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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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는 레니 리펜슈탈이 감독한 1935년 독일 선전 영화이다.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하며, 히틀러의 등장과 나치당의 행사들을 웅장하게 묘사하여 뛰어난 영상미로 호평받았다. 그러나 나치즘을 미화했다는 비판과 함께 윤리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 등 여러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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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승리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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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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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 |
감독 | 레니 리펜슈탈 |
제작 | 레니 리펜슈탈 |
각본 | 레니 리펜슈탈 발터 르트만 에버하르트 타우베르트 |
출연 | 아돌프 히틀러 하인리히 힘러 빅토어 루체 헤르만 괴링 막스 아만 마르틴 보르만 발터 부흐 리하르트 발터 다레 오토 디트리히 제프 디트리히 한스 프랑크 요제프 괴벨스 야코프 그리밍거 루돌프 헤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콘스탄틴 히어 프란츠 호퍼 로베르트 라이 |
음악 | 헤르베르트 빈트 |
촬영 | 제프 알게이어 프란츠 바이마이어 |
편집 | 레니 리펜슈탈 (미등재) |
제작사 | Reichsparteitag-Film (제국 전당 대회 영화) |
배급사 | UFA |
개봉일 | 1935년 3월 28일 |
상영 시간 | 114분 |
국가 | 독일 |
언어 | 독일어 |
2. 제작 배경
1932년, 레니 리펜슈탈은 자신이 감독한 첫 영화 ''푸른 빛(Das blaue Licht)''을 발표했다. 이 영화에 감명을 받은 아돌프 히틀러는 1933년 그녀에게 나치의 연례 뉘른베르크 집회를 다룬 영화 제작을 의뢰했고, 이는 ''신념의 승리(Der Sieg des Glaubens)''로 이어졌다. 히틀러는 비정치적인 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예술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를 원했다.[5] [6]
''신념의 승리''는 준비 부족과 히틀러의 촬영에 대한 불안감 등 여러 기술적 문제에 직면했다. 비록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장검의 밤 사건으로 에른스트 룀이 처형되면서 나치에게는 곤혹스러운 문제가 되었다. 룀에 대한 모든 언급은 독일 역사에서 삭제되었고, ''신념의 승리''의 모든 사본도 파기 대상이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독일민주공화국 영화 보관소에서 사본이 발견될 때까지 유실 영화로 여겨졌다.[7]
1934년, 리펜슈탈은 히틀러로부터 ''신념의 승리'' 후속작 제작을 의뢰받았다. 하지만 리펜슈탈은 자신의 영화 ''깊은 땅''(1954년 개봉) 제작에 집중하고, 발터 룻만이 당 영화를 작업하게 하려 했다. 룻만은 영화의 초점을 히틀러 개인이 아닌 나치 운동의 역사로 재편하려 했다. 히틀러는 1934년 12월 6일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룻만을 프로젝트에서 제외시키고, 리펜슈탈에게 ''의지의 승리''의 단독 지휘를 맡겼다.
''의지의 승리''는 1934년 9월 4일부터 6일까지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당 제6회 전국당대회를 기록한 영화이다. 제작에는 카메라 16대, 스태프 100명 이상, 60시간 분량의 촬영 필름이 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2. 1. 제작 과정
리펜슈탈은 100명이 넘는 스태프와 30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하여 60시간이 넘는 분량의 영상을 촬영했다.[8] 그녀는 다양한 촬영 기법과 편집 기술을 활용하여 역동적이고 인상적인 영상을 만들어냈다. 히틀러의 개인 건축가인 알베르트 슈페어는 뉘른베르크의 세트를 디자인하고 행사 대부분의 조정을 담당했다. 리펜슈탈이 원하는 카메라 각도를 얻을 수 있도록 연설대 앞에 구덩이를 파고, 촬영 감독들이 군중의 이동 샷을 찍을 수 있도록 트랙을 설치했다.[11]
1934년 4월, 리펜슈탈은 히틀러로부터 ''신앙의 승리(Der Sieg des Glaubens)''의 후속 영화 제작을 의뢰받았다. 그러나 리펜슈탈은 자신의 영화 ''깊은 땅''(1954년에 개봉) 제작에 집중했고, 동료 감독 발터 룻만이 당의 영화를 작업했다. 룻만의 이상은 ''신앙의 승리''와는 상당히 달랐으며, 영화의 초점을 히틀러 자신이 아닌 나치 운동의 역사로 재편하려고 했다. 히틀러는 1934년 12월 6일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룻만을 프로젝트에서 영구적으로 제외시켰고, 리펜슈탈이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가 될 영화를 단독으로 지휘하게 되었다.
