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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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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운산광산은 평안도 지역에 위치했던 금광으로, 구한말부터 근대적 개발이 시작되었다. 1884년 미국 공사관의 조지 C. 포크와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J.B. 버나도우의 탐사를 시작으로, 호러스 뉴턴 알렌의 주선으로 미국 실업가 J.R. 모스에게 채굴 특허가 주어졌다. 이후 레이 S. J. 헌트가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여 40여 년간 금을 채굴하며 경제적 이익을 얻었으나, 1939년 일미관계 악화로 일본에 인수되었다. 광상 지역은 시생대 랑림층군과 중생대 관입암류를 포함하며, 금광체는 북서 계열 단열 구조에 분포한다. 광체는 덩이 모양의 함금 석영 광석, 세맥 광염 광석, 분말상 광석으로 나뉘며, 열수 금광상으로 분류된다. 1977년부터 사곡광체에서 금광석 채굴이 시작되었으며, 1982년 기준 금 877kg, 은 4280kg의 잔존 매장량이 확인되었다.

2. 광산 연혁

운산광산은 오래전부터 그 존재가 알려져 왔으나, 본격적인 개발은 구한말에 이르러 시작되었다. 1884년 미국 공사관의 조지 C. 포크와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J.B. 버나도우가 운산금광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 근대적 개발의 시초로 여겨진다.

이후 호러스 뉴턴 알렌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조선 정부는 1895년 미국인 실업가 J.R. 모스에게 운산금광 채굴 특허를 부여했다. 그러나 모스가 자금 부족으로 개발에 난항을 겪자, 알렌은 다른 미국 자본가인 레이 S. J. 헌트를 개입시켜 개발권을 인수하도록 했다. 헌트는 1897년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Oriental Consolidated Mining Company영어)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금 채굴에 나섰다.[1]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는 이후 약 40년간 운산광산을 운영하며 막대한 양의 금을 채굴했으나, 미국일본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1939년 일본광업주식회사에 매각되었다.[1][2]

광복 이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치하에서 1958년 선광 조업이 시작되었으며, 1986년에는 조총련 계열 상공인들의 투자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1995년에는 미국의 모빌사와 Morrison-Knudsen|모리슨-너드슨영어 사가, 2004년에는 중국의 招金集团|자오진 집단중국어(Zhaojin Group영어)이 각각 탐사 및 공동 개발을 추진하는 등 외국 자본의 관심이 이어졌다.[2]

2. 1. 근대 이전

운산광산은 오래전부터 그 존재가 알려져 왔으나,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의 일이다.

2. 2. 구한말 개항 이후

운산광산은 오래전부터 그 존재가 알려져 왔으나, 본격적인 개발은 구한말에 이르러 시작되었다. 1884년 미국 공사관의 조지 C. 포크와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J.B. 버나도우가 전국의 유망 금광상을 탐사하고 운산금광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근대적 개발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1887년 고종은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권을 강화할 방안을 모색했고, 이때 호러스 뉴턴 알렌평안도 운산금광의 채굴권을 미국 기업에 넘기는 것을 제안했다. 이미 금광 탐사가 완료된 상태에서, 이후 조선 정부의 참찬으로 임명된 알렌은 조선의 광산 정보를 수집하고 미국인 조사단의 방문을 주선하는 등 운산광산 개발에 깊이 관여했다. 알렌의 적극적인 주선 끝에 조선 정부는 1895년 미국인 실업가 J.R. 모스에게 운산금광 채굴 특허를 부여했다.

그러나 모스가 자금 부족으로 개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알렌은 미국의 또 다른 사업가인 레이 S. J. 헌트를 설득하여 운산금광 개발권을 인수하도록 했다. 헌트는 1897년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Oriental Consolidated Mining Company영어)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채굴을 시작했다.[1]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는 이후 약 40년간 900만 톤의 광석을 채굴하여 당시 가치로 5600만달러 상당의 금을 생산했으며, 이를 통해 1500만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순이익을 올렸다. 미국은 이 금광 개발을 통해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취했으나, 대한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은 피하고 경제적 이익 확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한반도 내 정치적 불안정을 심화시키는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당시 미국금본위제 도입 과정에서 운산광산에서 채굴된 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있으며, 이 과정에서 대한제국은 막대한 국부가 유출되는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후 미국일본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는 1939년 대유동금광을 운영하던 일본광업주식회사에 800만달러의 가격으로 매각되었다.

