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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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구영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제23대 검찰총장을 역임했다. 1938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검사로 임용되었다. 서울지검 검사장, 광주고검 검사장,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을 거쳐 1990년 검찰총장에 임명되었으며, 재임 중 페놀 유출 사건, 오대양 사건 등을 수사했다. 퇴임 후 녹십자 사외이사, 검찰 동우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축소 은폐 의혹,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수사 지휘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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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휘는 1935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학교법인 홍익학원 이사로 재직 중이다. - 대한민국의 검찰총장 - 박종철 (법조인)
박종철은 1962년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 후 검사로 임용되어 검사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을 역임하고 제25대 검찰총장에 취임했으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 후 변호사로 활동한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 하동군 출신 - 정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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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영 (법조인) | |
---|---|
기본 정보 | |
이름 | 정구영 |
원어명 | 鄭銶永 |
로마자 표기 | Jeong Gu-yeong |
출생일 | 1938년 11월 12일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법조인 |
배우자 | 유혜성 |
경력 | |
경력 | 제23대 검찰총장 |
2. 생애
정구영은 1938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 4학년 재학 중이던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1965년 서울지검 검사에 임용되었다. 부산지검과 광주고검에서 검사장으로 재임할 때를 제외하고는 서울지검 관내를 벗어난 사실이 없다. 1974년 상류층 부인 보석 사건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3]
서울지검 검사장, 광주고검 검사장을 거쳐 청와대 비서실 민정수석 비서관을 역임한 후 1990년 12월 6일 검찰총장에 임명되었다. 검찰총장 재직 시절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오대양 사건 등을 수사 지휘했으며,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에서는 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지시에 따라 수사 방향을 정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17][18]
1992년 검찰총장에서 퇴임한 이후에는 검찰 동우회 회장, 동명정보대학 도서 기증, 기업체 사외이사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2005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송두율 불구속 수사 지휘에 검찰 동우회가 반대 성명을 낸 사건,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 2018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관련 대검 진상 조사단 진술 등이 있었다.
2. 1. 검사 임용 및 주요 경력
1938년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학과 4학년 재학 중이던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1965년 서울지검 검사에 임용되었다.[3] 부산지검과 광주고검에서 검사장으로 재임할 때를 제외하고는 서울지검 관내를 벗어난 사실이 없다. 1974년에 상류층 부인 보석 사건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3]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직책 |
---|---|
1965년 | 서울지검 검사 |
대검 검찰연구관 | |
법무부 송무과장 | |
서울지검 특수3부 부장검사 | |
1981년 4월 25일 | 법무부 송무 담당관 |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국장 | |
법무부 검찰1과 과장 | |
법무부 검찰국 국장 | |
1985년 3월 5일 ~ 1985년 10월 20일 | 제26대 부산지검 검사장 |
1985년 10월 21일 ~ 1987년 6월 7일 | 제27대 서울지검 검사장 |
1987년 6월 8일 ~ 1989년 3월 28일 | 제18대 광주고검 검사장 |
1989년 3월 29일 ~ 1990년 12월 5일 | 청와대 비서실 민정수석 비서관 |
1990년 12월 6일 ~ 1992년 12월 5일 | 제23대 검찰총장 |
1999년 ~ 2013년 3월 | 녹십자 사외이사[19] |
두산중공업 사외이사 | |
2000년 후반 | 두산엔진 사외이사 재선임[20] |
2. 2. 검찰총장 임명 및 주요 사건 수사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12월 6일 청와대 비서실 민정수석 비서관으로 재직하던 정구영을 김기춘 검찰총장의 후임으로 제23대 검찰총장에 임명했다.[5] 노태우 대통령은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검사들이 조직폭력배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는 등 물의를 빚은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조속히 매듭짓도록 하라"고 하면서 "고위공직자들의 낭비 풍조 자제, 범죄수사 때 피해자와 참고인의 인권 보호" 등을 지시했다.[5]정구영은 초임 검사 시절부터 "일단은 총장을 했으면 하는 꿈을 간직해왔다"고 밝혔으며, 2년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두 번째 검찰총장 취임 기자회견에서 "우리 검찰도 이제 불혹의 나이를 넘어섰기 때문에 스스로의 얼굴에 책임을 질 때가 됐다"며 "전국적인 감찰 활동의 강화와 선, 후배 간의 유대 강화로 검찰 공무원으로서의 덕목이 몸에 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6]
