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1951년 국제 배구 연맹에 가맹하여,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동양의 마녀'로 불리며 올림픽 금메달 2회, 세계 선수권 대회 금메달 3회를 획득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1980년대 이후에는 침체기를 겪었으나,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0년대 이후, 2024년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2. 역사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오랜 역사를 거치며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일본 여자 배구는 유니치카 페닉스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으로 수비력을 중시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높이를 중시하는 배구로 전환을 시도했지만, 선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다시 수비력 중심으로 돌아섰다. 현재는 수비력과 스피드를 결합한 배구를 구사한다. 마나베 마사요시 감독은 ID 배구를 도입하여 코칭 시스템을 분업화했고, 2011년에는 남자 선수 수준의 "고속 배구"를 시도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전후부터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빨강과 하양 배색을 유니폼에 사용해 일본 대표팀의 상징이 되었다. 1989년부터 미즈노 유니폼을 채택, 시대에 따라 디자인이 변화했다. 2009년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서는 노란색, 2010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오렌지색 유니폼을 선보였다. 2011년 월드컵에서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를 입은 국민들을 위해 "마음은 하나"라는 문구를 유니폼에 새겼다.[23]
2. 1. 1960년대 ~ 1970년대: 황금기
1964년 도쿄 올림픽 전후부터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빨강과 하양배색을 사용하여, 이것이 오랫동안 일본 대표팀의 정석이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셔츠와 브루머가 오렌지색인 유니폼을,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각각 짙은 녹색 유니폼을 착용했지만, 뮌헨 올림픽 이후에는 다시 빨강과 하양 타입으로 돌아왔다.[19]
2. 2. 1980년대 ~ 2000년대: 침체와 재도약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유니치카 이후 수비력 중심의 배구를 계승해왔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에는 높이 중심의 배구로 전환했지만, 주력 선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다시 수비력 중심으로 돌아섰다. 현재는 수비력과 스피드를 중시하는 배구를 하고 있다.
마나베 마사요시 감독은 「ID 배구」를 내걸고 분업제로 여러 명의 코치를 기용했다. 2011년에는 토스에서 0.8초 만에 사이드 공격 스파이크(종래에는 1.1초 정도)를 하는 남자 선수 수준의 "고속 배구"에도 도전했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미즈노사의 유니폼을 여자 대표팀이 채용하고 있다. 1991년에는 빨강·파랑·짙은 녹색·검정을 기조로 한 4종류의 유니폼이 등장했지만, 공식 경기에서는 빨강 또는 하양을 착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94년에는 원피스 타입, 1995년에는 스패츠 타입, 1997년 그랑챔피언스 컵에서 스패츠 타입이 채용되었고, 1998년부터는 숏 팬츠가 채용되어 반소매가 되었고, 2002년부터는 노 슬리브형으로 바뀌었다. 2006년에는 셔츠의 옷길이와 팬츠의 밑위가 짧아졌고, 셔츠 네임의 애칭 사용도 도입되었다.[19]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배구 경기·세계 최종 예선 즈음에는 몇 명이었지만,[20] 그 후 팔꿈치·무릎 서포터 (패드)는 종래의 흰색이 아닌 검정색으로 통일되었다.[21]
2009년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서는 노란색, 2010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대표 유니폼 색상으로는 드문 오렌지가 등장했다.
2. 3. 2010년대 ~ 현재: 새로운 도전
2012년 FIVB 여자 올림픽 세계 예선 토너먼트에서 아시아 최고 팀 자격으로 2012년 하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2012년 올림픽에서 일본은 A조에 속해 러시아, 이탈리아, 도미니카 공화국, 개최국 영국 및 알제리와 경쟁했다. 일본은 조 3위로 8강에 진출하여 오랜 아시아 라이벌인 중국을 3-2로 꺾었다.[7] 이는 FIVB 경기 기준으로 11년 만에 중국을 상대로 거둔 첫 승리였다.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패했지만,[8]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한민국을 3-0으로 꺾고 1984년 하계 올림픽 이후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다.[9]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국이었던 일본은 케냐, 세르비아, 브라질, 대한민국, 도미니카 공화국과 같은 조에 속했다.[10] 2021년 7월 25일 케냐와의 첫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했지만,[11][12] 세르비아, 브라질, 대한민국,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패하며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13]
여자 일본 대표팀은 유니치카 이후 수비력 중시의 배구를 계승하고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에는 높이 중시의 배구로 싸웠지만, 주력 선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인해 다시 수비력 중시의 배구로 방침을 전환했다. 현재는 수비력과 스피드를 중시한 배구를 하고 있다.