리펜슈탈은 『의지의 승리』를 약 28만 라이히스마르크(1934년 기준 약 11만 달러, 2015년 기준 약 154만 달러)의 명목 예산으로 촬영했다.[9]
나치당, 군부, 그리고 요제프 괴벨스와 같은 고위 나치들의 협조를 통해 광범위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1975년 수전 손택은 "집회는 장관인 대규모 집회일 뿐만 아니라 장관인 선전 영화로 계획되었다"고 주장했다.[10]
3. 영화의 구성
영화는 전당대회 기간 동안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며, 나치당의 이념과 히틀러의 연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실제로는 1934년 9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 동안 개최된 제6차 나치 전당대회를 3일간의 사건처럼 재구성하여 보여준다.[36]
하위 섹션에서 이미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간략하게 요약했다.
- 전당대회 전날: 아돌프 히틀러가 뉘른베르크에 도착하여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호텔로 이동하고, 밤에는 호텔 앞에서 군악대 연주가 열린다.
- 전당대회 1일차: 루돌프 헤스의 개회사로 전당대회가 시작되고, 나치당과 정부 요인들이 연설을 한다. 주요 연설자들과 연설 내용(요약)은 다음과 같다.
인물 | 직책 | 연설 내용 |
---|---|---|
아돌프 바그너 | 뮌헨-오버바이에른 대관구 지도자 | 히틀러의 성명 대독, "혁명이 오래 지속되려면 완전한 무정부 상태를 달성해야 한다." |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 당 대외정책 전국 지도자 | "열광적으로 전진하는 젊은이들이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하다." |
오토 디트리히 | 당 신문 전국 지도자 | "신문은 진실에 근거해야 한다." |
프리츠 토트 | 토목 부문 전국 지도자 | 아우토반 건설 현황 설명, "5만 2천 명이 도로 건설 공사에 종사하고 있다." |
프리츠 라인하르트|프리츠 라인하르트 (차관)de | 재무성 차관 | "산업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
리히하르트 발터 다레 | 농업정책 전국 지도자·식량장관 | "농업 종사자 보호가 산업 번영에 중요하다." |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 프랑켄 대관구 지도자·신문 「슈튀르머」 발행인 | "민족의 순결성을 중시해야 한다." |
로베르트 라이 | 독일 노동전선 전국 지도자 | "독일 노동자를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시민으로 육성해야 한다." |
한스 프랑크 | 바이에른 법무장관 | "국가사회주의의 법 체계는 국가사회주의의 기초이다." |
요제프 괴벨스 | 선전 전국 지도자·계몽선전장관·베를린 대관구 지도자 | "무력으로 권력을 얻는 것도 좋지만, 국가의 핵심을 붙잡는 것이 더 훌륭하다." |
콘스탄틴 히를 | 국가사회주의·국가노동봉사단 전국 지도자 | "독일 국민은 어떤 노동 봉사에도 대비가 되어 있다." |
- 전당대회 2일차: 리하르트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제3막 전주곡과 함께 뉘른베르크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히틀러 유겐트 집회에서 히틀러는 청소년들에게 군국주의적 용어로 연설하고, 베어마흐트의 군사 사열이 이어진다. 밤에는 히틀러가 나치 집권 1주년을 기념하며 당과 국가가 하나임을 선언한다.
- 전당대회 3일차: 돌격대(SA)와 친위대(SS) 점호, 중앙광장에서의 사열식을 통해 나치당의 군사력을 과시한다. 전당대회 폐막식에서 히틀러는 나치당의 지배와 독일 국민의 복종을 강조한다.[36][37]
3. 1. 주요 내용
영화는 1934년 9월 5일,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과 히틀러의 총리 취임을 거쳐 히틀러가 뉘른베르크를 방문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영화 초반부는 구름 위를 나는 히틀러의 비행기에서 시작하여 뉘른베르크 시내를 행진하는 군중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때 ''호르스트 베셀 리트''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된다. 뉘른베르크 공항에 도착한 히틀러는 열광적인 군중의 환영을 받으며 뉘른베르크 시내를 지나 호텔로 향한다.
둘째 날 새벽, 리하르트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제3막 전주곡(''Wach Auf!'')과 함께 뉘른베르크의 풍경이 펼쳐진다. 이어 나치 고위 관리들이 루이트폴트 아레나에 도착하고, 루돌프 헤스가 대회 시작을 알린다. 요제프 괴벨스,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한스 프랑크 등 나치 지도부 인사들의 개회사가 이어진다.
