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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노아 라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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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위노아 라두크는 오지브웨족 아버지와 유대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의 환경 운동가, 정치 운동가, 작가이다. 1990년대부터 환경 문제와 원주민 권리 보호를 위해 활동해 왔으며, 특히 원주민 토지 반환, 재생 에너지 도입, 환경 정의 실현에 힘썼다. 1996년과 2000년에는 녹색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다코타 송유관 시위 등 주요 환경 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 원주민 문화와 환경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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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노아 라두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위노나 라듀크, 2021년
2021년 라듀크
출생일1959년 8월 18일
출생지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미국
부모베티 라듀크, 선 베어
정당녹색당
교육하버드 대학교 (문학사)
앤티오크 대학교 (문학 석사)
관련 인물
관련 인물에이미 굿먼

2. 초기 생애 및 교육

위노나 라두크는 1959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오지브웨족 아버지 빈센트 라두크(후에 선 베어로 알려짐)와 유대인계 어머니 베티 라듀크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코타어로 '첫째 딸'을 의미하는 '위노나'라는 이름이 붙었다.[3][4]

초년의 위노나 라듀크


라두크는 주로 오리건주 애슐랜드에서 성장했다.[4] 아버지를 통해 화이트 어스 네이션에 등록되었지만, 1982년까지 화이트 어스 인디언 보호구역 등 보호구역에서 살지 않았다. 대학교 졸업 후 화이트 어스에서 고등학교 교장으로 일하며 정착했다.[3]

부모는 위노나가 다섯 살 때 이혼했고, 어머니는 서던 오리건 대학교 미술 강사로 일했다.[3] 1980년대에 아버지는 뉴에이지 영적 지도자가 되어 선 베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3]

라두크는 애슐랜드 공립학교를 다니며 고등학교 토론팀에서 활동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원주민 활동가 그룹에 참여했고, 1982년 경제학 학사(농촌 경제 개발) 학위를 받았다.[3] 화이트 어스로 이주했을 때 오지브웨어를 몰라 어려움을 겪었지만, 고등학교 교장으로 일하며 석사 논문 연구를 하고 지역 문제에 참여했다. 안티오크 대학교 원격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사회 경제 개발 석사 학위를 받았다.[3]

1974년, 15세에 아메리카 인디언 운동(AIM) 여성 운동가들과 모든 붉은 나라의 여성들(WARN)을 창설하고, 국제 인디언 조약 회의(IITC) 창설에도 참여했다. 1977년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하여 체로키족 활동가 지미 더럼을 만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같은 해 IITC 대표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 참가하여 인디언 조약 문제점을 연설했다.

2. 1. 가족 배경

위노나 라두크는 1959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오지브웨족 아버지 빈센트 라두크(후에 선 베어로 알려짐)와 유대인계 어머니 베티 라듀크 사이에서 태어났다.[3] 아버지는 미네소타주 화이트 어스 보호구역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뉴욕 브롱스 출신이었다.[4]

1950년대 중반, 오지브웨족 권리 운동가였던 아버지 빈센트(1929년~1992년)는 미네소타주 "화이트 어스 인디언 보호 구역" 부족 회의 부패에 분노하여 부족의 어려운 상황을 미국 정부에 호소하기 위해 혼자 히치하이킹으로 워싱턴 D.C.로 향했다. 1867년 연방 정부와 인디언 조약을 체결했을 때 3,387㎢였던 보호구역은 100년도 채 안 되어 90% 이상의 땅을 백인에게 빼앗겼고, 축소된 영토에서의 생활은 빈곤해졌으며, 당시 부족민의 실업률은 80%를 넘었다. 빈센트는 일찍부터 권리 운동에 눈을 떴고, 15살 때 부족 회의에서 이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빈센트는 그 과정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베티 번스타인을 만났다. 두 사람은 1958년 "화이트 어스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결혼하고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빈센트는 할리우드서부극 영화 엑스트라로 일하며 낙마 스턴트의 명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년 후인 1959년에 외동딸 "베나이사예크아이"(선더버드)인 위노나가 태어났다. 아버지의 임금은 낮았고, 어머니는 미술 교사가 되기 위해 일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1964년, 부모가 이혼하고[38], 어머니 베티는 서던 오리건 대학교 미술 강사 자리를 얻어 오리건주 애슐랜드로 5살 위노나와 함께 이사했다. 베티는 재혼하여 학문적 동료와 중산층 가정을 갖게 되었다. 당시 위노나의 친구들은 "그녀는 학교보다 바느질이나 물건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조용하고 호기심 많은 소녀였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이 "예의 바르고 조용함"이라는 태도는 인디언과 유대인의 혼혈인 그녀에 대한 인종 차별에 대한 그녀 나름의 처방이기도 했다. 위노나는 지역의 주니어 및 시니어 무도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어머니 베티는 딸에게 행동주의를 가르쳤다.

