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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리크 아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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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리크 아지즈는 1936년 이라크에서 태어난 아시리아인으로, 바그다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바스당에 가입하여 사담 후세인과 만나 정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79년 이라크 부총리, 1983년 외무장관을 역임하며 이라크의 외교 정책을 주도했다. 이란-이라크 전쟁과 쿠웨이트 침공 당시 이라크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으며, 걸프전 이후 유엔의 무기 사찰 대응과 경제 제재 해제를 위해 노력했다. 2003년 미군에 투항하여 수감되었으며, 2010년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집행되지 않았다. 2015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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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리크 아지즈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01년의 아지즈
이름타리크 아지즈
시리아어 표기ܛܐܪܩ ܥܙܝܙ
아랍어 표기طارق عزيز
로마자 표기Ṭāriq ʿAzīz
출생 이름(제공된 정보 없음)
출생일1936년 4월 28일
출생지텔 케페, 이라크 왕국
사망일2015년 6월 5일
사망지나시리야, 이라크
사망 원인심장 마비
국적이라크
배우자바이올렛 유세프 노부드
자녀4명
직업언론인, 정치인
정치 경력
직위이라크 부총리
임기 시작1979년 7월 16일
임기 종료2003년 4월 9일
직위 1외무부 장관
임기 시작 11983년 11월 11일
임기 종료 11991년 12월 19일
대통령 1사담 후세인
전임자 1사둔 하마디
후임자 1무함마드 사이드 알사하프
직위 2혁명 지도 평의회 위원
임기 시작 21979년 7월 16일
임기 종료 22003년 4월 9일
직위 3이라크 지역 지부 지역 사령부 위원
임기 시작 31965년 8월 1일
임기 종료 32003년 4월 9일
소속 정당아랍 사회주의 바트 (1966년까지)
바그다드 기반 바트 (1966–1982) (바트 - 이라크 지역)
기타 정보
구글 지도 검색어텔 케페, 이라크

2. 초기 생애 및 교육

아지즈는 1936년 4월 28일 이라크 북부 니네베 평원의 텔 케페 마을에서 아시리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11] 그는 칼데아 가톨릭 교회 신자였다. ܡܝܟܐܝܠ ܝܘܚܢܢsyrميخائيل يوحناar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의 아들에 의해 부인되었다.[12]

그는 바그다드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언론인으로 일하다가 1957년 바스당에 입당했다. 1963년에는 바스당의 신문인 ''알자마히르''와 ''알-싸우라''의 편집장을 역임했다.[13] 학생 시절에는 영국의 영향력 아래 있던 하심 왕조 이라크 왕국 타도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3. 정치 경력

1968년 바트당 집권 후 아지즈는 이라크 정계에서 승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 통치 기간 동안 권력을 잡은 유일한 기독교인이었다.[14] 후세인은 아지즈를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둘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아지즈는 혁명 지도 평의회의 총무국원이 되었고,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바트당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지역 사령부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1977년에는 혁명 지도 평의회의 일원이 되었다.[15] 1974년부터 1977년까지 정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바트당 지역 지도자로도 선출되었다.

대학 졸업 후 기자를 지망하여 1963년 「알 자마히르」(al Jamahir) 신문 편집국장에 취임했다. 1964년 압둘 살람 아리프 정권하에서 바트당 탄압이 시작되자 1966년까지 시리아망명, 당에서 일시적으로 탈당했다. 귀국 후 복당하여 바트당 기관지 「알 사우라」 신문 기자 겸 편집장이 되어 사담 후세인(당시 혁명 지도 평의회 부의장)의 정책을 지지하는 사설을 썼다. 자신의 차남 이름을 "사담"으로 짓기도 했다(2003년 12월 자필 편지로 차남에게 이름을 주하이르로 개명하도록 알렸다).

이 시기에 "미하일 유한나"에서 아랍식 이름인 "타리크 아지즈"로 개명했다.

3. 1. 외무장관 및 외교 활동

1979년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대통령에 취임하자 타리크 아지즈는 부총리에 취임했다. 1983년에는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어 여러 국가를 적극적으로 방문했고, 특히 서구 국가들과 소련의 이라크에 대한 지지와 군사 지원을 확보하는 데 힘썼다.[15] 사담 후세인이 거의 해외를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지즈는 이라크의 정책을 세계에 설명하는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그는 이란-이라크 전쟁 중 미국으로부터 지지를 얻었고, 1984년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을 만났다.[15]

1984년 11월 26일, 레이건과 회담하는 아지즈




아지즈는 1983년 12월 19일부터 20일까지 당시 중동에 대한 로널드 레이건의 특사였던 도널드 럼즈펠드의 방문 기간 동안 사담 후세인을 수행했다. 럼즈펠드는 나중에 미국의 국방장관이 되어 2003년 이라크에 대한 연합군을 이끌었다.

