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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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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본위제는 화폐 제도의 기초가 되는 화폐를 금으로 발행하여 유통시키는 제도로, 금화본위제, 금지금본위제, 금환본위제 등으로 구분된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중단되었으며, 이후 1920년대 일부 국가에서 재개되었으나,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가 금본위제에서 탈퇴했다. 금본위제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은 금본위제의 장점(안정적인 명목 기준, 자동성, 신뢰할 수 있는 약속 메커니즘)과 단점(경제 성장 제약, 통화 정책의 제약)을 논의해왔다. 2024년 짐바브웨가 인플레이션 해결을 위해 금본위제를 통화에 적용했으며, 2015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들이 금본위제를 지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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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본위제
지도 정보
개요
유형통화 제도
기반
금속
역사
발전 시기19세기 후반 ~ 20세기 초
주요 국가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기타 서유럽 국가
붕괴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30년대 대공황 시기
작동 방식
통화 가치금의 일정량으로 정의
은행권 교환은행권은 언제든지 금으로 교환 가능
국제 결제금을 사용하여 국가 간 결제
특징
환율 안정환율 변동폭 제한
물가 안정장기적으로 물가 안정 효과
단기적으로는 불안정 가능성
국가 간 무역 촉진안정적인 환율로 무역 활성화
단점경기 침체 시 통화량 조절 어려움
금 생산량 변동에 따른 통화량 변동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
주요 용어
금본위제금을 기준으로 통화 가치를 정하는 제도
금 태환은행권이나 화폐를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제도
브레턴우즈 체제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금본위제를 부분적으로 계승한 국제 통화 제도
영향
세계 경제국제 무역과 금융 발전에 기여
정책각국 정부의 통화 정책 제약
비판경기 침체에 대한 대처 능력 부족
사회적 불평등 심화 가능성
현대의 관점
복귀 가능성현대 경제학에서는 경제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
대안변동 환율 제도, 통화 정책
참고 자료
관련 링크Gold standard - Encyclopedia.com
What Is Left of the Gold Standard? - Foreignaffairs.com
Gold Standard - IGM Forum

2. 정의

금본위제는 화폐 제도의 기초가 되는 화폐를 금으로 발행하여 시장에 유통시키는 제도이다.[133] 금화본위제, 금지금본위제, 금환본위제 등으로 나뉜다.


  • '''금화본위제''': 중앙은행이 화폐를 금화로 발행하여 실제로 유통시키는 제도이다. 금 자체를 화폐로 사용한다. 그러나 금화는 휴대와 보관이 불편하고 마모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 '''금지금본위제''': 중앙은행이 금화 대신 금화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 태환 화폐와 보조화폐를 발행하는 제도이다. 은행권을 금으로 교환하는 것을 금태환이라고 한다.
  • '''금환본위제''': 자국에서 금본위제를 시행하기 어려운 경우, 금본위제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의 통화와 자국 통화의 교환 비율을 고정하여 간접적으로 금과의 교환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3. 역사

1819년 영국이 최초로 금본위제를 시작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금본위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나, 전쟁 발발 후 각국은 전비 조달을 위해 통화 발행을 늘리고 금 태환(금과 교환)을 중지하면서 금본위제에서 이탈, 변동환율제도로 운영되었다.[12] 전쟁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1919년 미국, 1925년 영국이 금본위제로 복귀하였다.

금본위제는 금광이 풍부했던 러시아에서 먼저 채택되었고, 법적인 형식으로는 영국이 더 앞섰다. 금본위제의 세계화는 대불황기에 진행되었는데, 이는 당시 산업 발전과 관련이 있다. 알루미늄 정제에 필요했던 나트륨이 홀-에루법으로 불필요해지자, 카스트너 알루미늄 주식회사는 시안화나트륨을 생산하여 독일 금은 분리 공업소 데구사에 공급했고, 이는 금광석을 시안화법으로 처리하는 데 사용되었다.[137]

19세기에는 영국이 세계적인 금융·상업 강국이 되면서, 유럽 각국이 앞다투어 금본위제를 채택하여 19세기 말에는 국제적으로 확립되었다.[138] 19세기 후반 대불황기에 채택이 진행되어 1870년대부터 1920년대 전반, 1920년대 후반부터 1932년까지,[139][140] 그리고 1944년부터 1971년까지 미 달러의 금 환전이 중지되고 브레튼우즈 체제가 사실상 종료될 때까지 국제결제은행과 브레튼우즈 체제에 의한 국제 통화 제도의 기반이 되었다.[141]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각국은 경쟁적으로 자국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평가절하를 하며 금본위제에서 이탈했다. 1931년 영국은 금본위제에서 이탈했고, 다른 여러 국가들도 뒤따랐다. 1937년 6월, 프랑스를 마지막으로 모든 국가가 금본위제에서 탈퇴했다. 벤 버냉키는 "금본위제에서 일찍 탈퇴한 국가일수록 경제 성과가 좋았다"고 평가했다.[146]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브레튼우즈 협정에 따라 금본위제와 유사한 시스템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1959년부터 1969년까지 샤를 드 골 대통령 집권 시기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는 공식 환율로 달러 보유액을 금으로 교환하여 달러 보유액을 줄이고 미국 경제적 영향력을 축소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미국 달러의 국제적 금태환을 종식시켰는데, 이를 닉슨 쇼크라고 부른다.[75]

1971년 이후 선진국의 대부분은 관리 통화 제도로 이행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이 많은 양의 금 보유고를 보유하고 있다.[142][143]

3. 1. 1873년 이전의 역사

기원전 600년경 소아시아에서 금이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 널리 수용되었다. 다른 상품들도 화폐로 사용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가 가장 덜 떨어지는 금이 주로 사용되었다. 중세 초기 및 후기 비잔티움 제국의 금화인 솔리두스(또는 베잔트)가 유럽과 지중해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었지만, 비잔티움 제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사용이 줄어들었다.[155]

하지만 18세기 이전까지 금을 단일한 통화나 계산 단위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1천 년 동안 여러 국가들의 경제 체제는 금이 아닌 은을 기반으로 했다. 대부분의 계산 화폐 체제, 임금 및 급여 지급, 지역 소매 무역은 은을 기반으로 했다.[156]

19세기 이전에는 금이 통화로서 기능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가분성(Divisibility): 금은 크기가 작고 희귀하여 소액 거래에 사용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3.4그램의 두카트 금화는 최고 임금 노동자의 7일치 임금에 해당했지만, 은화는 일상적인 거래에 더 적합했다. 15세기 중반 잉글랜드에서는 숙련 장인의 일당이 6펜스(5.4g의 은)였고, 양 한 마리 가격은 12펜스였다. 따라서 40펜스짜리 두카트와 20펜스짜리 반 두카트는 국내 교역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156]
  • 금에 대한 사주 화폐제도의 부재: 19세기 이전에는 금이나 은으로 교환 가능한 구리 또는 빌론(저순도 은 합금)으로 만든 사주 동전(token coin)이 거의 없었다. 소액 잔돈은 대부분 내재 가치로 발행되었고, 금속 화폐로의 태환 공급(conversion provision)이 없었다. 내재 가치가 적은 사주 화폐는 신용이 없었고, 통화 가치 하락의 전조로 여겨졌으며 위조가 쉬웠다.[157]
  • 은행권 부재: 18세기 초반에는 은행권(banknote)이 통화로서 신용이 없었다. 1716년 프랑스에서 경제학자 존 로 하에 시행된 은행권 발행은 실패로 끝났다. 은행권은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전역에서 수용되었다.


따라서 최초의 유럽 통화 기준은 은본위제였다. 로마 제국의 데나리온에서 샤를마뉴가 서유럽 전역에 도입한 페니(penny) 혹은 데나이어(denier), 그리고 스페인 달러와 독일의 라이히슈탈러 및 컨벤션슈탈러까지 은본위제가 19세기까지 사용되었다. 금은 국제 교역과 고가품 거래에서 사용되었지만, 가격은 일상 은화에 대응하여 변동했다.[156]

복본위제는 은본위제 하에서 두카트 같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금화에 은을 기준으로 한 고정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다른 국가들의 금-은 비율 변동으로 인해 복본위제는 불안정했으며, 병행 복본위제(금이 은에 대해 유동적인 태환률로 유포됨)로 변형되거나 단본위제로 복구되었다.[158] 프랑스는 19세기 대부분 동안 복본위제를 유지한 대표적인 국가였다.