ID 배구를 내건 마나베 마사요시 감독은 분업제로 여러 명의 코치를 기용했다. 2011년에는 토스에서 0.8초 만에 사이드 공격 스파이크(종래에는 1.1초 정도)라는 남자 선수 수준의 "고속 배구"에도 도전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전후부터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빨강과 하양의 배색을 사용하여 오랫동안 일본 대표팀의 정석이었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미즈노사의 유니폼을 여자 대표팀이 채용하고 있다.
2009년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서는 노란색, 2010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대표 유니폼 색상으로는 드문 오렌지가 등장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에는 월드컵에서 왼쪽 가슴 (일장기 윗부분)에 '''마음은 하나'''라고 작게 수놓았다.[23]
2013년 몽트뢰 배구 마스터스부터 움직이기 쉬움을 추구한 새 유니폼을 착용했다.[28]2015년에는 미즈노사의 "불새 컬러"(오렌지색)의 경기 신발로 색상을 선수 전원 통일했다.[33]2016년에는 "불새 NIPPON"을 불꽃에 비유해 온 유니폼의 최종 형태로, 가장 고온시에 발색하는 블루를 채용했다.[34]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세계 선수권 대회, 월드컵, 올림픽에서 총 6번의 주요 타이틀을 획득하며 세계 여자 배구계를 이끌었다.[38]
2001년 요시카와 마사히로 감독 부임 후, 그랜드 챔피언스 컵 동메달을 획득했으나,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는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2002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13위에 그치는 등 부진을 겪었다.
2003년 야나기모토 쇼이치 감독 부임 후, 월드컵에서 5위를 기록하고, 아테네 올림픽 세계 최종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2007년 아시아 선수권에서 24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9년 마나베 마사요시 감독은 아이패드를 활용하는 "ID 배구"를 도입, 2010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32년 만의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4년 월드 그랑프리에서는 "하이브리드 6" 전술을 통해 첫 은메달을 획득했다.[41][42]
2017년에는 나카다 쿠미 감독이 취임하며, 여자 일본 대표팀 최초로 외국인 코치 페르하트 악바쉬를 영입했다.[43]
2024년 네이션스 리그에서는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고, 결승에 진출하여 은메달을 획득하며 10년 만에 세계 대회 메달을 획득했다.
3. 1. 올림픽
대회
결과
순위
1964년
금메달
1
1968년
은메달
2
1972년
은메달
2
1976년
금메달
1
1984년
동메달
3
1988년
4위
4
1992년
5위
5
1996년
9위
9
2000년
출전 자격 획득 실패
-
2004년
공동 5위
5
2008년
공동 5위
5
2012년
동메달
3
2016년
공동 5위
5
2020년
10위
10
2024년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동양의 마녀라고 불리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과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는 소련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토스"와 다양한 공격 전술을 바탕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39]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보이콧으로 불참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이후 성적이 좋지 않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출전권을 놓치기도 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8강에서 중국을 꺾고,[7]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패했지만,[8]한국을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9] 이는 1984년 하계 올림픽 이후 첫 올림픽 메달이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개최국으로 참가했지만, 8강 진출에 실패하며 10위로 마쳤다.[13]
3. 2. 세계선수권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여러 차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다음은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세계 선수권 대회 성적이다.
특히, 1960년 첫 출전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소련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배구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38] 1962년 대회에서는 닛보 베이즈카 단독 팀으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오마츠 히로후미 감독이 이끄는 이 팀은 '''동양의 마녀'''라고 불렸다.