2. 2. 유년 시절 및 교육 과정

위노나 라듀크는 1959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베티 라듀크와 빈센트 라듀크(후에 선 베어로 알려짐)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코타어로 "첫째 딸"을 의미하는 '위노나'라는 이름이 붙었다.[3] 아버지는 미네소타주 오지브웨족의 화이트 어스 보호구역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뉴욕 브롱스 출신의 유대인 유럽계 혈통이었다.[4]

어린 시절은 주로 오리건주 애슐랜드에서 보냈다.[4] 아버지의 혈통 덕분에 화이트 어스 네이션에 등록되었지만, 1982년까지 화이트 어스 인디언 보호구역을 포함한 어떤 보호구역에서도 살지 않았다. 대학교 졸업 후, 화이트 어스에서 고등학교 교장으로 일하며 그곳에서의 삶을 시작했다.[3]

부모의 결혼 후, 아버지 빈센트는 할리우드에서 서부 영화 조연 배우로, 어머니 베티는 학업을 이어갔다. 위노나가 다섯 살 때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는 서던 오리건 대학교에서 미술 강사로 일했다.[3] 1980년대에 빈센트는 뉴에이지 영적 지도자로 변신해 선 베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3]

애슐랜드에서 성장하며 공립학교에 다녔고, 고등학교 토론팀에서 활동했다.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원주민 활동가 그룹에 참여했으며, 1982년 경제학 학사(농촌 경제 개발) 학위를 받았다.[3] 화이트 어스로 이주했을 당시, 오지브웨어를 모르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역 고등학교 교장으로 일하면서 보호구역의 자급자족 경제에 관한 석사 논문 연구를 수행했고, 지역 문제에 관여했다. 안티오크 대학교 원격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사회 경제 개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3]

1950년대 중반, 오지브웨족 권리 운동가였던 아버지 빈센트(1929년~1992년)는 미네소타주의 "화이트 어스 인디언 보호 구역" 부족 회의 부패에 분노하여 부족의 어려운 상황을 미국 정부에 호소하기 위해 워싱턴 D.C.로 히치하이킹을 떠났다. 1867년 그의 어머니 부족인 오지브웨족의 "화이트 어스" 밴드가 연방 정부와 맺은 인디언 조약으로 3,387㎢였던 영토(보호 구역)는 100년도 채 안 되어 90% 이상의 땅을 백인에게 빼앗겼고, 축소된 영토에서의 생활은 빈곤해졌으며, 당시 부족민의 실업률은 80%를 넘었다. 연방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부족 정부는 부족을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빈센트는 15살 때 부족 회의에서 이를 격렬하게 비난하며 일찍부터 권리 운동에 눈을 떴다.

빈센트는 그 과정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베티 번스타인을 만났다. 두 사람은 1958년 "화이트 어스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결혼하고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빈센트는 할리우드서부극 영화 엑스트라로 일하며 낙마 스턴트의 명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년 후인 1959년에 외동딸 "베나이사예크아이"(선더버드)인 위노나가 태어났다. 아버지의 임금은 낮았고, 어머니는 미술 교사가 되기 위해 일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위노나는 "당시의 목표는 그저 살아남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회상한다.

1964년, 부모가 이혼하고[38], 어머니 베티는 서던 오리건 대학교 미술 강사 자리를 얻어 오리건주 경계의 애슐랜드로 5살 위노나와 함께 이사했다. 베티는 재혼하여 학문적 동료와 중산층 가정을 갖게 되었다. 당시를 아는 위노나의 친구들은 "그녀는 학교보다 바느질이나 물건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조용하고 호기심 많은 소녀였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이 "예의 바르고 조용함"이라는 태도는 인디언과 유대인의 혼혈인 그녀에 대한 인종 차별에 대한 그녀 나름의 처방이기도 했다. 위노나는 지역의 주니어 및 시니어 무도회에 초대받지 못했다. 어머니 베티는 딸에게 행동주의를 가르쳤다. 인디언 활동가로서의 정신을 키운 위노나는 당시 확대되던 인디언 권리 운동 "레드 파워"에 일찍부터 몸을 던지게 되었다.

