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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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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는 1990년 에모리 대학교 졸업 후 방랑 생활을 시작한 미국의 젊은이이다. 그는 알래스카에서 버려진 버스에서 생활하다가 사망했으며, 그의 삶은 여러 책, 영화,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되었다. 그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영양실조, 독성 물질 섭취 등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었으며, 그의 삶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 부정적 시각으로 나뉘어 논란이 있다. 매캔들리스가 머물렀던 '매직 버스'는 등산객들에게 유명한 목적지가 되었지만, 안전 문제로 인해 2020년 철거되었고 현재는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대학교 노스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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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매캔들리스, 페어뱅크스 시 교통 시스템 버스 142 옆, 스탬피드 트레일에서 발견
매캔들리스, 페어뱅크스 시 교통 시스템 버스 142 옆, 스탬피드 트레일에서 발견. 사후 그의 카메라에서 현상되지 않은 사진 필름 형태로 발견됨
본명크리스토퍼 존슨 매캔들리스
다른 이름알렉산더 슈퍼트램프
출생1968년 2월 12일
출생지미국 캘리포니아주 잉글우드
사망1992년 8월경 (24세)
사망 장소미국 알래스카주 스탬피드 트레일
사망 원인기아
시신 발견1992년 9월 6일
학력윌버트 터커 우드슨 고등학교
모교에모리 대학교 (문학사)
부모월트 매캔들리스 (아버지)
빌리 매캔들리스 (어머니)

2. 초기 생애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는 1986년 페어팩스의 W.T. 우드슨 고등학교를 졸업했다.[8] 학업 성적이 뛰어났지만, 교사와 동료들은 그가 "다른 박자에 맞춰 행진했다"고 평가했다. 크로스컨트리 팀 주장을 맡아 팀원들에게 달리기를 "세상의 모든 악"에 맞서 싸우는 영적인 훈련으로 여기도록 권유했다.[9]

1986년 여름, 남부 캘리포니아로 여행하여 친척 및 친구들과 재회한 그는 아버지의 중혼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존 크라카우어는 이 사실이 매캔들리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했다.[10]

1990년 5월 에모리 대학교에서 역사인류학을 복수 전공하여 학사 학위를 받았다.[9] 졸업 후, 대학 저축금 24000USD을 옥스팜에 기부하고 방랑자의 삶을 시작했다.[12] 그는 여러 차례 장거리 야생 하이킹 여행을 하고, 콜로라도 강 일부 구간을 카누로 내려갔으며, 1992년 4월 알래스카로 히치하이킹을 떠났다.[13]

2. 1. 가족 및 성장 배경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는 인글우드에서 태어나 엘세군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월터 "월트" 매캔들리스와 어머니 빌헬미나 마리 "빌리" 매캔들리스 (결혼 전 성은 존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971년 7월에 태어난 여동생 캐린이 있었다. 월트의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6명의 이복 형제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캘리포니아와 덴버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6]

1976년, 가족은 애넌데일로 이사했고, 아버지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안테나 전문가로 일했다. 어머니는 휴즈 항공에서 비서로 일했으며, 부부는 집에서 컨설팅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다.[6]

캐린 매캔들리스는 회고록 《와일드 트루스》에서 부모가 서로와 자녀들에게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가했으며,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학대받은 어린 시절과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을 읽은 것이 오빠가 황야로 "사라지려는" 동기가 되었다고 말했다.[7] 그러나 월트와 빌리 매캔들리스는 딸의 주장을 부인하며, 그녀의 책은 "크리스와 그의 꿈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6]

1986년, 매캔들리스는 페어팩스에 있는 W.T. 우드슨 고등학교를 졸업했다.[8] 그는 학업 성적이 뛰어났지만, "다른 박자에 맞춰 행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크로스컨트리 팀의 주장을 맡아 팀원들에게 달리기를 "세상의 모든 악"에 맞서 싸우는 영적인 훈련으로 여기도록 권유했다.[9]

1986년 여름, 매캔들리스는 남부 캘리포니아로 여행하여 친척,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그는 아버지의 중혼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존 크라카우어는 이 사실이 매캔들리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했다.[10]