금본위제는 동로마 제국의 경제 및 솔리두스 금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금화는 희소성 때문에 실제 유통 화폐보다는 재산 축적을 위한 비축 자산이나 고액 결제에 주로 사용되었다.

역사적으로 은본위제나 금은복본위제가 더 일반적이었다.[135][136] 금본위제 기반 국제 통화 제도로의 이행은 우연, 네트워크 외부 효과, 경로 의존성을 반영한다.[135]

금본위제는 금광이 풍부한 러시아에서 먼저 채택되었고, 법적 형식으로는 영국이 더 앞섰다. 금본위제의 세계화는 대불황기에 진행되었는데, 이는 당시 산업 발전과 관련이 있다. 알루미늄 정제에 필요했던 나트륨이 홀-에루법으로 불필요해지자, 카스트너 알루미늄 주식회사는 시안화나트륨을 생산하여 독일 금은 분리 공업소 데구사에 공급했다. 이 시안화나트륨은 금광석을 시안화법으로 처리하는 데 사용되었다.[137]

영국에서는 1717년 왕립 조폐국 국장이었던 아이작 뉴턴 경이 은과 금의 환율을 낮게 설정하여 은화 유통이 중단되면서 사실상 금본위제를 채택하게 되었다.[138]

3. 1. 1. 대영제국 금본위제 기원

1816년 당시 왕립 조폐국 국장이었던 아이작 뉴턴 경이 은과 금의 환율을 너무 낮게 설정했기 때문에, 은화가 유통되지 않게 되면서 영국은 우연히 사실상의 금본위제를 채택하게 되었다.[138] 1717년 순금 7.6885g의 기니금화(gold guinea)가 21실링으로 고정되었는데, 이는 유럽 대륙의 태환율에 비하여 높았다. 따라서 대영제국에서 금은 깎아낸 은에 비하여 신뢰도 높고 더 싼 통화로서의 금이 은과 함께 운용되는 복본위제가 되었다.[161]

19세기까지 영국 금본위제가 이어지게 한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 18세기 브라질 황금 러시(Brazilian Gold Rush) : 포르투갈과 영국으로 상당량의 금을 공급하였다. 영국에서는 포르투갈 금화인 헤알(real)이 법정통화(legal tender)였다.
  • 대(對) 중국 무역 적자 지속 : 중국은 유럽에 물품을 팔았던 반면, 중국은 유럽 상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은 유출을 야기하였다.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발행한 은행권에 대한 신뢰도가 커짐에 따라, 은행권은 물론 금마저 은을 대신하는 통화로 수용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다.
  • 사전(token) 혹은 보조 은화(subsidiary silver coin)가 금의 대체물로 사용됨 : 18세기 말 이전, 영국은행에서 최초로 사전을 발행하였고, 이후 다른 사기업들이 사전을 발행하였다. 1816년 대주조개혁 이후, 왕립 조폐국(Royal Mint)에서 보조 은전이 영구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하였다.


고전 금본위제 시기, 영국 금소버린(gold sovereign) 혹은 금화 1파운드(£1 coin)는 탁월한 통용 금화였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19세기 동안, 영국은 몇 단계를 거쳐 공식적으로 복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 전환하였다.

  • 20실링 금소버린 혹은 1파운드(순금 7.32238g) 대한 선호로 인하여 21실링 기니금화는 중단되었다.
  • 1816년 대주조개혁으로 보조 법폐로서 은화가 제한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 1819년 현금 지급 재개 조례(The 1819 Act for the Resumption of Cash Payments)로, 1823년부로 영란은행 발행권의 금소버린 태환이 재개되었다.
  • 1844년 필 은행 조례(The Peel Banking Act of 1844) 혹은 1844년 은행 특허 조례(Bank Charter Act 1844)를 통해, 영란은행이 비축한 금 보유량을 영란은행이 발행할 수 있는 은행권과 태환할 수 있는 비율을 수립하는 한편, 기타 영국 내 은행들이 은행권 발행 특권을 강력하게 억제함으로써, 영국 내 금본위제를 세웠다.

3. 1. 2. 19세기 골드러시 효과

1850년까지 영국과 일부 식민지만이 금본위제였으며, 다른 국가 대다수는 은본위제였다. 프랑스와 미국은 금은 복본위제 국가에 속하였다. 프렌치 프랑(French franc)은 순은 4.5g 혹은 순금 0.29032g으로 유지하려 하였고, 미국 달러(United States dollar)는 1900년대까지 명목상 복본위제였다.[161]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California gold rush)와 1851년 호주 골드 러시(Australian gold rushes)는 우연한 사건으로 발생하였는데, 이는 세계 금 공급량과 금프랑 및 금달러 주조량을 상당히 증가시켰고, 1850년대 프랑스와 미국을 금본위제로 압박하였다.[161]

20달러짜리 더블 이글(double eagle)의 대용량은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California gold rush)의 결과로서 주조된 것이다.

3. 2. 금괴본위제

금괴본위제는 중앙은행에 금괴를 보유하고, 직접 금괴로써 태환(兌換=지폐를 정화(正貨)와 바꾸는 것) 요구에 응하는 제도이다.[165] 이 제도 아래서는 금화의 주조·유통은 하지 않는다. 금괴본위제는 가능한 금본위 제도에 비교하여 금을 절약할 수 있지만, 은행권의 증발로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막는 효과는 약하다. 이 금본위 제도는 제1차 세계대전 후 각국에서 채용되었다.[165] 금지금 본위제도(金地金本位制度)라고도 한다.[165]

금화 주조는 행해지지 않고 금은 지금(地金)인 채로 중앙에 집중되어 주로 국제수지 잔고(殘高) 결제에 사용된다. 화폐와 금의 결부는 중앙은행이 은행권과의 인환(引換)으로 무제한으로 금을 매도 내지는 매입함으로써 보증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어 각국은 금본위제를 일시 정지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 후 1925년 영국에서 재개되었을 때에는 이 금지금본위제가 채택되어 금화 유통이 없는 금본위제라고 일컬어졌다.[165]

19세기 지폐가 광범위하게 수용되면서 금괴 본위제가 등장했다. 이는 금화가 유통되지 않고, 중앙은행과 같은 당국이 고정된 가격으로 유통 화폐를 금괴로 교환하는 데 동의하는 시스템이다. 18세기 후반 런던과 에든버러 간의 환율을 조정하기 위해 처음 등장한 이러한 본위제는 키네스(1913)가 1870년대 국제적으로 금본위제를 이행하는 주된 수단이 되었다고 언급했다.[12]

3. 3. 국제 고전 금본위제 (1873년 ~ 1914년)

1873년, 독일 제국이 은화인 북독일 탈러와 남독일 굴덴에서 독일 금 마르크로 통화 체제를 전환하면서 국제적 고전 금본위제가 시작되었다.[22] 이는 제1차 국제 통화 회의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며,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종전 후 프랑스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활용한 것이었다. 유럽의 대규모 경제 전환은 1870년대 여러 유럽 국가들이 금본위제로 전환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1873년 라틴 통화 동맹에서 무제한 은화 5프랑 주조 중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22]

1873년 이후 금본위제가 국제 통화 시스템의 기반이 되었다.[23][24] 경제사학자 배리 아이헨그린은 "그때서야 비로소 국가들은 통화 공급의 기반으로 금을 선택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금본위제에 기반한 고정 환율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라고 하였다.[23] 단일 통화 체제 채택과 유지는 국제적인 가격 관계를 안정시키고 외국 차입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국제 무역과 투자를 장려했다.[24][25] 그러나 비산업 국가에서는 금본위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26]

금본위제로의 전환과 콤스톡 광산에서의 미국의 기록적인 은 생산량 증가로 1873년 이후 은 가격이 폭락했다. 유럽 대부분 국가는 기존의 은화를 무제한적인 법정 통화로 남겨두고 액면가로 새로운 금화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면서 금 본위제로 전환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13년 저서에서 금환본위제를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국제 금본위제의 주된 형태로 묘사했고, 19세기 이전에는 중앙은행 제도, 지폐, 토큰 화폐 등 최근 개발된 도구가 없어 금본위제 시행이 일반적으로 불가능했으며, 금환본위제가 영국의 금본위제보다 더 우수하다고 설명했다.[12]

금본위제는 국제수지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여겨졌다. 여러 국가가 금본위제를 채택하면, 유통되는 통화가 달라도 사실상 ‘금’이 세계 공통의 통화가 된다. 예를 들어 경상수지가 균형인 국가에서 설비투자가 활발해져 호황이 되면, 국내 저축이 이전과 변함없다면 경상수지는 적자를 기록하고, 이는 국내 통화(금) 유출이 유입보다 많음을 의미한다. 통화 감소로 국내 금리가 상승하고 설비투자는 감소하며, 경기는 경상수지가 균형을 이룰 때까지 진정되어 균형을 맞춘다.

