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잔류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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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잔류 일본인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중국에 남겨진 일본인들을 지칭한다.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일본의 만주국 건국과 만몽 개척 이민 정책으로 인해 많은 일본인이 만주로 이주했으나, 1945년 소련의 참전과 관동군 철수로 인해 혼란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일본인이 고립되었고, 특히 전쟁 고아와 과부가 발생했다. 중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으로의 귀국이 진행되었지만, 언어 장벽, 사회 적응의 어려움, 위장 귀국 문제, 2세, 3세의 범죄 문제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노력을 기울였으며, 관련 문제는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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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잔류 일본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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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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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 遗华日侨 (yí huá rì qiáo) |
일본어 | 中国残留日本人 (chūgoku zanryū nihonjin) |
영어 | Japanese orphans in China |
상세 내용 | |
관련 배경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중국에 남겨진 일본인 고아 |
추가 정보 | |
관련 소송 | 일본 '전쟁 고아' 소송 제기 BBC News |
관련 기사 | 양부모의 잊혀진 고난 신화통신 |
관련 연구 | 뒤에 남겨진 사람들: 일본의 전시 패배와 만주국의 좌초된 여성들 Japan Focus |
국적 관련 소식 | 일본, 혼외 출생 아동에게 국적 개방 로이터 |
2. 역사적 배경
중국 잔류 일본인은 대부분 어린 시절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아가 된 사람들이다. 1980년대 이후 대체적으로 일본으로 돌아왔으나, 이들 중 약 90%는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38] 또한 80% 이상이 중국 각지에서 중노동 현장에 종사하였고 교육 수준이 낮아, 일본으로 귀국한 뒤에도 생활 보호 계층에 들어가 일본 정부의 지원금과 민간 단체의 기부금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38]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국에 남은 일본인은 약 2,700명이며, 이 중 2,476명과 잔류자 가족 등 3,775명이 2011년까지 일본으로 돌아왔다.
2. 1. 만주국 성립과 일본인 이주
1931년 9월 18일 만주 사변 직후, 일본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를 옹립하여 현재의 중국 동북부에 해당하는 구 만주에 만주국을 건국했다. 이와 동시에 만주 사변 이전부터 제창되었던 일본 내지에서 만주로의 이주 계획인 "만몽 개척 이민"이 실행되어, 1936년 히로타 내각의 계획으로 500만 명, 실제로는 32만 명 이상의 개척민이 이주했다.당시 일본은 미국발 세계 대공황으로 촉발된 쇼와 대공황으로 인해 지방 농촌 지역은 딸을 몸 파는 집이 속출하는 등 곤궁하고 피폐해졌으며, 농업 종사자의 이민 지향도 높아 대규모 이민이 이루어졌다.
2. 2. 소련의 참전과 일본인들의 고난
1945년 8월 8일, 소련은 일본과 맺었던 중립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선전 포고를 한 뒤, 8월 9일 미명에 만주국을 침공했다.[5] 관동군은 민간인에게서 트럭이나 차를 징발하고 열차도 확보했다. 군인 가족들은 그날 밤 열차로 만주 동부로 피난할 수 있었지만, 다음 날 이후 침공 사실을 알게 된 일반인과 민간인들은 이동 수단도 없이 도보로 피난해야 했다. 국경 부근에 거주하던 일본인 중 성인 남성은 관동군의 명령에 따라 "국경 경비군"을 결성하여 소련군에 대치했기 때문에 피난민은 노인, 부녀자, 어린이가 다수였다.소련의 침공과 관동군의 철수로 만주에서 일본의 지배권과 사회 질서는 붕괴되었다. 내륙 이주자들의 귀국은 어려웠고, 피난 중 가족과 헤어지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요동 반도에 소련군이 도달하기 전에 다롄 항에서 출국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일본인 수용소에 수년간 수용되어 귀국이 좌절되었다. 1946년 봄까지 귀국이 허용되지 않아 수용소에서 한파와 영양실조,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속출하여 가족 해체와 사별의 비극이 발생했다. 피난 중 의지할 곳이 없어진 일본인 유아는 연고 또는 인신매매로 중국인의 양자가 되어 '''잔류 고아'''가 되었고, 여성은 중국인의 아내가 되어 '''잔류 부인'''으로 명맥을 이었다.
