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프 브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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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클리프 브룸바는 1974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태어났으며, 고등학교와 델라웨어 대학교에서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 1995년 텍사스 레인저스에 지명되어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1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텍사스 레인저스와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뛰었다. 이후 KBO 리그의 현대 유니콘스, 우리 히어로즈에서 5시즌 동안 활약하며 타율 0.299, 116홈런을 기록했고, 2004년에는 타율왕과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일본 오릭스 버팔로스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야구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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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브룸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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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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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외야수 |
출생일 | 1974년 4월 21일 |
출생지 |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 |
타석 | 우타 |
송구 | 우투 |
프로 입단 연도 | 1995년 |
드래프트 순위 | MLB 드래프트 13라운드 |
선수 경력 | |
MLB | 텍사스 레인저스 (2001년) 콜로라도 로키스 (2001년) |
KBO | 현대 유니콘스 (2003년~2004년) 현대 유니콘스 (2007년) 우리 히어로즈/히어로즈 (2008년~2009년) |
NPB | 오릭스 버펄로스 (2005년~2006년) |
기타 리그 | 캄페체 파이어리츠 (2010년) 몬클로바 스틸러스 (2010년) 에드먼턴 캐피털스 (2010년) |
데뷔 | |
MLB 데뷔 | 2001년 5월 30일, 텍사스 레인저스 |
KBO 데뷔 | 2003년 6월 24일, 현대 유니콘스 |
NPB 데뷔 | 2005년 3월 26일, 오릭스 버펄로스 |
마지막 경기 | |
MLB 마지막 경기 | 2001년 7월 24일, 콜로라도 로키스 |
NPB 마지막 경기 | 2006년 7월 12일, 오릭스 버펄로스 |
KBO 마지막 경기 | 2009년 9월 22일, 히어로즈 |
통계 (MLB) | |
타율 | .217 |
홈런 | 1 |
타점 | 4 |
통계 (KBO) | |
타율 | .299 |
홈런 | 116 |
타점 | 390 |
통계 (NPB) | |
타율 | .255 |
홈런 | 24 |
타점 | 69 |
수상 | |
KBO | 2× 한국시리즈 우승 (2003년, 2004년) 골든글러브 (2004년) KBO 타격왕 (2004년) |
2. 초기 생애 및 아마추어 경력
클리포드 마이클 브룸바는 1974년 4월 21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태어나 윌리엄 펜 고등학교와 델라웨어 대학교에서 뛰어난 야구 선수로 성장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여러 여름 리그 팀에서의 경험은 그가 프로 선수로 발돋움하는 기반이 되었다.[1][2][3][4][5][6][7][8][9]
2. 1. 유년 시절 및 고등학교
클리포드 마이클 브룸바는 1974년 4월 21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태어났다.[1] 그는 윌밍턴에 있는 윌리엄 펜 고등학교에 다니며 뛰어난 야구 선수였다.[2] 윌리엄 펜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는 .451의 타율을 기록했고 22개의 타점을 올렸다.[3] 그 후 다음 오프시즌에 훈련 프로그램을 거쳐 더욱 발전하여, 4학년을 여러 부문에서 주 전체 1위로 마쳤다.[3]
