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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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죽수서원은 정암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1570년 조광조를 추모하기 위해 처음 세워졌으며, 같은 해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후 양팽손을 추가로 모셨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71년 복원되었고, 1983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여 재건되었다. 현재 사우, 강당, 동재, 관리사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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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용강서원은 조광조와 교류했던 양팽손과 그의 증손 양신용을 추모하기 위해 1821년에 건립되었으며,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70년에 복원되어 현재 제사를 지낸다.
죽수서원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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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수서원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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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학포로 1786-45 (모산리) |
문화재 유형 | 문화재자료 |
문화재 지정번호 | 130 |
지정일 | 1986년 9월 29일 |
참고 | 화순 모산리 |
2. 역사
죽수서원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사림파 학자인 정암 조광조(1482~1519)와 학포 양팽손(1488~1545)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선조 3년(1570년)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처음 건립되었고, 같은 해 나라로부터 '죽수(竹樹)'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후 인조 8년(1630년) 양팽손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으나, 20세기 후반 유림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복원 및 이전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서원 경내에는 사우, 강당 등의 건물이 전학후묘의 배치로 자리 잡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며 선현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2. 1. 건립과 사액
죽수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정암 조광조(1482~151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선조 3년(1570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같은 해에 나라로부터 '죽수(竹樹)'라는 이름의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2. 2. 추가 배향과 훼철
인조 8년(1630년)에 학포 양팽손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양팽손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중종 14년(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 김정 등을 위해 항소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난 인물이다. 이후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죽수서원은 폐쇄되었고, 이후에는 단(壇)만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왔다.2. 3. 복원과 이전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죽수서원은 폐쇄되었다. 이후 서원 터에는 단(壇)만을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왔다. 1971년, 능주 지역의 유림들과 제주 양씨 후손들이 힘을 모아 월곡리에 죽수서원을 다시 세웠다. 그러나 1983년, 조광조의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로 서원을 옮겨 지으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3. 구조
(내용 없음)
3. 1. 건물 구성
경내에는 세 칸 크기의 사우(祠宇)와 강당(講堂),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건물 배치는 내삼문과 좌우 담장을 경계로 제향 공간과 강학 공간이 나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따른다. 1989년에 동재(東齋)가, 1994년에 관리사가 새로 지어졌다.3. 2. 배치 형태
죽수서원 경내에는 3칸 크기의 사우, 내삼문, 외삼문, 3칸 크기의 강당 등이 있다. 건물 배치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강당을 두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사우를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따른다. 제사 공간과 교육 공간은 내삼문과 이를 좌우로 둘러싼 담장에 의해 분리된다.3. 3. 건축 허용 기준
2020년 1월 16일 '전라남도 지정문화재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행위 등에 관한 허용기준'이 고시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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