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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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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옴진리교 사건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옴진리교에 의해 자행된 일련의 범죄 사건들을 통칭한다. 이 사건들은 옴진리교 신자들의 살인, 납치, 사린 가스 테러 등 반사회적 행위로 특징지어진다. 주요 사건으로는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 마쓰모토 사린 사건,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등이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들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옴진리교 관련자들의 체포와 재판, 사형 집행으로 이어졌다. 옴진리교 사건은 일본 사회의 종교, 언론, 법률, 사회 시스템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까지도 여러 의문점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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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에서 옴진리교 신도들이 사린 가스를 살포하여 14명이 사망하고 6,000명 이상이 부상당한 테러 사건으로, 옴진리교의 극단적 신념과 권력 야망, 경찰 수사 회피 의도가 작용한 결과이며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생화학 테러의 위험성을 일깨워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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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진리교 사건
개요
명칭오움진리교 사건
로마자 표기Oumu Shinrikyo Jiken
주요 관련 단체오움진리교
발생 위치일본
시기1989년 ~ 1995년
원인 및 배경
교주아사하라 쇼코의 종말론 및 독재적 교단 운영
사회적 배경일본 사회의 불안과 새로운 종교에 대한 관심 증가
주요 사건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1989년 11월
마쓰모토 사린 사건1994년 6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1995년 3월 20일
결과
교단 해산 명령1995년 12월 (파산)
교주 및 간부 사형 집행2018년 7월
관련자 형사 재판 종료2018년 1월
피해 규모사망 29명, 부상 6,500명 이상 (확인된 것만)
재판
전체 재판 종료2018년 1월 26일
최종 피고인다카하시 가쓰야의 상고 기각
주요 피고인 사형 집행2018년 7월, 아사하라 쇼코 포함 7명
무기징역 확정기쿠치 나오코 무죄 확정 (2017년 12월)
징역 9년 확정히라타 마코토 상고 기각 (2016년 1월 15일)

2. 주요 사건

(명)부상자
(명)사건 동기1988년 9월 22일재가신자 사망 사건10신자의 사고사와 그 은폐1989년 2월 10일남성신자 살해 사건10교단에서 탈주한 인물을 살해1989년 11월 4일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 살해 사건30교단을 적대하는 외부인(인권변호사)의 암살1990년국토법 위반 사건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토지매매의 은폐1991년경여성신자 살해 사건(미입건)10스파이로 의심된 신자를 살해1992년 9월 14일오카무라철공 탈취 사건(미입건)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자산 강탈과 교단 무장화1993년 6월 6일거꾸로 매달려 사망 사건10신자의 사고사와 그 은폐1993년 6월 28일제1차 카메이도 이취 사건(미입건)00세균무기 배양과 무차별 테러1993년 7월 2일제2차 카메이도 이취 사건(미입건)001993년 11월제1차 이케다타 이사쿠 사린 습격 미수 사건(미입건)00교단을 적대하는 외부인(창가학회 지도자)의 암살1993년 11월 -사린플랜트 건설 사건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교단의 무장화1993년 12월 18일제2차 이케다타 이사쿠 사린 습격 미수 사건(미입건)0수명교단을 적대하는 외부인(창가학회 지도자)의 암살1994년 1월 30일약제사 린치 살인 사건10교단에서 탈주한 인물을 살해1994년 2월 -자동소총 밀조 사건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교단의 무장화1994년 3월 27일미야자키현 자산가 납치 사건01자산 강탈1994년 5월 9일타키모토 타로 변호사 사린 습격 사건01교단을 적대하는 외부인(인권변호사)의 암살1994년 5월 -LSD 밀조 사건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이니시에이션용 위법약물 조제1994년 6월 27일마쓰모토 사린 사건7600[87]교단 지부 퇴거재판을 담당하는 판사의 암살1994년 7월 -각성제 밀조 사건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이니시에이션용 위법약물 조제1994년 7월 10일남성신자 린치 살인 사건10스파이로 의심된 신자를 살해1994년 7월 15일센다이 지부장 사망 사건(미입건)10신자의 사고사와 그 은폐1994년 7월 28일여성간호사 납치 감금 사건01교단에서 탈주한 인물을 감금1994년 9월 20일에가와 쇼코 포스겐 습격 사건(미입건)01교단을 적대하는 외부인(언론인)의 암살1994년 9월 -티오펜탈나트륨 밀조 사건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이니시에이션용 위법약물 조제1994년 11월 20일카시마 토모코 장녀 납치 감금 사건01출가를 거부하는 인물을 감금1994년 12월 2일주차장경영자 VX 습격 사건01교단을 탈주한 신자를 숨겨준 인물을 살해1994년 12월 9일오사카에서의 (전 자위관)납치 감금 사건[88][89]01교단에서 탈주한 인물을 감금1994년 12월 10일피아니스트 감금 사건01출가를 거부하는 인물을 감금1994년 12월 12일회사원 VX 살해 사건10스파이로 의심되는 인물을 살해1994년 12월 28일미츠비시중공 히로시마연구소 침입 사건[90]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데이터 수집1994년 12월 ?일후추운전면허시험장 침입 사건[88]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데이터 수집1994년 12월 -메스칼린 밀조 사건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이니시에이션용 위법약물 조제1995년 1월 4일피해자회 회장 VX 습격 사건01교단을 적대하는 인물(피해자회 회장)을 암살1995년 1월자동차면허증 위조 사건[88]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범죄목적으로 위조면허증을 제작1995년 2월 28일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10교단을 탈주한 신자를 숨겨준 사람의 납치 및 거액의 시주가 가능한 신자의 탈환1995년 3월 15일카스미가세키역 아타셰케이스 사건(미입건)00교단에 대한 수사의 교란 및 수도권의 혼란1995년 3월 19일오사카 대학생 납치 감금 사건[91]01교단에서 탈주한 인물을 감금1995년 3월 19일시마다 히로미 자택 폭탄 사건00자작극1995년 3월 19일옴진리교 도쿄총본부 화염병 투척 사건001995년 3월 20일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126,300교단에 대한 수사의 교란 및 수도권의 혼란1995년 3월 20일나고야에서의 할머니 납치 사건[88]01자산 강탈1995년 3월 22일제6사티안 예배당 신자 납치 감금 사건[92]06교단 탈퇴 저지1995년 3월 22일제10사티안 신자감금사건[88]0style="text-align:center;" |1995년 4월-5월신주쿠역 청산가스 사건00교단에 대한 수사의 교란 및 수도권의 혼란1995년 5월 16일도쿄도청 소포폭탄 사건01교단에 대한 수사의 교란 및 교단 해산권을 가진 도지사 업무 방해



제2차 이케다타 이사쿠 사린습격미수사건 부상자에는 실행범 니이미 토모미츠도 포함된다.