2. 3. 일본 패전 후의 상황
1945년 8월 8일, 소련은 중립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선전 포고를 한 뒤 8월 9일 만주국을 침공했다. 관동군은 민간인에게서 차량을 징발하고 열차를 확보했지만, 침공 사실을 늦게 알게 된 일반인들은 도보로 피난해야 했다. 국경 부근 일본인 남성은 국경 경비군을 결성해 소련군에 대치했기에, 피난민은 노인, 부녀자, 어린이가 다수였다.[38]소련의 침공과 관동군의 철수로 만주에서 일본의 지배권과 사회 질서는 붕괴되었다. 내륙부 이주자들의 귀국은 어려웠고, 피난 중 가족과 헤어지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았다. 요동 반도에 소련군이 도달하기 전 다롄 항에서 출국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본인 수용소에 수년간 수용되어 귀국이 좌절되었다. 1946년 봄까지 귀국이 허용되지 않아 수용소에서 한파와 영양실조,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 피난 중에 의지할 곳이 없어진 일본인 유아는 중국인의 양자가 되어 '''잔류 고아'''가 되었고, 여성은 중국인의 아내가 되어 '''잔류 부인'''이 되었다.[38]
1946년 봄부터 호로도 등 항구에서 100만 명 이상의 일본인이 귀국했지만, 국공 내전이 재개되면서 중화민국군이나 중국 공산당군에 징병되거나 노동자로 징용되었다. 일본인에 대한 가혹한 지배로 통화 사건 등의 학살도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1953년 "미귀환자 유족 등 원호법"을 제정[5]하고 1958년 집단 인양을 종료, 1959년 "미귀환자에 관한 특별 조치법"을 제정[6]하여 잔류 고아 등의 호적을 "전시 사망 선고"로 말소했다.
2. 4. 중일 국교 정상화와 귀국 노력
중국 잔류 일본인|중국 잔류 일본인중국어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아가 된 사람들이다. 1980년대 이후 대체적으로 일본으로 돌아왔으나, 이들 중 약 90%는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38] 또한 80% 이상이 중국 각지에서 중노동 현장에 종사하였고 교육 수준이 낮아,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생활 보호 계층에 들어가 일본 정부의 지원금, 민간 단체의 기부금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38]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국에 남은 일본인은 약 2,700명이며, 이 중 2,476명과 잔류자 가족 등 3,775명이 2011년까지 일본으로 돌아왔다.3. 현재 상황
2022년 8월 1일 현재, 영주 귀국한 중국 잔류 일본인과 그 가족은 20,911명이다.[7] 평균 연령은 80세[8][9]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10]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아가 되었는데, 1980년대 이후 대체적으로 일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들 중 약 9할은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하며, 8할 이상이 중국 각지에서 중노동 현장에 종사하였고 교육 수준이 낮아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생활 보호 계층에 들어가 일본 정부의 지원금과 민간 단체의 기부금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38] 고베시는 중국 잔류 일본인을 위한 공동 묘지에 토지를 제공하고, 묘비 건립 비용은 귀국자가 부담한다.[11] 중국에서 귀국한 일본인 단체로는 NPO 법인 "중국 귀국자의 모임" 등이 있다.[12]
4. 문제점
중국 잔류 일본인과 그 가족들은 일본 사회에서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어린 시절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고아가 되어, 대부분 1980년대 이후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약 90%가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38] 또한, 80% 이상이 중국에서 중노동에 종사하여 교육 수준이 낮아, 일본 귀국 후에도 생활 보호 대상자가 되어 정부 지원금과 민간 단체 기부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38]
