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원정수송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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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7원정수송여단은 미국 육군의 수송 부대로, 항만 및 수상 터미널 지원을 주요 임무로 수행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에서 항만을 지휘했으며,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 걸프 전쟁, 소말리아에서의 희망 회복 작전, 아이티 민주주의 옹호 작전, 테러와의 전쟁 등 다양한 군사 작전 및 인도주의적 임무를 수행했다. 2014년 제7원정수송여단으로 개편되어 전구 작전을 위한 수상정 관리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육군의 해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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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원정수송여단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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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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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일 | 1942년 – 현재 |
군종 | 수송대 |
종류 | 수송여단 (원정) |
규모 | 여단 |
지휘 체계 | 제18(XVIII)공수군단 |
주둔지 | 버지니아주 포트 유스티스 |
별칭 | 해당사항 없음 |
표어 | Resolute (단호한) |
색상 | 해당사항 없음 |
군가 | 해당사항 없음 |
마스코트 | 해당사항 없음 |
장비 | 해당사항 없음 |
참전 | 해당사항 없음 |
기념일 | 해당사항 없음 |
훈장 | 해당사항 없음 |
전투 명예 | 해당사항 없음 |
식별 상징 | [[파일:7 Trans Bde DUI.jpg|100px]] |
식별 상징 이름 | 고유 부대 휘장 |
지휘관 | |
현재 지휘관 | COL John E. Gray (존 E. 그레이 대령) |
부사관 | CSM Arcelia Staggers (아르셀리아 스태거스 원사) |
주요 지휘관 | COL Beth A. Behn (베스 A. 벤 대령) |
역사 | |
활동 기간 | 1942년 7월 12일 ~ 1946년 12월 5일 1948년 3월 9일 ~ 1955년 6월 24일 1966년 5월 4일 ~ 현재 |
참전 기록 |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걸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
2. 역사
제7수송여단은 창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등 주요 분쟁에 참여하며 수송 및 항만 운영 임무를 수행해왔다. 냉전 시기에는 그레나다에서의 철수 작전과 파나마에서의 정의로운 대의 명분 작전에 참여했으며, 1990년 걸프 전쟁 발발 시에는 사막의 방패 작전과 사막의 폭풍 작전의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직후 제82공수사단 다음으로 초기 파병 부대로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전개되어 후속 부대를 위한 항만, 공항 터미널 및 통신선을 확보했다. 제32수송여단이 도착하기 전까지 제22지원사령부의 장거리 트럭 운송과 항만 관리를 담당하며 부대 규모가 9,200명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걸프 전쟁 이후에도 여단은 전 세계적인 군사 작전 및 인도주의적 임무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1992년 12월에는 소말리아 내전 구호를 위한 희망 회복 작전에 1,100명 이상의 병력을 파견하여 모가디슈 항구 운영을 지원했으며, 이 임무는 유엔이 작전을 인수하게 된 1994년 4월까지 이어졌다. 4개월 후에는 르완다 난민 지원을 위해 케냐 몸바사에서 희망 지원 작전의 일환으로 구호 활동을 펼쳤다.
1994년 9월에는 아이티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민주주의 옹호 작전에 1,500명 이상이 투입되어 미군 및 연합군의 수송을 지원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쿠웨이트 방어를 위한 경계하는 전사 작전에 580명 이상을 파견했다. 1995년에는 버지니아주 크레니 섬 등지에서 'Resolute Shamrock '95' 훈련을 실시하여 해안 하역 및 수송 능력을 강화했다. 이 대대 규모 훈련에는 당시 육군 유일의 수륙양용차량(LARC-LX) 부대를 포함한 예하 대대들과 포트 유스티스의 육군 수송학교 병력 등이 참여하여, 모의 위기 상황 발생 시 신속한 전개, 장비 이동 및 해상 적재/하역 절차를 숙달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NATO 평화 유지 활동의 일환으로 헝가리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병력을 배치했다.
1996년 초에는 아이티 주둔 미군의 철수를 지원했으며, 1997년에는 쿠웨이트에서의 사막의 천둥 작전 지원을 포함하여 17개국에서 훈련 및 작전에 참여했다. 1999년 4월에는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NATO 창설 50주년 정상회담의 지상 수송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2000년 9월에는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에서 육군과 해군이 합동으로 실시한 'Exercise Turbo Patriot' 훈련에 참가하여 합동 해안 수송(JLOTS) 능력을 시연했다. 이 훈련에서는 하와이에서 이동해 온 제25보병사단의 장비를 공해상에서 하역하여 육군 및 해군의 라이터(lighter)를 이용해 해변으로 운송하는 과정이 포함되었다.