코노 요시유키의 아내도 마쓰모토 사린 사건의 사망자이지만 재판에서 인정되지 않았기에 이 표에서는 카운트하지 않는다. 마쓰모토 사린 사건의 부상자 600명은 주민조사에서 주장된 수효이고, 재판에서는 144명이 인정되었다. 1997년 12월 재판 신속화를 위해 4명으로 변경되었다.[93]

2008년 12월 시행된 옴피해자 구제법에서는 사건 익일 입욕중 익사한 남성을 포함해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의 사망자 수를 13명으로 집계한다.[94]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의 부상자 6300명은 어림수이며, 재판에서 인정된 피해자는 3794명이다. 1997년 12월 재판 신속화를 위해 14명으로 변경되었다.[87][94]

2. 1. 1980년대

(명)부상자
(명)사건 동기1988년 9월 22일재가신자 사망 사건10신자의 사고사와 그 은폐1989년 2월 10일남성신자 살해 사건10교단에서 탈주한 인물을 살해1989년 11월 4일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 살해 사건30교단을 적대하는 외부인(인권변호사)의 암살



NHK에 따르면 2004년 시점의 행방불명자 명단에는 50명 이상의 이름이 있다.[24]

화학 실험 중 중독된 여성 신자가 옴진리교 부속 병원에서 사망하여 신고 없이 처리되었다는 증언이 있다.[25] 영양 실조에 걸린 여성 신자가 사망하여 은폐되었다는 증언도 있다.[26] 최소 5명의 신자가 약물에 의해 사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27]

1989년 2월, 옴진리교를 탈퇴하려던 남성 신자가 교단 간부들에게 살해당했다.

옴진리교는 1989년 11월 4일, 옴진리교 문제를 제기하던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와 그의 가족을 살해했다. 이 사건은 옴진리교의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사건을 통해 옴진리교의 잔혹함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종교의 자유를 악용한 범죄에 대해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2. 1. 1. 옴진리교 재가신자 사망 사건 (1988년)

NHK에 따르면 2004년 시점의 행방불명자 명단에는 50명 이상의 이름이 있다.[24]

화학 실험 중 중독된 여성 신자가 옴진리교 부속 병원에서 사망하여 신고 없이 처리되었다는 증언이 있다.[25] 영양 실조에 걸린 여성 신자가 사망하여 은폐되었다는 증언도 있다.[26] 최소 5명의 신자가 약물에 의해 사망했다는 보도도 나왔다.[27]

2. 1. 2. 옴진리교 남성신자 살해 사건 (1989년)

1989년 2월, 옴진리교를 탈퇴하려던 남성 신자가 교단 간부들에게 살해당했다.

2. 1. 3.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 (1989년)

옴진리교는 1989년 11월 4일, 옴진리교 문제를 제기하던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와 그의 가족을 살해했다. 이 사건은 옴진리교의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사건을 통해 옴진리교의 잔혹함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종교의 자유를 악용한 범죄에 대해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2. 2. 1990년대 초반

1990년, 국토법 위반 사건이 발생하여 토지매매를 은폐하려 하였다.

1991년경, 여성신자 살해 사건이 발생하였는데(미입건), 스파이로 의심된 신자를 살해한 사건이다.

1992년 9월 14일, 오카무라철공 탈취 사건(미입건)이 발생하였는데, 옴진리교는 자산 강탈과 교단 무장화를 목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2. 2. 1. 옴진리교 국토이용계획법 위반 사건 (1990년)

1990년 4월, 옴진리교는 구마모토현 아소군 나미노무라(현 아소시)의 토지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국토이용계획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옴진리교는 리조트 개발을 명목으로 해당 토지를 매입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종교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이 과정에서 옴진리교는 토지 매매 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나미노무라에 토지 이용 목적을 속이는 등 국토이용계획법을 위반했다.

나미노무라는 옴진리교의 토지 취득에 반대했고, 옴진리교는 이에 반발하여 나미노무라 주민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옴진리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옴진리교는 해당 토지를 포기해야 했다.

이 사건은 옴진리교가 종교적 목적을 숨기고 부동산을 매입하려 한 정황을 보여주며, 옴진리교의 반사회적 행태에 대한 비판 여론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은 옴진리교의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초기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후 옴진리교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등 여러 범죄를 저지르며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2. 2. 2. 옴진리교 여성신자 살해 사건 (1991년)

1991년, 옴진리교는 스파이로 의심받던 여성 신자를 살해했다.

2. 2. 3. 오카무라철공 탈취 사건 (1992년)

옴진리교는 자산 강탈 및 교단 무장화를 위해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2. 3. 1993년

wikitext

1993년 6월 6일, '''거꾸로 매달려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신자 1명이 사망했지만, 사고사와 그 은폐로 처리되었다. NHK에 따르면 2004년 시점의 행방불명자 명단에는 50명 이상의 이름이 있었다.[24] 화학 실험 중 중독된 여성 신자가 옴진리교 부속 병원에서 사망하여 신고 없이 처리되었다는 증언이 있다.[25] 영양 실조에 걸린 여성 신자가 사망하여 은폐되었다는 증언도 있다.[26] 최소 5명의 신자가 약물에 의해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27]

1993년 6월 28일에는 제1차 카메이도 이취 사건이, 7월 2일에는 제2차 카메이도 이취 사건이 발생했다(모두 미입건). 옴진리교는 1993년 6월 말, 도쿄 고토구 카메이도에 있는 교단 시설 옥상에서 탄저균을 살포했다. 이 사건은 옴진리교가 처음으로 생물 무기를 사용한 사건이지만, 사용한 균은 가축용 백신으로 제조된 균주였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시설 주변에서는 악취가 발생하여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옴진리교는 "악취는 4대 매스컴의 탓"이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등, 반사회적인 모습을 보였다. 1993년 7월 2일, 옴진리교는 보툴리누스균을 이용한 추가 테러를 계획했다. 도쿄 치요다구 카스미가세키에 있는 일본 국회의사당, 일본 황거, 재무성, 후생성 청사 주변에 균을 살포하려 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

1993년 11월에는 제1차 이케다타 이사쿠 사린 습격 미수 사건이, 12월 18일에는 제2차 이케다타 이사쿠 사린 습격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모두 미입건). 이 사건들에서 옴진리교는 교단을 적대하는 외부인인 창가학회 지도자 이케다 다이사쿠를 암살하려 했으며, 이는 일본에서 공명당을 지원하는 창가학회에 대한 공격의 일환이었다. 제2차 사건에서는 실행범 니이미 토모미츠도 부상자에 포함된다.