2022년 8월 1일 현재, 영주 귀국한 중국 잔류 일본인과 그 가족은 20,911명이며,[7] 평균 연령은 80세[8][9]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10] 이들은 중국인 양부모 밑에서 자라 일본어와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사회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 위장 잔류 일본인 문제, 법적 문제, 그리고 2세 및 3세의 범죄 문제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4. 1. 사회적 고립
중국 잔류 일본인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아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대체로 일본으로 돌아왔으나, 이들 중 약 90%는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38] 이들은 중국인으로 양육되어 일본어를 거의 익히지 못했고, 경력 향상 등 일본 사회 적응 능력이 부족하다. 귀국자의 80% 이상이 생활 보호를 받고 있으며, 국가 및 정부의 원조금과 봉사 단체의 기부금 등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로부터 고립[13]되고 고령화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요양 보험 등의 복지 지원을 받고 싶어도 언어의 장벽 때문에 이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으며, 고령화된 귀국자들이 집에 틀어박히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14] 양로원에 들어간 후에도 일본어와 일본의 풍습을 몰라 고립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을 배치하는 대책을 취하고 있지만,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15]
4. 2. 경제적 어려움
대부분의 중국 잔류 일본인들은 어린 시절에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아가 되었다. 80년대 이후 대체로 일본으로 돌아왔으나, 이들 중 약 90%는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38] 또한 80% 이상이 중국 각지에서 중노동 현장에 종사하였고, 교육 수준이 낮아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생활 보호 계층에 속하여 일본 정부의 지원금과 민간 단체의 기부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38] 2022년 8월 1일 현재, 영주 귀국한 중국 잔류 일본인과 그 가족은 20,911명이다.[7] 평균 연령은 80세[8][9]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10]
중국 귀국자·정착 촉진 센터
중국인 양부모 밑에서 자라 일본어를 거의 익히지 못했고, 경력 향상 등 일본 사회 적응 능력이 부족하여 귀국자의 80% 이상이 생활 보호를 받고 있다. 이들은 국가 및 정부의 원조금과 봉사 단체의 기부금 등으로 생활하며, 사회로부터의 고립[13], 고령화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2010년 일본 오사카에서는 중국 잔류 고아를 사칭한 푸젠성 출신 중국인 자매와 친족 등 48명이 방일 직후 생활 보호를 신청하여 32명이 수급받는 사건이 발생했다.[16][17] 법무성 오사카 출입국관리국은 오사카시에 재류 자격 재조사를 지시했고,[18] 오사카시는 2010년 7월 22일 "생활 보호 수급을 목적으로 입국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이미 지급된 26명의 생활 보호를 중단하고 심사 중인 2명의 신청도 기각했다.[19] 오사카 출입국관리국의 조사 결과, 입국 후 3개월 이내에 생활 보호를 신청한 중국인 중 8명은 신청서의 직업란에 "생활 보호", "무직", 부양자란에 "구청"이라고 기재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 법무성 출입국관리국 경비관인 쿠보 이치로는 "중국 잔류 일본인은 인권과 관련된 부분이 있어 심사가 특히 관대하다. 서류가 갖춰지면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허가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20]