매캔들리스는 1990년 5월 에모리 대학교에서 역사인류학을 복수 전공하여 학사 학위를 받았다.[9] 졸업 후, 그는 대학 저축금 24000USD을 옥스팜에 기부하고 방랑자의 삶을 시작했다.[12]

2. 2. 학창 시절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는 인글우드에서 태어나 엘세군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월터 "월트" 매캔들리스와 어머니 빌헬미나 "빌리" 매캔들리스 (결혼 전 성은 존슨) 사이의 장남이었으며, 1971년 7월에 태어난 여동생 캐린이 있었다. 월트의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6명의 이복 형제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캘리포니아와 덴버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6]

1976년, 가족은 애넌데일로 이사했고, 아버지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안테나 전문가로 일했다. 어머니는 휴즈 항공에서 비서로 일했으며, 부부는 집에서 컨설팅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다.[6]

여동생 캐린은 회고록에서 부모가 서로와 자녀에게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가했으며,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으로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학대받은 어린 시절과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을 읽은 것이 오빠가 황야로 "사라지려는" 동기였다고 말했다.[7] 그러나 월트와 빌리는 딸의 주장을 부인하며, 그녀의 책은 아들 크리스와는 관련 없는 소설이라고 반박했다.[6]

1986년, 매캔들리스는 페어팩스에 있는 W.T. 우드슨 고등학교를 졸업했다.[8] 학업 성적이 뛰어났지만, 교사와 친구들은 그가 "다른 박자에 맞춰 행진했다"고 회상했다. 크로스컨트리 팀 주장을 맡았던 그는 팀원들에게 달리기를 "세상의 모든 악"에 맞서 싸우는 영적인 훈련으로 여기도록 독려했다.[9]

1986년 여름, 매캔들리스는 남부 캘리포니아로 여행하여 친척, 친구들과 재회했다. 그곳에서 그는 아버지가 두 번째 아내와 중혼 관계를 맺고 살았으며, 두 아내 사이에서 모두 자녀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존 크라카우어는 이 사실이 매캔들리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했다.[10]

1990년 5월, 매캔들리스는 에모리 대학교에서 역사인류학 복수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9] 그는 학문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11] 졸업 후, 그는 대학 저축금 24000USD을 옥스팜에 기부하고 방랑자의 삶을 시작했다.[12]

2. 3. 멕시코 여행과 체포

매캔들리스는 콜로라도 강을 따라 카약을 타고 멕시코까지 갔다. 모렐로스 댐의 월류(spillway)를 통해 국경을 넘었으나, 폭포를 만나 카누로 더 이상 항해할 수 없게 되자 강 여행을 포기했다. 소노라 주 엘 골포 데 산타 클라라 마을에서 며칠을 보낸 후, 미국으로 돌아가려다 국경 검문소에서 총기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되었다.[17] 잠시 구금되었지만 총기를 압수당한 후 기소 없이 풀려났다.[17]

3. 알래스카에서의 삶과 죽음

1992년 7월, 매캔들리스는 버스에서 두 달 남짓 생활한 후 문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늦여름 캔트웰 빙하에서 녹아 흘러나온 테클라니카 강이 범람하면서 길이 막혔다. 당시 수로는 그가 4월에 건넜을 때보다 훨씬 높고 빨랐다. 매캔들리스는 해당 지역의 상세한 지형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이전에 건넜던 곳에서 약 약 1.61km 떨어진 곳에 버려진 수동식 공중 케이블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9] 결국 그는 버스로 돌아와 캠프를 다시 설치했다. 그는 버스에 다음과 같은 구조 요청 메모를 붙였다.