영화는 국가노동봉사단의 야외 집회로 이어지며, 히틀러는 노동 봉사의 중요성과 독일 재건에 대한 그들의 노력을 칭찬한다. 그날 밤, SA의 횃불 행진과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빅토르 루체가 군중에게 연설한다.
셋째 날, 히틀러 유겐트 집회가 열리고, 히틀러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을 단련하고 희생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장군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베어마흐트 기병대와 장갑차를 사열한다. 그날 밤, 히틀러는 횃불 아래에서 나치 집권 1주년을 기념하며 당과 국가가 하나임을 선언한다.
넷째 날, 히틀러는 하인리히 힘러와 빅토르 루체와 함께 15만 명이 넘는 SA와 SS 병력을 사열하고, 제1차 세계 대전 기념비에 헌화한다. 히틀러와 루체는 장검의 밤 사건에 대해 연설하며, 루체는 SA의 충성을 재확인하고 히틀러는 에른스트 뢰름의 죄를 사면한다. 새로운 당기는 ''피의 깃발''에 닿게 하여 봉헌되고, 뉘른베르크 프라우엔키르헤 앞에서 마지막 행진이 열린다. 히틀러는 마지막 연설에서 "모든 충성스러운 독일인은 국가사회주의자가 될 것이다. 최고의 국가사회주의자만이 당 동지가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헤스는 군중을 이끌고 히틀러에게 ''지그 하일'' 경례를 올리며 당 대회를 마무리한다. 영화는 ''호르스트 베셀 리트''를 부르는 군중과 함께 나치당 제복을 입은 남성들의 실루엣 행렬로 끝을 맺는다.
3. 1. 1. 전당대회 전날
아돌프 히틀러가 뉘른베르크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히틀러가 탄 비행기(Ju 52)는 뉘른베르크의 카이저부르크 성 상공을 통과하며, 도시의 거리를 당대회 참가자들이 행진하는 위로 비행기 그림자가 지나간다. 이때 배경음악으로 나치 당가 ''Die Fahne hoch''(깃발을 높이 掲げよ)가 연주된다.
비행기는 독일국의 국기(흑백적의 가로 삼색기)[39]가 게양된 성 로렌츠 교회 등의 상공을 지나 뉘른베르크 공항[40]에 착륙한다. 히틀러는 메르세데스-벤츠 770K 그로서를 타고 시내로 이동하며, 길가에 모인 시민들은 나치식 경례로 환호한다. 히틀러는 이들의 환호에 답하며 거위 남자 분수, 콘라트 그뤼벨 동상, 바이서 투름 등을 지난다.
히틀러는 숙소인 호텔 도이처 호프에 도착, 친위대의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호텔로 들어간다. 군중에서 „Wir wollen unseren Führer sehen“de(우리의 총통을 보고 싶다)는 외침이 터져 나오고, 히틀러는 2층 창문에 모습을 드러내 군중의 환호에 답한다. 밤에는 호텔 앞에 모인 군중 속에서 군악대가 행진곡 등을 연주한다. 연주되는 곡은 베버의 ''Lützows wilde verwegene Jagd''(뤼초의 용감한 사냥), ''Der Gott, der Eisen wachsen ließ''(철을 자라게 한 신) 등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히틀러의 권위와 대중적 지지를 보여준다.
3. 1. 2. 전당대회 1일차
루돌프 헤스가 개회사를 통해 제6차 나치 전당대회의 시작을 알리고, 먼저 사망한 파울 폰 힌덴부르크 전 대통령과 제1차 세계 대전 전몰자를 추모했다. 이어서 외국 고관들과 국방군 대표들을 환영하며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Mein Führer! Ich begrüße Sie zur 6. Reichsparteitag der NSDAP.|나의 총통 각하! 제6회 NSDAP 전당대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de
헤스는 히틀러와 굳게 악수했다.
이후 나치당과 정부 요인들이 연단에 올라 짧은 연설을 했다.