1974년, 15살 위노나는 아메리카 인디언 운동 (AIM)의 로렐라이 데코라 민스, 마돈나 선더호크, 필리스 영, 자넷 맥클라우드 등 여성 운동가들과 함께 인디언 여성 권리 운동 단체 "모든 붉은 나라의 여성들"(WARN)의 발기인이 되었다.

같은 해 6월, 국제 인디언 조약 회의 (IITC) 창설에도 참여했다. "IITC"는 유엔 경제 사회 이사회가 비정부 기구(NGO)로 인정한 최초의 인디언 단체가 되었다.

1977년, 고등학생 시절 웅변 대회에서 팀 우승을 한 위노나는 하버드 대학교에 스카우트되어 진학했다. 여기서 위노나는 체로키족 활동가 지미 더럼을 만나 미국 인디언이 직면한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같은 해, 지미의 도움으로 위노나는 "IITC" 대표단의 한 사람으로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 참가했다. "IITC"는 "우리 민족의 이름은 아메리카 인디언이다"라고 만장일치로 결의를 표명했다. 18살의 위노나는 각국 대표 앞에서 인디언 조약의 문제점에 대해 연설하여 국제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3. 환경 운동 및 사회 운동

라두크는 하버드 재학 시절 지미 더럼의 발표를 듣고 삶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녀는 더럼을 위해 일하면서 나바호족 보호구역의 우라늄 채굴 영향을 조사했다.[5]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공동체인 화이트 어스(White Earth)로 이주하여 고등학교 교장으로 일했다. 1985년에는 원주민 여성 네트워크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모든 붉은 국가의 여성들과 함께 미국 원주민 여성의 미국에서의 강제 불임 시술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1974년, 15살의 라두크는 아메리카 인디언 운동(AIM)의 여성 운동가들과 함께 인디언 여성 권리 운동 단체 "모든 붉은 나라의 여성들"(WARN)을 만들었다. 같은 해 국제 인디언 조약 회의(IITC) 창설에도 참여했는데, IITC는 유엔 경제 사회 이사회가 비정부 기구(NGO)로 인정한 최초의 인디언 단체였다.

1977년, 라두크는 IITC 대표단의 일원으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회의에 참가했다. 18살의 라두크는 각국 대표 앞에서 인디언 조약의 문제점에 대해 연설하여 국제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1980년대 후반, 라두크는 캐나다 온타리오의 무스 팩토리에서 거대 수력 발전소 건설 계획 저지 운동에 참여했다. 그녀는 현지에서 저지 운동가인 크리족의 랜디 카파셰시토를 만나 결혼했고, 두 아이를 낳았다. 댐 건설 저지에 성공한 후, 두 사람은 이혼했다. 1988년, 라두크는 인디언 권리 관련 운동으로 리복 인권상(Reebok Human Rights Award)을 받았다.

라두크는 나바호족 보호구역에서의 우라늄 채굴,[5] 캐나다 이드로-케벡(Hydro-Québec)의 제임스 만 부지 건설, 알래스카주의 유독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등 미국, 캐나다, 북극해에 이르는 환경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항의 활동을 펼쳤다. 알래스카와 캐나다의 에스키모이누이트 여성의 모유에서 높은 수치의 PCB가 검출되었다는 라두크의 보고는, 환경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확인되었다.

그린피스 회원이기도 한 라두크는 각 주의 인디언 보호구역에 집중된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 계획에 대해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의 적극적인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3. 1. 화이트 어스 토지 회복 프로젝트 (WELRP)

1989년, 라듀크는 리복(Reebok)의 인권상을 수상한 상금으로 미네소타 주에 화이트 어스 토지 회복 프로젝트(WELRP, White Earth Land Recovery Project)를 설립했다.[3]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비원주민이 매입한 토지를 보호 구역 내에서 다시 사들이고, 아니시나베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2000년까지 이 재단은 1,200 에이커의 토지를 매입하여 종족에게 양도하기 위한 보존 신탁으로 보관했다.[3]

WELRP는 또한 토지를 재조림하고 오랫동안 전통적인 오지브웨족의 음식이었던 야생 쌀 재배를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옥수수, 잼, 버팔로 소시지 등 전통 식품과 기타 제품을 판매한다. 오지브웨어 언어 프로그램, 아메리카 들소 무리, 풍력 에너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3] 이 프로젝트는 Native Harvest라는 자체 상표를 통해 전통 음식과 공예품을 생산하고 판매한다.[6]

위노나 라두크가 조직한 "WELRP"는 연방 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2004년까지 1,000에이커(4.047㎢)의 영토를 "백색 대지 인디언 보류지"에 반환시켰다. 이어서 30,000에이커(121.4㎢)가 반환될 전망이다. 위노나의 활동 거점은 보류지의 남동 지역에 있으며, 그녀는 연간 수입(42,000달러)의 대부분을 쏟아붓고 자원봉사자 스태프와 함께 "WELRP" 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주요 활동 내용은 영토 반환 운동 외에도, 슬로 푸드 운동, 풍력 발전 계획, 청소년층에 대한 부족어 교육, 전통 문화 교육 등 다양하다.

