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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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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간난은 1813년 한양에서 태어난 한국 천주교 신자이다. 1834년 천주교에 입교하여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던 중, 1846년 김대건 신부 체포 사건과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심문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다 그해 9월 20일 순교했다. 1925년 복자,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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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이간난 아가타
출생일1814년
사망일1846년 9월 20일
축일9월 20일
교파로마 가톨릭교회
출생지서울
사망지서울
직업순교자
시복일1925년 7월 5일
시복인교황 비오 11세
시성일1984년 5월 6일
시성인교황 요한 바오로 2세

2. 생애

이간난은 1813년 한양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1] 1834년 천주교를 접하고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머니, 오빠와 함께 세례를 받았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시댁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독실한 삶을 살았고, 교우들의 존경을 받았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김대건 신부 체포 이후 피신 생활을 하던 중 다른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혹독한 고문에도 신앙을 지켰으며, 같은 해 9월 20일 장살형과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1]

2. 1. 출생과 성장

이간난은 1813년 한양에서 이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1] 그녀는 18세에 결혼했지만, 3년 만에 남편을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왔다.[1]

2. 2. 천주교 입교

1834년에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남편과 사별하고 친정에 돌아와 있던 이간난은 재혼을 거부하고, 어머니에게 천주교 신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외할머니가 천주교 신자였으므로, 외할머니는 이간난과 그녀의 어머니, 오빠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쳐 주었다. 이후 이들은 모두 청나라 출신 사제인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이간난의 아버지는 천주교를 믿지 않았으며, 가족들이 세례를 받은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했다. 아버지는 이간난을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고향으로 보냈고, 아내와 아들은 경상도로 내려보냈다. 이간난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시댁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시댁 식구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시댁 식구들은 그녀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2. 3. 신앙 생활과 박해

1834년에 천주교를 접한 이간난은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어머니, 오빠와 함께 천주교 신앙을 배우고 청국인 사제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천주교 신앙을 강하게 반대하던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 크게 화를 내며 가족들을 흩어지게 했다. 이간난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남편을 여의고 돌아왔던 친정을 떠나 시댁이 있는 곳으로 보내졌고, 어머니와 오빠는 경상도로 보내졌다.

이간난은 시댁 식구들에게 친절하게 대했으며, 시댁 사람들은 그녀가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얼마간의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한 이간난은 다른 교우들과 함께 살면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녀는 매우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으며, 자주 단식을 하는 등 모범을 보여 교우들로부터 "거울처럼 청명하며 처럼 순수하다"는 평을 들으며 존경받았다.

1846년 5월, 조선 최초의 한국인 사제김대건 신부가 체포되면서 천주교 박해가 다시 거세졌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이간난은 포졸들의 수색을 피해 현석문이 새로 이사한 집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7월 11일, 그곳에서 현석문, 정철염, 김임이, 우술임 등 다른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관찬 기록인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들은 체포 후 두 달 넘게 옥에 갇혀 혹독한 심문고문을 당했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배교하지 않았다.

2. 4. 순교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체포되자, 이간난은 포졸들의 수색을 피해 현석문이 새로 이사간 집에 피신해 있었다. 그러나 7월 11일 현석문, 정철염, 김임이, 우술임 등 다른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관찬 기록인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들은 두 달 이상 수감되어 가혹한 심문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배교하지 않았다.

결국 1846년 9월 20일, 이간난은 여섯 명의 다른 교우들과 함께 장살형(매우 심하게 매를 맞는 형벌)을 당했다. 장살형으로 거의 죽음에 이른 상태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이간난의 나이는 33세였다.

3. 시복 및 시성

이간난 아가타는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2] 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다.[3] 이후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집전한 미사 중 거행된 103위 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참조

[1] 웹사이트 http://newsaints.fai[...]
[2] 백과사전 103위 성인 (百三位聖人) http://preview.brita[...] 2015-01-04
[3] 뉴스 교황, 화해와 평화..8월의 크리스마스되길 https://web.archive.[...] 평화방송 20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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