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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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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한이는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1997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16년 연속 100안타 이상 기록을 세우는 등 2019년 은퇴할 때까지 KBO 리그 통산 안타 3위, 득점 4위에 올랐다. 2013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으며, 2019년 음주운전으로 인해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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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박한이
한자朴漢伊
로마자 표기Park Han-yi
출생일1979년 1월 28일
출생지부산광역시
포지션외야수
투구
타석
선수 경력
소속 구단삼성 라이온즈 (2001년~2019년)
데뷔 리그KBO 리그
데뷔일2001년 4월 5일
데뷔팀삼성 라이온즈
최종 리그KBO 리그
최종일2019년 5월 26일
최종팀삼성 라이온즈
등번호74
기록
타율.294
홈런146
타점906
안타2,174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7회 (2002년, 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한국시리즈 MVP2013년
KBO 골든글러브2회
최다 안타2003년
최다 득점2006년
국가대표 경력
아시안 게임1998 방콕 (야구 금메달)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2003년 삿포로 (동메달)
야구 월드컵1998년 이탈리아
지도자 경력
코치삼성 라이온즈 육성군 야수코치 (2021년)
코치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22년)
코치삼성 라이온즈 타격코치 (2023년)
코치삼성 라이온즈 잔류군 야수코치 (2024년~)
기타 정보
계약금3억원
학교부산고등학교
동국대학교

2. 선수 경력

부산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96년 삼성 라이온즈에 2차 6순위로 지명되었으나 동국대학교로 진학했다. 대학 시절인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박찬호 등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하고 병역 특례를 받았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첫 시즌부터 130경기에 출전하며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으며, 이후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결정적인 활약으로 시리즈 MVP에 선정되어 팀의 3연패에 기여했다.

KBO 리그에서 여러 기록을 남겼는데, 2016년 9월 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역대 9번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고, 양준혁과 함께 역대 최장 기록인 16년 연속(2001년~2016년) 시즌 100안타 이상을 기록했다. 또한 2019년 3월 2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만 40세 2개월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만루 홈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5월 27일, 음주운전 접촉 사고를 일으킨 후 책임을 지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6] 같은 해 9월 30일 임의탈퇴 공시로 공식적으로 팀을 떠났다. 은퇴 후 2021년부터 삼성 라이온즈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2. 1. 아마추어 시절

동국대학교 재학 시절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여러 국제 대회에서 활약했다.

2. 1. 1. 주요 국제 아마추어 대회 성적

1997년 7월, 동국대학교 1학년 시절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미국 국가대표 야구팀과의 친선 5연전에 참가할 대한민국 국가대표 야구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1998년 7월, 2학년 때 다시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998년 야구 월드컵에 참가했다.[1]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그는 클린업 히터 최희섭과 함께 팀 공격을 이끌며 41타수 17안타(타율 .415), 10득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처음으로 프로 선수들이 포함된 1998년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2] 리드오프 타자로 활약하며 23타수 10안타(타율 .435), 1홈런, 3타점, 7득점을 기록하여 팀의 아시안 게임 첫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1999년 9월에는 1999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당시 대표팀 명단에 포함된 4명의 아마추어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주로 이병규의 백업 중견수 역할을 맡았다.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여 2연패를 달성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대학 선수로만 구성된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99년 인터컨티넨탈컵에 출전했다. 대한민국은 7위에 머물렀으나,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우승팀 쿠바를 상대로 4-3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다. 특히 8회말 2타점 적시타를 쳐 3-3 동점을 만들었는데, 이는 IBAF 주관 주요 국제 대회에서 대한민국이 쿠바를 상대로 거둔 첫 승리였다.[3]

년도개최지대회팀 성적개인 기록
1998이탈리아1998년 야구 월드컵-- 은메달.415 타율 (41타수 17안타), 10득점
1998태국아시안 게임-- 금메달.435 타율 (23타수 10안타), 1홈런, 3타점, 7득점
1999대한민국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금메달.000 타율 (3타수 0안타), 2타점
1999오스트레일리아인터컨티넨탈컵7위-