3. 3. 1. 유럽과 미국의 금본위제 도입

1850년까지 영국과 일부 식민지만이 금본위제였으며, 다른 국가 대다수는 은본위제였다. 프랑스와 미국은 금은 복본위제 국가에 속하였다. 프렌치 프랑(French franc)은 순은 4.5g 혹은 순금 0.29032g으로, 미국 달러(United States dollar)는 1900년대까지 명목상 복본위제로 순금 1.50463g(1837년부터 1934년까지, 가격비율 1:15.99)으로 유지하려 하였다.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California gold rush)와 1851년 호주 골드 러시(Australian gold rushes)는 금 공급량을 증가시켰고, 이는 1850년대 프랑스와 미국을 금본위제로 압박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19세기 세계 금융 주도 국가이자 산업 국가로 성장하였고, 미국은 떠오르는 강대국이 되었다.

1860년대 금은 비율이 15.5로 되돌아가자, 금 활용 국가들은 더욱 성장하였고, 19세기 말까지 국제 금본위제에 모멘텀을 제공하였다.

  • 포르투갈과 영국 식민지 일부는 1850년대와 1860년대에 금본위제를 시작하였다.
  • 프랑스 주도의 라틴 통화 연합(Latin Monetary Union)에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가 참여하였다.
  • 1860년대 일부 국제 통화 회의에서 국제 금본위제의 혜택을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은 가격에 끼칠 영향에 대한 우려로 일부 국가들은 선회해야 했다.[164]

1873년, 독일 제국이 독일 금 마르크로 통화 체제를 전환하면서 국제적 고전 금본위제가 시작되었다. 이는 유럽의 대규모 경제 전환으로, 1870년대 여러 유럽 국가들이 금본위제로 전환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1873년 라틴 통화 동맹에서 무제한 은화 5프랑 주조 중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22]

다음은 각 국가들이 은본위제 또는 복본위제 통화에서 금본위제로 전환한 연도와 내용을 정리한 표이다.

국가전환 연도내용
영국1816년1파운드: 111.37g의 은에서 7.32238g의 금 (비율 15.21)
독일 제국1873년16.67g의 은 (북독일 탈러) 또는 1과 남독일 굴덴, 3독일 금 마르크(1.0753g의 금)로 환산 (비율 15.5)
라틴 통화 동맹 프랑1873년4.5g의 은에서 0.29032g의 금 (비율 15.5)
미국 달러1873년1873년 주화법에 의해: 24.0566g의 은에서 1.50463g의 금 (비율 15.99)
스칸디나비아 통화 동맹1875년25.28g의 은 (릭스달러), 4크로네(또는 크로나)(1.6129g의 금)로 환산 (비율 15.67)
네덜란드1875년네덜란드 길더 9.45g의 은에서 0.6048g의 금 (비율 15.625)
오스만 제국1881년오스만 리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1892년11.11g의 은 (오스트리아-헝가리 플로린), 2오스트리아-헝가리 크로네(0.60976g의 금)로 환산 (비율 18.22)
러시아 제국1897년루블 18g의 은에서 0.7742g의 금 (비율 23.25)



1873년 이후 금본위제가 국제 통화 시스템의 기반이 되었다.[23][24] 경제사학자 배리 아이헨그린에 따르면, "그때서야 비로소 국가들은 통화 공급의 기반으로 금을 선택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금본위제에 기반한 고정 환율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라고 하였다.[23]

3. 3. 2. 중앙은행과 금환본위제

중앙은행은 금본위제를 유지하기 위해 금리를 조절하고, 금 유출입에 따라 통화량을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세기 후반, 금괴 본위제는 중앙은행이 고정된 가격으로 유통 화폐를 금괴로 교환해 주는 시스템이었다.[12] 금환본위제는 정부가 특정 금액이 아닌, 금본위제를 채택한 다른 국가의 통화에 대해 고정 환율을 보장하는 제도였다. 이는 1945년부터 1971년까지 브레튼우즈 협정을 통해 국제 표준이 되었으며, 미국 달러는 금괴 본위제를 유지한 유일한 통화였다.

19세기 후반의 고전적인 금본위제는 유통되는 은화를 지폐와 토큰 화폐로 대체하고, 중앙은행 내에 금괴 및 준비 자산을 보유하여 가치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이를 금환본위제의 주된 형태로 보았으며, 중앙은행 제도, 지폐, 토큰 화폐 등의 도구가 없이는 금본위제 시행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12]

1920년대 케인스는 중앙은행이 금본위제를 시행하는 이상적인 방법을 "게임의 규칙"으로 설명했다.[29] 이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다음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

  • 유통 화폐를 금으로 대체하여 금 보유고를 중앙 집중화한다.
  • 100% 미만의 금 보유고 대 화폐 비율을 허용하고, 차액은 대출과 투자 자산으로 충당한다. (부분 준비금 제도)
  • 고정된 금 가격으로 유통 화폐를 금 또는 다른 외국 통화로 교환하고, 금 수입과 수출을 허용한다.
  • 환율은 금 운반 비용을 반영하여 약간의 차이를 허용한다.
  • 비상시에는 금본위제를 중단할 권한을 가진다.


중앙은행은 데이비드 흄이 제시한 가격-화폐 유출입 메커니즘에 따라 금본위제를 유지해야 했다.[29]

  • 수출이 많은 국가는 금 유입으로 화폐량이 증가하여 물가가 상승한다.
  • 수입이 많은 국가는 금 유출로 화폐량이 감소하여 물가가 하락한다.
  • 가격 차이는 무역 흐름을 통해 자체적으로 조정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절하여 국내 가격 수준과 금 유출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29]

금본위제는 국제수지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여겨졌다. 금은 세계 공통의 통화 역할을 했다.

  • 호황 시: 경상수지 적자 → 금 유출 → 통화량 감소 → 금리 상승 → 투자 감소 → 경기 진정
  • 불황 시: 경상수지 흑자 → 금 유입 → 통화량 증가 → 금리 하락 → 투자 증가 → 경기 회복


이 과정에서 금리 변화에 따른 해외 자본 유입/유출은 경상수지 불균형을 지속시킬 수 있지만, 국제수지는 균형을 유지한다.

3. 3. 3. 유럽 외 지역으로의 확산

19세기 후반, 금환본위제가 아시아 여러 국가로 확산되었다. 이들 국가는 자국 통화 가치를 금 또는 서구 열강의 금본위제 통화에 고정했다. 1875년 네덜란드령 동인도 길더는 금환본위제를 통해 금에 고정된 최초의 아시아 통화였으며, 네덜란드 길더와 동일한 가치를 유지했다.[12]

1893년, 10.69g의 순은으로 만들어진 인도 루피는 16 영국 페니(1파운드 = 15루피, 금-은 비율 21.9)에 고정되었고, 기존 은 루피는 계속 법정통화로 사용되었다. 1906년에는 24.26g의 은으로 만들어진 해협 달러가 28 페니(1파운드 = 8 달러, 비율 28.4)에 고정되었다.