1993년 11월부터는 사린플랜트 건설 사건이 발생했다. 옴진리교는 교단의 무장화를 위해 사린을 대량 생산하는 시설을 건설하려 했다. 이는 옴진리교의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2. 3. 1. 옴진리교 남성신자 거꾸로 매달려 사망 사건

NHK에 따르면 2004년 시점의 행방불명자 명단에는 50명 이상의 이름이 있다.[24]

화학 실험 중 중독된 여성 신자가 옴진리교 부속 병원에서 사망하여 신고 없이 처리되었다는 증언이 있다.[25] 영양 실조에 걸린 여성 신자가 사망하여 은폐되었다는 증언도 있다.[26] 최소 5명의 신자가 약물에 의해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27]

2. 3. 2. 카메이도 이취 사건

옴진리교는 1993년 6월 말, 도쿄 고토구 카메이도에 있는 교단 시설 옥상에서 탄저균을 살포했다. 이 사건은 옴진리교가 처음으로 생물 무기를 사용한 사건이지만, 사용한 균은 가축용 백신으로 제조된 균주였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시설 주변에서는 악취가 발생하여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옴진리교는 "악취는 4대 매스컴의 탓"이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1993년 7월 2일, 옴진리교는 보툴리누스균을 이용한 추가 테러를 계획했다. 도쿄 치요다구 카스미가세키에 있는 일본 국회의사당, 일본 황거, 재무성, 후생성 청사 주변에 균을 살포하려 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

2. 3. 3. 이케다 다이사쿠 사린 습격 미수 사건

옴진리교는 1993년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 명예회장에 대한 독가스 살포 미수 사건을 일으켰다. 이는 일본에서 공명당을 지원하는 창가학회에 대한 공격의 일환이었다.

2. 3. 4. 사린플랜트 건설 사건

옴진리교는 무장화를 위해 사린을 대량 생산하는 시설을 건설하려 했다.

2. 4. 1994년

1994년 1월 30일, 옴진리교는 교단에서 탈퇴하려던 약제사를 린치하고 살해했다.

1994년 2월, 교단은 무장화를 위해 자동소총을 밀조하려 했다.

1994년 3월 27일, 옴진리교는 자산을 강탈할 목적으로 미야자키현의 자산가를 납치했다.

1994년 5월 9일, 옴진리교는 옴진리교 사건을 제기하던 다키모토 타로 변호사를 사린으로 암살하려 한 미수 사건을 일으켰다.

1994년 5월, 옴진리교는 신자들에게 '이니시에이션'이라는 의식을 통해 LSD를 투여했다. 일본에서 LSD는 1960년대 말 히피 문화를 상징하는 마약으로 여겨져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옴진리교는 LSD 밀조 사실을 숨기기 위해 '구세주'라는 의미의 '우트파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1994년 6월 27일, 옴진리교는 마쓰모토 사린 사건을 일으켰다. 옴진리교는 교단 지부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담당하던 판사를 살해하고, 사린 살포의 예비 실험을 할 목적으로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 이 사건으로 7명이 사망하고 6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87]

1994년 7월, 옴진리교는 이니시에이션에 사용하기 위한 불법 약물인 각성제를 몰래 제조하였다.

1994년 7월 10일, 옴진리교의 한 남성 신자가 옴진리교 시설내에서 린치를 당해 살해당했다. 이 신도는 옴진리교의 스파이로 의심받고 있었다.

1994년 7월 15일, NHK에 따르면 2004년 시점의 행방불명자 명단에는 50명 이상의 이름이 있었다.[24] 화학 실험 중 중독된 여성 신자가 옴진리교 부속 병원에서 사망하여 신고 없이 처리되었다는 증언이 있다.[25] 영양 실조에 걸린 여성 신자가 사망하여 은폐되었다는 증언이 있다.[26] 최소 5명의 신자가 약물에 의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27]

1994년 7월 28일, 교단에서 탈퇴하려던 여성 간호사를 납치하여 감금한 사건이 발생했다.

1994년 9월 20일, 옴진리교는 1989년 9월, 자신들의 교단과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비판하는 언론인 에가와 쇼코를 암살하기 위해, 옴진리교 신자 4명이 그녀의 자택에 침입하여 포스겐 가스를 살포했다. 그러나 에가와 쇼코는 외출 중이어서 암살은 미수에 그쳤다.

1994년 9월, 옴진리교는 이니시에이션에 사용하기 위한 티오펜탈나트륨을 밀조했다.

1994년 11월 20일, 옴진리교가 신자였던 가시마 도모코(鹿島とも子)의 장녀를 납치하여 출가를 강요하며 감금한 사건이 발생했다. 장녀는 출가를 거부하였다.

1994년 12월 2일, 교단을 탈주한 신자를 숨겨준 주차장 경영자를 VX 가스로 암살하려 한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1994년 12월 9일, 교단에서 탈퇴하려던 전 자위관을 납치하여 감금한 사건이 발생했다.

1994년 12월 10일, 옴진리교 신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남성이 출가를 거부하자 옴진리교에서 그를 감금한 사건이 발생했다.

1994년 12월 12일, 옴진리교는 스파이로 의심되는 제약회사 연구원인 남성(당시 28세)을 VX로 살해했다. 1994년 12월 12일 오전 7시경, 오사카시 스미노에구의 회사 기숙사 앞에서 나카가와 토모마사, 니시 아사히토, 린 郁夫, 나카타 히데오가 매복했다. 피해자가 나오자 나카타 히데오가 말을 걸었고, 그가 뒤돌아보는 순간 린 郁夫가 피해자의 목덜미에 VX 용액을 뿌렸다. 피해자는 100m 정도 도망갔지만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10일 후에 사망했다.

1994년 12월 28일, 옴진리교는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미쓰비시중공 히로시마연구소에 침입했다.

1994년 12월, 옴진리교는 1987년 12월 하순, 데이터 수집을 위해 후추운전면허시험장에 침입했다.

1994년 12월, 옴진리교는 이니시에이션에 사용하기 위한 불법 약물인 메스칼린을 밀조하였다.

2. 4. 1. 약제사 린치 살인 사건

옴진리교에서 탈퇴하려던 약제사를 린치하고 살해한 사건이다.

2. 4. 2. 자동소총 밀조 사건

교단은 무장화를 위해 자동소총을 밀조하려 했다.

2. 4. 3. 미야자키현 자산가 납치 사건

옴진리교는 자산을 강탈할 목적으로 미야자키현의 자산가를 납치했다.

