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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시게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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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즈미 시게치요는 1865년 아마미 제도의 도쿠노시마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1979년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령 인물로 등재되었으나, 이후 출생 기록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2010년 기록이 취소되었다. 1986년 폐렴으로 사망했으며, 장수 기록에 대한 논란과 함께 그의 생활 습관과 건강 상태, 그리고 그가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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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시게치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즈미 시게치요와 아이들
본명이즈미 시게치요
원어 이름泉 重千代
원어 이름 (로마자)Izumi Shigechiyo
출생1865년 6월 29일 (주장됨)
출생지이센, 도쿠노시마, 일본
사망1986년 2월 21일 (향년 약 120세 주장)
사망지이센, 오시마군, 일본
알려진 정보장수 주장
출생 (호적상)게이오 원년 6월 29일
거주지일본, 가고시마현
국적일본
직업농가

2. 생애

이즈미 시게치요는 1865년 8월 20일 아마미 제도 도쿠노시마(사쓰마 번 영내, 현재의 가고시마현 오시마군 이센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14] 1871년 호적에 6세로 등록되었으며,[14] 1872년 아버지가 사망하여 가독을 상속받았다.[14] 1875년 도쿠노시마 지청의 성씨 사용 허가에 따라 '이즈미' 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15]

1885년 징병 검사를 받았으나, 장남으로서 농업을 이어가기 위해 병역 면제되었다고 한다.[15] 그는 사탕수수 밭과 을 가지고 자작농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쇼와 초기 최성기에는 1800kg, 사탕수수 80톤을 수확했다고 한다.[16]

1904년에 39세에 결혼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09년오키나와로 돛단배로 신혼 여행을 떠났다[17]。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지만, 장남은 1920년에 1세 7개월에, 장녀는 1944년에 20세로 사망했다[18]1956년에 아내가 사망했고, 그 후 이즈미의 간병은 아내의 여동생이 했다[20]1978년 처제가 사망한 후에는[20] 조카의 아들 가족이 이즈미와 동거하며 그를 돌보았다.[23]

1961년부터 노령 복지 연금을, 1971년부터는 이센정의 경로 연금을 받았다.[21] 1972년 (쇼와 47년) 1월, 효고현의 고전영작의 사망으로, 남성 일본 최고령자가 되었다. 1976년 (쇼와 51년) 11월 16일, 가와모토 니와의 사망으로, 생존 일본 최고령으로 인정받았다[22]

1979년 간행된 1980년판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수 인물로 소개되었다[24][25]1980년에 지역 이센정으로부터 명예 정민의 칭호를 받았다[17]。 "이즈미 시게치요 장수의 술"을 판매했던 주류 회사를 재판에 제기했지만, 1979년 10월 15일에 화해로 종결되었다.[9][26]

1982년에는, 고향인 이센정 아사미에 전국의 뜻있는 사람들의 기부로 동상이 건설되었다.[28]1983년9월 26일, 118세 89일을 맞아, 118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 고바야시 야스의 기록을 넘어, 일본의 장수 기록을 갱신했다고 했다[25][32]。같은 해 11월에 1984년판 '기네스북'이 발매되었고, 이즈미의 얼굴 사진이 표지를 장식했다[25][33]1985년8월 20일에는 120세가 되었고, 당시 신뢰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기록으로 확인된 바로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환갑을 맞았다고 한다

1986년 (쇼와 61년) 2월 21일, 폐렴과 심부전으로 사망[24]。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직접적인 사인은 가래가 막힌 것이었다고 한다[34]법명은 "釋壽重誓". 이즈미의 사망으로 에도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사망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일본 마지막 일람。

2010년9월 14일, 기네스 세계 기록이 이즈미의 120세 기록을 취소했다[12]。하지만, 도쿠노시마에서는 그 후에도 이즈미를 흠모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33주기가 열렸다[35][36]

그는 1889년에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기 위해 24세의 나이로 징병 면제를 받았다는 증거 서류를 ''기네스 세계 기록''에서 발견했다.