1983년 12월 20일, 사담 후세인과 럼즈펠드의 회담에 참석하는 아지즈(오른쪽에서 세 번째)


1980년 4월 1일, 바그다드의 무스탄시리야 대학교에서 시아파 반체제 조직 다와당의 암살 시도를 당했지만, 동행하던 바트당 당원들이 사상을 당한 것과 달리 그는 경상을 입는 데 그쳤다.[16] 이 사건은 이란-이라크 전쟁의 ''전쟁의 원인''의 일부를 형성했다.[17]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아지즈는 이 군사 행동을 지지하는 국제 대변인 역할을 했다. 그는 쿠웨이트의 증가된 석유 생산이 이라크의 석유 수입에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침략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랍 국가들을 비난하며 "미국의 중동 패권에 대한 아첨과 징벌적 제재에 대한 지지"를 규탄했다.[18] 1991년 1월 9일, 아지즈는 미국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를 포함한 제네바 평화 회의에 참여했다. 이 회의의 목표는 쿠웨이트 점령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하는 것이었다.[15] 걸프 전쟁이 시작되자 아지즈는 이라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정권 대변인으로서 유창한 영어로 바그다드를 방문한 해외 언론과 매일 기자 회견을 열고 미국과 이라크 반대 진영에 가담한 아랍 세계 및 걸프 국가들을 비난했다. 전쟁을 막기 위해 여러 국가의 요인들과 회담을 가졌고, 특히 소련에 대해 개전 방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촉구했다.

제네바에서 제임스 베이커 3세 미국 국무장관과의 최종 협상에서 쿠웨이트 즉각 철수와 이라크가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된 현실을 담은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받자, "이런 편지를 우리 대통령 각하께 전달할 수 없습니다."라며 거부하여 협상은 결렬되었다.

걸프 전쟁 종전 후인 1991년, 외무장관직에서 해임(혹은 사임했다는 설도 있음)되었지만 부총리직은 유임했다. 유엔의 무기 사찰 대응과 경제 제재 해제를 위한 노력에 힘썼고, 유엔 사찰단에서 미영군을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

3. 2. 이라크 전쟁과 투항

2000년 10월, 영국의 외무부 차관이었던 피터 헤인(Peter Hain)은 아지즈와 비밀리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전쟁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19] 그러나 아지즈는 대표단을 거부했다.[19]

2003년 2월 14일, 아지즈는 바티칸 시국(Vatican City)에서 요한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II)와 만나 이라크 정부가 무장 해제 문제에 있어 국제 사회와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했다. 바티칸(Holy See) 성명에 따르면, 교황은 이라크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결의안을 존중하고 구체적인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20]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침공 직후 아지즈를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은닉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지목했다.[21] USA 투데이는 2003년 5월 3일,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금지된 무기를 찾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아지즈가 협조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고 보도했다.

아지즈는 아들의 중재를 거친 협상 끝에 2003년 4월 24일 미군에 자진 투항했다.[22] 그는 가족의 안전을 가장 우려했으며, 투항 당시 미국이 작성한 수배 명단에서 43위였다.[22]

전쟁 전 아지즈는 미국의 포로가 되느니 죽겠다고 말했었다. 그는 ITV와의 인터뷰에서 "관타나모로 가기를 바라겠는가? 차라리 죽겠다"라고 말했다.[23] 2003년 2월 바티칸에서 요한 바오로 2세와 회담 후,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공격을 "십자군의 재림"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쟁 직전인 3월 19일, 아지즈가 쿠르디스탄 지역으로 탈출하려다 실패하고 사살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그는 바그다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부인했다. 바그다드 함락 후 그의 저택은 폭도들에게 파괴되었고, 가재도구 등이 약탈당했다. 아지즈는 2003년 4월 24일 미군에 투항했는데, 투항 전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위성전화로 상담했으며, 가족의 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요구했다.[60] 투항 당시 그는 심장마비를 겪고 있었고, 의사가 동행했다.

4. 수감 생활 및 재판

타리크 아지즈는 2003년 4월 24일 미군에 투항했다. 투항 전, 아지즈는 위성전화를 통해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투항에 대해 상담했으며, 가족의 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요구했다.[60] 투항 며칠 전부터 심장마비를 일으켰으며, 투항 당시에는 의사가 동행했다.

