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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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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승길은 1540년에 태어나 1616년에 사망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64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 등을 역임하고, 임진왜란 시기에는 구성부사, 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내며 군량 조달과 백성 구휼에 기여했다. 전란 이후 형조판서,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북인이 되었으며, 광해군 때 익사공신에 녹훈되었다. 사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숙간이다.

2. 생애

2. 1. 젊은 시절

윤승길은 1540년 10월 18일에 태어났다. 군기시첨정 윤훤(尹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윤은필(尹殷弼)이고,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증 영의정 윤홍언(尹弘彦)이다. 어머니는 보성군의 손자 장림수(長臨守) 이순민(李舜民)의 딸인 전주이씨이다. 동생은 영의정을 지낸 윤승훈(尹承勳)이다.

2. 2. 관료 생활 초반

윤승길은 1564년(명종 19)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 등 여러 청요직을 역임했다. 1575년 인순왕후가 죽자 산릉도감을 겸직하다가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동서분당 때는 형 윤승훈과 함께 동인에 가담하였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구성부사(龜城府使)로 부임하였다.

2. 3. 임진왜란 시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구성부사로서 병사 모집과 군량미 조달, 수송에 공을 세웠다. 1593년 강원도 관찰사에 올라 전란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휼하고 장정을 뽑아 기효신법으로 훈련시켜 명나라 지휘관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2. 4. 임진왜란 이후

1593년 강원도관찰사에 올라 전란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휼하고 장정을 뽑아 기효신법(紀效新法)으로 훈련시켜 명나라 지휘관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어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형조판서가 되었고 전란 종결 후 동인남인북인으로 분당되자 북인이 되었다. 1600년(선조 33) 형조판서 겸 도총관에 올랐으며, 같은 해 자신의 딸을 선조의 일곱째 서자 인성군 공(仁城君珙)과 혼인시켰다. 이후 한성부 우윤이 되었다가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겸직하고, 좌참찬을 역임하였으며 뒤에 해선군(海善君)에 봉해졌다. 1603년 자헌 대부(資憲大夫)로 승진하여 형조판서가 되고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으며, 광해군 즉위 후 선조실록의 편수관의 한사람으로 참여하였다.

2. 5. 광해군 치세 기간

1609년(광해군 1) 해선군(海善君)에 봉해졌다. 1612년 의정부좌참찬으로 재직 중 숭정(崇政)으로 승진하였다. 그해 11월 겸판의금에 임명되었다. 임해군의 옥사에 참여한 공로로 1613년 익사공신(翼社功臣)으로 녹훈되고 숭정대부에 올라 좌참찬으로 판의금부사를 겸임하였다. 그해 기로소에 입사하였다.

사위는 인성군이었으나, 왕실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선조는 윤승길에 대해 '그는 사람이 교만하고 너무 강직한 것이 병통이다(其爲人驕亢 病也)'라고 평하였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일기에 의하면 그는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동생 윤승훈(尹承勳)은 당론(黨論)을 주장하여 빈객이 많았는데 윤승길은 교제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弟承勳主黨論多賓客 而承吉一無所交)고 한다.

1616년(광해군 8) 10월 병석에 누웠다가 11월 21일 사망하였다. 그가 병사하자 조정에서는 예관과 조관을 보내 장례를 치렀다. 당시 향년 77세였다.

2. 6. 사후

윤승길은 숭정, 겸판의금에 임명되었으나, 묘비문에는 자헌대부 의정부좌참찬으로 기록되었다. 시호는 숙간(肅簡)이다. 1675년 왕자군의 장인으로 증 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추증되었다가 선무원종공로로 다시 증 의정부영의정추증되었다. 숙종1676년 백호 윤휴의 주청으로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고, 1680년 3월 윤휴가 시장을 올려 숙간(肅簡)의 시호가 내려졌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조현리 산30-1에 위치해 있다. 신도비는 병조참판을 지낸 이서우(李瑞雨)가 썼다.

3. 평가 및 논란

왕조실록에 의하면 윤승길은 숭정대부에 오른 기록이 있으나, 후에 그의 후손들은 묘비를 자헌대부 의정부좌참찬 겸 지춘추관 의금부사로 기록하였다.

3. 1. 긍정적 평가

3. 2. 부정적 평가 (비판적 시각)

윤승길은 광해군 대 익사공신에 책록되었는데, 이는 임해군 옥사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왕조실록에는 그가 숭정대부에 오른 기록이 있으나, 후손들은 묘비에 자헌대부 의정부좌참찬 겸 지춘추관 의금부사로 기록하여 논란이 있다.

3. 3. 중립적 평가

4. 가계

윤승길의 조부는 윤은필(尹殷弼)이다.[1] 아버지는 윤홍언(尹弘彦, 1503 ~ 1584)이며, 어머니는 이개(李王+豈, 1507 ~ ?)로 장림수(長臨守) 이순민(李舜民)의 딸이다.[1]

형제자매로는 형 윤승경(尹承慶, 1523 ~ 1583), 남동생 윤승훈(尹承勳, 1549 ~ 1611) 등이 있다.[1]

부인은 박예순(朴禮順, 1548 ~ ?)으로 박간(朴諫)의 딸이다.[2]

장남은 윤신(尹璶, 1568 ~ 1624)이며, 며느리는 경주 김씨로 김의(金懿)의 딸이다. 차남은 윤미(尹瑂)이다. 3남 윤부(尹璷, 1579 ~ 1637)의 처는 김신희(金信熙, 1579 ~ ?)이다.[3] 4남은 윤제(尹璾)이다.

장녀는 전주 이씨 이변(李忭, 1568 ~ ?)과 혼인하여 이광한(李光漢, 1600 ~ ?)을 양자로 들였다. 차녀는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 1588 ~ 1628)과 혼인하였다.

참조

[1] 문서 효령대군의 고손녀
[2] 문서 임영대군의 외5대손
[3] 문서 김수의 손녀이자 김경립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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