위노나 라두크가 설립한 화이트 어스 토지 회복 프로젝트(WELRP)는 현재 170만 달러의 연간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위노나를 포함한 5명의 구성원은 이 예산을 통해 비 인디언 농가와 목장주로부터 토지를 되사들여 보호구역에 재생에너지인 풍력 발전과 태양광 발전을 도입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식생활의 부활을 부족의 부흥으로 여기고, 마코모 수확 외에도 부족 상호 야생 버팔로 협동조합(ITBC)과 제휴하여 '버팔로 목장'을 통해 버팔로 번식을 꾀하고 있다. 현재 당뇨병을 앓는 오지브와 부족 노인들에게 마코모와 버팔로 고기, 메이플 시럽 등의 전통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Native Harvest' 브랜드로 이러한 오지브와족의 전통 식재료를 대외 판매하고 있다.

위노나는 부족의 경제 발전과 자결의 방법으로 이 농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보호구역을 공동화시키는 직업 훈련 본위의 연방 정부의 보호구역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부족의 자급자족에 의한 전통 식재료 인터넷 판매를 통해 'Native Harvest' 브랜드의 마코모 매출은 2007년까지 50만달러에 달했다.

3. 2. Honor the Earth

라두크는 1993년 비원주민 포크 록 듀오인 인디고 걸스와 함께 Honor the Earth를 공동 설립했다. 이 단체는 원주민 환경 단체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자금 지원을 장려하는 전국적인 옹호 단체이다. 기후 변화, 재생 에너지, 지속 가능한 개발, 식량 시스템 및 환경 정의 문제에 대해 국내 및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다코타 접근 송유관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2]

2016년 기준으로 이 단체의 사명은 다음과 같았다.

> 원주민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지원을 창출하며, 지속 가능한 원주민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재정적, 정치적 자원을 개발하는 것이다. Honor the Earth는 음악, 예술, 미디어 및 원주민의 지혜를 사용하여 사람들이 지구에 대한 우리의 공동 의존성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도록 함으로써 이러한 자원을 개발한다.[8]

2023년 3월 30일, 미네소타주 베이커 카운티 지방 법원은 Honor the Earth와 라두크에게 2015년의 행위를 근거로 한 성희롱 및 학대 고소에 대해 전 직원에게 750000USD의 손해 배상을 지불하라고 명령했다. 라두크는 2023년 4월 5일,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며 단체에서 사임했다.[9]

위노나는 1993년에 인디언의 경제 발전과 환경 보호의 양립을 도모할 목적으로 Honor the Earth를 설립했다.[39]

3. 3. 기타 환경 운동

2009년의 라두크


위노나 라두크는 하버드 대학교 재학 시절, 인디언 보호구역의 환경 문제 연구에 참여했으며, 특히 나바호족 보호구역에서의 우라늄 채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5] 해당 보호구역에서는 우라늄 광산에서 일하는 나바호족이 방사능 피해로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랐으며, 위노나는 "우라늄 광산에는 안전한 채굴 방법이 없다"라고 주장하며 현재까지도 채굴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위노나는 나바호족 우라늄 광산 문제 외에도, 캐나다 하이드로케벡(Hydro-Québec)의 제임스 만 건설 부지, 알래스카주의 유독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등 미국, 캐나다, 북극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환경 문제를 연구하고 항의 활동을 펼쳤다. 알래스카와 캐나다의 에스키모이누이트 여성의 모유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의 PCB이 검출되었다는 위노나의 보고는, 이후 환경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사실로 확인되었다. 1988년 캐나다 라발 대학교의 에릭 드윌리 교수가 허드슨 만 연안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는, 해당 지역 여성의 모유에서 캐나다 정부 안전 기준의 6배가 넘는 PCB가 검출되기도 했다.

그린피스 회원이기도 한 위노나는 1993년, 인디언의 경제 발전과 환경 보호를 동시에 추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명예의 땅(Honor the Earth)"을 설립했다. 또한 1977년에 설립된 국제적 인디언 조직 "세븐스 제너레이션 펀드"(The Seventh Generation Fund)에도 참여하고 있다. 각 주의 인디언 보호구역에 집중된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 계획에 대해서는,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의 적극적인 도입을 부족 회의에 촉구하고 있다.

