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2가 지하배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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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는 서울시의 근대화 과정과 도시 발달사를 보여주는 유산으로, 2개의 구간과 부지 1필지가 문화재 지정 대상이다. 서울시 중구 태평로2가 일대 10필지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 배수로는 근대 토목 기술의 발달 단계를 보여주며, 서울광장 지하배수로 및 남대문로 지하배수로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07년부터 1918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하부 콘크리트와 적벽돌을 사용한 마제형 단면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현재까지 배수로로 활용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학술적, 기술적, 문화적 가치가 높다.
서울시의 근대화 과정 및 도시 발달사를 상징하며, 근대 토목사의 발전 단계를 보여준다. 전국적으로 희귀하게 유존하는 유산이라는 점에서 학술적‧기술적‧문화적 가치가 크며, 현재까지도 배수로로 활용될 만큼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1]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는 서울메트로에서 시행하는 시청역사 시설개선공사 도중 발견된 것으로 서울광장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세종대로의 일부 구간에 소재하고 있음이 조사·확인되었다. 유수방향은 남대문방향에서 서울광장 방향으로, 2013년 기 조사된 시 기념물 제38호 “서울광장 지하배수로”의 간선으로 연결된다.[1]
2. 지정 대상
2. 1. 문화재 지정 대상
지하배수로 2개 구간(상류구간, 하류구간) 및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가 점하는 토지 1필지(총 145.6m2)가 문화재 지정 대상이다.
2. 2. 보호구역 지정 대상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2가 113-1 등 총 10필지가 보호구역 지정 대상이며, 토지 면적은 총 6,992.1m2이다.
3. 지정 사유
또한, 기 지정된 서울광장 지하배수로와 남대문로 지하배수로와는 또 다른 구조와 축조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완전히 노출된 단면 자료가 확보됨에 따라 새로운 학술 자료 축적을 이루고 있다.[1]
4. 조사 보고서
이 배수로는 시점과 종점의 바깥 방향과 그 사이 중간이 현대식 하수관으로 교체되어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적벽돌 배수로는 남대문에 가까운 쪽의 일부와 서울광장에 가까운 일부분만 잔존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배수방향을 기준으로 남대문 쪽 구간을 ‘상류구간’, 서울광장 쪽 구간을 ‘하류구간’이라 지칭하였다.[1]
공사 시 노출된 곳은 하류구간의 종점으로 “서울광장 지하배수로”와 가장 가까운 쪽에 해당한다. 공사로 인해 일부 훼손된 구간이 복원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근대배수로의 완벽한 단면의 상세자료가 최초로 확보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배수로의 나머지 구간에 대한 잔존규모에 대한 조사는 관거의 지름이 1m도 되지 않고 내부에 하수유량이 많아 직접적인 내부조사가 불가능하여 서울시 중구청 안전치수과 하수팀에서 촬영된 CCTV 자료를 근거로 파악하였다. 각 구간 내에서도 배수방향을 기준으로 시점과 종점을 구분하였다.[1]
4. 1. 상류구간
상류구간의 시점은 남대문에 가까운 쪽으로 현재 준설토로 막혀 있는 상태이다. 상류구간의 관거 구조는 하부를 콘크리트로 구축하고 상부에 적벽돌 아치를 쌓은 형태이다. 아치에 사용된 벽돌은 21개이다. 상류구간은 부분적으로 단면이 달라지는데, 일부는 단면이 계란형이고 일부는 모서리가 둥근 역사다리꼴 단면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상류구간의 연장은 측량 결과, 약 87.6m로 확인되고 있으며, 내부의 규모는 가로폭 약 0.7m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1]
4. 2. 하류구간
상류구간 종점에서부터 비굴착구간이 약 126m, 흄관이 약 33m 확인된다.[1] 흄관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하수 수위가 높아 현대식 관거로 교체된 지점을 확인할 수 없었다.[1] 하류 종점에서부터 근대배수로 잔존구간을 확인한 결과, 상류 방향으로 약 69m 지점까지 확인되었으나 준설토로 인해 잔존구간의 종점은 확인되지 않았다.[1]
현대식 관거와 근대배수로의 교체 지점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대식 관거가 확인된 지점 이후로는 근대배수로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어 문화재 구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할 필요가 있다.[1] 따라서 문화재구역은 하류 종점에서 흄관의 종점이 확인된 지점까지 약 97.1m 구간(근대배수로 확인 구간은 약 69m)으로 지정되었다.[1] 해당 구간의 관로폭은 하류 종점에서 약 0.98m로 확인된다.[1]
4. 3. 하류종점 노출 단면 상세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 하류 구간의 종점 단면은 2013년에 조사된 서울광장 지하배수로와 남대문로 지하배수로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구조이다. 배수로 하부는 잔자갈을 포함한 콘크리트이며, 상부는 적벽돌을 마구리방향으로 반원 형태의 아치형으로 쌓고 바깥쪽은 잔자갈이 많이 섞인 무근콘크리트를 두께 약 85~98mm로 둘렀다.[1]
하부 콘크리트는 상부 조적과 만나는 부분의 두께가 약 250mm이다. 내부 바닥 형태는 둥근 역사다리꼴('⊔'형태)로 추정되는 무근콘크리트 구조로 추정된다. 전체 규모는 높이 1,272mm(현재 바닥 콘크리트 기준), 폭 1,479mm이며, 바닥 내부 너비는 980mm 정도이다.[1]