2. 4. 4. 다키모토 타로 변호사 사린 습격 사건

옴진리교 문제를 제기하던 다키모토 타로 변호사를 1994년 사린으로 암살하려 한 미수 사건이다.

2. 4. 5. LSD 밀조 사건

옴진리교는 신자들에게 '이니시에이션'이라는 의식을 통해 LSD를 투여했다. 일본에서 LSD는 1960년대 말 히피 문화를 상징하는 마약으로 여겨져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옴진리교는 LSD 밀조 사실을 숨기기 위해 '구세주'라는 의미의 '우트파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2. 4. 6. 마쓰모토 사린 사건

옴진리교가 일으킨 일련의 사건 중 하나로, 1994년 6월 27일 나가노현 마쓰모토시에서 발생했다. 옴진리교는 교단 지부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담당하던 판사를 살해하고, 사린 살포의 예비 실험을 할 목적으로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 이 사건으로 7명이 사망하고 6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2. 4. 7. 각성제 밀조 사건

옴진리교는 이니시에이션에 사용하기 위한 불법 약물인 각성제를 몰래 제조하였다.

2. 4. 8. 옴진리교 남성신자 린치 살인 사건

옴진리교의 한 남성 신자가 1994년 1월 30일옴진리교 시설내에서 린치를 당해 살해당했다. 이 신도는 옴진리교의 스파이로 의심받고 있었다.

2. 4. 9. 센다이 지부장 사망 사건

NHK에 따르면 2004년 시점의 행방불명자 명단에는 50명 이상의 이름이 있었다.[24]

화학 실험 중 중독된 여성 신자가 옴진리교 부속 병원에서 사망하여 신고 없이 처리되었다는 증언이 있다.[25]

영양 실조에 걸린 여성 신자가 사망하여 은폐되었다는 증언이 있다.[26]

최소 5명의 신자가 약물에 의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27]

2. 4. 10. 여성간호사 납치 감금 사건

교단에서 탈퇴하려던 여성 간호사를 납치하여 감금한 사건이다.

2. 4. 11. 에가와 쇼코 포스겐 습격 사건

옴진리교는 1989년 9월, 자신들의 교단과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비판하는 언론인 에가와 쇼코를 암살하기 위해, 옴진리교 신자 4명이 그녀의 자택에 침입하여 포스겐 가스를 살포했다. 그러나 에가와 쇼코는 외출 중이어서 암살은 미수에 그쳤다.

2. 4. 12. 티오펜탈나트륨 밀조 사건

옴진리교는 이니시에이션에 사용하기 위한 티오펜탈나트륨을 밀조했다.

2. 4. 13. 가시마 도모코 장녀 납치 감금 사건

옴진리교가 신자였던 가시마 도모코(鹿島とも子)의 장녀를 납치하여 출가를 강요하며 감금한 사건이다. 장녀는 출가를 거부하였다.

2. 4. 14. 주차장경영자 VX 습격 사건

교단을 탈주한 신자를 숨겨준 주차장 경영자를 VX 가스로 암살하려 한 미수 사건이다.

2. 4. 15. 오사카 전 자위관 납치 감금 사건

교단에서 탈퇴하려던 전 자위관을 납치하여 감금한 사건이다.

2. 4. 16. 피아니스트 감금 사건

이 사건은 옴진리교 신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남성이 출가를 거부하자 옴진리교에서 그를 감금한 사건이다.

2. 4. 17. 회사원 VX 살해 사건

옴진리교는 스파이로 의심되는 제약회사 연구원인 남성(당시 28세)을 VX로 살해했다. 1994년 12월 12일 오전 7시경, 오사카시 스미노에구의 회사 기숙사 앞에서 나카가와 토모마사, 니시 아사히토, 린 郁夫, 나카타 히데오가 매복했다. 피해자가 나오자 나카타 히데오가 말을 걸었고, 그가 뒤돌아보는 순간 린 郁夫가 피해자의 목덜미에 VX 용액을 뿌렸다. 피해자는 100m 정도 도망갔지만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10일 후에 사망했다.

2. 4. 18. 미쓰비시중공 히로시마연구소 침입 사건

옴진리교는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미쓰비시중공 히로시마연구소에 침입했다.

2. 4. 19. 후추운전면허시험장 침입 사건

옴진리교는 1987년 12월 하순, 데이터 수집을 위해 후추운전면허시험장에 침입했다.

2. 4. 20. 메스칼린 밀조 사건

옴진리교는 이니시에이션에 사용하기 위한 불법 약물인 메스칼린을 밀조하였다.

2. 5. 1995년

1995년 1월 4일, 옴진리교는 옴진리교 피해자회 회장 VX 습격 사건을 일으켜 교단을 적대하는 피해자회 회장을 암살하려 했다.

1995년에 옴진리교는 범죄 목적으로 사용할 자동차를 확보하기 위해 자동차면허증 위조 사건을 일으켰다.[88]

1995년 2월 28일, 옴진리교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을 일으켜 교단을 탈주한 신자를 숨겨준 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을 납치, 감금하여 사망에 이르게 했다.

1995년 3월 15일, 옴진리교카스미가세키역 아타셰케이스 사건(미입건)을 일으켜 교단에 대한 강제 수사를 피하고 수도권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가스미가세키역에서 사린 살포를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1995년 3월 19일, 옴진리교에서 탈퇴하려는 대학생을 납치하여 감금한 오사카 대학생 납치 감금 사건이 발생했다.[91]

1995년 3월 19일, 옴진리교는 시마다 히로미 자택 폭탄 사건을 일으켜 시마다 히로미의 자택에 폭탄을 설치했다.

1995년 3월 19일, 옴진리교 도쿄총본부 화염병 투척 사건이 발생했는데, 시마다 히로미 자택 폭탄 사건과 함께 옴진리교의 자작극으로 의심된다.

1995년 3월 20일 발생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옴진리교가 교단에 대한 수사를 교란하고 수도권의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살포하여 12명이 사망하고 6,300여 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다.[47][46] 이 사건은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무차별 테러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었다. 특히,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이 사건을 이용하여 혐한 감정을 부추기고,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강화하는 데 악용하기도 했다.

