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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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계천은 서울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이 10.84km의 하천으로, 과거에는 개천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부터 배수 시설로 활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한국 전쟁 이후 주변에 판자촌이 형성되면서 복개되었고,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었으나, 2000년대 초반 복원 사업을 통해 하천이 다시 드러났다. 청계천은 현재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며,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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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 |
---|---|
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청계천 |
로마자 표기 | Cheonggyecheon |
한글 | 청계천 |
한자 | 淸溪川 |
길이 | 10.92km |
지리 | |
위치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발원지 | 인왕산 백운동 계곡 |
발원지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
하구 | 중랑천 |
하구 위치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
유역 면적 | 50.96km² |
왼쪽 지류 | 성북천 정릉천 |
역사 | |
복원 비용 | 3860억 원 |
기타 | |
관련 | 중랑천 |
수계 | 한강 독립 수계 · 중랑천 종속 수계 · 청계천 종속 수계 |
2. 역사
청계천의 상류는 '''백운동'''(白雲洞)에서 시작된다. 중·하류에서는 조선 시대 내내 치수 사업이 전개되었으며 이로 인해 '''개천'''(開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청계천’이라는 명칭은 대체로 일제강점기 이후의 기록에서 나타나며,[20] 상류인 청풍계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21]
본래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은 조선 태종 때부터 한양을 서울로 한 조선시대 내내 개거, 준설 등 치수 사업의 대상이었다. 하천의 준설과 제방 보강, 다리 건설 등의 작업은 2~3년마다 실시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개천'은 현재의 이름인 청계천으로 개명되었다. 이 시기에는 청계천 복개가 계획되었으나 실행되지는 못했다.
1950년대 중반의 청계천은 한국 전쟁 직후 서울의 대표적인 슬럼 지역이었다. 한국 전쟁 이후, 서울로 이주한 사람들이 하천가에 임시 가옥을 짓고 정착하면서 쓰레기, 모래, 폐기물 등으로 인해 환경이 악화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58년부터 청계천 복개사업이 추진되었다.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었다. 이 지역은 한국의 성공적인 산업화와 현대화의 사례가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청계천 복원 여론이 높아짐에 따라,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에 걸쳐 청계고가도로 철거와 하천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 하천 청소, 지하수 방류 등의 수질 정화와 친수 시설 정비로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조성되었다. 교통 사정을 고려한 주변 도로 정비로, 고가도로 철거 후에도 큰 교통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청계천의 복원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환경스페셜」에서도 소개되었다.
2. 1. 조선 시대
조선 태종은 1406년부터 한양(서울)의 배수로였던 청계천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큰비가 올 때마다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1411년 임시기구인 '개천도감(開渠都監)'을 설치하고, 이듬해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공사로 청계천 양안을 돌로 쌓고, 광통교, 혜정교 등 다리를 돌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청계천은 '개천(開川)'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4] 세종은 지천 정비와 더불어 1441년 마전교 서쪽에 수표를 설치하여 홍수 예방과 수위 측정을 가능하게 했다.영조는 1760년 대대적인 준설 작업을 실시하고, 백운동천과 삼청동천이 합류하는 지점부터 오간수문 근처까지 석축을 쌓아 청계천을 직선화했다. 이 준설 과정은 《준천사실》에 기록되어 있다. 오간수문이 막힐 정도로 토사가 쌓이자 영조는 준설을 통해 파낸 흙으로 가산을 쌓게 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때 사라졌고 현재는 오간수교 위에 표지석이 있다.[4]

2. 2.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 '개천'은 현재의 이름인 청계천으로 개명되었다.[5][6] 이 기간 동안 일본은 청계천 복개를 계획하였으나,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여러 차례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못했다.[5][6]2. 3. 현대
1950년대 중반의 청계천은 한국 전쟁 직후의 서울시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슬럼지역이었다. 한국 전쟁 후, 더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서울로 이주하여 하천가에 허름한 임시 가옥을 짓고 정착하면서, 쓰레기, 모래, 폐기물 등으로 인하여 환경은 더욱 악화되었다.[5]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 청계천 복개사업이었다. 일제강점기나 1955년에도 일부 이루어졌지만, 청계천이 본격적으로 복개된 것은 1958년부터였다. 1958년 5월부터 1961년 12월까지는 광교 ~ 청계6가(동대문 야구장 부근) 구간, 1965년부터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 구간, 1970년부터 1977년까지는 청계 8가 ~ 신답철교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리고 이 복개된 청계천 위에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된다.[5] 이 지역은 한국의 성공적인 산업화와 현대화의 사례가 되었다.