1897년 일본, 1903년 필리핀, 1905년 멕시코에서도 유사한 금본위제가 시행되었다. 페소(24.26g의 은)는 약 0.75g의 금 또는 미국 달러의 절반(비율 32.3)으로 가치가 재조정되었다. 일본은 1894~1895년 청일전쟁 이후 필요한 금 보유고를 확보했으며, 금본위제로의 전환은 서구 자본 시장 접근에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졌다.[28]

3. 3. 4. "게임의 규칙"

1920년대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전쟁 이전 고전 시대에 중앙은행이 이상적으로 금본위제를 시행하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29]

케인스는 1914년 이전 국제 금본위제를 시행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모범 사례를 바탕으로 "게임의 규칙"을 다음과 같이 전제했다.[29]

  • 유통 중인 화폐를 금으로 대체하여 금 보유고를 중앙 집중화한다.
  • 100% 미만의 금 보유고 대 화폐 비율을 허용하고, 차액은 다른 대출과 투자 자산으로 충당한다. (이는 부분 준비금 제도 관행과 일치한다.)
  • 고정된 금 가격으로 유통 화폐를 금이나 다른 외국 통화로 교환하고, 금 수입과 수출을 자유롭게 허용한다.
  • 중앙은행은 금본위제를 준수하면서도 금 운반 비용을 반영하기 위해 환율에 약간의 차이를 허용했다.
  • 비상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전시에는 금본위제를 중단할 권한이 있었다.


중앙은행은 또한 경제학자 데이비드 흄이 제안한 가격-화폐 유출입 메커니즘에 따라 작동하는 국제 무역이라는 이상적인 가정하에 금본위제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었다.[29]

  • 상품을 더 많이 수출한 국가는 수입국으로부터 화폐(금 또는 은) 유입을 받게 된다.
  • 수출국에서 화폐가 많아지면 가격 수준이 상승하고, 반대로 화폐를 사용하는 국가의 가격 수준은 하락한다.
  • 화폐가 부족한 국가의 낮은 가격은 화폐가 풍부한 국가의 지출을 유인하여 두 곳의 가격 수준이 같아질 때까지 가격 차이가 자체적으로 수정된다.


그러나 실제로 고전적인 금본위제 시대의 화폐 유출입은 위에서 설명한 자체 수정 행동을 보이지 못했다. 중앙은행은 국내 금리를 조절하여 국내 가격 수준을 바꾸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가격 수준이 높은 국가는 금리를 높여 수요와 가격을 낮추면서도 투자자로부터 금 유입을 유발할 수 있었다. 이는 가격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 금이 유출될 것이라는 전제와 모순된다. 선진국 경제는 국내 자산을 국제 투자자에게 매수 또는 매도하여 금 유출입에 영향을 미치는 데 흄의 예측보다 더 효과적이었다.[29]

"게임의 규칙"에 대한 또 다른 위반은 중앙은행이 환율이 "금점"을 벗어나더라도 즉시 개입하지 않는 것이었다. 중앙은행은 금에 대한 고정 환율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했지만, 이러한 행동은 금본위제 준수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에 의해 제한되었다. 케인스는 1913년 이전 프랑스 은행이 1인당 200프랑으로 금 지급을 제한하고 1%의 프리미엄을 부과하고, 독일 제국은행이 금 지급을 부분적으로 중단한 것을 예로 들었다.[12]

일부 국가는 다른 통화 정책 목표를 추구하면서 "게임의 규칙"을 무시하면서도 금본위제를 시행하는 데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라틴 통화 동맹 내부에서 이탈리아 리라스페인 페세타는 장기간에 걸쳐 일반적인 금본위제 수준을 벗어나 거래되었다.[30]

3. 4. 미국에서의 금본위제

미국은 1792년 1792년 주화법을 통해 금은 복본위제를 채택했다. 미국 달러는 1900년대까지 명목상 복본위제였으며, 순은 24.0566g 혹은 순금 1.60377g의 가격비율 1:15.0이었다. 금의 경우, 1837년부터 1934년까지는 순금 1.50463g으로 맞춰져 가격비율이 1:15.99였다. 1837년 이전까지 은달러가 상대적으로 저렴했지만, 금달러는 1837년에서 1873년 사이에 더 저렴하였다.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와 1851년 호주 골드 러시는 금 공급량을 증가시켜 1850년대 미국을 금본위제로 압박하였다. 1873년 1873년 주화법에 의해 미국 달러는 은에서 금으로 전환되었다.

은화 가치가 금화 가치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다량의 은화 모건 달러가 금화와 동등한 가치로 계속 유통되면서 미국 달러는 불완전한 본위제(limping standard)에 있다고 여겨졌다.


콤스톡 광산에서의 은 생산량 증가와 금 본위제로의 전환은 1873년 이후 은 가격 폭락을 야기했고, 금-은 비율은 1880년까지 18이라는 역사적인 최고치를 기록했다. '''불완전한 본위제(limping standard)'''라는 용어는 미국의 금 본위제 약속이 막대한 양의 모건 달러 은화로 인해 의문시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27]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금본위제 재정립을 시도했다.

3. 4. 1. 금본위제 도입

1780년대에 토머스 제퍼슨, 로버트 모리스,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의회에 십진법 화폐 시스템을 채택할 것을 권고했다.[22] 1785년 최초 권고안은 스페인 달러(순은 371.25 그레인 또는 24.0566g)를 기준으로 한 은본위제였으나, 1792년 주화법(Coinage Act of 1792) 최종본에는 해밀턴이 권고한 순금 247.5 그레인(16.0377g)을 함유한 10달러 금화(eagle (United States coin))도 승인되었다. 따라서 해밀턴은 15:1의 금은 비율로 미국 달러를 금은 복본위제에 두었다.

3. 4. 2. 남북전쟁 이전

미국은 1791년에 미국 제1은행을, 1816년에는 미국 제2은행을 설립하여 국립은행 설립에 나섰다. 1836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제2은행의 차터 연장을 거부했는데, 이는 은행 기관에 대한 그의 반감과 사적으로 발행된 지폐보다는 금화를 대규모 지불에 사용하려는 그의 선호도를 반영한 것이다.[22] 잭슨 대통령의 결정으로 달러의 금 환산 가치를 낮춰야 했고, 1834년 주화법에서 금-은 비율은 16.0으로 증가했다 (10달러 이글의 순금 함량이 232.2그레인 또는 15.0463g으로 설정되면서 1837년에 15.99로 최종 확정됨).[22]

1848년 캘리포니아의 금 발견과 이후 호주에서의 금 발견으로 은에 대한 금의 가격이 하락했고, 이는 시장에서 화폐보다 가치가 더 높았기 때문에 은화를 유통에서 몰아냈다.[22] 1848년 독립 재무부법(Independent Treasury Act) 통과로 미국은 엄격한 금본위제를 채택했으며,[22] 미국 정부와의 거래에는 금화나 은화가 필요했다.[22]

3. 4. 3. 남북전쟁 이후

미국 남북전쟁(1861년~1865년) 비용 충당을 위한 인플레이션성 재정 조치로 인해 미국 정부는 금이나 은으로 채무를 상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법적으로 현물(금 채권)로 명시되지 않은 채무 지급을 중단했다.[164] 이는 은행들이 은행 부채(은행권과 예금)를 현물로 전환하는 것을 중단하게 만들었다. 1862년에는 지폐가 법정 통화가 되었다. 이는 (고정된 환율로 현물로 수요 시 환전할 수 없는) 불환지폐였으며, "그린백(greenbacks)"으로 불렸다.[164]

남북전쟁 후, 미국 의회는 전쟁 전 수준으로 금본위제를 재정립하려고 했다. 그린백으로 표시된 금의 시장 가격은 전쟁 전 고정 가격(온스당 20.67USD)보다 높았기 때문에 전쟁 전 가격을 달성하려면 디플레이션이 필요했다. 이는 실제 생산량보다 통화 공급량을 더 느리게 증가시킴으로써 달성되었다. 1879년까지 그린백의 시장 가격은 금의 조폐 가격과 일치했고, 배리 아이헨그린(Barry Eichengreen)에 따르면 미국은 그 해에 사실상 금본위제를 채택했다.[22]

3. 5. 금본위제의 포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각국은 전비 조달을 위해 통화 발행을 늘리고 금 태환을 중지하면서 금본위제에서 이탈하여 변동환율제도로 운영하게 되었다.[12] 전쟁 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게 되면서 1919년 미국, 1925년 영국이 금본위제로 복귀했으나,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각국은 경쟁적으로 자국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통화 가치를 절하하고 금본위제에서 이탈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923년 저서 『화폐 개혁론』에서 금본위제를 "미개 사회의 유물"이라고 비판하고, 금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관리 통화 제도로의 이행을 주장했다.[134]

1931년 9월 인버고든 반란으로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한 영국을 시작으로, 1937년 6월 프랑스를 마지막으로 모든 국가가 금본위제에서 탈퇴했다. 벤 버냉키는 "금본위제에서 일찍 탈퇴한 국가일수록 경제 성과가 좋았다"고 평가했다.[146]