인물 | 직책 | 연설 내용 |
---|---|---|
아돌프 바그너 | 뮌헨-오버바이에른 대관구 지도자 | 히틀러의 성명을 대독하며 "혁명이 오래 지속되려면 완전한 무정부 상태를 달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 당 대외정책 전국 지도자 | "열광적으로 전진을 계속하고 있는 현대의 특별한 젊은이들이 언젠가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
오토 디트리히 | 당 신문 전국 지도자 | "신문은 진실에 근거하는지 여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라고 말했다. |
프리츠 토트 | 토목 부문 전국 지도자 | 아우토반 건설 현황을 설명하며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이미 5만 2천 명이 도로 건설 공사에 종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프리츠 라인하르트|프리츠 라인하르트 (차관)de | 재무성 차관 | "어디를 봐도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이래 산업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
리히하르트 발터 다레 | 농업정책 전국 지도자·식량장관 | "우리 산업이 번영... 하려면 농업 종사자의 보호를 계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라고 말했다. |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 프랑켄 대관구 지도자·신문 「슈튀르머」 발행인 | "민족의 순결성을 중시하지 않는 국가는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
로베르트 라이 | 독일 노동전선 전국 지도자 | "독일 노동자를...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시민으로 육성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한스 프랑크 | 바이에른 법무장관 | "국가사회주의의 법 체계는 국가사회주의의 기초이다... 동포 여러분... 여러분의 생명과 신분은 보호되고 있다고."라고 말했다. |
요제프 괴벨스 | 선전 전국 지도자·계몽선전장관·베를린 대관구 지도자 | "우리 열광의 밝은 불꽃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무력으로 권력을 얻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핵심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 더 훌륭하고 기쁜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
콘스탄틴 히를 | 국가사회주의·국가노동봉사단 전국 지도자 | "독일 국민은 어떤 노동 봉사에도 대비가 되어 있다. 총통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
3. 1. 3. 전당대회 2일차
영화는 이틀째 새벽, 리하르트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제3막 전주곡(''Wach Auf!'')과 함께 뉘른베르크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제국 당대회 개막을 준비하는 참석자들의 몽타주와 나치 고위 관리들이 루이트폴트 아레나에 도착하는 장면이 이어진다.영화는 히틀러 유겐트 집회로 시작된다. 나치 고위 인사들이 도착하고 발두르 폰 시라흐가 히틀러를 소개한다. 히틀러는 청소년들에게 군국주의적 용어로 자신을 단련하고 희생을 준비해야 한다고 연설한다.[37]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장군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들은 베어마흐트 기병대와 다양한 장갑차를 보여주는 군사 사열과 검열을 위해 모인다. 그날 밤 히틀러는 횃불을 밝히고 하급 당원들에게 또 다른 연설을 하며, 나치가 권력을 잡은 지 1년을 기념하고 당과 국가가 하나의 존재임을 선언한다.[37]
3. 1. 4. 전당대회 3일차
돌격대(SA)와 친위대(SS) 점호는 나치당의 군사력을 과시하고,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다. 중앙광장에서 열린 사열식은 대규모 군중과 화려한 행진을 통해 나치즘의 위력을 보여준다. 전당대회 폐막식에서 히틀러는 "모든 충성스러운 독일인은 국가사회주의자가 될 것이다. 최고의 국가사회주의자만이 당 동지가 될 것이다!"라고 선언하며, 나치당의 지배와 독일 국민의 복종을 강조한다.[36][37]4. 영화 기법 및 특징
리펜슈탈은 1933년 히틀러의 요청으로 나치 전당대회 영화 신앙의 승리(Der Sieg des Glaubens)를 제작했다.[5] [6] 이 영화는 기술적 문제와 에른스트 뢰름 숙청 사건으로 인해 상영이 중단되었지만, 리펜슈탈은 1934년 다시 히틀러의 의뢰를 받아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를 제작하게 되었다.[7]
영화는 1934년 9월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제6회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했다. 리펜슈탈은 16명의 촬영 감독과 30대의 카메라, 120명의 스태프를 동원하여 61시간 분량의 영상을 촬영했고, 이를 2시간으로 편집했다.[8] 제작비는 약 28만 ℛℳ(Reichsmark)였으며, 나치당과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9]
영화는 히틀러의 뉘른베르크 도착, 루이트폴트 아레나에서의 개막식, 국가노동봉사단 집회, 히틀러 유겐트 집회, SA와 SS의 행진 등 전당대회의 주요 장면들을 담고 있다. 특히, 히틀러가 15만 명의 SA와 SS 병사들 사이를 걸어가는 장면은 영화의 절정으로 꼽힌다.
