되면서, 슨푸성 경비는 쇼인반이 담당하게 되면서 각각 폐지되었다.

이 외에도, 반시 중에서 일부 인원이 선발되어 어장 봉행(수 명)이나 서체 봉행(쌀 수표 개정 담당, 1명)과 같은 특정 직무를 맡기도 했다[2].

오반은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료반"으로 불리는 고쇼구미나 쇼인반에 비해서는 가문의 격이 한 단계 낮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소속된 반시들의 출세에는 제한이 있었다. 다만, 헤야즈미(집안의 후계자가 아닌 아들)나 로닌 등 비교적 신분이 낮은 무사들도 1대에 한하여 오반에 임명될 수 있었는데, 이 경우 조마이(급료를 쌀로 받는 하급 관리) 취급을 받았다.

2. 3. 특징

오반은 고쇼구미, 쇼인반, 신반, 고주닌구미 등과 함께 고반방(五番方)을 구성하는 조직 중 하나로,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1] 도쿠가와 이에야스덴쇼 14년(1586년)경 이시카와 가즈마사의 출분 이후 도쿠가와 가문의 군제를 개편하면서 창설된 것으로 여겨진다.[1] 분로쿠 원년(1592년) 에도성 개축 시에는 성의 북서쪽에 6개 조(組)의 저택 부지가 마련되었는데, 이 지역은 현재 도쿄도 지요다구의 이치반초부터 로쿠반초까지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1] 초기에는 마쓰다이라 일족이나 이에야스와 가까운 인물들이 반토(番頭)를 맡는 경우가 많았고, 후대의 료반(両番)처럼 친위대 성격도 지녔다.[1]

처음 6개 조로 시작했으나, 이후 막부 제도가 정비되면서 혼마루의 로주 지휘 아래 12개 조로 증강되었다.[1]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쇼군에 오르고 쇼인반과 고쇼구미가 신설되면서 친위대 역할은 이들 조직으로 넘어갔고, 오반은 로주 휘하의 막부 직속 군사력으로 자리 잡았다.[1] 이 때문에 쇼군, 오고쇼, 세자의 직접적인 친위대가 아니었던 오반은 니시노마루에 배치되는 경우가 드물었다.[1] 단, 게이초 초기 쇼인반 등이 창설되기 전에는 이에야스와 히데타다에게 오반이 나뉘어 배속되기도 했는데,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에도 이러한 편제로 참전했다.[1]

오반 1개 조의 구성[1]
직책인원비고
반토(番頭)1명야쿠다카 5000석, 기쿠노마세키. 종종 다이묘가 임명됨.
구미가시라(組頭)4명야쿠다카 600석, 쓰쓰지노마세키.
반시(番士)50명하타모토 신분. 대략 200석 급의 기마 자격 보유. 지고 근무(知行勤務).
요리키(与力)10명
도신(同心)20명



1개 조의 총 병력은 400명 이상으로, 약 20000석 규모 다이묘의 군사력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이와부치 야와』(岩淵夜話)에서는 50000석에 해당한다고도 기록됨).[1]

평시에는 에도성과 막부의 주요 거점을 경호하고, 전시에는 하타모토 부대의 선봉(소에, 備)을 맡았다.[1] 에도성 경비는 초기에 혼마루 어전의 호랑이 사이(虎之間)를 담당했으나, 간에이 20년(1643년) 신반 창설 후 경비 구역 조정으로 인해 에도성 경비 임무에서 제외되었다.[1] 이 조치로 반시들의 사기가 저하되자 반토가 경비 임무 복귀를 요청했고, 이에 따라 오고쇼나 세자가 없을 때 비어 있는 니시노마루나 니노마루 어전의 경비를 맡게 되었다. 특히 니노마루 경비가 잦았다.[1] 마와리반(廻り番)으로서 에도 시내 순찰 임무도 수행했다.[1] 에도 외 주요 거점으로는 교토니조성오사카성이 있었으며, 각각 2개 조가 1년씩 교대로 근무(在番, 재번)했다.[1] 초기에는 후시미성슨푸성 경비도 담당했으나, 후시미 성 폐성과 슨푸 성 경비 임무의 쇼인반 이관으로 인해 해당 임무는 폐지되었다.[1]

추가적으로, 반시 중에서 일부는 '''어선 봉행'''(御肴奉行)이나 '''서체 봉행'''(書替奉行, 쇼군에게 진상하는 쌀의 품질 검사 담당)과 같은 역직(役職)을 맡기도 했다.[2]

오반은 오랜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료반(両番)으로 불린 고쇼구미, 쇼인반에 비해 가문의 격이 낮게 평가되어 반시들의 승진 기회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1] 헤야즈미(部屋住)나 로닌 등 비교적 낮은 신분의 무사들이 1대 한정으로 반시에 임명되기도 했는데, 이 경우 조마이(蔵米) 지급 대상이 되었다.[1]

3. 여러 번의 오반 및 오구미

센다이 번에서는 御番頭|오반가시라일본어가 통괄하는 御番組|오반구미일본어가 존재했다(자세한 내용은 센다이 번의 관직 참조). 사쓰마 번에서는 가문의 격식이 정비되기 전후로, 후년에 御小姓与|오코쇼요일본어와 新番|신반일본어의 신분으로 구분된 무사를 御番|오반일본어이라 불렀다. 하지만 이는 에도 막부나 다른 번들의 오반과는 달리 중소 규모의 부대였다.

여러 번에서는 조슈 번이나 야나가와 번, 에치고 나가오카 번처럼 大組|오구미일본어라고 불리는 기마대 조직이 설치되는 경우가 있었다. 에치고 나가오카 번과 야나가와 번의 오구미는 家老|가로일본어가 組頭|구미가시라일본어를 겸임하고, 組士|구미사일본어는 馬廻|우마마와리일본어 신분이었다. 조슈 번의 경우에는 寄組|요리구미일본어에서 임명된 大組頭|오구미가시라일본어가 통괄했다.

참조

[1] 서적 官職要解 고단샤학술문고
[2] 서적 江戸の旗本事典 고단샤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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