2. 3.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 시대 (1897년 ~ 1939년)

1884년 미국 공사관의 조지 C. 포크(George C. Foulk)와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J.B. 버나도우(J.B.Bernadou)가 운산금광을 유망 금광으로 지목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근대적인 개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후 조선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 및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고종의 의도와 호러스 뉴턴 알렌의 적극적인 주선에 따라 1895년 미국인 실업가 J.R. 모스(J.R.Morse)에게 운산금광 채굴권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모스가 자금 부족으로 개발에 어려움을 겪자, 알렌은 시애틀의 자본가 레이 S. J. 헌트를 끌어들여 개발권을 인수하도록 했다. 헌트는 1897년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Oriental Consolidated Mining Companyeng)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광산 개발에 착수했다.[1] 알렌은 이후 대한제국의 참찬으로 임명되어 조선의 광산 정보를 수집하고 미국 자본의 이익을 위해 활동했다.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는 이후 약 40년간 운산광산을 운영하며 채굴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이 기간 동안 약 900만 톤의 광석을 채굴하여 5600만달러 상당의 금을 생산했으며, 1500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당시 미국은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펼쳤으며, 운산광산에서 채굴된 금은 미국의 금본위제 도입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취했지만, 대한제국은 주요 자원의 개발권을 외국 자본에 넘겨주면서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의 운산광산 운영은 1939년까지 이어졌으나, 미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결국 일본광업주식회사에 800만달러의 가격으로 매각되었다.[2]

2. 4. 일제강점기 (1939년 ~ 1945년)

미국의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는 약 40여 년간 운산광산을 운영하며 900만 톤의 광석을 채굴하여 5600만달러 상당의 금을 생산했고, 1500만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1] 그러나 미국일본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1939년 운산광산은 대유동금광을 운영하던 일본광업주식회사에 800만달러의 가격으로 인수되었다.[1]

2. 5. 해방 이후

전후 1958년에는 처리능력 40000ton~90000ton 규모의 선광 조업이 시작되었다. 1986년에는 조총련 계열 상공인들이 투자를 진행했으며, 1995년에는 미국의 모빌사와 Morrison-Knudsen|모리슨-너드슨영어 사가 탐사를 실시했다. 2004년에는 중국의 招金集团|자오진 집단중국어(Zhaojin Group영어)이 공동 개발을 추진하기도 하였다.[2]

2. 6. 운산광산과 대한제국

1887년, 고종은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며 알렌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에 알렌은 이미 미국인들에 의해 탐사가 진행되었던 평안도 운산금광의 채굴권을 미국 기업에 넘길 것을 제안했다.

이후 조선 정부의 참찬으로 임명된 알렌은 조선 내 광산 정보를 수집하고 미국인 조사단의 방문을 주선하는 등 금광 채굴권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마침내 1895년, 알렌의 주선으로 대한제국 정부는 미국인 실업가 J.R. 모스(J.R.Morse)에게 운산금광 채굴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모스가 자금 부족으로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자, 알렌은 다른 미국 자본가인 레이 S. J. 헌트(Leigh S. J. Hunt)를 끌어들여 채굴권을 인수하도록 했다.

1897년, 헌트는 동양광업개발주식회사(東洋鑛業開發株式會社, Oriental Consolidated Mining Company)를 설립하고 운산금광에서 본격적인 금 채굴을 시작했다.[1] 이 회사는 이후 약 40년간 운산광산에서 900만 톤의 광석을 채굴하여 5600만달러 상당의 금을 생산했으며, 1500만달러에 달하는 순이익을 올렸다.

미국은 운산금광 개발을 통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으며, 이는 당시 미국의 금본위제 도입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있다. 미국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정치적 개입은 피하면서 경제적 이익 확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한반도 내 정치적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다. 당시 명성황후는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고, 알렌은 명성황후를 통해 고종을 보호하려 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결국 운산금광 채굴권 양도는 미국 자본에게는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지만, 대한제국에게는 귀중한 자원의 유출과 경제적 손실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3. 지질 배경

운산광산 지역의 지질은 주로 시생대에 형성된 랑림층군과 련화산암군 화강암류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암석 사이로 중생대에 형성된 관입암류들이 분포한다.

