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호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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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승호는 1981년생으로, 대한민국 전 야구 선수이다. 군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0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신인왕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을 경험했다. SK 와이번스,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를 거치며 통산 428경기에 출전하여 75승 69패 41세이브를 기록했다. 2016년 은퇴 후 2017년부터 상무 야구단 투수코치, 2020년부터 SK 와이번스 루키팀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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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1981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선수 정보 | |
이름 | 이승호 |
영어 이름 | Lee Seung-Ho |
한자 이름 | 李承浩 |
출생일 | 1981년 9월 9일 |
출생지 | 전라북도 군산시 |
신장 | 176cm |
체중 | 82kg |
투구 | 좌투 |
타석 | 좌타 |
포지션 | 투수 (좌완, 불펜) |
선수 경력 | |
프로 입단 연도 | 2000년 |
드래프트 | 2000년 1차 지명 (SK 와이번스) |
소속 구단 | SK 와이번스 (2000년 ~ 2011년) 롯데 자이언츠 (2012년) NC 다이노스 (2013년, 2015년) SK 와이번스 (2016년) |
첫 출장 | 2000년 4월 5일 |
마지막 출장 | 2015년 7월 29일 |
등번호 | 91 |
코치 경력 | |
코치 경력 | 상무 야구단 투수코치 (2017년 ~ 2019년) SK 와이번스 루키팀 투수코치 (2020년) SSG 랜더스 루키팀 재활코치 (2021년) SSG 랜더스 2군 투수코치 (2022년) SSG 랜더스 불펜코치 (2023년) SSG 랜더스 투수코치 (2023년 ~ 현재) |
기록 | |
KBO 통산 성적 | 승-패: 75승 69패 평균 자책점: 3.94 세이브: 41 탈삼진: 976 |
수상 | |
주요 수상 | KBO 신인왕 (2000년) |
국가대표 | |
대표팀 | 대한민국 |
올림픽 | 2000 시드니 (동메달)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2009 (준우승) |
아시안 게임 | 2002 부산 (금메달) |
2. 선수 시절
2000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1차 지명을 받고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데뷔 첫 해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 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해 동메달을 땄다. 2005년 팔꿈치 수술 후 2007년 복귀하여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한국시리즈 최초 4홀드를 기록했다. 2010년에는 정대현을 대신해 마무리 투수로 기용됐다.[5]
2011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와 4년 총액 24억원에 계약하며 이적했다.[5] 2012년 11월, NC 다이노스의 특별 지명을 받아 이적했으나, 컨디션 난조와 구위 저하로 2015년 시즌 후 방출됐다.[2] 2015년 12월 9일 친정팀 SK 와이번스에 복귀했으나,[9] 2016년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다.[10]
2. 1. 아마추어 시절
군산상업고등학교에 진학 후 199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좌완 투수로 활약하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2. 2. [[SK 와이번스]] 시절 (1차)
군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0년에 쌍방울 레이더스의 1차 지명을 받은 후, 쌍방울 선수단을 인수한 팀에 입단하여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데뷔 첫 해에 신인상을 수상했다. 당시 팀은 선수협 파동으로 강병규가 훈련 거부 등 태업을 했고, 용병 콜은 5점대 후반 ERA, 김원형은 타구 부상 이후 하락세를 겪는 등 투수진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감독이었던 강병철은 그를 전천후로 기용했다.[5] 그 해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해 동메달을 땄다.2005년에 팔꿈치 수술을 받은 후 오랫동안 재활에 전념하여 2006년까지 경기에 나올 수 없었다. 2007년에는 재활을 마치고 복귀해 중간 계투진의 중심 역할을 했다.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한국시리즈 최초 4홀드를 기록했다. 2010년에는 부상으로 재활하던 정대현을 대신해 마무리 투수로 기용됐다.[5]