> 주의: 방문객에게. S.O.S.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부상을 입었고, 죽어가고 있으며, 여기에서 걸어 나갈 힘이 없습니다. 저는 혼자이며,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를 구하기 위해 머물러 주십시오. 저는 근처에서 열매를 따고 있으며 오늘 저녁 돌아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 매캔들리스. 8월 ?[21]

매캔들리스의 마지막 일기 내용은 "107일째"로 기록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파란색 열매"라고 적혀 있었다.[22] 108일에서 112일까지는 아무런 단어가 적혀 있지 않고 슬래시(/)만 표시되어 있었으며, 113일째에는 일기가 없었다.[23] 그의 사망 날짜와 시간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사망 직전, 매캔들리스는 손을 흔들며 다음과 같은 메모를 들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

>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안녕, 모두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24]

1992년 9월 6일, 밤에 쉴 곳을 찾던 한 사냥꾼이 매캔들리스가 머물던 개조된 버스를 발견했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 썩는 음식 냄새를 맡았고, 버스 뒤쪽 침낭에서 "덩어리"를 발견했다. 사냥꾼은 무전을 쳐서 경찰에 알렸고, 경찰은 다음 날 도착했다. 주 경찰은 침낭 안에서 매캔들리스의 부패된 시신을 발견했다.[23]

3. 1. 알래스카로의 여정

1992년 4월, 매캔들리스는 사우스다코타에서 알래스카 페어뱅크스까지 히치하이킹을 했다. 알래스카에서 처음 도트 호수에서 목격되었고, 페어뱅크스에서도 여러 번 목격되었다고 한다. 매캔들리스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녔으며 신분을 묻는 질문에는 거짓 이름을 댔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매우 의심하고, 깔끔하지 못하며,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아 냄새가 났다고 한다. 한 증인은 매캔들리스를 "전반적으로 이상하고 기묘하며, 이상한 기운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했다.[17]

하이커들이 스탬피드 트레일을 따라 버스 142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4월 28일, 매캔들리스는 지역 전기 기술자인 짐 갤리언에게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갤리언은 매캔들리스를 페어뱅크스에서 알래스카 힐리라는 작은 마을 외곽의 험한 길 입구까지 태워주었다. 갤리언은 매캔들리스(자신을 "알렉스"라고 소개)의 가벼운 짐, 최소한의 장비, 빈약한 식량과 경험 부족을 보고 그의 안전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갤리언은 "알렉스"가 혹독하고 가혹한 알래스카 부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품었다고 말했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에 사용된 버스 142의 복제본


갤리언은 매캔들리스에게 여행을 연기하도록 거듭 설득했고, 심지어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우회하여 그에게 적절한 장비와 물품을 사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매캔들리스는 갤리언의 끈질긴 경고를 무시하고 도움 제안을 거절했다(그는 갤리언으로부터 Xtratuf 부츠 한 켤레, 샌드위치 두 개, 옥수수칩 한 봉지를 받기는 했다). 갤리언은 며칠 안에 배고픔을 느껴 고속도로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매캔들리스를 내려주었다.[19]

눈 덮인 스탬피드 트레일을 따라 하이킹을 한 후, 매캔들리스는 버려진 버스에 도착했다(힐리에서 서쪽으로 약 약 45.06km 떨어진 곳, 에 위치). 이 버스는 데날리 국립공원 근처, 트레일의 잡초가 우거진 구역 옆에 있었다. 크라카우어에 따르면, 매캔들리스는 "서쪽으로 가서 베링 해에 닿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알래스카 부시의 빽빽함에 의해 좌절되었고, 버스로 돌아와 캠프를 차리고 그곳에서 땅에서 나는 것으로 생활했다. 그는 4.5kg의 쌀, Remington Nylon 66 반자동 소총과 400개의 .22LR 할로우 포인트 탄약, 지역 식물에 관한 책을 포함한 여러 권의 책, 약간의 개인 물품과 몇 가지 캠핑 장비를 가지고 있었다. 자화상 사진과 일기 기록에 따르면 그는 식용 식물을 채집하고 고슴도치, 다람쥐, 자고새와 캐나다 기러기와 같은 새와 같은 사냥감을 잡았다. 1992년 6월 9일, 매캔들리스는 불법적으로 무스를 사냥하여 쐈다. 그러나 그는 고기를 보존하는 데 실패하여 며칠 만에 고기가 상했다. 매캔들리스는 이 경험으로 인해 깊은 후회를 경험했으며, 일기에서 "이제 무스를 절대 쏘지 않았어야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다."라고 표현했다.