이즈미는 흑설탕으로 만든 쇼추(일본의 알코올 음료로, 종종 보리 또는 로 증류)를 마셨고, 70세에 흡연을 시작했다.[3] 이즈미의 주치의는 노년기에 쇼추를 처리할 만큼 신장이 튼튼하지 않다며 쇼추를 마시지 말라고 강력히 권했지만, 이즈미는 "쇼추 없이는 삶의 즐거움이 없을 것입니다. 술을 끊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라고 말했다.[2] 그는 1970년에 사탕수수 농장에서 은퇴했다.[3]

기르던 를 죽게 한 무렵부터 60대에서 70대 중반으로 여겨지는 나이까지 부두 노동자로 일했으며, 78kg의 흑설탕 나무통을 운반했다고 한다[19]

2. 1. 출생과 초기 생애

이즈미 시게치요는 1865년 8월 20일 아마미 제도 도쿠노시마(사쓰마 번 영내, 현재의 가고시마현 오시마군 이센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14] 1871년 호적에 6세로 등록되었으며,[14] 1872년 아버지가 사망하여 가독을 상속받았다.[14] 1875년 도쿠노시마 지청의 성씨 사용 허가에 따라 '이즈미' 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15]

1885년 징병 검사를 받았으나, 장남으로서 농업을 이어가기 위해 병역을 면제받았다.[15] 그는 사탕수수 농사를 지으며 자작농으로 생계를 유지했다.[16]

2. 2. 결혼과 가족

이즈미 시게치요는 1904년에 39세의 나이로 결혼하여[17] 1남 1녀를 두었으나, 이들은 모두 이즈미보다 먼저 사망했다.[18] 1909년에는 오키나와현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17] 1956년에 아내가 사망한 후에는 처제가 이즈미를 간호했다.[20] 1978년 처제가 사망한 후에는[20] 조카의 아들 가족이 이즈미와 동거하며 그를 돌보았다.[23]

2. 3. 노년기

1961년부터 노령 복지 연금을, 1971년부터는 이센정의 경로 연금을 받았다.[21] 1972년 1월, 고전영작의 사망으로 일본 남성 최고령자가 되었다. 1976년 11월 16일, 가와모토 니와의 사망으로 일본 최고령자로 인정받았다.[22]

1978년, 이즈미를 돌보던 아내의 여동생이 사망했고,[20] 이듬해부터 조카의 아들 가족이 이즈미와 동거하며 그를 돌보았다.[23] 1979년,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령으로 등재되었으며,[24][25] 1980년에는 이센정 명예 정민 칭호를 받았다.[17] 같은 해, 이즈미의 이름을 딴 "이즈미 시게치요 장수의 술"을 판매하던 주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1979년 10월 15일 화해로 종결되었다.[9][26]

1982년, 고향인 이센정 아사미에 동상이 건립되었다.[28] 1983년 9월 26일, 고바야시 야스의 기록을 넘어 일본 장수 기록을 경신했다고 알려졌다.[25][32] 같은 해 11월, 1984년판 '기네스북' 표지에 이즈미의 얼굴 사진이 실렸다.[25][33] 1985년 8월 20일, 120세 대환갑을 맞이했다고 알려졌으나,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2. 4. 사망

이즈미 시게치요는 1986년 2월 21일 21시 15분(JST)에 폐렴으로 짧은 입원 후 사망했다.[4] 직접적인 사인은 가래가 막힌 것이었다.[34] 사망 당시 120세 185일로 알려져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 여겨졌으나,[4] 이후 연구에서 실제 나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87년 4월, 도쿄 도립 노년학 종합 연구소는 이즈미의 가족 등록 기록을 조사한 결과 사망 당시 105세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5][6] 2011년 기네스 세계 기록은 제출된 출생 증명서가 사망한 형의 것일 수 있으며, 가족이 "시게치요"라는 이름을 사자(死者)의 이름으로 재사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7] 법명은 "釋壽重誓"이다. 이즈미의 사망으로 에도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사망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2010년 9월 14일, 기네스 세계 기록은 이즈미의 120세 기록을 취소했다.[12] 하지만 도쿠노시마에서는 그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35][36] 논란의 여지가 없는 가장 나이가 많은 남성 장수 기록은 116세 54일로 사망한 일본의 기무라 지로에몬이다.[8]