2. 2. [[삼성 라이온즈]] 시절

부산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96년, 삼성 라이온즈로부터 2차 드래프트 6순위로 지명받았으나 동국대학교에 진학했다.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박찬호 등과 함께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동국대학교 졸업 후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4월 5일 한화 이글스와의 KBO 리그 데뷔전이자 팀 개막전에서 상대 선발 투수 송진우를 상대로 첫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했다. 다음 날 경기에서는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쳤다. 신인 시즌에 주로 1번 타자로 나서 130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9, 13홈런, 61타점, 17도루를 기록하며 활약했고, 2001년 KBO 신인왕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02년에는 팀의 주전 1번 타자로 정규 시즌 133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타율 0.272, 137안타, 10홈런, 47타점, 13도루를 기록했고, 7월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2003년은 그의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평가받는다. KBO 리그 안타 부문 1위(173개)를 차지했으며, 113득점과 17도루를 기록했다. 타율은 0.322로 리그 6위에 올랐다. 시즌 후 11월에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으나, 백업 중견수로 출전하여 7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2004년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며 타율 0.310(리그 10위), 156안타(리그 4위), 그리고 개인 한 시즌 최다인 16홈런과 63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외야수 부문에서 생애 첫 KBO 리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4]

2005년에는 안타 부문 리그 3위(139개)를 기록하고 9홈런, 59타점을 올렸으나 타율은 0.295로 소폭 하락했다.

2006년에는 득점 부문 KBO 리그 1위(89득점)를 차지했고, 134안타(리그 6위)와 15도루를 기록하며 두 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하지만 타율은 0.285로 다시 하락했고, 개인 한 시즌 최다인 62개의 삼진을 당하기도 했다.

2007년은 타격 부진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타율 0.267로 데뷔 후 가장 낮은 타율을 기록했으며, 홈런(2개)과 타점(27타점) 역시 커리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장타율(0.309)과 출루율(0.359) 또한 가장 낮았다.

그러나 2008년에는 타율 0.316(리그 8위), 출루율 0.414(리그 5위)를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부상으로 20경기에 결장했음에도 117안타, 41타점, 57득점을 기록했다.

큰 체구 때문에 2009년 시즌 후 당시 감독이었던 선동열로부터 체중을 90kg까지 감량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2009년 시즌 후 첫 FA 자격을 얻었으나, 예상보다 낮은 평가를 받아 2년 총액 10억에 팀에 잔류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7경기 동안 타율 0.292, 6타점, 6득점, 2도루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데뷔 후 첫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7]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KBO 역사상 최초로 시리즈 전적 1승 3패의 열세를 뒤집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러한 활약과 데뷔 이후 꾸준히 100경기 이상 출전 및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한 꾸준함을 인정받아, 2013년 시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얻어 4년 총액 28억의 조건으로 다시 잔류했다.[8]

2014년 8월 1일에는 14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 기록을 달성했다. 2016년 10월 4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는 양준혁과 타이기록인 16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KBO 리그 역대 최장 기록이다.

2016년에는 팀의 새로운 주장이 되었으나, 무릎 부상으로 약 한 달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해 9월 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KBO 리그 역대 9번째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2016 시즌 종료 후에는 김상수에게 주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2019년 3월 2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만 40세 2개월의 나이로 KBO 리그 최고령 만루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27일, 대구에서 음주운전으로 인한 접촉 사고를 낸 사실이 알려지자 책임을 지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6] 당시 그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음주운전 사건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달게 모든 처벌을 받겠습니다. 팬 여러분과 구단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5]


은퇴 시점에서 그는 KBO 리그 통산 안타 3위(2,174개), 득점 4위(1,211득점)에 올라 있었으며, 출장 경기 수(2,127경기)는 4위를 기록했다. 이 모든 기록은 19시즌 동안 오직 삼성 라이온즈 한 팀에서만 세운 것이다. 2019년 9월 30일,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되어 공식적으로 삼성 라이온즈를 떠났다.