일본은 1차 대전 후 금본위제 복귀 기회를 엿보았으나, 관동 대지진 등의 영향으로 시기를 놓쳤다. 1930년 하마구치 오사치 내각이 "금 수출 해금"을 실시했지만, 많은 무역 적자로 인해 대량의 금 유출이 발생하여, 이듬해 이누카이 쓰요시 내각이 금 수출을 다시 금지했다.[147]

193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통령령 6102호를 발령하여 미국 시민들에게 보유한 금을 강제 압수하고, 시민의 금 보유를 금지했다. 이는 당시 금본위제 하에서 지폐가 금 보유고에 제한되어 인플레이션 정책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148] 1934년 미국은 금 매입 가격을 1온스=35달러로 정하고, 이 가격으로 외국 통화 당국에 금을 인도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149]

3. 5. 1.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영국과 영국 연방에서는 금본위제가 종식되었다.[32] 1913년 말, 고전적인 금본위제는 정점에 달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많은 국가들이 금본위제를 중단하거나 폐지했다.[33] 전쟁 자금 조달과 금본위제 폐지로 인해 많은 교전국들이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독일은 1914년 금본위제를 폐지했고, 전쟁 배상금으로 인해 금 보유량의 상당 부분을 잃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금본위제로 복귀할 수 없었다. 루르 점령 기간 동안 독일 중앙은행(라이히스방크)은 엄청난 양의 비환전 마르크를 발행했는데, 이는 1920년대 초 독일의 초인플레이션과 독일 중산층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각국 정부는 금본위제를 중단하고 관리통화제도로 이행하였다. 이는 전쟁으로 인해 증가한 대외 지불을 위해 금화의 정부 집중이 필요하게 되었고, 금의 수출을 금지하고 통화의 금태환을 정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황의 진전에 따라 세계 최대의 외환 결제 시장이었던 런던의 시티가 전쟁 피해를 입어 활동을 중단한 것, 각국 간의 환어음 수송이 두절된 것 등도 영향을 미쳤다.

3. 5. 2. 전간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나라들이 금지금본위제 형태로 금본위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통화 증발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1919년 미국, 1925년 영국이 다시 금본위제로 복귀하였다. 영국의 '''1925년 금본위제 법'''은 금괴 본위제를 도입하는 동시에 금본위제를 폐지했다.[36] 이 법은 금화 유통을 종식시키고, 당국이 고정된 가격으로 금괴를 판매하되 "약 400트로이 온스(12kg)의 순금이 함유된 금괴 형태로만" 판매하도록 규정했다.[37][38]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디플레이션 위험을 들어 금본위제 재개에 반대했다.[39] 윈스턴 처칠은 전쟁 전 환율(1파운드당 4.86달러)로 가격을 고정해 불황, 실업, 1926년 영국 총파업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앤드류 턴불은 이 결정을 "역사적 실수"라고 묘사했다.[40]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각국은 경쟁적으로 자국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평가절하를 하며 금본위제에서 이탈했다. 1931년 영국은 금본위제에서 이탈했고, 다른 여러 국가들도 뒤따랐다.

3. 6. 대공황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여러 국가들이 금지금본위제 형태로 금본위제 복귀를 시도했으나, 1929년 대공황으로 인해 각국은 경쟁적으로 자국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평가절하를 하면서 금본위제에서 이탈하게 되었다.[26]

1931년 여름, 중앙 유럽의 은행 위기로 독일오스트리아는 금태환을 중단하고 환율 통제를 실시했다.[26] 1931년 5월 오스트리아 최대 상업은행인 크레디탄스탈에 대한 뱅크런이 발생하여 은행이 파산했고, 이는 독일로 확산되어 중앙은행도 붕괴되었다. 국제 금융 지원은 너무 늦었고, 1931년 7월 독일은 환율 통제를 도입했고, 오스트리아는 10월에 뒤따랐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경험과 영국의 예산 및 정치적 어려움은 파운드에 대한 신뢰를 파괴한 요인 중 하나였으며, 이는 1931년 7월 중순에 발생했다. 뱅크런이 이어졌고 영국 중앙은행은 많은 준비금을 잃었다.

1931년 9월 19일, 파운드에 대한 투기 공격으로 영국 중앙은행은 명목상 "일시적으로" 금본위제를 포기했다.[41] 그러나 이 이탈은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경제 효과를 가져와 금본위제 이탈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졌다.[41] 미국과 프랑스 중앙은행으로부터의 5천만 파운드의 대출은 불충분했고,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대규모 금 유출로 몇 주 만에 고갈되었다.[44][45] 영국은 이 이탈로 이익을 얻었다. 이제 통화 정책을 사용하여 경제를 부양할 수 있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는 이미 금본위제를 떠났고 캐나다도 곧 뒤따랐다.

전간기의 부분적 금본위제는 외국 중앙은행에 대한 부채의 증가와 그에 따른 영국 중앙은행의 준비율 악화 사이의 갈등 때문에 본질적으로 불안정했다. 프랑스는 당시 파리를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만들려고 시도했고, 대량의 금 유입도 받았다.[46]

1933년 3월 취임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금본위제를 폐지했다.[47] 1932년 말까지 금본위제는 세계 통화 시스템으로서 폐기되었다.[47] 체코슬로바키아,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는 1930년대 중반에 금본위제를 포기했다.[47]

3. 6. 1. 대공황의 원인

배리 아이헨그린, 피터 테민, 벤 버냉키 등의 경제학자들은 1920년대 금본위제가 경기침체 장기화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은 약 10년간 지속되었다.[50][51][52][53] 대공황에 대한 금본위제 이론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견해"로 여겨진다.[54][55]

금본위제는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 확대 능력을 제한하여 통화 정책의 유연성을 제약했다. 미국에서는 중앙은행이 연방준비제도법(1913)에 따라 수표의 40%를 금으로 뒷받침해야 했다.[56] 금본위제에서 벗어난 후에는 화폐 창출이 자유로워졌다. 2024년 ''American Economic Review''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27개국의 표본에서 금본위제를 폐지한 국가들이 대공황에서 더 빨리 회복되었다고 한다.[57]

1930년대 초,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인상하여 달러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려고 시도함으로써 달러를 방어했다. 이는 금으로 외국 자산을 매입한 국제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58] 그러나 높은 금리는 달러에 대한 디플레이션 압력을 강화하고 미국 은행에 대한 투자를 감소시켰다. 상업은행은 1931년에 연방준비제도 지폐를 금으로 전환하여 금 보유량을 줄이고 유통 중인 통화량을 감소시켰다. 이러한 투기 공격은 미국 은행 시스템에 공황을 야기했다. 곧바로 평가절하될 것을 우려한 많은 예금자들이 미국 은행에서 자금을 인출했다.[58] 은행 뱅크런이 증가함에 따라 역 승수 효과로 인해 통화 공급이 축소되었다.[59]

통화 공급의 강제적인 축소는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명목 금리가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이션 조정 실질 금리는 높게 유지되었고, 돈을 쓰는 대신 돈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줌으로써 경제를 더욱 둔화시켰다.[61] 미국의 회복은 영국보다 느렸는데, 그 이유는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의회가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미국 통화를 변동 환율제로 전환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62]

1933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행정명령 6102호를 발령, 미국 시민들에게 보유한 금을 강제 압수하고 금 보유를 금지했다. 이는 당시 금본위제 하에서 지폐가 금 보유고에 제한되어 인플레이션 정책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148]

의회는 1934년 1월 30일 금준비법을 통과시켜 모든 금을 국유화하고, 대통령에게 금 달러의 평가절하를 허용했다. 이 권한에 따라 대통령은 1934년 1월 31일 달러의 가치를 20.67USD 트로이온스에서 35USD 트로이온스로 변경했는데, 이는 40% 이상의 평가절하였다.