매캔들리스가 식량, 생존 장비, 비상 물품이 비축된 지역의 여러 오두막을 파손했다는 추측이 있었다. 이에 대해 데날리 국립공원 수석 레인저 켄 케러는 매캔들리스가 국립공원관리청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간주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20]

매캔들리스의 일기는 그 지역에서 113일을 기록하고 있다. 7월, 버스에서 두 달 남짓 살았던 그는 문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지만, 트레일은 늦여름에 캔트웰 빙하에서 녹아 흘러나온 테클라니카 강의 범람으로 막혔다. 그 시점의 수로는 4월에 그가 건너갔을 때보다 훨씬 높고 빨랐다. 매캔들리스는 그 지역의 상세한 지형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가 전에 건너갔던 곳에서 약 1.61km 떨어진 곳에 버려진, 수동식 공중 케이블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9] 이 시점에서 매캔들리스는 버스로 돌아와 캠프를 다시 차렸다.

3. 2. 버스에서의 생활

알래스카 페어뱅크스까지 히치하이킹한 후, 매캔들리스는 1992년 4월 28일에 지역 전기 기술자인 짐 갤리언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짐 갤리언은 매캔들리스를 페어뱅크스에서 알래스카 힐리 외곽의 험한 길 입구까지 태워주었다. 갤리언은 "알렉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매캔들리스의 가벼운 짐, 최소한의 장비, 빈약한 식량과 경험 부족을 보고 그의 안전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다.[19] 갤리언은 매캔들리스에게 여행을 연기하고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적절한 장비와 물품을 사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매캔들리스는 갤리언의 경고를 무시하고 도움을 거절했다. 다만, 갤리언에게 Xtratuf 부츠 한 켤레, 샌드위치 두 개, 옥수수칩 한 봉지를 받았다.[19]

눈 덮인 스탬피드 트레일을 따라 하이킹한 후, 매캔들리스는 버려진 버스(힐리에서 서쪽으로 약 약 45.06km 떨어진 곳)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는 4.5kg의 쌀, Remington Nylon 66 반자동 소총과 400개의 .22LR 할로우 포인트 탄약, 지역 식물에 관한 책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식용 식물을 채집하고 고슴도치, 다람쥐, 자고새와 캐나다 기러기와 같은 새와 같은 사냥감을 잡으며 생활했다.[20] 1992년 6월 9일에는 불법으로 무스를 사냥했지만, 고기를 보존하는 데 실패하여 며칠 만에 상했다. 그는 이 경험에 대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라며 깊이 후회했다.[20]

매캔들리스는 버스에서 약 두 달 남짓(113일) 생활한 7월, 문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늦여름 캔트웰 빙하에서 녹아내린 테클라니카 강의 범람으로 인해 트레일이 막혔다. 4월에 그가 강을 건넜을 때보다 수로가 훨씬 높고 빨랐다.[4] 매캔들리스는 상세한 지형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가 전에 건넜던 곳에서 1마일 떨어진 곳에 버려진 수동식 공중 케이블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9] 결국 매캔들리스는 버스로 돌아와 캠프를 다시 차리고 다음과 같은 구조 요청 메모를 남겼다.

> 주의: 방문객에게. S.O.S.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부상을 입었고, 죽어가는 중이며, 여기에서 걸어 나갈 힘이 없습니다. 저는 혼자이며,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를 구하기 위해 머물러 주십시오. 저는 근처에서 열매를 따고 있으며 오늘 저녁 돌아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 매캔들리스. 8월 ?[21]

매캔들리스의 사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 존 크라카우어는 매캔들리스가 독성 알칼로이드인 스와인소닌에 중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이는 그가 독소를 함유한 골등골 씨앗(''Hedysarum alpinum'' 또는 ''Hedysarum mackenzii'')을 먹거나, 씨앗에 생길 수 있는 곰팡이에 의해 중독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26]
  • 2007년 매튜 파워는 실험 결과 매캔들리스가 먹었던 골등골 씨앗에서 독소나 알칼로이드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27]
  • 2013년 로널드 해밀턴은 매캔들리스가 바프니아르카 강제 수용소의 유대인 수감자 독살과 유사한 증상을 보였으며, 하지 마비로 인해 굶어 죽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는 ''Hedysarum alpinum'' 종자에서 발견되는 옥살릴디아미노프로피온산(ODAP) 중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29]
  • 2013년 9월, 존 크라카우어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HPLC) 분석 결과, ''Hedysarum alpinum'' 씨앗에 중량 기준으로 0.394%의 베타-ODAP가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는 인간에게 라티리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수준이다.[28]