잔류 일본인의 친족을 위장하여 불법 체류하며 10년 이상 생활 보호를 부정 수급한 사건도 있었다. 이 사건에서 처음 잔류 일본인을 사칭하여 입국했던 중국인은 진짜 잔류 일본인의 존재가 밝혀진 후 귀국했다.[21][22][23][24]
무관한 중국인을 잔류 일본인이나 그 친족으로 가장하여 대량 입국시키는 브로커가 존재한다. 이들은 수백만 엔의 수수료를 받고 고아의 가족에게 사례금을 건네며, 중국에서 호적과 여권을 위조하여 중국인을 잔류 일본인으로 속여 입국시킨다.[25]
2005년 9월, 중국 산시성에 거주하는 잔류 일본인 여성이 동명이인이자 동일 호적을 가진 중국인이 이미 일본에 입국해 있어 일본 귀국이 인정되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다. 1995년에 잔류 일본인을 사칭한 중국인 여성과 친족 등이 입국했고, 그 후 여성은 귀국했지만 친족이 생활 보호를 계속 수급하다 2007년에 체포되었다.[21][22] 이 중국인 여성의 장남은 일본에 입국하기 위해 중국인인 어머니에게 잔류 일본인을 자칭하게 하여 입국시켰다고 한다.[23] 체포된 브로커는 이 사건만으로 57명의 중국인을 친족으로 입국시킬 계획이었다고 한다.[24]
잔류 일본인과 혈연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며 일본에 왔지만, 혈연관계를 증명하지 못해 부모가 수용된 후 강제 퇴거되는 사례도 있다. 일례로, 아내가 잔류 일본인의 자녀라고 주장하며 입국한 나라현 거주 부부가 혈연관계를 증명하지 못하고 오사카 입국관리국에 수용되어 강제 퇴거 처분을 받았다. 부모는 중국으로 강제 송환되었고, 일본에 남겨진 부부의 두 자녀는 재류 특별 허가를 요구했다. 2009년 10월 9일, 지바 케이코법무상은 이들에게 1년간의 재류 특별 허가를 인정했다.[26][27]
한 명의 고아에게 수십 명의 중국인 "친족"이 따라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2005년에는 법무성이 잔류 고아·부인의 친족 초청 범위를 양자나 계자에게도 확대했다. 그 결과, 한 잔류 부인에 대해 중국인 남편이 데려온 자녀 7명과 친자 8명을 시작으로 증손까지 총 91명의 "친족"이 입국한 사례가 있다. 이 사례에서는 남편이 데려온 자녀 3명의 친족이 과거에 다른 고아의 친족으로 위장 입국하여 강제 송환된 전력이 있었다.[28]
4. 3. 위장 잔류 일본인 문제
브로커를 통해 무관한 중국인을 잔류 일본인이나 그 친족으로 위장시켜 일본에 대량으로 입국시키는 문제가 심각하다. 브로커는 수백만 엔의 수수료를 받고, 고아의 가족에게 사례금을 주며, 중국에서 호적과 여권을 위조하여 중국인을 잔류 일본인으로 속여 입국시킨다.[25]2005년 9월, 중국 산시성에 거주하는 실제 잔류 일본인 여성이, 동명이인이면서 동일한 호적을 가진 중국인이 이미 일본에 입국해 있어 귀국이 불가능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서는 1995년에 잔류 일본인을 사칭한 중국인 여성과 친족 등이 일본에 입국했고, 이후 여성은 귀국했지만 친족이 생활 보호를 계속 받다가 2007년에 체포되었다.[21][22] 이 중국인 여성의 장남이 일본에 입국하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중국인)에게 잔류 일본인을 자칭하게 하여 입국시켰다고 한다.[23] 체포된 브로커는 이 사건만으로 57명의 중국인을 친족으로 입국시킬 계획이었다.[24]
잔류 일본인과 혈연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며 일본에 왔지만, 혈연관계를 증명하지 못해 부모가 수용된 후 강제 퇴거되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잔류 일본인의 자녀라고 주장하며 입국한 나라현 거주 부부는 혈연관계를 증명하지 못하고 오사카 입국관리국에 수용되어 강제 퇴거 처분을 받았다. 부모는 중국으로 강제 송환되었고, 일본에 남겨진 부부의 두 자녀는 재류 특별 허가를 요구했다. 2009년 10월 9일, 지바 케이코 법무상은 이들에게 1년간의 재류 특별 허가를 인정했다.[26][27]
2005년에는 법무성이 잔류 고아 및 부인의 친족 초청 범위를 양자나 의붓자식에게도 확대했다. 그 결과, 한 명의 잔류 부인에 대해 중국인 남편이 데려온 자녀 7명과 친자 8명을 포함하여 증손까지 총 91명의 '친족'이 입국한 사례가 있다. 이 사례에서 남편이 데려온 자녀 3명의 친족은 과거에 다른 고아의 친족으로 위장 입국하여 강제 송환된 적이 있었다.[28]
4. 4. 법적 문제와 지원 제도