3. 장수 기록 논란

이즈미는 짧은 입원 후 1986년 2월 21일 21시 15분 JST폐렴으로 사망했다.[4] 당시 그는 120세에 도달한 것으로 확인된 유일한 인물로 여겨졌지만, 이후의 연구를 통해 그의 실제 나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즈미 사망 14개월 후인 1987년 4월, 도쿄 도립 노년학 종합 연구소의 역학 부서는 이즈미의 가족 등록 기록을 조사한 결과 그가 사망했을 때 105세였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5][6] 2011년 발간된 ''기네스 세계 기록''에는 증거로 제출된 출생 증명서가 실제로는 사망한 형제의 것이었을 수 있으며, 가족이 "시게치요"라는 이름을 사자(死者)의 이름으로 재사용했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7]

2020년 9월 온타리오주 나이아가라 폭포에 있는 기네스 세계 기록 박물관이 문을 닫으면서 이즈미의 전시물과 복제품은 현재 캐나다의 개인 소장품으로 옮겨졌다.

가장 나이가 많은 남성 장수의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례는 116세 54일로 사망한 일본 출신의 기무라 지로에몬이다.[8] 잔 루이즈 칼망은 122세 164일로 여성 장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기네스북 공인을 받았기 때문에 일본 국내에서는 이즈미 시게치요(泉重千代)가 120세까지 생존한 것은 사실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1871년의 호적 조사에 기재된 생년월일이 정확하고, 또한 이 호적 조사에 기재된 인물과 1986년에 사망한 인물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의 도쿠노시마(徳之島)의 호적 신뢰성에는 의문이 있으며, 이즈미가 1865년생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전부터 여러 이견이 있었다.

1966년 (쇼와 41년), 이즈미 시게치요가 만 101세로 여겨졌을 때, 현지 가고시마 대학 의학부 조교수인 후쿠다 마사오미는 고령자 진찰을 실시하여 이즈미에게 "100세가 넘었음에도 위장은 매우 순조롭다. 이가 없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보통 밥이나 반찬을 먹고, 눈과 귀도 밝다"라는 진찰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후쿠다는 노령학의 관점에서 이즈미의 나이에 대해 의문을 품고, 1979년 (쇼와 54년) 일본노년의학회에서 이즈미의 세계 최고령 생존 기록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17]。기네스북에 의해 이즈미가 세계 최고령으로 인정된 이후, "실제로는 이즈미가 태어난 것은 더 늦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주간지 등에도 보도되었다.

『주간요미우리』의 1980년12월 7일호는 "이즈미 시게치요 씨의 115세 설에 의문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이즈미 시게치요의 호적 기록에 대해 신빙성이 얇은 근거로 이하를 지적했다[48]


  • 이즈미 시게치요의 호적에 실제 부모의 기재가 없다.
  • 호적 기록에서는 14세 이하의 양부로부터 7세의 이즈미 시게치요가 가독을 상속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때문에, "도쿠노시마에는 과거장이나 테라우케 제도의 전제가 되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년에 기록된 증거 문서가 없고, 처음 호적이 작성되었을 때 기록된 호적은 자기 신고였기에 신뢰성이 얇았던 것이 아닌가", "1865년은 요절한 형의 생년이며, 실제 이즈미는 1880년 전후에 태어났지만, 형의 생년월일이 사용되었던 것이 아닌가", "이즈미 가문의 친자였던 이즈미 시게치요가 사망한 후, 입적한 양자가 이즈미 시게치요를 칭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설이 지적되었다[34]。1872년의 임신호적에 이즈미 시게치요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즈미가 1880년 전후에 태어났다는 것은 모순이 되지만, 이 점에 대해 『주간요미우리』는 "도쿠노시마가 이기 때문에, 호적 작성이 늦어진 것이 아닌가"라고 언급했다.

