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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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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시크는 '한글이 즐거운 인터넷'을 표방하며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최초의 한글 검색 엔진이다. 1995년 당시, 영어 기반의 검색 엔진 환경에서 겪는 한글 검색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개발되었으며, 초기에는 홈페이지 목록 기반의 검색 서비스를 제공했다. 코시크는 한글 홈페이지 붐을 촉발하고, 후속 한글 검색 엔진 개발에 영향을 미치는 등 한국 인터넷 생태계 발전에 기여했다.

2. 초기 인터넷 환경

1993년 라스베가스의 컴덱스 쇼에서 월드 와이드 웹(WWW)이 대중에 첫선을 보인 이듬해에 웹은 한국에도 소개되었다. 그때 정부의 투자로 완성된 연구망과 교육망의 센터가 공교롭게도 대전의 카이스트충남대학교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이 두 학교는 학내 bbs 활동이나 인터넷 활용에서 타 대학의 학생들보다 월등히 앞선 경험을 하게 된다. 대전 엑스포가 열리면서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된 유성구 일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유흥업소들의 심야 영업이 허용되었는데 이때 충남대학교의 BBS 인 꼬맹이네를 통해 전국적인 오프모임이 유성에서 열리는 등 인터넷을 앞서 경험한 대학생들의 회합이 잦아졌다.

1994년에 학생들 주도로 비공식 홈페이지가 만들어져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워킹그룹을 주도하며 전국적인 세력 확산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1995년 1월에는 충남대학교 1공관 취봉홀에서 전국에서 웹에 관심있는 대학생들이 모여 월드와이드웹코리아(WWW-KR) 1회 행사를 주최하기에 이른다. 1995년은 대학을 선두로 한 사회 각분야에서 홈페이지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홈페이지가 속속 등장했다.

1995년은 인터넷에 웹페이지가 한창 붐을 이루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당시 초기에 등장했던 외국 검색엔진은 영어 위주의 인터넷 검색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때는 모든 언어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유니코드 이전 시기여서 영어권 사람들이 사용하는 웹브라우저에서 한글은 폰트가 깨져서 읽을 수 없었다. 때문에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검색엔진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검색엔진을 운영하던 영어권 사람들을 위해 영어로 된 홈페이지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한국사람들에게 영어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검색하도록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은 완전하지도 않았고 통일되지도 못했던 탓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검색엔진에 등록하기 어렵고 검색서비스를 이용해 찾기도 어려웠다.

한글을 영문으로 표기하는 로마자표기법이 있었으나 여러 가지 혼란으로 정확한 표기를 할 수 없었던 탓이다.

가령 검색엔진에서 경북대학교, 전북대학교, 충북대학교 등을 검색하려고 한다면 '북'자의 영문표기는 'pook', 'puk', 'buk', 'book' 등으로 쓰이고 있어 검색엔진에 이들을 모두 검색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뿐만 아니라 모음의 'ㅐ', 'ㅛ', 'ㅖ', 'ㅢ' 등이 들어가는 발음은 통일된 영문 표기법으로 검색할 수 없다.

또한 'ㅈ'의 경우 J, Z, CH 등이 섞여서 사용되었는데 당시 제주(Cheju)의 경우처럼 자음이 위치한 순서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ㄱ'의 경우에는 K, G 가 혼용되었으며 'ㄷ'의 경우 D,T 등이 혼용되었다.

초기 한국의 웹사이트 수가 수천 개 미만일 때까지는 한국의 홈페이지 목록이 만들어져 보급되었다. 한국 홈페이지 목록은 충남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이강찬씨(현재 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와 동국대학교 모 교수가 제공하는 홈페이지 목록이 대표적이었다.

홈페이지 목록은 웹문서 형태로 존재하였으며, 한국에 존재하는 많은 홈페이지를 나열하고 링크를 걸어 그 웹페이지에 갈 수 있도록 정리한 형태로 제공되었다. 웹브라우저로 해당 목록을 표시하는 웹페이지를 로딩한후 웹문서의 찾기 기능으로 한글을 검색하여 찾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으며,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자세한 내용에 대한 검색은 할 수 없었다. 더욱이 한글홈페이지가 증가되면서 목록이 수시로 갱신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

한글로 작성된 웹사이트 수가 늘어나면서 이를 목록을 가지고 찾는데 여러 어려움이 점차 가중되게 되었으며 한글 홈페이지 개설자들은 쉽게 홈페이지를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없었다.

2. 1. 한글 사용의 어려움

1995년은 인터넷에 웹페이지가 한창 붐을 이루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당시 초기에 등장했던 외국 검색엔진은 영어 위주의 인터넷 검색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때는 모든 언어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유니코드 이전 시기여서 영어권 사람들이 사용하는 웹브라우저에서 한글은 폰트가 깨져서 읽을 수 없었다. 때문에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검색엔진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검색엔진을 운영하던 영어권 사람들을 위해 영어로 된 홈페이지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한국사람들에게 영어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검색하도록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은 완전하지도 않았고 통일되지도 못했던 탓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검색엔진에 등록하기 어렵고 검색서비스를 이용해 찾기도 어려웠다.