중국 잔류 일본인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아가 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 대체로 일본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이들 중 약 90%는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38] 또한 80% 이상이 중국 각지에서 중노동에 종사했고 교육 수준이 낮아, 일본 귀국 후에도 생활 보호 대상자가 되어 일본 정부 지원금과 민간 단체 기부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38] 2022년 8월 1일 기준, 영주 귀국한 중국 잔류 일본인과 그 가족은 20,911명이다.[7] 평균 연령은 80세[8][9]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10]중국인 양부모 밑에서 자라 일본어를 거의 익히지 못했고, 경력 향상 등 일본 사회 적응 능력이 부족하여 귀국자의 80% 이상이 생활 보호를 받고 있다. 이들은 국가 및 정부 원조금, 봉사 단체 기부금 등으로 생활하며, 사회적 고립[13], 고령화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2004년, 후쿠오카현에서 잔류 고아 32명이 전후 귀국 기회를 박탈당하고 귀국 후에도 국가가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며 1인당 3300만엔(총액 10.56억엔)의 국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유사한 소송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2006년에는 영주 귀국한 고아의 약 80%인 2,201명이 원고로 참여, 전국 15개 지방 법원과 1개 고등 법원에서 집단 소송이 진행되었다.
2005년 오사카 지방 법원은 청구를 기각했으나, 2006년 고베 지방 법원은 원고 65명 중 61명에 대해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4.686억엔 지급을 명령했다. 판결문은 "납치 사건 피해자에 대한 두터운 보호 및 지원에 비해 차별적이다"라는 판단을 제시했다.[31] 2007년 1월 30일 도쿄 소송과 2007년 3월 23일 도쿠시마 지방 법원 소송은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원고단과 면담하고, 야나기사와 하쿠오 후생노동대신(당시)에게 새로운 지원책 검토를 지시했다. 후생노동성은 기초 연금 만액 지급과 생활 보호를 대체하는 특별 급부금 제도를 제안했다.
그러나 원고단은 생활 보호 세대 대상 급부금이 생활 보호와 동일 수준으로 지급되는 것에 대해 "옷만 바꿔 입은 생활 보호"라며 반발했다. 전국 원고 대표단 부대표 우쓰노미야 다카요는 "후생노동성 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생활 보호와는 독립된 보상 제도가 필요하다"라고 중국어로 호소했다.[32]
2007년 11월 28일, 여야 합의로 '개정 중국 잔류 일본인 지원법'이 의원 입법으로 성립되었다. (2007년 12월 5일 공포, 2008년 1월 1일 시행(일부 제외)) 이 법은 중국 잔류 일본인의 생활 안정을 위해 ① 노령 기초 연금 등 만액 지급 (약 6.6만엔, 2007년 기준) ② 공적 연금 제도만으로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어려운 경우 생활 지원 급부 (약 8만엔, 의료 및 간병 등 필요시 무상 지급) 등을 규정했다. ③ 또한, 중국 잔류 일본인이 지역 사회에 적응하도록 일본어 교실 및 지역 교류 사업 등도 예산 조치로 실시되고 있다.
2007년 12월, 영주 귀국자 약 2,200명이 제기했던 일본 정부 손해 배상 청구 집단 소송은 법률 성립에 따라 각자 소송을 취하했다. 이후 계속된 2건의 소송도 2009년 2월 최고 재판소 상고 기각으로 모두 종결되었다.
4. 5. 2세, 3세의 범죄 문제
최근 중국 잔류 일본인 2세, 3세가 마피아화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중국 잔류 고아를 중심으로 구성된 중국인 마피아로, 도쿄에서 동포인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보호비를 요구하는 등의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중국 잔류 고아 2세, 3세는 일본 국적이나 일반 영주자 신분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보복을 두려워하여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33]이들 마피아는 보호비 지급을 거부하는 사람을 폭행하거나, 심지어 무고한 행인을 폭행 살해하는 등 그 세력이 점차 확대되고 흉악해지고 있다. 권총으로 무장하고 폭력단과 항쟁을 벌이기도 하는데, 일례로 중국 잔류 고아 마피아 조직 중 하나인 노라켄(怒羅権)은 2002년 9월 가부키초에서 스미요시회(住吉会) 간부를 사살하기도 했다.