그 후, 2000년대에 들어 시민들의 서명 등을 통해 청계천 복원 여론이 높아짐에 따라,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에 걸쳐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던 청계고가도로의 철거와 동시에 하천의 복원 공사가 진행되었다(총 길이 약 5.8km). 하천 청소, 지하철 역사 등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방류하는 등의 수질 정화 대책과 친수 시설 정비를 실시한 결과,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었다.
교통 사정을 고려하여 주변 주요 도로 등의 확장 정비도 함께 실시되었기 때문에,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한 후에도 큰 교통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브레이스의 역설).
3. 복원
1990년대에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노후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32대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2003년 7월 1일 청계고가도로 철거가 시작되었고,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에 이르는 약 5.84km 구간을 복원하는 공사는 386739억원을 들여 2005년 9월 30일에 완료되었다. 복원된 청계천의 통수단면 위쪽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의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조달하며, 통수단면 아래쪽을 흐르는 물은 도심의 오·폐수이다.
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있다.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가 복원되어 있다.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 3개를 남겨 놓았다. 청계천 입구의 청계광장에는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3. 1. 청계천 복원 사업
1990년대에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노후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32대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2003년 7월 1일에 청계고가도로 철거가 시작되었고,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성동구 신답 철교에 이르는 약 5.84km 구간을 복원하는 공사는 386739억원을 들여 2005년 9월 30일에 완료되었다.[7] 복원된 청계천의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의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조달한다.[7]
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있다.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가 복원되어 있다.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 3개를 남겨 놓았다. 청계천 입구의 청계광장에는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서울 중심업무지구의 독특한 자연 환경과 역사적 자원을 보존하고, 정보 기술, 국제 업무 및 디지털 산업을 통해 주변 상업 지역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5]
이로 인한 교통 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계천 복원사업본부는 복원 공사에 영향을 받는 도심 지역의 교통 흐름을 관리하고, 청계천 복원 연구단의 연구를 바탕으로 도심 교통 체계의 변화를 조정했다.[5]
광통교와 수표교 등 두 개의 역사적인 다리 복원 또한 논란이 되었는데,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역사 및 문화 유적지와 유물의 복원 방식, 다리 교체 여부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5]
3. 2. 이후 복원 사업
서울특별시가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게 복원하기로 결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계획을 포함했다.[22]2003년 7월, 이명박 서울특별시장은 고가도로 철거 및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는 고가도로 철거와 더불어 수년간 방치와 개발로 청계천이 거의 말라붙은 상태였기에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한강, 지류, 지하철역 지하수에서 매일 120000ton의 물을 공급해야 했다.[7]
청계천 복원사업본부는 복원 공사로 인한 교통 혼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심 교통 흐름을 관리하고, 청계천 복원 연구단의 연구를 바탕으로 도심 교통 체계를 조정했다.[5]
광통교, 수표교 등 역사적인 다리 복원 과정에서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역사 및 문화 유적, 유물 복원 방식과 다리 교체 여부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논란이 있었다.[5]
청계천 복원 사업은 서울 중심업무지구의 자연 환경과 역사적 자원을 보존하고, 정보 기술, 국제 업무, 디지털 산업을 통해 주변 상업 지역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5]
