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신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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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신민당은 1946년 2월 16일 김두봉이 중국 연안에서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창당한 정당이다. 김두봉은 조선독립동맹을 기반으로 하여, 신민주주의론을 수용하고 중산층을 좌파로 결집시키는 것을 목표로 민족통일전선 결성을 강조했다. 소련의 압력으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과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이 되었으며, 남쪽에서는 백남운을 중심으로 남조선신민당이 결성되어 남로당에 참여하거나 사회로동당 결성을 시도하는 등 분열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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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민당 - [정당]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조선신민당 |
원어 이름 (한글) | 조선신민당 |
원어 이름 (한자) | 朝鮮新民黨 |
로마자 표기 | Joseon Sinmindang |
약칭 | 없음 |
창립일 | 1946년 2월 16일 |
해산일 | 1946년 11월 23일 |
합병 대상 | 북조선로동당 남조선로동당 |
국가 | 북한 대한민국 |
지도부 | |
지도자 | 김재봉 강달영 김두봉 |
상임 위원 | 확인 필요 |
주석 | 김두봉 |
부주석 | 최창익 한빈 |
간부 | 백남운 허정숙 박효삼 |
이념 및 정치 성향 | |
이념 | 공산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
정치적 위치 | 극좌 |
관련 조직 | |
선행 조직 | 조선공산당 |
통합 정당 | 조선인민당 |
기타 | |
웹사이트 | 없음 |
2. 조선신민당의 창당
1942년 김두봉은 연안(延安)에서 조선독립동맹을 결성하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개편한 조선의용군을 조직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김두봉은 귀국하였으나 소련군과 김일성에 의해 조선의용군은 무장 해제되었다.[3]
1946년 2월 8일, 김두봉은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2월 16일, 조선독립동맹을 기반으로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 사상을 따라 조선신민당을 창당했다.[2] 신민당은 중산층을 좌파로 결집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같은 해 2월, 경성(서울)에는 백남운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선신민당 경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2. 1.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
1942년 김두봉은 연안(延安)에서 조선독립동맹을 결성하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개편한 조선의용군을 조직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3] 조선독립동맹에는 과거 조선민족혁명당에서 함께 활동했던 최창익과 별도로 무장 투쟁을 벌이던 김무정이 합류하면서 세력이 커졌다.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김두봉은 자신의 조직을 이끌고 귀국하였으나, 소련군과 김일성에 의해 조선의용군은 무장 해제되었다.[3] 이후 김두봉의 조선독립동맹은 모스크바 3상 회의 지지 성명을 내며 조선공산당과 마찬가지로 찬탁을 결정했다.[3]
2. 2. 신민주주의론과 창당 배경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김두봉은 12월 13일 자신의 조직을 이끌고 조선으로 귀환하였다. 그러나 소련군의 김일성에 의해 조선의용군은 무장 해제를 당한다. 김두봉의 조선독립동맹은 모스크바 3상 회의 지지 성명을 내고 조선공산당과 마찬가지로 찬탁을 결정했다. 1946년 2월에는 남쪽에 조직을 파견하여 백남운을 위원장으로 하는 독립동맹 경성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군정기 한반도에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3]1946년 2월 8일, 김두봉은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주일 뒤인 2월 16일, 조선독립동맹을 바탕으로 연안에서 만난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 사상을 따라 조선신민당을 창당한다. 신민당은 마오쩌둥이 주창한 신민주주의론을 수용하고(당명은 여기에서 유래), 중산층을 좌파로 결집시키는 것을 목표로 민족통일전선의 결성을 강조했다.[2]
같은 해 2월, 경성(서울)에는 조선학술원 원장이자 경성대학교 교수였던 백남운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선독립동맹 경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이 위원회는 곧 조선신민당 경성특별위원회로 개칭되었고, 나중에 "남조선신민당 중앙위원회"로 개칭되면서 백남운이 계속 위원장을 맡았다.