국가별 금본위제 정책[74]
국가금본위제 복귀금본위제 중단외환 관리평가절하
오스트레일리아1925년 4월1929년 12월1930년 3월
오스트리아1925년 4월1933년 4월1931년 10월1931년 9월
벨기에1926년 10월1935년 3월
캐나다1926년 7월1931년 10월1931년 9월
체코슬로바키아1926년 4월1931년 9월1934년 2월
덴마크1927년 1월1931년 9월1931년 11월1931년 9월
에스토니아1928년 1월1933년 6월1931년 11월1933년 6월
핀란드1926년 1월1931년 10월1931년 10월
프랑스1926년 8월-1928년 6월1936년 10월
독일1924년 9월1931년 7월
그리스1928년 5월1932년 4월1931년 9월1932년 4월
헝가리1925년 4월1931년 7월
이탈리아1927년 12월1934년 5월1936년 10월
일본1930년 12월1931년 12월1932년 7월1931년 12월
라트비아1922년 8월1931년 10월
네덜란드1925년 4월1936년 10월
노르웨이1928년 5월1931년 9월1931년 9월
뉴질랜드1925년 4월1931년 9월1930년 4월
폴란드1927년 10월1936년 4월1936년 10월
루마니아1927년 3월-1929년 2월1932년 5월
스웨덴1924년 4월1931년 9월1931년 9월
스페인1931년 5월
영국1925년 5월1931년 9월1931년 9월
미국1919년 6월1933년 3월1933년 3월1933년 4월


3. 6. 2. 금본위제로의 복귀 시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여러 국가들이 금지금본위제 형태로 금본위제 복귀를 시도했다. 1919년 미국, 1925년 영국 등이 금본위제로 복귀했다.[12] 그러나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각국은 경쟁적으로 자국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평가절하를 하면서 금본위제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영국은 1925년 금본위제 법을 통해 금괴 본위제를 도입함과 동시에 금화 유통을 중단시켰다.[36] 이 법은 당국이 약 400트로이 온스(12kg)의 순금이 함유된 금괴 형태로만 금을 판매하도록 규정했다.[37][38]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디플레이션 위험을 이유로 금본위제 복귀에 반대했다.[39] 그러나 당시 처칠은 전쟁 전 환율(1파운드=4.86달러)로 복귀를 강행했고, 이는 불황, 실업, 1926년 영국 총파업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40]

1931년 영국은 파운드화의 금본위제를 중단했다.[41] 다른 국가들도 영국을 따라 금본위제에서 이탈했고, 이는 대공황을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26]

1933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금본위제를 폐지했다.[47]

국가별 금본위제 정책[74]
국가금본위제 복귀금본위제 중단외환 관리평가절하
오스트레일리아1925년 4월1929년 12월1930년 3월
오스트리아1925년 4월1933년 4월1931년 10월1931년 9월
벨기에1926년 10월1935년 3월
캐나다1926년 7월1931년 10월1931년 9월
체코슬로바키아1926년 4월1931년 9월1934년 2월
덴마크1927년 1월1931년 9월1931년 11월1931년 9월
에스토니아1928년 1월1933년 6월1931년 11월1933년 6월
핀란드1926년 1월1931년 10월1931년 10월
프랑스1926년 8월-1928년 6월1936년 10월
독일1924년 9월1931년 7월
그리스1928년 5월1932년 4월1931년 9월1932년 4월
헝가리1925년 4월1931년 7월
이탈리아1927년 12월1934년 5월1936년 10월
일본1930년 12월1931년 12월1932년 7월1931년 12월
라트비아1922년 8월1931년 10월
네덜란드1925년 4월1936년 10월
노르웨이1928년 5월1931년 9월1931년 9월
뉴질랜드1925년 4월1931년 9월1930년 4월
폴란드1927년 10월1936년 4월1936년 10월
루마니아1927년 3월-1929년 2월1932년 5월
스웨덴1924년 4월1931년 9월1931년 9월
스페인1931년 5월
영국1925년 5월1931년 9월1931년 9월
미국1919년 6월1933년 3월1933년 3월1933년 4월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RB) 의장은 "금본위제에서 일찍 탈퇴한 국가일수록 경제 성과가 좋았다"고 평가했다.[146]

3. 7. 브레튼우즈 체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브레튼우즈 협정에 따라 금본위제와 유사한 시스템이 수립되었다. 이 시스템은 때때로 "금환본위제"라고도 불린다.[75] 이 체제 하에서 많은 국가들은 미국 달러에 대한 환율을 고정했고, 중앙은행은 온스당 35달러의 공식 환율로 달러 보유액을 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옵션은 기업이나 개인에게는 제공되지 않았다. 달러에 고정된 모든 통화는 따라서 금에 대한 고정된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75]

1970년대 중반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까지는 달러로 표시된 금값이 안정적이었다.


1950년대 후반에는 환율 제한이 해제되었고 금은 국제 금융 결제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환율 과정을 지원하고 국가들이 고정환율을 유지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는 신용을 통해 조정이 완화되어 국가들이 디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75]

그러나 1959년부터 1969년까지 샤를 드 골 대통령 집권 시기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는 공식 환율로 달러 보유액을 금으로 교환하여 달러 보유액을 줄이고 미국 경제적 영향력을 축소했다. 이와 함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연방 정부 지출의 재정적 압박과 지속적인 국제수지 적자로 인해,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미국 달러의 국제적 금태환을 종식시켰다. 이를 닉슨 쇼크라고 부른다.[75]

이후 달러는 변동환율제로 전환되었으며, 1976년 10월 정부는 공식적으로 달러의 정의를 변경했고, 법규에서 금에 대한 언급이 삭제되었다. 이 시점부터 국제통화체제는 순수한 불환화폐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고전적인 금본위제 붕괴 이후에도 금은 중요한 외환보유자산으로 남아있다.[75]

3. 8. 닉슨 쇼크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이른바 닉슨 쇼크를 통해 미국 달러의 금 태환 정지를 선언했다.[149] 이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재정 적자와 국제수지 적자 심화에 따른 조치였다.[75]

이후 1971년 12월 스미소니언 협정을 통해 달러 가치를 1온스당 38달러로 평가절하하며 금본위제 유지를 시도했으나, 1973년까지 주요 국가들이 변동환율제로 전환하면서 금본위제는 사실상 폐지되었다.[149]

3. 9. 현대의 금 생산

2012년 GFMS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약 174100ton의 금이 채굴된 것으로 추정된다.[76] 이는 약 56억 트로이온스에 해당하며, 부피로는 약 9,261m³(한 변의 길이가 21m인 정육면체)이다. 채굴된 금의 총량에 대한 추정치는 다양한데, 금이 수천 년 동안 채굴되었고 일부 국가는 채굴량을 공개하지 않으며, 불법 채굴량 파악도 어렵기 때문이다.[76]

2011년 세계 금 생산량은 약 2700ton이었다. 1950년대 이후 연간 금 생산량 증가율은 세계 인구 증가율과 거의 같은 비율(이 기간 동안 두 배 증가)을 보였지만,[77] 세계 경제 성장률(1950년대 이후 약 8배,[78] 1980년대 이후 4배 증가[79])에는 미치지 못했다.

3. 10. 금본위제 재도입

2024년, 짐바브웨인플레이션을 해결하고 경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짐바브웨 금화(ZiG)라는 금본위제를 도입했다. 이는 21세기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80] ZiG는 4억 달러와 2,522kg의 금으로 뒷받침되어 총 5.75억달러 상당의 실물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80] 이러한 발전은 짐달러(Zimdollar)가 공식 환율 기준으로 도입 당시 1달러당 2.50짐달러에서 2024년 4월 5일에는 1달러당 30,672.42짐달러로 폭락하고, 같은 시점의 암시장 환율은 1달러당 42,500짐달러에 달했던 이후에 이루어졌다.[80]

4. 이론

금본위제는 한 나라의 통화 가치를 일정량의 금으로 고정하는 제도이다. 협의의 금본위제는 화폐 제도의 근간을 금으로 정하고, 본위화폐를 금화로 하여 자유로운 주조와 용해를 허용하며 무제한 통용력을 부여한 제도이다. 이를 금화본위제라고도 한다. 금화본위제에서는 금 자체가 화폐로 유통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유통에 충분한 금화를 보유하기 어렵고, 금화는 휴대하기 불편하며 마모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금과의 교환을 보증하는 환전지폐와 보조화폐를 유통시켜 화폐 가치를 금으로 뒷받침하는 금지금본위제가 시행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금화본위제와 금지금본위제를 모두 금본위제라고 부른다. 더 나아가, 자국에서 금본위제를 시행할 수 없는 경우에도, 금본위제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의 통화와 자국 통화 간의 일정한 교환성이 보장되면 금환위본위제라고 부른다. 금환위본위제는 환율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과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광의로는 금환위본위제도 금본위제에 포함된다. 그러나 금환위본위제는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브레턴우즈 체제를 제외하고는 식민지 정부에서 실시된 예가 많으며, 이 경우 본국의 사정에 따라 현지의 금융 활동이 제약을 받기도 했다.