『주간요미우리』는 그 후에도 1984년 12월 2일호에서는 "특종 이즈미 시게치요 씨는 104세였다! 기네스 '세계 제일'(119세) 반납으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거나, 1986년 3월 9일호에서는 "세계 제일의 장수 고(故) 이즈미 시게치요 씨의 '120세'에 의문 있다. 이즈미 시게치요는 2명 있었나?"라고 이즈미의 사망 시 보도하는 등 했다.

이처럼, 사정을 아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즈미의 120세 설은 의문시되었으며, 현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05세가 통설이 되고 있다[13]。후생노동성도 2020년 시점에서 이즈미의 120세 설을 공인하지 않고 있다[49][50]

3. 1. 초기 의혹 제기

1966년(쇼와 41년), 이즈미 시게치요가 만 101세로 여겨졌을 때, 가고시마 대학 의학부 조교수 후쿠다 마사오미는 고령자 진찰을 통해 이즈미의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후쿠다는 노령학의 관점에서 이즈미의 나이에 의문을 품었다.[17] 1979년 일본노년의학회에서 이즈미의 세계 최고령 생존 기록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발표되었다.[17]

기네스북에 의해 이즈미가 세계 최고령으로 인정된 이후, 주간지 등 언론에서도 이즈미의 실제 나이가 더 적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주간요미우리』는 1980년 12월 7일호에서 "이즈미 시게치요 씨의 115세 설에 의문이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즈미 시게치요의 호적 기록에 대한 신빙성이 얇은 근거를 지적했다.[48]

  • 이즈미 시게치요의 호적에 실제 부모의 기재가 없다.
  • 호적 기록에서는 14세 이하의 양부로부터 7세의 이즈미 시게치요가 가독을 상속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도쿠노시마에는 과거장이나 테라우케 제도의 전제가 되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년에 기록된 증거 문서가 없고, 처음 호적이 작성되었을 때 기록된 호적은 자기 신고였기에 신뢰성이 얇았던 것이 아닌가", "1865년은 요절한 형의 생년이며, 실제 이즈미는 1880년 전후에 태어났지만, 형의 생년월일이 사용되었던 것이 아닌가", "이즈미 가문의 친자였던 이즈미 시게치요가 사망한 후, 입적한 양자가 이즈미 시게치요를 칭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설이 제기되었다.[34]

『주간요미우리』는 1984년 12월 2일호, 1986년 3월 9일호 등에서도 이즈미의 나이에 대한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이처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즈미의 120세 설은 의문시되었으며, 2020년 시점에서 후생노동성도 이즈미의 120세 설을 공인하지 않고 있다.[49][50]

3. 2. 호적 기록의 문제점

메이지 시대 초기 도쿠노시마의 호적은 자기 신고에 기반하여 신뢰성이 낮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34] 이즈미 시게치요의 호적에는 몇 가지 부자연스러운 점이 지적되었다.[48]

  • 실제 부모의 기재가 없음.[48]
  • 14세 이하의 양부로부터 7세에 가독 상속.[48]
  • 1901년, 30년간 친부로 기재되었던 인물이 재판을 통해 양부로 변경.[14]
  • 백부와 이즈미의 나이 차이가 8세.[51]
  • 1897년에 사망한 백부의 사망 신고가 26년 후인 1923년에 이루어짐.[51]
  • 이즈미 시게치요는 부모의 사망 나이는 몰랐지만, 이름은 알고 있었음.[52]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1865년은 요절한 형의 생년이며, 실제 이즈미는 1880년 전후에 태어났지만, 형의 생년월일이 사용되었던 것이 아닌가", "이즈미 가문의 친자였던 이즈미 시게치요가 사망한 후, 입적한 양자가 이즈미 시게치요를 칭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설이 제기되었다.[34]

이즈미 시게치요의 출생년도 및 기록에 대한 의문은, 이즈미 시게치요가 사망한 후에도, 2010년 일본에서 발생한 고령자 소재 불명 문제때, 『아사히 신문』이 이센정에 취재하여, 재조명 되기도 하였다.[55] 이센정 담당자는 "호적에 기록이 있는 것과 본인이 주장하는 이상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며 "138년 전 이즈미의 호적 등록 경위에 대해서는 조사할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55]

