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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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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진영은 1980년 출생의 대한민국 야구 선수로, 군산상고 시절 투수와 타자로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하여 외야수로 전향한 후,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KT 위즈를 거치며 프로 선수로 활동했다. 2004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국제적인 활약을 펼쳤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에 기여했다. 2018년 은퇴 후, 2020년부터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의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2024년부터 삼성 라이온즈 코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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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1980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3년의 이진영
2013년의 이진영
이름이진영
한자李晋暎
로마자 표기I Jinnyeong
일본어 표기李 晋暎
본명이진영
영어 표기Lee Jin-Young
출생일1980년 6월 15일
출생지전라북도 군산시
신장185
체중90
포지션우익수, 1루수
투구
타석
선수 경력
프로 입단 년도1998년
드래프트 순위1999년 1차 지명 (쌍방울 레이더스)
첫 출장1999년 5월 10일
최종 출장2018년 10월 13일
선수 경력쌍방울 레이더스 (1999년)
SK 와이번스 (2000년 ~ 2008년)
LG 트윈스 (2009년 ~ 2015년)
KT 위즈 (2016년 ~ 2018년)
지도자 경력
감독/코치 경력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9년)
SK 와이번스/SSG 랜더스 (2020년 ~ 2023년)
삼성 라이온즈 (2024년 ~ 현재)
수상
수상 내역2004년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국가대표 경력
대표팀대한민국
올림픽2008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6년, 2009년, 2013년
아시안 게임2006년
메달
메달 내역}}











기록
통산 타율0.302
통산 홈런132
통산 타점616

2. 선수 경력

군산상고 시절 140km/h대 중후반의 직구를 던지는 좌완 파워 피처이자 고교 최고의 타자로 평가받았다. 1997년에는 1997 세계 주니어 야구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했다.[2]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팀이 SK 와이번스로 바뀐 후에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2007년2008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6년 WBC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8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LG 트윈스로 이적했으며, 2016년에는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T 위즈로 이적했다. 2018년 10월 19일 은퇴했다.[8]

2. 1. 아마추어 시절

군산상고 시절 140km/h대 중후반의 직구를 던지는 좌완 파워 피처였다.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군산상업고등학교에 다니던 이진영은 고교 최고의 타자로 여겨졌으며, 1990년대 중반의 구속을 기록하는 좌완 강속구 투수이자 선발 투수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7년에는 캐나다 뉴브런즈윅주 멍크턴에서 열린 1997 세계 주니어 야구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5위를 기록했다.[2]

2. 2. 프로 선수 시절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팀이 SK 와이번스로 바뀐 후에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2007년과 2008년 팀의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6년 WBC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뛰어난 수비와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면모를 보여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2006년 WBC 1차 리그 일본전에서 니시오카 쓰요시의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고, 2차 리그 일본전에서 이와무라 아키노리를 홈에서 잡아낸 장면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치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아시아 시리즈에서 중일과의 경기 관련 발언은 그의 승부욕을 보여주는 일화로 회자된다.

2008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LG 트윈스로 이적했으며, 2016년에는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T 위즈로 이적했다. 2018년 10월 19일 은퇴할 때까지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8]

2. 2. 1.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1999년에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에 투수로 입단했으나 외야수로 전향했다.[4] 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팀이 경영난으로 인해 지명한 선수들 중 대학 진학자들을 제외하고 고졸 선수들 중에서 그와만 계약했기 때문에, 그는 쌍방울 레이더스에 마지막으로 입단한 신인 선수였다.[4] 입단 첫 해에는 뚜렷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1999년 시즌 후 모기업의 재정 악화로 팀이 해체됐고, 선수단이 SK 그룹에 인계돼 2000년부터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활동했다.