4. 정치 활동

라두크는 하버드 대학교 재학 시절 지미 더럼의 발표를 듣고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녀는 더럼을 위해 일하면서 나바호 보호구역의 우라늄 채굴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5]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공동체인 화이트 어스(White Earth)로 이주하여 고등학교 교장으로 일했다. 1985년에는 원주민 여성 네트워크 설립을 도왔고, 모든 붉은 국가의 여성들과 함께 미국 원주민 여성의 미국에서의 강제 불임 시술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이후 라두크는 애니시나베를 위한 토지 회복 투쟁에 참여했다. 1867년 미국과의 조약으로 화이트 어스 인디언 보호구역에 86만 에이커가 넘는 영토가 제공되었으나, 1889년 넬슨 법에 따라 애니시나베를 동화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부족의 공동 토지는 개별 가구에 할당되었다. 미국은 초과 토지를 잉여로 분류하여 비원주민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많은 애니시나베가 개별적으로 토지를 판매하면서 부족은 대부분의 토지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 부족은 보호 구역 내 토지의 10분의 1만 보유하게 되었다.[3]

위노나 라두크, 2018년 워싱턴 대학교 지성인의 집에서 연설


1996년과 2000년, 라두크는 랠프 네이더와 함께 녹색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16년에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부통령 표를 받은 최초의 녹색당원이자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이 되었다. 2004년, 2008년, 2012년에는 민주당 대통령 및 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

2016년 다코타 송유관 시위에 참여했고, 2020년과 2021년에는 시위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4. 1. 녹색당 활동

1996년과 2000년에 라두크는 랠프 네이더와 함께 녹색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40] 1996년 미국의 부통령 선거에서 0.71%를 득표하여 4위를 기록하였고, 2000년 미국의 부통령 선거에서는 2.74%를 득표하여 3위를 기록하였으나 낙선하였다.[41] 그녀는 어떤 부족 의회나 다른 부족 정부의 지지도 받지 않았다.

선거명직책명대수정당득표율득표수 (선거인단)결과당락
1996년 선거미국의 부통령45대미국 녹색당0.71%685,128표 (0명)4위낙선
2000년 선거미국의 부통령46대미국 녹색당2.74%2,882,955표 (0명)3위낙선



2016년, 워싱턴 출신의 무효표를 던진 로버트 사티아컴 주니어는 대통령 투표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운동가 페이스 스포티드 이글에게, 부통령 투표에서 라두크에게 투표하여, 그녀를 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 투표를 받은 최초의 녹색당원 및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으로 만들었다.[13]

라두크는 2004년,[10] 2008년,[11] 그리고 2012년[12]에 민주당 대통령 및 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

4. 2. 선거 출마

1996년 선거2000년 선거에서 라두크는 랄프 네이더와 함께 미국 녹색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13] 1996년 11월 5일 총선에서 랠프와 위노나는 일반 투표의 0.6%를 득표했다. 그녀는 어떤 부족 의회나 다른 부족 정부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선거명직책명대수정당득표율득표수 (선거인단)결과당락
1996년 선거미국의 부통령45대미국 녹색당0.71%685,128표 (0명)4위낙선
2000년 선거미국의 부통령46대미국 녹색당2.74%2,882,955표 (0명)3위낙선



2016년, 워싱턴 출신의 무효표 투표자인 로버트 사티아컴 주니어는 대통령 투표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운동가 페이스 스포티드 이글에게, 부통령 투표에서 라두크에게 투표하여, 그녀를 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 투표를 받은 최초의 녹색당원이자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으로 만들었다.[13]

4. 3. 송유관 반대 시위

2016년, 라두크는 다코타 송유관 시위에 참여하여 저항 캠프에서 활동하고 이 문제에 대해 언론에 알렸다.[14]

2019년 7월, 밀워키에서 열린 전국 오듀본 컨벤션에서 라두크는 샌드파이퍼 송유관 및 다른 송유관, 그리고 오지브웨 지역과 리치 레이크 보호구역 인근의 다른 프로젝트를 중단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발표하며 기조 연설을 했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물 보호자가 되어 권리를 위해 일어설 것을 촉구했다.[15]

2020년과 2021년, 라두크는 시위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16][17][18][19]