금본위제는 상품 화폐의 불편함과 법정 화폐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상품 화폐는 보관과 운반이 어렵고, 정부가 상업 활동의 흐름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법정 화폐는 정부의 통화 정책 남용으로 인해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금은 희소성, 내구성, 분할성, 대체성, 식별 용이성 때문에 화폐로 선호되었으며, 과 함께 사용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은이 주요 유통 수단이었고, 금은 통화 준비금으로 사용되었다.

금본위제는 통화 가치를 안정시키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여겨진다. 1900년에 발행된 일본의 지폐는 금과 교환 가능하다는 것이 명기된 환전지폐였다.-- 그러나 금본위제는 경제 성장의 한계로 작용할 수 있으며, 경기 침체기에 통화 정책의 유연성을 제한한다는 비판도 있다.

4. 1. 금본위제의 변형

전면 또는 100% 준비금 금본위제는 통화 당국이 유통되는 모든 대표 화폐를 금으로 전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금을 보유하고 있을 때 존재한다.[85] 이를 쉽게 구분하기 위해 때로는 금 본위제(gold specie standard)라고도 한다. 전면 본위제의 반대론자들은 이를 시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세계 경제 활동을 현재 금 가격 또는 그 근처에서 유지하기에는 세계 금의 양이 너무 적다고 말한다. 따라서 시행에는 금 가격의 여러 배 증가가 수반될 것이다.[85] 금본위제 옹호론자들은 "일단 화폐가 확립되면, 어떤 화폐량도 어떤 고용량과 실질소득에도 적합해진다"고 말했다.[86] 물가는 반드시 금의 공급에 맞춰 조정되겠지만, 그 과정에는 이전의 금본위제 유지 시도에서 경험했듯이 상당한 경제적 혼란이 수반될 수 있다.[87]

국제 금본위제(이는 관련 국가 내부의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해야 함)[88]에서는 금 또는 고정된 가격으로 금으로 전환 가능한 통화를 국제 결제에 사용한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는 환율이 고정된 주조율보다 금 운송비를 초과하여 상승하거나 하락하면, 환율이 공식 수준으로 돌아올 때까지 자금 유입 또는 유출이 발생한다. 국제 금본위제는 종종 어떤 기관이 화폐를 금으로 상환할 권리를 갖는지 제한한다.

4. 2. 금본위제의 영향

금본위제는 장기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물가 변동성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슈워츠(Schwartz) 등은 이러한 단기적인 물가 불안정이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부채 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야기하여 금융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금 발견과 생산량의 급증은 이러한 변동성을 더욱 심화시켰다.[106]

배리 아이헨그린, 피터 테민, 벤 버냉키 등의 경제학자들은 1920년대 금본위제가 경기침체 장기화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은 약 10년간 지속되었다.[50][51][52][53] 대공황에 대한 금본위제 이론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견해"로 여겨진다.[54][55] 이 견해는 두 가지 주장에 근거한다. 첫째, 금본위제 하에서는 디플레이션 충격이 국가 간에 전파되었다. 둘째,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본위제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통화 당국은 은행 파닉을 상쇄하고 경기 회복을 막았다.[54] 그러나 2002년 논문에서는 두 번째 주장은 "제한된 금 보유량을 가진 소규모 개방 경제에만 적용된다. 세계 최대 국가이자 막대한 금 보유량을 가진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은행 파닉, 디플레이션 및 경제 활동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확장 정책을 사용하는 데 제약을 받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54] 에드워드 C. 시몬스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금본위제 준수로 인해 연방준비제도가 경기를 부양하고, 파산 위기에 처한 은행에 자금을 지원하며, 경기 확장을 위한 "프라이밍 더 펌프(pump priming)"를 할 수 있는 정부 적자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통화 공급을 확대하는 것을 막았다. 금본위제에서 벗어난 후에는 화폐 창출이 자유로워졌다. 금본위제는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 확대 능력을 제한함으로써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유연성을 제한했다. 미국에서는 중앙은행이 연방준비제도법(1913)에 따라 수표의 40%를 금으로 뒷받침해야 했다.[56] 2024년 ''American Economic Review''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27개국의 표본에서 금본위제를 폐지한 국가들이 대공황에서 더 빨리 회복되었다고 한다.[57]

1930년대 초,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인상하여 달러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려고 시도함으로써 달러를 방어했다. 이는 금으로 외국 자산을 매입한 국제 투자자들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58]

금본위제는 국제수지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여겨진다. 여러 국가가 금본위제를 채택하면, 유통되는 통화가 달라도 사실상 ‘금’이 세계 공통의 통화가 된다.

경상수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어떤 국가를 가정할 때, 설비투자가 활발해져 호황이 되면 국내 저축이 이전과 변함없다는 전제하에 경상수지는 적자를 기록한다. 경상수지 적자는 수입으로 인한 자국 통화(금)의 유출이 수출로 인한 자국 통화(금)의 유입을 상회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국내 통화 잔고 감소를 의미한다. 통화 감소로 국내 금리가 상승하고 설비투자는 감소한다. 경기는 경상수지가 균형을 이룰 때까지 진정되고, 결국 균형을 맞춘다. 이 과정에서 금리 상승 시 해외로부터의 자본 유입이 발생하면 설비투자는 감소하지 않고 경상수지도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합계가 균형을 이루는 한 국내 금은 증감하지 않고 국제수지는 균형을 유지한다. 불황에 빠졌을 때에도 금의 유입이 플러스가 된다면 경기가 회복된다.

수출입에만 주목한 설명으로는, 국내 물가가 상승하면 수출 감소・수입 증가가 된다. 수입 초과분은 궁극적으로 자국의 외환으로 지불한다. 외환이 감소하면 통화 발행액도 감소하고 불황이 되어 물가가 하락한다. 이 하락으로 수출 증가・수입 감소가 된다. 이렇게 하여 외환이 회수된다.

1914년부터 금 가격(트로이온스당 미국 달러) - 명목 미국 달러와 물가 조정 미국 달러

  • 금 매장량의 불균등한 분포는 금본위제를 금을 생산하는 국가들에게 더 유리하게 만든다.[100] 2010년 최대 금 생산국은 중국, 호주, 미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러시아 순이었다.[101] 채굴되지 않은 금 매장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호주이다.[102]
  • 일부 경제학자들은 금본위제가 경제 성장의 한계로 작용한다고 믿는다. 데이비드 메이어(David Mayer)에 따르면, "경제의 생산 능력이 성장하면 화폐 공급도 그에 따라 성장해야 합니다. 금본위제는 화폐가 금으로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금의 희소성은 경제가 더 많은 자본을 생산하고 성장하는 능력을 제약합니다."라고 주장한다.[103]
  •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기 침체기에 화폐 공급을 늘림으로써 경기 침체를 크게 완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104] 금본위제는 화폐 공급이 금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통화 정책을 더 이상 경제 안정화에 사용할 수 없다.[105]
  • 디플레이션은 채무자에게 불이익을 준다.[107][108] 따라서 실질 부채 부담이 증가하여 차입자는 부채를 상환하거나 채무 불이행을 하기 위해 지출을 줄입니다. 채권자는 더 부유해지지만, 추가 부의 일부를 저축하여 GDP를 감소시킬 수 있다.[109]
  • 화폐 공급은 본질적으로 금 생산 속도에 의해 결정된다. 금 매장량이 경제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110] 금본위제가 대공황의 심각성과 기간에 기여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금본위제 하에서는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적 힘을 상쇄할 만큼 충분히 빠른 속도로 신용을 확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11][112]
  • 해밀턴(Hamilton)은 정부의 재정 상태가 취약해 보일 때 금본위제가 투기 공격에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이러한 위협은 정부가 위험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막는다 (도덕적 해이 참조). 예를 들어, 미국은 1931년 9월 투기꾼들이 영국을 금본위제에서 이탈하게 한 후 달러를 방어하기 위해 화폐 공급을 축소하고 금리를 인상해야 했다.[113]
  • 금본위제 하에서 통화 가치 절하 방식에 따라, 일반적으로 평가절하 방식에 따라 금본위제 하에서 통화 가치 절하는 법정통화에서 볼 수 있는 완만한 하락보다 더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다.[114]
  •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약 2%의 낮은 양의 인플레이션율을 선호한다. 이것은 디플레이션 충격에 대한 우려와 적극적인 통화 정책이 생산량과 실업률의 변동을 완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반영한다. 인플레이션은 디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도 정책을 강화할 여지를 제공한다.[115]
  • 금본위제는 중앙은행이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한 실질적인 제약을 제공한다.[116] 신규 화폐의 창출은 금리를 낮추고 그에 따라 저렴한 신규 부채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화폐 수요를 높입니다.[117]