3. 3. 기네스 세계 기록 취소

이즈미 시게치요는 1986년 2월 21일 21시 15분 JST폐렴으로 사망했다.[4] 당시 그는 120세에 도달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후의 연구를 통해 그의 실제 나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도쿄 도립 노년학 종합 연구소는 이즈미의 가족 등록 기록을 조사한 결과 그가 사망했을 때 105세였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5][6]

기네스 세계 기록에서는 2007년판까지 이즈미를 세계 최고령 남성으로 게재했으나[56], 2009년판에서는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는 주석을 달았다.[11] 2011년판에는 이즈미의 120세 설을 부정하는 새로운 증거가 있어, 형의 호적과 혼동되었으며 105세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7][57] 2012년판에서는 115세 252일로 사망한 크리스찬 모텐슨을 가장 오래 산 남성의 기록으로 게재하여[12], 이즈미의 기록은 취소되었다. 노년학 연구 그룹은 2009년 10월 시점에서 이즈미의 기록에는 근거가 없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태이며, 진정한 사망 연령은 105세였다고 추정했다.[58]

4. 건강과 생활 습관

이즈미 시게치요는 1977년 측정 당시 신장 151cm, 체중 46.5kg이었다. 1983년에는 148cm에 46.0kg이었다.[37] 오른쪽 눈은 1945년 나무를 패는 사고로 외상성 백내장으로 실명했고, 왼쪽 눈도 백내장으로 시력은 0.1이었다. 청력은 비교적 양호했으며, 혈압은 1977년과 1983년 측정에서 위는 150, 아래는 50이었다.[38]

1978년에는 113세라고 했을 때, 60대 남성이 숨이 차 할 정도의 좁은 산길을 10분 정도 걸어 뒷산 정상에 있는 묘에 참배하여 의사를 놀라게 했다.[39] 흡연은 하루에 3개비에서 4개비 정도 피웠지만, 몸 상태가 나빠졌을 때 주치의로부터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말을 듣고 1981년경에 끊었다.[40][41] 1935년경부터 흑설탕 소주 온수 혼합물을 50년 이상 애음했다고 하며, 의사로부터 자제하라는 말을 들어도 저녁 술자리를 거르지 않았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구경꾼들에게도 대접했다고 한다.[42]

장수 세계 제일이 된 후 언론에 보도되어 방문객이 매일같이 찾아오는 유명인이 되었다. 사전 연락 없이 자택을 방문하는 손님이라도 환영하여 로 대접하고, 그 후 가벼운 대화와 기념사진 촬영으로 끝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10] 한편,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찻잔에 담긴 차를 엎어버리는 급한 면도 가지고 있었다.[43]

면담한 이센 정(伊仙町)의 정장에게 "관공서에서 놀고 있으면 200세까지 살 거야"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고,[43]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여성의 타입을 묻자, "저는 응석받이라서, 역시 연상인가…"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44] 단, 이 일화는 웃음거리로 너무 잘 지어져서 "정말로 이즈미가 한 말인가"라고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45] 이즈미가 하는 표준어는 방문객에게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뿐이었다고 한다.[10]

열렬한 프로 레슬링 팬으로, 프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 후지나미 타츠미가 이즈미를 방문했을 때 감격했다고 한다.[46] 씨름 선수는 아사시오, 가수는 미야코 하루미의 팬이었다.[47]

== 생활 습관 ==

이즈미 시게치요는 70세에 흡연을 시작했으나, 1981년경 건강이 나빠져 의사의 권유로 금연했다.[40][41] 흑설탕으로 만든 쇼추(흑설탕 소주) 온수 혼합물을 50년 이상 즐겨 마셨으며,[42] 의사가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녁 술자리를 거르지 않았다.[2][42] 그는 "쇼추 없이는 삶의 즐거움이 없을 것입니다. 술을 끊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2]

프로 레슬링의 열렬한 팬으로, 안토니오 이노키와 후지나미 타츠미가 방문했을 때 감격했다고 한다.[46] 씨름 선수 중에서는 아사시오를, 가수 중에서는 미야코 하루미의 팬이었다.[47]