3. 3. 평가
서울학연구소가 시민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서울 도심에서 시행된 주요 20개 사업 가운데 '청계천 복원'이 만족도와 기여도 평가에서 5점 만점에 4.02점을 받아 1위에 선정되었다.[23]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시민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청계천 복원의 최대 성과로 생태환경의 회복을 꼽았으며, 서울의 랜드마크를 묻는 질문에 청계천은 4위에 올랐다.[24] 서울시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청계천 주변 상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복원 사업 진행에 대해 '잘 진행됐다'는 평가가 66.8%, 향후 전망에 대해서도 '잘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77.6%로 나타났다.[25]긍정적 평가로는 청계천과 그 주변 환경 개선을 들 수 있다. 복원된 청계천은 시민들의 도심 속 휴식 공간이자 여가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대기질 개선과 소음 감소가 확인되었으며[26], 열섬현상이 약화되었고[27], 음이온 발생량이 일반 도심 지역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28] 청계천에 서식하는 생물 종은 복원 전 98종에서 6.4배 증가한 626종(식물 308종, 어류 25종, 조류 36종)으로, 참갈겨니, 참종개, 얼룩동사리 등 특산종과 깝작도요, 알락오리, 도롱뇽 등의 서식이 확인되었다.[29]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복원의 경제 효과를 최대 23조 원으로 추정했고, 복원 이후 주변 개발로 31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다.[30]
해외에서도 청계천 복원 사업을 벤치마킹했다. 일본 나고야시는 공무원단을 파견해 장기적인 교류를 통해 복원 사업 노하우를 전수받았다.[31] 미국 하버드 대학교는 청계천 복원 사업 관련 서적을 출간하고 수업 교재로 채택했으며,[32]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서울시 옛 청계천복원팀이 환경단체 회원과 LA시의원 등에게 하천 복구 노하우를 전수하였다.[33]
반면 부정적인 평가도 많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복원된 청계천을 "인공호수"라고 비판했다.[34] 취수장에서 전기를 이용해 한강물과 지하수를 끌어다 청계광장에서 흘려보내는데, 이때 전기요금이 한 해 평균 8억원 가량으로 상당하며,[35] 녹조 제거를 위해서도 2007년부터 2009년까지 8000만원이 쓰였다. 2011년에만 인건비, 청소·경비용역비, 토목·조경시설 유지관리비 등에 80억원이 소모되었으며, 이는 2005년 37억원에서 꾸준히 증가한 수치이다. 2011년 6월 조선일보 설문조사에서 청계천은 최악의 건축물 3위에 뽑혔는데, "건축가도 없이 단기간에 불도저로 밀어붙이듯 만들었다"는 이유였다.[36]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임기 안에 복원 사업을 무리하게 끝마치기 위해 유적 복원을 날림으로 진행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석축, 효령교, 하랑교, 오간수문은 복원되지 않고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에 보관되고 있다.[37] 1773년에 쌓은 청계천 석축(현 무교동 사거리에서 시작, 17.1m 폭으로 양쪽에 길게 늘어섬)도 발굴 후 복원되지 못했다. 동아일보사 앞 좌안석축(교차로 기준 서쪽 57m, 동쪽 36m), 반대편 우안석축(9m) 등 총 100여m나 되는 석축이 발견되었지만 복원되지 않았다. 수표교는 예산 문제로 장충단공원에 남아 있고, 광통교는 원래와 다르게 복원되었다.
일부 한국 환경단체들은 높은 비용과 생태적·역사적 진정성 부족을 비판하며, 청계천 복원 사업이 도시 생태 환경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상징적인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도시 개발 수단으로 복원 사업을 이용하는 대신, 청계천 유역 전체와 그 생태계의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생태·역사적 회복을 촉구했다.[12] 청계천 관리 비용은 매년 증가하여,[13] 2005년 10월부터 2016년 말까지 총 857억원(연평균 71억원)이 소요되었다.[14]
4. 지리
청계천은 서울 도심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10.84km의 하천이며, 중랑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가 마지막으로 황해(서해)로 유입된다.[2][3] 상류는 '''백운동'''(白雲洞)에서 시작된다. 중·하류에서는 조선 시대 내내 치수 사업이 전개되었으며 이로 인해 '''개천'''(開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청계천’이라는 명칭은 대체로 일제강점기 이후의 기록에서 나타나며,[20] 상류인 청풍계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21]
5. 수질
2010년 서울시의 수질 조사 결과, 청계천의 연평균 대장균 수가 한국의 수영 가능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49] 서울시 당국은 시내 하수도 시설의 구조상 일시적으로 처리되지 않은 하수가 강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있어 대장균 수가 증가하는 시기가 있다고 설명한다.[49]
6. 다리
조선 시대 청계천에는 백운동천의 신교부터 송기교까지의 다리가 있었다.