1995년 3월 20일, 옴진리교는 나고야 할머니 납치 사건을 일으켜 미륵보살을 섬기는 종교 단체를 운영하며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나고야시의 한 할머니를 납치하여 자산을 강탈하려 했다.[88]

1995년 3월 22일, 옴진리교는 제6사티안, 제10사티안 신자 감금 사건을 일으켜 교단을 탈퇴하려는 신자들을 막기 위해 제6사티안, 제10사티안 등에 신자들을 감금했다.[92][88]

1995년 4월-5월, 옴진리교는 신주쿠역 청산가스 사건을 일으켜 교단에 대한 수사를 교란하고 수도권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신주쿠역에 청산가스를 살포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1995년 5월 16일, 옴진리교는 도쿄도청 소포폭탄 사건을 일으켜 교단에 대한 수사를 교란하고 교단 해산권을 가진 아오시마 유키오 도쿄도지사의 업무를 방해하기 위해 도쿄도청에 소포 폭탄을 보냈다.

2. 5. 1. 피해자회 회장 VX 습격 사건

옴진리교 피해자회 회장을 VX 가스로 암살하려 한 미수 사건이다.

2. 5. 2. 자동차면허증 위조 사건

옴진리교는 다양한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중 하나는 자동차운전면허증 위조 사건이다. 이들은 범죄 목적으로 사용할 자동차를 확보하기 위해 자동차운전면허증을 위조했다.

2. 5. 3. 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교단을 탈주한 신자를 숨겨준 메구로 공증인사무소 사무장을 납치, 감금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2. 5. 4. 가스미가세키역 아타셰케이스 사건

옴진리교는 교단에 대한 강제 수사를 피하고 수도권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1995년 5월 16일, 가스미가세키역에서 사린 살포를 시도했다. 이들은 아타셰케이스를 이용해 사린을 살포하려 했으나, 이는 미수에 그쳤다.

2. 5. 5. 오사카 대학생 납치 감금 사건

옴진리교에서 탈퇴하려는 대학생을 납치하여 감금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89년 12월에 발생하였다.

2. 5. 6. 시마다 히로미 자택 폭탄 사건

옴진리교는 1995년 1월 1일, 옴진리교를 비판하던 종교학자 시마다 히로미의 자택에 폭탄을 설치했다.

2. 5. 7. 옴진리교 도쿄총본부 화염병 투척 사건

옴진리교 도쿄총본부 화염병 투척 사건은 시마다 히로미 자택 폭탄 사건과 함께 옴진리교의 자작극으로 의심되는 사건이다.

2. 5. 8.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1995년 3월 20일 발생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옴진리교가 교단에 대한 수사를 교란하고 수도권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지하철에 사린 가스를 살포한 사건이다.[47] 이 사건으로 12명이 사망하고 6,3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46] 이 사건은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무차별 테러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었다. 특히, 일본의 극우 세력들은 이 사건을 이용하여 혐한 감정을 부추기고,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강화하는 데 악용하기도 했다.

2. 5. 9. 나고야 할머니 납치 사건

옴진리교는 1989년 5월, 나고야시의 한 78세 할머니를 납치했다. 이 할머니는 35년 동안 미륵보살을 섬기는 종교 단체를 운영하며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옴진리교는 이 할머니의 자산을 강탈할 목적으로 납치했다.

2. 5. 10. 제6사티안, 제10사티안 신자 감금 사건

옴진리교는 교단을 탈퇴하려는 신자들을 막기 위해 제6사티안, 제10사티안 등에 신자들을 감금했다.

2. 5. 11. 신주쿠역 청산가스 사건

옴진리교가 교단에 대한 수사를 교란하고 수도권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신주쿠역에 청산가스를 살포하려 한 미수 사건이다.

2. 5. 12. 도쿄도청 소포폭탄 사건

옴진리교가 교단에 대한 수사를 교란하고 교단 해산권을 가진 아오시마 유키오 도쿄도지사의 업무를 방해하기 위해 도쿄도청에 소포 폭탄을 보낸 사건이다.

3. 주요 체포 및 구속자

옴진리교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자는 1996년 1월 18일 시점에서 403명이었고, 그 중 192명이 기소되었다.[95][96] 무라이 히데오는 체포되기 전에 우익폭력단원에게 살해되었다(무라이 히데오 척살사건).[28][29]