일차 | 내용 |
---|---|
1일차 | 히틀러의 뉘른베르크 도착, 군중 환영, 야간 집회 |
2일차 | 루이트폴트 아레나 개막식, 국가노동봉사단 집회, SA 횃불 행진 |
3일차 | 히틀러 유겐트 집회, 베어마흐트 사열, 하급 당원 대상 연설 |
4일차 | SA와 SS 사열, 피의 깃발 봉헌, 폐막 연설 |
리펜슈탈은 당원, 군부, 요제프 괴벨스 등 고위 나치들의 협조를 받아 영화를 제작했다.[10] 알베르트 슈페어는 뉘른베르크의 세트를 디자인하고 행사 조정을 담당했으며, 리펜슈탈이 원하는 카메라 각도를 위해 연설대 앞에 구덩이를 파고 촬영 감독들이 군중의 이동 샷을 찍을 수 있도록 트랙을 설치했다.[11] 오디오 문제로 인해 주요 당 지도자들과 고위 공무원들은 스튜디오에서 연설을 재연하기도 했다.[11]
국가노동봉사단 단원들은 제플린 광장에 정렬하여 히틀러의 연설을 듣는다. 단원들은 "우리는 독일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외치고, 독일 각지에서 왔음을 밝힌다. 이들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총통, 하나의 국가"라는 나치 슬로건을 외치며, "오늘 우리는 함께 일한다" 등의 노래를 합창한다. 한 단원은 "우리는 참호 속에 서 본 적이 없지만, 망치와 도끼, 삽, 괭이, 쟁기를 든 국가의 젊은 병사다"라고 말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전장 지명이 나열되고, "여러분은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독일에서 살아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깃발이 휘날린다. 히틀러는 연설에서 "독일인이 국민 공동체에 참여하려면, 먼저 여러분의 단체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42]
밤에는 돌격대 대원들이 횃불을 들고 행진하며, 빅토르 루체 참모장이 연설한다. 대원들은 "우리의 참모장을 보고 싶다"고 외치고, 모닥불과 불꽃놀이가 이어진다.
리펜슈탈은 여성이고 나치 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 간부들에게 견제를 받았으며, 장검의 밤 사건 이후 돌격대원들의 불만도 있었다.[42] 촬영 중 방해도 있었고, 편집 과정에서도 간부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리펜슈탈은 히틀러의 지지 덕분에 자신의 의도대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4. 1. 주요 기법
레니 리펜슈탈은 이 영화에서 다양한 촬영 및 편집 기법을 사용하여 나치당 대회의 웅장함과 히틀러의 권위를 강조했다.- 클로즈업: 군중 속 인물들을 클로즈업하여 관객들이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끼도록 유도했다.[42]
- 이동 촬영: 역동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 집회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특히, 히틀러의 연설 장면에서는 반원형 레일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함으로써 지루함을 없애고 고양감을 높였다.[42]
- 항공 촬영: 뉘른베르크 도시 상공에서 촬영한 장면은 히틀러를 신격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히틀러의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뉘른베르크에 도착하는 장면은 그를 신과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42]
- 음악 활용: 리하르트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 등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여 웅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집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했다.[42]
- 몽타주: 제국 당대회 개막을 준비하는 참석자들의 모습을 몽타주 기법으로 편집하여 보여주었다.
이러한 기법들은 영화의 선전 효과를 극대화했으며, 이후 리펜슈탈의 다른 작품인 올림피아에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질서정연한 행진과 대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은 『의지의 승리』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5. 평가 및 논란
《의지의 승리》는 뛰어난 영상미와 연출 기법으로 호평을 받지만, 나치즘 선전 영화라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5. 1. 긍정적 평가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의지의 승리》는 뛰어난 영상미와 연출 기법을 보여준다. 1934년 9월 4일부터 6일까지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당(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제6회 전국당대회를 기록한 이 영화는, 카메라 16대, 스태프 100명 이상, 60시간 분량의 촬영 필름 등 당시로서는 대규모 제작 규모를 자랑했다. 특히 흑백 모노럴 유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 현장의 열기와 나치당의 위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영화 제작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5] [6][7]히틀러 유겐트가 시영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면은 영화의 주요 장면 중 하나이다.[51] 히틀러 유겐트가 연주하는 ''Hitlerjugendmarsch'' (히틀러 유겐트 행진곡)에 맞춰 히틀러와 측근, 당 간부들이 스타디움에 입장하고, ''Jugend marschiert'' (유겐트가 행진한다)로 연주가 바뀌면서 요제프 괴벨스와 루돌프 헤스 등이 경기장을 둘러보며 미소짓는 장면은 나치 지도부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히틀러 옆에는 율리우스 샤우브, 마르틴 보어만, 빌헬름 브뤼크너가 함께했다.
