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사단 (영국)은 1937년 기동사단으로 창설되어 제2차 세계 대전, 걸프 전쟁 등 주요 전쟁에 참전했다. 2021년 '퓨처 솔저' 계획에 따라 개편되었으며, 현재는 제4 경보병여단 전투단, 제7 경 기계화 여단 전투단, 제11 치안 부대 지원 여단, 제19 여단, 제8 공병 여단, 제102 작전 유지 여단 등을 예하 부대로 두고 있다. 2028년까지 노스요크셔 캐터릭 주둔지로 사령부를 이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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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기갑사단 - 제6기갑사단 (영국) 제6기갑사단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전역에서 추축군과 싸웠으며 종전 후 트리에스테 지역 안정화 임무를 수행한 영국군의 기갑 사단으로, 창설과 해산을 반복하다 최종적으로 1958년 해산되었다.
영국 육군의 사단 - 제3사단 (영국) 영국 육군의 제3사단은 1809년 창설되어 반도 전쟁, 워털루 전투, 제2차 세계 대전 등 역사적 전투에 참전했으며 냉전 시대를 거쳐 2021년 재편 후 현재 2개의 장갑 여단 전투단, 1개의 심부 정찰 타격 여단 전투단, 1개의 작전 유지 여단을 예하에 두고 있다.
영국 육군의 사단 - 제6사단 (영국) 제6사단 (영국)은 영국 육군의 사단으로,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을 포함한 여러 전쟁에 참전했으며, 여러 차례 재편성을 거쳐 육군특수작전여단 등으로 구성되었다.
걸프 전쟁에 참전한 영국의 부대 및 조직 - 특수주정임무대 특수주정임무대(SBS)는 영국 해군의 특수 부대로, 해상 및 수륙 양용 작전을 수행하며, 1940년 카누를 이용한 해상 침투 부대로 시작되어, 걸프 전쟁 등 다양한 분쟁에 참여하고, SAS와 동일한 선발 과정을 거쳐 훈련을 받는다.
걸프 전쟁에 참전한 영국의 부대 및 조직 - SAS (영국) SAS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데이비드 스털링 소령에 의해 창설된 영국 육군의 특수 부대로, 초기에는 적 보급선 공격 임무를 수행했으며 냉전 시대에는 대테러 부대로 명성을 얻어 현재는 대테러 작전 수행 및 주요 인사 경호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아치볼드 몽고메리-매싱버드 경의 기획으로 1937년 11월 창설된 제1(영국)사단은 '기동사단'으로 명명되었다.[4] 사단장 임명을 두고 왕립전차연대와 기병 장교 간 갈등이 있었으나, 앨런 브룩 중장이 사단장으로 임명되면서 타협을 보았다.[4]
초기 기동사단은 제1경기갑여단, 제2경기갑여단, 제1육군전차여단, 포병, 왕립 공병대, 왕립 신호대로 구성되었다. 서류상 620대의 기갑전투차량을 보유했지만, 80% 이상이 정찰차량이었고 일부는 트럭과 유사했다. 중형전차는 전차여단에 배치되었고, 1938년 12월 순항전차가 배치되기 전까지 구식 중형전차가 배치되었다.
아치볼드 몽고메리-매싱버드 경의 기획에 따라 1937년 11월 창립된 기동사단은 제1경기갑여단, 제2경기갑여단, 제1육군전차여단, 포병, 왕립 공병대, 왕립 신호대로 구성되었다.[5] 서류상 620대의 기갑전투차량을 보유했지만, 80% 이상이 정찰차량이었고 일부는 트럭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중전차는 전차여단에 배치되었고, 1938년 12월 순항전차가 배치되기 전까지 구식 중형전차가 배치되었다.[5] 이후 사단 편제는 경기갑여단, 중기갑여단, 지원단으로 변경되었으나, 순항전차 부족으로 두 여단 간 전차 종류에 큰 차이가 없었다.[5]
2. 2.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로저 에반스 소장은 불완전한 편제의 제1기갑사단을 지휘하여 1940년 프랑스 공방전에 참전했다.[1] 제1기갑사단은 제2기갑여단, 제3기갑여단, 제1지원단으로 구성되었으나 보병 지원이 부족했고,[2] 1940년 5월 14일 프랑스에 상륙했다.[3]프랑스 공방전에서 많은 전차를 잃은 제1기갑사단은 6월 16일 솜 강 남쪽에서 다른 영국군 부대로부터 떨어진 채 영국으로 철수했다.[2]
1943년 5월 튀니지 전역이 거의 끝날 무렵, 제1기갑사단은 1944년 5월까지 북아프리카에 남았다. 제1기갑사단 중 제18보병여단만 안치오 상륙 작전에 참여했고,[5] 나머지 전 부대는 5월 말이 되어서야 이탈리아 전역에 참여했다.[3]
제1기갑사단은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싸운 영국 사단 중 유일하게 영국 제8군 사령부 휘하로 재편입된 부대였다.[6] 고딕선 돌파전에서 제2기갑여단은 코리아노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4][7] 1944년 8월부터 리처드 헐이 영국 육군의 참모총장이 되어 이탈리아 전역 일부를 이끌게 되었다.[1] 그러나 사단은 손실을 대체할만한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제2기갑여단은 독립여단이 되었고, 제18보병여단은 해체되어 다른 영국 사단들의 손실을 보충했다.[8] 1945년 1월 11일 사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1]
2. 3. 전후 및 냉전 시기
1960년대 영국 육군은 제1기갑사단을 재창설했다. 서독 베르덴 안 데르 알러에 주둔한 라인강 주둔 영국군의 일부였는데, 제1보병사단이 해체된 이후 영국 제1사단으로 재편성되었다.[6]
1970년대 사단은 제7기갑여단과 제22기갑여단으로 구성되었다.[7] 1976년 영국 육군은 사단을 제1기갑사단으로 다시 명명했고, 1978년부터 영국 제1군단과 함께 복무했다.[8] 1970년대 말 2개의 임무부대로 재편성된 후, 1980년대 제1기갑사단은 제7기갑여단, 제22기갑여단 외에 제12기갑여단도 휘하에 두게 되었다.[9] 1983년 제작된 사단 뱃지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제1기갑사단의 코뿔소 뱃지와 제1보병사단의 붉은 삼각형 선봉 뱃지를 합친 것이다.[10]
2. 4. 걸프 전쟁
1990년 영국 육상병력을 지휘하기 위해 제1기갑사단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되었다. 제4기갑여단과 제7기갑여단이 휘하 편제였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영국 제1기갑사단은 미국 제7군단 휘하 편제로 들어가 이라크 공화국 수비군을 격파하는데 일조했다.[11] 제1기갑사단은 노포크 전투에 참여하여 이라크 T-55 전차를 여럿 파괴했다. 48시간의 전투 끝에 사단은 4개의 이라크 보병사단을 격멸하거나 포위했고, 이라크 제52기갑사단을 돌파했다. 97시간 동안 제1기갑사단은 약 349.23km를 주파했고, 이 과정에서 300대의 전차를 파괴하거나 노획하고 다수의 차량을 파괴했다.[12]
2. 5. 21세기 및 현재
2015년 6월 1일, 사단은 요크의 임팔 막사로 이전하였다.[13] 2021년에 발표된 퓨처 솔저 개편에 따라, 사단 사령부는 2028년까지 노스요크셔의 캐터릭 주둔지로 이전할 예정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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