인물판결체포 당시 역직홀리네임신병구속일
마츠모토 치즈오사형, 2018년 7월 6일 도쿄구치소에서 집행신성법황
(神聖法皇)
마하구루 아사하라/マハーグル・アサハラ일본어1995년 5월 16일
이노우에 요시히로사형, 2018년 7월 6일 오사카구치소에서 집행첩보성아난다/アーナンダ일본어1995년 5월 15일
엔도 세이이치사형. 2018년 7월 6일 도쿄구치소에서 집행제1후생성지바카/ジーヴァカ일본어1995년 4월 26일
오카사키 카즈아키사형, 2018년 7월 26일 나고야구치소에서 집행(탈퇴)마하 앙굴리말라/マハーアングリマーラ일본어1995년 9월 6일
츠치야 마사미사형, 2018년 7월 6일 도쿄구치소에서 집행제2후생성크시티가르바/クシティガルバ일본어1995년 4월 26일
토요타 토오루사형, 2018년 7월 26일 도쿄구치소에서 집행과학기술성바지라바니/ヴァジラパーニ일본어1995년 5월 15일
나카가와 토모마사사형, 2018년 7월 6일 히로시마구치소에서 집행법황내청바지라팃사/ヴァジラティッサ일본어1995년 5월 17일
니이미 토모미츠사형, 2018년 7월 6일 오사카구치소에서 집행자치성미라레바/ミラレパ일본어1995년 4월 12일
하시모토 사토루사형, 2018년 7월 26일 도쿄구치소에서 집행자치성가프바 라틸리야/ガフヴァ・ラティーリヤ일본어1995년 7월 9일
하야카와 키요히데사형, 2018년 7월 6일 후쿠오카구치소에서 집행건설성테이로바/ティローパ일본어1995년 4월 20일
하야시 야스오사형, 2018년 7월 26일 미야자키형무소에서 집행과학기술성이시딘나/イシディンナ일본어1996년 12월 3일
히로세 켄이치사형, 2018년 7월 26일 도쿄구치소에서 집행과학기술성산쟈야/サンジャヤ일본어1995년 5월 16일
요코야마 마사토사형, 2018년 7월 26일 나고야구치소에서 집행과학기술성바지라발리야/ヴァジラヴァッリィヤ일본어1995년 5월 16일
키타무라 코이치무기징역자치성캇사바/カッサパ일본어1996년 11월 14일
스기모토 시게오무기징역자치성간보바/ガンポパ일본어1995년 5월 16일
타카하시 카츠야무기징역첩보성스만가라/スマンガラ일본어2012년 6월 15일
토노자키 키요타카무기징역자치성로마사칸기야/ローマサカンギヤ일본어1995년 4월 7일
나카무라 노보루무기징역, 검찰측 구형은 사형.자치성우바리/ウパーリ일본어1995년 7월 9일
하야시 이쿠오무기징역치료성크리슈나난다/クリシュナナンダ일본어1995년 4월 8일
야마가타 아키라징역 20년자치성가르 아니캇타 뭇타/ガル・アニーカッタ・ムッタ일본어1995년 5월 4일
토미타 타카시징역 17년자치성시하/シーハ일본어1995년 6월 16일
토미나가 마사히로징역 15년법황관방베마치트라/ヴェーマチトラ일본어1995년 10월 8일
히라타 사토루징역 15년첩보성라다/ラーダ일본어1995년 10월 19일
와타베 카즈미징역 14년과학기술성고사라/ゴーサーラ일본어1995년 5월 16일
아오야마 요시노부징역 12년법무성아바야쟈하/アパーヤージャハ일본어1995년 5월 4일
코시카와 신이치징역 10년상무성멧타지/メッタジ일본어1995년 4월 6일
고토 마코토징역 10년없음메기야/メーギヤ일본어1995년 5월 17일
후지나가 코조징역 10년과학기술성발라발리야/パーラーパリヤ일본어1995년 4월 24일
타카하시 마사야징역 9년건설성슬리야/スーリヤ일본어1995년 5월 16일
히라타 마코토징역 9년차량성보샤/ポーシャ일본어2012년 1월 1일
오오우치 토시야스징역 8년모스크바지부분나 만타니붓타/プンナ・マンターニプッタ일본어1998년 4월 19일
타키자와 카즈요시징역 8년과학기술성우바바나/ウパヴァーナ일본어1995년 5월 16일
토가시 와카키요징역 8년과학기술성마하나마/マハーナーマ일본어1995년 5월 17일
마루야마 미치마징역 7년자치성스랄다/スラーダ일본어1995년 7월 9일
이이다 에리코징역 6년 6개월동신도청사크라/サクラー일본어1995년 5월 29일
이다 요시히로징역 6년없음없음1995년 6월 16일
마츠모토 토모코징역 6년우정성신다라/ヤソーダラー일본어1995년 6월 26일
마츠이키 히토시징역 4년 6개월건설성나르바 로사/マルパ・ロサ일본어1995년 5월 9일
마츠시타 사토시징역 4년 2개월과학기술성산밧디타/サンヴァッディタ일본어1996년 11월 24일
이시이 히사코징역 4년대장성마하케이마/マハーケイマ일본어1995년 9월 6일
마츠모토 타케시징역 4년없음없음1995년 5월 18일
야키자와 요시츠구징역 4년없음없음1996년 11월 14일
사사키 카요코징역 3년후생성챠바/チャーパー일본어1995년 5월 17일
조유 후미히로징역 3년외무성마이트레야/マイトレーヤ일본어1995년 10월 7일
모리와키 카코징역 3년후생성바지라 산가/ヴァジラ・サンガー일본어1995년 5월 16일
오오우치 사나에징역 2년 4개월신신도청소나/ソーナー일본어1995년 5월 12일
하세가와 시게키징역 1년 6개월자치성없음1995년 4월 24일
야마모토 마유미징역 1년 4개월노동성키사고타미/キサーゴータミー일본어1995년 11월 23일
키베 테츠야징역 1년방위청마하캇사바/マハーカッサパ일본어1995년 4월 8일
미야코자와 카즈코징역 1년서신도청웃바라반나/ウッパラヴァンナー일본어1995년 5월 10일
키쿠치 나오코무죄 (1심에서는 징역 5년)제2후생성에네야카 다바나 반냣타/エーネッヤカ・ダーヴァナ・パンニャッター일본어2012년 6월 3일
이시카와 코이치불기소법황관방사르바니 바라나비슈칸빈/サルヴァニー・ヴァラナヴィシュカンビン일본어1995년 4월 8일


4. 옴진리교 재판

나카가와 토모마사(5월 17일 체포), 마츠모토 토모코(6월 26일 체포), 오카자키 카즈아키(9월 6일 체포, 후에 미야마에로 개성), 조유 후미히로(10월 7일 체포) 등 교단 간부들이 체포되었다.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484명의 신자가 체포되었고, 1998년까지 189명이 기소되었다.

변호 측은 아사하라에 대해 "모두 제자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했고, 아사하라 이외의 교단 간부에 대해 "아사하라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당했다"며 감형을 주장했다. 아사하라 공판 등 일부 형사 공판에서는 변호사 해임에 따른 공판 연기 및 변호사 측의 병행 심리 거부, 심리 보이콧, 검사 측이 제출한 신청 증거에 대한 부동의와 법정에서의 직접 심문 등의 요구, 피고인에게 소송 능력이 없다며 항소 취지서 제출을 거부한 것 등은 재판 지연 행위로 비난받았다. 검찰은 마츠모토·지하철 양쪽 사린 사건의 중경상자를 대폭 줄이는 소인 변경이나 피해자가 없는 사건의 기소를 취하하는 등 이례적인 재판이 되었다.

2011년 11월 21일에 마지막 상고심 판결이 선고되었고, 같은 해 12월 12일에 이에 대한 판결 정정 신청이 기각되면서 13명에 대한 사형 판결, 5명에 대한 무기징역 판결이 확정되어 도주범을 제외한 모든 재판이 종결되었다.

옴진리교 재판의 방청 희망자는 아사하라 쇼코 1심 첫 공판(1만 2292명), 아사하라 쇼코 1심 2회 공판(5856명), 아사하라 쇼코 1심 판결 공판(4658명), 나카가와 토모마사 1심 첫 공판(4158명), 아오야마 요시노부 1심 첫 공판(3076명) 등 많았으며, 세간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5. 옴진리교 도주범

중대 사건에 연루되었음에도 도주한 옴진리교 신자도 있다. 경찰청은 중대 사건에 연루된 옴진리교 신자 19명을 '''옴진리교 관계 특별 수배 피의자'''로 전국 지명 수배했다. 1996년 1월 시점에서 7명의 옴진리교 관계 특별 수배 피의자가 있었지만, 같은 해 11월 14일에는 기타무라 코이치와 야기사와 요시츠구가 체포되었고, 같은 달 24일에 마츠시타 사토시가 체포되었으며, 12월 3일에는 하야시 야스오(후에 코이케로 개성)가 체포되었다. 또한 특별 수배는 아니지만 교단 초기의 살인 사건에 관여하면서도 국외에 있던 오오우치 토시히로가 일본으로 강제 송환되어, 1998년에 체포되었다. 1998년까지 체포된 일련의 옴 사건의 도주범에 대해서는 2011년까지 재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1996년 12월 4일 이후 약 16년 동안 히라타 마코토, 타카하시 카츠야, 키쿠치 나오코가 도주 중이었으나, 2012년 1월 1일에 히라타가, 6월 3일에는 키쿠치가, 같은 달 15일에는 마지막 옴 도주범이었던 타카하시가 체포되었다. 키쿠치는 기소되었지만 2017년 12월 27일에 무죄가 확정되었다.