5. 한국과의 관계 및 관점

위노나 라두크는 한국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환경 운동가로서 그녀의 활동과 관점은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라두크는 환경 문제와 사회 정의를 결합하여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라두크는 나바호족 보호구역의 우라늄 채굴, 캐나다 이드로-케벡의 제임스 만 댐 건설, 알래스카주 유독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등 다양한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특히 알래스카와 캐나다 에스키모이누이트 여성의 모유에서 높은 수치의 PCB가 검출된 사실을 보고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또한 미국 정부의 환경 및 대외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해외 미군 철수, 군사 예산 감축,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 내 국립공원 반환 등을 주장했다. 더불어 환경 오염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헌법 개정을 지지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5. 1. 환경 정의와 사회 정의

위노나 라두크는 하버드 대학교 재학 시절 인디언 보호구역의 환경 문제 연구에 참여했으며, 특히 나바호족 보호구역에서의 우라늄 채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해당 보호구역에서는 우라늄 광산에서 일하는 나바호족 주민들이 방사능 피해로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이에 위노나는 "우라늄 광산에는 안전한 채굴 방법이 없다"며 우라늄 채굴 금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위노나는 나바호족 우라늄 광산 문제 외에도 캐나다 하이드로케벡(Hydro-Québec)의 제임스 만 댐 건설, 알래스카주의 유독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문제 등 미국, 캐나다, 북극해 전역의 환경 문제에 대한 연구와 항의 활동을 펼쳤다. 특히 알래스카와 캐나다의 에스키모이누이트 여성의 모유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의 PCB가 검출되고 있다는 위노나의 보고는 환경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사실로 확인되었다. 1988년 캐나다 라발 대학교의 에릭 드윌리 교수가 허드슨 만 연안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이 지역 여성의 모유에서 캐나다 정부 안전 기준의 6배가 넘는 PCB가 검출되기도 했다.

그린피스 회원이기도 한 위노나는 1993년 인디언의 경제 발전과 환경 보호를 함께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명예의 땅(Honor the Earth)"을 설립했다. 또한 1977년에 설립된 국제적인 인디언 조직 "세븐스 제너레이션 펀드"(The Seventh Generation Fund)에도 참여하고 있다. 위노나는 각 주의 인디언 보호구역에 집중된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 계획에 대해 태양광 발전풍력 발전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부족 회의에 제안하고 있다.

5. 2. 지속 가능한 발전

위노나 라두크는 환경 운동가로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89년, 리복 재단 보조금으로 백색 대지 국가 반환 프로젝트(WELRP)를 설립하여 인디언 토지 반환 운동을 시작했다.[39] 부족 회의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며, 전통적인 합의제 민주주의 방식과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39]

그녀는 나바호족 보호구역의 우라늄 채굴 문제, 캐나다 하이드로케벡(Hydro-Québec)의 제임스 만 부지 건설, 알래스카주 유독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 등 다양한 환경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알래스카와 캐나다의 에스키모이누이트 여성의 모유에서 높은 수치의 PCB가 검출된 것을 보고하여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1993년에는 명예의 땅(Honor the Earth)을 설립하여 인디언의 경제 발전과 환경 보호를 동시에 추구했다.[39] 또한 "세븐스 제너레이션 펀드"에 참여하여 각 주의 인디언 보호구역에 집중된 석탄 화력 발전소 계획에 대해 태양광 및 풍력 발전 도입을 촉구했다.

위노나가 설립한 흰 대지의 나라 반환 프로젝트(WELRP)는 비 인디언 농가와 목장주로부터 토지를 되사들이고, 보호구역에 재생에너지인 풍력 발전과 태양광 발전을 도입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식생활 부활을 위해 마코모 수확, 부족 상호 야생 버팔로 협동조합(ITBC)과 제휴한 버팔로 번식, 오지브와족 전통 식재료 대외 판매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농업 프로젝트를 통해 부족의 경제 발전과 자결을 추구하며, 보호구역을 공동화시키는 연방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Native Harvest' 브랜드의 마코모 매출은 2007년까지 500000USD에 달했다.

5. 3. 비판적 시각: 미국의 역할

위노나 라두크는 미국 정부에 대해 "대부분이 불법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40] 그녀는 1996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정치적 목표를 밝혔다.

  • 해외 주둔 미군 철수
  • 군사 예산 대폭 감축
  • 모든 기업 합병 일시 중단
  • 마약과의 전쟁 종식
  • 전국민 건강 관리
  •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 내 국립공원의 아메리카 원주민 반환
  • 미국 사회의 대규모 부의 재분배


또한, 위노나는 "공기, 물, 햇빛은 생명, 자유, 행복 추구에 필수적"이라며, 환경 오염으로부터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공기와 물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 개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40]

위노나는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의 보존에 관한 법률을 약화시킨 빌 클린턴 대통령을 "환경 문제의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하며[41], 시에라 클럽이 클린턴과 앨 고어를 지지하고 미국 녹색당을 경시한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6. 저술 활동

위노나 라두크는 환경 문제, 인디언 전통 문화, 정치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썼다. 그녀는 소설과 비소설을 아우르는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다.