은퇴 후 2021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2. 3. 주요 국제 프로 대회 성적

동국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박찬호 등과 함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고, 이를 통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2003년 11월에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다시 발탁되어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주로 백업 중견수로 출전했으며, 7타수 무안타로 다소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년도개최지대회개인 기록
2003일본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동메달0.000 타율 (7타수 0안타)


3. 은퇴 이후

2021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육성군 야수코치로 활동했다. 2022년에는 2군 타격코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팀 타격 부진으로 인해 8월 말 김종훈을 대신하여 1군 타격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2023년에도 1군 타격코치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팀 타격 부진이 이어지자 다치바나 요시이에에게 보직을 넘기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4. 플레이 스타일

공격적인 1루수이다.

5. 논란

2019년 5월 26일 경기 후 자녀의 아이스 하키 경기에 참석해 저녁 식사를 하며 음주를 했다. 다음 날인 5월 27일에 자녀를 등교시키고 귀가하던 중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인근에서 접촉 사고가 났다.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65%로 면허 정지 수준으로 측정됐다. 사고 발생 당일 오후에 은퇴를 선언했다.[15]

6. 별명


  • 큰 엉덩이 때문에 당시 감독이었던 류중일로부터 '하마'라고 불렸다.
  • 이름을 그대로 읽은 발음인 '바카닉'이라고 불린다.
  • 타석에서의 특이한 루틴 동작으로 인한 '버퍼링 박'[9], '킁킁신', '킁킁이'라고 불린다.
  • 배우자 조명진의 극중 이름을 딴 '무덕이'라고 불린다.
  • 2013년 시즌 후 몇몇 FA 대박을 터트린 이들과는 달리 생각보다 적은 금액에 잔류한 그를 보고 '착한이'라고 불렸다.[10]

7. 수상

8. 루틴

"루틴"이란 운동 선수들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습관적인 준비 자세를 말하는데, 그의 루틴은 그 독특함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11] 그는 2001년 프로 데뷔 경기에서 긴 타격 준비 운동 후 첫 프로 데뷔 안타를 친 이후로 매 타석마다 이 루틴을 계속해서 이어왔다. 그의 루틴 순서는 다음과 같다.[12]

# 두 차례 정도 타석에서 제자리 뛰기

# 배팅 장갑을 다시 고쳐 붙임

# 타격 위치에 두 발을 고정시킴

# 헬멧을 벗고 얼굴에 갖다 댐

# 이마부터 머리를 헬멧으로 쓸어넘김

# 방망이로 금을 그으며 왼손으로 왼쪽 허벅지를 툭 침

# 스윙 1회

2010년부터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에 '12초 룰'이 적용되면서 스프링 캠프 때부터 준비 동작을 간소화하려고 노력했다.[13] 시즌 전부터 그는 새로 도입되는 '12초 룰'에 가장 많이 피해볼 선수로 예상됐으나, 5월까지 타율, 출루율, 장타율에서 1위를 기록했고, 3할대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14]

9. 응원가

안타 안타 안타 안타 헤이 헤이 헤이 박한이!

안타 안타 안타 안타 헤이 헤이 헤이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박한이 헤이!헤이! 최강 삼성 라이온즈 박한이 헤이!헤이!

안타 안타 박한이 헤이! 안타 박한이 워 워우워어~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박한이 헤이!헤이! 최강 삼성 라이온즈 박한이~

꾸준함의 대명사 박한이 워 워우워어~

10. 출신 학교

11. 통산 기록

삼성 라이온즈에 2001년 입단한 후, 그해 4월 5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는 라이온즈의 2001년 시즌 개막전이기도 했는데, 박한이는 이글스 선발 투수 송진우를 상대로 첫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했다. 다음 날에는 이글스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쳤다. 데뷔 시즌에 라이온즈의 1번 타자로 13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79, 13홈런, 61타점, 17도루를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2001년 KBO 신인왕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02년에는 팀의 1번 타자로 정규 시즌 133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타율 0.272, 137안타, 10홈런, 47타점, 13도루를 기록했고, 7월에는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2003년은 개인 통산 최고의 시즌 중 하나였다. 이 해 KBO 리그에서 안타(173개) 부문 1위를 차지했으며, 113득점과 17도루를 기록했다. 또한 타율 0.322로 타격 부문 6위에 올랐다. 11월에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0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으나, 백업 중견수로 출전하여 7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2004년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며 타율 0.310(리그 10위), 156안타(리그 4위), 개인 통산 최다인 16홈런과 63타점을 기록했다. 시즌 후에는 외야수 부문에서 첫 KBO 리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4]

2005년에는 안타(139개) 부문 리그 3위를 기록했고, 9홈런, 59타점을 기록했지만 타율은 0.295로 다소 하락했다.