형사 소송법 제254조 2항에 따라, 옴 도주범은 공범자의 공판 중에는 공소 시효의 진행이 정지되고, 또한 2010년 4월 27일을 기점으로 형법과 형사 소송법의 개정(즉시 공포, 시행)에 의해 타카하시와 키쿠치의 지명 수배 혐의였던 지하철 사린 사건에 대해서는 살인죄의 공소 시효가 폐지되었으며 (살인 미수죄의 공소 시효는 15년으로 유지), 히라타의 지명 수배 혐의였던 공증인 사무소 사무장 체포 감금 치사 사건에 대해서는 체포 감금 치사죄의 공소 시효가 20년으로 연장되어, 공소 시효가 정지·폐지·연장되었다. 또한, 2010년 이후는 수사 특별 보상금 제도의 대상 사건으로 지정되었다.

6. 사형 집행

2018년, 옴진리교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교주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츠모토 치즈오)를 포함한 13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50][53] 1995년 체포 이후 20여 년 만에 이루어진 사형 집행이었다.

1996년 1월 18일 기준으로 옴진리교 사건 관련 체포자는 403명이었고, 그중 192명이 기소되었다.[95][96] 무라이 히데오는 체포 전 우익 폭력단원에게 살해되었다(무라이 히데오 척살사건).[95]

사형수들은 도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가,[50][51][52][53] 2018년 1월 다카하시 가쓰야의 무기징역 확정으로 옴진리교 사건 형사 재판이 종결되자,[50][53] 같은 해 3월 14일, 아사하라 쇼코를 제외한 사형수 7명이 미야기 형무소 센다이 구치지소, 나고야 구치소, 오사카 구치소, 히로시마 구치소, 후쿠오카 구치소로 이송되었다.[50][51][52][53][57]

법무성은 이송 사실만 공표하고, 사형수들의 구체적인 이송처는 밝히지 않았다.[57] 하지만, 지원자 등의 조사에 따르면, 하야시 야스오는 미야기 형무소 센다이 구치지소,[57][58] 오카자키 가즈아키와 요코야마 마코토는 나고야 구치소,[57][58] 이노우에 요시히로와 신미 지코는 오사카 구치소,[57][58] 나카가와 토모마사는 히로시마 구치소,[57][58] 하야카와 기요히데는 후쿠오카 구치소로 이송된 것으로 알려졌다.[57][58]

2018년 7월 6일, 가미카와 요코 법무 대신의 명령에 따라,[62] 마츠모토 치즈오, 하야카와 기요히데, 이노우에 요시히로, 신미 지코, 쓰치야 마사미, 나카가와 토모마사, 엔도 세이이치 7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62] 특히 마츠모토, 쓰치야, 엔도는 도쿄 구치소에서 처형되었다.

7월 26일, 남은 6명(하야시 야스오, 도요다 토오루, 하시모토 사토루, 히로세 겐이치, 오카자키 가즈아키, 요코야마 마코토)의 사형이 집행되어 옴진리교 사건 사형수 전원의 사형 집행이 완료되었다.[68]

이송처집행 명령일집행일
아사하라 쇼코도쿄 구치소2018년 7월 3일2018년 7월 6일
하야카와 키요히데후쿠오카 구치소
이노우에 요시히로오사카 구치소
신미 지코오사카 구치소
츠치야 마사미도쿄 구치소
나카가와 토모마사히로시마 구치소
엔도 세이이치도쿄 구치소
고이케(하야시) 야스오미야기 형무소 센다이 구치지소2018년 7월 24일2018년 7월 26일
토요타 토오루도쿄 구치소
하시모토 사토루도쿄 구치소
히로세 켄이치도쿄 구치소
미야마에(오카자키) 가즈아키나고야 구치소
요코야마 마사토나고야 구치소


7. 사건의 영향

다하라 소이치로는, 아사하라의 셋째 딸 마쓰모토 레이카와의 대담에서 "일본은 분위기의 나라다. 분위기를 어지럽히는 것이 가장 나쁘다."고 말하며, 태평양 전쟁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역학이 옴 사건에서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옴진리교 내에서 사건을 막을 수 없었는지에 대해, 마쓰모토 레이카는 "교단 내에서는 확인을 한다는 것이 없었다. 왠지 알고 있다는 듯이 모두가 움직인다. 모두의 움직임과 다른 움직임을 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증언했다[75]。 또한 다하라는, 기존 종교가 힘을 잃어가는 것에 대해 "옴진리교는 사람을 죽이게 할 정도로 종교로서 진짜였다"고 말했다[76]

종교계에 미친 영향은 커서, 종교가는 옴은 종교가 아니라고 하며 발뺌하고, 신흥 종교 연구자는 스피리츄얼리티 연구에 활로를 찾았으며, 텔레비전 방송국도 한동안 오컬트 프로그램을 급감시켰다[77]。특히 거액의 기부・헌금을 요구하거나, 신도의 이탈을 허용하지 않는 등, 신자를 억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단체에 대해서는,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시마조노 스스무는, 사건 이후, "종교 혐오" 경향이 강해지는 사회적 영향이 나타난 것에 대해, 실제 종교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이미지를 맹신한 결과라고 하고 있다。

옴 신자에게 인권은 없다는 배척 운동이 확산되었고, 지방 공공 단체도 신자의 전입 신고를 거부하여 주민표 등록을 시키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78]。모리 타츠야는 언론이 교단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우려하여 신자들의 부당 체포 등을 보도하는 것을 금기시했다고 지적했다.

너무나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던 점, 옴 보도로 인해 범죄 보도의 비중이 높아진 점, 뒤이어 발생한 사카키바라 세이토 사건 등의 이유로, 범죄가 특히 늘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체감 치안에서는 치안의 악화를 느끼는 국민이 증가, 매스 히스테리가 발생하여, "이단자"의 배척이 격렬해져 갔다[79]。이들은 엄벌주의와 이후의 형사 정책에 영향을 주었다.

범죄 피해자의 구제 제도가 주장되어, 2008년 12월에는, "옴진리교 범죄 피해자 구제법"이 시행되었다.