3. 조선신민당의 활동과 합당
1946년 2월 16일[2] 김두봉은 최창익, 무정 등 조선독립동맹의 동지들과 함께 조선신민당을 창당했다. 신민당은 마오쩌둥이 주창한 신민주주의론을 수용하고, 중산층을 좌파로 결집시키는 것을 목표로 민족통일전선의 결성을 강조했다. 조선신민당의 주석은 김두봉, 부주석은 최창익, 한빈이었다. 주요 당 간부로는 백남운, 허정숙, 박효삼 등이 있었다. 조선신민당은 당시 가장 큰 세를 가지고 있던 조선공산당과 그들의 뒤에 있던 소련에게 있어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3]
3. 1. 북조선로동당과의 합당
소련의 압력으로 조선신민당은 김일성이 이끌던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과 합당을 추진하게 되었다.[3] 1946년 8월, 조선신민당은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과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이 되었다.[4] 김두봉은 북조선로동당 위원장에 취임했지만, 실권은 김일성이 장악했다.3. 2. 남조선신민당과 남로당
1946년 7월 13일 백남운이 이끌던 경성특별위원회는 남조선신민당 중앙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독립했다.[3] 남조선신민당은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과 함께 사회로동당이라는 이름으로 합당을 결의했다.그러나, 그해 11월 조선공산당 간부파 계열인 박헌영이 남로당을 창당하면서 남조선신민당은 남로당에 가담할지를 놓고 내부 분열이 발생했다. 결국, 중앙간부파는 남로당에 흡수되었으며 반(反)간부파는 조선공산당 대회파, 조선인민당 31인파와 함께 사회로동당을 결성하면서 남조선신민당도 소멸하였다.
1946년 11월, 남조선신민당은 조선인민당과 함께 남로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신민당 위원장 백남운과 인민당 당수 여운형 등은 삼당합동에 신중한 입장을 취했고, 여운형을 위원장, 백남운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근로인민당을 결성했다.
4. 주요 인물
조선신민당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김두봉''': 1942년 중국 연안에서 망명 조선인에 의해 결성된 조선독립동맹의 위원장이었다. 1945년 평양으로 귀국하여 1946년 2월 16일 최창익, 무정 등과 함께 조선신민당을 발족시키고 주석직을 맡았다. 1946년 7월, 조선신민당은 북조선 공산당과 합당하여 '''북조선 노동당'''이 되었고, 김두봉은 북조선 노동당 위원장이 되었다.[2]
- '''백남운''': 1946년 2월, 조선학술원 원장이자 경성대학교 교수였던 백남운은 조선독립동맹 경성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곧 조선신민당 경성특별위원회로 개칭했다.[2] 이후 남조선신민당 중앙위원회로 개칭되었고, 백남운이 위원장을 맡았다. 1946년 11월, 남조선신민당은 조선인민당과 함께 조선로동당에 합류하여 남조선로동당을 결성했다.
4. 1. 김두봉
1942년 중국 연안에서 망명 조선인에 의해 결성된 의 위원장이었던 김두봉은 1945년 평양으로 귀국했다.[2] 최창익, 무정 등 조선독립동맹의 동지들과 함께 1946년 2월 16일에 조선신민당을 발족시켰으며, 주석직을 맡았다. 신민당은 마오쩌둥이 주창한 신민주주의론을 수용하고 (당명은 여기에서 유래), 중산층을 좌파로 결집시키는 것을 목표로 민족통일전선의 결성을 강조했다.1946년 7월, 평양의 조선신민당은 북조선 공산당(조선공산당 북부조선분국이 46년 5월에 개칭)과 합병하여 '''북조선 노동당'''이 되었고, 김두봉이 북조선 노동당의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다만 북조선 노동당의 실권은 소련 점령군의 후원을 받은 부위원장 중 한 명인 김일성이 장악하고 있었다.
4. 2. 백남운
1946년 2월, 조선학술원 원장이자 경성대학교 교수였던 백남운은 조선독립동맹 경성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곧 조선신민당 경성특별위원회로 개칭했다.[2] 이 위원회는 나중에 남조선신민당 중앙위원회로 개칭되었고, 백남운이 그대로 위원장이 되었다.1946년 11월, 남조선신민당은 조선인민당과 함께 조선로동당에 합류하여 남조선로동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신민당 위원장 백남운과 인민당 당수 여운형 등은 삼당합동에 신중한 입장을 취했고, 여운형을 위원장, 백남운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근로인민당을 결성했다.
참조
[1]
웹사이트
Timeline
http://nk.chosun.com[...]
2014-12-29
[2]
문서
朝鮮独立同盟が……1946年3月に改称
2002
[3]
뉴스
공산·신민 양당합동과 북조선노동당의 출범 ① - 독립동맹의 조선신민당으로의 변환
http://www.tongilnew[...]
통일뉴스
2001-01-12
[4]
뉴스
공산·신민 양당합동과 북조선노동당의 출범 ② - 신민·공산 양당의 합동 추진
http://www.tongilnew[...]
통일뉴스
200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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