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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식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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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식민군은 프랑스 식민지에 주둔하거나 배속되어 프랑스인, 그 후손, 그리고 현지 토착민으로 구성된 군대였다. 주로 보병과 포병으로 구성되었으며, 외인 부대, 주아브, 스파히 등과는 구별되었다. 식민군은 프랑스 본국, 식민지, 해외 주둔지에서 복무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프랑스 정규군과 토착 병력을 합쳐 약 92,000명으로 구성되었다. 1900년 "식민군" 명칭이 채택되었으며, 1958년 아프리카 식민지의 독립 이후 명칭과 임무가 변경되었다. 현재는 해병대 보병, 공수 부대 등이 프랑스 육군 내에서 별도의 병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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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식민군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개요
명칭프랑스 식민군
종류해병대 / 식민지군
역할식민지 전쟁
상륙 작전
원정 전쟁
1895년 [[마다가스카르]]에 상륙하는 식민지 보병 프랑스 정규군.
1895년 마다가스카르에 상륙하는 식민지 보병 프랑스 정규군.
복무
소속 국가프랑스 식민지와 해외 영토
창설1900년
해체1961년
지휘부
전투 및 작전
주요 전투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알제리 전쟁

2. 구성

식민군('la Coloniale')은 단일 참모부에 속했으며, 주로 보병포병 부대로 구성되었다. 지역에 따라 인도차이나에는 현지에서 모집된 기병 부대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는 낙타 부대도 존재했다. 1914년 프랑스 식민지 전역에서 총 25,000명에 달하는 현지 보조병이 민간 경비대, 민병대 또는 헌병으로 복무했다. 이들은 준군사 부대로 식민군에 의해 지휘 및 관리되었지만, 모집된 지역 밖에서는 복무하지 않았다.[2]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식민군은 프랑스 정규군 42,000명(이 중 약 13,000명이 해외 배치)과 아프리카 및 인도차이나 토착 병력 50,000명으로 구성되었다.[2]

영국령 인도의 폰디셰리 등 프랑스 거점을 수비하던 두 개의 시파히 중대는 1907년 헌병으로 전환되었다가 1921년 다시 식민군으로 복귀했다.[3]

2. 1. [[프랑스 아프리카 군]]과의 관계

프랑스 식민군(프랑스어: Armée coloniale)은 프랑스 아프리카 군 소속의 외인 부대, 주아브병, 스파히, 티라이외르, 구미에와 같은 유명한 북아프리카 주둔 부대를 포함하지 않는다. 프랑스 식민군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 프랑스 본국이나 중앙 아프리카, 마다가스카, 인도차이나 지역에 배속된, 프랑스 오랜 지배하의 식민지 현지 주민이나 프랑스 식민지에 이주해간 정착자 또는 그 후손.
  • 프랑스인 장교가 지휘하는 토착민으로 구성된 토착군. 이 군대는 Tirailleurs sénégalais(세네갈 식민군), Tirailleurs malgaches(마다가스카 식민군), Tirailleurs indochinois(인도차이나 식민군) 등의 현지 식민지 이름을 딴 군 부대로 발전했다. Tirailleurs sénégalais(세네갈 식민군)이라는 이름은 세네갈이 프랑스 최초의 아프리카 식민지였기 때문에 모든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주둔군에게 주어졌다.


식민군은 대부분 보병과 포병으로 구성되었으나, 지역에 따라 인도차이나 지역에는 기병대가, 사하라 지역에는 낙타 부대도 존재했다.

''식민군''은 북아프리카에 주둔한 외인부대, 주아브 연대, 아프리카 경보병 대대, 또는 토착 북아프리카 스파히, 티레일뢰르, 구미에와 같은 아프리카군 부대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북아프리카 부대는 183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1873년 제19군단으로 통합되어 프랑스 본토군의 일부를 형성했다.[1]

대신 ''식민군''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 프랑스 본국 또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및 중앙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뉴칼레도니아 또는 인도차이나의 수비대에 복무하도록 지정된 프랑스 장기 복무 지원병(또는 1893년까지[1] 식민지 정착민).
  • 위 지역에서 모집되어 프랑스 장교 아래에서 복무하는 토착 병력. 이들은 출신 식민지의 이름에 따라 ''세네갈 티레일뢰르'', ''마다가스카르 티레일뢰르'', ''인도차이나 티레일뢰르'' 등으로 지정되었다. 세네갈사하라 사막 이남의 최초의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세네갈 티레일뢰르''는 모든 서아프리카 및 중앙아프리카 연대에 주어진 이름이었다.