3. 3. 죽음과 사인 논란

매캔들리스의 마지막 일기에는 "107일째"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파란색 열매"라고 적혀 있었다.[22] 108일부터 112일까지는 슬래시(/)만 표시되어 있었고, 113일째에는 일기가 없었다.[23] 사망 날짜와 시간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망 직전에 손을 흔들며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안녕, 모두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이라는 메모를 들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24]

1992년 9월 6일, 사냥꾼이 매캔들리스가 머물던 버스를 발견하고 썩는 냄새와 함께 침낭 속에서 그의 부패된 시신을 발견했다.[23]

존 크라카우어는 저서 ''荒野へ''(Into the Wild) (1996)에서 매캔들리스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을 두 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그가 영양 섭취를 살코기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토끼 기아" (단백질 중독)의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다.[25]

또한 크라카우어는 매캔들리스가 독성 알칼로이드인 스와인소닌에 중독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는 골등골 씨앗(''Hedysarum alpinum'' 또는 ''Hedysarum mackenzii'')을 먹거나, 씨앗에 핀 곰팡이 때문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26] 스와인소닌은 당단백질 신진대사를 억제하여 충분한 음식을 섭취해도 기아 상태를 유발한다.[28]

그러나 2007년 매튜 파워는 ''멘스 저널'' 기사에서 실험 결과 골등골 씨앗에서 독소나 알칼로이드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대학교의 토마스 클라우센은 "독소는 없었다. 알칼로이드도 없었다."라고 말했다.[27] 현대 의학 문헌에도 이 식물로 인한 중독 사례는 없다.[3] 파워는 매캔들리스가 충분한 음식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었다고 주장했다.[27]

2013년, 로널드 해밀턴은 매캔들리스의 증상과 바프니아르카 강제 수용소 유대인 수감자 독살 사이의 연관성을 제시하며, 하지 마비로 굶어 죽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29] 이는 ''Hedysarum alpinum'' 종자에 있는 옥살릴디아미노프로피온산(ODAP) 중독으로 인한 라티리즘 때문일 수 있다.

ODAP는 이전 연구에서 검출되지 않았는데, 독성 알칼로이드를 의심하고 검사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Hedysarum alpinum'' 종자에 이 독소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았다. 이 단백질은 영양 상태가 좋은 사람에게는 비교적 무해하지만, 영양실조 등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유독할 수 있다.[30]

크라카우어는 매캔들리스의 야외 안내서에 씨앗의 위험에 대한 경고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7월 30일, 매캔들리스는 일기에 "극도로 허약함. 감자 씨앗의 잘못.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다. 굶주리고 있다. 큰 위험."이라고 기록했다.[31]

2013년, 크라카우어는 ''뉴요커''에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HPLC) 분석 결과 ''Hedysarum alpinum'' 종자에서 베타-ODAP가 검출되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러나 다른 화학자들은 결과 해석에 이의를 제기했다.[32] 이 기사에서는 균형 잡힌 식단을 섭취하는 건강한 개인은 ODAP 섭취가 위험하지 않지만, 영양실조 등을 겪는 개인은 ODAP에 민감하여 신경독 섭취 후 라티리즘에 취약하다고 언급했다.[28]

2015년, 크라카우어는 ''Hedysarum alpinum'' 종자[씨앗] 분석 결과 L-카나바닌(포유류에 독성인 항대사 물질)이 발견되었으며, "H. alpinum 종자의 섭취가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의 죽음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지었다.[33]

4. 사후 평가와 논란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는 1993년 1월 크라카우어의 ''Outside'' 기사가 출판된 이후 논란의 중심에 섰다.[27][36] 작가와 많은 사람들은 그를 동정적으로 보았지만,[46] 알래스카 주민들을 중심으로 매캔들리스와 그의 운명을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제기되었다.[47]