발두르 폰 시라흐의 연설[42]과 히틀러의 연설[42] 장면은 영화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특히 히틀러의 연설은 나치의 이념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관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장면으로, 영화의 선전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5. 2. 부정적 평가
《의지의 승리》는 나치즘의 이념을 미화하고 선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을 신격화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윤리성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42] 특히, 히틀러가 직접 감독을 제안하고, 자유로운 제작을 허락했다는 점 등은 이 영화가 정치적 선전 도구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정황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5. 2. 1. 한국의 관점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와 민주화 운동의 경험으로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강하다. 따라서 《의지의 승리》는 영화적 기법은 우수하지만, 나치즘 선전 영화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42]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는 이 영화를 나치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6. 영향
《의지의 승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선전 등 다양한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는 《의지의 승리》를 풍자한 대표적인 영화이다. 프랭크 카프라의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의지의 승리》의 장면을 사용하여 나치즘의 위험성을 폭로한다.
레니 리펜슈탈이 감독하고 1934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기록한 영화 ''의지의 승리''는 선전 영화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영화는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권력을 과시하고, 독일 국민들에게 통일된 국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제작되었다.[5] [6]
영화는 당대회의 주요 장면들을 담고 있는데, 특히 히틀러의 연설 장면이 인상적이다. 히틀러는 원고를 보면서 과장된 몸짓과 함께 열변을 토하며, 국가사회주의 이념과 독일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42]
마지막 장면에서 루돌프 헤스는 "당은 히틀러이다. 히틀러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이 히틀러인 것처럼."이라고 외치며 히틀러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강조한다. 이후 당가 「Die Fahne hoch」(깃발을 높이 게양하라)가 연주되고, 당원들의 행진 영상이 당기 속에 떠오르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6. 1. 다큐멘터리
레니 리펜슈탈은 인기 배우였고, 1932년에 첫 영화 ''푸른 빛(Das blaue Licht)''을 감독했다. 히틀러는 ''푸른 빛''에 감명받아 1933년 나치의 연례 뉘른베르크 집회 영화 제작을 의뢰했고, ''신앙의 승리(Der Sieg des Glaubens)''가 만들어졌다. 히틀러는 비정치적인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예술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를 원했지만, 동시에 선전은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5] [6]''신앙의 승리''는 준비 부족과 히틀러의 촬영에 대한 불안감 등 여러 기술적 문제에 직면했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에른스트 뢰름이 긴 칼의 밤 동안 처형되면서 뢰름에 대한 모든 언급은 독일 역사에서 삭제되었고, ''신앙의 승리''의 모든 사본이 파기되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독일민주공화국 영화 보관소에서 사본이 발견될 때까지 유실 영화로 간주되었다.[7]
1934년 4월, 리펜슈탈은 히틀러로부터 ''신앙의 승리''의 후속 영화 제작을 의뢰받았다. 그러나 리펜슈탈은 ''깊은 땅''(1954년 개봉) 제작에 집중했고, 발터 룻만이 당의 영화를 작업했다. 룻만은 영화의 초점을 히틀러 자신이 아닌 나치 운동의 역사로 재편하려고 했다. 히틀러는 1934년 12월 6일 스튜디오를 방문하여 룻만을 프로젝트에서 제외시켰고, 리펜슈탈이 ''의지의 승리(Triumph des Willens)''가 될 영화를 단독으로 지휘하게 되었다. 리펜슈탈은 자신이 ''깊은 땅''에 전념하고 룻만이 대신 작업하도록 하여 영화 제작을 피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의지의 승리』는 1934년 9월 4일부터 6일까지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당(NSDAP) 제6회 전국당대회를 기록한 영화이다. 카메라 16대, 스태프 100명 이상이 동원되었고, 촬영 필름은 60시간 분량에 달해 당시로서는 대규모 제작이었다. 영상은 흑백 모노럴 유성영화였다.
리펜슈탈은 이 영화의 감독직을 아돌프 히틀러에게 직접 제안받았다. 히틀러는 그녀의 영화 『푸른 빛』에 감명받았다고 한다.