3. 1. 랑림층군

운산군 일대에 널리 분포하는 랑림층군은 향산층과 송원층으로 나뉜다.
향산층청천강 단열대 주변인 운산군 조산리와 운봉리 일대에 작은 잔류물 형태로, 련화산암군의 거립반상변정화강암 안에 분포한다. 지질구조적으로는 랑림륙괴의 북쪽 변두리에 해당하며, 주로 변성된 염기성 분출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약간의 퇴적암이 섞여 있다.

  • 아래층: 각섬편암, 흑운모각섬석편마암 등으로 구성되며, 전반적으로 심한 교대작용을 받아 혼성암화되었다.
  • 위층: 주로 흑운모편마암, 편마상규암, 약간의 휘석질복합암으로 구성된다. 아래층과 위층 사이에는 교대화강암류가 넓게 관입하고 있다.

송원층송원군, 희천시, 전천군 일대에 비교적 넓게 분포하며, 북동 방향으로 이어지면서 북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복잡한 습곡 구조를 가지며, 매화산향사의 북서쪽과 남동쪽 날개에 드러나 있다. 송원층은 흑운모편마암, 근청석질편마암, 각섬암, 대리암 및 이를 바탕으로 한 혼성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암석의 특징으로 볼 때 분출퇴적암족과 육원성탄산염-점토질퇴적암족에 해당한다[3].

3. 2. 련화산암군 화강암류

운산광산 근방의 련화산암군 화강암류는 제2부류 화강암류로 분류된다. 이 암체들은 랑림륙괴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면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며, 낭림층군의 편마암류와 안구상편마암대를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변화하는 관계를 보인다.

암석학적으로는 거정질반상변정흑운모화강암, 반상변정우백화강암, 편마상화강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화강암 안에 들어있는 낭림층군 암석들의 교대잔류물에서 관찰되는 편마상 석리와 조암광물의 배열 방향은 주변 암석과 정합적인 관계를 나타내며, 이는 낭림육괴의 구조 방향과 일치한다.

운산광산 지역에 해당하는 암체는 묘향산암체이며, 이는 심용성교대화강암류에 속한다. 묘향산암체는 제1부류 화강암 분포 구역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제1부류 화강암들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관계를 가진다[4].

4. 광상 특성

운산광산 지역에는 여러 방향의 단열구조가 발달해 있으며, 광체는 주로 북서 방향의 구조를 따라 분포한다. 광상은 여러 개의 병행맥으로 구성된 광체들이 다수 존재하며, 이들은 줄기 모양이나 렌즈 형태를 띤다. 광체는 특정 구조대 안에서 약 200m에서 250m 간격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광물의 품위가 높은 부광체는 주로 암석이 부서진 암쇄대나 흑연 지대에서 유화물석영이 모인 렌즈 형태로 발견된다.

광체는 내부 구조와 특징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이 중 덩어리 형태의 금 함유 석영 광석(제1형)이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운산광상은 열수 금광상으로 분류되며, 광물 형성 과정은 여러 단계로 구분된다. 은 주로 유화물과 함께 특정 단계(함금유화물 단계)에서 만들어졌으며, 황철광, 섬아연광, 방연광 등의 광물 안에 포함되거나 미세한 자연금 형태로 존재한다. 주요 광석 광물로는 황철광, 유비철광, 섬아연광, 방연광, 자류철광, 황동광 등이 있다.

광상이 형성될 때 주변의 배태암은 열수의 영향으로 규화작용, 녹니석화작용, 견운모화작용과 같은 변질작용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녹니석화작용과 견운모화작용은 금 광체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1. 광체 분포 및 형태

광상 지역에는 북동, 북서, 남북 방향의 단열구조가 발달해 있으며, 광체는 주로 북서 방향의 구조 안에 분포한다. 광상 구역에는 여러 개의 병행맥으로 이루어진 광체들이 많이 분포하며, 그중 큰 것은 10여 개 이상이다. 광체는 줄기 모양이나 렌즈 형태를 띠며, 을 포함한 구조대 안에서 200m에서 250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분포한다.

부광체(富鑛體, 광물의 품위가 높은 부분)는 암석이 부서진 암쇄대나 흑연 지대 안에서 여러 개의 평행한 렌즈 모양으로 유화물-석영이 모여 있는 형태로 나타난다. 부광체 안의 금 함유 유화물은 덩어리 모양을 이루며, 부광체의 길이는 수십 m, 맥폭은 넓은 곳은 수 m에 달한다.