1991년 3월 22일, 정구영은 "낙동강 상수원에 유해물질인 페놀 폐수를 고의로 내보낸 두산전자의 책임자들을 반국민적 사범으로 엄중히 처벌하라"고 대구지검에 지시했다.[7]
1991년 오대양 사건 수사 당시, 정구영은 서울지검, 수원지검, 서울지검 남부지청에서 검사 5명과 조사요원 5명 등 총 10명을 선발해 수사팀에 보강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이때 상황을 "몇 명 되지 않는 일행이 안개와 구름 자욱한 오대양 한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육지를 항해하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8]
1992년 12월 5일, 2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는 두 번째 검찰총장이 된 정구영은 12월 3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재임 기간 동안 사회의 구조적 비리와 관련된 큰 사건들이 많았는데 국민들이 검찰 수사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9] 그는 "2년이 넘도록 찾지 못하고 있는 개구리 소년 사건이 재임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다"며 후배 검사들에게 "무조건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또한, 검찰총장 퇴임 이후에는 "마약 퇴치와 관련된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10]
2018년 11월 21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에 대해 "분신 정국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지시에 따라 정구영 검찰총장이 수사 방향을 정했다고 발표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수사팀이 구성됐을 땐 이미 용의자는 강기훈으로 정해졌고, 증거 은폐도 이뤄졌다"고 밝혔다. 정구영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최근의 분신자살사건에 조직적인 배후세력이 개입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것. 분신의 경위에 의혹이 있을 뿐 아니라 타살 가능성마저 있음"을 일선 검찰에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17][18]
2. 3. 퇴임 이후 활동
정구영은 1992년 12월 5일 2년 임기를 마치고 검찰총장에서 퇴임했다. 그는 퇴임 기자회견에서 "재임기간 동안 사회의 구조적 비리와 관련된 큰 사건들이 많았는데 국민들이 검찰 수사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9] 또한 "2년이 넘도록 찾지 못하고 있는 개구리 소년 사건이 재임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다"며 후배 검사들에게 "무조건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검찰총장 퇴임 이후에는 "마약 퇴치와 관련된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10]1984년 1월 결성된 퇴직 검사 및 검찰 사무직 공무원의 모임인 검찰 동우회는 2001년 정기총회에서 정구영을 임기 2년의 제4대 회장으로 선임했다.[11] 그는 2002년 3월 22일 동명정보대학의 학생들에게 "법학 관련 지식과 문학적 소양을 키우는데 보탬이 되라"며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법학 및 문학 관련 도서 3천여 권을 기증하기도 했다.[12]
검찰총장 출신이 기업체 사외이사로 등재되는 것에 대해 정구영은 2005년에 "일부는 오랜 식견과 경험, 수사 노하우, 다양한 정보 등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활용하길 기대하는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많은 총장 출신 변호사들이 사회 원로로서 조용한 기여에 보다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13] 그는 녹십자 사외이사(1999년 ~ 2013년 3월)[19], 두산중공업 사외이사, 2000년 후반 두산엔진 사외이사를 역임했다.[20]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된 송두율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자 정구영이 회장으로 있던 검찰 동우회는 2005년 10월 14일에 "신병 처리라는 매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검찰의 판단을 존중해주고 구속 여부는 법원이 판단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14]
18대 대선에서 정구영은 다른 법조인 244명과 함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15]
서울지검 검사장으로 재직할 때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관련하여 정구영은 2018년 8월 8일 대검 진상 조사단 조사관과의 면담에서 "검찰총장이나 법무부 장관이 본래 나한테 부탁하듯이 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차라리 대강 이게 청와대 뜻이라고 생각했다"며 "검찰총장은 자꾸 '일주일만 있다가 하자'고 했고, 일주일이 있으면 또 일주일 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발표해주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고 진술했다.[16]
정구영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 "최근의 분신자살 사건에 조직적인 배후 세력이 개입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것. 분신의 경위에 의혹이 있을 뿐 아니라 타살 가능성마저 있음"을 일선 검찰에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난[17]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에 대해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11월 21일에 "분신 정국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그 당시의 청와대 비서실의 지시에 따라서 정구영 검찰총장이 "수사 방향을 정했다"고 밝히면서 "수사팀이 구성됐을 땐 이미 용의자는 강기훈으로 정해졌고. 증거 은폐도 이뤄졌다."고 했다.[18]
그는 우리다문화장학재단 이사회 이사[21], 학교법인 한림대학교 이사(2018년 6월 5일 ~ 2022년 6월 4일)를 역임했다.