2. 2. 2. SK 와이번스 시절

1999년 KBO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된 후, 쌍방울 레이더스가 SK 와이번스로 개명되면서 SK 와이번스 소속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1999년 5월 10일 군산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를 통해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1]

2000년 시즌에는 SK 와이번스의 주전 우익수로 자리매김하여 105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타율은 0.245로 다소 낮았고, 도루는 2개에 그쳤다.[1]

2001년에는 타율 0.280, 90안타, 7홈런, 16타점, 9도루를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1]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시즌 연속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였고, 특히 2004년에는 첫 KBO 리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1]

뛰어난 타격 능력과 더불어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우익수로서 뛰어난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매 시즌 많은 외야 도움을 기록했으며, 2006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인상적인 호수비와 정확한 송구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1]

2007년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40경기 이상 결장했지만, 220타석에서 타율 0.350, 77안타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1]

2008년에도 부상으로 30경기를 결장했지만, 324타석에서 타율 0.315, 102안타, 8홈런, 53타점, 그리고 12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1]

2006년 제1회 WBC 1차 리그 일본과의 경기에서 4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니시오카 쓰요시의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2차 리그 일본전에서도 2회말 사토자키 토모야의 안타 때 홈으로 쇄도하던 이와무라 아키노리를 정확한 송구로 잡아내는 등 뛰어난 수비력을 선보이며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1]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주로 백업 외야수 및 대타로 기용되었지만,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1대 2로 뒤진 7회말 2사 1, 2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터뜨리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1]

정규 시즌에서는 부상과 다른 선수들의 활약으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SK 와이번스는 이진영의 보상 선수로 이승호를 지명했다.[1]

2. 2. 3. LG 트윈스 시절

2008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고, 2008년 11월 20일 정성훈과 함께 연봉 3.6억의 조건으로 1년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2012년 시즌 후 다시 4년간 FA 계약을 맺고 잔류했다.[5] 우익수 수비를 많이 하지만 1루 수비에도 일가견이 있어 가끔 1루수로도 출장했다. 2014년 시즌부터 팀의 주장으로 선임됐다. 3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2009년 제2회 WBC 한국 대표팀으로 9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대만과의 경기에서는 이진창으로부터 만루 홈런을 쏘아 올렸고, 2차 라운드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다르빗슈 유로부터 선제 적시타를 치는 등 활약했다. 이 경기 종료 후 팀은 준결승 진출을 확정 지었고, 봉중근과 함께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 대회 전체 타율은 .250으로 저조했지만, 타점은 김태균에 이어 7타점을 기록하며 이 대회에서도 승부처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같은 해, 새로운 팀 LG에서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며 3년 만에 100경기 이상 출전, 타석 기준에도 도달했고, 두 자릿수 홈런도 기록했다. 2010년 이후에도 LG에서 주전 외야수로 활약을 이어갔다. 2014년2015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았다.

2. 2. 4. kt 위즈 시절

2015년 11월 27일, 전력 균형을 목적으로 한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T 위즈에 지명되어 이적했다.[6] 2016년 시즌 후 FA를 선언했고, 2년 15억에 잔류했다.[7] 2017년 6월 16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10번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2018년 10월 19일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 경험이 있는 프로야구 선수는 모두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다.[2]

3. 지도자 경력

2019년 일본 프로 야구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1][3] 2020년부터 SK 와이번스의 타격코치로 부임하며 12년만에 지도자로서 SK 와이번스에 복귀했다. 2021년 SK 와이번스SSG 랜더스로 구단명을 변경한 후에도 2023년까지 코치직을 수행했다. 2024년부터는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를 맡게 된다.