2005년 5월 29일, 영국 신문 옵서버(The Observer)는 아지즈가 미국 구금 중에 쓴 편지(아랍어와 영어로 작성)를 게재했다. 이 편지는 "세계 여론"에 보낸 것으로, "극심한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한 국제적 도움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27][28]

2005년 8월, 아지즈의 가족은 그를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 수감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고, 가족은 창문이 검게 가려진 버스로 이동했다.[29] 보안상의 이유로 그는 바그다드 공항 주변 크로퍼 캠프(Camp Cropper)로 이감되었다.[40] 아지즈의 아들은 아버지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교도관들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매달 30분 동안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고, 미국 아랍어 방송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두 달에 한 번 가족은 옷, 담배, 초콜릿, 커피, 잡지를 담은 소포를 보낼 수 있었다.[40]

3세 에마누엘 델리(Emmanuel III Delly)는 2007년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 아지즈의 석방을 촉구했다. 아지즈는 반인도죄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0년 1월 17일, 아지즈는 뇌졸중으로 병원에 이송되었다.[30] 2010년 8월 5일, 가디언(The Guardian)은 그가 항복한 이후 처음으로 직접 인터뷰를 공개했다.[31] 그는 인터뷰에서 이라크가 미국의 희생자라고 말하며, 사담 후세인이 30년 동안 이라크를 건설했지만 현재는 파괴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해 비판하며, 미군 주둔 지속을 바라는 듯한 발언을 했다.

2010년 9월 22일, FBI 인터뷰 내용이 담긴 문서가 공개되었는데, 아지즈는 사담 후세인이 1998년 동아프리카 미국 대사관 테러 폭탄 공격에 대해 "기뻐했다"고 말했지만 오사마 빈 라덴과 손을 잡을 의향은 없었다고 진술했다.[32]

2010년 7월 14일, 캠프 크로퍼의 권한이 이라크 측으로 반환됨에 따라 아지즈는 바그다드 카지미야 지역 카르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2011년 8월 18일, 아지즈의 변호사는 아지즈가 건강 악화로 인해 누리 알 말리키 총리에게 신속한 사형 집행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4. 1. 변호 및 증언

2006년 5월 24일, 아지즈는 바그다드에서 이브라힘 바르잔과 무카바라트 직원들의 변호 증인으로 증언하며, 그들이 1982년 두자일 학살에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체포는 시아파 다와당이 저지른 사담 후세인 암살 시도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진술했다. "만약 국가 원수가 공격을 받으면, 국가는 법에 따라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만약 용의자가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면,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24]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두자일 공격이 "나를 포함한 이 단체의 일련의 공격과 암살 시도의 일부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1980년 바그다드 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다와당 반군이 그에게 수류탄을 던져 주변 민간인들을 살해했다고 말했다. "저는 현재 집권하고 있는 이 당이 저지른 범죄 행위의 피해자입니다. 그러니 재판에 회부하십시오. 그 당의 지도자는 총리였고, 그의 부총리는 현재 총리이며, 그들은 1980년 무고한 이라크인들을 살해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24] 다와당은 현재 이라크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시아파 연합의 정당이다. 이 당의 지도자 이브라힘 자아파리는 5월 중순까지 총리였으나, 다른 다와당 주요 인물인 누리 알 말리키가 선출되어 2006년 5월 말 이전에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25]

마무리 발언에서 그는 "사담은 수십 년 동안 나의 동료이자 전우였고, 바르잔은 나의 형제이자 친구이며, 그는 두자일 사건에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26]

2005년 5월, 영국 일간지 《옵서버》(The Observer)는 아지즈의 옥중 편지를 공개했다. 이 편지에서 아지즈는 국제기구에 수감자 처우 개선을 호소했다. 그는 하루 종일 감시당하며 가족으로부터 편지, 연락, 면회를 허락받지 못하고, 재판 또한 공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8월 그의 가족은 아지즈가 수용 시설에서 당뇨병과 심장병을 앓고 있으며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2006년 5월, 두자일 사건 재판에서 피고 측 증인으로 출석하여 사담 후세인과 그의 이복동생인 바르잔 이브라힘 하산을 변호했다. 아지즈는 법정에서 사담 후세인이 자신의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 가해자를 처벌하라고 명령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국가 원수가 암살당하면 국가는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헌법에 명시되어 있었다. 범인이 무기를 소지했다면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암살을 실행한 것은 시아파 정당인 다아와당이며, 자신 또한 다아와당으로부터 암살 미수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암살범의 지도자가 현 총리인 이브라힘 자파리다. 그들은 당시 무고한 이라크 국민들을 많이 살해했다”라며 현 정권을 비난했다.