모든 식민군('la Coloniale' 또는 식민군)은 단일 참모부에 속했다. ''식민군''은 주로 보병이었지만 일반적인 지원 부대뿐만 아니라 포병 부대도 포함했다. 다양한 시기에 그들은 또한 인도차이나에서 현지에서 모집된 기병 부대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낙타 부대를 포함했다. 1914년 프랑스 식민지 전역에서 총 25,000명에 달하는 현지 보조병이 민간 경비대, 민병대 또는 헌병으로 복무했다. 이 준군사 부대는 식민군에 의해 지휘되고 부분적으로 관리되었지만, 그들의 모집 영토 밖에서는 복무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식민군''은 프랑스 정규군 42,000명(이 중 약 13,000명이 해외에 배치됨), 아프리카 및 인도차이나 토착 병력 50,000명으로 구성되었다.

두 개의 ''시파히''(세포이) 중대는 폰디셰리와 영국령 인도의 다른 프랑스 거점을 수비했다. 이들은 1907년에 헌병으로 전환되었지만 1921년에 다시 ''식민군''으로 복귀했다.

3. 명칭 변경

"식민군", "식민 육군", 해병대 또는 "프랑스 식민지의 군대"라는 용어의 정확한 의미는 18세기 이후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 18세기와 19세기 초, "해병대"는 프랑스의 여러 해외 영토에 영구 주둔하는 프랑스 군대를 지칭했다.
  • 19세기 중반 이후, 이 용어는 북아프리카를 제외한 프랑스 식민지에서 모집된 "원주민" 군대를 포함하도록 확장되었다.
  • 1900년, "식민군"이라는 명칭이 채택되었고, 이전에는 해군부 관할이던 모든 해병대 및 해군 포병대가 육군부 명령을 받게 되었다. 1958년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가 독립하면서, 이 군대의 임무와 명칭이 재정의되었다. "해외 군대" (''Troupes d'Outre-Mer'')라는 짧은 기간을 거친 후, 전통적인 해병대 명칭이 복원되었다. 그러나 해병 연대는 프랑스 육군의 일부로 남았다.


1822년부터 1900년까지 프랑스군과 현지 부대를 통틀어 해병대로 지정했지만, 프랑스 해군 소속은 아니었다. 두 부대는 모두 해군부 장관 관할이었고, 닻 휘장을 공유했다. 이 휘장은 1900년 ''해병대''가 ''식민지군''으로 변경된 후에도 계속 착용되었으며, 1950년대 메하리스트(낙타 기병대) 병사들 사진에서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모리타니 사막에서도 발견된다. 1961년, ''해외 부대''(1958-61)라는 짧은 기간을 거쳐 다시 해병대라는 명칭을 채택했다.

4. 제복

프랑스령 콩고, 1905년경. 식민지 보병의 ''bleu mecanicien'' 야전복.


유럽 식민지 보병 연대와 식민지 포병 연대는 1914년까지 본토 부대와 유사한 스타일의 제복을 착용했다.[2] 식민지 부대는 어깨 견장에 노란색 술을 달았고, 선형 보병의 빨간색 견장과 빨간색 바지 대신 중간 파란색 바지를 착용했다. 식민지 근무 시에는 상황에 따라 흰색, 짙은 파란색 또는 밝은 카키색 제복에 토피를 착용했다.[3] 1895년부터 1905년까지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에서 야전복으로 밝은 파란색/회색(''bleu mecanicien'') 제복을 착용했다(반대편 사진 참조).

1873년부터 Troupes Coloniales는 ''팔레토''로 알려진 두 줄의 튜닉을 착용했는데, 이는 그들만 착용했다. 이 의복은 제1차 세계 대전 내내 착용되었으며, 본토 육군 병력과 명확히 구별되는 사진에서 Troupes Coloniales를 정확히 식별하는 데 유용하다.