2. 1. 제2차 세계 대전
부대는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인 1942년 7월 6일에 제7승선항만대로 재정되어 6일 뒤인 7월 12일에 노스찰스턴의 육군 주둔지에서 창설되었다. 7월 31일에 수송대 소속 부대로 지정되었고, 1944년 3월 7일 영국으로 보내져 글래스고 항구와 벨파스트 항구를 통제하며 연합군의 군수 물자 수송을 지원하였다. 1945년 VE 데이를 넘기고 8월에 일본군이 항복한 직후, 고베 항으로 배치되었다. 고베 항에서 점령군의 항구를 통한 출입국을 통제하던 중, 1946년 6월 30일에 제7중형항만대로 재편되었고, 같은 해 12월 5일에 해산하였다.2. 2. 한국 전쟁
부대는 1948년 3월 9일 뉴욕주 포트 해밀턴에서 재소집되었고, 같은 해 4월 1일 ''제7수송중형항만대''로 개편되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전쟁에 참전하여 부산에 상륙하였다. 처음에는 부산 기지사령부의 예하 부대로 배치되었으나, 이후 제2군수사령부 아래에서 부산의 모든 항구를 운영하고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유엔군과 대한민국을 지원했다.전쟁 기간 동안 부대의 명칭과 편제는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1951년 12월 1일에는 ''제7수송요항만대''로, 1954년 3월 27일에는 ''제7수송항구사령부 (C형)''으로 개편되었다. 부대는 한국 전쟁이 휴전된 후인 1955년 6월 24일에 해산되었다.
2. 3. 냉전
베트남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1966년 5월 4일 버지니아 육군 국가방위군 ''제7수송사령부 (터미널 B)''로서 7월 1일에 재소집되었다. 이 부대는 베트남 공화국에 배치된 모든 선박 및 터미널 서비스 부대의 배치 훈련 기지 역할을 수행했으며, 1970년 11월 22일에는 ''제7수송단 (터미널)''으로 개편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에는 포트 유스티스와 포트 스토리에 주둔하는 예하 수송대대의 부대 번호가 제7, 10, 11, 24로 재편성되었다.냉전 기간 동안 제7수송단은 여러 군사 작전에 참여했다. 그레나다 철수 작전 중에는 예하 부대가 두 차례에 걸쳐 해상 및 공중으로 화물을 하역하고 적재하기 위해 배치되었다. 또한 정의로운 대의 명분 작전 기간에는 비행장 운영 및 통제 그룹 지원, 기능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파나마에 배치되었다.
1990년 8월 9일, 걸프 전쟁이 발발하자 제7수송단 본부와 예하 제24수송대대는 제22지원사령부에 배속되어 전쟁에 투입되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며칠 만에 부대원들이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제82공수사단에 이어 중동에 배치된 두 번째 미군 부대로, 후속 미군의 전개를 위해 항만, 공항 터미널, 통신선을 준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5] 1990년 8월 18일에 걸프 전구에 도착하여 1991년 8월 14일까지 임무를 수행했다.[5] 제7수송단은 1991년 1월 제32수송여단이 도착하기 전까지 제22지원사령부의 장거리 트럭 운송과 항만 관리 임무를 담당했으며, 첫 해상 항구와 비행장을 개설하면서 부대 규모는 9,200명까지 늘어났다.
2. 4. 21세기
2000년 9월, 육군과 해군은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에서 'Exercise Turbo Patriot' 훈련의 일환으로 합동 해안 수송(JLOTS) 작전을 수행했다. 이 훈련은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위치한 육군 예비군 사령부인 제143수송사령부가 감독했으며, 버지니아주 포트 유스티스의 제7수송여단(복합), 샌디에고의 해군 수륙 양용 제3그룹, 해군 해상 수송 사령부가 병력, 선박, 장비를 제공했다. 하와이주 진주만에서 제25보병사단(경)의 장비가 대형 중속 롤온/롤오프(LMSR) 선박 USNS Seay에 적재되어 캘리포니아 해안으로 이동했고, 공해상에서 하역되어 육군과 해군의 라이터(lighter)로 해변까지 운송되었다.2006년 10월 16일, 전투지원부대 체제가 도입되면서 제7지원여단으로 재편성되었다.

2012년 5월 17일에는 여단 본부가 특수병력대대와 통합되었다.
2014년 1월 16일에 제7수송여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같은 해 3월 21일에는 제7원정수송여단으로 다시 개편되었다. 이 개편을 통해 여단은 전구 작전을 위한 수상정 관리 및 수상 터미널 지원이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2] 제7원정수송여단은 "육군의 해군"으로 불리며, 미국 육군 현역 부대 중 유일한 복합 수송 여단이다. 창설 이후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해 왔으며, 연례 해안 수송 작전(JLOTS)과 같은 훈련을 실시한다.