마지막으로 “사담 후세인은 수십 년간 나의 맹우이자 동지였다. 그리고 바르잔은 나의 절친한 친구이자 형제다. 그들은 두자일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변호했다.

2006년 12월 후세인 사형 집행 후 면회한 변호사에 따르면, 아지즈는 “사담 후세인은 나의 친구였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들(이라크 신정부)은 사담 후세인뿐 아니라 이라크 공화국마저도 파괴했다. 나의 일부가 죽어버렸다”라고 말하며 통곡했고, “진짜 사담 후세인에 대한 책을 쓰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2007년 3월 5일, 안팔 작전에 관한 재판에 변호 측 증인으로 출석하여 후세인을 “영웅”이라고 칭찬하고, “이라크 정부에 의한 쿠르드인 학살은 없었다”라고 단정 지어 쿠르드인 재판장을 격분시켰다. 이라크의 개입을 부정하는 증거로, 1989년에 미국 국방부 정보기관이 제출한 “Seaman”이라는 보고서와 미국 잡지 《뉴요커》에 실린 밀턴 비오스트의 기사를 제시하며, “쿠르드인 학살은 이란이 저지른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알-샤르크 알-아우사트 신문이 타리크 아지즈가 변호사에게 말한 내용을 전한 바에 따르면, 석방 후에는 이라크가 아닌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하고 싶다고 희망했으며, 이미 사담 후세인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사담 후세인의 사형 집행 장면을 목격했던 때를 꼽았으며, 옥중에서는 최소한의 의료 행위만 받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다른 이탈리아인 변호사를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조기 석방 지원과 모스크바에서의 치료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2007년 7월 21일, 아지즈의 변호인인 바디우 이자트 아리프 변호사는 아지즈가 같은 달 17일 미군 구치 시설에서 여러 차례 의식을 잃고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이라크 중부 발라드 기지의 의료 시설로 긴급 이송되었다고 밝혔다. 다음 날에는 1991년 시아파 우라마 살해와 1999년 무하마드 사딕 알-사드르 살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재판소 출두 명령이 내려졌으며, 신속한 심문을 위해 이라크 정부가 미군에 치료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아지즈는 치료 후 회복되었다고 하며 바그다드 구치소로 돌아왔다.

미군과 이라크 정부는 그의 건강 문제가 나이에 따른 것이며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아지즈의 변호사와 장남은 기소 없이 장기간 구금되는 것은 부당하며, 건강 상태 악화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의료 행위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라크 정부와 이라크 고등 법원을 비난하고 강한 불신을 표명했다. 2007년 12월 11일, AFP 통신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장남 지야드에 따르면, 아지즈는 구치 시설 내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2007년 12월 25일, 칼데아 가톨릭교회의 임마누엘 델리 추기경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아지즈의 석방을 요구했다.[61]

영국 일간지 타임스 온라인은 2008년 3월 21일, 아지즈가 심각한 폐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라크 정부가 4월 말에 열릴 예정인 재판의 판결이나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석방 요구가 실현되기 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62]

2010년 1월 17일, 아지즈가 1월 15일 구치소 독방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바그다드에 있는 미국 육군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뇌졸중으로 인한 실어증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지즈의 장남 지야드가 밝혔다.[63] 지야드는 아지즈와 같은 구치소에 수감된 수감자로부터 이러한 정보를 들었다고 밝히며, 아버지가 이라크 전쟁 이전부터 가벼운 뇌졸중을 앓았고, 장기간의 구금 생활로 악화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이라크 정부에 고령의 아버지를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도 아지즈가 1월 14일 치료를 위해 미군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상태는 회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어떤 병증으로 이송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64]

한편, 아지즈의 변호인인 아리프 변호사는 아지즈가 이송된 곳은 바그다드 병원이 아닌 이라크 중부 발라드 기지의 미군 병원이라고 하면서, 처음에는 “상태가 심각하다”는 견해를 보였지만,[65] 다음 날인 18일에 미군과 연락하여, 미군 당국자로부터 아지즈의 상태가 안정되고 호전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66] 하지만 아리프에 따르면 미군은 ‘처음에는 아지즈가 뇌졸중이라고 했지만, 나중에 부정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장남 지야드도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미군과 이라크 당국, 적십자가 자신에게 정보 제공을 거부했다고 말하며 국제 인권 단체의 개입을 요청했다.