육군의 다른 부대와 마찬가지로 1914년 12월 9일 공지 이후 1915년 호라이즌 블루 제복을 채택했다.[4] 제1차 세계 대전 말과 이후에는 본토 징집병의 호라이즌 블루와 대조적으로 모든 식민지 군대의 표준 제복이 카키색이 되었다.[5] 그러나 1928년부터 1939년까지 식민지 보병 또는 식민지 포병에 자원 입대한 프랑스 군인들에게는 파란색 정복이 복원되었다.

아프리카의 티라이유르 연대는 1914년까지 짙은 파란색 또는 카키색 제복과 함께 빨간색 페즈와 를 착용했다. 인도차이나 부대는 현지 패턴을 기반으로 한 살라코 머리 장식과 파란색, 흰색 또는 카키색 드릴 의류를 착용했다.[6]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카키색이 원주민 군대의 일반적인 제복이 되었지만, 띠와 페즈는 1950년대까지 열병에 계속 착용되었다.[7]

현대의 해병대(Troupes de Marine)는 빨간색 파이핑과 청동 닻 배지, 빨간색 띠, 노란색 술 장식이 달린 짙은 파란색 케피로 정복에서 구별된다. 이러한 전통적인 품목은 의례적인 경우 현대 프랑스 육군의 표준 밝은 베이지색 또는 위장복과 함께 착용된다.

5. 식민지 시대 이후

1822년부터 1900년까지 프랑스군과 현지 부대를 통틀어 ''해병대''로 지정했지만, 직접적으로 프랑스 해군에 소속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 부대는 모두 ''해군부 장관''의 관할을 받았고, 닻 휘장을 공유했다. 이 휘장은 1900년 ''해병대''가 ''식민지군''으로 변경된 후에도 계속 착용되었으며, 1950년대에 촬영된 메하리스트 (낙타 기병대) 병사들의 사진에서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모리타니 사막에서도 닻 휘장이 발견된다. 1961년에는 ''해외 부대'' (1958~61)라는 짧은 기간을 거쳐 다시 ''해병대''라는 명칭을 채택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 프랑스령 아프리카의 나머지 지역이 독립하면서 티레일러는 해산되었고, 대개 새로운 국가의 군대에 합류했다. 1964년, 1913년에 제7 알제리 티레일러 연대(7e Régiment de tirailleurs Algériens)로 창설된 제7 티레일러 연대는 제170 보병 연대(170e Régiment d'Infanterie)로 재편성되었다. 다양한 "인도차이나 티레일러" 연대는 1945년 3월 10일 일본의 쿠데타로 흩어졌고 재편성되지 않았다.

1994년 5월 1일, 아프리카 군(armée d'Afrique)의 참전 용사, 외인 부대(légionnaires), 스파히(spahis), 주아브(zouaves), 포병(artilleurs)의 입회하에 제170 보병 연대는 제1 티레일러 연대(1er Régiment de Tirailleurs)로 재지정되었다. 이 부대는 1964년에 해산된 옛 제1 알제리 티레일러 연대(1er régiment de tirailleurs Algériens)의 휘장을 착용하고 명예와 전통을 계승했다.

6. 현대

해병 보병, 해병 공수, 포병, 공병 부대는 현대 프랑스 육군에서 별도의 병과로 남아있다.

7. 사진첩

마다가스카에서 행진하는 프랑스 식민군.

참조

[1] 서적 The French Foreign Legion 1872-1914 Bloomsbury USA 2010-07-20
[2] 서적 The French Army in the First World War - to battle 1914 Verlag Militaria
[3] 서적 L'histoire des Troupes de Marine au travers de l'uniforme 1622-2020 Histoire & Collections 2020
[4] 웹사이트 Notice descriptive des nouveaux uniformes. (Décision ministérielle du 9 décembre 1914 mise à jour avec le modificatif du 28 janvier 1915) https://gallica.bnf.[...] 2021-07-30
[5] 문서
[6] 서적 Les Linh Tap. Histoire des militaires indochinois au service de la France Lavauzelle Graphic
[7] 서적 L'histoire des Troupes de Marine au travers de l'uniforme 1622-2020 Histoire & Collection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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