과거 도쿄에는 푸젠 성(福建省)이나 상하이(上海) 출신 중국인 마피아가 활동했으나, 경찰의 지속적인 단속으로 체포 및 강제 송환되어 조직이 축소, 궤멸되었다. 그러나 중국 잔류 고아 마피아는 체포되더라도 강제 송환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세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현재는 중국 본토의 마피아를 일본으로 끌어들이거나 불량 일본인, 중국인 유학생을 하수인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4. 6. 기타 문제
2005년 외무성 직원이 중국 잔류 고아 2세 남성(민간인. 국적은 일본)에게 중화인민공화국에서의 첩보 활동을 의뢰하여 중화인민공화국 당국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28] 같은 해 중의원 총선거에서는 일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잔류 일본인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인권 침해라며 중국어로 공시해 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5. 관련 작품
- 야마자키 도요코의 소설 대지의 아이[37]
- 하세 세이슈의 소설 불야성 (1996년) - 사토 나쓰미와 우 푸춘이 중국 잔류 고아 2세로 등장한다.
- 오사와 아리마사의 소설 콰르텟 -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중국 잔류 고아 3세이다.
- 시모무라 아쓰시의 소설 어둠에 풍기는 거짓 (2014년)
- 와다 노보루의 논픽션 『망향 - 중국 잔류 고아의 아버지 야마모토 지쇼』 (1987년)
- * 와다 노보루의 논픽션 『망향의 종 중국 잔류 고아의 아버지 야마모토 지쇼』 (2013년)
- 中田芳雄|나카다 요시오일본어의 수필 随想|즈이세츠일본어 - 대륙에 걸린 다리』 (1993년, 청년출판사) - 저자 자신이 만몽 개척 청소년 의용군에 참가한 후, 잔류 고아가 되었다.
- 井田真木子|이다 마키코일본어의 논픽션 シャオレンの恋人|샤오리엔의 연인일본어 - 신일본인으로서의 잔류 고아 2세』 (1995년, 분게이슌주) - 제15회 고단샤 논픽션상 수상
- 井田真木子|이다 마키코일본어의 논픽션 『프로레슬링 소녀 전설』 (1993년, 분게이슌주) - 제22회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수상. 작중, 아마다 레이분이 등장한다.
- 마스다 쇼이치의 논픽션 『만주의 별똥별과 흩어진 아이들의 유서 신쿄 시키시마 지구 난민 수용소의 고아들』 (1998년)
- * 마스다 쇼이치의 논픽션 『약속: 만주의 고아들의 생명의 빛』 (2001년)
- 키도 히사에의 논픽션 『저 전쟁에서 멀리 떨어져 나에게 이어진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 (정보센터출판국, 2007년) - 제39회 오야 소이치 논픽션상 수상, 제30회 고단샤 논픽션상 수상.
- 야마자키 도요코의 作家の使命 私の戦後―山崎豊子 自作を語る 作品論|작가의 사명 나의 전후―야마자키 도요코 자작을 말하다 작품론일본어 (2011년 12월, 신초샤)
- 新庄卓|신쇼 타쿠일본어의 사진집 中国残留日本孤児肖像写真集 私は誰ですか|중국 잔류 일본 고아 초상 사진집 저는 누구입니까일본어 (1990년 7월, 「私は誰ですか」刊行委員会|「저는 누구입니까」간행위원회일본어)
- 히로카네 겐시의 만화 안녕, 핼로 - 제2권, 파일 15, "황혼 대륙"
- 카리야 테츠 원작, 하나사키 아키라 작화의 만화 맛의 달인 - 제9권 - 제4화/검은 생선회 (말쥐치 간)
- 마루야마 쿄스케, 시나리오: Zoo의 만화 TSUYOSHI, 아무도 이길 수 없어, 그 녀석에게는
- 마사키 마키의 青い記憶|푸른 기억일본어 (1991년 8월, 소도 문화)
- 영화 유천촌의 아이 (1991년, 중국)
- 푸른 기억 만몽 개척과 소년들일본어 (1993년, 일본, 감독: 데자키 사토시)
- 영화 불야성 (1998년, 李志毅|리쯔이중국어 감독) - 사토 나츠미 (배우: 야마모토 미라이)와 우푸춘 (배우: 시이나 킷페이)이 잔류 고아 2세.