4. 1. 긍정적 평가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는 크라카우어의 1993년 1월 ''Outside'' 기사가 출판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이후로 논란이 많은 인물이 되었다.[27][36] 작가와 다른 많은 사람들은 젊은 여행자에 대해 동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46] 다른 사람들, 특히 알래스카 사람들은 매캔들리스와 그의 운명을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47]

알래스카 국립공원 관리인인 켄 일구나스는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48]

> 더 나아가기 전에, 피트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저는 피트가 매우, 매우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알래스카 국립공원 관리인인 동시에 여러 면에서 크리스 매캔들리스와 같은 사람이라는 독특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권위를 가지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물론 매캔들리스는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굶어 죽었거나, 실수로 독에 중독되었거나, 또는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49]

크라카우어는 비판자들이 오만함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단지 "지도에서 빈 지점을 처음으로 탐험하려는" 매캔들리스의 욕구라고 주장하며 매캔들리스를 옹호한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그러나 1992년에는 더 이상 지도에 빈 지점이 없었습니다. 알래스카에도, 다른 곳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는, 그의 독특한 논리로, 이 딜레마에 대한 우아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지도를 없앴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다른 어디도 아닌, ''terra''는 그렇게 'incognita'로 남을 것입니다."[51]

4. 2. 부정적 평가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는 1993년 1월 크라카우어의 ''Outside'' 기사가 출판된 이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27][36] 작가와 많은 사람들은 그를 동정적으로 보았지만,[46] 특히 알래스카 주민들은 매캔들리스와 그의 운명을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47]

알래스카 국립공원 관리인 피터 크리스찬은 다음과 같이 썼다.

> 매캔들리스를 보면, 그가 한 일은 대담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비극적이며 사려 깊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야생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데 시간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는 지역 지도조차 없이 Stampede Trail에 도착했다. 만약 그에게 좋은 지도가 있었다면 그는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 본질적으로 크리스 매캔들리스는 자살을 저질렀다.[47]

알래스카 국립공원 관리인이자 ''The McCandless Mecca''의 저자인 켄 일구나스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48]

> 피트는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매우 틀렸다. [...] 저는 알래스카 국립공원 관리인인 동시에 여러 면에서 크리스 매캔들리스와 같은 사람이라는 독특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권위를 가지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매캔들리스는 자살하지 않았다. 그는 굶어 죽었거나, 실수로 독에 중독되었거나, 또는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49]

''Anchorage Press''에 글을 기고한 셰리 심슨은 친구와 함께 버스에 간 이야기를 묘사하며, 관광객들이 매캔들리스를 통찰력 있는 소로우와 같은 인물로 칭찬하는 댓글을 읽었을 때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 제 친구들과 지인들 사이에서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의 이야기는 저녁 식사 후의 좋은 대화 주제가 된다. 대부분의 경우 저는 "그는 죽고 싶어했다"는 쪽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저는 그의 고난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조화시킬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때때로 저는 "얼마나 멍청한 놈인가"라는 영역으로 들어가, "그는 단지 전형적인 미국식 탐험을 하는 낭만적인 소년일 뿐이었다"는 사람들과 잠시 동맹을 맺기도 한다. 대부분 저는 그가 어떻게 영웅으로 부상했는지에 대해 당혹스럽다.[50]

크라카우어는 비판자들이 오만함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단지 "지도에서 빈 지점을 처음으로 탐험하려는" 매캔들리스의 욕구라고 주장한다. 그는 "1992년에는 더 이상 지도에 빈 지점이 없었다. 알래스카에도, 다른 곳에도 없었다. 그러나 크리스는, 그의 독특한 논리로, 이 딜레마에 대한 우아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단순히 지도를 없앴다. 그의 생각에는, 다른 어디도 아닌, ''terra''는 그렇게 'incognita'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한다.[51]