그는 윌리엄 펜 고등학교가 주 Flight 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했으며, 타율 .509, 31타점으로 주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다음 최고 선수보다 8타점이 더 높은 기록이었다.[3] 그는 또한 득점 (27)에서 2위(선두보다 2점 뒤짐), 2루타 (10)에서 2위(선두보다 1개 뒤짐)를 기록했다.[3] 그는 윌리엄 펜 고등학교의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고, 유일한 3루수로 주 전체 퍼스트 팀에 선발되었다.[3] 그는 델라웨어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스탈 아메리칸 리전 팀에서 활약하여 델라웨어 아메리칸 리전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되었다.[4]
2. 2. 대학교 경력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브룸바는 1992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5] 그는 밀워키 브루어스에 입단하기 위해 1200USD의 계약을 제안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델라웨어 대학교의 델라웨어 파이팅 블루 헨스에서 대학 야구를 하기로 결정했으며, 훗날 이를 "내가 한 최고의 선택"이라고 회고했다.[5]델라웨어 대학교에서의 첫 해인 1993년, 브룸바는 49경기 중 47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팀이 28–21의 성적을 거두는 데 기여했고, 타율 0.291, 안타 41개, 출루율 0.423을 기록했다.[6] 이듬해인 1994년 그는 타율 0.417, 56타점, 6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노스 애틀랜틱 컨퍼런스(NAC) 최고의 타자로 기록되었다.[4] 그는 미국 야구 코치 협회(ABCA)로부터 3팀 올 아메리카에 선정되었고, 올-지역 및 올-NAC 팀에서도 1팀으로 선정되었다.[4] 그는 팀이 전체 41-14의 기록을 세우고 NAC 타이틀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으며, 리버티 벨 클래식 우승의 핵심 선수로서 토너먼트 MVP로 선정되었다.[7][8]
1995년 3학년 때, 브룸바는 타율 0.442(전국 7위), 56타점, 32개의 2루타(전국 최고 기록)를 기록했다.[5][8] 95개의 안타는 델라웨어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이었고, 32개의 2루타는 프로그램 신기록이었으며, 한 경기에서 3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그 해 팀 기록과 타이를 이루기도 했다.[8][9] 그는 NAC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안타, 2루타, 득점에서 컨퍼런스를 이끌었고,[2] 올-NAC 1팀 및 ABCA 2팀 올-아메리카로 선정되었다.[8]
1995년 시즌은 브룸바가 델라웨어에서 마지막으로 뛴 시즌이었고, 프로 선수로 활동하기 위해 팀을 떠났다. 팀 웹사이트에 따르면, 그는 통산 타율 0.393을 기록하며 "[델라웨어 야구 역사상] 역대 최고의 슬러거 중 한 명"으로 남았으며,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팀이 117–48의 전체 기록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8]
대학 시절 동안 브룸바는 여러 여름 리그 팀에서 활약했다.[6][4] 1993년 델라웨어 세미 프로 야구 리그의 Schweizer's, 1994년에는 해당 리그의 Canada Dry 팀에서 뛰었다.[6][4] 또한 1994년 전미 아마추어 야구 연맹(NABF)의 Walton Drillers와 케이프 코드 야구 리그(CCBL)의 팔머스 코모도어스에서 뛰었다.[6][4] 코모도어스에서 그는 24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팀이 25–11의 기록을 세우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으며, 타율 0.271, 21안타, 11타점을 기록했다.[6][4]
3. 프로 경력
클리프 브룸바는 199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13라운드 지명을 받고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10] 마이너 리그를 거쳐 2001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뛰며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2003년 시즌 후반 마이크 프랭클린의 대체 선수로 현대 유니콘스에 합류하여 KBO 리그에 데뷔, 2004년 시즌에는 타율 1위, 홈런 2위, 타점 3위를 기록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2연패에 기여했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의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뛰었다. 2007년 현대 유니콘스로 복귀했고, 이후 팀이 우리 히어로즈로 바뀐 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09년 시즌을 끝으로 KBO 리그를 떠났으며, 2010년에는 멕시칸 리그와 독립 리그에서 뛰다가 은퇴했다.