2003년 구금 이후 바그다드에 있는 미군 구치 시설인 캠프 크로퍼에 다른 전 정권 고위 관리들과 함께 구금되어 있었지만, 2010년 7월 14일, 캠프 크로퍼의 권한이 이라크 측으로 반환됨에 따라 아지즈를 포함한 전 정권 고위 관리 55명은 이라크 경찰에 인계되어 바그다드 카지미야 지역에 있는 카르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이 조치에 대해 아지즈의 장남 지야드와 아리프 변호사는 아지즈의 처우 문제 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67]

아리프 변호사는 이라크 당국에 아지즈를 포함한 다른 전 정권 고위 관리들과의 면회 허가를 요청하여 이라크 사법부의 부슈우 이브라힘 사법 차관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7월 19일에 면회를 위해 이라크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이라크 측으로부터 “7월 18일에 아지즈의 재판이 시작된다”라는 통고를 받고 면회를 거부당했다고 AFP 통신에 밝혔다.[68]

영국의 신문 《가디언》은 8월 6일 자 신문에 아지즈와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69] 인터뷰는 바그다드 교도소 안에서 이루어졌다. 기사에 따르면 아지즈는 이라크가 미국의 희생자라고 말하며, “30년 동안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를 건설했지만, 현재는 파괴되었다. 이전보다 많은 환자가 있으며, (국민은) 더욱 굶주리고 있다. 사람들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매일 수십 명이 죽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나는 그(오바마)가 부시의 실수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고무되었다”라며 오바마 대통령 취임에 기대를 걸었지만, “하지만 오바마는 위선자다. 그는 늑대를 남겨두고 이라크를 떠나려 하고 있다”라며 오바마 정권이 치안을 악화시킨 채 이라크에서 미군 전투 부대를 철수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미군 주둔 지속을 바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을 했다.

사담 후세인에 관한 질문에는, “나는 그에게 큰 존경과 애정을 느낀다. 사담 후세인은 국가를 건설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했다. 나는 그가 잘못했다는 당신들(서구)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후세인 사후에도 변치 않는 충성심을 보였다.

8월 8일, 장남 지야드는 AP 통신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교도소 안에서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사기는 양호하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는 허리와 다리 통증을 호소하여 보행이 어려워 이동 시에는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외에도 아지즈는 치은염을 앓고 있으며, 틀니가 필요하지만 교도소 안에는 치과 의사가 없어 틀니를 만들지 못해 고형 식품을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지야드에 따르면, 이러한 아지즈의 건강 정보는 7월 30일 바그다드 교도소를 방문하여 본인과 면회한 지야드의 어머니와 누이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교도소 내 처우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중하게 대우받고 있으며, 교도관의 처치를 평가하는 한편, 독방이 좁고 다른 수감자와 공유하여 매우 협소하다고 말했다.[70]

9월 5일, 아지즈는 교도소 안에서 AP 통신과의 인터뷰에 응하여, 74세라는 고령과 징역 15년이라는 형기로 미루어 자신은 교도소 안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군 전투 부대 철수와 이라크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논평을 삼갔다. 또한, “나는 지쳤다. 하지만 이라크와 이라크 국민이 부유해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71]

장남 지야드는 AFP 통신 취재에 대해 이라크 정부는 아버지가 교도소 안에서 죽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하며, “그들이 아버지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그들은 아버지에게 적절한 의료 관리를 제공하고 아버지를 병원에 보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라크 정부가 아버지를 석방할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아지즈의 변호인인 아리프 변호사는 이라크의 누리 알 말리키 총리 측근 중 한 명이 그에게 접촉하여 아지즈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여 석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아리프에 따르면, 그 총리 측근은 “탈라바니 대통령의 허가가 나면 석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말리키 총리 보좌관 중 한 명은 AFP 통신 취재에 대해, “우리는 타리크 아지즈를 석방할 생각이 전혀 없다”라며 아리프의 발언을 정면으로 부정했다.[72]

10월 29일, 지야드는 AFP 통신에 아지즈가 수감자에게 매달 한 번 허용되는 친구나 관계자와의 면회를 할 수 없게 되자, 25명의 수감자와 함께 28일부터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지야드는 “아버지는 친구와의 면회를 허락받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암만에서 보낸 약과 잡지, 책 등을 맡겼었다”라고 말하며, “아버지는 약을 받으려면 11월 말까지 기다려야 한다”라며 비판했다.[73]

2011년 8월 18일, 아지즈가 “신속한 사형 집행”을 바라고 있다고 이자트 바디우 변호사가 밝혔다. 바디우 변호사에 따르면, 아지즈의 건강은 악화되어 당뇨병 외에 고혈압, 심장 질환, 위궤양, 전립선암 등의 질병을 앓고 있으며, 병고에 시달리는 것보다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해줄 것을 말리키 총리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교도소에서의 처우는 정중하게 대우받고 있다고 바디우 변호사에게 말했다고 한다.[74]