광체는 내부 구조, 암석의 결(석리) 특징, 광물이 만들어지는 광화작용 특성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 제1형: 덩어리 모양의 금 함유 석영 광석
  • 제2형: 압력을 받아 부서진 배태암흑연에 생긴 가는 세맥 형태의 광염 광석
  • 제3형: 가루 형태의 광석


이 세 유형 중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제1형이다.

운산광상은 열수 금광상에 속한다. 광물 형성 단계는 광물이 없는 석영맥이 먼저 생성된 후(무광석영맥 단계), 을 포함한 유화물이 만들어지고(함금유화물 단계), 마지막으로 옥수질 석영-방해석 맥이 형성되는(옥수질석영-방해석 단계) 순서로 진행된다. 함금유화물 단계는 다시 황철광 아단계와 다금속 아단계로 나뉘며, 금은 주로 함금유화물 단계, 특히 다금속 유화물 아단계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이때 생성된 금은 자연금 형태나 황철광, 섬아연광, 방연광과 같은 황화물 안에 포함되어 존재한다.

광석을 이루는 주요 광물로는 황철광, 유비철광, 섬아연광, 방연광, 자류철광, 황동광 등이 있다. 자연금은 대부분 현미경으로 관찰해야 할 정도로 작지만, 드물게 1mm 크기의 자연금 형태로도 발견된다.

광상이 형성된 배태암은 규화작용, 녹니석화작용, 견운모화작용과 같은 변질작용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녹니석화작용과 견운모화작용을 받은 부분에서 금 광체가 주로 발견된다.

4. 2. 광석 유형

운산광산의 광체는 내부 구성, 석리 특징, 광화작용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 제1형: 덩이 모양의 함금석영 광석이다. 이 유형이 운산광산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제2형: 압쇄된 배태암흑연 내부에 형성된 세맥광염 광석이다.
  • 제3형: 분말 형태의 광석이다.

4. 3. 광물 조성 및 광화 단계

운산광산은 열수금광상에 해당한다. 광물 형성 단계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무광석영맥단계: 이 포함되지 않은 석영맥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이다.

2. 함금유화물단계: 금을 포함한 유화물이 만들어지는 주요 단계로, 다시 두 아단계로 나뉜다.

  • 황철광아단계: 황철광 등이 형성된다.
  • 다금속아단계: 다양한 금속 유화물이 형성되며, 금이 가장 많이 정출되는 시기이다. 이때 정출된 금은 자연금 형태로 존재하거나, 황철광, 섬아연광, 방연광과 같은 유화물 안에 포함되어 있다.

3. 옥수질석영-방해석단계: 옥수질의 석영과 방해석이 형성되는 후기 단계이다.

광석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주요 광물은 황철광, 유비철광, 섬아연광, 방연광, 자류철광, 황동광 등이다. 자연금은 대부분 현미경으로 관찰해야 할 정도로 작고 드물게 나타나지만, 간혹 mm 크기의 자연금이 발견되기도 한다.

광상이 형성될 때 주변의 배태암은 규화작용, 녹니석화작용, 견운모화작용과 같은 변질 작용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녹니석화작용과 견운모화작용을 받은 부분에서 금광체가 주로 발견된다.

4. 4. 배태암 변화

광상에서 배태암은 규화작용, 녹니석화작용, 견운모화작용을 심하게 받았는데, 특히 녹니석화작용과 견운모화작용을 받은 부분에서 광체가 산출된다.

4. 5. 매장량

1977년부터 채광이 시작된 사곡광체의 경우, 1982년 1월 1일 기준으로 확인된 잔존 매장량은 877kg(평균 품위 5.06 g/t), 4280kg(평균 품위 25 g/t)으로 조사되었다.[5]

참조

[1] 간행물 한반도에 황금광시대를 연 운산금광 이야기 http://www.sonosa.or[...]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북한자원 NewsLetter
[2] 서적 한국광업백년사 사단법인 한국광업협회 2012
[3] 서적 조선지질구성 (1) 공업출판사 1990
[4] 서적 조선지질구성 (4) 공업출판사 1990
[5] 서적 조선지리전서 지질과 지하자원 편 교육도서출판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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