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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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충환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정치인으로, 만주 대동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제3, 5, 6, 9, 10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국회의원 재임 중 예산결산위원장을 4번 지냈다. 민주당, 민중당, 신민당 등에서 활동하며 정계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았으며, 1979년 정계 은퇴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5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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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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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1년 수료, 만주 대동학원을 졸업했다.[1] 1943년에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 만주 고등관 채용고시와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변호사 자격을 얻었으며, 청주상과대학의 강사와 충청북도 인사처장 대리를 지냈다.[2] 이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제3,5,6,9,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여섯 번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국회의원 재임 중 예산결산위원장을 4번 역임했으며, 민주당 정책위 부위원장, 민중당 충북 제7지구당 위원장, 아시아·태평양 국회의원 연합 제2회 총회 한국 대표, 민중당 정책심의회의장·운영위원, 신민당 정무위원·정책심의회의장·전당대회 의장·총재 권한대행·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2]
1979년에 정계에서 은퇴하고, 변호사를 개업했으며, 새한국도덕국민운동 본부 총재, 국토통일문제 고문, 대한민국 헌정회 이사 등을 지냈다[2]。 2005년 9월 30일, 지병으로 88세로 사망했다[3]。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1년 수료, 만주 대동학원을 졸업했다.[1]。1943년에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 만주 고등관 채용고시와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변호사 자격을 얻었으며, 청주상과대학의 강사와 충청북도 인사처장 대리를 지냈다.[2] 이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하였다.2. 2. 해방 전후 활동
만주 대동학원을 졸업하고, 만주 고등관 채용고시와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충청북도 인사처장 서리, 청주상과대학강사를 역임한 뒤, 정계에 진출하여 1950년 제2,3,5,6,9,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예산결산위원장을 네 번 역임했다. 민주당 정책위 부위장, 민중당 민중당 충북 제7지구당 위원장, APU 제2회총회 한국대표, 민중당 정책심의회의장, 민중당 운영위원, 신민당정무위원ㆍ정책심의회의장ㆍ전당대회의장ㆍ총재권한대행ㆍ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2. 3. 정치 활동
만주 대동학원을 졸업하고, 만주 고등관 채용고시와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변호사 자격을 얻었으며 충청북도 인사처장 서리, 청주상과대학강사를 역임한 뒤, 정계에 진출하여 1950년 제2,3,5,6,9,10대의 여섯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1] 예산결산위원장을 네 번 역임하고 민주당 정책위 부위장, 민중당 충북 제7지구당 위원장, 아시아·태평양 국회의원 연합 제2회총회 한국대표, 민중당 정책심의회의장, 민중당 운영위원, 신민당정무위원ㆍ정책심의회의장ㆍ전당대회의장ㆍ총재권한대행ㆍ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2] 1979년에 정계에서 은퇴하고, 변호사를 개업했으며, 새한국도덕국민운동 본부 총재, 국토통일문제 고문, 대한민국 헌정회 이사 등을 지냈다[2]。2. 4. 정계 은퇴 이후
만주 대동학원을 졸업하고, 만주 고등관 채용고시와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변호사 자격을 얻었으며 충청북도 인사처장 서리, 청주상과대학강사를 역임하였다. 정계에 진출하여 1950년 제2,3,5,6,9,10대의 여섯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예산결산위원장을 네 번 역임하고 민주당 정책위 부위장, 민중당 민중당 충북 제7지구당 위원장, APU 제2회총회 한국대표, 민중당 정책심의회의장, 민중당 운영위원, 신민당정무위원ㆍ정책심의회의장ㆍ전당대회의장ㆍ총재권한대행ㆍ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3. 역대 선거 결과
이충환은 1950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충북 진천군에 출마하여 6,488표(26.06%)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후 1954년 총선에서는 자유당 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10,854표(42.29%)를 득표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1958년 총선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11,314표(38.22%)를 얻어 낙선했다. 하지만 1960년 총선에서 다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17,783표(53.55%)를 얻어 당선되며 3선 의원이 되었다.
1963년 총선에서는 충북 진천군·음성군 선거구에 민정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24,502표(37.50%)를 득표하여 4선에 성공했다. 1967년 총선에서는 신민당 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23,213표(31.09%)를 얻어 낙선했다. 1971년 총선에서도 신민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33,491표(47.27%)를 얻어 낙선했다.
1973년 총선에서는 충북 진천군·괴산군·음성군 선거구에 신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47,760표(39.44%)를 얻어 당선되며 5선 고지에 올랐다. 1978년 총선에서도 같은 선거구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출마, 40,058표(30.04%)를 얻어 6선 의원이 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대한민국헌정회
https://rokps.or.kr/[...]
2022-05-10
[2]
웹사이트
이충환(李忠煥)
https://encykorea.ak[...]
2023-08-14
[3]
웹사이트
이충환 전 의원 별세
https://www.hani.co.[...]
20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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