여단의 주요 임무는 "합동 및/또는 연합군을 작전 지역으로 수용, 배치, 전진 이동 및 통합(RSOI)을 지원하기 위해 다중 모드 수송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일반 사용자 항만, 해안 및 내륙 수로 주 보급로, 전구 철도 터미널, 지역 및 간선 트럭 수송 운영 능력을 포함하며, 그 이상의 역량도 갖추고 있다.
여단은 1개의 이동 통제 대대와 2개의 터미널 대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 대대 모두 복합적이고 다기능적이다. 2016년 1월 기준으로 총 4,000명 이상의 병력, 59척의 선박, 1,100대의 지상 차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차량 중 약 4분의 1은 자재 취급 장비이다.
이 부대는 병력, 장비, 물품을 이동시켜 모든 군의 분과를 지원하며, 인도주의적 임무도 수행한다. 이를 위해 전 세계에서 항구, 철도 터미널, 해안 및 내륙 감시로를 운영한다. 아이티에서의 통합 대응 작전은 제7원정수송여단 인력의 배치 사례 중 하나이다.
3. 부대
'''제7수송여단 (원정) 소속 대대의 문장'''
'''이전'''
4. 상징
제7원정수송여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휘장으로는 어깨 소매 휘장과 고유 부대 휘장이 있다.
어깨 소매 휘장은 1967년 4월 3일 제7수송사령부를 위해 처음 승인되었다. 이후 부대 개편에 따라 1984년 3월 1일 제7수송단에 인가되었고, 2006년 10월 17일에는 제7지원여단에 맞게 재디자인 및 설명이 갱신되었으며, 2014년 1월 16일 제7수송여단을 위해 다시 갱신되었다.
고유 부대 휘장은 1971년 9월 21일 제7수송단을 위해 처음 승인되었으며, 부대가 제7지원여단, 제7수송여단으로 개편됨에 따라 함께 갱신되었다.[3]
4. 1. 부대 휘장
부대 휘장은 1971년 9월 21일에 승인되었다. 휘장은 금색 반태양 아래 11개의 금색 광선이 뻗어 나오는 모습이다. 그 아래에는 벽돌색 테두리가 있는 8개의 살을 가진 금색 선박 조타 장치가 자리 잡고 있으며, 중앙에는 위는 붉은색, 아래는 파란색인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조타 장치 위쪽에는 파란색 두루마리가 걸쳐 있고, 금색 글씨로 부대의 모토인 "RESOLUTE"가 새겨져 있다.휘장의 각 요소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11개의 햇살은 부대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복무한 것과 한국 전쟁에서 10개의 작전에 참전한 것을 의미한다. 중앙의 태극 문양은 부대의 한국 전쟁 참전과 두 차례의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 표창 수상을 나타낸다. 선박 조타 장치와 파란색 두루마리는 수역 터미널 운영 부대를 지휘하는 임무를 상징한다. 휘장에 사용된 벽돌색과 금색(노란색)은 수송 병과를 상징하는 색이다.
4. 2. 어깨 소매 휘장
어깨 소매 휘장은 1967년 4월 3일 제7수송사령부를 위해 처음 승인되었다. 당시 단장이었던 대령 에드워드 T. 포르투나토의 요청에 따라, 예외적으로 1984년 3월 1일부터 제7수송단 병력에게도 이 휘장 착용이 인가되었다. 이후 2006년 10월 17일 제7지원여단에 맞게 재디자인 및 설명과 상징물이 갱신되었으며, 2014년 1월 16일에는 제7수송여단을 위해 다시 갱신되었다.
휘장은 황금색 테두리 안의 벽돌색 방패 모양이다. 중앙 지점에서 7개의 황금색 광선이 뻗어 나오며, 그 위에 파란색 체스 룩이 놓여 있다. 방패 중앙에서 뻗어 나오는 광선은 인원 및 화물의 수령과 분산을 상징하며, 7개의 광선은 부대의 번호를 나타낸다. 체스 말인 '룩'은 성, 즉 중세 시대의 전투원과 물자 보관소를 의미하며, 페르시아어 '로크'(병사)에서 유래했다. 이는 부대에서 한 수송 방식에서 다른 수송 방식으로 이전되는 군대와 장비를 상징한다. 보병의 색상인 파란색은 적대적인 지상 공격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부대의 능력을 의미한다. 벽돌색과 황금색은 수송 병과를 나타낸다.
5.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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