- 태평로1가 64번지 부근 광화문우체국 남쪽에 있던 다리로, 서울지도에 표시만 되어 있고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39]
- 하랑교(河浪橋): 입정동 6번지 북쪽, 장사동 208번지 남쪽에 있었으며, 이 부근에 하랑위(河浪尉)의 집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하랑위교, 하교, 화류교, 화교 등으로도 불렸다.[44]
- 신교(新橋): 입정동 201·211번지 북쪽, 장사동 250번지 남쪽, 창덕궁과 남산의 조선신궁(옛 조선총독부)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길 위에 있었다.[44]
- 효경교(孝經橋): 장사동 아세아전자상가 남쪽에 있었으며, 영풍교, 소경다리, 새경다리, 효경다리, 효교라고도 하였다.[45],[44],[47]
6. 1. 과거의 다리
조선시대 청계천에는 다음과 같은 다리들이 있었다.- 광통교(廣通橋): 지금의 광교 자리에 있었다. 정릉의 석물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이성계가 자신의 왕위를 이방석에게 넘겨 주려 하자, 태종이 난을 일으켜 이방석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후 정릉을 옮기며 일부 돌들을 모두가 밟을 수 있게 옮겨 놓았다. 정월 대보름에 다리밟기 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했다.[40]
- 수표교(水標橋): 1420년(세종 2)에 만들어졌다. 1441년(세종 23)에 다리 옆에 개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한 수표석(水標石)을 세운 이후 수표교라고 하였다.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장충단공원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40]
- 하랑교(河浪橋): 이 부근에 하랑위(河浪尉)의 집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44]
- 효경교(孝經橋): 다리 밑에 거지가 많이 살아 음력 12월에 임금이 거지들을 살폈다고 한다.[45]
- 오간수교(五間水橋): 오간수문 위로 통행을 편하게 하기 위해 가설한 다리이다. 1907년 일제가 오간수문을 헐어버린 뒤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었다가 사라졌다.
- 영도교(永渡橋): 조선 성종 때 승려가 놓았다고 전한다. 흥인지문 밖에 있는 동묘(東廟)와 왕십리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고종 초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헐어다가 석재로 사용하였다.
- 모전교(毛廛橋): 지금의 모전교 자리에 있었다. 각종 과일을 파는 가게를 말하는 모전 부근에 있었으므로 모전교라고 하였다.[40]
- 장통교(長通橋): 장통방(長通坊)에 있었으므로 장통교라고 하였다.[42]
- 광제교(廣濟橋): 동국여지비고에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43]
- 신교(新橋): 1900년대 이후 청계천을 개수하며 콘크리트로 가장 먼저 바뀌었다.[44]
- 태평교(太平橋): 지금의 마전교 자리에 있었다. 다리 부근에 마전(馬廛)이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47]
6. 2. 현재의 다리
모전교는 지금의 모전교 자리에 있었으며, 우전다리 또는 모교라고도 불렸다. 1412년(태종 12년) 석교로 개축된 이후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영조 때 모전교로 불리게 되었다.[39] 모전 부근에 있었기 때문에 모전교라고 하였으며, 모전은 각종 과일을 파는 가게를 말한다.[40]광통교는 지금의 광교 자리에 있었으며, 육조거리-운종가-숭례문으로 이어지는 도성 안 중심 통로였고 주변에 시전이 있어 도성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다리였다. 대광통교, 북광통교, 대광교, 광교 등으로도 불렸다. 태조 때 흙으로 축조되었다가 폭우로 무너지자 1410년(태종 10년) 정릉의 석물을 사용하여 돌로 다시 축조하였다. 태종이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후 강씨의 묘를 옮기며 일부 돌들을 모두가 밟을 수 있게 옮겨 놓은 것이다. 정월 대보름에 다리밟기 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했다.[40]
장통교는 장통방에 있었기 때문에 장통교라고 하였으며, 장창교, 장찻골다리, 장교라고도 하였다.[42] 청계천 본류와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다.[40]
수표교는 1420년(세종 2년)에 만들어졌다. 수표를 놓기 전에는 마전교라 불렀으나, 1441년(세종 23년) 다리 옆에 개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한 수표석을 세운 이후 수표교라고 하였다.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40]
오간수교는 오간수문 위로 통행을 편하게 하기 위해 가설한 다리이다. 1907년 일제가 오간수문을 헐어버린 뒤로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었다가 사라졌다.