2015년 6월 5일, 지카르 주 나시리아의 후세인 병원에서 사망했다.[75] 향년 79세였다. 딸 자이나브에 따르면, 사망 전날 가족이 교도소를 방문했지만, 아지즈는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였고 대화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지즈는 사형수로 이라크 남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지만, 5일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곧 사망했다고 한다.[76]

2004년 7월 1일, 이라크 특별법정(현 이라크 고등법정)에서 “인도에 대한 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아지즈는 예심에서 “나는 교양 있는 정치인이며 국민 탄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예심 전날, 아지즈를 포함한 피고 12명과 면회한 살림 찰라비 당시 특별법정장관에 따르면, 아지즈는 면회 내내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2005년 6월 26일, 특별법정 측은 6월 21일에 진행된 아지즈의 심문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 아지즈는 후세인 전 대통령이 1980년대 이후 절대적인 독재자가 되었고, 1991년 3월 시아파 주민의 반정부 봉기 진압도 측근과 상의 없이 후세인이 독단적으로 명령을 내렸다고 증언했다.[77] 영상 속 아지즈는 흰 작업복을 입고 있었으며, “80년대 언젠가였는데, 대통령은 (구 정권 최고 의사결정 기관) 혁명지도평의회에 상의하지 않고도 법적 효력을 갖는 정령포고 권한을 갖는다는 지령이 내려졌다”라고 증언했다. “그 지령을 누가 내렸는가?”라는 예심 판사의 질문에 “대통령 자신이다”라고 답했다.

또한, 이라크 남부에서 수천 명의 시아파 주민이 살해된 91년 반정부 봉기 진압 당시 자신의 입장에 대해 아지즈는 “나는 외무장관이었다. 부총리 등을 겸임했지만, 나에게는 진압 권한이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일부 간부가 남부로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무엇을 했는지는 몰랐다. 나는 외무장관이었기 때문에 보고가 오지 않았다”라고 변명했다.

2008년 4월 29일, 아지즈는 1992년 42명의 식량 판매상을 정부의 가격 통제에 위반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명령한 혐의로 이라크 고등법정에 피고인으로 출두했지만, 공동 피고인인 알리 하산 알-마지드가 질병으로 출두하지 못해 공판은 5월 20일로 연기되었다. 이 재판에는 아지즈와 알리 하산 외에도, 마흐무드 전 대통령 비서관, 와트반 전 내무장관, 사브아위 전 종합치안국장, 미즈반 전 혁명지도평의회 회원, 후다일 전 재무장관, 후와이시 전 이라크 중앙은행 총재가 피고인으로 기소되었다. AFP 통신 보도에 따르면, 검찰 측이 기소 사실 요지를 낭독하고 폐정했다. 하지만 아지즈의 변호를 맡은 해외 변호단에 이라크 입국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아지즈의 변호단은 이날 재판에 출두하지 못했다.

5월 20일, 재판이 재개되었고, 아지즈도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출두했다. 아지즈는 법정에서 이 재판은 자신을 한때 암살하려 했던 시아파 세력 주도의 이라크 현 정부의 보복 재판이라고 비판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또한, 사담 정권과 혁명지도평의회 지도부 일원이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 측은 아지즈가 당시 혁명지도평의회 회원으로서 사담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고 따랐다고 공모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변호 측은 상인들이 사형당했을 때 아지즈는 외무장관으로서 유럽을 방문하고 있어 국내 문제에는 관여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2009년 3월 11일, 고등법정은 아지즈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판결문 낭독 중 아지즈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계속 눈을 감고 있었지만, 판결 낭독 전에 재판장에게 의자에 앉을 허락을 요청했다. 암만에 거주하는 아지즈의 장남 지아드는 “부당한 판결이며, 아버지는 이 사건에 휘말렸다”라며 판결 내용을 비판했다.

2008년 5월 27일, 아지즈의 변호인 바디우 이자트 아리프에 따르면, 이라크 고등법정 검찰 측이 아지즈의 새로운 혐의로 마수드 바르자니 쿠르디스탄 자치정부 대통령의 출신 부족인 바르자니 부족 학살 혐의를 추가했다고 말했다. 바디우 변호사는 법정 측이 아지즈의 살해를 시도하거나 구금을 계속하려 하지만, 어떤 혐의로 기소하더라도 유죄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더 장기간 수감하려 한다고 말했다.