  • 1999년, 인디언 보호 구역의 환경 오염과 이에 맞서는 인디언들의 노력을 다룬 《우리의 모든 관계: 토지와 삶을 위한 원주민들의 투쟁》을 출간했다.
  • 2000년, 오지브와족 여성을 통해 인디언의 전통 문화와 역사를 그린 소설 《마지막으로 서 있는 여성》을 발표했다.
  • 2002년, 다양한 주제에 대한 에세이와 소설을 모은 《위노나 라듀크 리더: 필수 저작 모음》을 출간했다.
  • 2005년, 《신성 회복: 이름 붙이기와 주장하기의 힘》에서 인디언 고정관념 문제와 더불어, 당뇨병 검사를 목적으로 채혈된 인디언의 피가 "인디언이 아시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는 설을 증명하는 데 사용된 "흡혈귀 사건"을 고발했다.[26]

6. 1. 주요 저서


  •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여인(Last Standing Woman)》(1997), 소설.
  • 《우리의 모든 관계: 토지와 삶을 위한 원주민들의 투쟁》(1999), 부족의 토지 소유권 회복 운동에 관한 내용.
  • 《슈가 부시》(1999)
  • 《위노나 라두크 리더: 핵심 저작 모음》(2002)
  • 《성스러운 것의 회복: 명명과 주장의 힘》(2005), 전통적인 믿음과 관습에 관한 책.
  • 《인디언 국가의 군사화》(2013)
  • 《우리의 모든 관계: 토지와 삶을 위한 원주민들의 투쟁》(2016)
  • 《물 보호자가 되기 위하여: Wiindigoo 학살자의 부상》(2020)


위노나 라두크는 자신의 저작들을 통해 녹색당에서의 활동과 랄프 네이더와의 관계, 환경 문제와 관련된 인디언의 전통 문화와 사상을 소개한다. 동시에 미국식 소비 문화가 인디언에게 미치는 폐해와 압박, 연방 정부의 무관심을 설명한다. 특히 인디언 보호 구역을 "쓰레기 처리장"으로 만드는 핵 물질 등 산업 폐기물과 같은 환경 문제, 전통 문화를 고정관념으로 왜곡하는 "인디언으로부터의 절도"라는 문화적 문제를 강하게 비판한다.

7. 수상 및 영예


  • 1994년, ''타임'' 지는 라두크를 40세 미만의 미국에서 가장 유망한 지도자 5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 1996년, 토마스 머튼 상을 수상했다.
  • 1997년, BIHA 커뮤니티 서비스 상을 받았다.
  • 1998년, 리복 인권상을 수상했다.
  • 1998년, ''미즈'' 지는 Honor the Earth에서의 활동을 기려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다.
  • 앤 뱅크로프트 여성 리더십 펠로우십 상을 수상했다.
  • 2007년, 국립 여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33]
  • 2015년, 아우크스부르크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34]
  • 2017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머세드에서 사회 정의, 외교 및 관용 분야의 앨리스 앤 클리포드 스펜들러브 상을 수상했다.[35]
  • 2020년, Verdical Group의 연례 넷 제로 컨퍼런스에서 기조 연설자로 나섰다.[36]

8.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직책명대수정당득표율득표수 (선거인단)결과당락
1996년 선거미국의 부통령45대미국 녹색당0.71%685,128표 (0명)4위낙선
2000년 선거미국의 부통령46대미국 녹색당2.74%2,882,955표 (0명)3위낙선