배수로 상부에는 적벽돌 23장으로 반원형 아치를 만들었는데, 수직보다 수평이 긴 타원형 형태(수평반경 490mm, 수직반경 456mm)이다. 적벽돌의 막힌줄눈 크기는 안쪽 3~10mm, 바깥쪽 13~20mm이며, 적벽돌 크기는 길이 233~234mm, 세로 109~110mm, 높이 59~63mm이다.[1]
5. 기 조사된 근대배수로와의 비교
5. 1. 구조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는 크게 서울광장 지하배수로와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로 나뉜다. 서울광장 지하배수로의 간선과 지선1은 하부까지 모두 조적으로 쌓은 원형 배수관이다.[1] 지선2는 상부는 적벽돌을, 하부는 콘크리트를 사용한 계란형 배수관으로, 조적 부분은 0.5B 쌓기 또는 1.0B 쌓기로 추정된다.[1] 남대문로 지하배수로는 상류와 하류 구간 모두 상부는 조적, 하부는 콘크리트 구조이다. 상류 구간은 0.5B 쌓기, 하류 구간은 1.0B 쌓기로 축조되었다.[1]현재까지 발견된 근대 배수로들은 하부가 콘크리트 또는 모르타르로 처리되고 상부는 벽돌이 노출되는 공통점이 있다.[1] 단면 형태는 원형, 계란형, 마제형의 세 종류가 있는데, 관경이 큰 곳은 조적으로만, 작은 곳은 상부 조적과 하부 콘크리트 구조가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1] 벽돌 쌓기 방식은 1.0B 쌓기와 0.5B 쌓기가 나타나며, 이는 관거의 구조적 안정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1]
5. 2. 재료
벽돌은 22~23×10.5~11×6cm 내외 벽돌과 두께가 더 얇은 22~23×10.5~11×4.5cm 내외의 두 종류가 사용되었다. 전자는 서울광장 지하배수로 간선, 지선1과 남대문로 지하배수로에 사용되었고, 후자는 서울광장 지하배수로 지선2에 사용되었다.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의 조적 아치에 사용된 적벽돌은 서울광장 지하배수로와 남대문로 지하배수로에서 사용된 것과 크기, 색, 재질 등이 유사하여 동일한 벽돌로 추정된다.[1]태평로2가 지하배수로 하부에 사용된 콘크리트는 무근콘크리트로서 골재의 크기나 모르타르의 성분이 기존에 발견된 근대배수로에 사용된 콘크리트와 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1]
6. 조성 시기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의 조성 시기는 1907년 탁지부 연와제조소 출범 이후부터 1918년 경성 제1기 하수개수공사 이전 사이로 추정된다.[1] 조선시대에는 주로 석축으로 호안을 쌓고 물길을 개방하는 방식이었으나, 이후 적벽돌과 콘크리트가 사용되었고, 1918년부터는 철근콘크리트관이 사용되었다.[1] 따라서 벽돌 배수관 조성 시기의 하한은 1918년 이전이며, 하수 개수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되지 못했던 1915년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1]
상한은 적벽돌 생산량이 확대되기 시작한 1907년 탁지부 연와제조소 출범과 함께 등장한 한성위생회가 적벽돌 배수로를 조성하기 시작한 시기로 추론할 수 있다.[1] 한성위생회는 1908~1909년 사이에 연와제조소에서 생산된 연와를 대량으로 공급받아 사용했는데, 이 연와가 배수로 축조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1]
세종대로 부근에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하천은 정릉동천의 남쪽 지류로, 정릉동천의 한 갈래는 러시아공사관 부근에서 발원하여 정동길을 따라 흘렀고, 다른 한 갈래는 삼성플라자 부근에서 발원하여 세종대로를 따라 흐르다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합류했다.[1]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는 남쪽에서 발원하는 정릉동천 물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합류된 물길은 서울시청 서남쪽에서 동북쪽을 가로질러 다동의 남대문로9길, 삼각동의 남대문로10길을 따라 청계천 본류와 합류한다.[1] 이는 서울광장 지하배수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1]
결론적으로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의 조성 시기는 서울광장 지하배수로 및 남대문로 지하배수로와 마찬가지로 1907년에서 1918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1]
7. 조사 성과와 역사적 가치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의 발견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1] 첫째, 하부 콘크리트 바닥을 평평하게 처리한 마제형 단면의 적벽돌 근대배수로의 실체가 확인되었다.[1] 둘째, 상류구간에서는 계란형과 마제형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단면형태의 변화가 매끄럽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때 축조 당시부터 일체로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1] 셋째, 공사로 인해 일부 구간이 노출되어 발견됨으로써 적벽돌 뒤채움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이번 조사의 중요한 성과이다.[1]
"태평로2가 지하배수로"는 "서울광장 지하배수로"와 함께 조선시대 물길을 근간으로 하여 조선말기 및 일제강점기의 근대 기술을 도입하여 재구축한 역사적인 유적으로 희소한 문화유산이자 서울특별시의 근대화 과정 및 도시발달사를 상징하는 유산으로서 중요한 가치와 의의가 있다.[1] 또한 근대 토목사의 발전단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어 근대문화유산의 활용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학술적‧기술적‧문화적 가치가 높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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