3. 1. 마이너 리그 (1995-2003)
199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13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10] 그는 1984년 이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첫 번째 파이팅 블루 헨이었으며 전체 23번째였다.[11]레인저스와 계약을 맺고 클래스 A 쇼트 시즌 레벨의 허드슨 밸리 레니게이드에 합류한 브룸바는 즉시 선발 선수이자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5][12] 팀의 행정 보조원인 데니스 웬서는 브룸바를 "의심할 여지 없이 리그 최고의 타자"라고 묘사했다.[12] 3루수로 활약하며 팀의 74경기에 모두 출전, 47승 27패의 기록으로 와일드카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12] 타율 0.358, 출루율 0.437, 101안타, 45타점, 19개의 2루타, 4개의 3루타, 2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15개의 도루를 기록하는 동안 단 3번만 도루에 실패했다.[1][12][13] 리그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고 리그 올스타에도 선정되었다.[12]
1996년 클래스 A의 찰스턴 리버독스로 승격되었다.[14] 더 어려운 경쟁에 직면하여 시즌 초반에는 고전했지만, 시즌이 진행되면서 실력이 향상되어 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이 되었다.[14][15] 시즌 중반에 3루수에서 1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15] 13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42, 111안타, 45타점, 23개의 2루타, 7개의 3루타, 6개의 홈런을 기록했다.[1]
1997년 클래스 A-어드밴스드의 포트 샬럿 레인저스에서 뛰었다.[1] 텍사스 레인저스의 요청에 따라 파워 히터가 되었고, 시즌 15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당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고, 포트 샬럿 팀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13] 레인저스에서 139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타율 0.261 (1루수 133경기, 3루수 3경기, 2루수 2경기, 유격수 1경기), 136안타, 70타점, 4개의 3루타를 기록했다.[1][13]
1998년 스프링 트레이닝 이후, 처음에는 다시 A 클래스로 내려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게 되었으나, 롭 사서의 부상으로 인해 더블A 텍사스 리그의 툴사 드릴러스로 승격되었다.[16] 텍사스 리그 시즌 2주차에 팀에 합류하여 즉시 선발로 출전하였으며, 시즌이 진행되면서 내야수와 외야수 모두로 출전했다.[17] 132경기에 출전, 1루수로 97경기, 3루수로 23경기, 외야수로 12경기에 출전했다.[17] 76타점으로 팀을 이끌었고 타율 0.259, 125안타, 34개의 2루타, 15개의 홈런을 기록했다.[1][17] 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으며, 플레이오프에서 1루수로 10경기에 출전하여 6타점, 3개의 2루타, 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타율 0.306을 기록, 7경기 만에 위치타 랭글러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17]
1999년 다시 드릴러스로 복귀했다.[1] 팬들에게 약속했던 대로 시즌 후반에 향상된 모습을 보였으며, 이 기간 동안 홈런과 타점의 대부분을 기록했다.[18] 6월 드릴러스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25타점, 타율 0.272), 7월에는 명예의 전당 게임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와 함께 경기를 뛰었고 텍사스 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했다.[19][20]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고, 1라운드 중반에 트리플A 퍼시픽 코스트 리그 (PCL)의 오클라호마 시티 레드호크스로 콜업되어 7일 동안 경기에 출전했다.[21] 리그 챔피언십 경기에 맞춰 드릴러스로 복귀했지만, 팀은 패했다.[21] 툴사에서 13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81을 기록했고, 홈런(25개)과 타점(89개)에서 팀을 이끌었다.[1][21] 144안타, 35개의 2루타, 3개의 3루타, 18개의 도루를 기록했다.[1] 레드호크스에서 짧은 기간 동안 4경기에서 타율 0.250, 3안타와 1타점을 기록했다.[1]
2000년 시즌을 트리플A 레드호크스에서 시작하여, 시즌 초에 더블A 드릴러스로 다시 내려갔다.[22] 이후 레드호크스로 복귀하여 팀 기록에 2개 모자란 1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다.[23] 드릴러스에서 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22, 6안타, 1개의 2루타, 2개의 홈런, 3타점을 기록했다.[1] 레드호크스에서 12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78, 126안타, 56타점, 28개의 2루타, 10개의 홈런을 기록했다.[1]
2001년 메이저 리그로 승격된 후, 2002년 시즌에는 트리플A에서 활동했다.[30] 그 해 스카이삭스에서 총 136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93, 148안타, 81타점, 36개의 2루타, 18개의 홈런을 기록했다.[1]
2003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을 맺고 인터내셔널 리그의 샬럿 나이츠라는 트리플A 마이너 리그 산하 팀에서 뛰었다.[31] 6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09, 69안타, 30타점, 13개의 2루타, 9개의 홈런을 기록했다.[1] 시즌 중 KBO 리그 팀인 현대 유니콘스와 계약을 체결한다.