2008년 11월 23일에는 1999년 발생한 대아야톨라 사디크 알-사드르 암살 이후 바그다드의 사담 시티에서 발생한 시민 항의 운동을 발단으로 한 시아파 주민 제2차 민중봉기 진압을 지휘한 혐의로 이라크 고등법정에 출두했다. 법정에서 문키스 알-파룬 수석 검사는 기소장에서 당시 바스당 문서를 인용하며, 시민 시위대에 대해 민병 조직 페다예인 사담이 무차별 사격을 가해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을 포함해 16명이 사망했고, 아마라에서도 유사한 사건으로 14명이 살해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사건 희생자들의 유족은 살해된 친족의 장례식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건에 대해 아지즈는 “이 사건에 대해 변호사와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변호단과의 상담 시간을 주문했다.

2009년 3월 2일, 이라크 고등법정은 이 혐의에 대해 아지즈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2009년 1월 26일, 이라크 북부 파이르 마을에 사는 시아파 쿠르드인, 소위 파이리 쿠르드인을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 “이란인”이라는 이유로 국외 추방, 대량 학살, 화학무기 공격 및 이란군에 대한 “인간 방패”로 이용한 혐의를 다루는 법정에 아지즈는 피고인으로 출두하여, 2010년 11월 29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78]

2010년 8월 2일, 아지즈는 이라크 북부에 사는 쿠르드인의 강제 이주 정책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고등법정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아리프 변호사는 판결 후 “정치적인 판결”이라며 판결에 대한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2010년 1월 18일, 1990년대 남부 도시 나시리야에서 민병 조직 페다예인 사담이 반체제 조직 다와당 회원을 참수한 학살 사건을 다루는 공판에도 피고인으로 출두했다.

2010년 7월 18일, 아지즈는 구 정권 시절 공금 횡령 혐의로 이라크 고등법정에 출두했다.

2010년 10월 26일, 이라크 고등법정은 아지즈가 1980년대 구 정권 하에서 시아파 정당 다와당에 대한 탄압과 당원 살해 등 “계획 살인”, “인도에 대한 죄”를 저질렀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며 아지즈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다른 “고문을 명령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5년, “고문에 참여했다”는 혐의에는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아지즈의 전 재산을 몰수하도록 명령했다. 판결문을 듣기 전, 마흐무드 살리프 알-하산 재판장은 아지즈에게 보청기를 착용하도록 지시했다. 뇌졸중의 영향 때문인지, 아지즈의 입은 왜곡되어 있었고, 피고석 난간에 매달린 채 때때로 고개를 숙이며 무표정으로 판결을 들었다.[79]

판결에 대해 유럽 연합은 사형 폐지라는 이념에서 형의 집행을 중지하도록 성명을 발표했고, 로마 교황청도 사형 집행 중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80] 이 외에도 러시아 정부와 이탈리아 정부도 아지즈의 사형 집행 중지를 요구했다.

아지즈의 개인 변호인인 아리프 변호사는 지난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군 내부 문서에 이라크군·경찰의 고문과 학대 실태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에서 눈을 돌리려는 정치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아지즈의 장남 지아드도 AP 통신에 판결이 비논리적이고 불공정하다고 말하며, 다와당이 1980년대에 아지즈를 암살하려 했던 점을 지적하며, “타리크 아지즈는 종교 정당의 희생자였지만, 이제 범죄자가 되어버렸다”라고 말했다.[81]

변호단의 일원인 이탈리아인 조반니 디 스테파노는 AFP 통신 인터뷰에서 아지즈가 아마 사형 판결에 대해 항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에 대해 스테파노는 항소하면 재판과 법정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아지즈가 생각하고 있으며, 항소 대신 유엔 인권이사회와 미주 인권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테파노는 미주 인권위에는 사형 집행을 위해 아지즈의 신병을 미측에서 이라크 측에 인도하는 것을 막을 권한이 있다고 말하면서, 아지즈는 국제 사회와 사담과의 협정을 알고 있는 “골치 아픈” 인물로서 정권의 의사 결정에서 배제되어 있었다고 말했다.[82]

2011년 11월 17일, 사형 폐지론자인 자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은 프랑스의 방송사 France 24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타리크 아지즈의 사형 집행 서명에는 서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탈라바니는 “아지즈가 기독교인이며 70세가 넘은 노인”이라는 점을 들며 아지즈에게 동정한다고 말했다.[83] 스테파노 변호사도 변호단으로서 항소 대신 탈라바니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사면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84] 하지만, 이라크 사법부 대변인은 “대통령의 서명이 없어도 사형은 집행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유로 대통령이 판결 내용에 대해 재심을 명령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011년 4월 21일, 구 반체제파 지도자 타리브 알-수하일 알-타미미가 1994년 베이루트에서 구 정권 정보기관에 의해 암살된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에서, 이라크 고등법정은 아지즈에게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85]