한글을 영문으로 표기하는 로마자표기법이 있었으나 여러 가지 혼란으로 정확한 표기를 할 수 없었던 탓이다.

가령 검색엔진에서 경북대학교, 전북대학교, 충북대학교 등을 검색하려고 한다면 '북'자의 영문표기는 'pook', 'puk', 'buk', 'book' 등으로 쓰이고 있어 검색엔진에 이들을 모두 검색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뿐만 아니라 모음의 'ㅐ', 'ㅛ', 'ㅖ', 'ㅢ' 등이 들어가는 발음은 통일된 영문 표기법으로 검색할 수 없다.

또한 'ㅈ'의 경우 J, Z, CH 등이 섞여서 사용되었는데 당시 제주(Cheju)의 경우처럼 자음이 위치한 순서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ㄱ'의 경우에는 K, G 가 혼용되었으며 'ㄷ'의 경우 D,T 등이 혼용되었다.

초기 한국의 웹사이트 수가 수천 개 미만일 때까지는 한국의 홈페이지 목록이 만들어져 보급되었다. 한국 홈페이지 목록은 충남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이강찬씨(현재 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와 동국대학교 모 교수가 제공하는 홈페이지 목록이 대표적이었다.

홈페이지 목록은 웹문서 형태로 존재하였으며, 한국에 존재하는 많은 홈페이지를 나열하고 링크를 걸어 그 웹페이지에 갈 수 있도록 정리한 형태로 제공되었다. 웹브라우저로 해당 목록을 표시하는 웹페이지를 로딩한후 웹문서의 찾기 기능으로 한글을 검색하여 찾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으며,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자세한 내용에 대한 검색은 할 수 없었다. 더욱이 한글홈페이지가 증가되면서 목록이 수시로 갱신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

한글로 작성된 웹사이트 수가 늘어나면서 이를 목록을 가지고 찾는데 여러 어려움이 점차 가중되게 되었으며 한글 홈페이지 개설자들은 쉽게 홈페이지를 알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없었다.

2. 2. 초기 웹사이트 목록

3. 한글 검색 엔진의 등장

3. 1. 코시크 (Kor-Seek)

코시크는 '한글이 즐거운 인터넷'을 기치로 한글 검색 서비스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홈페이지 목록에 올라와 있는 4000여개 홈페이지를 요약한 DB를 이용하여 키워드 검색과 디렉토리 검색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홈페이지 등록 서비스를 개설하여 신규로 개설된 홈페이지를 검색해주었다.

최초의 한글 검색 엔진 개발자인 김영렬은 학생 신분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며 노후화된 서버 시스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서비스 중단을 예고하기도 했으나, WWW-KR의 서버 지원으로 일반 PC 서버에 리눅스를 탑재한 형태로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었다.

코시크의 출현은 국내 홈페이지 신규 생성 및 코시크 등록 요청으로 이어져 한글 홈페이지 붐을 촉발시켰다. 이후 한글 홈페이지 수는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인터넷 기반의 벤처 붐이 불게 되었다.

코시크 개발자 김영렬은 한국전산원의 검색 엔진 표준화 위원회에 참가하여 검색 엔진 쿼리 표준화에 힘썼으며, 1998년 코시크 서비스는 공식 종료되었다. 1997년 코시크는 농림부 산하 농림수산정보센터에 리눅스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전문 검색 엔진으로 납품되기도 하였으나, 직접적인 사업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3. 2. 코시크의 기술적, 사회적 의의

4. 후속 검색 엔진

코시크의 성공은 다른 한글 검색 엔진 개발에 영감을 주었다. 1996년, 대구대학교 학생 김성훈이 개발한 '까치네(www.kachi.com)'는 로봇 에이전트를 탑재하여 자료를 수집하는 특징을 선보였다. 같은 해 계명대학교 학생 박민우는 '와카노(www.wakano.com)'를, KAIST의 승현석은 '미스다찾니(www.mochanni.com)'를 개발하여 발표했다. 이들은 코시크 발표 이후 등장한 초기 한글 검색 엔진들이다.

4. 1. 다양한 검색 엔진의 등장

1996년, 대구대학교 학생 김성훈이 개발한 '까치네(www.kachi.com)'는 로봇 에이전트를 탑재하여 자료를 수집하는 특징을 선보였다. 같은 해 계명대학교 학생 박민우는 '와카노(www.wakano.com)'를, KAIST의 승현석은 '미스다찾니(www.mochanni.com)'를 개발하여 발표했다. 이들은 코시크 발표 이후 등장한 초기 한글 검색 엔진들로, 자체적인 기술 개발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선을 통해 경쟁하며 발전했다.

5. 한국 인터넷 생태계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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