4. 국제 대회 경력

이진영은 1998년 아시아 주니어 야구 선수권 대회, 2002년 인터컨티넨탈컵,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6년 아시안 게임, 2008년 하계 올림픽,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50, 7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대만과의 경기에서는 만루 홈런,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2타점 적시타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4. 1.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제1회 WBC 1차 리그 일본과의 경기에서 니시오카 쓰요시가 친 우익선상 타구를 멋진 다이빙 캐치로 잡아냈다. 2차 리그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사토자키 토모야의 우전 안타 때 홈으로 쇄도하던 2루 주자 이와무라 아키노리를 잡아내며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9]

2006년 제1회 WBC 한국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제1회 WBC에서 뛰어난 수비로 한국 야구 팬들 사이에서 "국민 우익수"(국민 우익수한국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6년 WBC 이후 인터뷰에서 이진영은 이치로에 대해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이치로처럼 인격에 문제가 있는 선수는 프로라고 할 수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라고 해서 퍼포먼스가 안정적이었던 것도 아니고, 들었던 것만큼 무서운 선수는 아니었다. 이치로는 이종범이나 이병규와 같은 수준이었다"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2.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베이징 올림픽 야구 한국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라이트 자리를 이용규에게 내주고 주로 백업 외야수 및 대타로 활용되었다.[1]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1대 2로 뒤진 7회말 2사 1, 2루 상황에서 대타로 출전,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1, 2루 사이를 가르는 동점타를 터뜨렸다.[1] 이 한 방은 8회 이승엽의 역전 2점 홈런, 강민호의 쐐기타로 이어지는 계기를 만들었고, 큰 무대에서의 승부처 해결 능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1]

4. 3.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이진영은 9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타율 0.250, 7타점을 기록했다. 대만과의 첫 경기에서 1회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유망주 리 친창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쳐서 9-0 승리를 이끌었다. 2라운드 일본과의 1조 승자전에서는 1회초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2타점 적시타를 쳐 4-1로 승리하는데 기여했고, 이 경기의 결승타를 기록했다.[10] 이 경기 종료 후, 이진영은 봉중근과 함께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

5. 평가 및 논란

이진영은 뛰어난 타격과 수비 능력, 그리고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수비는 그에게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안겨주었다.[1][9] 그러나 2006년 WBC 이후 이치로에 대한 비판적인 인터뷰 내용은 논란을 야기했다.[1]

5. 1. 뛰어난 타격과 수비

군산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진영은 1999년 KBO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쌍방울 레이더스(이후 1999년 시즌 후 SK 와이번스로 개명)에 지명되었다. 1999년 5월 10일 군산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65경기에 출전하여, 1999년 신인 시즌을 타율 0.258, 4홈런, 13타점으로 마무리했다.[1]

다음 시즌, SK 와이번스우익수 주전으로 자리매김하여 105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율은 0.245로 떨어졌고, 도루는 커리어 최저인 2개에 그쳤다.[1]

2001년, 2년차 부진을 극복하고 타율 0.280, 90안타, 7홈런, 16타점, 9도루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1]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시즌 연속 타율 0.300 이상을 기록했고, 2004년에는 첫 KBO 리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1]

타격 정확도와 함께, 전직 강속구 투수 유망주였던 강한 왼손을 가진 이진영은 우익수에서 뛰어난 수비 능력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매 시즌 많은 외야 도움을 기록했다. 2006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그의 수비 능력은 뛰어난 호수비와 외야 도움을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1]

2007년 KBO 시즌에는 부상으로 40경기 이상을 결장했지만, 220타석에서 타율 0.350, 77안타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1]

2008년,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라 시즌 동안 30경기를 결장했지만, 324타석에서 타율 0.315(0.300 이상), 102안타, 8홈런, 53타점을 기록했고, 커리어 하이인 12개의 도루를 기록했다.[1]

현역 통산 타율 3할을 넘는, 한국 최고의 교타자였다. 삼진이 적었고, 장타력과 승부 강함을 겸비했다.[1]

원래 투수였던 덕분에 강견을 가지고 있었고, 타구 처리 능력이 뛰어나 한국에서도 최고의 외야 수비를 자랑했다.[1]

5. 2. 국제 대회 활약

이진영은 1998년 아시아 주니어 야구 선수권 대회, 2002년 인터컨티넨탈컵,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6년 아시안 게임, 2008년 하계 올림픽,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었다. 특히 2006년부터 2013년까지 국가대표로 여러 번 선발될 정도로 국제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9]