4. 2. 재판 과정 및 판결

2004년 7월 1일, 타리크 아지즈는 이라크 특별법정(현 이라크 고등법정)에서 "인도에 대한 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아지즈는 예심에서 "나는 교양 있는 정치인이며 국민 탄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라며 무죄를 주장했다.[77]

2005년 5월, 영국 신문 옵서버(The Observer)는 아지즈가 쓴 옥중 편지를 공개했다. 이 편지에서 아지즈는 국제기구에 수감자 처우 개선을 호소했다. 그는 하루 종일 감시당하며 가족으로부터 편지, 연락, 면회를 허락받지 못하고, 재판 또한 공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06년 5월, 아지즈는 두자일(Dujail) 사건 재판에서 피고 측 증인으로 출석하여 사담 후세인과 그의 이복동생 바르잔 이브라힘 하산(Barzan Ibrahim Hassan al-Tikriti)을 변호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이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 가해자를 처벌하라고 명령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암살을 실행한 것은 시아파 정당인 다와당(Dawa Party)이며, 자신 또한 다와당으로부터 암살 미수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2008년 4월 29일, 아지즈는 1992년 42명의 식량 판매상을 정부의 가격 통제에 위반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명령한 혐의로 이라크 고등법정에 피고인으로 출두했다. 2009년 3월 11일, 고등법정은 아지즈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36] 같은 해 8월 2일에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강제 이주 정책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37]

2010년 10월 26일, 이라크 고등법정은 아지즈가 1980년대 구 정권 하에서 시아파 정당 이슬람 다와당(Islamic Dawa Party)에 대한 탄압과 당원 살해 등 "계획 살인", "인도에 대한 죄"를 저질렀다며 사형을 선고했다.[39][40] 이에 대해 유럽 연합과 바티칸(Holy See)은 사형 집행 중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80]

2011년 11월 17일, 자랄 탈라바니(Jalal Talabani) 이라크 대통령은 프랑스의 방송사 France 24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타리크 아지즈의 사형 집행 서명에는 서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탈라바니는 "아지즈가 기독교인이며 70세가 넘은 노인"이라는 점을 들며 아지즈에게 동정한다고 말했다.[83]

4. 3. 사형 집행 유예

2010년 10월 26일, 이라크 고등재판소는 1991년 걸프 전쟁 이후 1991년 이라크 봉기 진압 과정에서 이슬람 정당을 박해한 혐의로 타리크 아지즈에게 사형을 선고했다.[39][40] AP 통신은 판사가 아지즈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한 세부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41] 그의 변호사는 아지즈의 역할은 이라크의 외교 및 정치 관계에만 국한되었으며, 후세인 통치 기간 동안 자행된 처형, 숙청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41] 또한 사형 선고 자체가 정치적으로 동기가 부여되었으며, 이라크 전쟁 문서 유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42]

같은 날, 바티칸은 이라크 정부에 사형을 집행하지 말 것을 촉구했고, 유럽 연합 외교 정책 책임자 캐서린 애슈턴은 사형 집행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43] 국제앰네스티는 이라크 고등재판소의 재판 진행 방식에 우려를 표하며 사형 제도를 비난했다.[44] 2010년 10월 27일, 그리스 대통령 카롤로스 파풀리아스와 러시아 외무부도 사형 집행 중단을 촉구했다.[45][46]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도 사형 제도에 반대하며 유죄 판결 취소를 촉구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여러 국제 인권 단체들이 재판 절차를 비판하고 법원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48]

2010년 11월 17일, 이라크 대통령 자랄 탈라바니는 아지즈의 사형 집행 명령서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9][50]

5. 사망

타리크 아지즈는 2015년 6월 5일 나시리야 시 알-후세인 병원에서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55] 그의 변호사에 따르면, 그는 감옥에서 잘 대우받았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단순히 자신의 "고통"을 끝내고 싶어했다고 한다. 수감 중이던 아지즈는 우울증, 당뇨병, 심장병, 궤양을 앓고 있었다.[56] 아지즈의 딸 자이나브(Zeinab)는 6월 11일 시신이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요르단으로 이송되는 도중 신원 미상의 남성들에게 도난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다음 날 회수되었다. 요르단 당국은 시신이 도난당한 것이 아니라 관련 서류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단순히 지연된 것이라고 밝혔다.[59][57][58] 아지즈는 마다바에 매장되었다.[59]

6. 가족

타리크 아지즈는 4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의 아들 지아드를 포함한 가족들은 요르단에 거주하고 있다.[5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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