3. 논란
정구영은 검찰총장 재직 시절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축소 은폐 의혹: 서울지검 검사장으로 재직하던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 축소 및 조작 사실이 밝혀진 뒤 광주고검 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3] 2018년 8월 8일 대검 진상 조사단 조사관과의 면담에서 "검찰총장이나 법무부 장관이 본래 나한테 부탁하듯이 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차라리 대강 이게 청와대 뜻이라고 생각했다"며 "검찰총장은 자꾸 '일주일만 있다가 하자'고 했고, 일주일이 있으면 또 일주일 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발표해주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고 진술했다.[16]
-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수사 지휘: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서 일선 검찰에 "최근의 분신자살사건에 조직적인 배후세력이 개입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것. 분신의 경위에 의혹이 있을 뿐 아니라 타살 가능성마저 있음"을 지시했다.[17] 2018년 11월 21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분신 정국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지시에 따라 정구영 검찰총장이 수사 방향을 정했다고 밝히면서, "수사팀이 구성됐을 땐 이미 용의자는 강기훈으로 정해졌고 증거 은폐도 이뤄졌다"고 발표했다.[18]
- 정치적 행보:
-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 민정수석 비서관을 지냈다.[5]
- 1991년 3월 22일 낙동강 상수원에 유해물질인 페놀 폐수를 고의로 내보낸 두산전자 책임자들을 반국민적 사범으로 엄중히 처벌하라고 대구지검에 지시했다.[7]
- 1991년 오대양 사건 수사에 검사 5명과 조사요원 5명 등 총 10명을 선발해 수사팀에 보강하도록 지시했다.[8]
-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된 송두율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자, 정구영이 회장으로 있던 검찰 동우회는 2005년 10월 14일에 "신병처리라는 매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검찰의 판단을 존중해주고 구속여부는 법원이 판단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14]
- 18대 대선에서 다른 법조인 244명과 함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15]
3. 1.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축소 은폐 의혹
서울지검 검사장으로 재직하던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 축소 및 조작 사실이 밝혀진 뒤 광주고검 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3] 2018년 8월 8일 대검 진상 조사단 조사관과의 면담에서 "검찰총장이나 법무부 장관이 본래 나한테 부탁하듯이 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차라리 대강 이게 청와대 뜻이라고 생각했다"며 "검찰총장은 자꾸 '일주일만 있다가 하자'고 했고, 일주일이 있으면 또 일주일 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발표해주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고 진술했다.[16]3. 2.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수사 지휘
정구영은 검찰총장 재직 시절인 1991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서 일선 검찰에 "최근의 분신자살사건에 조직적인 배후세력이 개입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것. 분신의 경위에 의혹이 있을 뿐 아니라 타살 가능성마저 있음"을 지시했다.[17] 2018년 11월 21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분신 정국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지시에 따라 정구영 검찰총장이 수사 방향을 정했다고 밝히면서, "수사팀이 구성됐을 땐 이미 용의자는 강기훈으로 정해졌고 증거 은폐도 이뤄졌다"고 발표했다.[18]3. 3. 정치적 행보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 민정수석 비서관으로 재직하다가 김기춘 검찰총장 후임으로 1990년 12월 6일에 제23대 검찰총장에 임명되었다.[5] 1991년 3월 22일에는 낙동강 상수원에 유해물질인 페놀 폐수를 고의로 내보낸 두산전자의 책임자들을 반국민적 사범으로 엄중히 처벌하라고 대구지검에 지시했다.[7]1991년 오대양 사건 수사에 검사 5명과 조사요원 5명 등 총 10명을 선발해 수사팀에 보강하도록 지시했다.[8] 1992년 12월 5일에 2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다.[9] 검찰총장 퇴임 이후에는 "마약 퇴치와 관련된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10]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입건된 송두율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자 정구영이 회장으로 있던 검찰 동우회는 2005년 10월 14일에 "신병처리라는 매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검찰의 판단을 존중해주고 구속여부는 법원이 판단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14]
18대 대선에서 정구영은 다른 법조인 244명과 함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15]
서울지검 검사장으로 재직할 때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관련하여 2018년 8월 8일 대검 진상 조사단 조사관과의 면담에서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이 본래 나한테 부탁하듯이 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차라리 대강 이게 청와대 뜻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16] 정구영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 "최근의 분신자살사건에 조직적인 배후세력이 개입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것."을 일선 검찰에 지시했던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에 대해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11월 21일에 "분신 정국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당시 청와대 비서실의 지시에 따라서 정구영 검찰총장이 "수사 방향을 정했다"고 밝혔다.[18]
참조
[1]
뉴스
한겨레
1990-11-24
[2]
뉴스
경향신문
1989-03-25
[3]
뉴스
경향신문
1987-06-04
[4]
뉴스
한겨레
1989-03-26
[5]
뉴스
한겨레
1990-12-07
[6]
뉴스
경향신문
1990-12-07
[7]
뉴스
한겨레
1991-03-23
[8]
웹사이트
https://news.naver.c[...]
[9]
뉴스
https://newslibrary.[...]
한겨레
1992-12-04
[10]
뉴스
경향신문
1992-12-04
[11]
웹사이트
https://news.naver.c[...]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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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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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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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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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ocutnews[...]
[16]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www.inews24.c[...]
2018-12-2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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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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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bs.co.k[...]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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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된 사본
http://www.etoday.co[...]
20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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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http://www.seoul.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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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www.thebell.c[...]
20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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