참조

[1] AV media Interview with Winona LaDuke https://www.democrac[...] Democracy Now! 2021-03-03
[2] 뉴스 What Would Sitting Bull Do? https://www.laprogre[...] 2016-11-17
[3] 웹사이트 Peter Ritter, "The Party Crasher" https://archive.toda[...] 2000-10-11
[4] 웹사이트 Willamette Week | "Winona Laduke" | July 19th, 2006 https://web.archive.[...]
[5] 서적 Contemporary Authors http://web.sbu.edu/f[...] Gale Group: Thomson Learning 2002
[6] 웹사이트 Ricing Time: Harvesting on the Lakes of White Earth https://www.npr.org/[...] 2004-11-12
[7] 웹사이트 The Evergreen State College graduates nearly 1,300 students https://www.theolymp[...] 2019-04-19
[8] 뉴스 About Us http://www.honoreart[...] 2017-04-15
[9] 뉴스 Honor the Earth ordered to pay $750,000 in civil suit https://www.dl-onlin[...] Forum Communications Company 2023-04-03
[10] 웹사이트 Winona LaDuke endorsement of John Kerry for president https://web.archive.[...] 2012-10-22
[11] 뉴스 LaDuke and the lessons she learned with Nader http://www.minnpost.[...] Minnesota Post 2012-10-22
[12] 웹사이트 Winona LaDuke on Presidential Politics (7:41) https://www.youtube.[...] 2012-10-22
[13] 뉴스 How Faith Spotted Eagle became the first Native American to win an electoral vote for president http://www.latimes.c[...] 2016-12-21
[14] AV media Dakota Access Pipeline Company Attacks Native American Protesters with Dogs and Pepper Spray https://www.democrac[...] Democracy Now! 2016-09-04
[15] 웹사이트 Audubon Convention 2019: Opening Address. Winona LaDuke https://www.youtube.[...] 2019-08-08
[16] 웹사이트 "They're Shoving A Pipe Down Our Throat': Inside Winona LaDuke's Fight Against Line 3" https://minnesota.cb[...] 2021-06-11
[17] 간행물 The Fight Against Minnesota's Line 3 Pipeline: Bill McKibben and Winona LaDuke in Conversation https://www.rollings[...] 2021-06-11
[18] 웹사이트 LaDuke, Line 3 opponents stage first of 'weekly' protests at Enbridge office in Park Rapids https://www.duluthne[...] 2020-12-19
[19] 웹사이트 "Not Having It": Winona LaDuke on Mass Protest by Water Protectors to Halt Line 3 Pipeline in Minnesota https://www.democrac[...] 2021-06-11
[20] 웹사이트 In These Times- The Renaissance of Tribal Hemp http://inthesetimes.[...] 2018-10-19
[21] 뉴스 Winona LaDuke announces her Hemp and Heritage Farm is coming alive - IndianCountryToday.com https://newsmaven.io[...] 2018-10-19
[22] 웹사이트 Intelligent and idealistic, Winona LaDuke turns to hemp farming, solar power to jump-start the 'next economy' https://www.startrib[...] 2020-10-17
[23] 웹사이트 Hess Scholar in Residence Winona LaDuke Says We Must Take the "Green Path" to Restore Our Environment and Economy https://www1.cuny.ed[...] 2020-10-17
[24] 웹사이트 Winona LaDuke: Consider marijuana and hemp in Indian Country https://www.indianz.[...] 2020-10-17
[25] 웹사이트 Winona LaDuke: Consider Marijuana and Hemp for Indian Country https://www.indianz.[...] 2018-10-19
[26] 웹사이트 Winona LaDuke to rebuild home destroyed by fire http://indiancountry[...] News from Indian Country 2008-11-17
[27] 웹사이트 Winona LaDuke https://web.archive.[...] 2017-01-20
[28] 웹사이트 Anthem https://www.imdb.com[...]
[29] 웹사이트 Uranium https://www.nfb.ca/f[...] 2020-01-05
[30] 웹사이트 Winona LaDuke – Women's Political Communication Archives https://web.archive.[...] 2017-01-20
[31] 웹사이트 LaDuke on ''The Colbert Report'' http://www.colbertna[...]
[32] 웹사이트 Urgent Cinema: Winona LaDuke and the Enbridge Pipeline http://blogs.walkera[...] Walker Art Center 2017-02-22
[33] 웹사이트 LaDuke, Winona https://www.womenoft[...]
[34] 웹사이트 Day Undergraduate Ceremony – Commencement https://web.archive.[...] 2018-01-05
[35] 웹사이트 Indigenous Activist Winona LaDuke Wins Spendlove Prize – UC Merced http://www.ucmerced.[...] 2018-01-05
[36] 웹사이트 Honoring Past Keynote Speakers and Trailblazer Award Winners https://netzeroconfe[...] 2023-09-29
[37] 문서 キング牧師の没後40周年を記念してテネシー州メンフィスで開催された平和会議
[38] 문서 のちにヴィンセントは1980年代中頃に「太陽の熊」という聖名を授けられ、各国を歴訪するようになり、ことにドイツで有名になった
[39] 뉴스 The Circle newspaper, Minneapolis, Minnesota 1996-03
[40] 뉴스 Indian Country Today 1996-10-14
[41] 간행물 Sierra Magazine 1996-11
[42] 문서 Winona LaDuke Biography Free Articles Base 2010-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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