리펜슈탈의 자서전에 따르면, “요제프 괴벨스의 질투를 사고 싶지 않았고, 히틀러가 제시한 『意志의 승리』라는 제목이 과장되어 예술성이 부족하다고 느껴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히틀러의 엄청난 열정과 제목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제작하도록 허락한다는 약속에 움직여 감독을 수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리펜슈탈은 전년에도 NSDAP 당대회 영화 『신념의 승리』를 촬영했기 때문에, 자서전의 내용이 반드시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 뉘른베르크 당대회장 루이트폴트 아레나의 광대한 부지에 폭풍단(돌격대, SA)과 친위대가 정렬하여 중앙에 길을 만들고 있다. 'Die Jugend trauert' (청년이 애도하다)의 장중한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히틀러가 친위대 전국지도자 하인리히 히믈러와 루체를 거느리고 그 길을 걷는다. 전몰자 기념관에 예배를 드리는 동안은 무음이며, 세 사람이 길을 되돌아올 때는 음악이 'Ich hatt' ein Kameraden' (나에게는 한 명의 전우가 있었다)로 바뀐다.
- 나팔이 울리고, 율리우스 묄렌도르프의 'Parademarsch Nr.1' (열병 행진곡 제1번)이 시작되면서 그동안의 엄숙한 분위기는 일변하여 강력한 행진의 시퀀스가 된다. 먼저 깃발을 든 집단이 히틀러가 서 있는 연단을 향해 나아가 좌우로 나뉘어 양쪽 계단을 오른다. 그 뒤에 깃발이나 당기, 군기를 든 대원이나 병사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 행진의 마지막에는 행진곡이 'Leibstandarten-Marsch Adolf Hitler' (라이프슈탄다르테 행진곡·아돌프 히틀러)로 바뀌고, 친위대가 전몰자 기념관 앞 계단을 내려온다. 그들 흑색 제복을 입은 집단은 좌우로 나뉜 폭풍단 사이로 끼어들어 히틀러가 서 있는 연단 가까이에 자리를 잡는다.
- 루체가 연단에 선다.[42] 「(히틀러를 향하여) 총통 각하. 우리는 지금까지 충분히 우리의 봉사와 의무를 다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당신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대원들을 향하여) 우리 동지들은 다른 것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 총통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과거부터 변함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우리 총통 아돌프 히틀러에게, 지크하일, 지크하일, 지크하일.」
- 히틀러가 연설을 시작한다.[42]
- 21발의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히틀러가 연설에서 언급한 새로운 깃발을 자신의 손을 거쳐 피묻은 깃발과 묶는 것으로 "성화"하는 당 대회의 관례적인 의식.

- 뉘른베르크 성모교회 앞 중앙 광장(아돌프 히틀러 광장)에 관람석이 설치되어 관객들로 가득 차 있다. 히틀러가 탄 차를 선두로 차량 행렬이 언덕길을 내려와 광장으로 들어온다. 정해진 위치에 정차하자 히틀러가 뒷좌석에 선다.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정렬한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히틀러를 사열 대상으로 하는 사열식이 시작된다.[58] 부대별로 바뀌는 행진곡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나치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 루체가 선두를 맡은 돌격대의 행진. 루체 뒤로 피묻은 깃발이 이어지고 그 뒤로 대열이 행진한다. 곡은 ''케니히그레츠 행진곡(Königgrätzer Marsch)''[60]
- 괴링이 선두를 맡은 돌격대의 행진. 관중 속에 한스-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에리히 레더의 모습이 보인다. 곡은 베토벤의 ''요르크 군단 행진곡(Marsch des Yorckschen Korps)''
- 7개의 갈고리 십자가 깃발을 선두로 한 돌격대의 행진. 관중 속에 브론베르크, 막스 아만, 발터 부흐의 모습이 보인다. 곡은 ''헬레네 행진곡(Helenenmarsch)''
- 모자 등에 문장[61]을 달고 레더호젠을 착용한 부대의 행진. 관중 속에 라이, 바그너, 프란츠 폰 에프의 모습이 보인다. 곡은 ''Bayerischer Defiliermarsch''(바이에른 사열 행진곡)
- 독일 항공 스포츠 연맹[62]의 행진. 히틀러에 이어 괴링에게 경례하는 것은 브루노 레어처이다. 곡은 ''Steinmetzmarsch''(슈타인메츠 행진곡)
- 가슴 앞에 목걸이(Ringkragen)를 내리고 단검을 든 돌격대 헌병대의 행진. 히틀러에게 경례하는 것은 발터 프리체이다. 곡은 ''Marsch Herzog von Braunschweig''(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행진곡)
- 헤드기어를 착용한 국가사회주의 자동차 군단의 행진.