- 영화 DEAD OR ALIVE 범죄자 (1999년, 일본)
- 영화 花あかり―ある中国残留婦人―|꽃불-어떤 중국 잔류 부인-일본어 (2007년, 감독: 히가시 시즈) - 아이치 국제 여성 영화제 2007·아이치현 흥행 협회상
- 영화 山本慈昭|야마모토 지쇼일본어 望郷の鐘|망향의 종일본어 満蒙開拓団の落日|만몽 개척단의 낙일일본어 (2014년, 야마다 히사코 감독)
- 드라마 어머니의 비극 (1982년, 요미우리 TV)
- 드라마 초신성 플래시맨 (1986~1987년, TV 아사히) - 주인공들의 "우주로 납치된 아이들이 20년 후에 지구로 돌아온다"는 설정은 중국 잔류 고아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 드라마 別れ 広島の日々|이별 히로시마의 날들일본어 (1993년, 중국 연속 드라마) - 주인공 다케다 시게코는 중국에 잔류한 일본인 소녀.
- 드라마 대지의 아이 (1995년, NHK)
- 드라마 아득한 인연 (2009년, NHK) - 키도 히사에의 『저 전쟁에서 멀리 떨어져 나에게 이어진 역사를 따라가는 여행』이 원작.
- 드라마 작은 이모 둬허 (2009년, 중국 연속 드라마)
- 드라마 콰르텟 (2011년, 마이니치 방송) - 등장인물 중 한 명이 3세.
- 드라마 강행 귀국 ~잊혀진 신부들~ (2012년, TBS) - 귀국과 일본 정착에 헌신한 로큐쿠 시・구니토모 타다시의 인생과 투쟁을 그린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 드라마 머나먼 약속 ~별이 된 아이들~ (2014년, TBS)
- 드라마 레드 크로스 ~여인들의 적지~ (2015년, TBS)
- 드라마 [https://www.wowow.co.jp/drama/original/coldcase3/ 콜드 케이스 3 ~진실의 문~] 제9화 『고향』 (2021년, WOWOW)
- 드라마 식객 (원작: 카리야 테츠, 작화: 하나사키 아키라) - 1990년 7월 24일 방송・제74화, "검은 사시미"
- 게임 용과 같이 0: 맹세의 장소 (2015년, 세가) - 메인 스토리에서 중국 잔류 고아 2세인 남매의 갈등이 주요 테마 중 하나로 다루어진다.
- 사잔 올 스타즈의 노래 흐르는 구름을 쫓아서 (작사·작곡 쿠와타 케이스케, 메인 보컬 하라 유코, 앨범 NUDE MAN에 수록)
- 사잔 올 스타즈의 노래 떡갈나무 아래에서 (작사·작곡 쿠와타 케이스케, 쿠와타 케이스케와 하라 유코의 듀엣, 앨범 키레이에 수록)[37] - 이 두 곡은 작곡가 쿠와타 케이스케의 아버지가 만주에서 온 귀환자였던 것이 제작 배경에 영향을 주고 있다.
- 맹독의 곡 중국 잔류 고아
- [https://web.archive.org/web/20191021123250/https://www.nhk.or.jp/docudocu/program/20/2259627/ ETV 특집 「나는 누구인가 我是誰 ~중국 잔류 일본인 3세의 질문~」] (2018년 9월 22일 방송)
- 영상의 세기 버터플라이 이펙트 두 개의 패전국 일본 660만 명의 고독 (2024년 11월 18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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