2006년에는 득점(89득점) 부문 KBO 리그 1위를 차지했고, 134안타(리그 6위)와 15도루를 기록하며 두 번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하지만 타율은 0.285로 다시 하락했고,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인 62개의 삼진을 당했다.

2007년에는 타격 부진에 시달리며 개인 통산 최저 타율인 0.267을 기록했다. 홈런 2개와 27타점 역시 개인 최저 기록이었으며, 장타율(0.309)과 출루율(0.359)도 가장 낮았다.

하지만 2008년에는 타율 0.316(리그 8위), 출루율 0.414(리그 5위)를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부상으로 20경기에 결장했음에도 117안타, 41타점, 57득점을 기록했다.

2009년 시즌 후에는 당시 감독이었던 선동열로부터 체중 감량 지시를 받기도 했다. 같은 해 첫 FA 자격을 얻었으나 예상보다 낮은 평가를 받아 2년 총액 10억에 팀에 잔류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7경기 동안 타율 0.292, 6타점, 6득점, 2도루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쳐 팀 우승에 기여했고, 데뷔 후 첫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7] 당시 라이온즈는 KBO 역사상 최초로 시리즈 전적 1승 3패의 열세를 뒤집고 우승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활약과 데뷔 후 꾸준히 100경기 이상 출장 및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한 꾸준함을 인정받아 2013년 시즌 후 두 번째 FA 계약에서는 4년 총액 28억의 조건으로 잔류했다.[8]

2014년 8월 1일에는 14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 기록을 달성했다. 2016년에는 팀의 새 주장이 되었으나, 무릎 부상으로 약 한 달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같은 해 10월 4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역대 두 번째로 16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하며 양준혁의 KBO 리그 최장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2016년 시즌 후에는 김상수에게 주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2019년 5월 27일, 대구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후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은퇴 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음주운전 사건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달게 모든 처벌을 받겠습니다. 팬 여러분과 구단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5]


은퇴 당시 박한이는 KBO 리그 역사에 여러 기록을 남겼다.

부문기록순위 (은퇴 시점)
안타2,1743위
득점1,2114위
출장 경기2,1274위
연속 시즌 100안타 이상16시즌1위 (타이)



이 모든 기록은 19시즌 동안 오직 삼성 라이온즈 소속으로만 기록한 것이다.

참조

[1] 웹사이트 Baseball: Medallists from previous World Cups http://results.beiji[...] Beijing 2008 2008-07-17
[2] 뉴스 Korean Baseball History at the Asian Games (2): Inaugural Dream Team http://media.daum.ne[...] 2006-11-28
[3] 뉴스 "야구 물올랐다" 최강 쿠바에 역전극 http://www.fnn.co.kr[...] 2008-08-20
[4] 뉴스 박한이 36% 인상 1억 5000만 원 연봉 계약 http://isplussvc.joi[...] 2004-12-29
[5] 웹사이트 Veteran baseball player announces abrupt retirement after DUI accident https://en.yna.co.kr[...]
[6] 웹사이트 https://www.samsungl[...]
[7] 뉴스 생애 첫 KS MVP 박한이 “상복 없는 내게 이런 날이…” http://sports.news.n[...] 스포츠동아
[8] 뉴스 박한이 4년 28억원 FA계약, 액수 그 이상의 의미 http://www.mydaily.c[...] 마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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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웹사이트 뗄레야 뗄 수 없는 박한이와 헬멧 http://www.zoominusa[...] 강명호의 줌인! 2010-05-17
[13] 웹사이트 박한이 "5단계 준비동작, 1단계로 줄이겠다" http://www.zoominusa[...] 스포츠조선 2010-03-03
[14] 뉴스 타격 3관왕, 잘 나가는 박한이의 비결은? http://sportsworldi.[...] 한국일보 2010-05-12
[15] 뉴스 삼성 박한이 27일 음주운전 적발, 도의적 책임지고 은퇴 선언 http://sports.donga.[...]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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