- 슈탄달테를 든 일단의 행진. 곡은 샤를로테 폰 프로이센의 ''Geschwindmarsch des Garde-Kürassier-Regiments''(근위 흉갑 기병 연대의 속보 행진곡)
- 콘스탄틴 히를이 이끄는 국가노동봉사단(RAD)의 행진. 관중 속에 룬트슈테트, 괴벨스의 모습이 보인다. 곡은 ''Treue um Treue''(충성에는 충성으로)
- 군악대가 바뀌고 히믈러를 선두로 친위대의 행진. 관중 속에 샤우브, 빌리 리벨, 프란츠 크사베르 슈바르츠, 히틀러 차량 옆에 나란히 선 4명의 친위대원 중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모습이 보인다. 곡은 ''Leibstandartenmarsch-Adolf Hitler''(라이프슈탄달테 행진곡・아돌프 히틀러)
- 요제프 디트리히가 이끄는 라이프슈탄달테 SS 아돌프 히틀러(LSSAH)의 행진. 곡은 ''바돈빌러 행진곡(Badonviller Marsch)''
- 루이트폴트홀(Leithold Hall)의 객석에 청중이 좌우로 나뉘어 앉아 중앙에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바덴바일러 행진곡(Badener Marsch)이 흐르는 가운데, 히틀러를 선두로 당 간부들이 그 길을 걸어 입장한다. 간부들이 무대 위 좌석에 착석하자 음악이 「니벨룽겐의 노래(니벨룽겐 행진곡)」(Niebelungenmarsch)으로 바뀌고, 피로 물든 깃발을 선두로 엄청난 수의 슈탄달테(Standarte, 나치 당의 기)들이 줄지어 입장한다.
- 청중 속에는 당 및 군의 요인 외에도 히알마르 샤흐트(Hjalmar Schacht), 프란츠 젤테(Franz Seldte) 등의 모습도 보인다.
- 헤스(Rudolf Hess)의 소개를 받아 히틀러가 원고를 들고 연단에 오른다. 이 당대회의 마무리 연설은 영화 속 다른 연설과는 성격이 달라, 히틀러는 처음으로 원고를 보면서 과장된 몸짓과 함께 열변을 토한다.[42]
- 히틀러와 교체되어 헤스가 연단에 오르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만, 회장의 흥분이 절정에 달하는 가운데 자신도 감격하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그는 이렇게 외친다.
- 당가 「Die Fahne hoch」(깃발을 높이 掲げよ)의 연주가 시작되고 모두가 합창한다. 크게 비춰진 당기 속에 행진하는 당원들의 영상이 떠오른다.
6. 2. 영화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는 《의지의 승리》를 풍자한 대표적인 영화이다. 프랭크 카프라의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의지의 승리》의 장면을 사용하여 나치즘의 위험성을 폭로한다.6. 3. 선전
레니 리펜슈탈이 감독하고 1934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기록한 영화 ''의지의 승리''는 선전 영화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영화는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권력을 과시하고, 독일 국민들에게 통일된 국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제작되었다.리펜슈탈은 1932년에 영화 ''푸른 빛(Das blaue Licht)''을 감독했는데, 히틀러는 이 영화에 감명을 받아 1933년에 나치의 연례 뉘른베르크 집회에 대한 영화 제작을 의뢰했다. 이것이 ''신앙의 승리(Der Sieg des Glaubens)''였다.[5] [6]
''의지의 승리''는 1934년 9월 4일부터 6일까지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제6회 나치당(NSDAP) 전국당대회를 기록했다. 카메라 16대, 스태프 100명 이상이 동원되었고, 촬영 필름은 60시간 분량에 달하는 등 대규모 제작이었다. 영상은 흑백 모노럴 유성영화였다.
리펜슈탈은 히틀러의 제안과 자유로운 제작 허락에 따라 감독을 수락했지만, 전년도 당대회 영화 ''신념의 승리''를 촬영했기 때문에 자서전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는 당대회의 주요 장면들을 담고 있는데, 특히 히틀러의 연설 장면이 인상적이다. 히틀러는 원고를 보면서 과장된 몸짓과 함께 열변을 토하며, 국가사회주의 이념과 독일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42]
마지막 장면에서 루돌프 헤스는 "당은 히틀러이다. 히틀러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이 히틀러인 것처럼."이라고 외치며 히틀러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강조한다. 이후 당가 「Die Fahne hoch」(깃발을 높이 掲げよ)가 연주되고, 당원들의 행진 영상이 당기 속에 떠오르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의지의 승리''는 이후 많은 국가에서 선전 영화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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