2011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고, 2011년 11월 22일에 롯데 자이언츠와 4년 총액 24억원(보장 금액 20억원+옵션 4억원)에 계약하며 이적했다.[5] 1999년 드래프트에서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그 해를 마지막으로 쌍방울이 경영난으로 해체되었다. 쌍방울 선수 보유권은 창단된 SK 와이번스에 양도되었고, 이승호도 SK에 입단하게 되었다.[5]
같은 해 고졸 신인임에도 선발 투수로 활약하여 10승을 거두었고, 구단 창단 첫 해 팀의 취약한 투수진을 지탱했으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및 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었다.[5] 2004년에는 SK의 좌완 에이스로 활약하며 개인 최다인 15승을 거두었다.[5]
그러나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며 수술을 받았고, 2006년부터 2007년까지 1군 등판이 없었다.[5] 2008년에 구원 투수로 복귀하여 4년 만에 승리를 기록했다. 같은 해 아시아 시리즈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는 7회부터 9회까지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에 기여했다.[5]
2009년에는 제2회 WBC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발되어 주로 좌완 원포인트로 기용되었다. 같은 해 정규 시즌부터 이름의 발음이 같은 이승호가 이적해 와서 화제가 되었다(참고로 좌완 투수 두 명은 과거에 몇 차례 선발 맞대결을 펼친 적이 있다). 같은 해 개인 최다인 68경기에 등판하여, 좌완 구원 투수의 핵심으로 활약했다.[5]
2010년에는 처음에는 마무리 투수로 20세이브를 기록했으나, 나중에 선발로 전환하여 활약했다.[5] 2011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다. 11월 12일에는 폴 코브와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했다.[5]
2. 3. [[롯데 자이언츠]] 시절
2012년 10월 11일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 등판해 3.2이닝 4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이 경기는 이적 후 포스트시즌 첫 등판이었다.[6] 같은 해 11월 22일에 롯데 자이언츠와 4년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그의 보상 선수로는 허준혁이 지명되었다.[1]2. 4. [[NC 다이노스]] 시절
2012년 11월, 2013년부터 1군에 새로 참가하는 신생 구단 NC 다이노스의 특별 지명을 받아 이적하여 불과 1년 만에 롯데를 떠났다. 이적 후 송신영과 함께 팀의 불펜진을 이끌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개막 이후 컨디션 난조로 인해 2군에 오랜 기간 머물렀고 1군으로 올라온 후에도 구위 저하로 인해 고전해 2군으로 다시 내려갔다. 2013년 5월 20일에 고창성과 함께 1군으로 다시 승격됐지만[7] 좀처럼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6월 15일 이성민과 함께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NC에서는 등판 기회가 줄어들어, 2014년에는 1군 등판이 없었다. 2015년 7월 29일 삼성전에 선발 등판해 1이닝 4실점, 1볼넷, 3피안타를 기록하고 다시 2군으로 강등된 후 더 이상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8] 2015년 시즌 후 보류 선수 명단에서 빠지며 마낙길, 박정준, 이대환과 함께 방출됐다.[2]2. 5. [[SK 와이번스]] 시절 (2차)
2015년 12월 9일에 복귀했다.[9] 2016년에는 2군에만 머물렀고, 전병두의 은퇴 경기가 있었던 10월 8일에 1군에 등록됐으나 등판하지 못했다. 2016년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다.[10]3. 야구선수 은퇴 후
4. 플레이 스타일
상당히 역동적인 투구 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에 어깨 수술을 한 후 직구의 위력이 감소했다. 매우 느린 커브, 서클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했다.
5. 국가대표 경력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동메달을 땄다.[5] 2002년 아시안 게임에 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참가하여 주로 좌완 원포인트로 기용되어 준우승에 기여했다.
대회 | 대표팀 | 성적 |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동메달 |
2002년 아시안 게임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금메달 |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준우승 |
6. 수상
- 2000년 KBO 최우수 신인상[1]
7. 연봉
8. 출신 학교
9. 통산 기록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