프랑스에도 영향을 주어, 섹트(컬트) 단체 대책 추진의 이유 중 하나가 되었고, 각 성청이 연계하여 섹트 대책이 세워졌으며, 프랑스는 섹트 단체 대책의 선진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1995년, 1999년에 프랑스는, 국내에서 활동하며 범죄가 많은 단체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옴은 프랑스에 지부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섹트 목록에서는 제외되었다.

2000년에, 우에사토 후미히로가 히로시마 형무소를 출소하여, 후계 교단 Aleph의 교단 대표가 되었지만, 우에사토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대표파"(소수파)와, 아사하라 회귀를 강화하는 비대표파(다수파)가 분열되었다. 2007년 5월에 우에사토 등은 독립하여, 신단체 빛의 고리를 결성했다.

7. 1. 언론 보도와 사회 현상

1995년 3월 20일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일본 언론은 연일 "옴 특보" 등을 보도하며 '옴 특수' 현상을 보였다.[70][71] 옴진리교 측도 우에사카 후미히로, 무라이 히데오, 아오야마 요시노부 등 상층부 인물을 텔레비전에 출연시키는 선전 전략을 펼쳤다. 1995년 5월 16일 아사하라 체포까지 매일 밤 2시간 가량 옴진리교 관련 보도 특별 프로그램이 편성되었고, 이는 1995년 4월~6월 연속 드라마 시청률 저하에 영향을 미쳤다. 같은 시기 오클라호마 시티 연방 정부 청사 폭탄 테러 사건, 노모 히데오의 메이저 리그 데뷔, 덩리쥔 사망 등의 뉴스가 있었지만, 일본 내 보도 비중은 작았다.

"옴진리교를 다룬 프로그램은 쉽게 시청률을 얻을 수 있다"는 '옴의 법칙'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72] 1995년 연간 시청률 상위 50개 중 옴진리교 관련 프로그램은 간토 지역에서 16개, 간사이 지역에서는 10개였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관련 프로그램은 간토 지역 2개, 간사이 지역 7개였다.[73]

TBS브로드캐스터』에 따르면, 1995년 1년 동안 와이드 쇼가 옴진리교 관련 화제를 보도한 시간은 총 1272시간 19분 5초로,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126시간 8분 53초보다 약 10배 많았다.[74]

1995년 주간 신조의 "올해를 대표하는 남자" 독자 설문 조사에서 아사하라 쇼코노모 히데오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사카모토 츠츠미, 무라이 히데오, 우에사카 후미히로 등 옴 사건 관계자 4명이 상위 10명에 포함되었다.

7. 2. 종교계에 미친 영향

다하라 소이치로는 옴진리교 사건이 태평양 전쟁과 유사하게 일본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려 발생했다고 지적했다.[75] 그는 기존 종교가 힘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옴진리교는 사람을 죽이게 할 정도로 종교로서 진짜였다"고 평가했다.[76]

옴진리교 사건은 종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종교계는 옴진리교를 종교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77] 신흥 종교 연구자들은 스피리츄얼리티 연구로 방향을 전환했다.[77] 텔레비전 방송국들은 한동안 오컬트 프로그램을 줄였다.[77] 특히, 과도한 헌금 강요나 신도 이탈을 막는 등 신자를 억압하는 종교 단체에 대한 정보 공개 요구가 확산되었다.[77] 시마조노 스스무는 사건 이후 "종교 혐오" 경향이 강해졌다고 지적하며, 이는 종교에 대한 실제 지식이 아닌 만들어진 이미지를 맹신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옴진리교 신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척 운동이 확산되었고, 지방 공공 단체는 신자들의 전입 신고를 거부하고 주민표 등록을 거부하는 문제까지 발생했다.[78] 모리 타츠야는 언론이 교단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두려워하여 교단 배척 운동의 부당성이나 신자들의 부당 체포를 보도하는 것을 금기시했다고 지적했다.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던 옴진리교 사건 보도로 인해 범죄 보도 비중이 높아졌고, 이후 사카키바라 세이토 사건 등이 발생하면서 체감 치안 악화를 느끼는 국민이 증가했다.[79] 이는 엄벌주의와 이후 형사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범죄 피해자 구제 제도가 논의되었고, 2008년 12월에는 "옴진리교 범죄 피해자 구제법"이 시행되었다.

프랑스에서도 옴진리교 사건은 섹트(컬트) 단체 대책 추진의 한 이유가 되었다. 프랑스는 섹트 단체 대책의 선진 사례 중 하나가 되었으며, 1995년과 1999년에 범죄가 많은 단체 목록을 작성했다.

2000년, 우에사토 후미히로가 출소하여 후계 교단 Aleph의 대표가 되었으나, 교단은 대표파와 비대표파로 분열되었다. 2007년 5월, 우에사토 등은 빛의 고리를 결성하며 독립했다.

7. 3. 사회적, 법적 영향

옴진리교 사건은 일본 사회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종교계에서는 옴진리교가 종교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신흥 종교 연구자들은 스피리츄얼리티 연구로 방향을 전환했다.[77] 방송계는 한동안 오컬트 프로그램을 급감시켰다.[77] 시마조노 스스무는 사건 이후 "종교 혐오" 경향이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사건 이후 옴진리교 신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척 운동이 확산되었고, 일부 지방 공공 단체는 신자들의 전입 신고를 거부하기도 했다.[78] 모리 타츠야는 언론이 옴진리교를 옹호한다는 비난을 우려하여 신자들의 부당 체포 등을 보도하는 것을 금기시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범죄 증가와는 별개로, 사카키바라 세이토 사건 등의 영향으로 체감 치안이 악화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는 엄벌주의 강화와 형사 정책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79] 범죄 피해자 구제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2008년에는 "옴진리교 범죄 피해자 구제법"이 시행되었다.

다하라 소이치로는 마쓰모토 레이카와의 대담에서 옴진리교 사건이 태평양 전쟁과 유사하게 일본 사회의 '분위기'에 의해 막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75] 마쓰모토 레이카는 교단 내에서 확인 절차가 없고, 다른 행동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증언했다.[75]

이 사건은 프랑스의 섹트(컬트) 단체 대책 강화에도 영향을 주었다.[75] 프랑스는 옴진리교를 위험 단체로 간주했지만, 프랑스 내 지부가 없어 섹트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2000년, 우에사토 후미히로가 출소하여 후계 교단 Aleph의 대표가 되었으나, 교단은 대표파와 비대표파로 분열되었다. 2007년 5월, 우에사토 등은 빛의 고리를 결성했다.

8. 불명확한 점

옴진리교와 관련된 사건에는 여러 불명확한 점이 남아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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