3. 2. 메이저 리그 (2001)
브룸바는 2001년 시즌을 퍼시픽 코스트 리그(PCL)의 오클라호마 시티에서 시작했다.[24] 5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05, 38타점, 8홈런을 기록한 후, 5월 28일 처음으로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여 텍사스 레인저스에 합류했다.[24] 그는 레인저스의 외야수 선발로 활약했으며, 5월 30일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상대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25][26] 그는 두 번 타석에 들어섰지만 두 번 모두 삼진을 당하며 로열스에게 11-2로 패했다.[27] 7경기에서 10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후, 브룸바는 웨이버 공시되어 마이너 리그로 내려갔다.[9][28] 얼마 후, 그는 콜로라도 로키스에 지명되었다.[9] 그는 팀의 트리플 A 마이너 리그 팀인 PCL의 콜로라도 스프링스 스카이삭스에서 2주를 보낸 후 메이저 리그로 다시 콜업되었다.[9] 7월 1일, 그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통산 첫 안타이자 홈런을 기록했다.[29] 브룸바는 로키스에서 1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78, 10안타, 2루타 2개, 홈런 1개, 4타점을 기록한 후 다시 마이너 리그로 돌아갔다.[1] 스카이삭스에서는 53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332, 69안타, 39타점, 18개의 2루타, 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1] 그는 PCL에서 107경기를 뛰며 타율 0.320, 131안타, 29개의 2루타, 11개의 홈런, 81타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메이저 리그에서의 유일한 시즌이 될 2001년에는 2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17, 10안타, 4타점, 2개의 2루타, 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1]3. 3. KBO 리그 (2003-2004, 2007-2009)
2003년 시즌 후반 마이크 프랭클린의 대체 선수로 현대 유니콘스에 합류하여 KBO 리그에 데뷔했다. 2006년 시즌 후, 2007년에 현대 유니콘스로 복귀했다. 시즌 초반인 4월에는 심각한 슬럼프를 겪었으나, 5~6월부터 타격감이 살아나면서 뛰어난 장타력을 보여주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4번 타자로 활약하였다.2007년 말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선수단이 우리 히어로즈로 이적할 때 브룸바도 함께 히어로즈의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히어로즈에서 두 시즌 동안 기량이 하락했다.[33] 2008년에는 10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93, 105안타, 17개의 2루타, 13홈런, 61타점을 기록했고,[1] 2009년에는 123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율은 0.245로 하락했고, 107안타, 21개의 2루타, 27홈런, 86타점을 기록했다.[1] 2009년 시즌 이후 대한민국을 떠났다.[33]
3. 3. 1. 현대 유니콘스 시절 (2003-2004)
2003년 시즌 후반기 마이크 프랭클린의 대체 선수로 대한민국 땅을 밟은 브룸바는 70경기를 뛰며 타율 3할 3리, 14홈런, 51타점을 기록했으며,현대 유니콘스의 우승을 이끌었다.[46] 2004년 시즌 현대 유니콘스와 재계약하여 타율 1위, 홈런 2위, 타점 3위 등 공격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하며 현대 유니콘스의 한국시리즈 2연패에 공헌하였다. 당시 MVP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외국인 선수라는 핸디캡으로 인하여 수상은 하지 못하였다.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리그로 승격되지 못한 것에 실망한 브룸바는 더 나은 연봉을 제시하는 KBO 리그에서 뛰기 위해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방출을 요청했다. (브룸바의 마이너 리그 계약은 월 10000USD였지만, KBO 리그에서는 3개월에 125000USD의 계약을 체결했다).[32] 현대 유니콘스에 시즌 중반에 합류한 그는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고, 70경기에서 타율 0.303, 51타점, 14홈런을 기록했다.[31][33] 264타석에서 80안타, 18개의 2루타, 45득점을 기록했다.[1] 그는 팀이 플레이오프에 1위 시드로 진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유니콘스는 SK 와이번스를 한국시리즈에서 7경기 만에 꺾고 리그 챔피언이 되었고, 브룸바는 시리즈에서 10타점과 0.350의 타율을 기록했다.[31][33] MVP 투표에서 팀 동료 정민태에게 밀렸다.[31]