5.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존 크라카우어는 1993년 1월 잡지 《아웃사이드》에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에 대한 9,000단어 분량의 기사 〈순수한 죽음〉을 기고했다.[52] 칩 브라운은 1993년 2월 8일 《뉴요커》에 매캔들리스에 대한 장편 기사 〈나는 이제 야생으로 들어간다〉를 게재했다.[53] 존 크라카우어의 논픽션 책 《야생으로》(1996)는 1993년 《아웃사이드》 기사를 확장하여 매캔들리스의 여행과 그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매캔들리스의 이야기는 각본가 크리스 카터의 텔레비전 시리즈 《밀레니엄》의 1998년 에피소드 〈루미너리〉로 각색되었다.[54]

숀 펜이 감독하고 에밀 허쉬가 매캔들리스 역을 맡은 영화 《야생으로》(2007)는 미국 영화 연구소에서 최고의 작품상을 포함한 여러 상을 받았다.[55] 론 라모스의 다큐멘터리 《야생의 부름》(2007) 또한 매캔들리스의 삶을 다루고 있다.[56]

2011년에 출간된 책 《야생으로 돌아가기》는 매캔들리스의 사진, 엽서, 일기 내용을 엮어 놓았다. PBS 다큐멘터리 〈야생으로의 귀환: 크리스 매캔들리스 이야기〉는 인터뷰를 통해 추가 정보를 공개하며 2014년 11월 PBS 네트워크에서 처음 방송되었다.[57]

2014년, 크리스의 여동생 캐린 매캔들리스는 회고록 《야생의 진실》을 출판했다. 이 책은 그들의 학대적인 가정 생활을 자세히 묘사하며, 크리스의 행동에 대한 추가적인 맥락을 제공했다.[58]

팟캐스트 《너는 틀렸어》는 2023년 2월 27일 에피소드에서 매캔들리스에 대해 논의했다. 게스트 블레어 브레이버먼과 함께 한 이 에피소드는 매캔들리스의 삶, 죽음, 유산, 그리고 황야, 알래스카, 가정 폭력에 대한 논의에 미친 그의 영향에 관한 여러 주제를 검토했다.[60]

6. 유산

크리스토퍼 매캔들리스의 삶은 수많은 기사, 책, 영화,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되었으며, 이는 그의 삶을 현대 신화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35] 그는 자유로운 정신과 초월주의에 감명받아 낭만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논쟁적이고 잘못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27][36][37]

6. 1. '매직 버스'의 철거

2020년 6월 18일 알래스카 육군 방위군이 보잉 CH-47 치누크를 이용해 버스를 공중 수송하는 모습


매캔들리스가 생활하고 사망한 개조된 녹색과 흰색 버스는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진 목적지가 되었다. "매직 버스"로 알려진 이 1946년식 인터내셔널 하베스터는 1961년 스탬피드 트레일에서 도로 작업자에 의해 버려졌다. 매캔들리스의 아버지가 그의 기억을 기리는 명판을 내부에 부착했다.[34] 매캔들리스의 삶은 수많은 기사, 책, 영화,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되었고, 이는 그의 삶을 현대 신화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35] 그는 자유로운 정신과 초월주의에 감명받아 낭만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논쟁적이고 잘못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27][36][37]

"매직 버스"는 차량에서 캠핑을 하는 트레커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어려움을 겪거나 테클라니카 강을 건너다 사망하기도 했다.[35][36][38] 한 역사가에 따르면, 이 버스는 "현대판 기억의 장소"가 되었으며, "공동의 기억을 저장하고 비밀리에 간직하는" 장소였다.[39]

2020년 6월 18일, 여러 정부 기관은 최소 15명이 구조되고 최소 2명이 버스에 가기 위해 테클라니카 강을 건너다 사망한 후, 공공 안전 문제로 간주된 버스를 제거하기 위해 알래스카 육군 방위군 훈련 임무와 협력했다.[40] 이 버스는 CH-47 치누크 헬리콥터를 통해 힐리로 옮겨졌고, 평상형 트럭을 통해 공개되지 않은 장소로 운송되었다.[41][42][43] 2020년 9월 24일,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대학교의 노스 박물관은 매캔들리스의 "매직 버스 142"가 영구적으로 전시될 곳임을 발표했으며, 야외에서 복원 및 전시될 예정이다.[44] 이 버스는 2023년 10월까지 2년 동안 실내에 전시되었지만, 2024년 현재 복원 자금이 충분히 모일 때까지 보관 중이다.[4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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