4. 1. 건강 상태

이즈미 시게치요는 1977년 측정 당시 신장 151cm, 체중 46.5kg이었다. 1983년에는 148cm에 46.0kg이었다.[37] 오른쪽 눈은 1945년 나무를 패는 사고로 외상성 백내장으로 실명했고, 왼쪽 눈도 백내장으로 시력은 0.1이었다. 청력은 비교적 양호했으며, 혈압은 1977년과 1983년 측정에서 위는 150, 아래는 50이었다.[38]

1978년에는 113세라고 했을 때, 60대 남성이 숨이 차 할 정도의 좁은 산길을 10분 정도 걸어 뒷산 정상에 있는 묘에 참배하여 의사를 놀라게 했다.[39] 흡연은 하루에 3개비에서 4개비 정도 피웠지만, 몸 상태가 나빠졌을 때 주치의로부터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말을 듣고 1981년경에 끊었다.[40][41] 1935년경부터 흑설탕 소주 온수 혼합물을 50년 이상 애음했다고 하며, 의사로부터 자제하라는 말을 들어도 저녁 술자리를 거르지 않았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구경꾼들에게도 대접했다고 한다.[42]

장수 세계 제일이 된 후 언론에 보도되어 방문객이 매일같이 찾아오는 유명인이 되었다. 사전 연락 없이 자택을 방문하는 손님이라도 환영하여 로 대접하고, 그 후 가벼운 대화와 기념사진 촬영으로 끝내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10] 한편,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찻잔에 담긴 차를 엎어버리는 급한 면도 가지고 있었다.[43]

면담한 이센 정(伊仙町)의 정장에게 "관공서에서 놀고 있으면 200세까지 살 거야"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고,[43]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여성의 타입을 묻자, "저는 응석받이라서, 역시 연상인가…"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44] 단, 이 일화는 웃음거리로 너무 잘 지어져서 "정말로 이즈미가 한 말인가"라고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45] 이즈미가 하는 표준어는 방문객에게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뿐이었다고 한다.[10]

열렬한 프로 레슬링 팬으로, 프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 후지나미 타츠미가 이즈미를 방문했을 때 감격했다고 한다.[46] 씨름 선수는 아사시오, 가수는 미야코 하루미의 팬이었다.[47]

4. 2. 생활 습관

이즈미 시게치요는 70세에 흡연을 시작했으나, 1981년경 건강이 나빠져 의사의 권유로 금연했다.[40][41] 흑설탕으로 만든 쇼추(흑설탕 소주) 온수 혼합물을 50년 이상 즐겨 마셨으며,[42] 의사가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녁 술자리를 거르지 않았다.[2][42] 그는 "쇼추 없이는 삶의 즐거움이 없을 것입니다. 술을 끊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2]

프로 레슬링의 열렬한 팬으로, 안토니오 이노키와 후지나미 타츠미가 방문했을 때 감격했다고 한다.[46] 씨름 선수 중에서는 아사시오를, 가수 중에서는 미야코 하루미의 팬이었다.[47]