2004년 KBO 리그 최고의 시즌을 보낸 브룸바는 타율 0.343으로 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다.[33][34] 132경기에 출전하여 현대 유니콘스를 한국시리즈 2연패로 이끌었고, 그의 타율은 모든 외국인 선수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기록으로 남아 있었으며, 163안타, 25개의 2루타, 33홈런, 105타점을 기록했다.[1][33] 동아일보는 "모든 부문에서 그의 이름이 최고 자리에 올랐다"고 언급했으며, 브룸바는 또한 리그 최고의 장타율(0.608)과 최고의 출루율(0.468)을 기록하는 동시에 홈런 2위, 타점 2위를 기록했다.[33] 그 활약으로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는데, 리그에서 한국인 외에는 드문 경우였으며, 브룸바는 이 상을 받은 역대 다섯 번째 외국인이었다.[35]
3. 3. 2. 일본 프로 야구 오릭스 버펄로스 시절 (2005-2006)
2004년 12월, 한국에서의 활약을 평가받아 일본 프로 야구의 오릭스 버펄로스와 계약을 맺고[42], 카림 가르시아 등과 함께 합병 구단의 외국인 선수 1호가 되었다.2005년에는 개막 4번 타자로 발탁되었지만 부진이 이어졌다. 그러나 교류전 시기부터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교류전이 끝나자 다시 부진에 빠졌다. 그럼에도 12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63, 19홈런으로 일정한 성적을 거두며 이듬해 계약을 따냈다. 이 해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124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63, 118안타, 20개의 2루타, 19홈런, 57타점을 기록했다.[1]
2006년에는 개막부터 심각한 타격 부진에 빠져 한가운데 직구를 놓치고 삼진으로 물러나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9월 14일에 부인의 출산을 위해 귀국했고, 그대로 재입국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4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23, 5홈런의 성적에 그쳤고, 10월 17일에 전력 외 통보를 받고 퇴단했다.[43] 부상으로 인해 2006년에 기량이 하락하여 47경기만 출전하여 타율 0.223, 27안타, 5홈런, 12타점을 기록했으며, 그 해가 끝나기 전에 팀에서 방출되었다.[1][33]
3. 3. 3. 현대 유니콘스 복귀 및 히어로즈 시절 (2007-2009)
2006년 시즌 종료 후, 2007년에 현대 유니콘스로 복귀했다. 시즌 초반인 4월에는 심각한 슬럼프를 겪었으나, 5~6월부터 타격감이 살아나면서 뛰어난 장타력을 보여주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4번 타자로 활약하였다.[33]2007년 말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선수단이 우리 히어로즈로 넘어갈 때 함께 우리 히어로즈의 선수가 되었다. 2008년 시즌에는 고질적인 발목 부상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102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0.293, 13홈런 61타점을 기록하였다.[1] 2009년 시즌 초반에는 4번 타자의 위용을 보여 주었으나 부상으로 후반으로 갈수록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최종 기록이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때마침 투수를 보강하려던 우리 히어로즈에서 시즌 후 좌투수 아드리안 번사이드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게 되어서, 재계약에 실패했다.[33]
3. 4. 멕시칸 리그 및 독립 리그 (2010)
2010년에는 당초 멕시칸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나, 성적이 좋지 않아 시즌 도중에 해고되었다.[44] 그 후 독립 리그인 골든 베이스볼 리그의 에드먼턴 캐피털스와 계약하여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4. 은퇴 이후
브룸바는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고 있으며,[33] 선수 경력 이후에는 오클라호마에서 야구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33]
2018년 브룸바는 델라웨어 대학교 운동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8] 2022년에는 ''더 뉴스 저널''이 선정한 델라웨어 대학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남자 운동선수 100인 중 31위에 올랐다.[40] 2024년 델라웨어 스포츠 박물관 및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예정이었으나, 2025년으로 연기되었다.[40][41]
5. 통산 기록
연도 | 소속 | 경기 | 타수 | 득점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도루 | 희생타 | 볼넷 | 사구 | 삼진 | 병살타 | 실책 | 타율 | 장타율 | 출루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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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통산 | ||||||||||||||||||||
5시즌 | 553 | 1971 | 320 | 590 | 94 | 3 | 117 | 390 | 16 | 17 | 385 | 9 | 271 | 62 | 9 | 0.299 | 0.527 | 0.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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