2006년 제1회 WBC에서는 뛰어난 수비로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1차 리그 일본과의 경기에서 니시오카 쓰요시의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냈고, 2차 리그 일본전에서는 사토자키 토모야의 안타 때 홈으로 쇄도하던 이와무라 아키노리를 정확한 송구로 잡아냈다.[9]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주로 백업으로 출전했지만,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쳐내며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9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타율 0.250, 7타점을 기록했다. 차이니즈 타이페이와의 첫 경기에서 만루 홈런을 쳐 9-0 승리를 이끌었고, 2라운드 일본전에서는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2타점 적시타를 쳐 4-1 승리에 기여하며 대한민국의 준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5. 3. 이치로 비판 논란 (2006년)

2006년 제1회 WBC 이후 인터뷰에서 이치로에 대해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이치로처럼 인격에 문제가 있는 선수는 프로라고 할 수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라고 해서 퍼포먼스가 안정적이었던 것도 아니고, 들었던 것만큼 무서운 선수는 아니었다. 이치로는 이종범이나 이병규와 같은 수준이었다"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6. 기타

이진영은 국민 우익수(혹은 국민적 우익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2루수 앞 땅볼을 많이 쳐서 이땅영, 이땅 선생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관계이름
아버지이경섭
어머니김인화
동생이진우
배우자박선하 (2008년 ~ 현재)



응원가는 LG 트윈스 시절과 kt 위즈 시절 각각 다른 곡을 사용했다. LG 트윈스 시절 초기에는 이병규의 응원가를 사용했고, 이후에는 "위풍당당"을 원곡으로 하는 응원가를 사용했으며, 이 응원가는 이형종에게 이어졌다. KT 위즈 시절에는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오프닝을 원곡으로 하는 응원가를 사용했다.

6. 1. 별명

국민 우익수(혹은 국민적 우익수)라고 불린다. 2루수 앞 땅볼을 많이 쳐 이땅영, 이땅 선생으로 불린다.

6. 2. 가족 관계

관계이름
아버지이경섭
어머니김인화
동생이진우
배우자박선하 (2008년 ~ 현재)


6. 3. 응원가



LG 시절 초기 응원가는 이병규의 것을 사용했다. 후기 응원가는 원곡이 "위풍당당"이며, 팀을 떠난 후에는 이형종에게 이어졌다. KT 시절 응원가는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오프닝이 원곡이었다.

7. 수상 내역

연도내용
1997년제17회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 도루왕
1998년제3회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 베스트 9
2003년올스타전 출전, 플레이오프 MVP, 골든 포토상
2005년7월 MVP (타자 부문)
2006년올스타전 출전, 사랑의 골든 글러브, 제1회 WBC 동메달, 제15회 도하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 동메달
2008년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제2회 WBC 국가대표 준우승


8. 통산 기록

연도팀명타율경기타수득점안타2루타3루타홈런루타타점도루도실볼넷사구삼진병살실책
1999쌍방울0.2586519014495046613541704032
2000SK0.2471052923472164711733212116433
20010.2801203214990161712931953506454
20020.30812841973129228132064011124255774
20030.3281284818115829617250701096247667
20040.342117404741381911520463866654991
20050.291122453761321912021374855536073
20060.273118428541171301116341344125282
20070.350802204077103711442602222021
20080.31595324531022008146531263132643
2009LG0.3001203805011418114176695240130192
20100.331104378561252807174501043214075
20110.276973234389181211537322622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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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891032632876261211031001713430
20180.3181102834090171311839212503530
통산20시즌0.305216069769792125367331693065979112777453990614242


참조

[1] 웹사이트 研修コーチに関して https://www.rakutene[...] 2019-04-05
[2] 트위터 室井昌也Twitter https://twitter.com/[...]
[3] 웹사이트 https://www.rakut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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