5. 장점

경제학자 마이클 D. 보르도(Michael D. Bordo)에 따르면, 금본위제는 세 가지 주요 장점을 가진다.[91]


  • 장기적인 물가 안정: 역사적으로 금본위제는 단기 물가 변동은 컸지만, 장기적으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경향을 보였다.[96][97]
  • 통화 위기 감소: 금본위제는 통화 가치 하락을 방지하여 통화 위기 발생 빈도를 낮춘다.[2]
  • 국제 무역 불확실성 감소: 금본위제는 참여 국가 간에 고정된 국제 환율을 제공하여 국제 무역의 불확실성을 줄인다.[98] 역사적으로 물가 수준 간의 불균형은 "물가-화폐 유출 메커니즘"이라고 불리는 국제수지 조정 메커니즘에 의해 상쇄되었다.[99]


1966년 앨런 그린스펀은 "적자 지출은 단순히 부의 몰수 계획이다. 금은 이러한 교활한 과정을 막는다. 그것은 재산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썼다.[95]

6. 단점

금본위제는 경제 성장의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화폐 공급도 함께 증가해야 하는데, 금본위제에서는 화폐가 금으로 뒷받침되기 때문에 금의 희소성이 경제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103]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기 침체기에 화폐 공급을 늘려 경기 침체를 완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104] 그러나 금본위제에서는 화폐 공급이 금 공급에 의해 결정되므로, 통화 정책을 경제 안정화에 활용하기 어렵다.[105]

금본위제는 장기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물가 변동성이 높을 수 있다.[106] 이는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부채 가치 불확실성을 야기하여 금융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디플레이션은 채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107][108] 실질 부채 부담이 증가하여 채무자는 지출을 줄이거나 채무 불이행을 선택하게 된다. 반면 채권자는 더 부유해지지만, 이들이 추가적인 부의 일부를 저축하면서 GDP가 감소할 수 있다.[109]

화폐 공급은 금 생산 속도에 의해 결정된다. 금 매장량이 경제보다 빠르게 증가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그 반대의 경우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110] 금본위제는 중앙은행이 디플레이션에 대응하여 신용을 충분히 빠르게 확대하는 것을 어렵게 하여 대공황을 심화시켰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111][112]

금본위제는 정부의 재정 상태가 취약할 때 투기 공격에 취약하다.[113] 예를 들어, 1931년 9월 투기꾼들이 영국을 금본위제에서 이탈시킨 후, 미국은 달러를 방어하기 위해 화폐 공급을 축소하고 금리를 인상해야 했다.

금본위제에서 통화 가치 절하는 법정통화에서보다 더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114]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약 2%의 낮은 인플레이션을 선호한다.[115] 이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와 적극적인 통화 정책이 생산량과 실업률 변동을 완화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금본위제는 중앙은행이 경제 위기에 대응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제한한다.[116]

7. 지지

금본위제는 오스트리아 경제학파, 자유 시장 자유주의자, 그리고 일부 공급 측 경제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125]

7. 1. 미국 정치

1982년 미국 금 위원회(U.S. Gold Commission)에서 금본위제 복귀를 검토했지만, 소수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119]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U.S. Federal Reserve)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자신이 금본위제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진 중앙은행 내 소수에 속했다고 인정했다.[122] 그는 1966년 에인 랜드(Ayn Rand)의 책 "금과 경제적 자유(Gold and Economic Freedom)"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순수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주장했으며, 법정화폐 지지자들을 재정 적자 지출을 위한 통화 정책을 사용하려는 복지주의자(welfare statists)라고 묘사했다.[123]

금본위제는 오스트리아 경제학파(Austrian School of economics), 자유 시장 자유주의자(free-market libertarians), 그리고 일부 공급 측 경제학자(supply-siders)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125] 전직 하원의원인 론 폴(Ron Paul)은 오랫동안 금본위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온 유명 인사이지만, 경제 상황을 더 잘 반영하는 여러 상품의 바스켓을 기준으로 하는 본위제 사용을 지지하는 의견도 표명했다.[126]

2011년 유타주 의회는 연방 정부가 발행한 금화와 은화를 세금 납부의 법정통화로 인정하는 유타주 법정통화법(Utah Legal Tender Act)을 통과시켰다.[127] 당시 다른 미국 주들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검토 중이었다.[128] 이 법안은 미국 공화당(Republican Party (United States))의 신임 의원으로 티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과 관련된 사람들이 발의했으며,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되었다.[129]

2013년 애리조나주 의회(Arizona Legislature)는 금화와 은화를 부채 상환의 법정통화로 만드는 SB 1439를 통과시켰지만, 주지사의 거부권으로 무산되었다.[130]

2015년,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2016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에 출마한 일부 공화당 후보들은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의 경제 성장 촉진 시도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바탕으로 금본위제를 지지했다. 그러나 경제사학자들은 금본위제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후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131]

7. 2. 국제 기구

8. 일본의 금본위제

1871년(메이지 4년)에 「신화조례」를 제정하여 새로운 화폐 단위인 원과 함께 금본위제를 확립했지만, 금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고 경제 기반이 아직 취약했던 일본에서는 표준 화폐인 금화의 유출이 계속되었다. 그해 법률을 개정하여 일시적으로 금은복본위제로 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은본위제가 되었다. 청일전쟁 후 으로부터 얻은 배상금 3800만파운드을 준비금으로 하여 1897년 화폐법을 시행하여 실질적으로 금본위제로 복귀하였다.[144] [145]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각국 정부는 금본위제를 중단하고 관리통화제도로 이행하였다. 이는 전쟁으로 증가한 대외 지불을 위해 금화의 정부 집중이 필요했고, 금 수출 금지 및 통화의 금태환 정지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황의 진전에 따라 세계 최대 외환 결제 시장이었던 런던 시티가 전쟁 피해를 입어 활동을 중단했고, 각국 간 환어음 수송이 두절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일본은 1913년 12월 말 시점에서 일본은행의 정화 준비금은 1.3억, 해외 정화는 2.46억이었는데, 해외 정화는 모두 런던에 있었고 외환 결제의 80~90%를 런던에서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전 발발 후인 1914년 8월에 어음 수송이 두절되었다(당시에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수송).

일본의 금화(구 1, 2, 5, 10, 20엔, 신 5, 10, 20엔)도 태평양 전쟁 이후 형식화되었지만, 여전히 현행 화폐였다. 1987년(昭和 62년) 제정, 1988년(昭和 63년) 4월 1일 시행된 「통화의 단위 및 화폐의 발행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같은 해 3월 31일부로 통용이 정지되어, 명실상부하게 관리통화제도로 이행하였다.[150]

참조

[1] 서적 Globalizing Capital: A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9
[2] 서적 International Finance https://www.cambrid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
[3] 서적 Globalizing Capital: A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9
[4] 웹사이트 Gold standard Facts, information, pictures Encyclopedia.com articles about Gold standard http://www.encyclope[...] 2015-12-05
[5] 잡지 What Is Left of the Gold Standard? http://www.foreignaf[...] 2015-01-28
[6] 서적 Globalizing Capital: A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9
[7] 서적 Monetary Systems and the Global Balance of Payments Adjustment in the Pre-Gold Standard Period, 1700–1870 https://www.cambrid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
[8] 서적 Globalizing Capital: A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9
[9] 서적 Globalizing Capital: A History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System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9
[10] 서적 The Great Transformation https://books.google[...] Beacon Press 1957
[11] 웹사이트 Gold Standard http://www.igmchicag[...] IGM Forum 2015-12-27
[12] 위키소스 Indian Currency and Finance
[13] 웹사이트 World's Oldest Coin - First Coins http://rg.ancients.i[...] 20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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