영도교는 조선 성종 때 승려가 놓았다고 전한다. 영미교, 영이별교, 영영교라고도 불렸다. 흥인지문 밖에 있는 동묘와 왕십리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고종 초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헐어다가 석재로 사용하였으며, 일제강점기 콘크리트 다리로 개축되었다.
6. 3. 서울 청계천 유적
서울 청계천 유적은 사적 제461호이다. 여기에는 광통교, 수표교, 오간수문 터와 광통교, 하랑교, 효경교, 오간수문, 양안 석축 등의 유구가 포함된다. 발굴된 유구는 현재 중랑물재생센터에 보관되어 있다.[50]7. 대중문화
wikitext
다음은 청계천을 배경으로 하거나 청계천이 등장하는 대중문화 작품들이다.
영화 | 드라마 |
---|---|
7. 1. 영화
7. 2.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 문희, 아이리스, 한국인 자기야, 시카고 타자기 등의 드라마에 청계천이 등장한다.[1]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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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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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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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Today
2017-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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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Veronica Rudge Green Prize in Urban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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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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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중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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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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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한국하천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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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한강홍수통제소
201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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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하천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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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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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록
서울특별시의회 제254차 임시회 제5차 교통위원회 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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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회 사무처
201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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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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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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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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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청계천 옛 물길 2050년까지 완전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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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1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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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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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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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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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청계천 복원 뒤 대기.소음 개선
https://news.naver.c[...]
[27]
뉴스
청계천 복원 후 열섬현상 약화
https://news.naver.c[...]
[28]
뉴스
청계천변 음이온, 도심지역보다 높다
https://news.naver.c[...]
[29]
뉴스
청계천 생물종 복원전보다 6.4배 늘었다
https://news.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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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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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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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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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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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직선들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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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청계천 물길 따라 해마다 80억원 증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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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1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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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건축가들 "최악은 오세훈의 광화문광장, 3위는 MB 청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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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스앤뉴스
20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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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청계천 고가 밑 보물창고, 누가 파괴했나? '국보'를 쓰레기 취급한 MB, 참 특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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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0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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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청계광장 스프링은 국운에 악영향 옮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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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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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하천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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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다리들 청계천>청계천 소개>문화유적>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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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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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통교 사진자료로 복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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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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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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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하천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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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청계천복원, 형태드러난 4개 다리 어떤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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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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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하량교 사진 또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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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4-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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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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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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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복원사업 백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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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0-00
[49]
뉴스
평화시장 앞 청계천 '전태일 다리 명명식'…"제2의 전태일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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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2012-11-01
[50]
뉴스
‘청계천 다리 유구’ 10년째 노천에 방치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13-09-23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서울 동북·서남권 호우주의보…하천 29곳 출입통제
서울 가을 공연·축제 한데 모은 ‘서울어텀페스타’ 10월4일 개막
서울 전역 호우주의보…하천 29곳 통제·1단계 비상근무
서울 전역 호우주의보…하천 29곳 통제·1단계 비상근무
서울 전역 호우주의보…하천 29곳 통제
서울 서남권 호우주의보에 하천 29곳 통제
'운전석 없는' 자율주행셔틀…청계천 달린다
日 시부야처럼 ‘아파트 속 입체 공원’ 시동
청량리역 인근 용두동에 최고 42층, 695가구
월세 벅찬데 건물 안전도 걱정…공허한 ‘상생’
국내 첫 ‘운전석 없는 자율주행셔틀’ 9월말부터 청계천 운행
국내 최초 '운전석 없는' 자율주행버스 9월 말 청계천서 운행
‘상생’이라더니···비싼 임대료·안전 우려 속 방치된 세운상가 상생센터
[MK부동산 단신] 화성 향남IC 사옥형 신축 공장 매각
‘처서 매직’은 옛말?···당분간 ‘체감온도 35도’ 무더위 이어져
정릉골 마을잔치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포토뉴스]발이라도 시원하게
청계천 ‘작은 공장’으로 불리던 공구거리···마지막 남은 기술공도 떠났다
서울 하천 29곳·둔치주차장 4개소 통제···도로 정상 통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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