5. 한국과의 관계 및 영향

5. 1. 언론 보도와 대중의 관심

5. 2. 장수 연구에 미친 영향

5. 3. 비판적 시각

5. 4. 도쿠노시마와 33주기

6. 같이 보기

참조

[1] 서적 Guinness World Records https://books.google[...] Bantam Books 2020-02-20
[2] 웹사이트 Secrets of the oldest man in the world https://web.archive.[...] The Moscow News 2007-01-01
[3] 서적 The Guinness Book of Records https://books.google[...] Bantam Books 2020-02-20
[4] 서적 The Guinness Book of Records https://books.google[...] Guinness Records 2020-02-20
[5] 뉴스 JAPANESE EXPERT DEBUNKS IDEA OF 'VILLAGE OF 100-YEAR-OLDS' Asahi News Service 1987-04-06
[6] 웹사이트 The Shigechiyo Izumi Case http://supercentenar[...] Supercentenarian.com 2011-08-20
[7] 웹사이트 Men Supercentenarian Photos File No. 1 of 3 for the years 2001-2008 https://web.archive.[...] Genealogy Research Group 2020-02-20
[8] 뉴스 Oldest man in history dies at age 116 http://www.smh.com.a[...] 2013-06-12
[9] 문서 「世界一長寿で徳之島PR 泉重千代」『徳之島先駆者の記録』高岡善成監修、松田清編、徳之島の先人を偲ぶ会、1999年 http://www.sokuhou.c[...]
[10] 문서 『ザ・長寿 泉重千代 健康・長寿のマルチガイド』大同、1985年、pp.14-15
[11] 서적 クレイグ・グレンディ編『ギネス世界記録2009』 ゴマブックス 2008
[12] 서적 クレイグ・グレンディ 編『ギネス世界記録2012』 角川マガジンズ 2012-03-27
[13] 간행물 人類の寿命伸長:過去・現在・未来 https://www.ipss.go.[...] 人口問題研究所 2010
[14]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15] 문서 『ザ・長寿 泉重千代 健康・長寿のマルチガイド』大同、1985年、p.17
[16]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17] 웹사이트 泉 重千代:健康長寿ミュージアム http://www.pdfworld.[...]
[18]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19]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20]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21]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22]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23] 서적 家族が明かす 泉重千代長寿の秘訣 生命の灯限りなく コア 1984
[24] 뉴스 中日新聞 1986-02-22
[25] 뉴스 泉さん"長寿日本記録" 1983-09-26
[26]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27] 문서 『ザ・長寿 泉重千代 健康・長寿のマルチガイド』大同、1985年、p.73
[28] 서적 家族が明かす 泉重千代長寿の秘訣 生命の灯限りなく コア 1984
[29] 서적 家族が明かす 泉重千代長寿の秘訣 生命の灯限りなく コア 1984
[30] 문서 『ザ・長寿 泉重千代 健康・長寿のマルチガイド』大同、1985年、pp.8-9
[31]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32] 서적 昭和二万日の全記録 講談社 1993
[33] 웹사이트 Guinness Book of World Records 1984 http://www.amazon.co[...]
[34] 서적 人間臨終図巻 下巻 徳間書店 1987
[35] 뉴스 泉重千代翁三十三回忌で催し https://www.nankainn[...] 南海日日新聞社 2022-05-15
[36] 웹사이트 泉重千代翁三十三回忌祭に参列 http://satomi-ryuji.[...] 里見りゅうじ事務所 2018-05-06
[37]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38]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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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서적 ザ・長寿 泉重千代 健康・長寿のマルチガイド 大同 1985
[41] 서적 家族が明かす 泉重千代長寿の秘訣 生命の灯限りなく コア 1984
[42] 서적 家族が明かす 泉重千代長寿の秘訣 生命の灯限りなく コア 1984
[43] 서적 ザ・長寿 泉重千代 健康・長寿のマルチガイド 大同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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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서적 芸能界一発屋外伝 彩流社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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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뉴스 本誌が伝えた重大事件 長寿世界記録に疑義 読売ウイークリー 2008-12-14
[49] 뉴스 田中カ子さんが国内最高齢記録に並ぶ 117歳260日、福岡市在住 https://www.nishinip[...] 西日本新聞社 2020-09-18
[50] 뉴스 福岡市の田中さんが国内最高齢更新 117歳261日 https://www.sankei.c[...] 産業経済新聞社 2020-09-18
[51]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52]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53] 서적 ザ・長寿 泉重千代 健康・長寿のマルチガイド 大同 1985
[54] 서적 泉重千代物語 不老長寿学の提言 パンリサーチインスティテュート 1985
[55] 웹사이트 江戸時代生まれ、200歳…戸籍上で生存、なぜ続く? http://www.asahi.com[...] 2010-08-29
[56] 서적 ギネス世界記録2007 ポプラ社 2006
[57] 서적 ギネス世界記録2011 角川マーケティング 2010
[58] 웹사이트 False And Exaggerated Claims (as of October 27, 2009) https://grg.org/adam[...] ジェロントロジー・リサーチ・グループ
[59] 서적 Guinness World Records https://books.google[...] Bantam Books 201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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