2010년 일본에서 개최된 제16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마나베 마사요시 감독이 아이패드를 활용한 "ID 배구"를 내걸고, 1982년 대회 이후 28년 만에 4강에 진출, 3위 결정전에서 미국을 꺾고 32년 만에 동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24년 FIVB 여자 배구 네이션스 리그에서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은 파리 올림픽 출전을 걸고 참가했다. 예선 라운드에서 8승 4패를 기록하여 5위로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8강전에서 중국을 꺾고, 준결승에서는 브라질을 상대로 승리하며 VNL 사상 첫 결승 진출을 달성했다. 결승에서는 이탈리아에 패배했지만, 2014년 월드 그랑프리 이후 10년 만에 세계 대회 메달(은메달)을 획득했다.
1991년에는 빨강·파랑·짙은 녹색·검정을 기조로 한 4종류의 유니폼이 등장했지만, 공식 경기에서는 빨강 또는 하양을 착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94년에는 원피스 타입 (일반적으로 발매된 것은 세퍼레이츠 타입), 1995년에는 한때 원피스 타입을 개조한 스패츠 타입, 1997년 월드 그랑프리까지는 정석이었던 브루머였지만 그랑챔피언스 컵에서 스패츠 타입이 채용되었고 (다만 제3전부터는 브루머를 착용), 1998년부터는 숏 팬츠가 채용되어 반소매가 되었고, 2002년부터는 노 슬리브형으로 이행되었다. 2006년에는 셔츠의 옷길이와 팬츠의 밑위가 짧아졌고, 셔츠 네임의 애칭 사용도 도입되었다[19]。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배구 경기·세계 최종 예선 즈음에는 아직 몇 명이었지만[20], 그 후 팔꿈치·무릎 서포터 (패드)는, 종래의 흰색이 아닌 검정색으로 통일되었다[21]。
2009년의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서는 노란색, 2010년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대표 유니폼 색상으로는 드문 오렌지가 등장했다. 또한, 이동 시나 벤치에서는 오렌지색 저지를 착용했다[22]。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에는, 월드컵에서 왼쪽 가슴 (일장기 윗부분)에 '''마음은 하나'''라고 작게 수놓아졌다[23]。 또한, 그날의 유니폼 색상에 따라 빨강·검정·보라색의 맞춰진 가는 헤어 밴드 (헤어 고무)를 착용하고 임하는 선수도 있었다[27]。
2013년의 몽트뢰 배구 마스터스부터, 움직이기 쉬움을 추구한 새 유니폼을 착용[28]。 같은 해 가을의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서는, 그것과는 다른 새 유니폼을 착용. 정면·옆면에 미세한 도트 무늬가 있는 디자인으로, 신소재 "테크노 스파크 LS"를 사용하여 115g[29] (종래비 약 10g 경량화)을 실현했다[30]。 또한, 일본 전체 사상 처음으로, 빨강을 기조로 한 신발을 착용[31][32]。
2015년에는 미즈노사의 "불새 컬러"(오렌지색)의 경기 신발로 색상을 선수 전원 통일했다[33]。 유니폼은 종래대로 3가지 패턴 (각각 빨강·검정·하양을 기조로 한 것)이었다.
2016년에는 "불새 NIPPON"을 불꽃에 비유해 온 유니폼의 최종 형태로, 가장 고온시에 발색하는 "블루"를 채용 (신발 컬러도)[34]。 이에 따라, 바지 색상은 종래의 검정·빨강 2종류에서 검정·곤색으로 변경되었다.
메이지의 관리 영양사가 여자 일본 대표팀에 파견되어 영양 면에서의 지원이 시작된 것은 2006년[45]이다.
과거 한국에서는 일본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을 "전일본"이라고 불렀으나, 2023년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일본 배구 협회는 2019년부터 "일본 대표"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2009년에는 팀 애칭을 "'''불의 새 NIPPON'''"으로 정했으나[35][36], 2024년 4월에 폐지되었다[3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